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검은 황금’밀실 거래
MARK HOSENBALL 워싱턴 지국 기자
2002-11-07
러시아인 사업가 가지 루구예프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장남 우다이를 처음 만나던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IRAQ'S BLACK GOLD
러시아인 사업가 가지 루구예프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장남 우다이를 처음 만나던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지난해 사업차 바그다드에 출장을 갔다가 우다이로부터 사업을 논의하기 위해 만나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루구예프는 처음에는 경계심이 들었다. 우다이의 성격이 잔인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이다. 경기에서 진 축구대표팀 선수들을 고문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여자들을 재미로 겁탈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우다이가 새벽 세시에 대통령궁에서 보자고 한 것도 미덥지가 않았다. 그러나 루구예프는 돈 벌 기회를 마다할 사람이 아니었다.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룰렛 보드카 공장을 경영하면서 거칠고 험한 주류업계의 풍파 속에서 녹록찮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어온 그였다. 그 전에 러시아 마피아가 장악한 식품시장에 몸담고 있던 시절에도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큰코 다칠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대통령궁에서 우다이는 루구예프를 따스하게 맞이했다. 자신이 수집한 고급 자동차, 귀한 코냑, 쿠바産 시가 등을 자랑하는가 하면 키트 캐트 초콜릿바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엉뚱한 이야기도 했다. 그러고는 루구예프에게 좋은 돈벌이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이라크 정부가 국제 시세보다 싼 값에 석유를 대주는 계약을 루구예프와 맺는다는 것이었다. 루구예프는 그 석유를 메이저 업체들을 상대로 더 높은 가격에 되팔아 이윤을 남기는 것이다.
이 거래의 장점은 이라크가 인도적 차원에서 식량과 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석유 수출을 허용하는 유엔의 ‘석유·식량 교환 프로그램’에 따른 합법적 거래라는 점이었다. 루구예프가 이라크에 석유 구입비로 지불하는 돈은 유엔이 감독하는 은행계좌에 예치돼 굶주리는 이라크 어린이들의 구제사업에 쓰이게 된다. 우다이는 선웃음을 지으며 “우리는 어린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하더라고 루구예프는 돌이켰다.
그러나 한가지 함정이 있었다. 우다이와 사담 후세인이 그 수익을 나눠먹자는 것이었다. 석유를 대주는 대가로 이라크 관리들은 나중에 루구예프에게 요르단 은행의 한 번호계정(성명 대신 번호로 등록되는 당좌계좌)으로 은밀히 6만달러를 송금하라고 말했다. 루구예프는 그들로부터 이라크産 석유를 구매하는 사람은 거래가 성사될 때마다 그런 ‘기탁금’을 낸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이 우리의 규칙”이라고 한 이라크 관리가 말하더라고 루구예프는 전했다. 루구예프는 돈을 보내고는 연락을 기다렸다.
그러나 연락은 끝내 오지 않았다. 처음에 이라크 관리들은 석유 선적이 좀 지연되고 있다고 둘러대더라고 루구예프는 말했다. 그가 볼멘소리를 하자 그들은 계약을 아예 취소해버렸다. 그러나 6만달러는 돌려주지 않았다. 루구예프는 화가 치밀었다. “그들은 자기네가 무슨 하나님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제멋대로였다.” 그는 앙갚음으로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
이라크의,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의, 비리를 공개한 것이다. 뉴스위크는 지난 10월 그가 유엔에 제출한 탄원서를 전격 입수했다. 루구예프가 이라크 정부와 맺은 밀실거래의 내역이 상세히 기술돼 있었다. 그의 고발은 후세인 정권이 어떻게 석유 및 석유 이권에 민감한 국제사회의 약점을 교묘히 이용해 걸프전 이후 자국에 가해진 무거운 제재조치를 도리어 자신들의 힘을 키우는 데 역이용했는지 그 구체적 증거를 최초로 제시했다(이라크는 그의 주장이 ‘옳지 않다’면서도 그의 돈은 돌려주겠다고 했다).
