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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 창시자 최수운 선생의 예고대로 1871년 이땅에 하나님이 오셔서 31세 되시던 1901년 신축년 이후 지구촌 역사는 직접 맞았다는 말씀대로 1901년부터 1909년까지 9년 동안 인류구원의 프로젝트, 천지공사를 끝마치시고 1909년 39세에 돌아가셨다.
道典 4:152) 천지대세의 바탕을 돌려 놓으심
공부하는 자들이 ‘방위가 바뀐다.’고 이르나니 내가 천지를 돌려놓았음을 세상이 어찌 알리오.
하늘 아래에 상극하는 이치가 없느니라
水火金木이 待時以成하나니 水生於火라
수화금목 대시이성 수생어화
故로 天下에 無相克之理니라
고 천하 무상극지리
수화금목(四象)이 때를 기다려 생성되나니 물(水)이 불(火)에서 생성되는 까닭에 천하에 서로 극(克)하는 이치가 없느니라. 내가 이제 천지를 개벽하여 물샐틈없이 도수를 정하였느니라.
道典 2:13) 신축년 이후의 연사는 내가 친히 다스린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내려오면서 하늘과 땅의 정사(政事)를 천상의 조정(天朝)에 명하여 다스리도록 하였으나 신축년 이후로는 내가 친히 다스리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2:13) 천지만물이 나로부터 다시 새롭게 된다
증산 상제님께서 객망리로 돌아오신 후, 집안 대대로 전하여 오던 진천군 교지(敎旨)와 공명첩(空名帖), 족보, 문집 등 일체의 문서와 서책을 가져다 불사르시며 “내 세상에는 천하의 모든 성씨(姓氏)의 족보를 다시 시작하리라.” 하시니 부모님과 수십 호 문중의 노소가 모여들어 만류하는지라.
상제님께서 “앞세상에는 이런 것에 의지해서는 아니 됩니다.” 하시고, “유도(儒道)의 구습을 없애고 새 세상을 열어야 할진대 유도에서는 범절(凡節)밖에 취할 것이 없도다.”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모든 것이 나로부터 다시 새롭게 된다.” 하시니라.
신축년 이후의 연사는 내가 친히 다스린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내려오면서 하늘과 땅의 정사(政事)를 천상의 조정(天朝)에 명하여 다스리도록 하였으나 신축년 이후로는 내가 친히 다스리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4:152) 천지대세의 바탕을 돌려 놓으심
공부하는 자들이 ‘방위가 바뀐다.’고 이르나니 내가 천지를 돌려놓았음을 세상이 어찌 알리오.
하늘 아래에 상극하는 이치가 없느니라
水火金木이 待時以成하나니 水生於火라
수화금목 대시이성 수생어화
故로 天下에 無相克之理니라
고 천하 무상극지리
수화금목(四象)이 때를 기다려 생성되나니 물(水)이 불(火)에서 생성되는 까닭에 천하에 서로 극(克)하는 이치가 없느니라. 내가 이제 천지를 개벽하여 물샐틈없이 도수를 정하였느니라.
道典 2:31) 나는 정세를 맡았노라
황제(黃帝)가 난(亂)을 지으므로 치우(蚩尤)가 큰 안개를 지어 이를 평정하였나니, 난을 지은 사람이 있어야 다스리는 사람이 있느니라. 최수운은 동세(動世)를 맡았고 나는 정세(靖世)를 맡았나니 전명숙의 동(動)은 곧 천하의 난을 동케 하였느니라. 최수운은 내 세상이 올 것을 알렸고, 김일부는 내 세상이 오는 이치를 밝혔으며, 전명숙은 내 세상의 앞길을 열었느니라. 수운가사는 수운이 노래한 것이나, 나의 일을 노래한 것이니라. 김일부가 내 일 한 가지는 하였느니라.
道典 2:59) 사람이 사랑스러운 세상이 온다
이제 음도(陰道)를 보내고 양도(陽道)를 오게 하느니라. 앞으로 세상이 거꾸로 되어 바람 부는 대로 살리니 무를 거꾸로 먹는 이치니라. 두고 보라! 아침에 본 것, 저녁에 본 것이 다르고 날마다 해마다 달라지리니, 이제 세상이 다 가르치느니라. 구름도 가고 바람도 그치는 때가 돌아오면 사람 보는 것이 즐겁고 누구나 기룹고 사랑스러운 세상이 되느니라.
내가 이렇게 다니는 것도 세상 돌아가는 도수를 따라서 다니는 것이니라. 밥도 다 되었는지 뚜껑을 열어 보지 않느냐?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나 내가 그냥 다니는 줄 알아도 세상일을 엎었다 뒤집었다 하느니라. 내가 세상을 뒤집는 것은 손바닥 안팎 뒤집는 것과 같으니라. 이 세상일이 내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따라 모두 그렇게 되느니라.
양도(陽道)를 오게 하느니라: 세계 문화가 한국에 들어와 지구촌 문화 시대를 열어 가는 과정을 말씀하신 것이다. 선천 상극의 원한 서린 어두운 세상(陰道)을 보내고 대광명의 새 세상(陽道)을 오게 하신다는 뜻.
道典 3:7) 도문의 식주인 태운 김형렬
김형렬(金亨烈)의 호(號)는 태운(太雲)이라. 동곡(銅谷)에서 생장(生長)한 후 환평(環坪)에 옮겨 살다가 금구 내주평(金溝 內注坪)으로 이사할 때는 부자였으나 갑오년 동학혁명에 참가하여 청주 전투에서 죽을 목숨을 상제님의 은혜로 살아남아 귀향한 뒤로 동학과 연줄을 끊고 가업에만 종사하다가 가운이 기울어 가난하게 되매 잠시 용화동(龍華洞)으로 이사하여 사니라. 형렬이 빈곤을 이기지 못하여 내주평을 내왕하면서 농사나 경영할까 하던 중
정유(丁酉 : 道紀 27, 1897)년에 그 마을 정남기(鄭湳綺) 집의 서숙에 가 보니 초립을 쓰신 상제님께서 글을 가르치고 계시거늘, 학동들이 부르기를 ‘강 서방’이라 하므로 형렬이 물으니 ‘정씨 집의 취객(娶客)이라.’ 하더라. 서당의 학동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시고 마을 사람들의 사주(四柱)도 보아 주시니 동네에서는 신인(神人)으로 불리시더라. 그 후 형렬이 사정이 있어 내주평에 가지 못하고 상제님께서도 천하유력을 떠나시어 서로 만나지 못하더니 형렬은 가운이 더욱 기울어 하운동 제비창골에 있는 선산 재실(齋室)인 영사재(永思齋)로 이사하니라.
금구 내주평(金溝 內注坪): 현재 김제시 봉남면 내광리(內光里) 내주 마을.
이사 과정: 기존의 기록들과 김호연 성도와, 김형렬 성도의 손자 김현식(1918∼ ), 김충식(1923∼ ) 증언.
제비창골: 하운동에 있는 골짜기로 제비가 집을 짓고 새끼를 키우는 형국이다.
선산 재실(齋室)인 영사재(永思齋)로 이사: 안동 김씨 재실. 김형렬 성도는 안동 김씨 59세손이다. 안동 김씨가 미륵신앙의 본원지인 금산사 아래 구릿골에 들어와 터를 잡은 것은 김형렬 성도의 16대조인 윤강(允崗) 때(1495년)이다.
道典 3:8) 죽어서라도 선생님 뒤를 따르겠습니다
형렬이 상제님과의 친면(親面)을 잊지 못하고 항시 상제님의 거동이 마음 가운데 은은하던 중에 수년이 지난 뒤 ‘대원사에서 도를 통하셨다.’는 풍문을 들은 후로는 만나 뵙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지니라. 그러던 차에 임인년 4월 4일 원평 장날에 양식이 떨어져 돈 한 냥을 주선하여 시장에 갔다가 그곳에서 마침 꿈에 그리던 상제님을 상봉한지라
형렬이 반가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쌀을 팔아서 가족들을 살릴 마음은 간데없고, 문득 생각하기를 ‘이 돈을 노자로 드린다면 가솔(家率)들이 굶을 것이요, 만일 드리지 아니하면 서로 친한 사이에 의리가 아니라.’ 하고 돈 한 냥을 상제님께 노자 하시라고 드리니 상제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시기를 “나는 노자가 있으니 걱정 말고 배고파하는 가족에게 어서 쌀을 팔아 돌아가게.” 하시니라.
이에 형렬이 더욱 간곡히 돈을 올리며 “만일 선생님께서 이 돈을 받지 않으시면 저는 이대로 집이고 뭐고 죽어서라도 선생님 뒤를 따르겠습니다.” 하고 굳게 맹세하니라. 그제야 상제님께서 웃으시며 “자네가 가족을 남겨 두고 죽겠으니 불가불 받겠네. 그러나 쌀 팔아 오기를 기다리는 자네 가족들은 어쩌겠는가?” 하시니,
형렬이 대답하여 아뢰기를 “예, 선생님이 돈 한 냥을 받으시면 제 마음이 좋아 생기가 나서 열 냥이 당장에 생기겠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허허, 그렇다면 받겠네. 그러나 참으로 어려운 돈인데….” 하고 받으시니라.
충청도로 떠나신 상제님
형렬이 돈을 올리고는 “저의 집이 누추하나마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하룻밤 모시고자 하나이다.” 하니, 상제님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돈 주고 밥조차 주려는가. 참 고마운 일이로고. 내가 지금은 충청도에 볼일이 있어 가니 갔다 돌아오는 길에 들를 참이네. 안심하고 어서 쌀 팔 꾀나 내게.” 하시거늘, 형렬이 반가이 여쭈기를 “꼭 오시기를 기다리겠습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그리 하게.” 하시고 길을 떠나시니라.
道典 3:9) 빈 지게 걸머지고 돌아온 김형렬
형렬이 쌀 팔 돈을 상제님께 드리고는 장도 보지 못하고 점심도 굶은 채 빈 지게를 걸머지고 집에 돌아오니 그 아내가 ‘쌀 팔아 오느냐.’며 반가이 쫓아 나오거늘, 형렬이 그 모습을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데다 더욱이 그 돈은 빚을 낸 돈이라 할 말이 없는지라 “허허.” 웃으면서 말하기를 “돈을 잃어버려 쌀을 못 팔아 왔소.” 하니
아내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아침도 죽을 먹인 자식들을 점심도 못 먹였는데 저녁까지 굶기면 어쩔까요. 어른이야 괜찮지만.” 하고 기운 없이 들어가니라.
형렬이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우나 한편으로는 안되었는지라 벗었던 지게를 다시 짊어지고 청도원(淸道院)으로 가니 평소에 그리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더라.
형렬이 그 사람에게 헛말 삼아 말하기를 “집에 양식이 떨어져서 외상 양식을 얻으려고 장에 갔다가 얻지 못하고 집에 돌아오니 저녁을 하지 못하였기로 차마 볼 수 없어 나오는 길이네. 해는 이미 저물어서 뉘 집으로 갈 수도 없고 딱한 형편에 자네를 만났으니 나에게 쌀 두 되만 빌려 주면 돌아오는 장에 갚아 주겠네.” 하니라.
언제나 또 만날꼬
이에 그 사람이 길을 멈추어 서면서 “좋은 일이 있네. 내 사위가 쌀 한 섬을 장리쌀로 놓았다가 금년에 또 놓아 달라 하기로 한 섬을 놓았고 다섯 말이 남았으니, 갖다 먹고 가을에 일곱 말 닷 되를 주오.” 하니, 형렬이 어찌나 반가운지 혹 잘못되면 어찌할까 염려되더라. 그 사람이 또 하는 말이 “집에 양식이 떨어지면 재수도 없나니 먹어서 버소.” 하거늘
형렬이 “그래 보세!” 하고 쌀 닷 말을 짊어지고 생각하기를 ‘이것이 웬일인가. 선생님 덕이로다!’ 하고 하도 반가워서 어두운 밤에 노래를 부르며 배고픈 것도 잊어버리고 단숨에 집으로 달려가니라. 이 때 밥을 못하고 앉아 있던 아내가 지고 온 쌀을 보고 깜짝 놀라 “웬일이오?” 하고 묻는 말에 형렬이 “이곡(利穀) 닷 말 얻어 왔소.” 하니,
아내가 웃음이 가득하여 말하기를 “그 쌀, 내가 베를 낳아 갚으리다. 참으로 닷 말이오? 참으로 우리 집이 잘되려나 보오. 여보, 돈 잃어버린 것이 복이 되었소.” 하며 기뻐 어쩔 줄 모르더라. 그러나 형렬은 ‘우리 선생님이 오늘 저녁에 어디서 주무시는가? 언제나 또 만나 뵐꼬.’ 하는 생각뿐이더니, 이후 날마다 마음속 깊이 상제님을 사모하니라.
형렬의 아내: 장수 황씨(1858~1927). 완주군 용진면 용암리에서 부 의(椅)와 모 이씨 사이에 1남 1녀 중 장녀로 출생. 김형렬 성도와의 사이에 3남 3녀를 두었다.
청도원(淸道院):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구릿골 동북쪽에 위치한 마을.
道典 3:10) 김형렬 집에 찾아오심
그 후 4월 13일에 형렬이 제비창골 집에 있는데 산 너머 금산사(金山寺) 쪽에서 “형렬아, 형렬아!” 하고 부르는 소리가 또렷이 들리거늘, 형렬이 ‘어디서 들리는가?’ 하고 소리나는 곳을 따라 서전재(西殿峙)를 넘어가 보니
상제님께서 금산사 돌무지개문(虹霓門) 위에 앉아서 부르고 계시더라. 형렬이 크게 반가워하며 상제님을 모시고 용화동으로 돌아 집 앞에 이르러 “선생님, 안으로 들어가십시다.” 하니, 말씀하시기를 “자네 집에 산기(産氣)가 있네그려.” 하시거늘
형렬이 놀라 여쭈기를 “어떻게 아셨습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삼신(三神)이 말을 몰고 자네 집으로 들어가므로 알았노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여기가 제비창골(帝妃創谷)이라지?” 하시매 형렬이 “예, 그렇습니다.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하고 대답하니, 말씀하시기를 “응, 촉나라 길이 험하다 하여도 한신(韓信)이가 알더라고, 천하사(天下事)를 하러 다니는 사람이 제비창골을 모르겠나. 감나무 아래로 가세.” 하시어 그 아래에 마주앉으시니라.
道典 3:11) 세 번 다짐을 받으시고서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나와 더불어 천지공사를 꾀함이 어떠하냐.” 하시거늘, 형렬이 대답하여 여쭈기를 “천지공사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하니, “현하의 천지대세가 선천은 운(運)을 다하고 후천의 운이 닥쳐오므로 내가 새 하늘을 개벽하고 인물을 개조하여 선경세계를 이루리니 이 때는 모름지기 새판이 열리는 시대니라. 이제 천지의 가을운수를 맞아 생명의 문을 다시 짓고 천지의 기틀을 근원으로 되돌려 만방(萬方)에 새기운을 돌리리니 이것이 바로 천지공사니라.” 하시니라.
형렬이 이내 알아듣고 여쭙기를 “새판을 짠다는 것은 어떻게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이 때는 천지의 비극적 시운(時運)으로 이름 없는 악질(惡疾)이 창궐하리니 만약 선의(仙醫)가 아니면 만조(萬祖)에 일손(一孫)이라도 건지기 어려우리라.” 하시며 시운(時運)에 대하여 장시간 언급하신 후에 “두 집이 망하고 한 집이 성공하는 공부를 하려는가?” 하시거늘
형렬이 대답하기를 “열 집이 망해도 하겠습니다. 열 집이 망하고라도 한 집만 성공하면 열 집이 다 성공될 것 아닙니까?” 하매
말씀하시기를 “그렇지, 자네 말이 옳도다. 그러나 모두 자네 같은가? 어려운 일일세.” 하시고 세 번 다짐을 받으시고서야 방에 들어가 앉으시니라.
道典 3:12) 형렬의 집을 주인으로 정하심
이 때에 형렬의 아내가 셋째 아들을 낳았는데 잠시 후에 안에서 아들 낳은 소식을 알리거늘, 상제님께서 ‘천리마’라 이름을 지어 주시니 아이의 젖이 네 개더라.
본래 형렬의 아내는 아이를 낳으면 반드시 산후복통이 나서 한 달 동안 앓는 증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또 재발하여 죽는다고 소리치니 형렬이 크게 근심하는지라
상제님께서 위로하며 말씀하시기를 “인생의 고초가 저렇도다. 이 뒤로는 모든 일에 나를 믿고 근심을 놓으라.” 하시고 처방을 일러 주시며 “약 두 첩을 지어 오라.” 하시거늘, 형렬이 명하심을 좇아 약을 달여 먹이니 과연 아내의 복통이 그치고 그 밖에 천촉(喘促)과 해소(咳嗽) 같은 별증(別症)들도 다 나으니라.
산모가 크게 기뻐하며 상제님을 뵙고 집에 오래 계시기를 간청하니 웃으며 말씀하시기를 “세상 사람은 자기가 먼저 좋아야 남을 생각하는 법이라.” 하시고 흔연히 허락하시니라.
이 때 상제님의 성수(聖壽)는 32세이시고 형렬의 나이는 41세라. 노소는 다를망정 가까이 모셔 보니 감히 앞으로 다니기가 황송할 지경이더라. 이후로 상제님께서 형렬의 집을 주인으로 정하시고 천지공사를 행하시니 형렬에게 공사에 수종 들 수 있도록 심령(心靈)을 열어 주시기 위해 4월 15일부터 수련을 시키시니라.
김천리마 (金千里馬, 1902∼1957): 족보명 태규(泰圭), 자(字)는 상용(祥用). 김형렬 성도와 황씨 부인의 막내.
道典 3:13) 새천지 개벽공사의 시종을 김형렬 집에서
하루는 형렬에게 “쇠머리 한 개를 사 오고 떡을 찌라.” 하시고 “제비창골 일을 해야 한다.” 하시더니, 감나무 밑에 음식을 차리게 하시고 감나무를 잡고 ‘만수(萬修)’를 부르시며 성주풀이를 하시니 이러하니라.
경상도 안동 땅 제비원(帝妃院) 솔씨 받아 평(小坪) 대평(大坪) 던지더니 밤이면 이슬 맞고 낮에는 볕뉘 쐬어 그 솔이 점점 자라 청장목(靑壯木)이 되었구나. 황장목(黃腸木)이 되었구나. 낙락장송이 쩍 벌어졌구나.
태평전(太平殿) 대들보가 되어 어라 만수(萬修) 어라 대신(大神)이야. 대활연(大豁然)으로 이 땅으로 설설이 내립소사. 시(始)도 여기서 일어나고 종(終)도 여기서 마치리라. 이렇게 노래 부르신 후에 금산사를 넘어다보시고 “여기를 큰집으로 할까, 작은집으로 할까. 제비 새끼 치는 날에 제비창골이 가득 차리라.” 하시고 쇠머리를 땅에 묻으시니라. 형렬의 집에 계실 때 하루는 상제님께서 “여기가 어찌 제비창고(帝妃創庫)일까?” 하시더니
말씀하시기를 “옛집을 다시 찾는다는 말이니라. 이곳은 제비창골이 아니요 제업창골(帝業創谷)이니라.” 하시니라. 하루는 하운동에 사는 박성태(朴成台)에게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제비창골에 날마다 백 명씩은 왕래하리라.” 하시고,“그러나 여지가 좋지 못하다.” 하시니라.
경상도 안동 땅 제비원(帝妃院): 성주풀이의 본향(本鄕)으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미륵불이 있으며, 이 불상에 비바람을 가릴 전각을 지어 주려 한 ‘연(燕)이’라는 여인의 전설이 내려온다. 여기서는 천지공사의 주인을 안동 김씨로 정하시는 굿풀이를 뜻한다.
황장목(黃腸木)이 되었구나: 오래 되어 심(心)이 붉게 된 품이 좋은 소나무를 말하며 임금의 관재(棺材)나 대궐의 기둥으로 쓰였다.
道典 3:14) 때를 놓치지 말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계대운이 조선으로 몰아 들어오니 만에 하나라도 때를 놓치지 말라. 이 때는 사람이 가름하는 시대니라. 남아가 출세하려면 천하를 능히 흔들어야 조화가 생기는 법이라. 이 세상은 신명조화가 아니고는 고쳐 낼 도리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형렬에게 신안을 열어 주심
형렬이 그와 같은 말씀을 조금 의심하던 차에 하루는 상제님께서 저녁에 형렬을 불러 이르시기를 “오늘은 천하신명을 제비창골로 몰아들일 참이니 놀라지 말라. 제비창골이 아니고는 나의 일을 할 수 없다.” 하시고,
날이 어두워지자 촛불을 들고 “만수야! 만수야!” 하고 부르시더니 잠시 후에 형렬에게 “놀라지 말고 문밖을 내다보라.” 하시기에 형렬이 나서서 보려 하매
말씀하시기를 “눈을 떴다가는 간담(肝膽)이 떨어질 참이니 눈을 감고 보라.” 하시니라. 이에 형렬이 눈을 감고 바라보니 구름과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수많은 깃발과 창검이 햇빛처럼 눈부시고, 기기괴괴한 신장(神將)들이 말을 달려 동구로 몰아 제비창골로 달려드는 통에 어찌나 놀랐던지 “그만 보사이다.” 하고 눈을 뜨니 상제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시기를 “무서우냐? 거짓말 같을지라.” 하시니라. 이후부터 형렬은 상제님께서 신병(神兵) 소리만 하시면 더욱 열렬히 복종하니라.
道典 3:15) 김자현의 입문
김자현(金自賢)은 구릿골 사람으로 김형렬의 친족이라. 자현이 우연히 다리에 습종(濕腫)이 돋아 고생한 지 3년이 지났으나 백약이 무효하여 다리를 영영 베일 지경에 이른지라 이 때 형렬이 자현을 찾아가 상제님께서 아내의 산후통을 고쳐 주신 신효(神效)한 내력을 말하며 “그 동안 종기로 얼마나 고생하는가? 우리 집에 강증산이란 분이 와 계신데 의관(衣冠)을 하여 찾아뵙고 여쭈어 봄이 어떠한가?” 하니
자현이 말하기를 “제 다리는 못 고칩니다. 이미 단념한 지 오래입니다.” 하고 오지 않겠다고 굳이 사양하거늘, 형렬이 “아, 이런 병이 뭐 대수인가. 병은 천지병(天地病)이 큰 병이지 이런 병은 병도 아니네. 그분은 천지병을 고치시는 분이라네. 천의(天醫)가 오셨으니 생각해 보아서 꼭 오게나.” 하고 재차 이르거늘 그제야 자현이 “그럼 내일 찾아뵙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니라.
김자현(金自賢, 1875∼1927): 본관 안동. 족보명 언회(彦會), 자현(自賢)은 자(字). 부 원장(元長)과 모 임씨의 장남. 안동 김씨의 종손으로 김형렬 성도와는 10촌간이며 호리호리하고 키가 컸다고 한다.
자현이 우연히 다리에 습종(濕腫)이 돋아: 습사(濕邪)로 인하여 허리 아래가 무겁고 다리는 팽팽하게 부으며 누르면 자국이 남는다.
천의(天醫)가 오셨으니: 상제님은 만유생명의 기틀인 천지의 큰 병을 고치시는 분이다. 『화엄경』「입법계품」에는 말법시대에 출세해 세계를 건지는 미륵존불을 ‘대의왕(大醫王)’으로 표현한 구절이 나온다.
道典 3:16) 선생님, 살려 주소서
다음날 상제님께서 코로 냄새를 맡으시며 “어찌 이런 흉악한 냄새가 나는가?” 하시매, 형렬이 깜짝 놀라 방을 쓸고 닦는데 또 냄새를 맡으시며 “썩는 냄새가 이리 나는가?” 하시므로
형렬이 송구스러워 밖으로 나가서 변소를 덮고 하며 부산을 떠는 중에 구릿골에 사는 종제(從弟) 김갑칠(金甲七)이 다리 아픈 자현을 지고 오더라. 갑칠이 자현을 땅에 내려놓으니 자현이 뜰 밑에서 “선생님, 사람 살려 주소서.” 하고 다리를 내보이매
상제님께서 보시고 “응, 저 다리가 오니 그런 냄새가 났도다. 나는 못 속이지.” 하시고 “내가 하늘님이던가.” 하시니라. 이에 자현이 “아이고 선생님, 살려 주소서.” 하고 애원하거늘, 말씀하시기를 “음, 내가 삼신님인가. 점잖은 손님이 오면 떡시루가 오는 법인데 나 같은 손님이 오니 썩은 다리가 들어왔네. 내가 무슨 의원이라고 나 같은 사람의 말을 듣고 약을 쓰려 하시오?” 하시니라.
엿 한 가래가 다리에 붙었구나
자현이 다시 여쭈기를 “무슨 약이라도 가르쳐만 주시면 쓰겠습니다.” 하니, 말씀하시기를 “뒷산에 가서 창출(蒼朮) 한 되 캐서 그 달인 물로 상처난 곳을 씻고, 원평장에 가서 엿 다섯 가래를 사다가 찧어서 붙이라.” 하시거늘, 자현이 당장 가서 창출을 캐고 엿 다섯 가래를 사다 놓으니 한 가래를 그 아들 태준(泰俊)이 먹은지라. 할 수 없이 네 가래를 찧어 붙이니 3년이나 고생하던 다리가 불과 보름 만에 씻은 듯이 나으니라.
자현이 기뻐하며 이바지를 준비하여 상제님을 배알하고 그 은공에 사례하거늘, 상제님께서 반기시며 환부를 보시니 대님 매는 자리에 엿 한 가래만치 흉터가 나 있는지라. 웃으며 말씀하시기를 “엿을 네 가래만 찧어 붙였으니 엿 한 가래가 다리에 붙었구나.” 하시니라. 이에 자현이 더욱 탄복하여 그 날로 상제님을 따르겠다고 나서니, 상제님께서 “죽어도 따르겠느냐.” 하시매 자현이 “죽어도 따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이와 같이 세 번을 다짐 받으신 뒤에 형렬을 불러 다시 “세 집이 망하고 천하가 흥하는 공부를 해 보자.” 하시고 자현이 천지사업에 동참하는 것을 허락하시니라.
김태준(金泰俊, 1897∼1967): 족보명 태준(泰俊), 자(字) 태봉(泰鳳). 『도전』 초판에는 자현의 ‘딸아이’라고 되어 있으나 족보 확인 결과 둘째 아들 김태준으로 밝혀졌다. 이 때 여섯 살이었다.
상제님께서 “죽어도 따르겠느냐.” 하시매: 상제님께서 도문에 받아들이실 때는 누구에게나 평생토록 변치 않을 믿음을 다짐 받으셨다. 천지대업을 집행하는 상제님의 성도는 대의에 충직한 일꾼이어야 한다.
김갑칠의 입문
김갑칠은 본래 이름이 판식(判植)으로 형렬과 사촌간이라. 상제님께서 자현의 고질병을 고쳐 주심을 보고 그 신이하신 권능에 감복하여 상제님을 따르니 이 때 나이 22세라. 이후 상제님께서 이름을 갑칠(甲七)로 고쳐 주시니 상제님께서 외처로 출행하실 때 담뱃대 등 행장을 들고 따르면서 일등 비서 역할을 수행하며 많은 공사에 수종 드니라.
한공숙, 김보경의 입문
임인년 4월에 상제님께서 형렬의 집에 머무르시며 천지공사를 행하시니 구릿골 사람 한공숙(韓公淑), 함열(咸悅) 사람 김보경(金甫京) 등이 이 내력을 전해 듣고 감동하여 차례로 따르니라.
김갑칠(金甲七, 1881∼1942): 본관 안동. 족보명 용회(龍會), 갑칠(甲七)은 자(字). 상제님의 곁에서 천지공사시 일등 비서 역할을 하였다. 어천시에도 행장을 챙겼으며, 어천 후 교단 생활은 하지 않고 개인 신앙을 했다. 아들인 태일(泰一)도 죽을 때까지 상제님을 지극하게 믿었다.
한공숙(韓公淑, 1849∼1921): 본관 청주(淸州). 부 내경(乃敬)과 모 이씨의 장남.
김보경(金甫京, 1861∼1934): 본관 안동. 족보명 영준(榮駿), 자(字) 주팔(周八), 호는 농호(聾湖). 함열 회선동에서 출생. 학문을 좋아하여 14세에 사서삼경을 다 읽었으며 서당에서 훈장을 하기도 하였다. 함라 지역의 유지로 문중 일을 도맡아서 하였다. 키는 190cm 정도로 기골이 장대하였다.
상제님을 알면 반도통은 한 것
하루는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너희들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하시니 아무도 감히 대답하는 사람이 없거늘,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만 하여도 반도통은 되었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나는 동정어묵(動靜語黙) 하나라도 천지공사가 아님이 없고 잠시도 한가한 겨를이 없이 바쁜 줄을 세상 사람들은 모르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3:19) 형렬에게 법신을 드러내 주심
하루는 형렬이 ‘금산사로 오라.’는 상제님의 기별을 받고 금산사로 가니 절 앞 다릿목에 이르렀을 때 홀연히 미륵불상이 금빛을 발하면서 걸어 나오는지라 형렬이 놀라 땅에 엎드려 몸을 떨고 있는데 잠시 후 “그만 일어나거라.” 하는 소리가 들리거늘,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보니 상제님께서 웃음을 띠고 서 계시더라. 이로부터 형렬이 깍듯이 존댓말을 쓰니 다른 성도들도 따르니라.
道典 3:21) 적서와 반상의 구별을 없애 주심
상제님께서는 비록 미천한 사람을 대할지라도 반드시 공대하시는데, 형렬의 종인 지남식과 으렁이에게도 항상 그러하시므로 형렬이 민망하여 “이 사람은 저의 종이오니 공대치 마소서.” 하고 아뢰니,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은 그대의 종이니 내게는 아무 관계도 없느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기를 “하루 속히 천인(賤人)에게 후대하라.
이 마을에서는 어려서부터 숙습(熟習)이 되어 쉬이 말을 고치기 어려울지나 다른 곳에 가면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다 존경하라. 이 뒤로는 적서(嫡庶)의 명분과 반상(班常)의 구별이 없어지나니 양반을 찾는 자는 선령의 뼈를 갈아 먹음과 같으니라.” 하시니라.
지남식(池南植, 1879∼1944): 본관 충주(忠州). 본명은 찬문이다. 청도리에서 출생하여 부인 주씨와의 사이에 1남을 두었다. 현재 원평 수리조합 밑에 그 후손들이 살고 있다.
道典 3:22) 채소를 잘 자라게 해 주심
하운동에서 여름을 지내실 때 형렬의 집이 가난하여 음식이 보잘것없고 더욱이 밭이 메말라서 채소가 다 죽을 지경이 되니 형렬이 크게 근심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위로하며 말씀하시기를 “산중에는 별미가 없나니 채소나 잘되게 하여 주리라.” 하시더니
다음날 형렬이 채소밭에 나가 보니 밭에만 비가 내려 채소가 다시 살아나고, 이로부터 약간 심어 두었던 악마디 채소가 잘 자라나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살지게 되어 반찬거리가 넉넉해지니라.
항상 깨끗한 신발로 다니심
원래 하운동은 산중에 있어 길이 매우 좁고 험하며 나무들이 우거지고 얽혀서 이슬이 많을 뿐 아니라. 장마가 지면 길에까지 물이 흘러내려 시내를 이루는데 이곳을 왕래하시는 상제님의 신발은 항상 깨끗하므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이상히 여기니라.
천지신명이 옹위하는 모습
출행하실 때는 어느 때를 막론하고 낮에는 햇무리가 지고 밤에는 달무리가 지며 또 동구 양편에 구름기둥이 깃대와 같이 높이 솟아 팔자형을 이루므로 성도들이 그 이유를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햇무리와 달무리는 신명이 나에게 준비가 되었음을 알리는 것이요, 팔자 모양의 기운은 장문(將門)이니라. 언제 어디서나 내 몸에는 항상 신장(神將)들이 따르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3:23) 처남 정남기의 사욕을 거두심
임인년 가을에 하루는 상제님께서 형렬을 데리고 금구 내주평 정남기의 집에 가시어 남기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자네 집에서 수련을 하리니 그리 알라.” 하시니 남기가 아뢰기를 “그러면 저도 함께 수련을 하겠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그대 생각대로 하라.” 하시매 남기가 수련에 참석하니라. 잠시 후에 천지대신명들의 호위 속에 수련을 하는데 뜻밖에 어떤 늙은 중(僧) 신명이 들어오더니 모든 신명을 지휘하여 남기를 호위케 하는지라
상제님께서 이 광경을 지켜보시는 중에 다시 한 노령의 대성신(大聖神)이 나타나 “어찌하여 천지운도(天地運度)를 어기느냐!” 하고 엄숙히 꾸짖으니 그 중 신명이 문밖으로 도망하고 모든 신명이 상제님 쪽으로 모이니라. 상제님께서 ‘이는 남기가 신술(神術)에 통하여 이치 밖의 생각으로 대대적 모반을 꾀하려 함이라.’ 하시고 형렬에게 허령신명을 붙이시니 형렬이 갑자기 광증(狂症)이 일어나 심히 망령된 소리로 욕설과 패담을 퍼부으며 남기를 무수히 핍박하는지라
남기가 이르기를 “이 공부를 하면 광증도 제거한다 하더니 오히려 멀쩡한 사람이 미쳐 버렸다.” 하며 밖으로 나가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광증이라도 믿음만 가지면 공주자사(公州刺史)는 하련만 그도 마다하는구나.” 하시고, 수련을 마치신 후에 형렬에게 명하시기를 “대파침(大破鍼) 한 개를 구하여 오라.” 하시어 남기가 출입하는 문 위 벽 속에 몰래 꽂아 두시니라.
道典 3:24) 김형렬의 수련 공부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4월 15일부터 9월 19일까지 수련을 시키시고 이르시기를“그만 그칠지어다. 다른 묘법은 쓸 때에 열어 주리라.” 하시니라. 수련을 시작한 이후로 모든 천지공사를 행하실 때 형렬에게 신명이 모이고 흩어짐과 어명을 받드는 모습을 참관케 하시며 풍우를 짓게도 하시고, 참관한 공사의 조항을 일일이 물으시어 그 보고 느낀 바가 맞는지를 자세히 시험하기도 하시니라.
道典 3:97) 갑칠을 꾸짖지 않으신 상제님
김갑칠이 늘 상제님께 응석과 고집을 부리되 상제님께서는 잘 달래어 일깨우실 뿐 한 번도 꾸짖지 않으시니 갑칠이 더욱 심해지는지라 하루는 형렬이 몹시 화가 나서 “저런 못된 놈이 어디 있느냐.” 하며 꾸짖거늘, 상제님께서 이르시기를 “네가 아직 언행이 덜 풀려서 말에 독기(毒氣)가 있도다.”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惡將除去無非草요 好取看來總是花니라
싫다고 베어 버리면 풀 아닌 게 없고, 좋다고 취하려 들면 모두가 꽃이니라.” 하시니라. 이어 말씀하시기를 “말은 마음의 소리요, 행동은 마음의 자취라. 말을 좋게 하면 복이 되어 점점 큰 복을 이루어 내 몸에 이르고, 말을 나쁘게 하면 화가 되어 점점 큰 재앙을 이루어 내 몸에 이르느니라.” 하시니라.
김갑칠(金甲七, 1881~1942): 형렬의 숙부 기범의 아들이자 준상의 동생. 당시 24세로 김형렬 성도와는 19년의 나이 차가 난다. 입문 이후 형렬과 함께 많은 공사에 수종을 들었다. 첫째 부인을 일찍 상처하고 하운동의 둘째 부인을 얻었다.
道典 3:131) 김형렬 며느리의 불평과 쌀 걱정
상제님께서 형렬의 집에 자주 머무르시며 공사를 행하시니 성도들의 음식 비용만도 적지 않은지라. 하루는 형렬이 상제님의 명을 받고 집에 들어가 며느리에게 “점심을 지으라.” 이르니, 며느리가 속으로 생각하기를 ‘시아버지가 요술쟁이에게 미쳐 자식들을 고생시키고 집안을 망친다.’ 하여 “쌀이 어디에 있어서 밥을 해 먹습니까?” 하거늘, 형렬이 상제님께 그대로 아뢰니 말씀하시기를 “부엌 숯무더기 앞에 있는 단지 속에 쌀이 두어 말 있으니, 가서 절굿대로 깬다고 하여라.” 하시니라.
이에 형렬이 부엌에 가서 보니 과연 말씀하신 대로 쌀이 단지에 가득한지라. 형렬이 절굿공이를 들고 “이놈의 쌀독을 깨 버린다.” 하니 며느리가 시아버지의 손목을 잡고 말리며 독에 든 쌀을 전부 쏟아 밥을 지어 올리거늘 사람이 워낙 많아 그래도 밥이 모자라더라. 상제님께서 진지를 드시며 자꾸 웃으시니 형렬이 그 이유를 여쭈거늘, 말씀하시기를 “요놈을 먹고 저녁에 다시 오면 또 없다고 이맛살을 내 천(川) 자로 쓸 테니 그 꼴을 또 어떻게 본다더냐?” 하시니라.
이에 형렬이 아뢰기를 “그러면 쌀 좀 들어오게 하십시오.” 하니 상제님께서 “오늘 저녁에 보광(普光) 너머에서 쌀이 들어오리라.” 하시거늘 저녁때 과연 쌀 한 짝이 들어오더라. 이 뒤로도 상제님께서 “내일은 쌀 몇 가마니가 들어온다.” 하시면 말씀하신 대로 쌀이 들어오니 그 쌀로 성도들의 밥을 짓는데, 하루에 쌀이 한 섬도 없어지고 한 가마니도 없어지며, 제를 지내는 날에는 몇 가마니씩 소비되기도 하거늘, 밥을 워낙 많이 지을 때는 이웃집에 쌀을 주어 함께 짓기도 하니라.
