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복 시인의 시집, 『민들레 적도』(북랜드), 2016년 9월 30일 간행.
민들레 적도
이태복
뜨겁다는 것은
아물아물 피던 자카르타 감성마저도
아스팔트 콜타르처럼 허물어뜨린다
열병에 초점마저 흐려진 눈
당신까지도 흐려지나 싶었는데, 그때
민들레를 만났다
스무 해를 넘기니
그렇게도 가슴 들뜨게 하던 석양의 야자수마저
속 빈 대궁처럼 멍하니 서 있는 무심한 화석이 되어
일상으로 지나치는 사이, 사이에
민들레가 피어 있었다
생의 긴 숨 돌리려
벌러덩 모래베개 해변에 누워
진청색 실루엣 하늘을 본다, 이때
민들레 날아오른다
드문드문 하얀 유성
딱성냥 긋듯 피시식 사라지고
바람에 술렁이는 야자수 그립다는 파랑 일면
고향집 느티나무 아래 이웃 모이듯
바틱의 남국색으로 갈아입은 얼굴들은
반짝이는 민들레가 된다
하늘 구석구석에 박혀
어느새 별빛처럼
마른 가슴팍에 뿌리내린다
...........
적도의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30년째 살아가고 있는 시인의 시작품이어서 그런지, 민들레의 생명력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시인이 민들레처럼 뿌리를 내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시어와 형식을 창의하는 것일까? 주제를 탐구하는 것일까? 두 가지 모두가 정답이겠지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시를 쓰기 어려운 날들이다. 시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