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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영광
제목 :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삶
성경 : 겔 10:1~22
찬송 : 527장
저자 : 이삼규목사
출처 : 20240407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겔 10:1 이에 내가 보니 그룹들 머리 위 궁창에 남보석 같은 것이 나타나는데 그들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 것 같더라
겔 10:2 하나님이 가는 베 옷을 입은 사람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그룹 밑에 있는 바퀴 사이로 들어가 그 속에서 숯불을 두 손에 가득히 움켜 가지고 성읍 위에 흩으라 하시매 그가 내 목전에서 들어가더라
겔 10:3 그 사람이 들어갈 때에 그룹들은 성전 오른쪽에 서 있고 구름은 안뜰에 가득하며
겔 10:4 여호와의 영광이 그룹에서 올라와 성전 문지방에 이르니 구름이 성전에 가득하며 여호와의 영화로운 광채가 뜰에 가득하였고
겔 10:5 그룹들의 날개 소리는 바깥뜰까지 들리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음성 같더라
겔 10:6 하나님이 가는 베 옷을 입은 자에게 명령하시기를 바퀴 사이 곧 그룹들 사이에서 불을 가져 가라 하셨으므로 그가 들어가 바퀴 옆에 서매
겔 10:7 그 그룹이 그룹들 사이에서 손을 내밀어 그 그룹들 사이에 있는 불을 집어 가는 베 옷을 입은 자의 손에 주매 그가 받아 가지고 나가는데
겔 10:8 그룹들의 날개 밑에 사람의 손 같은 것이 나타나더라
겔 10:9 내가 보니 그룹들 곁에 네 바퀴가 있는데 이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고 저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으며 그 바퀴 모양은 황옥 같으며
겔 10:10 그 모양은 넷이 꼭 같은데 마치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
겔 10:11 그룹들이 나아갈 때에는 사방으로 몸을 돌리지 아니하고 나아가되 몸을 돌리지 아니하고 그 머리 향한 곳으로 나아가며
겔 10:12 그 온 몸과 등과 손과 날개와 바퀴 곧 네 그룹의 바퀴의 둘레에 다 눈이 가득하더라
겔 10:13 내가 들으니 그 바퀴들을 도는 것이라 부르며
겔 10:14 그룹들에게는 각기 네 면이 있는데 첫째 면은 그룹의 얼굴이요 둘째 면은 사람의 얼굴이요 셋째는 사자의 얼굴이요 넷째는 독수리의 얼굴이더라
겔 10:15 그룹들이 올라가니 그들은 내가 그발 강 가에서 보던 생물이라
겔 10:16 그룹들이 나아갈 때에는 바퀴도 그 곁에서 나아가고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땅에서 올라가려 할 때에도 바퀴가 그 곁을 떠나지 아니하며
겔 10:17 그들이 서면 이들도 서고 그들이 올라가면 이들도 함께 올라가니 이는 생물의 영이 바퀴 가운데에 있음이더라
겔 10:18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겔 10:19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내 눈 앞의 땅에서 올라가는데 그들이 나갈 때에 바퀴도 그 곁에서 함께 하더라 그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동문에 머물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덮였더라
겔 10:20 그것은 내가 그발 강 가에서 보던 이스라엘의 하나님 아래에 있던 생물이라 그들이 그룹인 줄을 내가 아니라
겔 10:21 각기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으며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 형상이 있으니
겔 10:22 그 얼굴의 형상은 내가 그발 강 가에서 보던 얼굴이며 그 모양과 그 몸도 그러하며 각기 곧게 앞으로 가더라
C.S. 루이스는 ‘영광의 무게’라는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해처럼 빛날 것이고 새벽별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 이처럼 낮은 곳에서 맛보는 물맛에도 우리가 이렇게 도취된다면, 하물며 그 수원지에서 맛보는 물맛은 과연 어떠하겠습니까? 나는 바로 이것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영과 마음과 몸, 전인(全人)이 기쁨의 수원지에서 기쁨을 마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분의 대표자, 즉 그분의 영광을 이 땅에 재현할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죄로 타락한 인간은 그 광휘를 잃어버린 채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인간과 교회는 더 이상 세상에 빛을 비추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께로 돌아오는 자들은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사 40:5)볼 날을 맞이하고, 그 영광의 풍성함을 인해 즐거워할 것입니다(사 66:11). 스데반이 목격한 하나님의 영광(행 7;55)을 우리도 보려면 먼저 고난을 받아야 하는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롬 8:17~18).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는 환상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10장 본문은 9:3절에 언급된 ‘하나님의 떠나심’이라는 주제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대한 불 심판(1~8절)
에스겔은 이상을 통해 보좌 위에 계신 하나님이 베옷 입은 천사를 통해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시작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통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베옷 입은 천사가 그룹들 사이에서 숯불을 가져다가 온 예루살렘 성읍 위에 뿌렸습니다. 심판의 주관자도 하나님이시고, 심판의 도구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습니다. 숯불은 진노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겔 10:1 이에 내가 보니 그룹들 머리 위 궁창에 남보석 같은 것이 나타나는데 그들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 것 같더라
겔 10:2 하나님이 가는 베 옷을 입은 사람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그룹 밑에 있는 바퀴 사이로 들어가 그 속에서 숯불을 두 손에 가득히 움켜 가지고 성읍 위에 흩으라 하시매 그가 내 목전에서 들어가더라
에스겔은 그룹들 머리 위에 있는 ‘보좌의 형상’을 보았습니다. 1:26절에서는 그 보좌의 형상 위에 ‘사람의 모양’ 같은 형상이 있었습니다.