“논 다 바치고 재산도 다 없어지고: 우선 오는 손님 먹여야지. 그렁게 빚이 자꾸 더 져. 그렁게 태운장도 하는 말이 ‘내 속의 포한을 누가 알을라냐.’고 그랬어. 헝게 선생님이 ‘내가 알지 누가 알아야. 네 재산 없어지는 것도 내가 알고, 너 속타는 것도 내가 알고. 느이(네) 자식이 너 미워서 쌀을 두고도 밥을 안 한다.’”(김호연 성도 증언)
오늘 저녁에 보광(普光) 너머에서: 보광재. 전북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坪村里)에서 전주시로 넘어가는 고개.
道典 4:3) 개벽장 하느님으로 오심
임인(壬寅 : 道紀 32, 1902)년 4월에 상제님께서 김형렬의 집에 머무르실 때 형렬에게 이르시기를 “시속에 어린아이에게 ‘깨복쟁이’라고 희롱하나니 이는 개벽장(開闢長)이 날 것을 이름이라.
삼계 우주 통일의 조화정부를 여심
내가 삼계대권(三界大權)을 주재(主宰)하여 천지를 개벽하여 무궁한 선경의 운수를 정하고, 조화정부를 열어 재겁(災劫)에 싸인 신명과 민중을 건지려 하나니 너는 마음을 순결히 하여 천지공정(天地公庭)에 수종하라. 내가 세상에 내려오면서 하늘과 땅의 정사(政事)를 천상의 조정(天朝)에 명하여 다스리도록 하였으나 신축년 이후로는 내가 친히 다스리느니라.” 하시니라.
마음을 순결히 하여 천지공정(天地公庭)에 수종하라: 천지공정. 세계의 새 질서를 심리하기 위해 천지신명과 인간이 함께 참여하여 개벽세계를 여는 새 역사 창조의 공판(公判) 무대, 곧 천지공사장을 말한다. 천지신문(天地神門), 대신문(大神門), 천지대신문이라고도 하셨다.
道典 4:33) 천상 옥경에 다녀온 김형렬
하루는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형렬아, 평소에 너의 지극한 소원이 천상에 올라가서 천조(天朝)를 보고자 하는 것이니 오늘은 이를 허락하리라.” 하시고, “내 뒤를 따르라.” 하시니 홀연 천문(天門)이 널따랗게 열리거늘, 형렬이 날개가 돋쳐 신선이 된 듯 가볍게 하늘을 날아올라 상제님을 모시고 따르니라. 천상에 다다르니 문무백관이 상제님의 영(令)을 받들기 위해 모여서 기다리고 있는데
하나같이 환한 관복으로 성장(盛裝)하였고 그 선명한 옷차림이 오색으로 조화되어 인간 세상의 법식과 다르니 나아가고 물러남과 온갖 언행의 규범이 정연하고 눈부시며, 동정어묵(動靜語默)이 우아하고 화락(和樂)하며 환하고 밝아서 마치 어린아이 같더라.
굽이굽이 난간에는 봉황이 간간이 울고, 파랗고 노란 지붕에는 상서로운 용이 때때로 돌며, 뜰 앞에는 온갖 꽃나무들이 아름답게 꽃을 피워 그 향기가 참으로 그윽하니 그 갖가지 화초는 인간 세상에서 보지 못한 기이한 것들이더라.
또 진기한 새들과 이상한 짐승들이 그 사이에서 혹은 날고 혹은 뛰면서 노래하며 울어대고, 청아한 선악(仙樂) 소리가 유량한 가운데 선녀들이 아름다이 춤을 추니 그 고운 자태가 황홀하도록 그윽하더라. 또 화려하게 채색한 층층의 누대에는 나는 듯한 용마루가 하늘 높이 솟았는데, 단청 빛깔 또한 지극히 곱고 먼지 하나 없이 맑고 투명하여 그 영롱한 광채가 완연히 유리세계(琉璃世界)더라.
천상의 보좌에 앉으신 상제님
어느 대전(大殿)에 이르니 안에는 용상(龍床)이 있는데, 황금과 백옥으로 용이며 봉황이며 거북과 기린, 그리고 온갖 아름다운 짐승들을 새겼거늘 휘황찬란하여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더라. 상제님께서 용상에 앉으시니 만조백관이 모두 절을 드리니라. 잠시 후에 한 선관(仙官)이 들어와서 상제님 곁에 있는 책상 앞에 앉거늘, 백금 조각으로 비늘을 한 관을 쓰고 옷을 입었는데 그 의관이 햇빛에 반사되어 온갖 빛깔로 황홀하게 반짝이더라.
길고 고운 손은 분가루보다 희고, 그윽하고 서기 어린 얼굴은 흰 눈보다 더 맑으며 붓놀림 또한 놀랍도록 유려하니라. 이 때 죄수 한 명이 대전(大殿) 아래에 불려 와 고통으로 절규하며 상제님께 살려 달라고 호소하거늘, 신장(神將)이 아랑곳 않고 여러 차례 죄를 물으니 그 모습이 지극히 엄중하더라.
천상 신도 세계의 수도로서 우주의 통치자이신 상제님께서 계시는 곳이 옥경(玉京)이다. 도교에서는 최고의 하늘을 대라천(大羅天)이라 부르며, 최고신인 원시천존이 중앙에 있는 옥경에서 일체의 교화를 행한다고 한다.
道典 4:34) 형렬이 천상에서 만난 부친과 조부
조회가 끝나자 상제님께서 형렬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시기를 “네가 여기까지 왔으니 네 부친과 조부를 만나 보지 않겠느냐?” 하시므로 형렬이 “자손 된 도리로 진실로 그 이상의 소원이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니,
잠시 후에 몇 계단 아래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문 하나가 저절로 열리며 형렬의 부친과 조부가 청수를 올리고 향을 사른 후에 정성스럽게 주문을 읽는 모습이 보이거늘, 줄곧 얼굴에 매우 기쁜 빛을 띠고 있을 뿐이요 형렬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더라.
형렬의 부친과 조부가 청수를 올리고: 부친 김석필(金錫弼, 1842~?), 조부 김숙명(金淑明, 1821~?).
道典 4:35) 석가불의 신도 위격과 신계의 주벽 동방칠성
형렬이 다시 세상에 내려와서는 그 기쁨을 말로 다할 수 없더니, 하루는 상제님께 여쭈기를 “천상에서 선생님 앞에 앉아 흰옷을 입고 글씨 쓰던 선관은 누구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석가불이니라.” 하시니라. 형렬이 다시 여쭈기를 “석가불이 천조에서 무슨 직책을 맡고 있사옵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대제군(大帝君)의 높은 자리이며 서방칠성(西方七星)이니, 항상 내 곁에서 나를 보좌하느니라.” 하시거늘
형렬이 “그러면 동방칠성(東方七星)은 누구입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동방칠성은 신계(神界)의 주벽이니라. 장차 너희와 한가족이 되리라.” 하시니라. 또 여쭈기를 “천상에서 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아무 말이 없었는데 무슨 연고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내가 가까이에 있으니 삼간 것이며 혹시 말을 했다가 망령되이 천기를 누설하면 죄가 되기 때문이니라.” 하시니라.
나라를 그르친 큰 죄인, 안록산
형렬이 다시 “대전에 끌려온 죄수는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그와 같이 엄하게 다스리는 것입니까?” 하고 여쭈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죄인은 안록산(安祿山)이니라.” 하시거늘, 형렬이 여쭈기를 “안록산이 배은망덕한 죄를 지은 것이 이미 천여 년 전의 일인데 지금까지도 미결수로 남아 있다는 말씀이옵니까?” 하매, 상제님께서 답하여 말씀하시기를 “나라를 그르친 큰 죄인은 그 죄가 워낙 크기 때문에 백 년에 한 번씩도 신문(訊問)하게 되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천상의 칠성당(七星堂) 앞에 남새밭이 있으니, 내 마음이 소박하고 담백함을 좋아함이 이와 같노라.” 하시니라.
안록산(安祿山, 705~757): 돌궐족 출신의 당나라 장수. 안록산과 사사명이 일으킨 ‘안사의 난’은 당나라 쇠망의 원인이 되었다.
천상의 칠성당(七星堂): 칠원성군, 즉 칠성신을 모셔 놓은 신당. 칠성은 곧 북두칠성이며 이를 다스리는 인격신인 북두칠원성군(北斗七元聖君)을 함께 이르는 것으로 인간의 복록과 무병장수를 주관한다.
道典 4:36) 태백산에서 형렬을 살려 주심
상제님께서 여러 산을 다니시며 많은 공사를 행하시니, 크고 높은 산일수록 더 찾으시고 그 산의 폭포 밑을 가기도 하시니라.
갑진(甲辰 : 道紀 34, 1904)년 초봄에 상제님께서 형렬과 호연을 데리고 각처를 돌아다니시다가 하루는 태백산에 오르시니 산에 눈이 살짝 덮여 있더라. 상제님께서 공사를 보시던 중에 갑자기 형렬을 향하여 이쪽으로 오라는 듯 손짓을 하시는데 형렬이 어리둥절하여 그대로 서 있거늘, 호연이 “바로 서래요!” 하고 소리치매 그제야 알아듣고 상제님 쪽으로 한 발을 옮겨 놓으니 그 순간 큰 바위가 형렬의 뒤로 벼락같이 굴러 떨어지니라.
道典 4:41) 화기를 옮겨 불길을 거두심
6월에 형렬을 데리고 태인 신배(新培)에 있는 김 모의 집에 가실 때, 그 마을의 어떤 집에 불이 났는데 모진 바람을 타고 기세가 크게 일어나거늘, 상제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며 “저 불을 그대로 두면 이 바람에 온 마을이 재가 되리니 맞불을 놓아 끄리라.” 하시고, 형렬에게 명하시어 섶으로 불을 피우게 하시니 곧 바람이 자고 불기가 쇠하여지니라. 이에 형렬이 여쭈기를 “이곳에 섶을 쌓아 놓고 불을 붙였는데 저 집의 불이 꺼지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화기(火氣)를 옮겼기 때문이니라.” 하시니라.
태인 신배(新培): 전북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五公里)에 있는 마을. 산을 넘으면 태인 배례밭 군신봉조혈(群臣奉朝穴)이 있어 예전에는 신배(臣拜)라 했다.
道典 2:122) 대추나무에 매달린 김형렬의 큰며느리
상제님께서 임인년 이래로 여러 성도들과 함께 형렬의 집에서 자주 공사를 행하시니, 형렬의 큰며느리가 잘 곳이 없어 다른 집에서 자는 경우가 많고, 방안에 성도들이 있으면 방문 앞을 제대로 지나다니지도 못하며 오랫동안 상제님 의복을 빨아 드리고 끼니마다 수종을 드니 그 노고가 크더라. 무신년 겨울에 하루는 상제님께서 형렬의 집으로 들어서시는데
형렬의 큰며느리가 상제님을 오래 대하다 보니 무서운 줄을 모르고 “저 미친놈 또 온다.” 하고 불평하거늘, 이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며느리가 난데없는 바람에 날려 마당 끝 대추나무 가지에 코가 꿰여서 걸리는지라. 이를 본 이들이 나뭇가지가 부러질 것도 같고, 며느리가 너무 불쌍하기도 하여 내려 주려고 다가가니 가는 이마다 발바닥이 땅에 달라붙어 내려 주기는커녕 도리어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게 되니라.
이에 한 사람이 나서며 “아이고, 저 사람을 한 번 보고 다시는 안 보려 하십니까! 세상에, 저렇게 코피가 나도록 두십니까.” 하며 간청을 하는데, 상제님께서는 “어디 코피가 나냐, 이 눈구멍 빠진 놈아!” 하시며 오히려 그를 나무라시니라.
벙어리로 만드심
고산(高山)에 사는 친정 부모와 형제들이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놀라서 단숨에 달려오거늘, 친정어머니가 “언제까지 이렇게 둘 것이오?” 하며 딸을 내려 주려 하매 손을 쳐든 채로 서 있게 만드시고, 친정아버지와 형제들도 발이 땅에 붙어 꼼짝 못하도록 만드시니라. 이에 며느리와 발이 붙은 이들이 더욱 소리치며 울고불고 난리이거늘
상제님께서 “시끄럽다.” 하시며 모두 벙어리로 만드시고, 그래도 여전히 “음, 음!” 하고 소리치며 울어대니 “그 소리도 듣기 싫다.” 하시며 아예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게 만드시니라. 또 고샅에서 구경하던 마을 사람들도 누구든지 한마디만 하면 그 자리에 붙여 놓으시니 모두 입을 봉하고 아무 말도 못 하니라.
형렬의 큰며느리: 이정숙(李貞淑, 1888∼1968). 본관 한산. 고산 화정리에서 시집와 찬문과의 사이에 영식, 준식, 현식, 정식 4형제를 두었다. 이 때 찬문은 24세, 정숙은 21세였다.
이는 단순히 한때의 단편적인 사건 때문이 아니라 수년간 거듭된 큰며느리의 악성(惡性)을 근원적으로 개벽시키시기 위한 것이다. 이 사건 뒤로 큰며느리의 코끝이 조금 늘어졌다고 한다.(김호연 성도 증언)
고산(高山)에 사는 친정 부모: 현재 전북 완주군 고산면.
道典 2:123) 버릇을 고쳐야 하느니라
땅에 발이 붙은 사람들이 ‘땅을 파면 행여 떨어질까.’ 하여 땅을 아무리 파 보아도 떨어지지 않거늘, 상제님께서 이들에게 3일 동안 먹을 것을 주지 못하게 하시고, 진지를 드실 때는 마당이 훤히 보이는 토방에서 드시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것 먹어라, 저것 먹어라.’ 하고 권하시니, 마당에 있는 사람들이 더욱 배가 고파 심히 고통스러워하더라.
이를 보다 못한 호연이 “저 냇물에서 누가 ‘증산 어른, 증산 어른.’ 그래요.” 하니 “어떤 놈이 나를 불러?” 하시거늘, 호연이 “몰라, 뭣 하려고 그러는가. 저 매달린 사람 살려 주라고 그런가 봐요.” 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예끼 이놈! 그건 네 말이다.” 하고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시니, 호연이 “이제 그만 내려 주세요.” 하며 간곡하게 사정하거늘 “저거, 버릇을 고쳐야 한다.” 하시고 그냥 두시니라.
내려오라고 해 보라
저녁이 되자 상제님께서 형렬을 불러 물으시기를 “끌러 주어야 옳을까, 내버려 두어야 옳을까. 어떻게 하랴?” 하시니
형렬이 끌러 주시라고 하면 더 달아 놓으실 것을 알고 “아, 마음대로 하십시오. 죽일 테면 죽이시고, 살릴 테면 살리시고, 저 보기에도 어줍잖으니 아깝지도 않습니다.” 하고 아뢰거늘, 상제님께서 “저런 독한 것 보라.” 하시고 앞집의 수만 어미를 불러 명하시기를 “저기 올라가 있는 사람, 가서 내려오라고 해 보라.” 하시니라. 이에 수만 어미가 “내려 주셔야 내려오지, 제가 내려오란다고 내려오나요?” 하고 말대꾸를 하니
상제님께서 “요놈의 여편네를 봐라, 어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안 하고!” 하며 꾸짖으시거늘, 수만 어미가 혼잣말로 중얼거리기를 “장가도 안 가 놓고는 어른이라고 하네.” 하는데, 상제님께서 이를 아시고 “네 눈에는 내가 장가를 안 간 것 같으냐!” 하고 호통치시며 문 앞에 세워 놓으시니라. 잠시 후에 그 남편이 찾아와 “아이고, 이 동네 떠나야지 못살겠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하며 큰 소리로 떠들거늘
상제님께서 “그래, 어서 가거라. 어서 다른 데로 가라!” 하고 호통치시니 별안간 그 집 농 속의 옷과 모든 살림이 너울너울 허공을 날아 울타리 밖과 내 건너로 떨어지는지라. 이를 보던 동네 사람들이 혹여 화가 미칠까 하는 두려움에 멀찌감치 떨어져서 “아이고, 어쩌면 좋아, 어떻게 살꼬?” 하며 고개를 내두르더라.
道典 2:124) 그 버릇을 누구에게다 하느냐
형렬이 보기가 안쓰러워 차마 더는 두지 못하고 상제님께 용서를 구하며 아뢰기를 “철모르고 그런 것이니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들에게 항상 ‘마음을 널리 먹고 널리 쓰라.’ 하셨고, ‘소인배가 소인배 짓을 한다.’ 하셨듯이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선생님은 마음이 대천 한바다이시면서 어째 그 하찮은 것을 가리십니까?” 하니 그제야 내려 주시니라.
이에 모두 형렬을 따라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데, 비록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일지라도 그냥 서 있으면, “너는 뭣이냐, 이놈? 너는 뻣뻣한 작대기냐?” 하고 호통치시며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하여도 콩나물 쓰러지듯 하더라. 3일이 지난 끝에 겨우 풀려난 형렬의 큰며느리가 비로소 “잘못했으니 죽여 주십시오!” 하며 깊이 사죄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시아버지에게 하던 버릇을 내게다 하려고 하느냐?
서방에게 하던 버릇, 시에미에게 하던 버르장머리를 누구에게다 하느냐?” 하고 호되게 꾸짖으시니 이 뒤로는 형렬의 큰며느리가 상제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더욱 정성스럽게 모시니라. 이날 살림살이가 날려 갔던 수만네가 옷과 살림살이를 찾으러 가 보니 아무것도 없거늘, 누가 집어 간 줄로 알고 발을 구르며 애석해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옷이며 살림살이가 이미 제자리에 돌아와 있더라.
道典 7:86) 형렬이 상제님을 모시면서 얼마 안 되는 살림마저 거의 없어질 지경에 이르거늘
하루는 상제님께서 형렬을 부르시어 임인년 추석에 솥단지 판 일을 말씀하시며 “식주인의 조력이 없었다면 나의 일을 어떻게 감당하였겠느냐.” 하시고, “네 정성은 칠년가뭄에 단비 얻기보다 어렵고 구년홍수에 나무 한 묶음 얻기보다 어려우니 너의 지극한 정성이 천지에 차고 남느니라.
내가 네 신세를 못 잊겠구나. 이제 너의 소원 한 가지 들어주마.” 하시니라. 이에 형렬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선천 말대의 대개벽에 대한 상제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그러면 ‘때가 되면 괴질로 다 죽는다.’ 하셨으니, 천지에 병겁이 돌 때 저희 자식이나 다 살려 주십시오.” 하거늘,
상제님께서 갑자기 노기 띤 음성으로 “에이, 대적(大賊)놈 같으니! 그건 내 마음대로 못 한다.” 하시고, 타일러 말씀하시기를 “형렬아, 식구 살리려 하지 마라. 오만년 너 하나 시조(始祖) 되면 되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이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출세할 때는 대두목이라도 다섯 사람 데리고 따르기가 어려우리니 부디 마음을 잘 가지라. 희귀하다는 희(稀) 자가 ‘드물 희’ 자니라. 때가 되어 내가 부르면 참여할 사람이 별로 없으리라.” 하시니라.
道典 3:4) 전주 최상문의 집에서 정숙을 처음 만나심
상제님께서 전주 남문 안에 살고 있는 최상문(崔祥文)의 집에 자주 왕래하실 때, 한동네에 사는 김택룡(金澤龍), 신봉기, 박이동 등 여러 사람이 찾아와 상제님을 뵈니라. 택룡은 남문 밖으로 흐르는 전주천(全州川) 건너 반석리(半石里)에 살았는데 본시 상문과 절친한 친구로 상제님을 여러 번 뵙고 친면으로 지내니라.
기해(己亥 : 道紀 29, 1899)년에 하루는 상제님께서 택룡과 함께 상문의 집에 계실 때 택룡의 세 살 된 딸이 남천교(南川橋)를 건너 “아부지! 아부지!” 하며 상문의 집으로 들어오거늘, 그 모습을 보니 오악이 뚜렷하고 실로 영악하게 생겼더라. 이 아이의 이름은 정숙(貞淑)이요, 외할머니의 바느질 솜씨가 좋아 항상 아래위 구색을 맞춰 옷을 기가 막히게 잘 입혀 놓으니 동네에서는 이 아이를 ‘꽃순이’라 부르더라. 또 택룡의 집안은 전라감사를 지냈으며 딸이 귀한지라 정숙은 어려서부터 곱게 자라니라.
상제님께서 아장아장 걸어 들어오는 정숙을 보시고 “이리 오나, 이리 오나.” 하여 무릎에 앉히시고는 도리질을 가르쳐 주시고 노래도 가르쳐 주시니 이로부터 정숙이 상제님께 노래 배우는 것을 좋아하여 상문의 집에 자주 드나들며 “아자씨! 아자씨!” 하고 쫓아와 상제님의 무릎에만 앉거늘, 정숙이 오지 않는 날은 상제님께서 친히 택룡의 집을 찾으시어 재롱을 받으시니라.
빨리 커라, 어서 커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정숙을 무릎에 앉히시고 “어디, 도리질해 보아라. 도리도리!” 하시며 정숙의 머리를 흔들며 노래를 부르시니 정숙이 상제님의 두 귀를 잡거늘, 상제님께서도 정숙의 귀를 마주 잡으시고 함께 도리질을 하며 노래 부르시니라. 정숙이 상제님께서 춤을 추라 하시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라 하시면 노래를 하며 갖은 재롱을 부리니 딸이 없던 상문은 정숙이 오면 “친구 딸이 내 딸이다.” 하며 정숙을 먼저 차지하려고 야단이더라. 상제님께서도 “빨리 커라. 어서 커라. 엿 같으면 늘이자.” 하시며 정숙을 유달리 예뻐하시고 귀히 여기시니라.
최상문(崔祥文, 1866∼1941): 본관 탐진(耽津). 최 참봉이라 불렸다. 부인 최씨와의 사이에 2남 4녀를 두었다.
김택룡(金澤龍, 1864∼1903): 본관 김해(金海). 부인 전주 최씨와의 사이에 2남 2녀를 두었다.
김정숙(金貞淑, 1897∼1992): 정유(丁酉)년 11월 14일 전주부 반석리(半石里, 현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 전주교대 일대)에서 부 택룡과 모 최씨 사이에 장녀로 태어났다. 반석리는 마을에 바위가 반절, 흙이 반절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라감사: “우리 할아버지가 전에 전라감사로 와 있었어. 충청도 연산서. 긍게 전주서 퍼졌지.”(김호연 성도 증언)
道典 3:5) 호연이라 부르시니라
차차 낯이 익어가매 상제님께서 정숙을 부르실 때에 ‘예쁜이’, ‘양림이’, ‘양덕이’, ‘큰애기’, ‘애기씨’, ‘호연이’ 등 여러 이름으로 부르시니라. 이에 정숙이 “이름을 한 가지로 하지, 왜 그래요?”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잡으러 오니 그려.” 하시거늘, 정숙이 “누가 잡어? 내가 탁 때려 주지.” 하니 “네가 때리기는….” 하시고 더 이상 말씀을 아니하시니라. 정숙이 점차 자람에 따라 주로 ‘호연’이라 부르시니라.
상제님의 일을 매듭짓는 제3변 도운(道運)의 인사대권자에게 상제님의 말씀과 행적을 증언하도록, 상제님께서 근 백 년의 역사 속에 숨겨 놓으신 증언자가 김호연 성도다.
道典 3:6) 그대의 딸을 천지사업에 바치라
신축년에 도통문을 여신 후에 상제님께서 다시 상문의 집을 찾으시니 택룡이 품에 다섯 살 된 호연을 안고 있는지라 상제님께서 택룡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늘과 땅을 뜯어고쳐 무궁한 선경을 열려 하나니 그대의 딸을 천지사업에 바치라. 이 아이가 이제 천하의 선녀가 되어 할아버지 같은 사람들도 와서 무릎을 꿇게 되리라. 참으로 크게 될 아이니 나에게 맡기라.” 하시거늘,
택룡이 ‘좋은 세상을 본다.’는 말씀에 흔쾌히 승낙하니라. 상제님께서 이로부터 순진무구한 소녀 호연을 새 생명을 개벽하는 선매숭자 도수에 붙여 9년 천지공사에 천지의 제물로 삼으시고, 태운 김형렬과 함께 공사의 증언자로 세우시니라.
상제님을 알면 반도통은 한 것
하루는 성도들에게 물으시기를 “너희들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하시니 아무도 감히 대답하는 사람이 없거늘,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만 하여도 반도통은 되었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나는 동정어묵(動靜語黙) 하나라도 천지공사가 아님이 없고 잠시도 한가한 겨를이 없이 바쁜 줄을 세상 사람들은 모르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3:30) 상제님 옷자락에 똥 싼 호연
상제님께서 호연을 데리고 다니실 때는 보듬어 안거나 업고 가시는데, 호연이 간혹 상제님의 옷자락에 오줌을 싸기도 하니라.
하루는 호연이 상제님 품에서 오줌을 싸매 상제님께서 “너 내 골마리에다 오줌 쌌구나, 잉?” 하시거늘, 호연이 “오줌 마렵다면 얼른 내려놓지 누가 그냥 안고 있으래요?” 하고 대꾸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오줌 쌀 줄 알았냐?” 하시니
부끄러워 상제님을 마구 때리거늘, 상제님께서 ‘재미있다.’고 크게 웃으시니라. 또 어느 겨울날 상제님께서 “우리 호연이가 추워한다.” 하시며 저고리로 호연을 보듬어 싸안고 다리를 골마리 안에 넣고 가시는데 호연이 그만 똥을 싸거늘, 상제님께서 “아이고, 이놈의 것이 똥 쌌네.” 하시며 나뭇가지로 똥을 긁어내신 뒤에 앞자락을 걷어잡고 도랑에 가시어 옷을 빠시니라.
道典 3:38) 호연을 데리러 전주로 오실 때
호연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전주 집에 머물며 상제님을 따라다니니 상제님께서 호연을 데리러 자주 오시거늘, 상제님께서 오실 때면 벌써 동네 어귀에서부터 “호연아~! 호연아~!” 하고 부르며 오시니라. 이 때 호연이 대답하는 대신에 한 손을 높이 쳐들면 “네가 일본놈 종자냐? 일본놈이나 그러는 것이다.” 하며 나무라시니라.
道典 3:46) 저것을 어떻게 할꼬
하루는 상제님께서 호연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이놈 가지고 가서 할머니 갖다 드려라.” 하시니 호연이 “나 먹을라는데요.” 하거늘
상제님께서 “이놈! 할매가 주거든 먹어야 옳지!” 하고 꾸중하시며 형렬에게 “저것을 우리가 데리고만 댕겨놔서 저러니, 저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꼬.” 하고 걱정하시니라.
道典 3:48) 호연에게 떡을 사 주심
한번은 상제님께서 활을 쏘고 돌아오시니 호연이 배가 고프다고 하는지라 “너 밥 안 먹었냐? 밥 안 주대?” 하고 물으시거늘 호연이 “밥 안 줘.” 하고 대답하니라. 이에 “누가 안 줘?” 하고 재차 물으시매 호연이 “찬문이 각시가 안 줘.” 하니, 말씀하시기를 “고약한 놈 같으니라고, 그럼 가자! 너 무엇 먹을래? 밥 먹을래, 죽 먹을래, 무엇 먹을래?” 하시며
구릿골에서 5리가 넘는 원평장에 가서 떡을 사 주시니라. 어린 호연이 먹기에는 떡이 너무 크거늘 상제님께서 먹기 좋게 뜯어 놓아 주시고 “옷에 떡고물이 묻는다.” 하시며 가지고 계신 수건을 호연의 목에 둘러매어 주시고는 호연이 다 먹도록 옆에 앉아 지켜보시다가 데리고 오시니라.
道典 3:50) 호연을 미워한 형렬의 큰며느리
호연이 상제님을 따라 형렬의 집을 자주 오가며 오랫동안 머물기도 수차례이니 형렬의 큰며느리가 ‘집안 형편도 어려운데 어디서 선생님이라고 불러들여 수발들게 하더니 그것도 모자라 어린 아이의 수발까지 들게 한다.’며 몹시 못마땅해하니라. 하루는 호연이 형렬의 집 한쪽 구석에 우두커니 앉아 있거늘, 상제님께서 다가오시어 “심심하냐, 심심해? 재미지게 놀게 뭐 불러들일까?” 하시니
호연이 “그래도 싫고, 저래도 싫어. 저 태운장 큰며느리가 나보고 욕 해.” 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짐짓 놀라신 듯 “뭐라고 욕을 해?” 하고 물으시니 호연이 “너는 뭣이라고 따라 댕기면서 돈 없애고 그러냐고 하대. 내가 돈 없애?” 하거늘, 상제님께서 “고거 암기 있는가 보다, 잉? 너는 그런 것들하고 맨날 말해 봐야 소용없어. 너는 천지 ○○○를 물고나서 천지조화로 이제 좋게 돼.” 하시며 호연을 달래 주시니라.
道典 3:145) 호연에게 선매숭자 수도를 시키심
을사년 9월 9일에 상제님께서 “무명 두 필을 끊어 오라.” 하시어 흑석골 호연의 집 앞마당에 두어 사람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움막을 짓게 하시고 “이제 너 내외한다.” 하시니라. 호연이 내외한다는 뜻을 몰라 불속에다 넣는 줄로 알고 “아이고, 뜨거우면 어찌해야 옳을까?” 하고 울거늘, 상제님께서 어깨를 감싸안으시며 “아녀, 뜨겁지는 안 혀. 나오지를 못해서 그려.” 하고 달래 주시매, 호연이 “안 나오고 어떻게 살아?” 하니 “그래도 살 수가 있어.” 하시니라.
천지를 받는 청수
상제님께서 “잘못 파면 사람이 죽는다.” 하시며 움막 안 동쪽으로 샘을 둥그스름히 파게 하신 후에 몸소 들어가 보시고 “이것이 석 자인가 넉 자인가 재어 보라!” 하시므로 형렬이 왕골을 끊어다가 찔러보니 왕골의 꽃이 샘 입구에 와 닿거늘 재어 보매 넉 자가 조금 못 되더라. 상제님께서 “물이 많다.” 하시고 샘의 둘레를 돌로 쌓아 그 위에 덮개를 만들게 하신 뒤에 샘 안에 대접을 띄우고 호연에게 “샘을 들여다봐라.” 하시니
호연이 샘 안을 보고는 “아무 것도 없구만, 대접만 동동동동….” 하고 볼멘소리를 하거늘, 상제님께서 막대기로 물을 동서남북 사방으로 한 번씩 저으시더니 그릇에 물을 떠서 그 위에 막대기를 열십자로 올려놓으신 다음 그 가운데를 눌러 잡으시고 한쪽을 가리키시며 호연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셔라. 이놈은 네 차지다. 천지를 받는 청수니, 네가 처음으로 먹어야 내가 먹느니라.” 하시고 이어 형렬에게 “형렬은 이쪽으로 마셔라.” 하시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명하신 대로 각기 그릇 위에 걸친 막대기를 양손으로 잡고 호연이 한쪽으로 세 모금을 마시고 형렬이 다른 쪽으로 세 모금을 마시니 상제님께서 “내가 마지막 먹는다.” 하시며 또 다른 쪽으로 나머지를 다 드시니라.
흑석골: 전주시 서서학동과 평화동에 걸쳐 있는 골짜기로 바위가 검은빛을 띠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내외: 외간 남녀 사이에 얼굴을 마주 대하지 아니하는 일. 여기서는 수도에 들어가서 사람들과의 접촉을 일절 끊는다는 말씀.
샘: 현재 오두막집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서 집의 형태는 찾아볼 수 없지만, 이 샘물은 수질이 워낙 좋아 그 소문이 널리 퍼져 지금도 메우지 않고 아파트 한쪽으로 관을 대어 끌어쓰고 있다. “앞마당에 샴(샘) 있는 집은 우리 집 뿐이었어.
아무리 가물어도 그 물은 나와요. 원청 가물면 학봉리서도 그 물을 갖다 먹었어요. (중략) 그 물 약수로 쓰는 통에, 그건 아주 그냥 최고 좋다고, 와서 수질 검사 해갖고 그랬으니까. 오전 한 때, 오후 한 때, 두 차례밖에는 물 안 줘요.”(아파트를 짓기 전까지 오두막집에 살았던 이건용 증언)
道典 3:146) 공부 움막을 방처럼 만들어 주심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인제 오늘 저녁부터 여기서 잔다.” 하시니 호연이 “무서워, 나 혼자 못 자.” 하거늘, “이 샘이 너를 이렇게 안아 줄 테니 여기 가만히 있어.” 하시고 움막 안에 함박같이 동그랗게 짚을 깔아 주시니라.
상제님께서 그 위에 앉아 보시고 호연에게 “들어가 앉아 봐라.” 하시거늘 호연이 앉으니 따뜻하더라.
또 그 앞에 이불을 가져다 놓게 하시어 호연이 고개를 기대고 앉아 쉴 수 있도록 하시고, 호연에게 이르시기를 “인제 여기서 자고, 똥오줌도 이 안에서 누어라.” 하시며 다른 곳에 일절 가지 못하게 하시니 송은주가 끼니때마다 밥을 해서 가져다 주고, 호연이 앉은 채로 앞쪽에 놓인 이불에 엎드려 자다가 인시(寅時)가 되어 일어나면 세숫대야를 가지고 공부막으로 가서 호연을 목욕시키고 닦아 주며 호연이 움막 안에 종이를 깔고 대변을 보면 그 때마다 치우고 물로 씻어 주니라.
道典 3:147) 공부하는 내내 무릎을 꿇게 하심
상제님께서 호연에게 칠성경(七星經)과 개벽주(開闢呪)를 읽게 하시고 종이에 닭, 뱀, 말을 그리게 하시는데, ‘오늘은 무엇을 하라.’고 공부 시간을 따로 정해 주지 않으시니, 호연이 하고 싶은 대로 주문도 읽고 그림도 그리고 하니라. 또 공부하는 동안 내내 무릎을 꿇게 하시니 호연이 다리가 저리고 아파 투정을 하면 오히려 더 오그려 놓으시고, 낮에 어디에 가고 안 계실 때에도 “내가 천리에 가 있어도 뒤꼭지에 눈이 있어 다 안다.” 하시므로 다리를 펴지 못하니라.
자고 싶으냐
상제님께서 한밤중에도 종종 호연이 공부하는 움막에 오시어 작은 소리로 “호연아, 호연아.” 하고 부르시거늘, 호연이 “응.” 하고 대답하면 “안 자냐? 먹을 것 갖다 주랴?” 하시고, 호연이 “싫어.” 하고 대답하면 “자고 싶으냐?” 하고 물으시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오시어 물으시는데 호연이 대답지 않으니 “너 말 안 하면 내가 벙어리 만들어 놓는다.” 하고 도로 가시니라. 때로는 상제님께서 콩나물국에 막걸리를 타서 밥을 말아다 주시므로 그것을 먹으니라.
道典 3:148) 호연이 공부하는 것을 지켜 주심
호연이 주문 공부를 할 때 개벽주를 읽으면 간혹 몸이 들썩들썩하며 허령(虛靈)이 드는 경우가 있으므로 상제님께서 항상 성도들로 하여금 호연이 공부하는 움막을 지키게 하시니라.
마차, 마차, 마차
또 상제님께서 호연이 공부하는 것을 지켜보시다가 몸을 들썩거리며 요동하면 “마차, 마차!” 하고 크게 부르시는데, 호연이 “어디 말 나왔간디, 마차 마차 혀?” 하니 “어허!” 하고 호령하시니라. 하루는 호연의 주문 소리가 들리지 않아 상제님께서 안으로 들어가 보시니 호연이 쓰러져 있는지라 상제님께서 호연의 등을 대나무로 두드리시며 “마차, 마차, 마차!” 하시니, 호연이 깨어나며 “내가 말이간디?” 하고 일어나거늘, 상제님께서 “이것이 이런당게. 하하! 요거 죽었다고 내가 그 걱정을 했다.” 하시며 대나무로 한 대를 더 때리시니라.
마차, 마차: 이 말씀에서 우주 변화의 중심축인 무극, 태극, 황극의 삼극 원리가 인사로 현실화되는 상제님 도운 공사의 틀을 볼 수 있다. 상제님은 무극제이시고, 김형렬 성도는 임술생으로 태극제(대두목)를 상징한다. 황극은 중보로서 그 역할을 김호연 성도가 하는 것이다. 마차는 말과 음양으로 일체가 되어야 조화를 일으킨다. 바로 황극의 인사대권자와 김호연 성도가 만나 후천의 선(仙) 문명을 실현하는 것이다.
道典 5:108) 말이 들어야 성사되느니라
호연이 수도 공부를 시작하매 상제님께서 손바닥 두 개 너비의 하얀 종이를 책처럼 묶어다 주시며 닭과 말, 그리고 뱀 모양의 것을 그리게 하시는데, 종이 하나에 한 마리씩 그리게 하시고,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 그것에 점을 찍게 하시니라.
호연이 명하신 대로 밤낮으로 먹을 갈아 그림을 그려 두면 상제님께서 그것을 모아 불사르시는데 호연은 특히 말을 많이 그리니라.
하루는 호연이 지루하고 싫증이 나서 “아이고, 하기 싫어!” 하고 투정을 부리니, 타일러 말씀하시기를 “닭이 울어야 날이 샌다. 암탉이 울면 죽기가 쉽고, 장닭이 울어야 날이 새느니라.” 하시니라. 이에 호연이 “말은 어째서 그려요?”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난리 치나 안 치나 말이 들어야 성사하느니라. 말에게 이기고 지는 것이 있다.” 하시거늘, 다시 “그럼 뱀은 뭐예요?” 하니 “그것은 뱀이 아니라 용마(龍馬)니라. 큰 자로 들어간다.” 하시니라.
닭이 울어야 날이 샌다: 정유(丁酉)생 호연이 상제님께서 천지공사 보신 행적을 낱낱이 증언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상제님의 통일 경전인 『도전道典』 성편이 가능하였다. 이로써 상제님 도道 세계의 전체 틀을 볼 수 있는 기틀이 열려 도통판이 나오고 진법 도운의 매듭 단계로 들어가게 되었다. 붉은 닭이 소리침으로써 난법의 어두운 밤이 걷히고 진법의 새벽이 열리는 것이다.
뱀이 아니라 용마(龍馬): 태호 복희 때 황하에서 팔괘를 등에 싣고 나왔다는 준마. 매우 준수하고 훌륭한 말.