이 사건을 조사하는 유엔 관계자들은 루구예프의 폭로에 깜짝 놀라는 제스처를 보일 수없었을 것이다. 후세인 정권이 석유·식량 교환 프로그램의 허점을 이용해 거금을 챙겼다는 것은 이미 여러해 전부터 알려진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美 중앙정보국(CIA)은 후세인이 그 돈을 무기 프로그램 재원으로 썼다고 생각한다. 미국 정부는 이라크가 1997년 이래 석유공급 계약의 대가로 23억달러 이상의 뒷돈을 챙겼을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그런 의혹은 입증하기도 어렵거니와 지금까지 후세인의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나설 만큼 용감하거나 무모한 관련자도 없었다. 석유 거래를 감독하는 유엔 관리들은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부정거래를 승인해온 셈이다. 한편 미국을 비롯한 서구 국가들은 이 수상한 거래들을 묵인하거나 적어도 모르는 체했던 것 같다. 이라크산 석유의 충분한 공급 덕분에 세계 유가가 안정되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는 것이 한가지 이유였다.
이제는 더이상 묵과할 형편이 아니다. 유엔 안보리가 이번주 이라크 결의안에 대한 투표를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세계 제2위 석유 산지의 운명은 전쟁 논의에서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다. 아랍국들은 물론 미국의 일부 동맹국들도 이번 분쟁을 석유라는 렌즈를 통해 보면서 미국이 후세인을 축출하려는 진정한 이유는 그가 위협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1천1백20억배럴로 추정되는 이라크의 석유를 장악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특히 러시아와 프랑스는 수지맞는 이라크와의 거래관계가 끝장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미국의 전쟁계획에 동참하기를 꺼려왔다(2주 전에도 러시아의 한 석유회사는 이라크와 5백만달러에 상당하는 2천만배럴 규모의 석유수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부시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는 일부 인사들은 석유를 이용한 후세인의 부정축재에 관한 새 증거들을 보면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돈과 수단을 모으는 것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전쟁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리처드 펄 美 국방정책위원회 위원장은 “이 문제에 관한 한 유엔은 반은 썩었고 반은 무능하다”고 말했다. “결국 그들은 제재조치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무기사찰도 그보다 나을 게 없을 것이다.”
후세인 역시 자신을 미국의 폭압에 희생당하는 인물로 그리려는 노력에 그같은 부정행위는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 전쟁 압력이 한창 심화되던 지난 9월 이라크는 갑자기 뒷돈 요구를 중단했다.
돌이켜보면 애초 그에게 그런 기회가 왜 주어진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유엔의 석유·식량 교환 프로그램이 1996년 시작됐을 때 이라크 국민은 엄중한 경제제재의 피해를 막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의약품 공급이 달렸다. 석유·식량 교환 프로그램은 후세인의 배를 불리지 않고 위기를 완화할 수 있는 방책으로 간주됐다. 이 프로그램에 따라 이라크는 유엔 특별위원회의 감독 아래 6개월마다 20억달러어치라는 비교적 소량의 석유를 팔도록 허가받았다. 그 이익금으로 사고자 하는 식량이나 물자는 유엔의 승인을 받아야 했고 이라크로 들여가기 전에 유엔의 검사를 거쳐야 했다.
처음에는 텍사코·셸·브리티시 페트롤리엄을 비롯한 구미 석유회사들이 합법적으로 원유를 사기 위해 줄을 섰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는 몇가지 허점이 있었고 후세인은 그것을 악용했다. 우선 유엔이 석유거래 계약을 감시한다고는 했지만 후세인은 자기 마음대로 팔 회사를 고를 수 있었다. 자연히 이 독재자는 배럴당 30∼50센트의 프리미엄을 주겠다는 회사를 택했다(루구예프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뒷돈을 준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기업이 후세인과 결탁했는지는 알 수 없다).