겔 1:26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1:5절에서는 ‘생물의 형상’으로 등장했던 것의 정체가 여기서는 명확하게 ‘그룹’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특히 성전에 대한 의미 강조를 위해 ‘보좌’가 강조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가는베 옷을 입은 사람에게 바퀴 사이로 들어가 그 속에서 숯불을 두 손에 가득히 움켜 가지고 성읍 위에 흩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행동의 의미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숯불은 정화시키는 것, 심판의 상징, 예루살렘을 흩어 버리는 것 등등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겔 10:3 그 사람이 들어갈 때에 그룹들은 성전 오른쪽에 서 있고 구름은 안뜰에 가득하며
겔 10:4 여호와의 영광이 그룹에서 올라와 성전 문지방에 이르니 구름이 성전에 가득하며 여호와의 영화로운 광채가 뜰에 가득하였고
겔 10:5 그룹들의 날개 소리는 바깥뜰까지 들리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음성 같더라
베옷 입은 사람이 성전에 바퀴 사이로 들어갈 때 그룹들이 성전 오른쪽에 서 있고 구름은 안뜰에 가득했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은 그룹 위에서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그룹들의 날개 소리는 바깥뜰까지 들리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음성 같다고 했습니다.
√겔 10:6 하나님이 가는 베 옷을 입은 자에게 명령하시기를 바퀴 사이 곧 그룹들 사이에서 불을 가져 가라 하셨으므로 그가 들어가 바퀴 옆에 서매
겔 10:7 그 그룹이 그룹들 사이에서 손을 내밀어 그 그룹들 사이에 있는 불을 집어 가는 베 옷을 입은 자의 손에 주매 그가 받아 가지고 나가는데
겔 10:8 그룹들의 날개 밑에 사람의 손 같은 것이 나타나더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는베 옷을 입은 자는 그룹 사이에 있는 불을 받아 가지고 갑니다. 그룹들의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가는베 옷을 입은 사람’은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천사였습니다. 이런 면에서 이 사람이 취한 불은 이사야가 맞이했던 불(사6:6)과 동일한 것으로 정결과 정화를 상징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켰던 불(창 19:24)과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이 바벨론의 그발 강가에서 본 하나님의 보좌를 예루살렘에서도 본 것을 통해 무엇을 깨닫습니까?