道典 5:109) 호연을 뒷바라지한 은주
이 때 송은주가 수도 공부하는 호연의 뒷바라지를 도맡아 하니, 매일 새벽이면 와서 씻겨 주고 움막을 청소하고 빨래도 해 주며, 매 끼니마다 밥을 해다 주고, 간혹 호연과 함께 밥을 먹기도 하니라. 하루는 호연을 씻겨 주다 말고 “아이고, 어린것이…, 무슨 꼴을 본다고 이러냐.” 하며 눈물을 보이더라.
또 하루는 상제님께서 출타하고 안 계실 때 누룽지를 몰래 움막 안에 넣어 주거늘 상제님께서 돌아오시어 “다시는 그러지 말라.” 하고 엄하게 꾸짖으시니라.
道典 5:110 ) 겉눈은 감고 속눈은 떠라
상제님께서 호연에게 칠성경(七星經)과 개벽주(開闢呪)를 읽히며 수도 공부를 시키실 때 “겉눈은 감고, 속눈은 뜨고 보라.” 하시거늘, 호연이 “어떤 게 속눈이고, 어떤 게 겉눈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아, 어떻게? 난 속눈 몰라, 어떡하면 속눈인지.” 하고 투덜대니 “아이고, 이것 데리고 뭔 일을 할 거라고. 실금이 떠!” 하고 면박을 주시니라. 이에 “실금이 떠!” 하고 본떠 말하며 장난을 치니 상제님께서 “흉내내지 말아라, 눈구녕을 잡아 뺄란다. 실직이 감아 봐, 실직이!” 하시거늘
호연이 눈을 살며시 감으며 실눈을 뜨니 “그게 속눈을 뜬 것이다.” 하시고, 다시 “꽉 감아 봐!” 하시므로 눈을 꼭 감으니 “그게 겉눈을 감은 것이다.” 하고 자세히 일러 주시니라. 호연이 공부하다가 눈을 조금 떠 보니 자배기에 잉어며 메기며 가물치가 떠서 벌떡벌떡 물을 마시는 것이 보이는데 공부가 깊어짐에 따라 눈을 조금씩 더 떠도 보이고 나중에는 눈을 완전히 떠도 보이더라.
마차, 마차, 마차
이 때 자배기에 잉어가 뜨면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오고, 가물치가 뜨면 투명한 선관(仙冠)을 쓴 일곱칠성이 내려오는데 호연의 눈에는 선녀처럼 보이나 남자이더라. 하루는 메기가 뜨매 기치창검으로 무장한 말 탄 장수신장들이 마치 어느 골짜기에서 몰려나오는 듯 마당으로 달려들어와 하나 가득 모이더니 모두 두 줄로 서서 호연이 공부하는 움막을 쳐다보며 호위하거늘
호연이 놀라 까무러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호연이 깨어나지 못하면 죽으리니 살려야 된다.” 하시고, 대나무로 호연의 등을 두드리시며 “마차, 마차, 마차!” 하시니 호연이 깨어나며 “마차는 무슨 마차? 내가 말이간디?” 하거늘, 상제님께서 “그러는 것이라 그런다.” 하시며 청수를 마시게 하시니라.
호연이 공부하다가 눈을 조금 떠 보니 자배기에 잉어며 메기며 가물치가 떠서 벌떡벌떡 물을 마시는 것이 보이는데: 김호연 성도는 공부할 때 본 것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거기 그렇게 기도할 적에 쳐다보면 이런 너럭지에 가물치가 그냥 주둥이 뻘건 놈이 물을 먹느라고 벌떡벌떡혀. 그놈이 꼬리를 치면 물이 사방으로 흩어지는디…. 잉어가 그냥 꼭 이런 놈이 자배기 바깥으로 절반이나 벌떡벌떡 물을 먹는디. 처음에 공부하는 사람들이 그 재미에 미쳐.”
가물치가 떠서 벌떡벌떡 물을 마시는 것이 보이는데: 양 볼 뒤의 7개의 반점이 북두(北斗) 형상을 나타내며, 밤이면 머리를 들어 북극성을 향하므로 ‘禮’자를 따라 ‘예어(鱧魚)’라고 한다. <『난호어목지 (蘭湖漁牧志)』, 『본초강목(本草綱目)』>
말은 용마(龍馬)이며 천리마로 일꾼 말이고, 마차는 김호연 성도다. 마차와 말이 결합하여 상제님의 후천문명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道典 5:111) 너의 증언이 온 천하에 퍼진다
호연이 청수를 마시고 이내 정신을 차리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이 천하신명 속에서 살려면 맘을 독하게 송죽같이 먹어라. 굳은 맘 송죽 같아야 혀.”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네가 조선에서 한 사람에게 말을 하면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고,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고 해서 온 천하에 퍼지느니라.” 하시니라.
총기가 있어야 한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호연에게 말씀하시기를 “어려도 총기(聰氣)가 있어야 한다. 총기가 없으면 못쓴다.” 하시고, 또 이르시기를 “너, 총기가 있어야 다 듣고 옮긴다.” 하시니라.
상제님의 제3변 도운을 매듭짓는 인사人事대권자에게 전하는 말씀의 중보(仲保) 사명을 말씀하신 것이다.
道典 3:150) 호연이 신안이 열리어
호연이 수도 공부를 하매 신안(神眼)이 열려서 보니 다른 집의 방 안 광경이 빠르게 지나가는데, 제사 지내는 모습, 청소하는 모습, 내외가 서로 이야기하는 모습 등이 마치 곁에서 보는 듯 세세하게 보이더라. 또 구릿골에 사람이 오면 주머니에 돈이 얼마 든 것, ‘내놓을까 말까.’ 하며 아까워서 벌벌 떠는 것이 다 보이고, 까치, 까마귀 등 새가 날아와 ‘내일 어디서 누가 오는데 이러저러하다.’고 일러 주는 것을 다 알아들으니 모르는 것이 없더라.
하루는 아침나절에 상제님께서 물으시기를 “아까 까치가 오더니 뭐라고 하고 가더냐?” 하시니 호연이 “오늘 저기 여수에서 뭐 가지고 온다네.” 하거늘 다시 “무엇을 갖고 온다냐?” 하시매, 호연이 “해물 갖고 온대요. 그리고 돈은 조금 갖고 오는데 내놓으려니 여비가 없고 해서 줄까말까 한대. 그런 돈은 받지 마요. 또 내일 아무개가 새를 잡으면 그 어미 새가 애타니까 못 잡게 해요.” 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어디 네가 맞추는가 보자.” 하시며 엉덩이를 두드려 주고 나가시더니 낮이 되매 영락없이 여수에서 아무개가 미역 한 동을 가지고 오더라.
포장 끌러라
또 이튿날 새울음 소리에 밖이 소란하거늘 상제님께서 호연에게 “저 새가 뭐라고 하냐?” 하시니, 호연이 “어미새가 새끼를 내달라고 그러는구만.” 하고 대답하니라. 이 때 동네 아이가 움막 앞을 지나는데 보니 주머니에 새끼 새가 들어 있거늘, 호연이 “왜 새끼는 잡아서 주머니에다 넣었대요? 어미는 새끼를 내달라고 울고, 새끼는 죽을까 싶어 깔딱숨을 쉬는구만!” 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새를 날려 주게 하시고 밖에 나가셨다가 저녁때가 되어 술을 드시고 돌아오시어 호연에게 “냄새나는가 봐라!” 하시거늘, 호연이 “왜막실에서 누룩을 사다가 술을 해서 냄새나는 줄도 모르겠네.” 하니, 상제님께서 무릎을 치시며 “포장 끌러라!” 하시고 호연에게 “야아! 이제 내가 너를 보고 선생이라고 할 테니 그리해라!” 하시니라. 호연이 공부를 마친 이후로 총명하기 그지없어 ‘동네 아무개가 죽는다.’ 하면 죽고, ‘누가 들어온다.’ 하면 역시 그러하더라.
왜막실: 현재 전주시 우아동(牛牙洞) 아중 마을.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주둔했던 곳으로 통칭 ‘왜막실’로 불렸다. 종전 후에도 왜군들이 이곳에 남아 스스로를 왜막실 김씨 또는 전주 김씨라 자처하며 살았다
道典 4:64) 말을 못 하게 해야 하리라
상제님께서 을사년 9월 9일부터 호연에게 수도 공부를 시키시더니 병오(丙午 : 道紀 36, 1906)년 정월 보름에 이르러 공부를 마치게 하시니라. 호연이 이로부터 신명의 소리와 짐승의 말소리까지 다 알아듣고 누구에게나 보고 들은 대로 말을 옮기니
상제님께서 성도들과 무슨 말씀을 나누시다가도 호연이만 들어오면 “요것 듣는 데서는 말을 마라.” 하시니라. 하루는 형렬의 며느리가 상제님의 자리끼로 숭늉을 자배기에 담아 뒷문 밖에 두었는데, 난데없이 숭늉이 엎질러지니 사람들이 그걸 닦는다고 소란하거늘 호연이 이를 보며 웃음을 터뜨리는지라
상제님께서 “왜 웃냐?” 하시니 호연이 연신 웃어 대며 “쥐란 놈들이 와서 새끼가 ‘물이 많아서 못 먹겠다.’고 하니 어미쥐가 ‘발로 그릇을 눌러라. 엎질러서 땅으로 내려지거든 주워 먹어라.’ 하잖아요. 그런데 새끼라서 못 엎지르니 어미가 대신 해 주었는데 갑자기 물이 엎질러지니 쥐들은 들킬까 봐 도망가 버리고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걸 닦아 낸다고 저 야단인데 안 우스워요?” 하니라.
상제님께서 이야기를 들으시고 나서 걱정하시며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냥 두면 크게 일을 낼 것이니 벙어리를 만들까, 저걸 어쩔까? 우리가 죽고 없을 때에도 저렇게 쏙쏙 나서고 하면은 저것을 죽이지 살릴 것이냐? 제 어미, 아비에게는 복을 주겠다고 해서 딸을 데려왔는데, 저것을 가만 두면은 나발나발해서 제 생명도 없어질 것이니 못쓰고, 말을 못 하게 하자!” 하시니, 이후로는 호연이 듣고 본 것을 말하려고 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입이 안 벌어져 말을 못 하게 되니라.
짐승의 말소리까지 다 알아듣고: 짐승의 소리를 알아듣는 것을 ‘지음(知音)’이라 하는데, 지음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바로 용호대사 정북창이다.
자리끼: 밤에 잠자리에서 마시려고 머리맡에 준비해 두는 물.
道典 3:151) 수도 공부를 마치게 하심
상제님께서 호연에게 을사년 9월 9일에 수도 공부를 시작하여 병오(丙午 : 道紀 36, 1906)년 정월 보름에 공부를 마치게 하시니 움막에 들어간 지 꼭 125일 만이더라.
널 돌보는 사람이 생긴다
호연이 공부 기간 내내 무릎을 꿇은 자세로 있었으므로 종아리살과 허벅지살이 하나로 붙고 발가락이 얼어서 오그라져 버린지라
상제님께서 다리를 펴 주시고 주물러 주시니 괜찮아지거늘 “욕봤다.” 하시며 깨끗이 씻겨서 앉혀 놓으시고 “비록 내가 죽어서 너를 내버려도 네가 한탄 말고 살면은 개미가 살려도 살리느니라. 네가 죽어서 실래끼가 되어 내버려져도 개미라도 달라들어서 일으켜 세운다.” 하시니라.
이에 호연이 “어느 개미가 나를 살려?” 하니 “이제 봐라. 내 말이 씨가 되는가 안 되는가. 왕개미, 흰개미가 달라들어서라도 역사(役事)를 해서 너를 살린다. 천지에 이치가 있으니 자연히 널 돌보는 사람이 생겨. 내가 죽으면 영 죽는 것이 아니니 널 돌보마.” 하시니라.
돌보는 사람: 증산 상제님의 대도 경계를 있는 그대로 전하는 사명을 김호연 성도에게 붙이시어, 후에 큰 일꾼을 만나면 그것을 참되게 드러내어 전 인류가 그 공덕을 받들어 주게 할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道典 3:54) 가다 보면 어느새 공중에
상제님께서 호연을 데리고 자주 산제를 지내러 다니시니 어느 때는 호연을 옆구리에 끼고 넓은 강을 훌쩍 날아 건너기도 하시고, 번쩍 하고 산 하나를 순식간에 넘기도 하시니라. 하루는 호연이 상제님 품에 안겨서 길을 가는데 문득 “내려다봐라.” 하시므로 보니 어느새 공중을 날고 있거늘, 산과 들이 다 내려다보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개미만 하게 보이더라.
상제님께서 때로는 호연을 거미나 메뚜기, 매미 등으로 만들어 목과 어깨에 붙이고 다니시는데, 한번은 호연을 매미로 만들어 붙이고 가시니 아이들이 ‘매미가 붙었다.’며 잡거늘, 상제님께서 “이리 내라. 그 매미는 너희들이 가질 매미가 아니니라.” 하시고 옷자락 속에 넣고 가시다가 호연에게 “누구 오니 얼른 나와서 옷 입어라.” 하시므로 호연이 옷자락에서 빠져 나오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니라. 또 거미로 만드신 때에는 거미줄을 치게도 하시고, 여러 마리의 누런 벌레로 만드시어 사람들의 눈을 가려 공사의 내용을 못 보게도 하시니라.
거미나 메뚜기, 매미: “큰일 치르는 데 가면은 나를 진둥개(진드기) 같이로, 방에 누런 뭣이라고 하지? 방에 강구라고 있지? 누런 강구로 만들어 가지고는 사람 눈에다가 막 더덕이를 만들어, 못 보게. 아이고, 어쩌면 그렇게 하는지….”(김호연 성도 증언)
道典 3:62) 산과 신명과 인간
상제님께서 무주에서 공사를 마치시고 용담(龍潭)으로 가시어 용담 신명과 계룡산 신명, 무공산 신명을 불러 술을 권하시며 “술 한잔 마시고 놀아 봐라.” 하시거늘, 신명들이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을 해라.” 하고 일러 주시니라. 호연이 옆에서 지켜보다가 “어째 사람이 저렇게 생겼대요? 빨간하니 사람도 안 같아요.” 하거늘, 상제님께서 “이 다음의 장수라 그런다.” 하시니
호연이 “그런데 절반은 사람이고 절반은 짐승 같아요.” 하며 미간을 찌푸리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죽은 사람이 깨어나기가 그렇게 쉽냐? 몇 번을 둔갑해서 다시 생기는 것이니 그러지, 한번 떨어져서 썩은 사람이 그냥 일어나는 것인 줄 아냐, 이 소견아!” 하며 나무라시고, 신명들에게 “너희 가운데 누가 제일 힘이 딸리냐? 기운을 돋워야 하지 않겠느냐?” 하시거늘,
한 신명이 나서며 “차차 돋우지요.” 하니 말씀하시기를 “그렇지가 않느니라. 먹어서 금방 기운이 나는 것이 아니라 자꾸 활동을 하고 내가 개발을 해야 나는 것이니 어찌 가만히 먹고 앉아서 기운이 돋기를 바라리오! 어디 너희들끼리 들어 보아라.” 하시니라. 이에 신명들이 서로를 한 번씩 들어 보는데 용담 신명이 가장 기운이 세거늘, 말씀하시기를 “높은 데서 뚝 떨어지더라도 우뚝 서야지 자빠지면 못쓰고, 전쟁을 하다가 말에서 떨어져도 못쓰나니 어쩌든지 기운을 돋우어야 한다.” 하시니라.
용담(龍潭): 전북 진안군 용담면. 경주 용담과 구별하여 전라권에서는 ‘무주용담’이라 한다.
무공산: 김호연 성도의 증언을 그대로 채록한 것이지만 어느 산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상제님께서 공사 보시며 의도적으로 이름을 바꾸어 부르셨을 가능성도 있다.
道典 3:64) 공주에서 하루를 머무심
상제님께서 공주로 가실 때 호연을 보듬어 안고 가시다가 도중에 호연이 잠이 드니 허리띠를 끌러 업고 가시니라. 밤이 늦어서야 공주에 이르러 저녁진지도 드시지 못한 채 어느 집으로 들어가시니 마침 그 집에 쌀이 떨어져 밥을 짓지 못하거늘, 집주인이 수수를 끊어다가 방에서 다듬잇돌에 떨어 수수망세기를 만들어 올리니라.
호연이 이를 먹다 말고 나중에 먹으려고 수건으로 싸 두니 형렬이 “다 먹었으면 그냥 거기다 놓지, 뭘 그렇게 싸느냐?” 하고 핀잔을 주거늘, 상제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오히려 더 놓아주시니라.
어디라고 내 몸에 손을 대느냐
다음날 아침에 호연이 “쌀이 없어서 밥 못 하는가 봐요. 다른 데로 가요.” 하니 상제님께서 세수를 하시고 마당 한가운데 서서 허공을 향해 무어라 말씀하시거늘 잠시 후에 어떤 사람이 쌀 한 가마니를 지고 들어오니라. 상제님께서 주인에게 이르시기를 “어젯밤에 네가 밭에 가서 수수를 끊어다가 수수망세기 해 준 정성으로 내가 그냥 갈 수 없어 쌀 한 가마니를 주는 것이니 그런 줄 알아라.” 하시니
주인이 “그러면 진지를 드시고 가셔야지 이른 아침에 그냥 가십니까?” 하고 상제님을 붙들거늘, “네가 어디라고 내 몸에 손을 대느냐!” 하고 호통치시매 그 사람이 깜짝 놀라 손을 떼니라. 상제님께서 집을 나서시며 빙그레 웃으시니 형렬도 따라 웃으니라.
道典 3:77) 어린 호연을 귀애하심
상제님께서는 어린 호연을 무척 귀애하시니 매양 “입에서 냄새날까 무섭다.” 하시며 소금으로 호연의 이를 닦아 주시고, 소금이 없으면 가는 모래로 닦아 주시며 손톱과 발톱을 친히 이빨로 끊어 주시고, 개울에 데리고 가시어 씻겨 주시고 머리도 빗겨 주시니라. 또 출타하실 때는 제일 먼저 호연이부터 대소변을 누이고 씻기신 뒤에 옷을 입혀 채비를 마치시고, 나가시면 주로 호연을 안거나 업고 다니시는데
호연이 업혀 갈 때면 등에서 종종 잠이 드니 항상 수건을 두세 장씩 가지고 다니시며 잠든 호연을 씻겨서 깨우시니라. 호연이 똥을 누러 뒷간으로 가면 상제님께서 짚을 돌멩이로 찧고 손으로 비벼서 보드랍게 만들어 밑을 닦아 주시고 물로도 씻어 주시며 호연을 두고 출타하실 때는 “똥 마렵거든 빼어서 써라.” 하시고 보드랍게 만든 짚을 뒷간 문틈 사이에 끼워 두시니라. 간혹 호연이 ‘눈이 아프다.’고 투정을 하면 상제님께서 혀로 핥아 주시는데 그러면 금세 시원해지며 아픈 것이 나으니라.
道典 3:104) 먹을 것 싸 들고 다니는 호연이
상제님께서는 먹을 것이 생기면 무엇이든 늘 호연에게 맡겨 놓으시니 호연이 보자기에 싸서 들고 다니다가 함께 나누어 먹곤 하니라. 호연이 음식 꾸러미를 들고 가다가 “나 다리 아퍼 못 가!” 하고 상제님께 기대면 상제님께서 ‘이것 먹어라, 저것 먹어라. 저만치 가면 내가 업고 가지. 저만치 가면 보듬고 가지.’ 하며 달래어 데리고 가시는데, 호연이 그만큼 가서 다시 업어 달라고 하면 또 앞서시며 “이만치 오면 업고 가지.” 하시어 그제야 업어 주시니라.
호연이 업혀 갈 때 보자기 든 손을 앞으로 하니 꾸러미가 흔들려 상제님의 눈앞을 가리거늘, 상제님께서 “아, 그놈의 것 내버려라.” 하시니 “안 내버려. 가서 먹어야지.” 하며 더욱 꼭 쥐고 가니라.
道典 3:114) 미움 받은 호연이
상제님께서 호연을 형렬의 배필로 정해 주신 뒤로 형렬의 큰며느리가 ‘늙어빠진 시아버지가 어린 첩을 얻었다.’며 호연을 더욱 미워하고 시기하거늘, 상제님께서 형렬의 집에 호연을 두고 출타하실 때면 큰며느리가 호연을 굶기기도 하고 심사를 부리는 일이 많더라. 갑진년 섣달에 상제님께서 왕골로 호연의 신을 삼아 오색물을 들여 주셨는데, 큰며느리가 그 신을 몰래 가져다가 호연의 이름을 쓰고 바늘을 열십자로 찔러서 시궁창에 버리거늘
상제님께서 이를 아시고 한 성도에게 “저기 정자나무 밑 또랑에 가서 신을 빼 오너라.” 하시니 그 성도가 의아해하며 “거기에 무슨 신이 있어서 빼 와요?” 하고 여쭈는지라 상제님께서 “호연의 신이 거기에 있으니 어서 빼 오너라.” 하고 명하시니라.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니라
그 성도가 상제님께서 이르신 곳에 가서 호연의 신을 찾아오니 호연이 울먹이며 “내가 부모가 없어, 우리 집에 먹고살 것이 없어? 어째 날 데려다 놓고 이 모양으로 해요?” 하며 상제님께 따져 묻거늘, 형렬이 이를 보고 크게 노하여 절굿공이를 들고 닥치는 대로 살림살이를 때려 부수고 장독까지 모두 깨니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니라.
“시애비가 나를 첩으로 얻은 줄 알어: 나를 제칠라고 심사를 부려싸코.”, “(선생님이)‘고런 암기는 들었고만.’ 그러면서 참원이(찬문이) 각시를 미워했어.”(김호연 성도 증언)
道典 3:142) 어린 호연에게 열매를 따다 주심
상제님께서 호연을 데리고 산에 가시면 “이것이 아그배다.”, “이것이 다래다.” 하시며 열매들을 일러 주시고 밖에 다녀오실 때는 종종 대추며 감이며 아그배 등 별의별 것을 다 가져오시어 호연에게 주시니라. 한번은 산에 가시어 다래를 덜 익은 것, 익은 것 가리지 않고 훑어서 저고리 소매를 묶어 그 안에 넣어 오시거늘, 호연이 “그거 뭐하려고 그래요?” 하니 “아, 시나브로 익어 몰랑몰랑하면 너 먹으라고.” 하시는지라
호연이 “나 이가 이렇게 있는데 이 없을까 봐?” 하니 말씀하시기를 “너나 되니까 내가 생각해 주지.” 하시니라. 또 한번은 맹감 익은 것을 싹싹 비벼서 가져오시어 “이건 시고도 떫어. 빨가니 앵두같이 좋아서, 너 같아서 내가 가지고 왔어.” 하시니 호연이 “참, 별것을 다 가지고 왔네.” 하거늘 상제님께서 “아이구, 우습다! 이런 것 다 따먹고 다니니 좋다, 잉?” 하고 웃으시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호연아, 이게 내 선배다.” 하시니 호연이 “아, 더 알면 아는 것 조금 가르쳐 주세요.” 하거늘, 상제님께서 그저 빙긋이 웃고 마시니라.
매실을 따 오심
하루는 상제님께서 산에 가셨다가 매실 세 개를 따 오시어 물에 씻으시며 “요놈 두었다 익으면 호연이 너 줄게.” 하시니 호연이 “시어서 안 먹어.” 하거늘, 상제님께서 “너 신 것이 무엇인 줄 알어?” 하시매 “초가 시지 뭐.” 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이게 골이여, 골!” 하시고 “신 것은 무엇이고, 떫은 것은 무엇이다.” 하시며 맛의 이치에 대해 조목조목 알려 주시니라. 상제님께서는 신 것을 좋아하시어 평소 석류나 매실, 모과 등을 잘 드시니라.
道典 3:143) 내가 저것이라야 말벗이라도 한다
상제님께서는 나이 어린 호연에게 항상 임의롭게 대하시니라. 하루는 호연이 빨간 바리때에 밥을 비벼서 “아이고, 맛나라. 이것 잡숴 볼래요?” 하니, “네가 비볐으니 한번 먹어 볼까? 한 술 떠 넣어라.” 하시거늘, 호연이 “손 뒀다 뭐 하려고 떠 넣으래?” 하는지라 “저 녀석, 내가 저것이라야 말벗이나 한다니까.” 하며 웃으시니라.
상제님께서는 좀처럼 웃지 않으시나 형렬, 호연과 함께 계실 때는 항상 정겹게 말씀을 나누시며 스스럼없이 잘 웃으시니라. 그러나 성도들 앞에서는 웃으실 때도 수건으로 입을 가리시니 성도들이 서로 이르기를 “조그만 아이를 데리고는 저렇게 재밌게 말씀하시며 웃음으로 날을 보내시는데, 우리들하고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왜 호랑이가 되시냐?” 하며 불평을 하니라.
호연이 함부로 말하는 것을 경계하심
상제님께서 형렬과 호연을 자주 데리고 다니며 공사를 행하시니 구릿골에 돌아오면 성도들이 살며시 호연을 불러내어 “선생님께서 나가서 뭐라 하시더냐? 어찌하셨냐?” 하고 자꾸 물어대거늘, 호연이 밖에 나가려 하면 “나가지 말고 여기 앉아 있거라.” 하시며 도로 앉히시니라.
道典 3:25) 호연에게 붙이신 후천선경 진법맥 도수
하루는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선매숭자가 있어야 사느니라. 호연에게 선맥을 전하리라.” 하시고, 호연을 천지에 제(祭) 지내시며 “천지 천황에 천제(天祭) 지낸다. 맥을 전해 주자! 선맥을 전해 주자!” 하시고 여러 가지 글을 쓰시니라. 다시 ‘혈맥관통(血脈貫通)’이라 써서 불사르시고, 큰 음성으로 “혈맥관통이다!” 하고 소리치시거늘, 그 소리에 응하듯 사방에서 천둥과 우레가 일더니 이내 폭우가 쏟아지니라.
상제님께서 제를 마치시고 호연에게 이르시기를 “너에게 선맥을 전해 줬으니 너를 찾을 사람이 있다. 죽어도 증인이 있어야 한다.” 하시고, “천지에서 너를 부르는 날이 있다. 죽지 말고 살아라.” 하시니라.
선맥(仙脈)을 전하리라: 가을개벽을 맞이하여 인류가 새 생명으로 거듭 태어나도록 김호연 성도에게 붙이신 공사가 선매숭자(仙媒崇子)도수다. 호연으로 하여금 선천문명에서 후천 선(仙) 문명으로 매개하여 인류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진법 도맥을 열어 주신다는 말씀이다.
“천지에서 부르는 날이 있다고 한게 몰라, 어디서 그럴랑고. 나 시방 부르기만 기다려.”(김호연 성도 증언)
道典 3:152) 나를 보면 그렇게 좋으냐
성도들이 모이면 서로 상제님 곁에 가까이 앉고자 하니 상제님께서 “패 사냐, 이놈들아? 무슨 나래비 서냐?” 하고 웃으시니라.
또 상제님께서 진지를 드시다가 밥을 남기시면 서로 먹으려 하고, 간혹 의관을 정제하실 때는 서로 옷을 입혀 드리고 싶어 야단이더라. 성도들은 상제님께 꾸중을 들으나 안 들으나 그저 상제님만 계시면 좋아하는데, 하루는 한 성도가 막대기로 콩단을 두드리니 성도들이 기분이 좋아서 춤을 추거늘 상제님께서 “저놈들 왜 저러냐?” 하고 물으시매
호연이 “선생님이 계시니 좋아서 그러지요.” 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허어! 나를 보면 그렇게 좋으냐?” 하시니, 호연이 말하기를 “아, 그렇지 않겠어요? 동구 밖이 훤한데 날이 새지 않겠어요?” 하거늘, 상제님께서 “네가 해석을 해 줘라.” 하시니 “선생님이 시켰다고 하니 안 해 줘.” 하는지라 상제님께서 웃으시며 “저것이 여시인가 무엇인가 모르겠다!” 하시니라.
道典 3:160) 지게를 대신 져 주심
가을 추수기가 되어 한창 곡식을 거둬들이는데, 하루는 어떤 사람이 지게에 나락을 한가득 싣고 힘겨워하며 오는지라 상제님께서 손가락을 한번 튕기시니 그 사람이 지게를 진 채로 벌러덩 넘어지거늘, 상제님께서 나락을 대신 져다가 그 사람의 집에 쌓아 주시니라.
너는 내 속 몰라
하루는 밤에 어디를 가셨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돌아오시니 호연이 그 이유를 여쭈거늘, 말씀하시기를 “밤새 나락을 싹 베어서 깔아 놓고 왔다.” 하시니라. 이에 호연이 “왜 남의 일을 그렇게 해 줘요?” 하니 “머슴이 안타깝고 불쌍해서.” 하시거늘, 호연이 대수롭지 않게 “그런 쓸데없는 것은 뭣하러 해요?” 하니 말씀하시기를 “너는 나 몰라. 내 속 몰라. 내가 천지를 주름잡고 다니는 사람인데….” 하시니라.
너는 내 속 몰라: 이 대우주 지존의 하늘 보좌에서 인간으로 내려오시어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며 머슴과 산판꾼 생활까지 하신 상제님! 온갖 고난을 겪으신 상제님의 창생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절감하게 하는 말씀이다. 깊은 고난 속에 진리의 별은 반짝인다.
道典 3:172) 천한 노릇 대속 공사를 보심
정미(丁未 : 道紀 37, 1907)년에 하루는 상제님께서 어디를 가셨다가 얼굴에 검정물과 빨강물을 잔뜩 바르고 방으로 들어오시니 마치 광대처럼 보이거늘, 호연이 “아이구, 왜 저런대? 왜 그리 광대질을 했어요?” 하니 “광대는 무슨….” 하고 별 말씀을 않으시니라. 호연이 다시 “왜 그렇게 시꺼머니, 삘그러니 해 가지고 그래요?” 하니, 말씀하시기를 “누가 시집을 가길래 내가 대신해서 ‘우리 누님 시집간다.’고 소리치며 천한 노릇 하고 왔다.” 하시거늘,
호연이 “어쩌면 천한 노릇을 한다고 얼굴에다가 꺼멍을 바르고 빨강물을 친대요?”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호강스런 큰애기가 시집을 가면 제 오라비가 그렇게 장난꾸러기로 그런단다. 그래서 내가 대신 오라비 노릇 하려고 그러고 갔다.” 하시니라. 이에 호연이 “누구네 집이에요?” 하니 “뉘 집인지 몰라.” 하시거늘,
다시 “그러면 시집가는 데 가서 광대 치르고 왔으면서, 나 먹을 것도 안 갖다 줘?” 하는지라 상제님께서 “그럼 지금 갈거나?” 하시니 호연이 “그려, 가!” 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그럼 내 골마리 속으로 들어가라.” 하시니 “내가 골마리 속으로 들어가면 걷지도 못할 텐데?” 하거늘, 상제님께서 “들어가라 하면 들어갈래?” 하시니 호연이 “그럼!” 하는지라
상제님께서 먼 데를 보고 웃으시며 “요것이 나를 잘 놀려먹으려 한다니까. 들어가라고 하니 들어간다고 하는 것 봐! 들어가서 또 누구를 죽이려고, 네가?” 하시니라. 이에 호연이 “어쩌긴 뭘 어째, 잘못하면 고추를 배배 틀지.” 하니 상제님께서 “뭔 고추가 거기에 가 달렸간디?” 하시거늘 “그 속에 고추 있다니까 그러네.” 하는지라 상제님께서 크게 웃으시며 “언제는 강아지라고 하더니 이젠 고추라고 하네.” 하시고, “호연아, 야야! 너하고 태운장하고 앉았으면 웃음이 절로 난다.” 하시니라.
道典 3:240) 나도 어려서 배고팠느니라
하루는 호연과 함께 길을 가시다가 끼니때가 되어 상제님께서 “호연아! 오늘은 또 어떻게 해야 배때기를 채울거나.” 하시니, 호연이 상제님의 용안만 빤히 쳐다보며 “나는 선생님만 바라고 가요.” 하거늘 “나도 너만 바라고 간다.” 하며 웃으시니라.
상제님께서 잠시 아무 말씀도 없으시더니 말씀하시기를 “나도 어려서 무척 배고팠느니라. 그렇게 고생을 하고 애를 써야 제가 잘되는 것이지, 호의호식으로 잘먹고 그냥 잘되는 놈이 어디 있다더냐? 그러니 너도 배고프다 마라.” 하시니라.
배때기를 채울거나: 상제님께서 쓰신 육두문자 그대로다. 이 한 말씀으로 인간으로서의 상제님 생애를 그릴 수 있다. “굶기도 퍽 굶었네. 집도 절도 없는 데에 가면, 참으로 한데에서도 많이 자고.”(김호연 성도 증언)
道典 3:270) 호연아! 할애비 같은 놈도 네게 무릎 꿇는다
무신년 가을에 형렬이 집 마름이던 김덕찬, 백일남 등과 함께 나락을 거두러 논으로 나가며 무어라 쑤군거리거늘, 호연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사뭇 궁금하여 상제님께 다가가 “태운장 어른이 덕찬이 아저씨하고 뭐라고 얘기를 한대요? 어디, 우리 선생님은 그리 안 할 테지요?” 하고 여쭈니 상제님께서 “야야, 너보고 그러는데, 내가 너를 속였단다.” 하시니라.
이에 호연이 “뭣을 속여요?” 하니 상제님께서 호연의 두 손을 꼭 잡으시며 “그것은 상관 말아라. 우리 공부속으로 너를 그렇게 했지, 그이 벗하라고 가는 것이 아니여. 형렬은 나이가 많고 너는 어린데, 무슨 마누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도속으로 하는 일이여.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우리는 우리니까 걱정 말아라.
네가 어리다고 해도 앞으로 할애비 같은 놈들도 다 너에게 무릎 꿇고 그려.” 하시니라. 하루는 형렬이 아뢰기를 “지금 제 아내가 병이 많고 살림살이를 감당하기가 어려우니 허락하여 주신다면 다시 한 사람을 얻어 처로 삼고자 합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허락하시니라.
형렬의 아내: 장수 황씨(長水黃氏, 1858∼1927). 용진면 용암리에서 시집을 와 용진댁이라 불렸으며 형렬과의 사이에 3남 3녀를 두었다. 무오생으로 김형렬 성도보다 네 살이 많다.
道典 3:298) 충청도 연산에서 보신 도성덕립 공사
봄에 충청도 연산(連山)에 가시어 머무르실 때 하루는 상제님께서 도복을 입으시고 홍포선(紅布扇)을 드신 채 일산을 받치게 하시어 백마를 타고 나서시니 그 모양이 마치 새신랑 같더라. 호연이 반짝반짝 윤이 나는 상제님의 눈썹을 보고
“선생님 눈썹에 엿 발랐어요?” 하니 상제님께서 “엿 발랐으면 너 핥아먹어라.” 하시니라. 호연이 “왜 그러고 나선대? 어디로 장가가요?” 하니
상제님께서 “저어리!” 하시며 일러 주지 않으시니라. 이에 호연이 “저리 어디로 가요? 가서 떡도 얻어먹고, 국수도 얻어먹게 가르쳐 줘야지.” 하니 말씀하시기를 “너 따라오면 내가 망신을 당하니 오지 말아야 혀.” 하시는지라 호연이 다시 “어디로 가길래 망신을 당해요?” 하고 묻는데 대답지 않고 떠나시거늘, 형렬에게 “어디로 간대요?” 하니
이르기를 “네 눈으로만 그러지 지금 여기에 앉아 계신다.” 하니라. 호연이 “아까 말 타고 요리 갔는데?” 하니 “네가 잠깐 봉사되었어. 네 뒤에 계신다.” 하거늘, 호연이 빙글빙글 돌며 “어디에 있어요? 어디에 있어요?” 하고 찾으매 형렬이 “저쪽.” 하고 가리키니 그쪽에서 “하하하!” 하며 웃으시는 소리가 나더라. 호연이 “아까 말 타고 갔는데, 떡 얻어먹으러 갈까 봐 그냥 왔네!” 하니 “어린 저것 데리고 무엇을 할 것이냐?” 하시는 상제님의 음성만 들릴 뿐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아니하거늘,
호연이 더욱 애가 타서 “어디에 가 있어요? 선생님! 나 쪼께 뵈 줘요.” 하고 애원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너 숨바꼭질하냐? 내가 네게 뵈 줘? 안 보여 주지!” 하시니 호연이 “그럼 어쩔라구? 나 여기다 내버리고 가려고?” 하거늘, 상제님께서 “네 쌈자리 왔어.” 하시니라. 호연이 “내 쌈자리는 전주고, 여기는 우리 부모님 고향이지.” 하니, 상제님께서 “저것이 제법 영리하다니까!” 하시며 그제야 모습을 드러내시니라.
道典 4:24) 호연을 데리고 어느 섬에 가시어 공사 보심
이 해 어느 날 상제님께서 호연을 데리고 형렬과 함께 어느 섬에 가시어 공사를 보시니 산에 오르시어 먼저 손으로 땅을 깊이 파신 뒤에 바닥에 종이 한 장을 까시고 조그만 단지를 올려놓으시니라. 또 그 옆에 세 군데를 실로 동여맨 명태를 놓으시고 이어 단지 안에 두부 세 조각과 손바닥 반만 한 크기로 썬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각 석 점씩 넣으신 다음, 술을 한 되 조금 못 되게 부으시고 ‘月(달 월)’ 자와 또 한 글자를 쓴 종이로 덮으시어 다시 그 위를 흙으로 덮으시니라.