뒷돈이 항상 현금 형태로 오간 것은 아니다. 한 회사는 계약을 따내려고 우다이에게 44만달러짜리 롤스 로이스와 커다란 황색 다이아몬드를 건넸다. 후세인의 뒷거래를 가능케 한 허점은 그밖에도 또 있었다. 유엔은 후세인이 그런 인도주의적 프로그램을 이용해 이득을 챙기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석유를 국제 시세 이하로 팔도록 했다. 그러나 그것은 정반대의 효과를 불렀다. 판매 단가가 워낙 낮았기 때문에 원유를 사는 사람은 후세인에게 뒷돈을 주고도 여전히 되팔 때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 만일 후세인이 제시하는 가격이 국제 시세와 같았다면 구매자들은 그의 뒷돈 요구에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프로그램이 실시되고 여러 해가 흐르면서 유엔은 후세인이 팔 수 있는 석유량을 점점 늘려줬고 마침내는 그 제한선을 아예 없앴다. 미국의 한 통계에 따르면 1996년 이래 후세인은 그 프로그램을 통해 5백억달러 이상의 석유를 팔았고 그 돈으로 인도주의 명분을 내건 보급품을 약 2백50억달러어치 사들였다. 그와 동시에 후세인의 석유를 사기 위해 수십개 회사가 우후죽순으로 신설됐다. 이런 회사들은 스위스나 리히텐슈타인처럼 회사 설립자에 대한 정보나 자금흐름에 대한 비밀이 법으로 보장된 국가들에 설립됐다. 미국 석유회사들은 후세인의 뒷돈 요구를 거절했다. 대신 기꺼이 뒷돈을 지불한 루구예프 같은 중개인들을 통해 석유를 사들였다. 리히텐슈타인에서만 이렇게 급조된 10여개 기업들이 약 10억달러어치의 이라크 석유를 거래했다. 그러나 불안해진 현지 당국들은 최근 이라크와의 추후 석유거래를 중지시켰다.
후세인은 이 시스템의 맹점을 다른 방법으로도 이용했다. 유엔 관리들은 후세인이 수입 금지된 공업장비와 군장비를 밀수하는 데 이 프로그램의 성공을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석유·식량 교환 프로그램에 따라 이라크에 들어가는 보급품의 물량은 엄청나다”고 한 유엔 관리는 말했다. “그 많은 물품이 모두 그들이 말하는 물품인지는 알 수 없다.”유엔 관리들이 후세인의 그런 행각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 관리는 “이라크인들이 석유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뒷돈을 요구한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그것을 막아야겠다고 나선 나라는 없었다고 그들은 말했다.
1998년 이라크가 유엔 무기사찰단을 추방했을 때 미국은 후세인의 뇌물 공급로를 끊기 위해 유엔을 상대로 이라크산 석유의 가격을 국제 시세와 같은 수준으로 인상시키자고 설득했다. 그러나 다른 안보리 회원국들이 동참을 거부했다. “몇몇 나라가, 특히 프랑스와 러시아가 이 문제에 큰 이권을 걸고 있다”고 이 프로그램에 정통한 한 유엔 관리는 말했다. 싼 석유 공급으로 재미를 보는 사람은 프랑스와 러시아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미국인들이 굴리는 다목적차량의 기름탱크 안에서 찰랑거리는 휘발유는 이라크산일 가능성이 크다. 이라크가 매일 수출하는 석유의 30∼50%는 미국으로 들어오는데 이는 미국인 전체 석유 소비량의 8%에 해당한다.
클린턴 정부는 후세인의 뒷돈 거래를 강력히 억제하지 않고 대체로 묵인했다. 부시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9·11 테러가 일어나면서 부시는 이라크와의 전쟁을 추진하게 됐다. 올해 초 미국은 마침내 유엔을 설득해 앞으로는 이라크가 뒷돈을 챙기지 못하도록 이라크산 석유의 수출가를 새로 책정한다는 방침에 동참시켰다. 그러나 은행에 이미 수십억달러를 넣어둔 후세인은 이자만 갖고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