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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05(금) ◈ 느 13:1-14 나의 부패와 약함을 이기는 은혜의 왕 노릇
느 13:1 그 날, 백성에게 모세의 책을 읽어 주었는데, 거기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참석하지 못한다.
느 13:2 그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 자손을 맞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서, 우리가 저주를 받도록 빌게 하였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 저주를 바꾸어 복이 되게 하셨다."
느 13:3 백성은 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섞여서 사는 이방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모두 분리시켰다.
느 13:4 이 일이 있기 전이다. 우리 하나님 성전의 방들을 맡고 있는 엘리아십 제사장은 도비야와 가까이 지내는 사이이다.
느 13:5 그런데 그가 도비야에게 큰 방 하나를 내주었다. 그 방은 처음부터 곡식제물과 유향과 그릇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사람들과 성전 문지기들에게 주려고 십일조로 거두어들인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제사장들의 몫으로 바친 제물을 두는 곳이다.
느 13:6 이 모든 일은, 내가 예루살렘을 비웠을 때에 일어났다. 나는 바빌론 왕 아닥사스다 삼십이년에 왕을 뵈러 갔다가, 얼마가 지나서 왕에게 말미를 얻어,
느 13:7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와서야, 엘리아십이 하나님의 성전 뜰 안에 도비야가 살 방을 차려 준 이 악한 일을 알게 되었다.
느 13:8 나는 몹시 화가 나서, 도비야가 쓰는 방의 세간을 다 바깥으로 내던지고,
느 13:9 말하였다. "그 방을 깨끗하게 치운 다음에, 하나님의 성전 그릇들과 곡식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다 놓아라."
느 13:10 내가 또 알아보니, 레위 사람들은 그 동안에 받을 몫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사람들은 맡은 일을 버리고, 저마다 밭이 있는 곳으로 떠났다.
느 13:11 그래서 나는, 어쩌자고 하나님의 성전을 이렇게 내버려 두었느냐고 관리들을 꾸짖고, 곧 레위 사람들을 불러모아서 다시 일을 맡아 보게 하였다.
느 13:12 그랬더니, 온 유다 사람들이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지고 와서, 창고에 들여다 놓았다.
느 13:13 나는 셀레먀 제사장과 사독 서기관과 레위 사람 브다야를 창고 책임자로 삼고, 맛다니야의 손자이며 삭굴의 아들인 하난을 버금 책임자로 삼았다. 그들은 모두 정직하다고 인정을 받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맡은 일은, 동료들에게 돌아갈 몫을 골고루 나누어 주는 일이었다.
느 13:14 "하나님, 내가 한 일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의 성전을 보살핀 일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정성껏 한 이 일을 잊지 마십시오."
◈ 하나님의 현존인 말씀
1. 성벽 재건 후 말씀을 밝히 깨달은 백성들은 자신들을 끔찍이도 불쌍히 여겨주신 은혜를 깨닫고 언약을 굳게 세운다.
1) 이방인과의 통혼 금지, 안식일, 빚 탕감, 십일조를 드리며 하나님의 성전을 돌본다.
2) 성벽 재건, 말씀부흥회와 언약 갱신,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헌신, 성전을 섬길 제사장과 레위인의 족보, 이 모든 준비 끝에 하나님께 성벽을 봉헌한다.
2. 찬양대를 둘로 나눠서, 성벽을 반 바퀴씩 돌고 성전에서 많은 제물로 제사를 드리면서 기뻐하였다. 하나님이 그들을 그렇게 기쁘게 하셨기 때문이다.
1) 그들은 직무를 수행하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고마워서, 율법에 정한 대로 생활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
2) 성벽 봉헌식의 기쁨과 예배가 마치 “다윗 때”와 같다.
3. 12장에는 영적 기쁨의 정점인 봉헌식이 나왔지만, 13장은 느헤미야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다시 무너진 이스라엘의 현실을 다룬다.
1) 오늘 본문은 시간의 흐름(느헤미야가 바벨론으로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기간) 속에 인간의 결심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준다.
2) 10장에서 "성전을 버려두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서명했지만(10:39), 느헤미야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그 맹세는 오래가지 못하고 깨진다.
3) 인간의 의지는 환경과 지도자의 부재 속에서 쉽게 변질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인자와 신실하심은 영원하다.
4. 많은 보수적인 신학자들과 주석가들은 느헤미야 13장 1절의 "그 날"을 12장의 봉헌식 날과 동일한 날로 보지 않고, 느헤미야가 바벨론에 갔다가 다시 돌아온 후(제2차 사역 시기)의 어느 날로 본다.