상제님께서 단지 묻은 옆에 앉아 동쪽을 바라보시며 한참을 무어라 말씀하시는데 호연이 이를 알아듣기 어려워 “나 좀 듣게 하지.” 하거늘, 상제님께서 “아직 너는 가르쳐 줘도 몰라. 커야 알지.” 하시며 가르쳐 주지 않으시니라. 또 호연을 무릎에 앉히시고 “동쪽 하늘을 쳐다보라.” 하시매, 호연이 보니, 고래 같기도 하고 염소 같기도 한 여러 모양의 구름이 떠 있거늘
상제님께서 구름을 가리키시며 “저 흰 구름은 나다. 붉은 구름은 형렬이고, 청구름은 ○○다. 동으로 청구름, 백구름, 홍구름이 서로 다투거든 쳐다봐라.” 하시니라. 이에 호연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계속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상제님께서 느닷없이 “아, 우리가 그쪽에서 안 했냐?” 하시므로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다른 산으로 와 있는지라 호연이 놀라 “요것이 아까 그 산 아니여?” 하고 여쭈니
상제님께서 “어디 거기에 있냐? 저기를 쳐다봐라, 저기!” 하시므로 보매 분명 다른 산이더라. 상제님께서 저쪽 산에서 하신 것과 같이 땅에 단지를 묻으신 후 “그냥 두면 짐승이 빼먹는다.” 하시며 넓적한 돌로 단지를 눌러놓으시고 그 위에 작은 돌멩이로 글씨 모양을 취해 놓으시거늘 호연이 보니 한 자는 달 월 자요 한 자는 잘 모르겠더라. 이에 호연이 “이게 무슨 자여?” 하니 말씀하시기를 “너는 가르쳐 줘도 몰라. 그리고 지금 너한테 가르쳐 주면 입에 익어서 나중에 못 알어. 그러니 내가 나중에 가르쳐 줄게, 암말도 말고 따라댕겨라.” 하시니라.
道典 4:25) 이제 이런 데서 사람이 나온다
상제님께서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시며 이 같은 공사를 행하실 때 항상 고기 썬 것과 단지 등을 가지고 다니시거늘 호연이 이를 보며 “이런 걸 뭐 하려고 귀찮게 들고 다니는가 몰라.”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이런 것 하려고 다니지 뭣 하러 댕기냐.” 하시니라. 이에 호연이 “여기다 이런 걸 묻으면 뭣 한다요?”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이제 이런 데서 다 사람이 나온다. 이것이 그 표적이다.” 하시니라.
道典 4:26) 너를 천하에서 부를 때가 있다
하루는 호연이 “뭣 하러 나를 데리고 다녀요?” 하고 여쭈니 상제님께서 “조그마한 동자인 너를 앞세워 다니는 것은 쓸데가 있어서 그려.” 하시거늘, 다시 “어디다가 써?” 하니 “너는 몰라도 나는 쓸데가 있어서 너를 데리고 댕겨. 귀찮은데 내가 뭣 하러 너를 데리고 다니겠냐?” 하시니라. 이에 호연이 “어디다가 써, 어디다가 써? 헝겊이라서 무엇을 써? 어디다가 무엇을 하려고 그래?” 하고 보채니 상제님께서 “아, 그것 몹시 성가시게 하네. 인제 너를 천하에서 부르도록 내가 가르쳐 줄게.” 하시니라.
용이 중간에서 비를 주듯이 네가 그런다
호연이 “무엇을 가르쳐 줘? 가르쳐 줄 것을 말해야지!” 하니 “인제 너를 천하에서 부를 때가 있어.” 하시거늘, 다시 “천하에서 나를 뭐 하려고 불러? 어떻게 불러? 아, 어떻게 불러~?” 하며 매달리니 “요녀석아! 저 하늘이면 하늘에서 비 오는 줄 아냐? 중간에서 오는 것이다.” 하시니라. 이에 호연이 “중간에서 또 어떻게 와?” 하며 계속 조르니 말씀하시기를 “뱀이 용이 되어 하늘 중간에서 바닷물을 써 올려서 비를 내리지, 어디 하늘에서 내리는 줄 아냐? 그처럼 앞으로 네가 그런다는 것이다, 이 멍청아!” 하시거늘, 호연이 뾰로통해져서는 “내가 어떻게 알아?” 하고 퉁명스럽게 답하니라.
상제님께서 “네가 그렇게 멍청해서 어쩔거나?” 하시며 호연을 한 대 쥐어박으시고는 “아프냐, 안 아프냐?” 하고 물으시니 호연이 “그러면 때리는데 안 아퍼? 내가 한번 때릴게 아픈가 안 아픈가 봐!” 하고 대들거늘, 상제님께서 웃으시며 “나는 때려도 너는 때리지 못혀.” 하시니라. 호연이 약이 올라 커다란 막대기를 주워 와서는 “나도 때릴 테여!” 하고 씩씩거리거늘 상제님께서 “내가 그걸로 때렸냐, 너를?” 하고 웃으시니 호연이 “안 아픈게 날 때린 것 아녀?” 하며 달려드는지라 상제님께서 호연을 보듬으시며 “아프라고 때리지, 그럼 안 아프라고 때리간디? 아퍼야 다시는 그리 안 하고 말을 듣지.” 하며 달래 주시니라.
상제님께서 어린 호연을 5세 때부터 무릎에 앉혀 천지공사에 참여시키시고, 공사보시는 곳마다 안고 업고 다니시며 공사 현장을 직접 목격하게 하심에는 새 하늘 새 땅을 여는 진실로 중요한 여러 섭리가 깃들어 있다. 그 가운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돌하고 순진무구한 소녀 호연으로 하여금 상제님 대도의 진법을 여는 제3변 추수도운의 지도자에게 어린이의 순수의식에서 보고들은 대로 일체의 조작없이 9년 천지 공사를 증언토록 함으로써, 전 인류에게 상제님의 체취와 조화옹 하느님의 참면모를 선포하는 진리의 증언자 사명을 붙이신 것이다.
道典 5:145) 호연을 데리고 다니실 때
상제님께서는 아침나절에 서울에 계시다가도 잠시 후 대구에 계시고, 또 저녁에는 다른 나라에 가 계시니 그 행보를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더라. 상제님께서 호연을 데려가기 곤란한 곳이나 사람이 많은 곳에 가실 때는 호연을 거미로 만들어 “꽉 붙어 있어라.” 하시며 겨드랑이 밑이나, 턱밑, 귓속, 옷 속 등에 딱 붙이고 다니시는데,
이 때 상제님께서 공사 보시며 하시는 말씀과 다른 사람들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다만 상제님께서 호연에게 하시는 말씀과 곁에서 성도들이 “거미야, 거미야, 왕거미야!” 하고 부르는 소리만 들리더라. 상제님께서 거미가 된 호연에게 붓으로 눈과 입을 그려 주시면 눈이 떠지고 입이 벌어져서 말도 하고 음식도 먹을 수 있는데, 호연이 길을 가다가 뒤가 마렵다고 하면 옆구리로 똥이 나오게 하시고 나온 똥과 오줌은 저절로 없어지게 하시니라.
또 때에 따라 호연을 강아지로 만들어 안고 다니시고, 방아깨비로도 만들어 붙이고 다니시며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동물로 만들어 온갖 동물 나라에 데려가시니라. 하루는 호연이 “재주가 이렇게 많은데 무엇 때문에 자주 굶고 다녀요?” 하고 여쭈거늘, “열두 가지 재주 있는 놈이 하루아침에 굶는단다.” 하며 웃으시니라.
또 때에 따라 호연을 강아지로 만들어 안고 다니시고: “나를 강아지마냥으로 만들어. 저 강아지 새끼마냥으로 뽈뽈 기어가면 (중략) 다른 사람 눈으로는 내가 거미로도 뵈고, 강아지로도 보이고, 다른 짐승을 만들었으니 길로 다녀도 누가 시비도 안 하고.”(김호연 성도 증언)
道典 5:152) 선매숭자 도운의 개척 정신
상제님께서는 종종 호연을 거미로 만들어 거미줄을 치게 하시는데 그 때마다 거미줄의 모양과 크기가 다 다르니 호연이 거미가 되어 줄을 칠 때면 상제님께서 계속 지켜보시며 줄 치는 방향과 줄의 수를 일러 주시니라. 하루는 호연이 나뭇가지 위에서 분주하게 거미줄을 치는데 상제님께서 연신 손가락으로 가리키시며 “덜 쳤다, 덜 쳤어. 요리 쳐라. 저리 쳐라. 욜~!” 하고 명하시거늘,
호연이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힘이 드는지라 옆 가지로 옮겨 가서 꼼짝도 하지 않으니 상제님께서 “너 팽졌냐?” 하시며 밑으로 내려오게 하시니라. 이에 호연이 나무 밑쪽으로 내려오자 순식간에 다시 사람으로 변하더라.
호연을 거미로 만들어 공사 보심
평소 상제님께서 호연을 여러 가지 동물로 만들어 공사 보시는 것을 형렬만 알 뿐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하니
혹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으면 상제님께서 호연만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로 말씀하시니라. 하루는 거미로 변한 호연에게 상제님께서 나뭇잎 피리를 불어 말씀하시거늘, 사람들에게는 그저 ‘삑, 삐이익, 삑~!’ 하는 피리 소리로 들리나
호연에게는 “남서쪽, 북쪽, 어느쪽.” 하고 명하시는 말씀으로 들리더라. 호연이 거미줄을 다 치고 나니 상제님께서 “얼른 내려와라.” 하시며 손바닥을 펼치시거늘, 호연의 몸이 순식간에 상제님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더라.
이 때 호연의 심정.
문) “사람도 엄청 커 보이고 그래요?”
답) “그럼. 참말로 무섭게 보여. 그래갖고는 대체나 시키는 대로 했어. 아이고, 답답한 건 이루 말할 수가 없지.”(김호연 성도 증언)
道典 4:27) 조화대권을 쥐고 계신 상제님
하루는 상제님께서 밖에 나가고 안 계실 때 죽어 가는 병자가 찾아오니 호연이 공주(公州)에서 상제님의 명에 따라 손가락에 경면주사(鏡面朱砂)를 묻혀 인당과 명치를 찍어 사람 살린 일이 생각나서 그대로 행하매 병자가 다시 살아나거늘, 돌아오신 상제님께 자랑을 하니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벌써 기적을 받는다.” 하시며 크게 웃으시니라.
이후로 사람들이 ‘누가 아프다.’고 하여 여러 번 호연을 찾거늘, 상제님께서 이를 아시고 그 때마다 기운을 거두시니 말을 잘 하다가도 갑자기 벙어리가 되어 하지 못하게 되니라.이와 같이 무슨 조화라도 상제님께서 허락하셔야 하지, 못 하게 하시면 아니 되더라.
“딱 거두어 버리고 안 돼, 말을. 벙어리가 돼 버려. 내둥 말하다가도 벙어리가 돼 버려 못 해. 참말로 요상해.”(김호연 성도 증언)
道典 4:36) 태백산에서 형렬을 살려 주심
상제님께서 여러 산을 다니시며 많은 공사를 행하시니, 크고 높은 산일수록 더 찾으시고 그 산의 폭포 밑을 가기도 하시니라.
갑진(甲辰 : 道紀 34, 1904)년 초봄에 상제님께서 형렬과 호연을 데리고 각처를 돌아다니시다가 하루는 태백산에 오르시니 산에 눈이 살짝 덮여 있더라.
상제님께서 공사를 보시던 중에 갑자기 형렬을 향하여 이쪽으로 오라는 듯 손짓을 하시는데 형렬이 어리둥절하여 그대로 서 있거늘, 호연이 “바로 서래요!” 하고 소리치매 그제야 알아듣고 상제님 쪽으로 한 발을 옮겨 놓으니 그 순간 큰 바위가 형렬의 뒤로 벼락같이 굴러 떨어지니라.
道典 4:37) 나무 위에서 보신 공사
상제님께서는 나무를 잘 타시니, 하루는 큰 나무 꼭대기에 오르시어 금방 까마귀로 변하시고 다시 까치로 변하시니라. 또 나무 사이를 자유롭게 날아다니시며 새소리를 내시거늘 호연이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래요?” 하니 “너는 떨어져도 나는 안 떨어진다.” 하시며 계속 날아다니시니라. 이에 호연이 “그러면 나 보듬고 다녀요!” 하고 조르니 “데리고 다니다가 너 빠지면 죽어.” 하고 타이르신 뒤에
더 높은 가지로 올라가시어 “너 거기 있냐? 거기 있냐?” 하고 부르시거늘 호연이 골이 나서 대답을 하지 않는지라 상제님께서 “대답 안 하면 못쓰지. 그러면 너 맛난 것 안 사 준다.” 하시니 호연이 마지못해 대답하니라. 또 상제님께서 나뭇잎을 뜯어 피리를 부시니 형렬이 나무 아래에서 그 소리를 받아 상제님의 옥단소를 부니라.
道典 4:38) 산마다 두드리시면 큰 악기 소리가 나더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대공사를 보시며 “칠보산에서는 봉황새가 나오고, 백두산에서는 학이 나오고, 또 ○○산에서는 ○○새가 나온다.” 하시니라. 또 오르시는 산마다 손으로 ‘똑똑똑’ 하고 두드려 보시는데, 그러면 산 속에서 ‘팽팽’ 소리가 나기도 하고, 장구소리, 양금소리, 북소리 등 악기 소리가 나기도 하더라.
상제님께서 호연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지개벽을 당하였을 때 장수들이 나오는가, 그 귀추(歸趨)를 보느라고 그런다.” 하시며 그 뜻을 일러 주시고 이 밖에도 종종 “내가 무엇 하러 왔다, 무엇을 하러 왔다.” 하시며 공사 내용을 말씀해 주시니라.
너는 이 다음에 뜰 사람
호연이 조금 전 소리가 났던 자리에 가서 뚜드려 보며 흉내를 내니 상제님께서 “너, 거문고는 잘 뜯것다.” 하시거늘, 호연이 “나 거문고 하나 사 줘!” 하며 떼를 쓰는지라 상제님께서 “못쓰지, 내가 생각이 있으니 너를 안 사 주는 것이다.” 하고 타이르시니라. 이에 호연이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하고 여쭈니 대답하시기를 “그것을 잘해서 명창이 되면, 네가 양반의 노리개가 되어서 불려 댕겨.
네가 천하의 ○○으로 앉을 판인데 그래서야 쓰겠냐? 지금은 천해서 이러지, 천지에 제(祭)를 지냈으니 너는 이 다음에 뜰 사람이여. 네가 아는 체하는 통에 어느 귀신이 잡아갈지 모르니, 그런 것 가르쳐서는 안 되게 생겨서 네 글도 싹 씻어 가지고 간다.” 하시니라.
산마다 손으로. “산이 높을수록 그이가 거기서 산에 한번 요렇게 ‘똑똑똑’ 뚜드려 봐. 아 이런 사람은 손이 깨지지 소리가 나?” (김호연 성도 증언)
道典 4:39) 천지신명들이 다 손을 잡느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개벽이 될 때에는 온 천지에 있는 신명들이 한꺼번에 손을 잡고 나의 명을 따르게 되느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병겁이 밀려오면 온 천하에서 너희들에게 ‘살려 달라’고 울부짖는 소리가 진동하고 송장 썩는 냄새가 천지에 진동하여 아무리 비위(脾胃)가 강한 사람이라도 밥 한 술 뜨기가 어려우리라.” 하시니라.
道典 4:42) 산운(山運)을 옮기심
하루는 공사를 행하실 때 “백두산의 기운을 뽑아 제주 한라산(漢拏山)에 옮기고, 덕유산에 뭉쳐 있는 기운을 뽑아서 광주 무등산(無等山)으로 옮기고, 금강산의 기운을 뽑아 영암 월출산(月出山)으로 옮긴다.” 하시니 한 성도가 그 이유를 여쭈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백두산에 천지(天池)가 있고 한라산에도 못이 있으며, 금강산이 일만 이천 봉이요 월출산도 일만 이천의 기운이 있음이로다.” 하시니라.
백두산의 수기를 돌리심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조선이 동과(冬瓜)의 형체인데 뿌리에 수기(水氣)가 고갈되어 이제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백두산이 근본처이므로 그곳에 가서 수기를 돌리고 오리라.” 하시니라.
영암 월출산: 전남 영암군 영암읍과 강진군 성전면의 경계에 있는 산. 기암괴봉이 많아 남국의 소금강(小金剛)이라 불린다. 창해역사(蒼海力士), 왕인(王仁)박사, 도선대사(道詵大師) 등 많은 귀재가 이곳에서 배출되었다.
동과(冬瓜): 일명 동아. 박과의 한해살이 덩굴성 식물로 호박과 비슷한 열매를 맺는다.
道典 4:43) 백두산에 가시어 공사 보심
상제님께서 형렬과 호연을 데리고 어느 산에 이르시어 “여기가 백두산이다.” 하시거늘, 호연이 보니 산은 높은데 꼭대기 부분이 벗겨져 있어 마치 머리가 허옇게 센 것 같더라. 상제님께서 호연을 업고 산에 오르실 때 호연이 보기에는 흥얼흥얼하며 그냥 걸어가시는 것 같은데 어느새 커다란 호수가 있는 꼭대기에 다다르거늘, 봉우리에 서서 내려다보니 천지만물이 훤하게 다 보이더라.
상제님께서 천지(天池)를 둘러싼 여러 봉우리 가운데 한 봉우리에 앉으시고 형렬과 호연을 각기 다른 봉우리에 앉도록 하시니,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바로 곁에 계신 것처럼 보이더라. 상제님께서 차례로 세 봉우리를 향하여 이름을 부르시니 첫 봉우리에서는 눈처럼 희고 커다란 학이 나오고 두 번째 봉우리에서는 알롱달롱 황금빛이 감도는 붉은 새가 나오고,
세 번째 봉우리에서는 파란색의 새가 나와 각 봉우리에 앉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세상이 뒤집어지면 이 산, 저 산이 자던 사람처럼 다 만난다. 어디서는 옷을 가져오고, 어디서는 기치창검을 가져오고, 장수들이 다 가지고 오느니라.” 하시며 장수들의 이름을 모두 부르시니라.
머리가 허옇게 센 것 같더라: 김호연 성도의 표현을 그대로 기록하였다. 백두는 광명을 뜻하며 본래 이름은 흰머리산, 삼신산, 증산(甑山)이다. 동방의 종주산으로 신교 삼신문화의 근원이 되는 성산(聖山)이다. 김호연 성도가 상제님의 기운에 동화되어 신안이 열려서 성령의 차원에서 본 것이다.
道典 4:44) 백두산의 모든 나무와 풀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
상제님께서 새들을 향하여 “너희들 만나서 춤을 한번 춰 봐라.” 하시고 노래를 부르시거늘 학이 먼저 오른쪽 날개를 쭉 펴니 다른 새들도 따라서 날개를 펼치고 상제님의 노래 장단에 맞춰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하며 날개춤을 추더라.
호연이 이를 보고 “이런 데서 동무도 없이 노래를 부르네.” 하니 상제님께서 “그러면 네가 한번 받아 봐라.” 하시거늘, 호연이 “아이고, 내가 노래 부를 줄 알면 뭐 하러 따라댕겨?” 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받아 불러라.” 하시니 형렬이 부르지 아니하거늘, 말씀하시기를 “노는 데서는 상하가 없이 하자.”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형렬과 노래를 주고받으시며 한바탕 흐드러지게 노시는 중에 춤을 추듯 손장단을 하며 흥을 돋우시니 새들이 천지의 수면 위로 날아 올라 날개를 펄럭이며 춤을 추다가 수면으로 내려가 날갯짓으로 점벙점벙 물을 치며 다시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더니 양 날개를 쭉 펼친 채 서로 빙빙 돌거늘 온 산의 나무들도 손을 흔들 듯 너울너울 춤을 추고, 풀잎도 바르르 떨며 춤을 추는지라
상제님께서 “나를 따라서 모두가 춤을 추는구나.” 하시며 흥겹게 웃으시니라. 이 뒤에 백두산에서 돌아오시어 말씀하시기를 “이제 수기를 돌려 회생케 하였노라.” 하시니라.
“(선생님이) 처음에 백두산이라고 부르면서 노래를 불러: 노래를 부르니 학이 날개를 이렇게 쭉, 한 쪽을 쭉 뻗치니 또 저짝 놈이 쭉 뻗치지. 또 저짝 치가 쭉 뻗쳐. 날개들을 갖고 이렇게 이렇게 춤을 춰.”(김호연 성도 증언)
“나무도 너울너울 추고, 풀잎도 떨고 그냥… 나무도 춤을 춰. 문) 이렇게 큰 나무가요? 답) 암. 그냥 손 흔들듯 이러고, 선생님은 좋아서 막 이러고 참말로 재미스럽제.”(김호연 성도 증언)
道典 4:45) 천지공사를 행하실 때 온갖 조화권능을 보이심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가(仙家)의 도술이 산(算)가지 하나로 백만 대군을 물리치나니 내 평천하의 도는 방안에 앉아 지필(紙筆)로써 천하를 다스리느니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공사를 보실 때는 붓으로 글이나 부(符)를 쓰시고 점을 찍으시어 천 가지 만 가지 조화를 부리시니 때로는 멀쩡한 사람을 광대 모양으로 만드시고, 곁에 있는 사람의 혼을 빼시어 허수아비처럼 멍하니 앉아 있게 하시고, 난데없이 먹을 것을 나오게 하시어 성도들과 함께 드시기도 하니라. 또 붓에 먹물을 묻혀 상모를 돌리듯이 한번 내두르시면 순식간에 무지개가 생기더라.
道典 4:48) 천지개벽도 신명이 들어야
천지개벽을 해도 신명 없이는 안 되나니 신명이 들어야 무슨 일이든지 되느니라. 그때 그때 신명이 나와야 새로운 기운이 나오느니라.
경위는 천하가 같다
경위(經緯)는 천하가 같으니라. 파리 죽은 귀신이라도 원망이 붙으면 천지공사가 아니니라.
신명을 박대하는 서교의 운명
서교(西敎)는 신명을 박대하므로 성공치 못하리라. 이는 서양에서 신이 떠난 연고니라. 구천에 사무치는 ‘시~’ 소리에 서양이 덜덜 떠느니라.
신명 없이는 안 되나니: 선천은 우주법도가 삼양이음(三陽二陰)이므로 사람이 일의 주체가 되지만, 후천은 삼음이양(三陰二陽)인 음 세상이 되므로 신명이 주체가 된다.
서교는 신명을 박대하므로: 서교, 즉 가톨릭과 개신교 교리의 핵심은 ‘유일신 신앙’이기 때문에 그들의 신 이외의 모든 신을 부정한다. 여기서 선천의 전쟁 역사가 시작되었고 아직도 그 갈등은 풀리지 않고 있다.
서양에서 신이 떠난 연고: 서양은 근대에 이르러 합리적 이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자연을 단순한 물질로 보는 기계론적 유물론이 가치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인간과 자연 속에 내재되어 있는 신성(神性)을 부정하여, 자연과 동양 문명을 일방적으로 착취하고 정복하게 되었다.
구천: 천상계의 신도문명(神道文明)은 종적(차별계)으로는 9천, 횡적(평등계)으로는 33천이 벌여진 입체적 구조이다.
道典 4:50) 비구름의 운행도 신명의 명을 따르는 것
한 성도가 여쭈기를 “선생님께서 길을 가실 때면 혹 비구름이 몰려오다가도 계신 곳 가까이 와서는 갑자기 좌우로 갈라져서 한 방울의 비도 뿌리지 아니하다가 가시고자 하는 곳에 도착하시면 다시 모여 장대비가 내리니 어떠한 까닭입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구름의 운행도 또한 그것을 맡은 신명의 명(命)을 따르는 것이니라.” 하시고, “단비에 우산을 들지 말라.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정이 이에 있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4:55) 대세몰이 도운의 산운 발음 대공사
을사(乙巳 : 道紀 35, 1905)년에 하루는 형렬과 호연을 데리고 전주 두리봉(斗里峯)에 가시니라. 호연이 묻기를 “놀려면 평지도 많은데 어찌 산으로만 댕겨요?” 하니, 상제님께서 “응, 이 속에 좌우로 장수 신명이 들어 있어서 ‘들으라.’고 그런다. 너는 안 들리지만 나는 들으니 이렇게 둘러보는 것이여.”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정상에 오르시어 두리봉, 오봉, 칠봉, 육봉을 부르시니 각 신명들이 나와 무릎을 꿇거늘, 말씀하시기를 “기(旗)를 만들어라. 앞으로 천상에서 부를 적에는 오봉이부터 불러서 ‘기를 들라.’고 이를 것이다. 오봉이가 기를 갖고 나서면 두리봉에서도 나서고, 칠봉, 육봉에서도 나서라. 그러면 오봉이가 기를 갖고 춤을 추어라. 그런 후에 모든 산들이 기를 갖고 쑥쑥 나서서 춤을 추면 이제 우리가 손을 잡는다.” 하시고, 각기 만들 깃발의 색을 정해 주시니 신명들이 “누가 먼저 기를 만드나 내기해 보자!” 하며 물러가니라.
기가 발동을 해야 한다
상제님께서 종이에 붉은 달과 검은 달을 그리시며 계속 기를 만드시니 호연이 “무엇이라고 그것을 만들어대요?” 하고 여쭈거늘 말씀하시기를 “기(氣)가 발동을 해야 한다.” 하시니라. 호연이 어린 마음에 “그것이 발이 달려서 날아가요?” 하니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종이라 널려 댕겨도 다 쓰는 기품이니라. 앞으로 쓰일 날이 있다.”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종이가 들어오는 대로 붉은 기, 푸른 기, 검은 기 등을 수없이 만들어 책처럼 쌓아 두시니라.
두리봉: 전주시 덕진구 우아동과 완주군 소양면에 걸쳐 있는 산. 지명의 유래는 산의 형세가 두리두리해서 붙여진 것이라 하며, 북두칠성의 두(斗) 자를 딴 것이라고도 한다. 또 산 정상에는 항상 붉은 깃발이 꽂혀 있었으므로 ‘깃대봉’이라 부르며, 산의 형세가 연꽃 봉우리 같다 하여 홍련봉(紅蓮峯), 소양면에서 바라보면 매봉은 남자, 두리봉은 여자 같다 하여 선녀봉이라고도 부른다. 왜막실에 사는 사람들은 “예로부터 두리봉은 상제가 춤추는 형국이라 한다.”라고 증언해 주었다.
오봉이: 운동의 본체인 5황극 수의 정신이다.
붉은 달과 검은 달: 수(水)·화(火) 기운, 곧 태극을 말한다.
道典 4:57) 기지신에게 치성을 올려야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대인이나 소인을 막론하고 공사간(公私間)에 일을 이루려면 터를 정하여야 하나니 그러므로 기지신(基址神)에게 치성을 올리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니라.
산도 신명이 들어 있어서
하루는 호연에게 말씀하시기를 “산도 신명이 들어 있어서 비가 억수같이 많이 오면 산사태 날 것을 두려워한 신명들이 자기 앉을 자리를 찾아 산을 옮기는데, 그 모습이 마치 구름이 둥둥 떠서 걸어가는 것 같으니라. 아낙들이 이를 보고 ‘아이, 산도 걸어가네. 바위도 걸어가네.’ 하며 입방정을 떨면 산이 ‘요망스럽다.’ 하여 주저앉고 가지 못하느니라.” 하시니라.
기지신(基址神)에게 치성: 도장의 성전에는 우주의 주재자이신 상제님을 중심으로 그 지역의 지방신(地方神)과 주산(主山)의 신(神)까지 모시라는 것이 상제님의 가르침이다.
道典 4:59) 정음정양의 남녀동권 세계를 개벽하심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때는 해원시대라. 몇천 년 동안 깊이깊이 갇혀 남자의 완롱(玩弄)거리와 사역(使役)거리에 지나지 못하던 여자의 원(寃)을 풀어 정음정양(正陰正陽)으로 건곤(乾坤)을 짓게 하려니와 이 뒤로는 예법을 다시 꾸며 여자의 말을 듣지 않고는 함부로 남자의 권리를 행치 못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공사를 보신 후에 ‘대장부(大丈夫) 대장부(大丈婦)’라 써서 불사르시니라. 또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부인들이 천하사를 하려고 공을 들이니, 그로 인하여 후천이 부녀자의 세상이 되려 하네.” 하시고, 한참 계시다가 무릎을 탁 치시며 “그러면 그렇지, 큰일이야 남자가 해야지.”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판대까지야 여자에게 주겠느냐. 판대야 남자가 쥐지.” 하시니라.
道典 4:60) 주무실 때 성령은 천상으로 올라가심
하루는 한 성도가 여쭈기를 “선생님께서 주무실 때는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고하지 못하도록 하시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비록 잠들어 있을 때라도 신도(神道)에 어명을 내리고 있으니 나는 인간세계에 있지 아니하노라.” 하시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이 큰 눈을 내리거든 천상에 대공사(大公事)가 있는 줄로 알라.” 하시니라.
道典 4:62) 우주의 실상을 보는 도통의 관건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지간에 가득 찬 것이 신(神)이니 풀잎 하나라도 신이 떠나면 마르고 흙 바른 벽이라도 신이 떠나면 무너지고, 손톱 밑에 가시 하나 드는 것도 신이 들어서 되느니라. 신이 없는 곳이 없고, 신이 하지 않는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4:63) 재생의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하루는 상제님께서 구릿골에 계실 때, 전주 용머리고개에 사는 앉은뱅이 김 모가 들것에 실려 와서 상제님께 애원하기를 “제가 전생에 죄가 많아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되었사오나 이렇게 구차한 몸으로 더 살자니 세월은 슬픔뿐이요, 죽자니 인생이 너무 비참하옵니다. 이와 같이 폐인(廢人)의 지경이 된 형편을 하늘만이 아시고 사람들은 알지 못하오니 저에게 새 생명을 열어 주시어 재생의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하고 비 오듯이 눈물을 흘리며 슬픈 사연을 아뢰더라.
하느님이 강림하지 않고서야
상제님께서 그 하소연을 들으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그 사람을 앞에 앉히시고 담뱃대를 들어 올리며 말씀하시기를 “이 담뱃대를 따라서 차차 일어서라.” 하시니 그 사람이 담뱃대를 따라 무릎과 다리를 조금씩 펴며 천천히 일어서거늘, 형렬에게 명하시어
曳鼓神 曳彭神 石蘭神 東西南北 中央神將 造化造化云 吾命令 拜 吽이라 큰 소리로 외우게 하신 뒤에
그 사람으로 하여금 마당에서 걸어 보게 하시고 잠시 후에는 광찬에게 명하시어 회초리로 다리를 때려 빨리 걷게 하시니 마치 성한 사람 같은지라 그 사람이 기뻐 미친 듯이 뛰고 마당을 돌아다니며 외치기를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강림하지 아니하셨다면 어찌 이럴 수 있으리오!” 하고 눈물을 삼키며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더라.
상제님께서 그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들것을 버리고 걸어서 돌아가라.” 하시고, 사례금으로 받으신 서른 냥으로 큰길가 주막에 나가시어 오가는 행인들을 불러 술을 사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다리를 펴 주니 고맙도다.” 하시니라.
道典 4:66) 내가 참하늘이니라
상제님께서 하루는 하늘을 가리키시며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은 여기서 보이는 하늘이 전부인 줄 알아도 그것은 중간하늘일 뿐이니라. 내가 참하늘이니라. 사람들이 허리띠를 가운데에 띠고 위에 목도리를 하고 밑에 꽃대님을 하듯이, 천상사람이 있고 땅속에도 사는 사람이 또 있느니라.” 하시니라.
이 천지에 명관 따로, 큰 선관 따로 있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명관 따로 있고, 선관이 따로 있느니라. 그런 명관들과 함께 입을 섞어서 말하는 사람이 좀체로 없구나.” 하시니라.
道典 4:67) 천지공사를 신명과 더불어 판단하심
5월에 하루는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귀신(鬼神)은 천리(天理)의 지극함이니, 공사를 행할 때에는 반드시 귀신과 더불어 판단하노라.” 하시고, 글을 써서 형렬의 집 방 벽에 붙이시니 이러하니라. 知 事 萬 忘 不 世 永 定 化 造 主 天 侍
지 至
기 氣
금 今
사 師 지 至 법 法
원 願
위 爲
대 大
강 降
전 全 경 慶
주 州 주 州
동 銅 용 龍
곡 谷 담 潭
해 解 보 報
원 寃 은 恩
신 神 신 神
日 月 年
일 월 년
부(符)는 귀신의 길
상제님께서 밤에 혼자 계실 때도 자주 문명을 써서 불사르시며 공사를 행하시는데 아침이 되면 그 재를 형렬에게 치우도록 하시니라. 하루는 한 성도가 여쭈기를 “글이나 부적을 쓰시어 공사를 행하신 후에는 모두 불살라 버리시니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나타남(現)으로 알고 귀신은 불사름(燒)으로 아느니라. 내가 옥황상제로서 천지공사를 행하는 고로 반드시 불살라야 하느니라. 부(符)는 귀신의 길이니라.” 하시니라.
대신명들이 들어설 때
상제님께서 부를 그리실 때 형렬이 신안(神眼)이 열리어 보니 천신(天神)들이 정연하게 자리 잡고 봉명(奉命)을 준비하고 있더라.
상제님께서 대신명(大神明)이 들어설 때마다 손을 들어 머리 위로 올려 예(禮)를 표하시니라. 또 점을 찍으시며 칙령을 내리실 때는 “아무개 이 점 찍는 대로 살려 줘라.” 하시며 항상 ‘~해라’ 하고 명하시지 ‘~해 주시오’, ‘~허소’ 하시는 경우는 없으시니라.
호연이 보니 상제님께서 점을 찍으시는 것도 다 요령이 있어서 고축하시는 내용에 따라 점의 수(數)가 다 다르더라. 공사를 행하실 때에는 반드시 술과 고기를 장만하여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잡수시며, 때로는 식혜(食醯)를 만들어 성도들과 더불어 잡수시니라.
道典 4:68) 종도들을 ‘후’ 하고 한번 부시면
상제님께서 간혹 먼 길로 심부름을 시키실 때 심부름하는 사람을 앞에 세우시고, 등 뒤에서 ‘후’ 하고 한번 부시면 그 사람이 원앙새, 학, 기러기, 황새 등이 되어 날아가니 이렇게 새가 되어 심부름을 많이 한 사람은 진수, 성수, 남수 세 사람과 임○○ 라는 사람이더라. 한번은 전주 송광사(松廣寺)에 가 머무르실 때 이와 같이 세 사람에게 심부름을 시키시니
상제님께서 이들을 보내시면서 “너희는 각기 어느 나라, 어디어디에 가서 누구누구를 만나고 아무 날 돌아오라.” 하시니라. 세 사람이 명을 받고 날아서 갔다가 올 때도 역시 날아서 오는데, 닷새 후에 한 사람은 아침에 오고, 한 사람은 조금 후에, 또 한 사람은 한낮이 되어서 돌아와 각기 상황을 아뢰니라. 송광사에서 이 공사를 보시고 돌아오실 때 논에 가서 왕골을 뽑아 말을 만드시고, 삼대를 뽑아 교군(轎軍)을 만들어 타고 오시니라.
한번 부시면: 상제님은 조화주 하느님이심을 늘 명심해야 한다. 지금도 상상을 초월하는 새우주 창조의 대공사 내용이 생생하게 증언되고 있다.
송광사에 가 머무르실 때: 상제님께서 성도하시기 이전부터 전주 종남산 송광사에 가끔 가셨는데 상제님께서 가시면 송광사 중들이 대접이고 뭐고 하기에 앞서 벌벌 떨었다고 한다.
심부름 갔다 와서 아뢴 내용: 이 부분에 대해서는 김호연 성도의 기억이 분명하지 못하다. 이 때 한 종도가 “○나라에 갔더니 주인이 자기 딸이 아파 안에 들어가서 지체되었다.”고 아뢰었다는 증언이 비교적 분명하다.
道典 4:69) 신흥사에서 보신 신명 공사
상제님께서 송광사에서 여러 날을 지내시고 임실(任實) 사자산(獅子山) 신흥사(新興寺)에 가시어 머무르실 때, 밤낮으로 신명들을 불러들여 공사를 보시니 어떤 때는 호랑이며 말, 소 등 짐승이 되어 오고, 잘 차린 사람 모습으로 오기도 하고, 농사꾼 차림으로 오기도 하더라.
상제님께서 방이나 마루에 앉아 계시면 신명들이 채 마루나 토방까지도 오지 못하고 양옆으로 서 있는데, 하루는 호연이 “저 사람은 뭔 사람이고, 저 사람은 뭔 사람이에요?”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그것도 죽은 사람, 그것도 죽은 사람.” 하시니라. 이에 호연이 “죽은 사람이 어찌 저렇게 눈을 멀뚱거리며 들어와요?” 하니, “눈을 떠야 짐승이라도 들어오지, 눈 안 뜨고 어떻게 들어오냐? 말시키지 말고 가만 앉았거라.” 하시고 신명들에게 “저만치 물러나라!” 하고 명하시거늘, 한 신명이 나서며 바닥에 선을 그으니 모두 선 밖으로 물러나 정렬하더라.
상제님께서 박 크기만 한 쇳덩이를 주시며 “들어 보라.” 하시거늘 어떤 신명은 들고 어떤 신명은 힘이 부쳐서 들지 못하니 말씀하시기를 “산해박 뿌리를 캐서 칡뿌리와 ○○ 뿌리와 함께 먹어라. 칡뿌리는 기운을 돋우는 것이니라. 그리고 ○○에 가서 동삼(童蔘)을 먹고, 칡뿌리와 산해박 뿌리와 ○○ 뿌리를 함께 넣어 술을 해 놓아라. 그래야 장수들이 목을 축이느니라.” 하시니라. 또 쇳덩이 몇 개를 주시며 “이놈을 들어 보면서 먹어라. 기운을 돋우라는 것이다.” 하시고, 이어 “행여 네가 뒤떨어져서 죽더라도 한을 말아라.” 하시며 돌려보내시니라.
신흥사(新興寺): 전북 임실군 관촌면 상월리(上月里) 사자산(獅子山) 남쪽 기슭에 있는 절. 백제 성왕 7년(529)에 신라의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창건했는데, 창건 당시에는 400여 평의 가람에 승려 300여 명이 머무르는 대찰(大刹)이었다. 김호연 성도의 오빠가 오랫동안 주지로 있었다.
道典 4:70) 계룡산 정씨 왕국 기운을 거두심
성도들이 계룡산(鷄龍山) 정씨 왕국에 대해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일본 사람이 모든 섬과 산을 샅샅이 뒤지고 물밑까지 더듬어 보았나니 정씨가 몸 붙여 일 벌일 곳이 어디 있으리오. 그런 생각은 다 버릴지어다.” 하시고, “속담에 ‘정가를 방문하면 방정(訪鄭)맞다.’ 하고, 또 사리가 밝으면 ‘내정(來鄭)이 있다.’ 하나니
내가 그 기운을 뽑아 내정(內鄭)으로 정하여 하동 정씨(河東鄭氏) 가문에 취객(娶客)이 되었노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계룡산은 수계룡이요 모악산은 암계룡이라. 나는 암계룡을 택하였노라.” 하시니라.