하나님은 한정된 영역에 제한되시는 분이 아니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섭리하시는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고대 근동 사람의 의식 구조 속에는 신이 일정한 영역에 머물면서 그곳을 통치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보좌는 궁창 위에 있어서 하나님은 그곳에서 온 세상을 보시며, 따라서 세상 어느 한 곳이라도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행동을 감찰하실 뿐만 아니라 마음의 생각까지도 아시는 분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소한 일상에도 함께 하시면서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정확하게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악한 마음을 버리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시는 지상의 처소인 예루살렘이 심판을 당한다는 것은 유다 백성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우상으로 넘쳐나는 성전에 하나님이 그대로 거하실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그들의 행위대로 그들의 머리에 갚으리라.”(9:10)라고 말씀하신 대로 그룹 천사들을 통해 성읍을 불태우며 심판하실 것을 예언하십니다. 실제로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을 함락한 이후 도성 곳곳에 불을 질러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죄로 더렵혀진 곳은 어떤 곳이든 하나님의 엄중하고도 무서운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보여 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사람 가운데 소멸되고 태워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 돌아봅시다. 이 모든 심판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고, 바벨론 군대는 다만 도구로 쓰임 받은 것뿐이었습니다. 급기야 지성소의 속죄소(시은좌)에 있어야 할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을 떠나 문지방으로 이동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원래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의 극악한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고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숯불로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려고 합니다. 이는 성전에서 자행되었던 백성들의 범죄와 불순종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이 가정, 교회, 직장, 우리나라에 임하도록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영광은 언제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할 때 임했습니다. 삶의 자리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채울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하면서 그분께 드리는 제사를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동역에 있어 바람직한 태도(9~17절)
그룹 천사는 타락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할 때 생명나무를 지키도록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세우신 천사였습니다(창 3:24). 이들은 성막 가장 안쪽 지성소 안에 안치된 언약궤 위에 앉아,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속죄소를 두 날개로 보호하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출 25:17~22). 성전의 휘장과 내소, 외소의 벽 위에도 새겨져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를 상징했습니다.
에스겔이 환상 중에 본 그룹은 네 바퀴가 있었습니다.
√겔 10:9 내가 보니 그룹들 곁에 네 바퀴가 있는데 이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고 저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으며 그 바퀴 모양은 황옥 같으며
겔 10:10 그 모양은 넷이 꼭 같은데 마치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
겔 10:11 그룹들이 나아갈 때에는 사방으로 몸을 돌리지 아니하고 나아가되 몸을 돌리지 아니하고 그 머리 향한 곳으로 나아가며
겔 10:12 그 온 몸과 등과 손과 날개와 바퀴 곧 네 그룹의 바퀴의 둘레에 다 눈이 가득하더라
겔 10:13 내가 들으니 그 바퀴들을 도는 것이라 부르며
그룹들 곁에 네 바퀴가 있었는데, 그 모양은 황옥 같다고 했습니다(9절; 1:16). 네 바퀴는 모두 모양이 같았는데,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10절). 움직일 때는 몸을 돌리지 않고 머리가 향한 곳으로 나아갔습니다(11절; 1:17). 네 그룹의 바퀴 둘레에는 눈이 가득했습니다(12절; 1:18). 그 바퀴들은 ‘도는 것’이라고 불렀습니다.
겔 10:14 그룹들에게는 각기 네 면이 있는데 첫째 면은 그룹의 얼굴이요 둘째 면은 사람의 얼굴이요 셋째는 사자의 얼굴이요 넷째는 독수리의 얼굴이더라
그룹들에게 네 면이 있는데, 첫째 면은 그룹의 얼굴, 둘째 면은 사람의 얼굴, 셋째는 사자의 얼굴, 넷째는 독수리의 얼굴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면’과 ‘얼굴’은 같은 단어이기 때문에 ‘네 얼굴’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 네 얼굴 역시 에스겔이 그발 강가에서 본 네 생물의 얼굴과 유사합니다.
겔 1:10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왼쪽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네 얼굴 중 하나의 얼굴이 다르게 나오고 순서에 있어서 차이가 납니다. 여기에서는 그룹-사람-사자-독수리의 순서입니다. 1:10절에서는 사람-사자-소-독수리의 순서대로 언급합니다. 1장에서 황소의 얼굴이 10장에 와서는 ‘그룹의 얼굴’로 대치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대치되었을까요? 1장에서는 날개를 가진 메소포타미아 황소 형태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포로로 잡혀간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10장에서 그룹으로 대치된 것은 거룩한 성전 모티브와 연관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룹들 그림)
√겔 10:16 그룹들이 나아갈 때에는 바퀴도 그 곁에서 나아가고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땅에서 올라가려 할 때에도 바퀴가 그 곁을 떠나지 아니하며
겔 10:17 그들이 서면 이들도 서고 그들이 올라가면 이들도 함께 올라가니 이는 생물의 영이 바퀴 가운데에 있음이더라
그룹들이 움직일 때 바퀴도 함께 움직였는데(16절; 1:19), 이는 생물의 영이 바퀴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17절; 1:20). 1장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이 영은 그룹이 움직이게 하는 동력입니다. 어느 방향으로든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의 무소부재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룹들이 나아가면 바퀴도 함께 나아가고, 그룹들이 서면 함께 서고, 올라가면 함께 올라갑니다.