1) 봉헌식(12장)은 느헤미야가 총독으로 부임한 지 얼마 안 되어 성벽을 완공한 시점(아닥사스다 20년)과 가까운데, 13장 6절에서 그가 예루살렘을 비웠을 때가 아닥사스다 삼십이년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2) 13장에 나오는 타락들(도비야에게 방을 내줌, 십일조 중단, 안식일 범함 등)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느헤미야가 12년 동안(20년~32년)의 1차 사역을 마치고 잠시 페르시아로 복귀했다가,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공백기' 동안 서서히 무너져 내린 것이다.
3) "그 날(바욤 하후)"은 구약 성경에서 새로운 단락이나 사건을 도입할 때 사용하는 관용구인 경우가 많다.
4) 느헤미야는 시간적 순서보다는 '말씀의 회복과 개혁'이라는 주제를 묶기 위해 성벽 봉헌식에 이어서 행한 2차 종교 개혁을 보여준다.
5. 시간적 순서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1) 느헤미야가 페르시아로 떠남 => 공백기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타락하여 도비야에게 성전 방을 내줌(4-5절) =>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옴(6-7절) => 느헤미야가 도비야의 세간을 집어 던지고 방을 정화함 (13장 8절) => 느헤미야가 백성들에게 다시 모세의 책(율법)을 읽어줌(13장 1절 "그 날") => 백성들이 말씀을 듣고 도비야와 같은 이방인들과 분리하기 시작함(13장 3절)
2) 12장의 봉헌식은 1차 사역의 영광스러운 정점이었다. 13장은 인간의 부패로 인해 그 영광이 무너졌을 때, 다시 온 느헤미야(예수 그리스도의 모형)가 말씀으로 회복시키는 사역을 말한다.
3) 은혜를 받고도 다시 부패한 우리를 먼저 찾아오시는 분, 회복시키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이다.
6. 모세의 책(신명기 23:3-5)을 읽는 중에 암몬과 모압 사람이 영원히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말씀을 발견한 백성들은 이방 무리를 모두 분리시킨다.
1) 모든 백성들이 이방인을 분리시키기 전에, 느헤미야는 이방인 도비야가 성전의 방을 사용했던 일을 처리한 것을 말한다.
느 13:4 이 일이 있기 전이다. 우리 하나님 성전의 방들을 맡고 있는 엘리아십 제사장은 도비야와 가까이 지내는 사이이다.
느 13:5 그런데 그가 도비야에게 큰 방 하나를 내주었다. 그 방은 처음부터 곡식제물과 유향과 그릇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사람들과 성전 문지기들에게 주려고 십일조로 거두어들인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제사장들의 몫으로 바친 제물을 두는 곳이다.
7.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할 때, 성벽 재건에 가장 앞장서 주었던 대제사장 엘리아십은 여전히 대적 도비야와 가까이 지내고 있었다.
1) 엘리아십은 레위인들만이 드나들 수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 뜰에 있는 큰 방을 도비야에게 내어주는 악행을 저지른다.
2) 도비야는 성벽 재건을 조롱하고 방해했던 암몬 사람이다(느 2:10, 4:3).
3) 소제물, 유향, 십일조 등 거룩한 물건을 보관하는 거룩한 공간이, 세속적인 권력과 타협하여 대적의 거처로 변질되고 만다.
8.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느헤미야는 이 사실을 알고 "몹시 화가 나서" 도비야의 세간을 밖으로 내던지고 방을 정결하게 한 후에 다시 하나님의 그릇과 제물을 그곳에 들여놓는다.
1) 느헤미야의 이 행동은 신약에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예수님을 예표한다(요 2장, 마 21장).
2) 예수님도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강도의 소굴)으로 만든 것을 보시고 상을 엎으시고 내쫓으셨다.
3) 우리 마음과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우리가 은혜의 통치를 알지 못하면 우리 마음의 '큰 방'을 세상의 우상(도비야)에게 내어주게 된다.
4) 우리 안에 사시는 예수님은 우상들을 몰아내고, 말씀으로 예배의 처소로 회복시키시는 분이시다.
9. 느헤미야가 또 알아보니, 레위 사람들이 받을 몫(십일조)을 받지 못해 사역을 버리고 생활을 하기 위해 밭 있는 곳으로 떠났다.