道典 4:73) 하늘이 손을 다 잡았다 할 때는
상제님께서 명산마다 다니시며 단지에 술과 명태, 두부와 돼지고기, 쇠고기를 넣어 땅에 묻으시니 하루는 호연이 이를 보고 “그게 뭐예요? 이렇게 해 놓으면 누가 먹어요?” 하고 여쭈거늘 말씀하시기를 “누가 먹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면 각 신명들이 먹느니라. 우리가 일을 해도 신명이 안 들고는 못 하고, 일을 하다가도 갑옷 얻고 투구 얻고 칼을 얻는 것은 천상에서 다 하는 것이니라.” 하시니라.
이에 호연이 “어디로 싸움하러 가요?” 하니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이 죽어서 우리를 보살펴 주는 법이 있나니, 오다가 중도에서 만나기도 하고, 선몽(現夢)을 대기도 하느니라. 그러니 귀신도 스스로는 발복을 하지 못하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우리 조선에서 하나가 되어서 일을 하면 천지신명이 일어나느니라.
전쟁에서 싸우다 죽은 장수 신명들의 원을 풀어 주려고 내가 제를 지내는 것이니 일이 되고 보면 모든 대장수 신명들이 일어나느니라. 일이 되어서 하늘이 손을 다 잡았다 할 때에는 만방에서 나와 나를 따르느니라. 신명이 같이 해야지, 천상에서도 신명이 없으면 일을 하지 못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4:77) 모과 신명을 불러내심
상제님께서 종종 섭다리골에 있는 모과나무에서 모과를 따 오시니라. 하루는 모과를 품에 한아름 안고 오시는데 호연이 “모과는 뭐 하러 따 와요?” 하거늘, 상제님께서 “거 시고도 개미가 있다잉. 그런데 모과가 망신을 시킨단다.” 하시는지라 호연이 “망신시킬 것을 따 갖고 와요?” 하니 “이런 것도 있어야 잘난 놈이 있지, 다 잘나 놓으면 못난 놈은 어떻게 되겠냐?” 하시며 모과를 한 줄로 쌓으시니라.
이에 호연이 “사람 키만큼 뭐 하러 그렇게 세워요? 자빠지라고.” 하니, 상제님께서 “여기 가까이 오지만 마라.” 하시고 모과 앞으로 가까이 다가서시어 작은 소리로 “모과야! 모과야! 왜 아무 말도 않느냐? 배고파서 대답 못 하겠느냐?” 하시거늘 성도들이 모두 궁금히 여겨 상제님 등 뒤에 바짝 붙어 귀를 기울이니라. 상제님께서 “모과야! 아, 모과라고 하니 삐졌냐? 목 첨지라고 할꺼나?” 하시니 역시 아무 기척이 없거늘
다시 “그러면 뭐라고 할거나…, 모 생원?” 하시매 그제야 모과가 끄덕이며 “예.” 하고 대답하더라. 이에 상제님께서 웃으시며 “그려. 모 생원!” 하고 부르시니 가장 위에 놓여 있던 모과 하나가 앞으로 툭 떨어지며 “증산!” 하고 그 밑에 있던 모과가 뒤따라 떨어지며 또 무어라 말하거늘 상제님께서 그 모과에게 “너는 뭐라고 했냐?” 하시매 “앞에서 ‘증산’ 하길래 저는 ‘강가’ 그랬어요.” 하는지라
상제님께서 “내가 강증산이냐, 이놈아?” 하시며 서 있는 모과의 밑동을 발로 툭 차시니 모과 하나가 뒤로 튕겨 나가니라. 호연이 이를 보고 “아이들마냥 그것 갖고 장난을 하네. 모과가 말을 다 해요?” 하며 다가서니 상제님께서 “네가 한번 말 시켜 봐라!” 하시거늘 호연이 “모과야! 모과야!” 하고 말을 거니 모과들이 춤을 추듯 달랑달랑 움직이더라.
상제님께서 “네가 말하니 대답도 안 하고 막 까불기만 한다. 아이라고 장난하느라고 그러니 너도 한번 때려 봐라.” 하시거늘
호연이 “이까짓 것 그럼 못 때려요?” 하며 발로 툭 차니, 순간 한 줄로 서 있던 모과가 휘청거리며 호연의 목을 탁 때리는지라 호연이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상제님을 쳐다보며 “맥없이 이런 것 주워 와서 사람을….” 하며 울먹이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과라고 헤프게 알고 때리니까 그런다.” 하시며 호연을 달래어 방으로 데려가시니라. 성도들이 하도 신기하여 떨어진 모과를 주워 들고 “요것이 때려? 어디 나도 한번 때려 봐라.” 하며 모과를 툭툭 치니 모과들이 사방으로 날아다니며 성도들을 사정없이 때리거늘 상제님께서 뒤에서 이를 바라보시며 “저놈들 봐라. 모과한테 맞고 우는 꼴들 좀 봐라!” 하시고 크게 웃으시니라.
道典 4:78) 도깨비를 불러 공사 보심
상제님께서 메밀죽을 자배기에 퍼서 담 밑에 놓으시고 “죽을 끓여다 담 밑에 놓았으니 와서 먹으라.” 하고 도깨비를 부르시면
잠시 후 죽을 먹는 소리가 ‘쭉쭉쭉’ 나는데 호연이 보니 그 생김새와 옷차림이 보통 사람과 꼭 같더라. 하루는 도깨비들이 줄을 서서 죽을 먹고 있거늘 상제님께서 오른발을 들어 왼쪽으로 원을 그리며 한 바퀴 빙 돌리시니 도깨비들이 모두 사라지고 부지깽이와 빗자루만 남았더라.
조화주 하느님의 상징 : 증가(甑哥)
또 하루는 몇몇 도깨비들을 잡아 “내일 이놈들을 단단히 봐야겠다.” 하시며 허리띠를 끌러 나무에 묶어 두셨는데 아침에 보니 막대기와 빗자루만 묶여 있거늘, 호연이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여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이에요?”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거기에 신이 붙어서 그러지, 이런 막대기가 뭔 일을 하겠느냐!” 하시니라. 이에 호연이 “빗자루로 쓸고 다니죠.” 하니
상제님께서 “증가(甑哥)가 도깨비 성(姓)이니 내가 증가다.” 하시거늘, 호연이 “증산은 무슨, 도깨비지.” 하매 “그래. 도깨비다, 도깨비.” 하며 맞장구를 치시니라. 이 때 호연이 평소 상제님께서 도깨비를 친구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 “도깨비보고 ‘막대기가 무슨 일을 하겠냐.’면서 그게 친구예요?” 하니 그저 웃기만 하시니라.
도깨비: 깨비신은 천상깨비와 땅깨비가 있는데 도깨비는 땅깨비를 말한다. 허주(虛主), 독각귀(獨脚鬼), 망량, 이매라고도 한다. 도깨비는 사람들이 일상 생활의 용구로 쓰다가 버린 물체를 통해 생성된다고 한다. 성질이 음(陰)하기 때문에 동굴, 고가, 고목, 계곡 등에 모여 살다가 밤에 나와서 활동한다. 메밀죽, 메밀묵, 돼지고기, 시루떡, 막걸리 등을 좋아한다고 한다.
내가 증가다: 상제님은 조화 방망이를 휘두르는 진망량이시다. 상제님의 존호인 시루 ‘증(甑)’ 자는 모든 미완성된 것을 익혀서 성숙·완성시키는 조화정신의 표상이다. 이 말씀은 증산 상제님께서 우주 삼계를 현묘불측한 신도(神道)의 조화로 다스리시는 우주의 조화옹이심을 의미한다.
道典 4:79) 제사 음식을 가져다 잡수시는 공사
날이 궂을 때에는 상제님께서 종종 도깨비를 부르시어 없는 물건을 가져오라 명하시는데, 이 때 도깨비라 부르지 아니하시고 다른 여러 이름으로 부르시더라. 병오년 동짓달 초이튿날에 상제님께서 바닥에 막대기로 금을 그으시니 호연이 “무엇 하려고 금을 긋고 보세요?” 하거늘 “잔나비 오라고 그런다.” 하시니라.
호연이 다시 “잔나비는 무엇 하게요?” 하고 여쭈니 “심심하니 여기 없는 것 가지고 오라고 해 보련다.” 하시거늘, 김덕찬이 옆에서 듣고 있다가 신이 나서 말하기를 “선생님 덕분에 목 좀 축여야겠습니다.” 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그래라. 실컷 먹고 나중에 배가 터지거든 저 말총으로 꿰매라.” 하시는데, 그 찰나에 도깨비들이 나타나며 “바로 왔습니다.” 하고 절을 하는지라 상제님께서 도깨비들에게 “왔느냐. 너희들 대장이 어디 있는고?” 하시니 그중 몸집이 큰 도깨비가 앞으로 나서거늘
상제님께서 “네가 장수냐?” 하시니 “예.” 하고 대답하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대루(對壘)장수가 누구냐?” 하고 물으시니 여기저기서 몇몇이 나서거늘, 상제님께서 그들을 향하여 “너희들 내가 시키는 대로 하겠느냐?” 하시니 모두 “예!” 하고 큰 소리로 다짐하니라. 상제님께서 명하시기를 “좁은목 오목대가 너희들 구역이지?
오늘 그 밑에 있는 생교골에서 제를 지내니 음식을 다 가져오너라. 내가 먹어야겠다.” 하시니 대장 도깨비가 나서며 “드신다면 그렇게 하지요. 보자기 하나만 주십시오.” 하니라. 이에 큰 이불보를 하나 주시니 과연 차려 놓은 음식을 모두 싸 오거늘 음식을 나누어 드신 후에 오른발을 들어 왼쪽으로 원을 그리며 한 바퀴 빙 돌리시니 도깨비들이 모두 사라지더라.
대루(對壘)장수: 보루(保壘)를 구축하고 적군과 상대하는 장수.
오목대(梧木臺): 전북 전주시 교동 소재. 조선 시대의 왕족인 전주 이씨의 발상지로서 고려 우왕 6년에 이성계가 남원 운봉에서 왜구 아지발도(阿只拔都)의 무리를 무찌르고 개선 잔치를 열었던 곳이다.
생교골: ‘향교가 있는 골’이라는 뜻으로 전주시 교동의 옛 이름이다.
道典 4:81) 일월의 정음정양 대개벽 공사
하루는 호연이 “해가 물에 빠지면 물이 부글부글 끓는다던데, 나 그것 좀 구경시켜 줘요.” 하니, 상제님께서 “네 눈에는 그렇다 해도 산 기구가 있어서 그놈이 돌아가면 밤이고 낮이고 한다.” 하시니라. 한번은 호연과 동네 아이를 앉혀 놓으시고 “달이 너희 눈으로는 얼마나 크냐?” 하고 물으시니 먼저 동네 아이가 “아이구, 우리 엽전 크기만 하지요, 뭐. 좀 더 클까, 이 맷방석만 할까요?” 하거늘
상제님께서 호연을 바라보시며 “너는?” 하고 물으시니 답하기를 “달이 정녕 조선만 하니까 비출 테지, 쪼그마하면 이 천하를 다 비추간디? 그러니 맷방석보다는 더 크지.” 하니라. 상제님께서 웃으시며 “역시 호연이는 호연이다! 호연아, 네 마음에는 어째 달이 그렇게 커 보이냐?” 하시니 호연이 “크니까 천하에 다 보이지, 쪼그마하면 보이겠냐구요.” 하고 대답하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려, 이를테면 해는 머슴애고 달은 계집애인데 내가 바꿔 놨다. 그러니 달이 남자고 해가 여자란다.” 하시니 호연이 “어째서 계집애인데요?” 하고 여쭈거늘 “달이 계집애라서 밤이면 혼자 무섭다고 해서 바꿨단다. 해를 보면 계집애라 하도 이뻐서 눈이 안 시리냐, 달을 보면 맹랑하고 밝기만 하지! 그게 서로 바뀌어서 그런 것이다.” 하시니라. 이에 호연이 “그렇게 바꾸는 수도 있어요? 고추를 떼다가 바꿨겠네?” 하니
상제님께서 “그런 것까지? 아이구, 난 저것하고 같이 말 못 한다니까, 멍청해서.” 하며 웃으시니라.
이는 상제님과 소녀 호연’의 단순한 대화 내용이 아니다. 상제님께서 선천 문왕팔괘(八卦)의 남북에 자리한 이남감북(離南坎北)을 바로잡아 정역팔괘의 곤남건북(坤南乾北)이 되도록, 천지일월이 가을의 시간 도수인 1년 360일 정원궤도를 달리도록 신도(神道) 차원의 일월개벽 공사를 행하신 것이다.
道典 4:83) 그 기운이 빠르다
대흥리에서 몇 달 동안 머무르실 때 하루는 차문경(車文敬)이 가물치를 낚아 회를 쳐서 상제님께 올리매 잡수신 뒤에 문밖을 거니시다가 하늘을 바라보고 웃으시며 “그 기운이 빠르다.” 하시거늘, 성도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과 같은 이상한 기운이 가물치 모양을 이루어 동쪽을 향하여 떠가더라.
나는 모든 일을 함부로 하기 어려우니라
하루는 성도들이 금사(琴師)를 불러 가야금을 타게 하고 유쾌히 놀거늘, 상제님께서 이를 금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저 허공을 보라. 나는 모든 일을 함부로 하기 어려우니라. 가야금 소리를 듣는 것조차 하늘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도다.” 하시니라. 이에 성도들이 모두 올려다보니 구름과 같은 이상한 기운이 가야금 타는 형상과 대여섯 사람이 벌여 앉은 모양을 이루어 허공에 떠 있더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늘의 보좌(寶座)에 있을 때에는 담배 연기를 천지 분향(焚香)으로 삼느니라.” 하시니라.
차문경(車文敬, 1878~1944): 부 치화(致華)와 모 밀양 박씨(密陽朴氏)의 장남. 차경석 성도의 종형으로 그 옆집에 거주했다.
道典 4:84) 천지만사가 이치 없이는 못 하는 것
정미년에 하루는 호연이 “사진이나 박을 줄 알면 내 사진이라도 박을 텐데, 왜 그런 재주는 없어요?” 하고 투덜거리니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세상에 그런 일이 흔하게 퍼져. 그렇지만 나는 그런 기구가 없어.” 하시니라. 호연이 다시 “왜 다른 것은 다 하면서 그런 것은 못 해요?” 하니, 말씀하시기를 “그것도 다 이치가 있어야 하지, 모든 일이 이치 없이는 못 하는 것이다.” 하시니라.
하느님이 있응게 하느님이지
평소 호연이 아는 체하며 쏙쏙 나서기를 잘하니 상제님께서 그 때마다 쥐어박으시며 ‘똑똑한 체한다.’고 꾸중하시고 늘 염려하시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호연을 걱정하시며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저것을 어찌하면 좋겠냐?” 하시니, 형렬도 한숨을 지으며 “우리가 일을 그르치면 저것으로 인해 죄가 되지 않을까요?” 하며 호연을 바라보거늘 이를 듣고 있던 호연이 “맥없이 남의 어린애 데려다 놓고는 이것, 저것….” 하고 퉁명스럽게 말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이것, 저것이 무엇이여?” 하시니 호연이 “내가 이 세상에 나와 고생하는데 그런 걸 선생님한테 돌리는가 젖 먹던 어린 내가 왜 여기에 와서 이런 공폐를 당한대?” 하거늘, 상제님께서 빙긋이 웃으시며 “전생에 네가 그랬으니 하느님이 알고 너를 데리고 가.” 하시니라. 호연이 “하느님이 어디 있어요?” 하니 “하느님이 있응게 하느님이지, 저 하늘 없냐?” 하시거늘, 호연이 하늘을 보니 막대기로 찌르면 닿을 것만 같아 “간짓대로 푹 쑤셔 볼까요?” 하매 상제님께서 크게 웃으시며 “만날 쑤셔 봐라. 가까운 성싶어도 몇천 리여.” 하시니라.
道典 4:85) 이 해 6월 중복날 상제님께서 대흥리 부근의 접지리(接芝里) 주점에 가시어
경석을 비롯한 여러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오늘 번개가 일어나지 않으면 충재(蟲災)가 생겨서 농작물이 큰 해를 입으리니 잘 살피라.” 하시거늘, 모두 주의하여 날이 저물도록 살피되 번개가 나지 아니하는지라 상제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꾸짖으시기를 “천지가 어찌 생민의 재앙을 이렇듯 돌아보지 아니하느냐! 내가 이제 민록(民祿)을 내리리라.” 하시고, 마른 짚 한 낱을 무명지 길이로 끊어서 화로에 꽂아 불사르시니 별안간 북방에서 번개가 일어나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북방 사람만 살고 다른 지방 사람은 다 죽어야 옳겠느냐!” 하시며 다시 하늘을 향하여 꾸짖으시니 사방에서 번개가 번쩍이거늘, 한 식경(食頃)쯤 지나 “그치라!” 명하시니 사방의 번개가 곧 그치니라. 이에 말씀하시기를 “이제 충해는 없이하였으니 금년 농사는 풍년이 들어 만백성이 즐겁게 살리라.” 하시니라.
접지리(接芝里) 주점: 전북 정읍시 입암면(笠岩面) 접지리
道典 4:86) 보리씨에 생기를 붙여 주심
상제님께서 손바래기나 와룡리로 가실 때는 대개 수금면 월성리(水金面 月城里) 김중범의 집 앞을 지나다니시니라.
상제님께서 가끔 중범의 집에 들르시는데 이 때 중범의 집이 가난하여 어쩔 수 없이 보리밥으로 공양하거늘, 말씀하시기를 “내 밥은 수북이 담아야 한다.” 하시니라.
한번은 보리갈이 하는 철에 상제님께서 중범의 집에 들르시어 “보리 가냐?” 하고 물으시매 “예, 보리 갑니다.” 하고 대답하니
말씀하시기를 “못 먹을 텐데, 저 보리.” 하시며 “좋은 수가 있다. 그 보리씨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밭둑에 앉아 지필묵을 꺼내 부(符)를 그려 불사르시고, 보리씨에다 그 재를 섞어 중범과 함께 밭에다 뿌리시며 “먹을 때나 좋은 줄 알지 어느 미친놈이 했는지 누가 알어!” 하시니라.
이듬해 3월에 큰비가 내려 다른 사람들의 보리는 다 썩었으나 중범의 보리만은 아무런 해를 입지 않고 잘 자라 풍작을 이루니
중범이 그 보리를 수확하여 상제님께서 들르실 때면 정성스레 밥을 지어 대접하니라.
수금면 월성리(水金面 月城里): 현재 정읍시 정우면 수금리 월성 마을. 지형이 반달처럼 생겼다.
道典 4:87) 깊은 산속에 들어가시면
상제님께서 깊은 골짜기에 들어가시어 “산이 높으면 골도 깊더라고, 다독아!” 하고 부르시니 말소리만 “예~.” 하고 들리거늘
다시 상제님께서 “다독이 나오니라.” 하시니, 또 “예~.” 하는 소리가 들리며 산이 떨리면서 막히고 우거지고 엉클어졌던 것이 벌어져 보지도 못하던 한길이 나더라.
길을 떠나며 호연이 “다독이가 누구예요?”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다독거리고 댕긴다고 다독이라고 있어.” 하시니라. 한참을 가시다가 상제님께서 “어빅이 나오너라. 이리 나와 인도를 해야지.” 하시니 “예~.” 하며 주걱같이 생긴 막대기가 우뚝 나서거늘
상제님께서 “요놈의 자식이 누구를 놀리려고.” 하시면서 왼쪽 뺨을 탁 때리시매 사람의 모습이 되어 눈을 멀뚱거리며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더라. 이에 상제님께서 “너 다독이 못 봤냐?” 하고 물으시니 “봤습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다시 “그래, 몇이라고 하더냐?” 하시니 “예. 네 분이라고 하던데 어찌 두 분뿐이신가요?” 하는지라 말씀하시기를 “네 눈이 둘이지, 한번 세어 봐라. 죽으나 사나 사람을 똑똑하게 잘 보고 심부름 혀! 어찌 그래 가지고 사람을 하늘로 인도할꼬!” 하시니라.
산신을 불러 하명하심
또 어느 산에 오르시어 상제님께서 왼쪽 발을 구르시니 산이 뭉개져 내리며 산사태가 나거늘, 상제님께서 “뭉실 뭉실 뭉실아! 내 품안으로 들어라.” 하시니 “두리뭉실 두리뭉실 둥글이, 여기 있습니다.” 하며 신명이 나타나거늘 상제님께서 그 신명에게 하명하시니라.
다독이, 어빅이, 뭉실이: 증산 상제님께서 신명을 애칭으로 불러 주신 것인데, 이 때 김호연 성도가 들은 대로 기록한 것이다. 상제님의 실제 발음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道典 10:2) 무신(戊申 : 道紀 38, 1908)년 어느 날 상제님께서 형렬과 호연을 데리고 계룡산에 오르시어 대공사를 행하시는데
하늘에서 옥동자가 내려와 상제님께 엎드려 인사를 드리며 “언제 왕림하시려는지요?” 하고 여쭈거늘, 호연이 ‘왕림’을 먹는 것인 줄로 알고 “무얼 먹으라고 그런대요?” 하니, “너 못 볼 데로 간단다, 너 못 볼 데로.” 하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니라.
호연이 대수롭지 않게 “어디로?”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저 천상으로 간다.” 하시는지라 호연이 “아이고, 그러면 나도 올라갈까?” 하니 “흥, 너는 올라가려면 아직 멀었어. 너는 끝끝내 있어야 해. 이제 날 만난 것이 웬수를 만났다고 그럴 것이다.” 하시고 옥동자를 돌아보시며 “수수가 서숙이 되겠느냐?
내가 애초에 이 세상에 내려올 적에 ‘내가 천지 일을 마치고 어느 때 돌아오리라.’ 하고 내려와 한 치의 빈틈없이 공사를 행하고 있으나 천지에 나라가 한 나라만 있는 것이 아니요, 몇천 나라인데 내가 손을 잡고 화목하게 만들어야 비로소 서로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겠으므로 이제 하나하나 살리기 위해 사방천지를 다니며 조화를 부리고 있거늘,
유독 너희들만이 천상에서 조급히 서두르며 딴 생각을 품느냐!” 하며 호되게 꾸짖으시고 다시 호령하시기를 “내가 천하에서 일을 마쳤으면 지금 여기에 있지 않고 오늘이라도 올라가느니라. 곧 너희들과 함께 천상에서 일을 행하리니 돌아가서 내 명을 기다리라. 날이 되어야 가지, 지금 내가 ‘아무 날 간다.’고 할 수가 있겠느냐.” 하시며 크게 호통치시니 하늘과 땅이 뒤흔들리더라.
이별을 노래하심
겨울에 문공신(文公信)의 집에 가시어 쉬시다가 정읍(井邑)으로 출발하실 즈음에 공신에게 옛 시조 한 수를 읊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대천일해(大天一海)에 무근목(無根木)이 떠 있고, 가지는 열두 가지 잎은 삼백 예순 잎이 피었으니 뚜렷이 일월이 희도다. 구시월 세단풍(細丹楓) 바람 잡아 탄금(彈琴)하니, 슬프다! 저 새소리 귀촉도 불여귀(不如歸)를 일삼더라.
道典 10:4) 겨울에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읍으로 가리니 이 길이 길행(吉行)이라. 이 뒤에 네게 알리리라.” 하시고 정읍 차경석(車京石)의 집으로 떠나시니라. 대흥리(大興里)에 계실 때 하루는 상제님께서 고수부님의 무릎을 베고 누워 말씀하시기를
“내가 죽으면 네가 머리를 풀겠느냐, 아니 풀겠느냐?” 하시니, 수부님께서 “어찌 머리를 풀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일은 염려 마소서.” 하시거늘, 이 때 옆방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성도들이 서로 바라보며 웃더라.
또 수부님께 “영변(寧邊) 수심가(愁心歌)를 부르라.” 하시고 음성을 가다듬어 선창하시기를 “소슬 동풍(東風)에 궂은 비는 오는데
울퉁불퉁 저기 저 남산(南山) 보아라. 우리도 죽어지면 저기 저 모양 되리라.” 하시니 수부님도 따라 부르시니라.
道典 5:205) 동학 역신 해원 공사
공신이 여러 성도들을 돌려보낸 뒤에 상제님께서 공신, 경수, 응종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경석이 성경신(誠敬信)이 지극하므로 달리 써 볼까 하였으나 제가 스스로 청하니 어찌할 수 없는 일이로다.
지난 갑오년에 동학 신도들이 여러 만 명 학살되어 모두 지극히 원통한 원귀(寃鬼)가 되어 우주간에 나붓거리는지라
원래 동학은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주창하였으나 때가 때인 만큼 안으로는 불량하고 겉으로만 꾸며대는 일이 되고 말았나니 다만 후천 일을 부르짖었음에 지나지 못함이라. 마음으로 각기 왕후장상(王侯將相)을 바라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릇 죽은 자가 수만 명이니, 그 신명들을 해원시켜 주지 않으면 후천에 역도(逆度)에 걸려 반역과 화란이 자주 일어나 정사(政事)를 못 하게 되리라.
그러므로 이제 그 신명들을 해원시키려고 원혼을 통솔할 자를 정하려는 중인데 경석이 십이제국을 말하니 이는 스스로 청함이라. 이제 경석에게 동학 역신 해원의 삼태육경(三台六卿) 도수를 붙이리라.” 하시고, “그 부친이 동학 접주로 그릇 죽었고 경석도 또한 동학 총대(總代)였으니 오늘부터는 동학 때 한 맺힌 신명들을 전부 경석에게 붙여 보내어 이 자리에서 왕후장상의 해원이 되게 하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춘치자명(春雉自鳴)의 설화(說話)를 들어 보라. 배짱이 그만하면 능히 그 책임을 감당하리니 뒷날 두고 보라. 경석이 금전도 무수히 소비할 것이요, 사람을 모으는 것도 갑오년보다 훨씬 많게 될 것이니라. 경석에게 밥주걱을 맡겼나니 경석은 제왕(帝王)만큼 먹고 지내리라. 이렇게 풀어놓아야 후천에 아무 일도 없으리라.” 하시고, 두루마리에 글을 써서 대공사를 처결하시며 외인의 출입을 금하시니라.
삼태육경(三台六卿): 삼정승과 육조판서.
왜 상제님께서는 동학 신명을 차경석 성도에게 붙여 해원케 하셨는가?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을 노래하며 후천개벽을 학수고대한 동학혁명의 종군자들이 바로 상제님의 무극대운을 부르짖은 일꾼들이기 때문이다. 이에 상제님께서 몸소 그들의 원한을 초기 증산도 도운 개척의 운로에 붙여 해소시키셨다.
춘치자명(春雉自鳴): 봄꿩이 제 스스로 운다는 뜻으로, 시키거나 요구하지도 않는데 제가 스스로 나서서 손해를 보거나 죽음을 당한다는 말이다.
道典 6:32) 강령을 받아야 하느니라
하루는 경석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강령(降靈)을 받아야 하느니라.” 하시고, ‘元皇正氣 來合我身’을 읽히시며 방문을 여시니 경석이 갑자기 소리를 내며 통곡하다가 이윽고 그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울음은 신명에게 벌 받는 소리니라.” 하시니라.
道典 6:53) 새벽에 한 시간씩 자고 공부하라
6월에 대흥리에 계실 때 공우로 하여금 각처 성도들에게 “순회하여 전하라.” 하시며 명하시기를 “21일 동안 잠자지 말고 새벽에 한 시간씩만 자고 공부하며 수마를 극복하라. 큰 힘을 얻으리라.” 하시니라.
기한이 다 차매 모두 심히 피로해 하는데 경석이 가장 심하더니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에 문 앞 모시밭 가에 이르러 정신을 잃고 쓰러지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무슨 천자냐!” 하시고 “천자(天子)를 도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 하시니라.
道典 6:54) 큰 이무기를 잡았노라
대흥리에서 하루는 차경석, 안내성, 박공우를 데리고 앞내에 나가 목욕하실 때 경석에게 명하시어 소금 한 줌을 가져다 물 위에 뿌리게 하시고, 물에 들어서시며 “고기잡이를 하리라.” 하시더니 느닷없이 경석의 다리를 잡고 “큰 이무기를 잡았다.” 하시거늘,
경석이 아뢰기를 “제 다리입니다.” 하니 “그렇게 되었느냐?” 하시고 놓으시니라. 이후에 경석과 공우를 데리고 어디를 가실 때 경석을 돌아보며 말씀하시기를 “이무기가 용(龍)이 되려다가 되지 못하고 땅에 떨어지면 30리 안이 쏘가 되나니 이 말을 잘 기억하라.” 하시니라.
큰 이무기: 이는 월곡 차경석이 야심을 펴면서 상제님을 배반하여 성공하지 못할 것을 내다보시고 하신 말씀이다.
道典 6:85) 도운 개척의 병권 공사
하루는 상제님께서 황극수(皇極數)를 돌리시며 여러 성도들에게 각각 소원을 물으시고 다시 차경석에게 소원을 물으시니 경석이 열지(裂地)를 원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병부(兵部)가 마땅하리라.” 하시니 경석이 불쾌히 여기는지라 이에 말씀하시기를 “직신(直臣)이 아니면 병권을 맡기기 어려우므로 이제 특히 너에게 맡기노라.” 하시니라.
열지(裂地)를 원하거늘: 차경석 성도는 천하를 쥐고 통솔할 만한 기국과 뱃심이 있었다. 상제님께서는 그 영웅적인 기질을 도운 개척의 역사에 쓰시어 난법 도수의 시간대에 인사 대권을 맡는 사역자로 내세우셨다.
道典 6:89) 수부님께 경석을 경계하게 하심
하루는 상제님께서 경석에게 “세숫물을 가져오라.” 명하시므로 경석이 세숫물을 가져다 올리고 나가거늘, 상제님께서 손가락으로 경석을 가리키시며 수부님께 이르시기를 “저 살기(殺氣)를 보라. 경석은 만고대적(萬古大賊)이라. 자칫하면 내 일이 낭패 되리니 극히 조심하라.” 하시니라.
道典 6:90) 네가 나를 꼭 믿겠느냐
하루는 상제님께서 한참 바쁘게 공사를 보시다가 느닷없이 “경석아! 네가 나를 꼭 믿겠느냐?” 하시니 경석이 “예! 꼭 믿겠습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이와 같이 세 번을 다짐받으신 후에 다시 물으시기를 “그렇다면 내가 두겁을 써도 믿겠느냐?” 하시니 “예! 그대로 믿겠습니다.” 하고 대답하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집안은 전주 이씨(全州李氏) 때문에 망하게 되리라.” 하시고, 다시 이르시기를 “내 일은 셋만 있어도 하고, 셋이 없으면 둘만 있어도 하고, 둘이 없으면 하나만 있어도 하느니라. 그 하나도 없으면, 말뚝에다 기운만 붙이면 천하사를 하느니라.” 하시고 붓대를 던지시니라.
전주 이씨 때문에: 차경석 성도는 18세 때 담양의 전주 이씨 가문에 장가들었다. 그의 장인은 동학혁명 때 황룡강 싸움에서 전사한 세칭 ‘이장태’로 알려진 이용길(李龍吉)이다. 차경석 성도가 道紀58년(戊辰, 1928)에 이르러 아내 이씨로부터, ‘영안을 통하여 보니 상제님의 자리에 삼황오제신이 들어서고 상제님께서 풀대님에 삿갓을 쓰고 보좌를 떠나시더라.’는 말과 ‘삼황오제신은 곧 경석의 아버지 차치구’라는 말을 듣고 혹하여 차치구를 신앙 대상으로 받들고 교리도 유교식으로 바꾸었다.
道典 6:91) 대도의 험난함을 한탄하심
하루는 대흥리에 계실 때 경석이 뜰 앞을 지나가거늘 바라보시고 탄식하여 말씀하시기를 “숙살지기(肅殺之氣)가 온몸에서 뚝뚝 떨어지니 백성들이 많이 상하겠구나.” 하시고, “내 도(道)가 험난하겠구나.”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경석에게 말씀하시기를 “동학(東學)은 차정(車鄭)으로 망하느니라.” 하시고, 또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잠시 시운(時運)으로 경석을 쓰려 하는 것이니라.” 하시니라.
道典 6:92) 장군이 제지하라
12월 20일에 성도들에게 24절후를 읽히신 후 밤중에 경석의 집 앞 버드나무 밑에 벌여 세우시고, 북쪽을 향하여 휘파람을 부시니 난데없이 방장산(方丈山)으로부터 한 줄기 실구름이 일어나서 사방을 둘러 문턱 모양을 이루거늘,
상제님께서 큰 소리로 외쳐 말씀하시기를 “곤이내(閫以內)는 짐(朕)이 제지(制之)하리니 곤이외(閫以外)는 장군이 제지하라!” 하시니라.
곤이외(閫以外)는 장군이 제지: 삼국시대에 오나라의 손권(孫權)이 백면서생 육손(陸遜)을 대장군으로 임명할 때 그의 손을 들고 외친 말. 이는 증산 상제님께서 영웅의 정신을 가진 차경석 성도를 내세워 난법도운의 개척 시대를 열도록 명하신 공사이다.
장군: 상제님께서는 선천의 역사적인 창업 시조들의 천하사 군대정신을 그대로 공사에 이화하시어 제1변 도운 개척과 제3변 도운 마무리 실무책임자에게 각기 장군 도수를 붙이셨다.
道典 8:60) 주장(主將)의 일하는 법
10월에 순창 농바우 박장근(朴壯根)의 집에서 차경석에게 장군도수를 붙이시고 대흥리로 돌아오시는 길에 태인 고현내 행단(古縣內 杏壇)에 이르시어 경석에게 말씀하시기를 “공자가 행단(杏壇)에서 도를 가르쳤다 하나니 여기서 네게 한 글을 전하리라.” 하시고 옛글 한 장을 외워 주시니 이러하니라.
夫主將之法은 務攬英雄之心하고 賞祿有功하고 通志于衆이라 故로 與衆同好靡不成이요 與衆同惡靡不傾이니 治國安家는 得人也요 亡國破家는 失人也라 含氣之類는 咸願得其志니라
무릇 주장(主將)의 일하는 법은 영웅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힘쓰고, 공 있는 자는 상과 녹을 주고, 뭇 사람과 한마음으로 뜻을 통하는 데 있느니라. 그러므로 여러 사람과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고, 여러 사람과 미워하는 것을 함께 하면 기울어지지 않는 것이 없나니
나라를 잘 다스리고 집안을 평안케 함은 사람을 얻는 데 달려 있고, 나라가 망하고 집안을 망침은 사람을 잃는 데 있느니라. 생명을 가진 만물은 모두 그 뜻을 이루기 원하느니라. 이어 말씀하시기를 “이 글은 장수(將帥)가 될 자의 대감(大鑑)이니라.” 하시니라.
道典 10:5) 경석에게 재삼 다짐을 받으심
상제님께서 경석의 집에 머무르실 때 경석에게 이르시기를 “모든 일이 뜻에 맞지 아니하니 내가 이 세상을 버릴 수밖에 없구나. 세상을 떠나기는 극히 쉬운 일이니라. 몸에 있는 정기(精氣)를 흩으면 불티 사라지듯 하느니라.” 하시고 바로 베개를 베고 누우시니
경석이 놀라 여쭈기를 “어인 말씀이십니까? 제가 비록 불초하오나 모든 일에 명하심을 좇아 물불이라도 피하지 않겠나이다. 걱정을 거두소서.” 하거늘, 말씀하시기를 “네가 능히 내 명을 좇을 수 있겠느냐?” 하시고 재삼 다짐을 받으신 뒤에 일어나 공사를 행하시니라.
道典 10:26) 너희들이 나를 믿느냐
이 날 상제님께서 여러 성도들을 한 줄로 꿇어앉히시고 말씀하시기를 “이제 너희들에게 다 각기 운수를 정하였나니 잘 받아 누릴지어다. 만일 받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그것은 성심(誠心)이 없는 까닭이니라.” 하시고, 다시 “너희들이 나를 믿느냐?” 하고 물으시니 모두 큰 소리로 “믿습니다.” 하고 대답하니라.
또 물으시기를 “죽어도 믿겠느냐?” 하시니 모두 대답하기를 “죽어도 믿겠습니다.” 하고 맹세하거늘, 이와 같이 세 번 다짐을 받으신 뒤에 말씀하시기를 “한 사람만 있어도 나의 일은 이루어지느니라.” 하시니 다만 성도들은 ‘천하사를 도모하는데 위지(危地)에 들어가서 죽게 될지라도 믿겠느냐.’는 뜻으로 알더라. 또 잠시 후에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천지신명 공판에서 정읍 차경석을 잘 선정하여 실수가 없으니 내가 사람을 잘 알아서 썼다.” 하시니라.
道典 10:58) 형렬에게 기대어 태을주를 읽으심
이 때 호연이 신안으로 보니 장수옷을 입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장들이 말을 타고 기치창검으로 무장한 채 문밖과 집 주위 를 에워싸고 있더라.신장들이 상제님께 각기 인사를 드리며 ‘저는 아무개입니다, 아무개입니다.’ 하고 일일이 보고를 드린 다음 한 신장이 앞으로 나서서 “모시러 왔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크게 호통 치시기를 “시간이 아직 안 되었는데 뭣 하러 그새 발동을 했느냐!