특별히 그룹들과 바퀴들 전체에 눈이 가득한 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죄를 짓습니다. 나쁜 짓을 해도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겉모습만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에, 자신 또한 그럴듯하게 포장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쉽게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중심을 아시고 모든 생각과 행동을 감찰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신전 의식’ 즉 ‘코람데오’ 정신을 회복해야 합니다. 거룩하고 정결한 삶은 곧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그룹들과 바퀴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되어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그룹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대행하는 천사들이자 하나님의 영광이 이동하는 수단입니다. 그룹들은 절대로 자신들의 의지를 내세우거나 고집부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도록 부르셨습니다.
√고전 3: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고전 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말하면서 내 맘대로 내 뜻대로 하려고 고집을 부리면 동역 관계는 깨지게 됩니다. 그룹들은 각각 얼굴이 달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태도로 살아야 합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온 우주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의 작정과 뜻에 의해 움직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는 선한 일꾼으로서 기쁘게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감(18~22절)
√겔 10:18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무르니
겔 10:19 그룹들이 날개를 들고 내 눈 앞의 땅에서 올라가는데 그들이 나갈 때에 바퀴도 그 곁에서 함께 하더라 그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동문에 머물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 위에 덮였더라
결국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서 그룹들 위에 머뭅니다. 그룹들은 날개를 들고 땅에서 올라가고 바퀴들도 함께 올라갑니다. 그룹들은 동문에 머물고 여호와의 영광은 그 위에 덮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룹과 함께 성전에서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가증한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지성소 언약궤 위에 있던 하나님의 영광은 이제 성전 문지방을 거쳐 동문에 머물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은 종국적으로 예루살렘에서 완전히 떠나 동편 산에 머물게 되는데(11:23),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완전히 떠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영광이 뭡니까?
‘영광’이란 부유함과 고귀함 높은 지위, 혹은 광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그분의 무한하신 자원과 존엄하심과 능력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모세가 율법을 받을 때(출 24:12~18), 성막 안에서(레 9:6,23), 성전에서 예배할 때(왕상 8:11; 대하 5:14), 선지자들이 이상을 보고 소명을 받을 때(사 6장; 겔 1장), 예수님의 탄생 당시(눅 2:9), 변화산에서 변형되실 때(눅 9:31),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구름 속으로 내려올 때(계 21:23)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자들은 경외심과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영광이 시내 산에 나타는 것을 보고, 지축을 뒤흔드는 우레와 번개와 커다란 나팔 소리에 너무도 두려워 떨며 하나님이 모세에게만 말씀하시고 자신들에게는 말하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출 19:16; 20:19). 하나님의 영광이 구체화된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십니다(히 4:12).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 말씀은 사람이 죄를 지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실패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민족과 인생의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습니다. 간신히 귀환하여 지은 스룹바벨 성전은 헬라 제국에 의해 수모를 당하고, 정치적 야심을 위해 화력하게 재건한 헤롯 성전도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도록 무너집니다. 이후로도 예루살렘은 기독교를 받아들인 로마 제국의 치하의 몇 세기와 십자군이 차지했던 한 세기를 제외하고는 1,600년 동안 아랍 제국들과 외세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하고 유대인들은 그 땅에서 쫓겨납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떠나갔던 여호와의 영광이 새롭게 회복된 성전으로 돌아오는 환상을 보고 이를 43장에 기록합니다.
√겔 43:1 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쪽을 향한 문이라
겔 43:2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겔 43:3 그 모양이 내가 본 환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환상 같고 그발 강 가에서 보던 환상과도 같기로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
겔 43:4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
겔 43:5 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더라
이것은 최종적으로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질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신자의 삶을 통해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을 의미합니다. 죄를 범함으로 그분의 영광을 잃어버린 채 살아온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하며 그분 앞에 엎드릴 때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의 영광을 다시 모셔 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던 인생의 절망적인 상황은 이렇게 마무리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이 떠나시는 것입니다. 차라리 하나님의 호된 질책과 징계를 받는 것이 더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셔서 함께하시지 않는 것 자체가 돌이킬 수 없는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해져서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성전을 가증스러운 우상으로 더럽히자 성전을 떠나셨습니다. ‘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을 떠난 것이 가장 두려운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거룩한 사람을 통해서만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함과 경건함에 더욱 힘써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