1) 12장에서 레위인들이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고마워서" 자원하여 드렸던 헌신(12:44)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2)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중단하자, 사역자들은 생계를 위해 일터로 떠났고, 결국 "하나님의 성전이 버려진 바" 되었다.
3) 십일조의 중단은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은혜에 대한 감격이 식었음을 보여주는 영적 지표다.
10. 느헤미야는 관리들을 꾸짖고, 레위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아 제 자리에 세운다.
1) 그러자 온 유다 사람들이 다시 십일조를 가져오기 시작한다(12절).
2) 느헤미야는 '정직한 자'들을 창고 책임자로 세워 레위인들에게 공평하게 나누게 한다.
3) 느헤미야는 총독 즉 행정가이지만 학자 에스라와 동역하였고, 레위인들의 직무도 정직한 관리와 협력하여 성전을 섬기게 한다.
4)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기 위하여 안수집사를 세우는 원리를 이미 실행함으로 건강하면서도 영적인 공동체를 세워간다.
5) 은혜를 깨달으면 인색하지 않다. 그러나 은혜를 잊으면 가장 먼저 지갑이 닫힌다. 느헤미야는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깨닫게 함으로 은혜의 경제학이 공동체에 운행되게 한다.
11. 말씀으로 백성들의 삶과 성전 예배의 개혁을 마친 후 느헤미야는 기도한다.
느 13:14 "하나님, 내가 한 일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의 성전을 보살핀 일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정성껏 한 이 일을 잊지 마십시오."
1) 탁월한 능력과 리더쉽을 발휘한 총독 느헤미야가 어디에 중점을 두고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그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분명히 알게 된다.
2) 그는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보살피고, 예배하는 백성이 되도록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가 구한 것은 사람들의 인정과 세상 형통이 아니라, 주님이 기억하여 주는 것이었다.
3)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사람의 인정과 세상의 높아짐이 아니라, 주님이 아시는 것, 주님의 칭찬과 상급이었다.
4) 즉 한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구하였고, 영원한 분의 인정과 칭찬을 구했다.
12. 느헤미야는 지도력과 말씀으로 성벽 재건, 언약 갱신, 기쁨의 예배를 드리도록 개혁하였지만, 그가 자리를 비우자, 백성들은 다시 타락했다.
1) 이는 사람의 율법적 노력으로는 죄의 문제를 영원히 해결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2) 그러기에 우리는 한때 받은 은혜, 한때 경험한 놀라운 부흥과 기적을 자랑하지 말고, 더욱 겸비하여 은혜의 왕 노릇의 통치를 받고 있어야 한다.
3) 어제 거룩했으나 오늘 음행할 수 있고, 어제 성령 충만했으나 오늘 세상 충만할 수 있고, 어제 겸손했으나 오늘 교만할 수 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주의해야 한다.
13. 생명의 교제만이 주님을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생명에서 생명으로 나아가게 한다.
1) 그러나 생명의 교제를 한다는 것이 자랑이 되어 교만에 빠지면, 이 또한 부패하게 된다.
2) 그러므로 은혜의 왕 노릇, 즉 나는 죄인 중의 괴수이고, 십자가의 은혜가 왕 노릇하여 나에게 생명을 주셨고, 오늘도 생명의 교제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는 “은혜 중심”의 신앙이어야 한다.
3) 성령 충만이던, 생명의 교제이던, 예배자이던 “내가 이렇게 해서 이렇게 되었다”는 “자아”가 개입되면 거짓의 아비 마귀는 만물보다 부패하고 거짓된 마음을 통하여 교묘하게 속인다.
14. 어거스틴은 "교만은 모든 죄의 시작이지만, 겸손은 모든 은혜의 그릇이다"라는 맥락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에서 인간의 노력이나 지식이 아닌 철저한 자기 낮춤(겸손)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렇게 말했다.
- 그대가 내게 기독교 신앙의 교훈(진리에 이르는 길) 중에 무엇이 가장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 은혜의 왕 노릇으로 생명 얻기
오늘 본문의 부패는 나의 모습 같다. 나는 집회 때, 헌신할 사람은 일어나라고 초청할 때마다 일어나지 않았다. 감정적 헌신은 의미가 없고, 헌신을 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의 은혜가 왕 노릇하자 일어나 내 삶을 드렸고, 주님의 제자로 따르기로 했다. 그 후에도 주님이면 충분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의 어떤 기도나 바램을 이루어 주지 않아도 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 고백을 할 때 나의 마음은 진실했다. 그러나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나의 마음이 얼마나 부패하고 거짓되었는지를 몰랐다.