때가 되기도 전에 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 신장들이 일제히 양쪽으로 갈라서서 하명을 기다리더라. 형렬이 호연에게 나가 있으라는 눈짓을 보내니 호연이 “비가 저렇게 쏟아지는데 나가다가 넘어지면 어떻게 해?” 하며 가려 하지 않거늘 상제님께서 “안아다가 놓아 줘라.” 하고 명하시매 누가 뒤에서 덥석 보듬어다 찬문의 방에 내려놓고는 문을 닫고 가 버리는지라
호연이 홀로 방에 앉아서 보는데 양쪽으로 늘어선 신장들 가운데 한 신명이 손바닥에 무엇을 올려놓고 다른 손으로 탁 쳐 보더니 신장들을 향하여 “아직도 시간이 멀었구나.” 하고 이르더라. 이에 줄의 맨 앞에 선 신장 하나가 줄의 가운데로 걸어나오니 양쪽 신장들이 그 뒤를 줄줄이 따르거늘, 그렇게 얼마를 걸어나와 다시 양쪽으로 갈라져서 되돌아가더니 이내 처음과 같이 정렬하니라. 신장들이 두 줄로 서서 명을 기다리는데 상제님께서 “나○○ 왔느냐?” 하고 물으시거늘, 그 신장이 아직 당도하지 않았기로 다른 신장이 나서며 “오시(午時) 지났습니다.” 하고 아뢰니
상제님께서 “이놈아, 네가 시기를 아느냐?” 하고 꾸짖으시니라. 이어 형렬에게 “꿀물 한 그릇을 가져오라.” 하여 드시고 “날은 덥고 머나먼 길을 어찌 갈꺼나.” 하시며 형렬에게 몸을 기대신 채 작은 소리로 태을주(太乙呪)를 읽으시니 방안에는 김형렬과 최상문, 그 외 두 명의 성도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더라. 이 때 경석이 방으로 들어오니 흘겨보며 말씀하시기를 “정가(鄭哥), 정가(鄭哥)! 글도 무식하고 똑똑하지도 못한 것이 무슨 정가냐!” 하시고 다시 누우시니라.
道典 10:5) 경석에게 재삼 다짐을 받으심
상제님께서 경석의 집에 머무르실 때 경석에게 이르시기를 “모든 일이 뜻에 맞지 아니하니 내가 이 세상을 버릴 수밖에 없구나.
세상을 떠나기는 극히 쉬운 일이니라. 몸에 있는 정기(精氣)를 흩으면 불티 사라지듯 하느니라.” 하시고 바로 베개를 베고 누우시니,
경석이 놀라 여쭈기를 “어인 말씀이십니까? 제가 비록 불초하오나 모든 일에 명하심을 쫒아 물불이라도 피하지 않겠나이다. 걱정을 거두소서.” 하거늘, 말씀하시기를 “네가 능히 내 명을 쫒을 수 있겠느냐?” 하시고 재삼 다짐을 받으신 뒤에 일어나 공사를 행하시니라.
道典 10:6) 세 식구가 하나 되어도 나를 믿겠느냐
상제님께서 하루는 경석과 내성을 불러 앉히시고 먼저 경석에게 “네 열세 식구가 한 몸이 되어도 나를 믿겠느냐?” 하고 물으시니
경석이 “저는 열세 식구가 다 살아야겠습니다.” 하고 아뢰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적놈이라.” 하시니라. 이어 내성에게 물으시기를 “내성이 너는 세 식구가 한 몸이 되어도 나를 믿겠느냐?” 하시니
내성이 “예, 세 식구가 한 몸이 되어도 믿겠습니다.” 하고 아뢰거늘 상제님께서 “그러면 그렇지! 그래야지.” 하시며 크게 기뻐하시니라.
내성에게 붙이신 천지성경신 도수
일찍이 상제님께서 내성을 평하시기를 천지성경신 안내성(天地誠敬信 安乃成), 천지불변심 안내성(天地不變心 安乃成), 천지공경신 안내성(天地恭敬信 安乃成)이라 하시더니 상제님께서 어천하신 후에도 내성은 어디를 가든지 상제님께서 잠시 앉으셨던 곳이라도 보면 멈추어 인사를 올리고 어머니와 동생을 먼저 떠나보내고도 종신토록 마음을 변치 않고 상제님의 명을 일심으로 지키니라.
道典 10:7) 마음을 변치 않겠느냐
상제님께서 하루는 수부님께 물으시기를 “내가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을 변치 않겠느냐?” 하시니, 수부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어찌 변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시매 상제님께서 글 한 수를 외워 주시니 이러하니라.
無語別時情若月이언마는 有期來處信通潮라
무어별시정약월 유기래처신통조
말없이 이별할 때의 정은 으스름 달빛처럼 애련한 것이언만 다시 올 기약 있어 믿는 마음은 조수처럼 어김이 없을진저. 또 말씀하시기를 “네게 세 가지 큰 병이 있으니 그중 악한 병이 단독(丹毒)이라.” 하시고, 이어서 “내가 천상에서 신씨(申氏)보고 잘 맡아 보라 하였더니 병 두 가지를 붙여서 보냈구나.” 하시더니 “독기(毒氣)를 뺀다.” 하시며 수부님의 손등을 이빨로 한참 동안 물어 피멍이 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이제 단독은 염려 없다.” 하시니라. 이에 수부님께서 “나머지 병도 없애 주소서.” 하시니 말씀하시기를 “모든 일에 한도가 있고 책임이 있다.” 하시고, “나머지는 이후에 치유(治癒)할 사람이 있다.” 하시니라.
신씨(申氏): 신여옥(申汝玉, ?~1907).본관 평산(平山), 부 영오(永五)의 장남. 고수부님의 사별(死別)한 남편. 정미(道紀 37, 1907)년 6월 20일에 작고했다.
道典 10:8) 하루는 성도 수십 명을 불러 모으신 다음 대학(大學)과 여러 주문(呪文)과 부서(符書)를 수습하여 수부님 앞에 놓게 하시고, 수부님으로 하여금 동쪽을 향해 앉아서 시천주주(侍天主呪) 21독을 하게 하신 뒤에 두 분이 서로 마주보고 절을 하시고 천지에 고축(告祝)하시니라. 이어 상제님께서 글 한 수를 읽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吾君誓約重十山하니 踏盡高高太乙壇이라
오군서약중십산 답진고고태을단
나와 그대가 맹세한 언약 온 세상 산보다 무겁고, 높고 높은 태을궁으로 인도하여 천하창생을 건지느니라. 상제님께서 수부님께 물으시기를 “내가 수만 리 밖에 가 있으면 어찌하겠느냐?” 하시니, 수부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어디든지 찾아가겠습니다.” 하시거늘, 상제님께서 “오지 못하리라.” 하시며 “내가 찾아오리니 기다리고 있으라.” 하시니라.
道典 10:9) 하루는 상제님께서 수부님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없으면 크나큰 세 살림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 하시니, 수부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하고 간곡히 청하시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시며 “너는 갈 곳이 못 되노라.” 하시거늘, 수부님께서 “그러면 언제 오시렵니까?” 하고 여쭈니 “곧 돌아오리라.” 하시고, “임옥(臨沃)에서 땅 빠진다.” 하시니라.
수부님께 다짐을 받으심
또 상제님께서 “네가 나를 꼭 믿느냐?” 하고 다짐을 받으시니 수부님께서 “꼭 믿습니다.” 하시며 굳게 맹세하시니라.
임옥(臨沃): 임피와 옥구를 함께 이른 말.
임옥(臨沃)에서 땅 빠진다: 태모님께서 오성산 도장에서 선화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
道典 10:10) 기유(己酉 : 道紀 39, 1909)년 2월 9일에 김자현(金自賢)을 데리고 금구 내주평(金溝 內注坪) 정남기(鄭湳綺)의 집에 가시어 말씀하시기를 “이 길이 나의 마지막 길이니 처족(妻族)들을 일일이 찾으리라.” 하시며 등불을 들리시고 밤새도록 여러 집을 찾으시니라. 이튿날 새벽에 수각리(水閣里) 임상옥(林相玉)의 집에 가시어 양지에 글을 쓰시고 그 종이를 잘게 잘라 서로 이은 다음 집의 뒷담에서 앞대문까지 연결하시니 그 길이가 꼭 들어맞더라.
공사를 마치시고 그 동리에 사는 김문거(金文巨)의 집에 가셨다가 다시 만경(萬頃) 삼거리에 이르시어 술을 드시며 쉬실 때, 마침 한 중이 지나가매 상제님께서 불러 돈 3전을 주시고 자현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오늘 오후에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으리니 내가 잊어버리더라도 네가 잘 살펴보라.” 하시거늘, 오후가 되어 자현이 보니 과연 흰 무지개(白虹)가 해를 꿰뚫으니라.
道典 10:11) 가족을 당부하심
고부(古阜) 본댁에 계실 때 하루는 상제님께서 내촌(內村)에 가셨다가 쌍정리(雙丁里)를 거쳐 손바래기로 돌아오시니라. 오시는 길에 나뭇가지로 회초리를 만들어서 좌우로 휘저으며 걸으시니 마치 무엇을 몰고 가시는 듯하더라. 이와 같이 회초리를 저으시며 강성회(姜聖會)의 집에 가시어 영탁(永鐸)에게 말씀하시기를 “장차 네가 나를 대신하여 내 집안을 돌보자면 수고가 많으리라. 고목(枯木)에 장차 꽃이 피리라.” 하시니라. 그 길로 본댁에 돌아오시니 가족들이 모두 모이거늘 말씀하시기를 “每事不待自然來라.” 하시니라.
道典 10:12) 하루는 상제님께서 종이에 제비를 그리신 후에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선매숭자를 써야 나갔던 제비가 다시 들어온다.” 하시고, 호연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낳기는 제 어미가 낳았어도 맥은 얘가 붙인다. 이 도수를 맞추려면 삼색(三色) 실과 제물이 있어야 하고, 첫 몸을 받아야 천지에 공을 드릴 수 있나니 이 애를 잘 돌봐서 선매숭자를 받아라. 선매숭자를 지녀야 표적이니라.” 하시고 호연의 첫 경도(經度)를 받아서 공사를 행하도록 그 방법을 세세히 일러 주시니라.
道典 10:13) 내가 죽더라도 이렇게 해라
이 해 봄에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내가 죽고 없더라도 이렇게 해라.” 하고 무엇을 가르쳐 주시니, 자현이 이를 보고 시새워서 “저도 좀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거늘, 상제님께서 꾸짖으시며 “그럼 네 조상을 내게 다 주겠느냐?” 하고 물으시니라. 자현이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어 “조상을 다 드리다니요….” 하며 대답을 얼버무리니,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어느새 자현이 모악산 꼭대기의 바위 위에 앉아 있거늘, 아무리 내려오려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주위가 온통 강이 되어 도저히 나올 길이 없는지라 자현이 막막한 마음에 그저 빙빙 돌기만 하니라.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이를 보여 주시며 물으시기를 “어쩌냐, 너하고 형제간이라 마음이 안타까우냐, 서운하냐? 놓아주랴, 건네주랴?” 하시니, 형렬이 대답하기를 “아이고, 모르겠습니다. 건네주려면 주시고 마음대로 하시지 저는 이러시라 저러시라 못 하겠습니다.” 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웃으시며 “어째서 그러냐?” 하고 다시 물으시니 형렬이 “저도 그놈 괘씸하니 살려 주시라 마시라 그런 소리 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돌아서며 혼잣말로 “자식이 뭔 죄인고. 애비 죄를 자식이 대신할 게 아닌데….” 하거늘
상제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시며 “그래도 깡다구는 있구나.” 하시니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어느 결에 자현이 돌아와 앉아 있더라. 상제님께서 어리둥절해하는 자현에게 타일러 말씀하시기를 “네가 뉘 덕으로 곁에 와 있는 줄 아느냐? 형렬이 ‘애비 죄로 자식이 뭔 고생이냐.’고 그러길래 내가 너를 건네주었느니라. 그렇지 않았으면 너는 강만 뱅뱅 돌다 말 참이었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10:14) 내가 장차 죽으리라
3월에 하루는 상제님께서 하루 밤낮으로 계속하여 코피를 흘리시거늘, 김갑칠(金甲七)에게 명하여 관을 짜게 하시고 감주 한 그릇을 드시니 코피가 그치고 원기가 곧 회복되시니라. 이 달에 상제님께서 형렬과 자현을 데리고 전주(全州)에 가시려고 청도원(淸道院) 뒷재를 넘어가실 때, 자현이 아뢰기를 “저의 조모가 오늘로 학질이 세 직이온데 어떻게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니, “학질이 세 직이면 거적 갖고 달려든다는 것 아닌가!”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백남신(白南信)의 집에 이르시어 남신을 데리고 전주 남문 누각에 올라 북학주(北學主) 공사를 보시고 남신의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드시니라. 이때 한 사람이 급히 달려 들어오며 자현에게 ‘조모께서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전하는지라 일행이 구릿골로 돌아오니 장례 준비가 한창이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학질로 상한다.’ 함이 옳도다.” 하시니라. 며칠 후 친히 잡아 주신 장지(葬地)에 이르러 의관을 벗으신 다음 칠성판을 등에 대시고 널 안에 누우시더니
말씀하시기를 “죽어서나 누울까 살아서는 못 눕겠다.” 하시고 다시 “내 몸에 맞기는 맞는다.” 하시니라. 그 뒤에 자현을 불러 이르시기를 “널 한 벌을 만들어야 하겠으니 박춘경(朴春京)의 집에서 파는 관재(棺材) 중 잘 맞는 것으로 가져오라. 내가 장차 죽으리라.” 하시고, 다시 혼잣말로 말씀하시기를 “이 살이 어서 썩어야 할 텐데….” 하시니
자현이 놀랍고도 민망하여 “선생님이시여, 어찌 그런 상서롭지 못한 말씀을 하십니까?” 하고 여쭈거늘 “네가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하시니라.
박춘경(朴春京, 1857∼1924): 본관 밀양(密陽). 부 근성(根盛)과 모 황씨(黃氏)의 장남. 김제시 금산면 청도원에서 평생을 살았다.
道典 10:15) 하루는 상제님께서 연자봉(燕子峰)을 가리키시며 물으시기를 “저 봉우리를 사람들이 뭐라고 부르느냐?” 하시니, “연자봉이라 합니다.” 하고 아뢰거늘 “연자봉이 아니라 제비봉(帝妃峰)이니라.” 하시니라. 또 하루는 구릿골 앞 오리알터를 가리키며 말씀하시기를 “저곳을 세상 사람이 나의 묘지라고 하리라. 그러나 개뼈가 묻힌지 소뼈가 묻힌지 누가 알겠느냐?” 하시니라. 이 해 4월에 상제님께서 청도원 이극서의 집에 종종 찾아와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두 달 뒤에 죽으리라.” 하시니, 극서는 ‘돈 사람이 미친 소리 한다.’고 생각하니라.
道典 10:16) 죽고 살기를 뜻대로 하노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죽음길이 먼 곳이 아니라 문턱 밖이 곧 저승이니, 나는 죽고 사는 것을 뜻대로 하노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나는 손이 한 마디만 있어도 일어나고, 머리카락 하나만 있어도 거기 붙어서 나오느니라.” 하시니라. 하루는 장탯날 풀밭에 누워 말씀하시기를 “이곳이 나중에 내 몸을 위한 땅이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죽은 후에 천개(天蓋)에다 못질을 하지 말라.” 하시고, “죽은 자의 시신을 묶는 것은 선천의 악법이니라.” 하시니라.
道典 10:17) 하루는 상제님께서 박공우(朴公又)에게 물으시기를 “네가 일찍 부모를 잃었느냐?” 하시니 공우가 “예, 그렇습니다.” 하거늘, 말씀하시기를 “이 뒤로는 나의 부모를 네 부모와 같이 섬기라.” 하시니라. 또 이르시기를 “공우야, 내가 천하사를 하기 위해 떠나리니 내가 돌아오기까지 죽으로 연명하라. 너희들은 오직 식난(食難)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울타리 없는 집에서 살라. 찌그러진 오막살이에서 살아도 진심으로 나를 믿고 공부하라.” 하시니라.
道典 10:18) 형렬의 큰며느리인 이정숙(李貞淑)이 상제님을 정성스럽게 수발들며 시아버지처럼 잘 섬기거늘, 상제님께서 손수 은비녀도 사다 주시고 신발도 꽃신, 진신, 마른신을 다 사다 주시며, 또 “없는 데 시집와서 불쌍하다.” 하시며 돈을 주기도 하시니 정숙이 더욱더 지성으로 모시니라.
道典 10:19) 본댁을 찾으시고 성묘하심
5월에 상제님께서 객망리에 가시어 각 선령(先靈)의 묘소에 성묘하시고 시루산에 오르시어 조모님의 산소를 찾으시니라. 성묘하신 후에 서산리(書山里) 외가를 찾으시고 다시 객망리 수십 호 문중을 찾으시니 문중 노인들이 ‘집안을 망쳐 놓은 증산이라.’고 욕하며 반기지 않으니라.
며칠 후에 상제님께서 부모님께 이별의 예를 올리시면서 “지금 떠나면 언제 올지 모르오니 몸을 안보(安保)하십시오.” 하시고 밖으로 나오시니라.
道典 10:20) 이 달에 갑칠에게 장령(將令)을 붙여 서양으로부터 우사(雨師)를 넘겨 오시니 류찬명(柳贊明)이 여쭈기를 “이러한 묘한 법을 세상 사람이 다 알지 못하오니 원컨대 세상 사람으로 하여금 널리 알게 하옵소서.” 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가 길게 살기를 바라는구나.” 하시고 옛글을 외워 주시니 이러하니라.
稚兒哭問母何之하니 爲道靑山採菜遲라
치아곡문모하지 위도청산채채지
日落西山人不見한대 更將何說答啼兒오
일락서산인불견 갱장하설답제아
어린아이가 울면서 어머니 간 곳을 물으니 저 청산에 약초 캐러 간 발걸음이 더디다고 이르더라. 해는 서산에 지고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데, 장차 무슨 말로 저 우는 아이의 마음을 달래 주리오. 또 남원(南原) 양봉래(楊蓬萊)의 ‘자만시(自輓詩)’를 외워 주시니 이러하니라.
詩中李白酒中伶인대 一去靑山盡寂寥라
시중이백주중령 일거청산진적요
又去江南楊進士하니 鷓鴣芳草雨蕭蕭라
우거강남양진사 자고방초우소소
시로 말하면 이태백이요 술 잘 마시기로는 유령이 뛰어난데, 한 번 죽어 청산에 들어가니 모두 소식이 없네. 이제 또 강남의 양 진사도 가 버리니 자고새는 방초 위에 슬피 울고 고적한 비바람만 뿌리는구나.
道典 10:24) 부디 마음을 잘 닦으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장차 천하사를 하러 떠나리니 돌아올 때에 48장(將) 늘여 세우고 옥추문(玉樞門)을 열면 정신 차리기 어려우리라. 부디 마음을 잘 닦으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상말에 ‘이제 보니 수원(水原) 나그네’라 하나니 ‘누구인지 모르고 대하다가 다시 보니 낯이 익고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니 낯을 잘 익혀 두라. 내가 장차 열석 자로 다시 오리라.” 하시고, “수운가사에 ‘발동(發動) 말고 수도(修道)하소. 때 있으면 다시 오리.’라 하였나니 알아 두라.” 하시니라. 또 하루는 성도들에게 옛글 한 수를 읽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乾坤不老月長在하고 寂寞江山今百年이라
건곤불노월장재 적막강산금백년
천지는 쇠하지 않아 달이 항상 떠 있고, 적막한 강산은 이제 백 년이로다.
道典 10:25) 내가 항상 너희들의 등 뒤에 있건마는
상제님께서 성도들에게 약방으로 모이라는 통지를 띄우시고 형렬에게 “의복 한 벌을 새로 지으라.” 명하신 뒤에 이로부터 곡기를 끊으시고 소주만 잡수시니 이 때 형렬의 큰며느리가 수종 드니라. 20일에 각처 성도들이 구릿골에 모이니 김형렬, 김갑칠, 김자현, 김덕찬, 문공신과 그의 큰아들 광옥, 박공우, 김경학, 신원일, 이치복, 이공삼, 최덕겸, 채사윤, 류찬명과 그의 큰아들 재옥 등이라.
상제님께서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몸을 피하려 하나니 너희들이 능히 나를 찾겠느냐?” 하시니, 모두 큰 소리로 “찾겠습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때가 되면 다 한 마당에 들어선다.” 하시니라. 다시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씀하시기를 “이후에 너희들이 나를 보지 못하여 애통해하며 이곳에서 왔다갔다하는 모습이 내 눈에 삼삼하니라. 나는 항상 너희들의 등 뒤에 있건마는 너희들은 나를 찾지 못할 것이요, 내가 너희들을 찾아야만 나를 만나 보게 되리라.” 하시니라.
道典 10:26) 너희들이 나를 믿느냐
이 날 상제님께서 여러 성도들을 한 줄로 꿇어앉히시고 말씀하시기를 “이제 너희들에게 다 각기 운수를 정하였나니 잘 받아 누릴지어다. 만일 받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그것은 성심(誠心)이 없는 까닭이니라.” 하시고, 다시 “너희들이 나를 믿느냐?” 하고 물으시니 모두 큰 소리로 “믿습니다.” 하고 대답하니라. 또 물으시기를 “죽어도 믿겠느냐?” 하시니 모두 대답하기를 “죽어도 믿겠습니다.” 하고 맹세하거늘, 이와 같이 세 번 다짐을 받으신 뒤에 말씀하시기를 “한 사람만 있어도 나의 일은 이루어지느니라.” 하시니
다만 성도들은 ‘천하사를 도모하는데 위지(危地)에 들어가서 죽게 될지라도 믿겠느냐.’는 뜻으로 알더라. 또 잠시 후에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천지신명 공판에서 정읍 차경석을 잘 선정하여 실수가 없으니 내가 사람을 잘 알아서 썼다.” 하시니라.
道典 10:27) 상제님께서 형렬이 새로 지어 올린 옷으로 갈아입으시고 천지공사(天地公事)를 마쳤음을 성도들에게 선포하시니, 김경학(金京學)이 여쭈기를 “공사를 마치셨으면 나서시기를 바라옵니다.” 하는지라 말씀하시기를 “사람 둘이 없으므로 나서지 못하노라.” 하시거늘,
경학이 재촉하여 말하기를 “제가 비록 무능하지만 몸이 닳도록 두 사람의 일을 대행하겠습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그렇게 되지 못하느니라.” 하시니라.
경학이 서운히 여겨 말하기를 “그러면 우리는 모두 쓸데없는 사람이니 선생님을 따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고, 여러 성도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다 복 없는 사람이니 함께 손잡고 물러감이 옳다.” 하며 일어서서 문밖으로 나가니 상제님께서 만류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좀 기다리라.” 하시니라.
道典 10:28) 모든 병을 대속하시고 영원한 강녕을 내려 주심
경학이 말씀을 거역하지 못하고 다시 들어오니 상제님께서 자리에 누우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천하의 모든 병을 대속(代贖)하여 세계 창생으로 하여금 영원한 강녕(康寧)을 얻게 하리라.” 하시니라. 이로부터 각종 병을 번갈아 앓으시되, 한두 시간씩 고통스러워하시며 병을 앓으신 뒤에는 갑자기 일어나 앉으시어 “약을 알았다.” 하시고,
거울을 들어 용안을 이윽히 보시면 그 수척하고 열기가 떠올랐던 기색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곧 원기를 회복하시니라. 앓으신 병은 대략 운기(運氣), 상한(傷寒), 황달(黃疸), 내종(內腫), 호열자(虎列刺) 등이더라. 병을 다 앓으신 뒤에 말씀하시기를 “세상에 있는 모든 병을 다 대속하였으나 오직 괴병은 그대로 남겨 두고 너희들에게 의통(醫統)을 전하리라.” 하시니라.
道典 10:29) 괴질을 대속하심
이 때 청주(淸州)에서 괴질이 창궐하고, 나주(羅州)에서도 크게 성하여 민심이 들끓는지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남북에서 마주 터지니 장차 수많은 생명이 죽으리라.” 하시고
勅令怪疾神將이라
칙령괴질신장
胡不犯帝王將相之家하고
호불범제왕장상지가
犯此無辜蒼生之家乎아
범차무고창생지가호
괴질신장에게 내리는 칙령이라. 어찌 제왕과 장상의 집은 범하지 않고, 이같이 무고한 창생들의 집을 범하느냐! 라 써서 불사르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것을 대속하리라.” 하시고 형렬에게 명하시어 새 옷 다섯 벌을 급히 지어 올리게 하신 다음 한 벌씩 갈아입으시고 설사하여 버리신 뒤에 다시 말씀하시기를 “병이 독하여 약한 자가 걸리면 다 죽겠도다.” 하시니 이 뒤로 괴질이 곧 그치니라.
道典 10:32) 치상비를 마련해 두심
이 날 신원일(辛元一), 이치복(李致福)이 채사윤(蔡士允)과 그의 처남으로부터 금전 약간을 받아 상제님께 올리니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그 돈을 궤에 넣게 하시고 원일에게 명하시어 금전을 낸 사람의 성명을 써서 불사르게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형렬에게 명하시어 궤 속에 보관한 돈 가운데 40원을 남겨 두고 다른 곳에 쓰지 못하게 하시며, 나머지 돈은 여러 사람의 식비에 보태어 쓰게 하시니라.
8월 1일에 환궁하리라
이 날 저녁에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곳에서 일을 꾸미기가 구차하여 이제 떠나려 하노라. 갔다 오는 사이에 서양의 여러 나라에서 일이 있으면 내가 하는 것으로 알아라. 다른 곳에서 일을 하면 내가 짓는 일이 호호탕탕(浩浩蕩蕩)하리라.” 하시고, 이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팔월 초하루에 환궁(還宮)하리라.” 하시니라.
道典 10:33) 나를 보고 싶거든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세상이 너무 악하여 몸둘 곳이 없으므로 장차 깊이 숨으려 하니 어디가 좋겠느냐?” 하시니, 채사윤은 “내장사(內藏寺)로 가심이 좋겠습니다.” 하고, 신원일은 “부안 변산(扶安 邊山)의 내소사(來蘇寺)로 가심이 좋겠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들은 체도 하지 않으시더니 잠시 후에 “나는 금산사에 가서 불양답(佛糧畓)이나 차지하리라.” 하시니라.
또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미륵이니라. 금산사 미륵은 여의주를 손에 들었거니와 나는 입에 물었노라.” 하시고, “내가 금산사로 들어가리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 미륵불을 보라. 금산사 미륵불은 육장(六丈)이나 나는 육장 반으로 오리라.” 하시니라.
道典 10:34) 천하사를 도모하려 떠나리니
이 때 신원일이 여쭈기를 “천하는 어느 때 정하려 하시옵니까? 천하를 속히 평정하시기를 바라나이다.” 하니, 말씀하시기를 “내내 하고 난 것이 동학(東學)이라. 이제 천하를 도모하려 떠나리니 일을 다 본 뒤에 돌아오리라.” 하시고, 원일에게 경계하여 말씀하시기를 “손가락을 곱작거리며 아는 체하는 자와 그 뒤를 좇는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후에 원일이 중국 천문학자들을 찾아 중국으로 가다가 압록강도 건너지 못하고 신의주에서 객사하니라.
道典 6:109) 도운道運의 시작과 종결, 분열과 대통일
하루는 세수를 하신 뒤에 “도운(道運)을 보리라.” 하시고 세숫물을 가리키시며 성도들에게 “눈을 감고 보라.” 하시거늘
모두 명하신 대로 보니 문득 넓은 바다에 뱀의 머리와 용의 꼬리가 굽이치는지라 그대로 아뢰니 말씀하시기를 “나의 형체가 사두용미(蛇頭龍尾)와 같으니라. 용은 한 잔의 물만 있어도 능히 천하의 비를 지어내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이 운수는 천지에 가득 찬 원원한 천지대운(天地大運)이므로 갑을(甲乙)로서 머리를 들 것이요, 무기(戊己)로서 굽이치리니 무기는 천지의 한문(閈門)인 까닭이니라.” 하시니라.
道典 10:36) 나는 올라가서도 난리 속에서 산다
상제님께서 떠나신다는 말씀을 믿지 못하여 성도들이 여쭈기를 “선생님께서 돌아가시다니 그게 어인 말씀이십니까? 진정 가시고 싶어 그러십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자리에 누우시며 “내가 죽으면 아주 죽느냐? 매미가 허물 벗듯이 옷 벗어 놓는 이치니라.” 하시니라. 이에 형렬이 안타까운 심정을 가누지 못하여 “어찌하여 가려 하십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내가 지금 일 때문에 급히 가려 하니 간다고 서운하게 생각지 말라. 이 다음에 다 만나게 되느니라. 나는 이제 올라가도 아사리 난리 속에서 사느니라. 지금 전쟁을 하려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데 너희들은 편한 밥 먹는 줄 알아라. 이제 배고픈 꼴도 보고 기막힌 꼴도 보게 될 것이다.” 하시니라.
道典 10:37) 태운장이 네 연분이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호연아, 호연아!” 하고 부르시매 호연이 곁으로 가니 느닷없이 “호연아, 인제 태운장이 네 연분이다.” 하시거늘 호연이 쑥스러워 “연분이 뭐여, 염불?” 하고 여쭈니 상제님께서 “아니, 네 배필.” 하고 대답하시니라. 이에 호연이 “배필은 또 무엇이래?” 하고 여쭈니 상제님께서 “네가 철이 없어서 그렇지, 시집가면 남자보고 ‘새서방’이라고 안 하더냐? 인제 그렇게 돼.” 하시거늘 호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렇게 늙었는데 새서방이라고 해요?” 하니 “인제 봐.” 하시며 웃음을 지으시니라.
道典 10:38) 내 녹줄이 떨어졌구나
상제님께서 이 달 10일부터 곡기를 끊고 소주만 드시더니 22일에 형렬에게 명하시어 “보리밥을 지어 오라.” 하시거늘, 형렬이 곧 지어 올리매 상제님께서 보시고 “가져다 두라.” 하시므로 도로 내가니라. 이로부터 한나절을 지낸 뒤에 형렬에게 명하시어 “다시 가져오라.” 하시니 밥이 쉬었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녹줄이 떨어졌구나. 내가 이제 죽으리라.” 하시니라.
道典 10:40) 선천 성인 심판 공사
이 날 오후에 약방 마당에 멍석을 깔고 상제님께서 그 위에 반듯이 누우시어 치복에게 “새 자리를 그 앞에 펴라.” 하시거늘
치복이 명하신 대로 멍석을 가져다 펴니 상제님께서 허공을 향해 준엄한 음성으로 말씀하시기를 “오늘은 참 성인을 판단하리라.” 하시고, 문 앞에 세워 두었던 기(旗)를 가져다 불사르게 하시니 뜻밖에 벽력이 일어나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큰 소리로 명하시기를 “공자(孔子) 부르라.” 하시니 성도들이 어쩔 줄 몰라 머뭇거리거늘, 다시 “어서 공자를 부르지 못할까!” 하고 호통치시매 성도들이 놀라서 엉겁결에 “공자 잡아 왔습니다.” 하는지라
상제님께서 “불러 오라 하였지 잡아 오라 했느냐? 하시며, “너희들은 눈을 감고 보라.” 하시므로 성도들이 눈을 감고 보니 뜻밖에 펼쳐 놓은 자리에 공자가 무릎을 꿇고 “공자 대령했습니다.” 하고 아뢰더라. 상제님께서 꾸짖으시기를 “공자야, 네가 소정묘(少正卯)를 죽였으니 어찌 인(仁)을 행하였다 하며, 삼대(三代) 출처(黜妻)를 하였으니 어찌 제가(齊家)하였다 하리오. 또한 내 도(道)를 펴라고 내려 보냈거늘 어찌 제자들을 도적질 해먹게 가르쳤느냐. 그 중생의 원억(寃抑)을 어찌할까. 그러고도 성인이라 할 수 있느냐! 하시니라.
이어 “석가(釋迦)를 부르라.” 하고 명하시니 즉시 석가모니가 “대령했습니다.” 하고 꿇어앉아 아뢰거늘, 상제님께서 꾸짖으시기를 “석가야, 너는 수음(樹陰) 속에 깊이 앉아 남의 자질(子姪)을 유인하여 부모의 윤기(倫氣)와 음양을 끊게 하니 너의 도가 천하에 퍼진다면 사람의 종자나 남겠느냐. 종자 없애는 성인이냐? 네가 국가를 아느냐, 선령을 아느냐, 중생을 아느냐. 이런 너를 어찌 성인이라 할 수 있겠느냐.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명하시기를 “야소(耶蘇) 부르라.” 하시니 즉시 예수가 꿇어앉아 “대령했습니다.” 하고 아뢰거늘, 상제님께서 꾸짖으시기를 “야소야, 너를 천상에서 내려 보낼 적에 내 도를 펴라 하였거늘 선령을 박대하는 도를 폈으니 너를 어찌 성인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천륜을 아느냐 인륜을 아느냐.” 하시니라.
너희들 모두 나의 도덕 안에서 살라
이어서 “노자(老子)를 부르라.” 하시니 즉시 노자가 “대령했습니다.” 하매, 상제님께서 꾸짖으시기를 “노자야, 세속에 산모가 열 달이 차면 신 벗고 침실에 들어앉을 때마다 신을 다시 신게 될까 하여 사지(死地)에 들어가는 생각이 든다 하거늘, ‘여든한 해를 어미 뱃속에 머리가 희도록 들어앉아 있었다.’ 하니 그 어미가 어찌 될 것이냐. 그런 불효가 없나니 너는 천하에 다시없는 죄인이니라.또한 네가 ‘이단(異端) 팔십 권을 지었다.’ 하나 세상에서 본 자가 없고, 나 또한 못 보았노라. 그래도 네가 신선(神仙)이냐!” 하시니라.
잠시 후에 상제님께서 또 명하시기를 “공자, 석가, 야소, 노자를 다시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모두 대령하거늘, 말씀하시기를 “들어라. 너희들이 인간으로서는 상 대우를 받을 만하나 너희들의 도덕만 가지고는 천하사를 할 수가 없느니라. 너희들의 도덕이 전혀 못쓴다는 말은 아니니 앞으로 나의 도덕이 세상에 나오거든 너희들 모두 그 안에서 잘 살도록 하라.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수천 년 밀려 오던 공사를 금일에야 판결하니 일체의 원억이 오늘로부터 고가 풀리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10:41) 오직 나의 말을 믿으라
이 날 저녁에 상제님께서 형렬을 불러 물으시기를 “네가 나를 믿느냐?” 하시므로 형렬이 대답하여 아뢰기를 “믿습니다.” 하니
말씀하시기를 “성인의 말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나니, 옛적에 자사(子思)가 위후(衛侯)에게 말하되 ‘약차불이(若此不已)면 국무유의(國無遺矣)라.’ 하였으나 위후가 그 말을 듣지 않았으므로 위국(衛國)이 참혹히 망하였느니라. 나의 말도 또한 땅에 떨어지지 않으리니 너는 오직 나의 말을 믿으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믿는 자가 한 사람만 있어도 나의 일은 되리니 너는 알아서 하라.” 하시니라.
道典 10:42) 당국하면 할 수 있느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형렬에게 물으시기를 “네가 내 일을 대신 보겠느냐?” 하시니 형렬이 “재질이 둔하고 배운 바 없으니 어찌 능히 감당하겠습니까.” 하고 대답하거늘, 상제님께서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未有學養子而後에 嫁者也라
미유학양자이후 가자야
자식 기르는 법을 배우고서 시집가는 여자는 없느니라. 순(虞舜)이 역산(歷山)에서 밭 갈고 뇌택(雷澤)에서 고기 잡고 하빈(河濱)에서 질그릇 빚을 때에는 선기옥형(璿璣玉衡)을 알지 못하였나니 당국하면 아느니라.” 하시니라. 이 날 밤에 상제님께서 누워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시기를 “삼태성(三台星)에서 허정(虛精)의 ‘허’ 자 정기가 나온다.” 하시니라.
道典 10:44) 선천 상극천지의 원과 한을 대속하심
증산 상제님께서 9년 천지공사를 종결하시고 보름 동안 곡기를 끊으시어 굶주림과 무더위 속에서 선천 상극천지의 모든 깊은 한과 원을 거두어 대속하시니, 이 때 소주를 동이째 가져다 놓으시고 큰 대접에 생청(生淸)을 타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잡수시어 사흘 만에 동이를 비우시니라. 이 때 피가 위아래로 걷잡을 수 없이 솟구치고 쏟아지매 성도들이 닦아 드리려 하되 닦지 못하게 하시거늘 입으신 명주 항라가 온통 피로 젖으니라. 상제님께서 계속 선연한 피를 쏟으시어 옷을 버리시니 형렬의 큰며느리 정숙이 여러 번 옷을 빨아 입혀 드리니라.
道典 10:45) 어천하실 것을 천지신명에게 선언하심
이 날 오후에 상제님께서 몹시 고통스러워하시거늘 약방 마루에 누우셨다가 다시 뜰에 누우시고 마당에 나가 뒹굴며 신음하시고 사립문 밖에까지 나가 누워 괴로워하시더니 한참 뒤에 형렬을 불러 이르시기를 “나를 떠메고 너의 집으로 가자.” 하시어 형렬의 집에 가서 누우셨다가 다시 약방으로 돌아오시니라. 이렇게 네댓 번 왕복하시니 형렬이 심히 지치거늘
경석이 대신하여 두어 번을 더 왕복하니라. 잠시 후 상제님께서 일곱 사람에게 양쪽 팔다리와 허리와 머리를 떠받치게 하시고, “이리 가자.” 하시어 가리키신 곳으로 가면 잠시 뒤에 다시 “저리 가자.” 하시는데, 이러기를 여러 차례 하시더니 다시 약방으로 가 누우시니라. 이 때 갑자기 상제님께서 누우신 채 천장으로 일곱 번을 튀어 오르시니라.
생사의 도는 몸의 정기(精氣)에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죽고 살기는 쉬우니 몸에 있는 정기(精氣)를 흩으면 죽고 모으면 사느니라.” 하시고, 경석으로 하여금 양지에
全羅北道 古阜郡 優德面 客望里 姜一淳 西神司命
전라북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 강일순 서신사명이라 써서 불사르게 하시니라.
종통을 바로잡으라
또 공신에게 말씀하시기를 “맥 떨어지면 죽으리니 연원(淵源)을 바로잡으라.” 하시니라.
道典 10:46) 내 그늘을 벗어나면 죽으리라
밤이 되어 상제님께서 송환으로 하여금 급히 자현을 불러오게 하시거늘 자현이 대령하니 방 가운데에 짚자리를 펴고 청수 한 동이를 올리게 하신 다음 “네가 나를 믿느냐?” 하고 물으시니라. 이에 자현이 대답하기를 “지성으로 믿나이다. 제가 만일 믿음이 부족하였다면 고부화란 끝에 배반하였을 것입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옳도다.
내가 이제 일이 있어서 내일 어디로 떠나려 하니 돌아오도록 음(陰) 자라도 받들고 약방을 자주 다니며 잘 믿고 있으라. 만일 내 그늘을 벗어나면 죽으리라.” 하시니라. 자현이 간청하여 아뢰기를 “제가 모시고 따라가려 하오니 허락하여 주옵소서.” 하니, 말씀하시기를 “자현아, 네가 갈 곳이 못 되느니라. 나 혼자 갔다가 다시 오리니 안심하고 있으라.” 하시니라.
道典 10:48) 인류 구원의 의통을 전수하심
이 날 밤 성도들을 모두 물리시고 공우만 부르시어 같이 주무실 때, 밤이 깊기를 기다려 이르시기를 “이리 가까이 오라.” 하시거늘
경석이 상제님께서 공우에게 비명(秘命)을 내리실 줄 알고 엿듣고자 마루 귀퉁이에 숨어 있었으나 공우는 이를 알지 못하니라.
상제님께서 물으시기를 “공우야, 앞으로 병겁이 휩쓸게 될 터인데 그 때에 너는 어떻게 목숨을 보존하겠느냐?” 하시거늘, 공우가 아뢰기를 “가르침이 아니 계시면 제가 무슨 능력으로 목숨을 건지겠습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의통(醫統)을 지니고 있으면 어떠한 병도 침범하지 못하리니 녹표(祿票)니라.” 하시니라. 이 때 경석이 더 오래 엿듣다가는 들킬까 두려워 여기까지 듣고 물러가니라. 상제님께서 다시 이르시기를 “공우야, 네 입술에 곤륜산을 매어 달라. 내가 천하사를 하기 위하여 곧 떠나려 하노라.” 하시니,
공우가 간청하여 아뢰기를 “하루라도 선생님을 모시지 아니하면 하루의 사는 보람이 없으니 바라건대 저를 따라가게 하여 주옵소서.” 하거늘 상제님께서 간곡한 음성으로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네가 갈 곳이 아니니라. 여기에서 천하사를 하기에는 불편한 것이 많으므로 그곳에 가서 할 것이니라.” 하시니라.
道典 10:49) 천하가 모두 같으니라
상제님께서 이어 말씀하시기를 “장차 괴질이 대발(大發)하면 홍수가 넘쳐흐르듯이 인간 세상을 휩쓸 것이니 천하 만방의 억조창생 가운데 살아남을 자가 없느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무진(戊辰)년 동짓날에 기두(起頭)하여 묻는 자가 있으리니 의통인패(醫統印牌) 한 벌을 전하라. 좋고 나머지가 너희들의 차지가 되리라.” 하시니라. 공우가 여쭈기를 “때가 되어 병겁이 몰려오면 서양 사람들도 역시 이것으로 건질 수 있습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천하가 모두 같으니라.” 하시니라.
道典 10:50) 아침에 호연을 부르시니
24일 아침 상제님께서 약방에 누워 계시니 형렬을 비롯한 성도 몇 사람은 상제님의 곁을 지키고 있고, 나머지 성도들은 마루와 마당, 그리고 형렬의 집과 고샅에 흩어져 명을 기다리는데, 한참 후에 형렬이 “선생님 정녕 돌아가십니까?” 하고 염려하며 여쭈니 상제님께서 형렬의 손을 잡고 빙긋이 웃으시며 “호연이 좀 부르소.” 하고 이르시니라. 이에 한 성도가 밥 먹으러 간 호연을 데리러 형렬의 집으로 가서 “호연 애기씨 찾아요.” 하고 부르니
호연이 “누가 오래요?” 하고 묻거늘 그가 벌써 경외하는 마음을 잃고 “아, 증산이 찾지 누가 찾어?” 하며 함부로 말하더라. 이 때 호연이 나오려고 신발을 찾아도 보이지 않으니 급한 마음에 형렬의 신을 질질 끌고 약방으로 들어서는데, 상제님께서 별안간 호연을 데려온 성도에게 “시러베아들놈! 내가 무슨 증산이냐, 이놈아!” 하고 호통치시거늘, 그 성도가 벌벌 떨며 상제님 앞으로 와서 무릎을 꿇고 앉아 머리를 조아리니라. 상제님께서 그의 머리를 처박으시니 머리가 바닥에 부딪혀 이마에 주먹만 한 혹이 생기거늘
그 성도가 호연이 일러바친 것으로 여겨 ‘또 그런 소리 했다.’며 눈치를 주더라.
道典 10:51) 네 버릇을 고치려 그런다
상제님께서 호연에게 이르시기를 “가까이 와 앉아라.” 하시니 호연이 다가와 앉거늘, 말씀하시기를 “넘어지는데 커다란 신을 신고, 그 의젓잖은 짓 좀 말아라.” 하시는지라 호연이 “내가 뭘?” 하고 말대꾸를 하니 상제님께서 타일러 말씀하시기를 “어른의 신을 그렇게 신는 게 아니다.
이 다음에 시집을 가도 어른의 신을 신으면 ‘버릇없고 배운 것 없다.’고, 네가 욕먹는 게 아니라 네 엄마, 아버지가 그렇게 가르쳤다고 욕먹어. 그러니 네 버릇을 고치려고 내 그런다. 알어?” 하시니라. 이에 호연이 “누가 봤다고 해요?” 하고 쏘아붙이듯 여쭈니 상제님께서 “너 또 맞아 볼래?” 하시거늘, 호연이 “또 맞을 줄 알고? 내가 도망가지.” 하는지라 상제님께서 웃으시며 “도망은 어디로 도망을 가? 네가 나 없는 데 몇천 리를 가 봐라, 내가 모르는가.” 하시니라.
道典 10:52) 내가 아무리 먼 데 가 있어도
상제님께서 호연에게 “너 나 없으면 찾을래, 어쩔래?” 하고 물으시니 호연이 “지금도 없으면 찾아지고 기다려지는데, 함께 안 가고 어디 갈라고 그래요?” 하니라. 상제님께서 눈을 지긋이 감으시며 “너하고 갈 데가 못 돼.” 하시니 호연이 의아한 눈빛으로 “그럼 나 어쩌고?” 하고 여쭈거늘, 상제님께서 몸을 일으켜 호연을 덥석 안으시며 “아이고 세상에, 네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냐?” 하시니라.
호연이 다시 “나는 어쩌라고 혼자 어디 가? 함께 가야지. 나 혼자 이 집에 있는 거 싫어, 안 있을 거야.” 하고 떼를 쓰며 품안으로 파고들거늘, 상제님께서 호연을 어루만져 주시며 “그러면 네 집에 가 있어라.” 하시니, 호연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집에 가면 먹을 것도 없고, 싫어! 나보고 ‘또 거기 갈려냐.’고 때리기만 하고. 그러니 안 가.” 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그리 안 해. 그리 안 하게 내가 할게.” 하시니
호연이 뾰로통해져서 “멀리 가는 사람이 어떻게 그리 안 하게 해?” 하거늘, 상제님께서 호연의 두 손을 꼭 잡으시며 “그리할 수가 있어. 내가 아무리 먼 데 가 있어도 지척에 있는 것이나 진배없어.” 하시니라. 호연이 고개를 갸웃하며 “별일이네. 어디를 가면 나를 꼭 챙기더니 어째 또 떼어 놓고 가려고 그럴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나는 수천 리 먼 데로 올라가.” 하시거늘 “그러면 나도 따라가야지.” 하며 달라붙는지라 상제님께서 다시 자리에 누우시며 “너는 따라오려면 아직 멀었어.
그러나 저러나 형렬이 말 잘 듣고 있어. 그러면 내가 와서 인제 너 잡을게, 응?” 하며 달래 주시고, 호연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어린것에다 내가 죄를 많이 졌네.” 하고 힘없이 말씀하시니라. 호연이 의아해하며 “무슨 죄? 무엇을 혼자 먹었길래 죄졌어?” 하고 대꾸하니 상제님께서 웃으시거늘 곁에 있던 성도들도 따라서 웃으니라.
道典 10:53) 어디 손 좀 잡아 보자꾸나
상제님께서 다시 눈을 감고 아무 말씀 없이 누워 계시는데 누가 말씀을 여쭈면 눈을 조금 뜨고 보시다가 도로 감고 하시는지라
호연이 한참을 앉아서 기다리다가 “아, 나 부르더니 무엇 하려고 그래요?” 하고 보채거늘 상제님께서 숨을 길게 쉬시더니 “내가 가기는 가도 널 못 잊어서 불렀어.” 하시니라. 호연이 더욱 궁금하여 “대체 어디를 가려는데 나하고 함께 안 가?” 하고 여쭈니,
상제님께서 고개를 저으시며 “함께 못 가. 내가 지금은 여기 이러고 앉아 있지만 구름같이 천리 만리를 댕겨. 하늘을 여기서 보면 간짓대로 쑤시것지? 하지만 이게 몇천 리가 되는지 몰라야. 너를 데리고 저리 올라가면 못써서 너를 두고 가려 하니 내가 죄졌다 그 말이여. 잘 있어, 잉? 악수하자.” 하시며 호연의 손을 꼭 잡으시더니 손을 끌어다가 손등에 입을 맞추시니라.
참을성이 많아야 한다
이어 큰 한숨을 쉬시더니 눈을 떠서 방을 한 번 둘러보시고 “호연이는 밖으로 나가거라.” 하시거늘, 호연이 “어디로 가는가 봐야지. 가는 것 봐야 안 오면 내가 쫓아가지.” 하니, 상제님께서 “그러는 거 아녀. 인제 모든 일을 형렬에게 물어. 그러면 내가 형렬에게서 다 들을게.” 하시고, 다시 “그쯤만 알고 함봉(緘封)을 혀. 봉사가 되어야 하고 벙어리가 되어야 하니 어쨌든지 참을성이 많아야 한다.” 하고 당부하신 후에 호연을 내보내시니라.
道典 10:54) 다 나가거라
아침에 약방에 계시던 상제님께서 사시(巳時) 경에는 형렬의 사랑방에 누워 계시니 몇몇 성도들은 방안에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마당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더라. 이윽고 상제님께서 방안의 성도들에게 “다 나가거라.” 하고 이르시거늘, 방안에 있던 성도들이 모두 토방 아래로 가서 무릎을 꿇고 엎드리니라.
道典 10:55) 이것이 여의주다
이 때 호연이 방으로 들어가려 하니 누군가 “들어가지 마라.” 하므로 머뭇거리고 있는데, 상제님께서 “들어와, 들어오너라.” 하시매 그제야 안으로 들어가니라. 호연이 상제님 곁에 앉으며 “저 사람이 못 들어오게 했어.” 하니, “그 사람들은 그래도 나 다시 봐. 이 다음에 나 찾으려거든 여기를 봐라, 잉? 이것이 여의주다. 내 얼굴을 잊으면 여의주를 생각해라.” 하시며 아랫입술 속의 붉은 점을 보여 주시니라.
송죽같이 마음을 굳게 먹어라
상제님께서 호연을 이리 한 번 보고, 저리 한 번 보고 하시며 한숨만 지으시는데, 이 때 형렬이 들어오니 상제님께서 당부하여 말씀하시기를 “잘못한다고 때리지 말고 일을 생각하라. 일을 생각해서라도 호연이 집을 잘 돌봐 주고, 무슨 말을 하더라도 흘리고 말지, 그걸 담지 말아라.” 하시니라. 이에 호연이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일을 하다가 그만둬 버리면 네 가족들이 욕을 하고 우리보고 야단을 할 때 형렬이 뭐라고 할까 봐서 하는 소리다. 그런 것은 그냥 귀먹은 듯이 흘려야지 잘난 체할 필요가 없다.” 하시고, 또 이르시기를 “어쩌든지 송죽같이 마음을 굳게 먹어라, 응.” 하시니라. 호연이 그 의중을 깨닫지 못해 “송죽 같은 것은 무엇이고, 굳은 마음은 뭐래요? 난 몰라. 어떻게 하면 그렇게 돼? 내가 소나무가 돼요?” 하고 여쭈니,
상제님께서 “그런 것이 아니라, 너는 인제 허신이라도 살아 있으면 공중에서 네 혼을 빼 가.” 하시거늘, 호연이 놀라서 “내 혼을 빼 가면 난 정신없으라고?” 하매 상제님께서 “내가 있으니 괜찮어.” 하시며 호연을 다독여 주시니라. 이에 호연이 눈물을 글썽이며 “죽는다면서 있으니 괜찮다고?” 하고 토라지거늘, 호연의 손을 꼭 잡아 주시며 “호연아, 내가 너에게 큰 죄졌다.” 하고 달래 주시니라.
호연이 시무룩한 얼굴로 “왜 자꾸 큰 죄를 졌다고 해요?” 하니, 말씀하시기를 “천지에 제를 지냈다마는 죄는 죄대로 짓고 간다.
아이구, 어디 보자! 손으로 찌른 눈 흉터를 보자. 눈 다쳤으면 어쩔 뻔했던고….” 하시며 눈물을 글썽이시거늘, 호연이 왈칵 울음을 터뜨리며 “나는 선생님하고 떨어지면 누굴 믿고 댕길거나!” 하며 상제님을 부둥켜안으니라.
道典 10:56) 맥은 네가 붙인다
상제님께서 눈물로 얼룩진 호연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시며 이르시기를 “호연아, 너는 천지에 제를 지내고 고축(告祝)을 해 놔서 버릴래야 버릴 수가 없을 것이다. 나를 믿는 사람들이 여러 대를 물러나야 하는데, 움이 피면 거기서 싹이 올라오고 움이 피면 또 싹이 올라오고 그러듯이, 자연히 너 구완할 사람이 생겨.” 하시니라. 이어 말씀하시기를 “낳기는 제 부모가 낳았지만 맥은 네가 붙인다.
맥 모르는 놈은 죽는 것이니 난데없는 도인이 나선다. 천지에서 너를 돌아다보느니라. 네 목숨 살려낼 사람이 생겨. 아무튼 잘 있고 잘해라, 잉?” 하고 다정스레 말씀하시니라.
복남을 불러 호연을 당부하심
이어 상제님께서 호연에게 “느그 오빠 빨리 불러라.” 하시거늘, 잠시 후에 복남이 이르니 말씀하시기를 “네 동생 좀 잘 살펴 줘라.” 하시며 한동안 무슨 말씀을 내려 주시니라.
道典 10:57) 나 금방 올라간다
이 때 밖에는 통지를 받은 성도들과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연이어 도착하거늘 서기가 사랑으로 안내를 하면 형렬이 상제님께 아뢰어 몇몇 사람만 들게 하고 그 외의 사람들은 서기가 따로 받아서 일일이 거주성명을 물어 적으니라.
상제님 말씀 왜곡자들을 경계하심
상제님께서 문득 밖에 모인 여러 성도들에게 꾸짖듯이 말씀하시기를 “글 배우는 사람이 도둑놈이지 도둑놈이 따로 없나니 붓대 가진 놈이 제일 큰 도둑놈이니라. 잡부자작(雜敷自作)하지 말라. 나의 도가 씨가 되어 싹이 나고, 또 싹이 나서 연(連)하게 될 때 그놈들이 앉아서 요리조리 다 만드니 앞으로는 해를 돌아가면서 속고 사는 세상이니라.” 하시니라.
이에 형렬이 ‘나가자.’고 눈짓을 하니 호연이 밖으로 나가려고 막 일어서는데, 갑자기 앞뒷문이 벌컥 열리면서 바람이 휘몰아 들어오고 장대비가 마구 쏟아지며 시퍼런 번갯불이 천둥소리와 함께 방안으로 들어오거늘, 상제님께서 오른손으로 번갯불을 탁 잡으시며 크게 호령하시기를 “어떤 놈이냐? 내가 시간을 저울질하고 있는데 네가 잘난 체하여 마음대로 불칼을 내두르느냐! 나 금방 올라간다.” 하시니라.
붓대 가진 놈이 제일 큰 도둑놈: 상제님의 도법과 행적이 왜곡되어 난법 시대가 열릴 것을 경계하신 말씀이다. 상제님의 진실한 정체를 왜곡하고 수부님을 비롯한 종통전수 도수를 부정, 말살하는 패역자들이 속출하고, 선천 학문의 틀에 갇힌 학자들이 전공바보가 되어 문자놀음으로 상제님의 무극대도의 무궁한 조화세계를 왜곡시킬 것을 크게 경계하신 것이다.
道典 10:58) 형렬에게 기대어 태을주를 읽으심
이 때 호연이 신안으로 보니 장수옷을 입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장들이 말을 타고 기치창검으로 무장한 채 문밖과 집 주위를 에워싸고 있더라. 신장들이 상제님께 각기 인사를 드리며 ‘저는 아무개입니다, 아무개입니다.’ 하고 일일이 보고를 드린 다음 한 신장이 앞으로 나서서 “모시러 왔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크게 호통 치시기를 “시간이 아직 안 되었는데 뭣 하러 그새 발동을 했느냐! 때가 되기도 전에 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
신장들이 일제히 양쪽으로 갈라서서 하명을 기다리더라. 형렬이 호연에게 나가 있으라는 눈짓을 보내니 호연이 “비가 저렇게 쏟아지는데 나가다가 넘어지면 어떻게 해?” 하며 가려 하지 않거늘, 상제님께서 “안아다가 놓아 줘라.” 하고 명하시매 누가 뒤에서 덥석 보듬어다 찬문의 방에 내려놓고는 문을 닫고 가 버리는지라 호연이 홀로 방에 앉아서 보는데 양쪽으로 늘어선 신장들 가운데 한 신명이 손바닥에 무엇을 올려놓고 다른 손으로 탁 쳐 보더니 신장들을 향하여 “아직도 시간이 멀었구나.” 하고 이르더라.
이에 줄의 맨 앞에 선 신장 하나가 줄의 가운데로 걸어나오니 양쪽 신장들이 그 뒤를 줄줄이 따르거늘, 그렇게 얼마를 걸어나와 다시 양쪽으로 갈라져서 되돌아가더니 이내 처음과 같이 정렬하니라. 신장들이 두 줄로 서서 명을 기다리는데 상제님께서 “나○○ 왔느냐?” 하고 물으시거늘 그 신장이 아직 당도하지 않았기로 다른 신장이 나서며 “오시(午時) 지났습니다.” 하고 아뢰니,
상제님께서 “이놈아, 네가 시기를 아느냐?” 하고 꾸짖으시니라. 이어 형렬에게 “꿀물 한 그릇을 가져오라.” 하여 드시고 “날은 덥고 머나먼 길을 어찌 갈꺼나.” 하시며 형렬에게 몸을 기대신 채 작은 소리로 태을주(太乙呪)를 읽으시니 방안에는 김형렬과 최상문, 그 외 두 명의 성도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더라. 이 때 경석이 방으로 들어오니 흘겨보며 말씀하시기를 “정가(鄭哥), 정가(鄭哥)! 글도 무식하고 똑똑하지도 못한 것이 무슨 정가냐!” 하시고 다시 누우시니라.
道典 10:59) 하늘 보좌에 오르실 때
이 때 문득 하늘문이 열리며 선녀들이 황금빛 발판이 달린 빨간 줄을 좌우에서 내려 주고, 마당과 고샅을 가득 메운 신명들은 노래하듯 일제히 어떤 글을 읽는데 마치 벌들이 모여서 웅웅거리는 듯한 소리가 온 하늘에 울려퍼지니 그 광경이 아주 웅장하더라. 상제님께서 다급하게 “형렬아!” 하고 부르시며 “잘들 있거라. 잘 있거라, 간다.” 하시고 하늘로 오르시는데, 어느새 옥색 도포에 관을 쓰시고 붉은 띠를 두루마기 끝까지 길게 늘이시고
홍포선(紅布扇)으로 얼굴을 가리신 모습이 마치 장가드는 새신랑 같더라. 선녀들은 하늘에서 줄을 끌어올리고 말을 탄 신장들은 양옆에서 상제님을 호위하며 공중을 떠가거늘 그 광경이 참으로 위엄 있고 웅대하며 눈부신 대광명 속에 열려 있는 하늘길이 이루 형용할 수 없이 찬연하고 황홀하더라. 상제님께서 “나중에 또 이와 같이 내려오리라.” 하시고 하늘문에 드시니 순간 문이 닫히거늘 먹구름이 온 대지를 흑암으로 물들이는 가운데, 기세를 더하여 거칠게 휘몰아치는 바람과 세차게 떨어지는 장대비와 번쩍번쩍 대지를 훤히 밝히는 번개와 방포성과도 같은 천둥소리에 온 천지가 소요하더라.
道典 10:60) 너는 올 곳이 못 된다
사방에 잠시 흑암이 깃드는가 싶더니 갑자기 호연이 있는 방으로 번갯불이 쑥쑥 들어오며 문이 저절로 열리거늘 호연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올라가지 마요. 떨어지면 어째요? 나랑 가요!” 하고 동동거리며 울다가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니라. 상제님께서 이를 애처로이 여기시어 “너는 올 곳이 못 된다. 나도 이제 몇 번을 둔갑할지 모르고, 나라고 안 늙고 이렇게 생겼간디?” 하시니, 호연이 천만 뜻밖에 상제님께서 대답해 주심에 반갑고 또 안심이 되어 “둔갑은? 또 호랑이 가죽 둘러써요?” 하고 대꾸하거늘, 상제님께서 “아니, 내가 천하를 갖고 내두르니 너 같은 녀석은 후우 불면 날아가.” 하시니라.
하늘길만 쳐다보며 울더라
이에 호연이 아직도 상제님께서 곁에 살아 계신 것처럼 느껴지므로 “어디 해 봐, 내가 날아가는가. 안 날아가네!” 하며 장난을 치는데, 상제님께서 “호연아, 잘 있거라. 이 다음에 또 만나자!” 하시며 마지막 인사말을 하시더니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시거늘, 마당과 고샅에서 엎드린 채 비를 맞으며 흐느끼던 성도들이 모두 일어서서 오색 서기가 비치는 하늘길만 쳐다보며 울더라. 이 날은 환기(桓紀) 9108년, 신시개천(神市開天) 5807년, 단군기원(檀君紀元) 4242년, 조선 순종(純宗) 융희(隆熙) 3년, 기유(己酉 : 道紀 39, 1909)년 6월 24일(양력 8월 9일)이요, 상제님의 성수(聖壽)는 39세이시더라.
道典 10:61) 영신이 뜨셨다
호연이 상제님을 뵈려고 바깥사랑으로 들어가니 형렬이 “벌써 떠나셨다.” 하고 이르거늘, 그래도 가까이 가서 주물러 보며 ‘여기 있는데, 참말일까?’ 하고 용안에 얼굴을 가져다 대니 찬바람만 훌훌 나오더라. 이를 지켜보던 형렬이 안쓰러워 “영신(靈身)이 뜨셨다.” 하고 재차 이르거늘 상제님께서 조화로 하늘에 오르시고 몸만 계시는 줄로 믿었던 호연이 그제야 상제님께서 어천하셨음을 실감하니라.
이 때 공우가 크게 울며 말하기를 “허망한 일이로다. 대인(大人)의 죽음이 어찌 이렇게 아무 이상이 없이 잠자는 것과 같으리오.” 하고, 덕찬, 준찬 형제는 “허망하다, 허망하다.” 하며 슬피 울부짖으니라. 상제님께서 어천하시고 나자 잠시 후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해가 뜨고 날이 청명하게 개며 오색 구름이 뜨더니 지붕으로부터 하늘까지 뻗친 영롱한 서기가 이레 동안 계속되니라.
道典 10:62) 흩어져 돌아간 성도들
증산 상제님께서 어천하실 즈음에 성도들에게 몇 차례 깨우쳐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큰 복을 구하거든 일심(一心)으로 나를 믿고 마음을 잘 닦아 도를 펴는 데 공을 세우고 오직 의로운 마음으로 두 마음을 두지 말고 덕 닦기에 힘써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라.” 하시더니 천만 뜻밖에도 상제님께서 어천하시매 몇몇 성도들이 크게 낙심하여 흩어져 돌아가니라.
道典 10:63) 상제님의 성체를 모심
이 때 형렬이 새로 장만한 옷을 입혀 드리고 성체를 아랫목에 동쪽으로 향하도록 문과 나란히 모신 후에 앞뒷문을 열어 두고 주렴을 치니 모두 밖에서 바라보기만 할 뿐 함부로 떠들어 보지 못하거늘, 일부 성도들과 상제님께 평소 은혜를 받은 이들이 상제님의 모습을 단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 야단이더라.
통곡하시는 성부님
형렬이 손바래기 본댁에 부고하여 성부님을 모셔오니 성부께서 통곡하시며 슬픔으로 날을 보내시다가 상제님께서 어천하신 지 사흘 만에 실성하신 듯 소란을 피우시므로 형렬이 아무데도 가시지 못하도록 붙들고 정신이 드실 때까지 지키게 하며 성부님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니라.
道典 10:66) 어천하시던 날 심부름 간 안내성
한편 이 날 새벽에 상제님께서 안내성을 따로 불러 정읍으로 심부름을 보내시거늘 내성이 정읍에 가서 일을 보고 수일 후에 돌아오는데 상제님께서 주막에 앉아 술을 드시다가 내성을 부르시어 “이리 와서 내 술 한잔 먹고 가라.” 하시더니 목을 축이고 나매 “먼저 가 있으라.” 하시니라. 이에 내성이 홀로 구릿골에 들어서니 곡하는 소리가 진동하거늘 의아하여 연고를 물으니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고 하는지라
내성이 황당하여 “방금 전에 선생님께 술을 받아 먹고 왔는데 그 무슨 소린가?” 하며, 사람들을 밀치고 급히 방으로 들어가 보니 상제님의 옥체에 흰 천이 덮여 있더라. 이에 내성이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하다가 문득 “내성아! 너는 내 몸을 쳐다보지도 말고 손도 대지 말고 일절 관여도 하지 마라.” 하신 상제님의 말씀이 떠오르는지라 크게 깨달아지는 바가 있어 정신을 수습하고 미련 없이 집으로 돌아가니라.
道典 10:73) 대밭 끝에 초빈하니라
이튿날 형렬의 집 뒤 모시밭을 지나 대밭 끝에 상제님의 성체를 초빈(草殯)하니 성도들이 서글프고 허망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여 힘없이 돌아오는데, 갑자기 뒤에서 방성대곡하는 소리가 들리므로 되돌아가 보니 경석이 홀로 남아 초빈을 부둥켜안은 채 울고 있거늘, 몇몇 성도들이 가까스로 만류하여 경석과 함께 내려오니라.
이후 여러 날이 지나도록 성부님께서 구릿골을 떠나지 못하시니 경석이 그 마음을 위로하여 고부 본댁까지 모셔다 드리고, 크게 상심하신 성모님을 안심시켜 드리니라. 장례 경비는 일전에 상제님께서 궤 속에 넣어 두라 하신 돈으로 하고 남은 돈은 본댁으로 보내니라.
道典 10:80) 형렬의 허탈한 심정과 호연의 그리움
상제님께서 하늘 보좌로 떠나시매 가장 허전하고 쓸쓸해하는 사람은 형렬과 호연이더라. 형렬이 도무지 마음을 추스리지 못하고 넋이 나간 듯 멍하니 땅만 쳐다보며 앉아 있는 때가 잦거늘 호연이 보다못해 하루는 “땅을 천 번 쳐다본들 어째요, 뚫어져요? 왜 그러고만 앉았어요?” 하니, 형렬이 “내 속의 돌을 보면 돌이 뵈느냐? 그렇지만 선생님께서 내게 별 인지(認知) 없이 가셨으니 그것을 알기 위해 골똘하느라고 그런다.” 하니라.
한편 호연 또한 상제님께서 살아 생전에 다니시던 길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사랑이 사람들로 수선스러우면 ‘행여 계실까.’ 하여 달려가기가 일쑤요, 약방에서 상제님을 그리워하며 ‘어디를 갔길래 나를 안 데리고 혼자 가서 안 오는고…. 허송세월을 보내고 이제 나는 무엇이 될거나.’ 하며 울기도 수차례이거늘 그 때마다 방안에서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는 소리가 뱅뱅 울리더라.
하루는 상제님의 음성이 들리매 호연이 “언제 봐, 언제 봐? 언제 와서 나를 안고 갈라는데, 언제 안고 가?” 하며 애타게 부르니
말씀하시기를 “인제 태운장이 안아 준다. 날 찾지 말고 태운장하고 인연을 맺어라.” 하시니라. 이후 호연이 마음을 의지할 곳 없어 서운하고 허전한 마음에 상제님을 원망하면서도 항상 다시 오시기만을 바라며 여러 해 동안 호주머니에 상제님의 머리카락을 넣고 다니고, 또 상제님께서 생전에 “흰구름이 뜨거든 나인 줄 알라.” 하신 말씀을 떠올리며 밤낮 하늘만 쳐다보며 지내니라.
道典 10:81) 너희들을 살리려고 갔는데
하루는 형렬이 힘없이 방에 앉아 울며 탄식하기를 “세상에서 우리 선생님은 광인(狂人)이라는 말만 들으셨고, 우리는 미친 사람을 따라다니다가 결국 김(金)씨 문중을 망쳤다는 소리를 들으니 이제 당신께서 어천하신 이후로 이것이 제일 원통하니 어찌 살꼬.” 하며 남부끄러워 크게 울지는 못하고 소리 죽여 울고 있는데, 뜻밖에 방 밖에서 큰기침 소리가 나며 “형렬아, 너는 그만하면 대략 알 줄 알았더니 그다지 무식하냐?
너희들을 살리려고 내가 갔는데 탄식이 웬 일이냐.” 하는 상제님의 음성이 들리므로 형렬이 깜짝 놀라 일어나니 상제님께서 방으로 들어오시니라. 형렬이 눈물을 흘리며 배례하고 옆으로 서니 말씀하시기를 “그래, 형렬아. 너는 너희 선생 미쳤다는 것이 그토록 원통하더냐. 수운가사에 ‘여광여취(如狂如醉) 저 양반을 따르기만 따르고 보면 만단설화(萬端說話)한 연후에 소원성취(所願成就) 하련마는 알고 따르기 어려워라. 따르는 자 만복동(萬福童)이요, 못 따르는 자 깜부기 된다.’는 말을 못 들었느냐.” 하시니라.
또 일러 말씀하시기를 “판안 사람 둘러보니 많고 많은 저 사람들 어떤 사람 저러하고 어떤 사람 이러하니, 판안 사람 판안 공부 소용없어 허리띠 졸라매고 뒷문 열고 내다보니 봉황(鳳凰)이 지저귄다. 판안에 그 문서(文書)로 아무리 돌려 보아도 할 수 없어 판밖의 것을 가르치자고 허튼 마음 거머잡고 죽기로 찾았으니 조금도 걱정 마라. 누런 닭이 소리치며 날개 털면 판밖 소식 알리로다. 네가 그렇게 서러워하니 판밖에 있더라도 소식을 전해 주마.” 하시니라. 그 뒤로 얼마간 상제님께서 밤마다 오시어 생존시와 다름없이 여러 가지를 일러 주시니라.
道典 10:84) 금산사로 찾아간 성도들
7월 그믐께 차경석, 김경학, 김광찬, 박공우가 김형렬을 방문하고 장래 일을 의논할 때 경석이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당신이 곧 미륵불이라 말씀하셨고, 또 어천하실 때 ‘금산사로 들어가리라.’ 하셨으니 우리가 이제 미륵전(彌勒殿)에 참배하여 당신을 대한 듯이 정성을 들여 취할 길을 생각하면 반드시 선생님의 감화를 받아 깨달음이 있으리라.” 하며 미륵전 치성을 주창하거늘, 성도들이 모두 이를 옳게 여겨 치성을 모시기로 하니라.
경학이 소 한 마리를 준비하고 나머지 치성 제물은 다른 성도들이 준비하여 금산사에 들어가니 이 때 한 늙은 신중이 돌무지개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환영하며 말하기를 “어젯밤에 금산사 여러 불타와 오백 나한과 호위신장들이 일제히 돌무지개문 밖에 나와서 거룩한 행차를 맞아들이는데, 그 행차 뒤에 그대들이 따라오는 꿈을 꾸었으므로 이제 나와서 기다리는데 그대들이 오는 것을 보게 되니 어찌 기이한 일이 아니리오.” 하더니
다시 경학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그대들의 앞에 서서 수염이 복스럽게 난 도인이 걸어 왔는데 바로 이분이오.” 하니라. 일행이 미륵전에 들어가 참배하고 종이에 ‘옥황상제지위(玉皇上帝之位)’라고 써서 미륵불상 몸에 붙이고 경학의 진행으로 치성을 올린 뒤에 그 종이 위패를 떼어 안고 금산사 경내의 사실(私室)에 들어가 벽에 모시고 각기 정심하여 상제님을 사모하며 기도하니라. 이 때 형렬이 문득 신안이 열리거늘 대장전(大藏殿)에 들어가 석가불에게 장래일을 물으니
석가불이 책을 들고 입을 열어 가르치려 할 즈음에 상제님께서 완연한 미륵불의 형상으로 들어오시어 책을 빼앗고 입을 막으시더라. 이에 형렬이 목이 메어 “스승과 제자된 사이에 알면서도 이렇게 무심할 수 있습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시 한 수를 보여 주시고 홀연히 사라지시니 이러하니라.
魚糧水積三千界요 雁路雲開九萬天이라
어량수적삼천계 안로운개구만천
無語別時情若月이언마는 有期來處信通潮라
무어별시정약월 유기래처신통조
어량(魚糧)은 물 속 삼천 세계에 쌓여 있고, 기러기 길은 구름 개어 하늘 구만리로다. 말없이 이별할 때의 정은 으스름 달빛처럼 애련한 것이언만, 다시 올 기약 있어 믿는 마음은 조수처럼 어김이 없을진저. 형렬이 할 수 없이 물러나와 일행에게 사유를 말한 후에 공부를 파하고 돌아와 생각해 보니 이 날이 바로 상제님께서 ‘환궁하리라.’ 하신 8월 초하루이더라.
道典 10:86) 나도 공부를 해 보리라
경석은 금산사 치성을 모시기 전부터 ‘조용한 방이 있으면 공부를 해 보리라.’ 하고 작정하였더니 8월 1일 치성 후에 경비가 없어 집에 돌아가 한동안 먹을 끼닛거리를 변통하여 마련하고 구릿골에 가서 형렬을 설득하여 함께 금산사로 들어가니라. 이로부터 14일간 ‘언제까지나 이 세상에 계실 것으로 알았던 상제님께서 떠나신 이치가 무엇인가.’ 하는 의혹을 풀고자 정진하고,
집에 돌아온 뒤로도 가사를 돌보지 않고 밤낮으로 사색에 잠기니라. 밤이면 상제님께서 공사를 보시던 집 앞 버드나무 아래에서 날이 새도록 골몰하고 낮이면 일찍이 상제님과 함께 올랐던 대흥리 서쪽 비룡산 상봉에 올라 하늘을 우러러 “옥황상제님, 옥황상제님!” 하고 부르짖으며 대성통곡을 하더니
하루는 비룡산 상봉에 올랐을 때 뜻밖에 등 뒤에서 “경석아!”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거늘 급히 돌아보니 꿈에도 그리는 상제님이신지라 경석이 깜짝 놀라 엎드려 절을 하니 말씀하시기를 “내가 죽지 아니하였노라.” 하시고, “내려가서 모든 일을 잘 처리하여라. 이후에 올 날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홀연히 보이지 않으시니라. 이로부터 경석이 상제님의 어천을 의심하지 않고 앞일을 어떻게 조치해야 할지를 생각하니라.
道典 10:89) 다시 깨어진 김경학의 믿음
금산사 치성 후로도 성도들은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상제님과 같은 다른 스승을 찾아보려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니라. 경학 또한 스승을 찾아 방황하다가 경술(庚戌 : 道紀 40, 1910)년 2월에 집에 돌아오니 늙은 어머니가 급병으로 죽고 가족들은 초종(初終)에 쓸 제구 준비에 바쁘거늘 “내가 만고의 대신인(大神人)을 따르다가 늙으신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였구나.” 하며
대성통곡하다가 ‘태을주로 사람을 많이 살리리라.’ 하신 상제님의 말씀을 떠올리고, 일시에 마음을 돌려 방에 들어가 가족을 물리친 다음 상제님께 기도를 올리고 지성으로 태을주(太乙呪)를 외우니 문득 노모가 살아나니라. 이로부터 병자가 생기면 자청하여 찾아가 태을주를 읽어 고쳐 주니 ‘경학이 신의(神醫)가 되었다.’는 소문이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하니라.
늙은 어머니: 광산(光山) 김씨(1824∼1915). 이 때 살아난 뒤로도 5년을 더 살았다.
道典 10:90) 후천 대학교 도수의 포교운 발동
그 즈음 인근 놋점리 류의경(柳義卿)이 장질부사로 사경에 이르매 그 집안사람이 경학을 찾아와 살려 주기를 간청하거늘
경학이 저녁에 찾아가 청수를 올린 뒤 상제님께 기도하고 태을주를 외우니 의경의 병세가 돌려져서 수일 만에 완쾌되더라.
이에 의경이 경학에게 주문을 읽어서 큰 병이 치료되는 이치를 물으니, 경학이 상제님의 신성하심과 상제님께서 천지를 개벽하시는 조화주이심을 설명하여 의경을 신앙의 길로 인도하니라.
그 길로 의경을 데리고 금산사 미륵전에 가서 치성을 드린 뒤에 구릿골 약방에 이르러 상제님의 유적을 참관하며 며칠 동안 머무를 때 하루는 문득 약방 아랫목 벽에 칼끝으로 그은 십자형(十字形) 자국이 눈에 뜨이므로 이상히 여겨 그 오려진 네 각(角)을 떼어 보니 한 자 길이나 되는 큰 날 일(日) 자가 씌어 있더라.
십봉명개훈
며칠 후 다시 약방을 방문하여 둘러보는데 약방 동편 문 상인방(上寅方) 위 벽지에도 십자형 칼끝 흔적이 나 있거늘, 또 떼어 보니 그 이면(裏面)에 ‘십봉명개훈(十奉命開訓)’ 다섯 자가 가로로 씌어 있더라. 의경이 집에 돌아와 저녁에 청수를 올리고 태을주를 외우니 문득 신안이 열리고 이어서 무수한 기적이 나타나거늘,
마침내 ‘태을주를 읽으면 신의 감화가 내린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므로 성도들도 이로부터 태을주를 읽는 것으로 수련을 행하기 시작하니라. 이로써 일찍이 상제님께서 “경학의 집에 대학교(大學校)를 설치한다.” 하시고 “학교는 이 학교가 크리라.” 하신 말씀이 응험되니라.