나의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십자가의 사랑이 확증되었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니 더 이상의 부패와 변질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그렇게 훌륭한 분들도 간혹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에고의 상처와 약함이 존재하고, 사단의 거짓과 미혹이 있으며, 사람들의 악과 교만이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것, 그리고 시스템적으로 생명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사회 구조와 교회의 구조를 알지 못한 어리석음이기도 하다.
선배 목회자들이 영력과 지력과 체력 중에 제일은 체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거부감이 있었다. 영성이 제일 중요하지 체력이 더 중요한가? 그런데 목회를 하고 병이 나 보니까 이해가 되었다. 사실 그 말은 여전히 틀리다. 그러나 새벽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 주일예배, 오후 예배, 설교 준비, 심방, 행정....이것을 다 잘하려면 영성보다 체력이 중요하다. 한국 교회는 체력이 영성보다 더 중요한 구조로 되어 있기에 체력이 좋은 목회자만이 지속적인 영성을 유지할 수 있다. 교회만 그러겠는가? 사회 구조도 마찬가지이기에 성도들도 그러하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가?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시고, 내 안에 착한 시작하신 그 일을 성취하시는 분이시다. 나에게 이 모든 구조와 나의 연약함을 극복해 보라고 한다면 불가능하지만, 주님의 은혜가 왕 노릇하여 이루신다니 겸손히 믿음으로 반응하기만 하면 된다. 주님이 하신다는데 누가 막겠으며, 주님이 하신다는데 ‘나는 못한다’는 대답도 맞지가 않다. 오늘 본문의 회복도 백성들이 주도해서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그저 부패하고 변질되고, 약한대로 흘러갔다. 느헤미야가 찾아오고, 새롭게 하고, 말씀을 발견하게 하고, 회복하게 한다. 그 은혜의 왕 노릇에 백성들은 반응할 뿐인데, 회복과 생명은 백성들이 누린다.
주님은 나의 느헤미야다. 내가 주도해서 개혁하고, 말씀을 발견하고, 돌이키고, 새롭게 할 힘과 능력이 없다. 그러나 그분이 나를 찾아오시고, 말씀을 발견하게 하시고, 내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울타리를 쳐 주시고, 나에게 반응을 기대하시기에 나는 그저 반응할 뿐이다. 힘들고 무거운 멍에는 맬 수 없으나, 은혜에 대한 반응은 쉽고 가벼운 멍에다. 내 죄를 버릴 수는 없지만 십자가에서 죄를 처리했음을 믿는 것은 할 수 있다. 은혜가 한 번만 온다면 나는 다시 교만하여 넘어지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파도처럼 “은혜 위의 은혜”이고 “은혜가 왕 노릇”하기에 그 은혜로 인하여 다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의 통치를 받는다.
◈ 기도
주님, 저 한심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저의 모습입니다. 광야에서부터, 가나안 땅에서, 바벨론에서 돌아온 후에도 저는 여전히 연약하고 부패하고 거짓됩니다. 아무리 회개하고 언약을 맺고 맹세를 해도, 크로노스와 환경에 잠식당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고 주님의 인자와 신실함은 한결같습니다. 날마다 떠오르는 태양보다 더욱 신실한 사랑과 생명입니다. 그 은혜의 통치가 멈추지 않기에, 오늘도 일어나 주를 봅니다. 거짓과 악이 가득한 세상에도 생명으로 가득한 하나님의 나라를 봅니다. 인색한 세상 한복판에서 은혜가 왕 노릇하는 은혜의 왕국에 거합니다. 제 에고의 약함에도 불구하고 저는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 안에서 거하는 포도나무의 가지입니다. 제가 부패할 때마다 끊임없이 찾아와 은혜로 품어 주시는 호세아, 제가 교만해질 때마다 끊임없이 십자가 사랑으로 낮추어 주시는 그 은혜를 찬양합니다. 항상 그리스도 안에 있음과 불가항력적인 은혜를 입은 고멜임을 인식하며 사랑가게 하여 주십시오. 세상의 구조적 악과 사람들의 부패와 나의 교만을 모두 이기시는 주님의 은혜의 통치와 권능을 찬양합니다. 그 주님이 성육신하여 마구간에, 그리고 우리 안에까지 찾아오셨습니다. 대강절에 그 은혜의 통치가 임하여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를 누리게 하옵소서. 대강절, 성탄의 밤, 연말에 주님의 은혜가 길을 잃은 양들에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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