류의경(柳義卿, 1878∼1961): 본관 진주(晉州). 부 명원(明源)과 모 청주 한씨(韓氏)의 1남 3녀 중 장남.
道典 10:94) 첫 어천절 치성에 나타나신 상제님
상제님께서 하늘 보좌로 떠나신 어천 1주기 치성절을 맞이하여 많은 종도들이 구릿골로 찾아오니라. 종도들이 모여 “아이고, 우리 제자들이 수십 날을 육로로 천 리, 물로 천 리 그렇게 왔는데 선생님은 가뭇없이 안 계시니….” 하며 탄식하더니 하늘을 우러러 큰 소리로 “저희들이 다 모였는데 어찌 모르십니까? 진정 모르십니까?” 하며 부르짖거늘, 갑자기 벼락이 치고 하늘이 우그르르 울리며 오색 찬란한 구름이 수를 놓더니
하늘로부터 상제님께서 어천하실 때 누워 계셨던 자리로 오색 서기가 박히더라. 그제야 종도들이 기뻐하며 탄성을 지르거늘 호연이 그 모습을 보고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얘기 좀 하세요.” 하고 애원하니, 상제님께서 “뭔 얘기를 하느냐? 시시하니 일부러는 얘기를 못 한다. 네가 하도 원을 하니까 너를 생각해서 이렇게라도 가다오다 해 주지, 내가 누구라고 나타나겠느냐.” 하시고
종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신명이 안 들고는 일을 못하는 것이니 너희들이 제를 지내면 천지신명들도 먹고 좋다마는 내가 천하일을 하러 다니는데 그것 먹으려고 내려오겠느냐? 번거롭게 그러지 말고 마음을 진정으로 잘 먹어라.” 하시니라.
道典 10:107) 여자의 첫 월경 피로 쓴 가을의 인간 몸개벽 공사
이내 호연이 첫 월경(月經)을 시작하매 준비한 종이를 쌓고 그 위에 호연을 앉히거늘 첫날은 책 한 권 분량이 조금 못 되게 젖고 다음날은 책 두 권 분량이 흠뻑 젖으니 너무 흥건하게 젖은 것은 짜서 사용하는데, 짜고 모인 피만도 두어 사발이나 되는지라 그것으로 남은 종이에 제비를 그려 넣기도 하고, 점도 찍고, ‘감결(甘結)’이라 서(書)하여 완성하니라.
이 공사에 참여한 사람은 김형렬과 서중옥, 김기보, 장기동으로 공사를 마친 후에 종이째로 묻은 것을 조그맣게 잘라서 하나씩 가지고, 월경수(月經水)로 점을 찍고 글씨 쓴 종이도 각기 한 장씩 가져가니라. 이후 호연이 상제님의 성적(聖蹟)을 증거하기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인고의 나날을 보내며 깊은 회한과 원망으로 한탄을 하니
하루는 상제님께서 오시어 “네게서 나간 이슬을 모르냐? 네 육신에서 우러난 피를 내서 선매숭자를 써 준 맥이 있는데 어찌 몰라야. 너 그것 잊어버리지 마라. 증명 없이 사는 놈 없다. 죽어도 증명이 있어야 한다. 아는 놈은 너를 건질 테니 걱정 말아라.” 하고 위로해 주시니라.
道典 10:108) 부부의 연을 맺은 형렬과 호연
선매숭자 공사를 마친 후에 상제님께서 인연 맺어 주신 대로 형렬과 호연이 부부의 연을 맺으니 전주 인봉리(麟峰里)에 방 하나를 얻어 새살림을 마련하고 이 해 겨울에 첫아들을 낳으니라.
道典 10:109) 영안으로 아이를 찾아 준 호연
호연이 17세 되는 계축(癸丑 : 道紀 43, 1913)년에 전주 새청금머리에 새 집을 사서 이사하니 형렬이 흑석골 오두막집을 아주 송은주에게 주니라. 이른 봄에 하루는 호연의 앞집에 사는 여인이 찾아와 “언니집에 다녀오겠다고 나간 우리 딸이 오늘 온다더니 아직 안 오네요.” 하며 걱정하거늘 호연이 영안(靈眼)으로 보니 문둥병자가 잡아간 것이더라.
이에 호연이 “문둥이가 아무 굴속에 데려다 놨으니 속히 인부를 데리고 쫓아가시오.” 하고 일러 주매 그 어머니가 서둘러 가서 딸아이를 찾아오니라. 또 한번은 이 동네의 젊은 새댁이 갓난아이를 시아버지에게 맡기고 들로 일을 나갔는데, 시아버지가 잠깐 밖에 나갔다 온 사이에 아이가 없어진지라 호연을 찾아와 ‘살려 달라.’고 울며 애원하거늘,
호연이 “지금 호랑이가 물어다 놨어도 죽지 않았으니 칼을 가지고 담박질해서 가시오. 호랑이가 바로 들어오지 않고 뒷걸음질로 들어올 테니, 굴속에 들어가 앉아 있다가 칼로 찌르고 데려오면 그만 아니오?” 하고 일러 주매 아이를 무사히 찾아오니라.
道典 10:110) 호연이 세상에 나서지 못하도록 엄히 경계하심
이 때 하루는 상제님께서 오시어 문득 호연을 크게 꾸짖으시기를 “아는 체하면 네 신명이 없어진다고 했건만 그걸 못 참아서 나 하는 시늉을 해? 네가 그렇게 하면 살지도 못할 터인데 그것을 짐작 못 하느냐?” 하시고, 이어 형렬에게 “너는 그걸 못 하게 잡아야지 가만 두느냐? 그렇게 만들면 나중에 후끝이 좋겠느냐?” 하시고는
형렬의 얼굴과 코를 무엇으로 동여매신 뒤 우물에 처넣으시니라. 이에 호연이 놀라서 형렬을 구하려고 달려드니 상제님께서 엄지와 검지를 벌려 그 사이에 호연의 턱을 거시거늘, 호연이 가슴이 답답하고 말문이 막혀 더 이상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지라 그저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만 보니라. 상제님께서 이튿날이 되어도 형렬을 우물에서 꺼내 주지 않으시매, 호연이 참다 못해 “밥 먹은 지가 며칠인데 그렇게 굶길 작정이에요? 사람을 죽일 적에도 먹여서 죽인다는구만.” 하니, 상제님께서 “건방지게 밥을 먹이려고 그러냐?” 하시니라.
이에 호연이 “아, 그렇지 않아요? 사전에 아무 말도 없이 저이랑 나랑 부부를 정해 놓고서는 그렇게 인정머리 없이 그래요?” 하고 따지니 말씀하시기를 “나는 근본이 독한 사람으로, 우리 집안도 모르고, 동기간도 없다. 너 아는 체하고 쏙쏙 나서는 것을 내가 그렇게 타일렀는데도 그걸 못 참아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니, 내 말이 실언(失言)이 되니 그런다.” 하시거늘, 호연이 “그나저나 어서 밥이나 먹이게 꺼내 주세요. 대체 밥 먹은 지가 언제예요?” 하매, 상제님께서 “흥, 그래도 안타까워서 그러냐? 안 죽어, 안 죽어!” 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니라.
문) “그 때가 몇 살 때였어요?” 답) “내가 시집 갔은게 17살 먹어서.”
문) “그 때 계절은요?” 답) “봄, 꽃들 아직 안 피었어.”
문) “그 때도 목덜미에 피멍이 있었어요?” 답) “응. 여기다 이렇게 걸어 숨을 못 쉬게 턱을 딱 걸어.”(김호연 성도 증언)
道典 10:111) 호연의 기운을 거두심
형렬이 우물에 갇힌 지 사흘째 되는 날에 상제님께서 호연의 앞에 무슨 글을 펴 보이시며 일러 말씀하시기를 “호연아, 생각을 해 봐라. 사람이란 크고 작고 간에 틀이 있는 것이니, 큰 틀이 되어야지 작으면 내두르기 쉽고 바람만 불어도 날아가기 쉬운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 큰 틀이 될 사람이 작은 사람처럼 자꾸 그러느냐!” 하시거늘, 한참 후에야 호연이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잘못했어요.” 하고 뉘우치니
상제님께서 재차 확답을 받으신 뒤에 “아무개야, 어서 밥 차려라.” 하고 명하시니라. 이에 호연이 “이제 다시는 안 해요.” 하고 다짐하니 상제님께서 “누가 하게 하간디?” 하고 홀연히 사라지시거늘, 호연의 목에 진 피멍이 한동안 지워지지 아니하더라. 이후로 호연의 신령한 지각문(知覺門)이 닫히어 전과 같이 만사(萬事)를 훤히 알지는 못하고 다만 신명이 오고가는 것만 보고 들을 정도가 되니라. 또 상제님의 말씀을 명간(銘肝)하여 누가 청탁을 해 와도 함부로 나서지 않으니라.
道典 10:117) 태운 김형렬의 죽음
임신(壬申 : 道紀 62, 1932)년 11월 중순에 형렬이 화병으로 몸져눕거늘, 이 때 호연은 넷째 딸 복임(福任)을 해산하고 몸도 추스르지 못한 채 형렬을 간호하니 가세가 기울어 미음조차 끓여 주지 못할 지경인지라 이를 보다 못한 형렬이 11월 25일에 셋째 아들인
천리마의 집으로 가니라. 이후 사흘 만에 형렬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거늘 호연과 다섯 자식들이 출상을 마치고 닷새 만에 집으로 돌아오니, 이미 김씨 일가에서 밥해 먹을 솥 하나 남기지 않고 살림을 전부 가져가 버렸더라.
이에 호연이 어린 자식들을 언제까지나 굶길 수도 없는 터라 이날 저녁부터 치마 속에 그릇을 감춰서 밥을 얻어다가 먹이는데, 이 해 섣달에 큰아들이 치질을 잘못 치료하여 연이어 세상을 떠나거늘, 호연이 한량없는 괴로움과 허탈한 마음에 급기야 죽음을 결심하고 치마에 돌을 가득 끌어안은 채 물속으로 들어가니 마치 뒤에서 무엇이 끌어당기는 듯하여 물속 깊이 빠져지지 않더라.
천리마의 집으로 가니라: 이 때 상황을 김호연 성도는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어린애를 품고 내가 아랫목에 가 누워 있고, 즈(제) 아버지 데려가면서 인저 나에게 시켜. ‘아부지 이불 달라, 요 달라. 또 아부지가 먹던 꼬창(고추장) 가져오란다.’고. 돌아갈라고 하는 이가 꼬창 달라고 할 것이여? 핑계에 모두 달라고 해서 가져가려고 하지.”
김형렬 성도와 김호연 성도는 3남 4녀를 두었다. 그 때의 정황에 대해 김호연 성도는 “배고픈 세상…. 어린것들은 너이나 쭉 드러누웠고, 아이고, 조석 세 때에 땔 것이 있어, 먹을 것이 있어? 아이고, 내 고생 말도 마.” 하고 회고하였다.
무엇이 끌어당기는 듯하여: “죽을라고 씌어야지, 안 죽어져. 물로 들어가도 여기 차니까, 안 죽어질라고 도로 나와져. 어떻게 그 말을 다해.”, “요상햐. 무엇이 불러내는가. 요렇게 고상하고 살란게 안 죽어져.”(김호연 성도 증언)
道典 10:118) 송광사에서 팔대장삼과 고깔을 구해옴
계유(癸酉 : 道紀 63, 1933)년에 호연이 궁핍한 생활을 이기지 못하여 아홉살 된 둘째 아들 복수를 전주 송광사(松廣寺)로 보내니
이로부터 복수가 송광사의 행자로 있다가 2년이 지난 을해(乙亥 : 道紀 65, 1935)년 삼월삼짇날에 비로소 사미계(沙彌戒)를 받고 상좌가 되거늘, 호연이 기별을 받고 송광사에 가서 예식에 참관하니라. 모든 예식이 끝난 뒤에 호연이 팔대장삼과 고깔을 구하여 집으로 돌아오니라.
道典 10:120) 상제님과 함께 선천 성자들의 고향을 순회함
안내성이 모악산 백운동(白雲洞)에 있을 때 하루는 새벽에 치성실에서 남방을 향해 정성껏 청수를 모시고 공부를 마친 뒤에
부엌으로 내려오다 미끄러져서 한 길 가량 되는 밑으로 떨어지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다가 혼절하거늘, 가족들은 혹 생명이 위태로울까 걱정하여 내성을 방으로 옮기는 등 법석을 떠는데, 내성이 문득 “경만아! 이리 나오너라.” 하는 소리에 깨어나 마당에 나가 보니 환한 대낮에 상제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시어 공중에 떠 계시더라.
내성이 반가운 마음에 얼른 인사를 올리니 상제님께서 빙긋이 웃으시며 “내가 너 때문에 왔다. 나를 따라가자.” 하시고, 구름을 내성 가까이에 대시며 “여기에 타라.” 하시거늘, 내성이 구름을 타니 어디론가 날아가 순식간에 한 낯선 곳에 이르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여기가 유대의 예수가 태어난 곳이다.” 하시고, “그 제자들이 선령을 심히 박대하니 무슨 복을 바랄 수 있으리오.” 하시며 이곳저곳을 둘러보시니라.
다시 구름을 타고 어떤 곳에 당도하매 “여기는 석가가 태어난 곳으로 본시 왕국이 있었나니 잘 보아 두어라.” 하시고, “석가를 그대로 두었다가는 사람들의 천륜을 끊게 하고 인종씨를 말려 모두 멸망당하게 하였을 것이라.” 하시니라. 잠시 후에 다시 어떤 곳에 도착하거늘 “여기가 바로 공자가 태어난 곡부(曲阜)니라.” 하시고, “그 제자들이 도둑놈이 되었다.” 하시며 여기저기 둘러보시더니 “이제 그만 가자.” 하시고 내성의 집으로 돌아오시니 어느덧 수 시간이 흘러 해 넘어가는 저녁때가 되었더라. 상제님께서 떠나시며 내성에게 이르시기를 “깨어나거든 마초(馬草)를 달여 먹으라.” 하고 약을 가르쳐 주시므로 명하신 대로 하니 몸이 차츰 회복되니라.
道典 3:180) 차경석을 만나심
5월 17일에 상제님께서 형렬의 집을 떠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길이 길행(吉行)이라. 한 사람을 만나려 함이니 장차 네게 알리리라.” 하시고 용암리(龍岩里) 물방앗간에 머무르시다가 그 앞 주막에서 정읍 사람 차경석(車京石)을 만나시니 당년 28세로 구척장신에 용모가 준수한 젊은이라.
원래 경석은 동학 신도로서 일찍이 일진회 전북 총대(總代)를 지낸 일이 있더니, 이 날은 재산 문제로 송사하러 정읍에서 전주로 가는 길이더라. 경석이 용암리 주막에서 점심을 먹고 떠나려 할 즈음 상제님께서 대삿갓에 풀대님 차림으로 김자현 등 두어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시거늘,
경석이 상제님을 뵈니 의표(儀表)는 소탈한 가운데 씩씩한 기운을 띠시고, 언어동지(言語動止)는 순진하고 꾸밈이 없으시며 안광(眼光)이 사람을 쏘는 듯하여 감히 똑바로 볼 수가 없더라. 사람을 대하여 정겹게 말씀을 나누시면 마치 봄바람이 온 들에 가득 찬 듯하고, 일의 사리를 밝히심에는 대하(大河)가 물결치듯 풀어 놓으시고,
말씀의 운치는 너그럽고 크시어 천둥이 구르는 듯하며 모든 행동하심이 호호탕탕하여 폭 잡을 수가 없는지라 경석이 절로 마음이 끌리고 상제님의 기품에 취해 말씀을 청하니, 상제님께서 온화하게 대답하시고 술을 드시다가 닭국 한 그릇을 경석에게 권하시니라. 경석이 받으매 어디선가 벌 한 마리가 날아와 국에 빠지거늘 경석이 수저를 멈추고 혹 상서롭지 못한 일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벌은 규모 있는 벌레니라.” 하시니라.
경석이 여쭈기를 “무슨 업을 하십니까?” 하니 웃으며 말씀하시기를 “의원 노릇을 하노라.” 하시고, 경석이 다시 “어느 곳에 머무르십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나는 동역객(東亦客) 서역객(西亦客) 천지무가객(天地無家客)이로다.” 하시니라.
대저 경석이 상제님의 거주지를 여쭌 것은 뒷날 찾아뵈려 한 것인데 이렇게 말씀하시니 다시 찾기가 어렵겠으므로 떠나지 않기로 결심하고, 이왕에 상제님의 지식을 시험하고자 하여 다시 “어떻게 하면 인권(人權)을 많이 얻을 수 있습니까?” 하고 여쭈니
대답하여 말씀하시기를 “폐일언(蔽一言)하고 욕속부달(欲速不達)이니라.” 하시니라. 이에 경석이 아뢰기를 “자세한 뜻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사람 기르기가 누에 기르기와 같아서 일찍 내이나 늦게 내이나 먹이만 도수에 맞게 하면 올릴 때에는 다 같이 오르게 되나니, 이르고 늦음이 사람의 공력에 있느니라.” 하시니라.
차경석(車京石, 1880∼1936): 본관 연안(延安). 자(字) 윤홍(輪洪), 호는 월곡(月谷). 동학 접주였던 차치구의 장남으로 슬하에 3남 5녀를 두었다. 고부 입석리에서 상제님을 처음 만났다
道典 3:181) 남아가 반드시 활인지기를 띨 것
경석의 이번 전주 길은 세무관과 송사할 일이 있어 서류를 가지고 가는 길이더니 경석이 서류를 내어 보이며 여쭈기를 ‘세 사람이 모이면 관장(官長)의 공사를 처결한다.’ 하오니 청컨대 이 일이 어떻게 될지 판단하여 주십시오.” 하거늘 상제님께서 그 서류를 소리내어 읽으신 뒤에 말씀하시기를 “이 송사는 그대에게 유리하리라.
그러나 이 송사로 인하여 피고(被告)의 열한 식구는 살길을 잃게 되리니, 일의 곡직(曲直)을 불문하고 대인으로서는 차마 할 일이 아니니라. 남아가 반드시 활인지기(活人之氣)를 띨 것이요, 살기(殺氣)를 띰은 옳지 못하니라.” 하시니라. 이에 경석이 크게 감복하여 말하기를 “선생님의 말씀이 지당하오니 이 길을 작파하겠습니다.” 하고
즉시 그 서류를 불사르니라. 이 때 경석은 동학 신도로서 손병희를 따르다가 그 처사에 불만을 품고 다시 길을 바꾸려던 참이라. 이 날 상제님을 뵙고 모든 거동이 범속과 다름을 이상히 여겨 떠나지 않고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 상제님의 뒤를 따라가니 곧 용암리 물방앗간이라. 경석이 상제님의 말씀을 들을수록 마음이 끌리어 그 자리에서 상제님을 모시겠다고 간청하되 상제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道典 3:182) 네가 나를 따르려면
상제님께서 숙소를 김치경(金致京)의 용암리 물방앗간에 정하시니 음식이며 잠자리며 모든 것이 누추하기 이를 데 없어 여느 사람도 견디기 어려워하는데 경석이 이러한 고초를 겪으면서도 떠나지 아니하고 상제님을 ‘정읍의 자기 집으로 모시겠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진노하시어 큰 소리로 꾸짖으시기를 “나는 너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노라. 어서 내 앞에서 썩 물러가라, 이놈아!”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경석이 떠나지 않음을 괴로워하시며 수차 물러가기를 재촉하시되 경석이 듣지 않고 계속 자기 집으로 함께 가시기를 간청하니 그 때마다 혹 성을 내시고 욕을 하시며 쫓아내기도 하시는데,
경석이 보기에는 그러한 모든 일이 더욱 범상치 않을 뿐 아니라 수운가사(水雲歌詞)에 있는 ‘여광여취(如狂如醉) 저 양반을 간 곳마다 따라가서 지질한 그 고생을 뉘로 대해 그 말하며’ 하는 구절이 생각나매, 떠나지 않고 열흘 동안을 머물면서 제자가 되기를 굳이 청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이르시기를 “네가 나를 따르려면 모든 일을 전폐하고 오직 내가 가르치는 바에만 일심(一心)하여야 할지니 이제 돌아가서 모든 일을 정리하고 6월 초하룻날 다시 이곳으로 찾아오라.” 하시니라. 경석이 비로소 하직하고 집에 돌아와 아우들을 모아 놓고 상제님을 만난 일과 전주 송사를 작파한 일을 말하며
“너희들, 사람 생명이 크냐, 돈이 크냐? 나는 사람을 죽일 수가 없어 그냥 돌아왔노라. 이제 나는 선생님을 따라 사람 살리는 공부를 하려 하노라.” 하고 아우들을 설득하더니 드디어 모든 일을 정리하고 6월 초하룻날에 다시 용암리에 와서 상제님을 뵙고 정읍으로 가시기를 간청하니라.
네가 나를 길물로 끌어들이는구나
이 날 밤에 상제님께서 풀밭에서 주무시다가 닭이 운 뒤에 일어나시어 말씀하시기를 “잘못 풀밭에 누웠구나. 왜 일찍 깨우지 않았느냐.”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돌 위에서 주무시기도 하고 들판의 농부들과 한가로이 말씀을 나누기도 하시니 경석이 뒤따르며 지성으로 모시니라.
상제님께서 계속 경석의 추종을 불허하시다가 사흘 동안을 지내신 뒤에야 비로소 허락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내가 일찍이 목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고생하다가 겨우 헤어나 발목물에 서 있는데, 네가 다시 나를 깊은 길물로 끌어들이는구나.” 하시니라.
김치경(金致京, ?∼1921): 본관 경주. 부인 박씨와의 사이에 사유(士有, 1895년생) 등 2남 2녀를 두었다.
道典 3:183) 성인 다섯을 낳는 길
상제님께서 일진회가 일어난 뒤로 삿갓을 쓰시다가 이 날부터 의관을 갖추시고 경석을 데리고 물방앗간을 떠나 정읍으로 가시니라. 이 때 원평에 이르시어 군중을 향해 말씀하시기를 “이 길은 남조선(南朝鮮) 뱃길이니 짐을 채워야 떠나리라.” 하시고,
한 주점에 들어가시어 모든 행인을 불러 술을 나누어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길은 성인(聖人) 다섯을 낳는 길이로다.” 하시니 사람들은 그 뜻을 알지 못하더라.
기도 중이던 박공우를 만나심
다시 길을 떠나시며 말씀하시기를 “대진(大陣)은 하루에 30리씩 가느니라.” 하시니, 경석이 명을 받들고 일정을 헤아려 고부 솔안(松內) 최씨 재실에 사는 친구 박공우(朴公又)에게로 상제님을 모시거늘, 공우 또한 동학 신도로서 마침 49일 동안 기도하는 중이더라.
남조선 뱃길: 남조선 도수에 대한 올바른 역사 인식은 지구촌 인류의 생사를 판단하고 새 우주문명을 건설하는 관건이다. 남조선배 도수는 동방 한민족사의 발전 과정에서 우리 민족이 도달해야 할 궁극의 목적지, 역사의 최종 결론인 것이다.
짐을 채워야: 남조선 도덕선을 끌고 갈 주인, 일꾼을 실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대진(大陣): 상제님의 천하사는 인류사를 마무리짓는 대개벽 사업으로서 조직의 형태와 성격, 근본정신이 군대와 같다. ‘대진’은 천하사 군대가 행군해 나아가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최씨 재실: 숙사재(肅事齋). 현재 정읍시 정우면 장순리 송내 마을 소나무밭 깊숙한 곳에 있다.
박공우(朴公又, 1876∼1940): 본관 밀양(密陽). 호 인암(仁庵). 세 명의 부인과 혼인하여 5남 5녀를 두었다. 키가 180cm 가 넘었으며 풍채가 당당하였고, 음성은 사방에 울릴 정도로 웅장하였다. 배포가 크고 뚝심이 좋았으며, 상제님께서는 특히 그의 의로움을 높이 평가하셨다. 원평에서 65세로 작고.
道典 3:184)인암(仁庵) 박공우의 입문
박공우는 기골이 장대하고 웬만한 나무도 뿌리째 뽑아버리는 장사로 의협심이 충만한 인물이라. 일찍이 정읍, 고창(高敞), 흥덕(興德) 등 다섯 고을의 장치기꾼을 하면서 한창 때는 당할 자가 없는 씨름장사로 이름을 날리니라.
이후 예수교의 전도사로 수십 명을 포교하기도 하고 다시 동학을 신봉하여 혼인도 하지 않고 열렬히 구도에 정진하다가
경석의 인도로 찾아오신 상제님을 뵈니 이 때 공우의 나이 32세더라.
인간으로 내려오신 천주님
이 날 밤 공우가 밤새 향을 피워 모기를 쫓다가 상제님께 아뢰기를 “제가 지금 49일 기도 중에 있는데 이렇게 선생님을 뵙게 된 것이 기적이 아닌가 합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경석과 공우에게 이르시기를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통정신(通情神)이 나오니라.
나의 일은 비록 부모 형제 처자라도 모르는 일이니 나는 서양 대법국 천개탑 천하대순이라. 동학 주문에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이라 하였으니 나의 일을 이름이라.
내가 천지를 개벽하고 조화정부를 열어 인간과 하늘의 혼란을 바로잡으려고 삼계를 둘러 살피다가 너의 동토에 그친 것은 잔피(孱疲)에 빠진 민중을 먼저 건져 만고에 쌓인 원한을 풀어 주려 함이라.
나를 믿는 자는 무궁한 행복을 얻어 선경의 낙을 누리리니 이것이 참동학이니라. 궁을가(弓乙歌)에 ‘조선강산 명산이라 도통군자 다시 난다.’ 하였으니 그 또한 나의 일을 이름이라. 동학 신도간에 ‘대선생(大先生)이 갱생하리라.’고 전하나 죽은 자가 다시 살아오지는 못할 것이요, 이는 ‘대선생이 다시 나리라.’는 말이니 내가 곧 대선생이로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예로부터 계룡산(鷄龍山) 정씨(鄭氏) 왕국과 가야산(伽耶山)의 조씨(趙氏) 왕국과 칠산(七山)의 범씨(范氏) 왕국을 일러 오나 이 뒤로는 모든 말이 그림자를 나타내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정씨를 찾아 운수를 구하려 하지 말지어다.” 하시니라.
道典 3:185) 내가 이르는 곳을 천지에 알려야
이튿날 상제님께서 솔안을 떠나 정읍 대흥리(大興里)로 가실 때 공우를 돌아보시며 말씀하시기를 “만날 사람 만났을 적에….” 하시니, 공우가 문득 동학가사에 있는 ‘만나기만 만나 보면 너의 집안 운수로다.’라는 구절이 깨달아져 그 즉시 상제님을 따라나서니라.
이 날 대흥리 경석의 집에 이르시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르는 곳을 천지에 알려야 하리라.” 하시고, 글을 써서 서쪽 벽에 붙이시니 갑자기 우레가 크게 일어나거늘 “빠르기도 하다.” 하시고 그 글을 떼어 무릎 밑에 넣으시니 우레가 곧 그치는지라 공우는 크게 놀라 감복하고, 마을 사람들은 대낮에 난데없이 우렛소리가 크게 일어나므로 이상히 여기니라.
마음을 돌렸음을 고백하라
우레를 거두시고 경석에게 물으시기를 “지난 갑오년 겨울에 이 집에서 세 사람이 동맹한 일이 있었느냐?” 하시니 경석이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다시 “그 일로 인하여 모해자의 밀고로 너의 부친이 해를 입었느냐?” 하고 물으시니 경석이 울먹이며 “그러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니라.
상제님께서 또 물어 말씀하시기를 “너의 형제들이 그 모해자에게 큰 원한을 품어 복수하기를 도모하느냐?” 하시니, 경석이 아뢰기를 “자식의 도리로 어찌 복수할 마음을 갖지 아니하겠습니까?” 하거늘, 이에 상제님께서 일러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복수할 마음을 품고 있음을 너의 부친이 크게 걱정하여 나에게 고하니 너희들은 마음을 돌리라.
이제는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할 때니라. 만일 악을 악으로 갚으면 되풀이 되풀이로 후천에 악의 씨를 뿌리는 것이 되느니라. 너희들이 나를 따르려면 먼저 그 마음을 버려야 할지니 잘 생각하라.” 하시고, “너희들은 선을 행하고 공을 세우라.” 하시니라.
이에 경석이 세 아우를 데리고 별실에 들어가 서로 위로하며 그 원한을 풀기로 언약하고 그대로 아뢰니, 말씀하시기를 “그러면 뜰 밑에 짚을 펴고 청수 한 동이를 모셔 놓고, 그 청수를 향하여 너의 부친을 대한 듯이 마음을 돌렸음을 고백하라.” 하시니라. 이에 경석이 명하신 대로 행하니 사형제가 설움이 북받쳐서 청수동이 앞에서 크게 울거늘,
상제님께서 이르시기를 “너의 부친이 너무 슬피 우는 것을 오히려 불쾌히 여기니 그만 그치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이로부터 한동안 대흥리 차경석의 집에 머무르시며 공사를 행하시니라.
천지신명들이 알현할 때
상제님께서 공사를 행하시는 동안 경석과 공우가 신안(神眼)이 열리어 보니 천지신명들이 상제님께 배알할 때는 반드시 반천무지(攀天撫地)식으로 사배(四拜)를 올리고 상제님께서는 읍(揖)으로 대하시니라.
대흥리. 현재 정읍시 입암면 접지리 대흥 마을. ‘크게 흥한다.’는 지명의 뜻을 취해 상제님께서 도운의 시발처로 쓰셨다.
경석의 사형제. 윤홍, 윤경, 윤칠과 윤덕의 순이다.
윤경은 이복 동생이며, 윤홍 다음으로 막내 윤덕의 인물이 수려했다 한다.
반천무지(攀天撫地): 하늘을 받들고 땅을 어루만지는 자세를 취하는 절법으로, 하느님을 받드는 최상의 예법이다. 한민족이 천제를 올리기 시작한 상고시대부터 행해졌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합덕하는 이치가 담겨 있다.
道典 3:186) 집안을 아주 망치려 한다
경석의 집안은 아버지 차치구(車致九)가 일찍이 동학을 믿어 갑오년에 동학군을 거느리고 혁명에 참가하였다가 불의에 패망하여 죽음을 당한 이후로 가세가 기울어 형편이 빈한하더니, 상제님을 모실 무렵에는 끼니조차 잇기 어려워 경석의 제수가 한 동네에 잘사는 신(申)씨네에서 밥품을 파니라.
경석의 아우 윤칠(輪七)은 근동(近洞)에서 주먹대장으로 유명한데 어려운 형편에 상제님까지 모시게 됨을 싫어하여 “동학한다고 집안이 망했는데 또 이상한 사람을 끌어들여 집안을 아주 망치려 한다.” 하고 불평을 하며 돌아다니거늘, 경석이 생각하되 자기가 청하여 모신 마당에 공궤(供饋)가 조악함도 민망하거니와 아우의 무례로 인하여 상제님을 뵙기가 더욱 송구스럽더라.
차치구(車致九, 1851∼1894): 갑오년 동학혁명 당시 정읍에서 오천여 명을 거느리고 기포한 동학군의 지도자. 전봉준이 태인 전투를 끝으로 부하 십여 명을 데리고 순창 피노리에 가서 몸을 숨길 때 동행하였다.
죽음을 당한 이후: 차치구는 피노리에서 정읍 입암면 국사봉으로 피신했으나 관군이 친구 부인을 통해 피신처를 알아내자 스스로 붙잡혀 당시 흥덕 군수 윤석진에 의해 죽음을 당하였다. 이후 차경석도 윤석진의 시기로 죽음에 직면했으나 어느 참의(參議)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차윤칠(車輪七, 1884∼1920): 족보명 병국(炳國). 부인 김해 김씨 사이에 1남 용민(鏞民)을 두었다.
道典 3:187) 경석아, 집을 크게 짓지는 말아라
상제님께서 대흥리에 머무르실 때 경석을 데리고 네 차례 비룡산(飛龍山)에 오르시어 공사를 행하시니라.
그 뒤에 경석의 집 벽에
千古春秋阿房宮이요 萬方日月銅雀臺라
천고춘추아방궁 만방일월동작대 라고 써 붙이시며 경석으로 하여금 마음에 간직하여 잊지 않게 하시고, 또 경계하여 말씀하시기를 “경석아, 집을 크게 짓지는 말아라. 그러면 네가 죽게 되느니라.” 하시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정읍이 대창(大昌)하되 잠농지운(蠶農之運)이라. 누에는 집만 지으면 죽나니 집만 끝이 나면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를 두고 차경석 성도는 상제님께서 자신에게 종통을 전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상제님께서 차경석의 야심을 아시고,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을 그의 운명을 암시하신 것이다.
잠농지운(蠶農之運): 누에치기의 운. 누에의 한살이로 비유하신 이 말씀에 차경석 성도의 신앙의 전 과정이 함축되어 있다.
道典 3:207) 경석에게 농바우 장군 도수를 붙이심
10월에 하루는 경석에게 돈 30냥을 마련케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경석아, 이것은 너를 위한 일이니라.
내가 오늘은 너와 함께 순창에 가려 하노라.” 하시며 어떤 법을 베푸시고 溪分洙泗派하고 峯秀武夷山이라 活計經千卷이요 行藏屋數間이라. 이곳 시내는 수사(洙泗)의 흐름을 갈라 받았고, 봉우리는 무이산보다 빼어나구나. 살림이라곤 경서가 천 권이요, 몸 둘 집은 몇 칸 뿐이로다.
襟懷開霽月하고 談笑止狂瀾이라 小子求聞道하니 非偸半日閒이라
가슴에 품은 뜻은 환히 갠 달 같고, 담소는 미친 물결을 그치게 하네. 제가 찾아온 것은 도를 듣고자 함이요, 한나절의 한가로움을 뺏으려 함이 아니외다. 하고 고시를 외워 주신 후에 경석을 데리고 순창 농바우 박장근의 집에 이르러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하대세를 회문산 오선위기형(五仙圍碁形)의 형세에 붙여 돌리나니 네게 한 기운을 붙이노라.” 하시니라. 이어 장근에게 이르시기를 “너의 머슴을 불러 어젯밤 무엇을 본 일이 있는지 물어 보라.” 하시거늘, 장근이 머슴을 불러 물으니
머슴이 대답하기를 “어젯밤 꿈에 한 백발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 농바우를 열고 큰칼과 투구와 갑옷을 꺼내는데, 장검은 서릿발이 돋은 듯하고 갑옷과 투구는 빛이 나서 눈이 부셨습니다.
신선이 칼과 투구와 갑옷을 저에게 주면서 ‘한 장군이 명(命)을 받들고 여기에 올 것이니 이것을 그 장군에게 주라.’ 하므로 제가 그것을 받아서 두었사온데, 그 자리가 바로 저 자리입니다.” 하며 경석이 앉은 쪽을 가리키는지라 상제님께서 들으시고 “네가 꿈을 옳게 꾸었도다. 농바우의 전설이 허망한 말이 아니로다.” 하시고, 다시 장근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공사의 증인이니라.” 하시니라. 대저 그 지방에는 농바우 속에 갑옷과 투구와 긴 칼이 들어 있는데 ‘장군이 나면 내어가리라.’는 말이 전하여 오니라.
회문산: 전북 순창군 구림면과 임실군 덕치면에 걸친 산(830m). 다섯 선인이 바둑판을 에워싼 오선위기의 형국이며, 24혈(穴)이 있다.
道典 3:208) 경석의 운명을 예시하심
이 때 경석에게 글 한 수를 읽어 주시니 이러하니라.
經之營之不意衰하니 大斛事老結大病이라 天地眷佑境至死하니 漫使兒孫餘福葬이라
천하사를 평생 경영하다 뜻밖에 쇠패하니 배포가 아무리 커도 일이 쇠해져 큰 병을 얻으리라. 천지가 도와주어도 마침내 죽음에 이르니 헛되이 자손을 부려 남은 복마저 장사지내는구나.
道典 3:211) 경석의 출세글을 내려 주심 : 망건서와 망건시
이 때 지어 주신 망건서는 이러하니라.
網 巾 序
망 건 서
如無有一身現心이니, 無則事萬皇而必無一極하고 有則夢一皇而其極必達하리라
망건을 쓰고 안 씀은 내 몸에 마음을 드러냄과 같으니 안 쓰면 어떤 임금(萬皇)을 섬길지라도, 너의 그 지극한 한 가지 꿈을 이루지 못할 것이요, 쓰면 천자를 꿈꾸어 온 너의 지극한 꿈이 꼭 이뤄질 것이니라.
無則順이요 有則逆이니, 先聖이 不同禽獸之道하여 定有一作이라 故로 予從逆하노라
망건을 안 쓰면 머리가 그대로 내려오니 순(順)이요, 망건을 쓰면 머리를 빗어 치켜올리니 역(逆)이라. 선성(先聖)이 금수의 도리와 같지 않게 법도를 정하였으므로 나도 머리 빗고 망건을 써서 인간의 길을 좇느니라.
또 이 때 지어 주신 시는 이러하니라.
網 巾 詩 河圖義氣馬人同하니 故拔一毛爲天下라 博覽博識誰伏羲오 天皇公庭表日暈이라
하도의 의기(義氣)는 말과 사람이 그 덕을 함께 하니 말총 하나를 뽑아서 천하를 이롭게 하였도다. 누가 박람박식(博覽博識)한 복희런가! 망건과 갓을 쓰니 이마에 햇무리를 두른 것 같구나.
차경석 성도에게 큰 사명을 내려 주시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다. 단순히 ‘너희들은 상투 틀고 망건을 쓰라.’는 말씀이 아니다.
너의 지극한 한 가지 꿈: ‘파종-이종-추수’도수로 이어지는 도운의 종통맥에서 이종 도수를 전개시킨 공덕으로, 도성덕립된 후에 지도자 일꾼의 추존으로 그 꿈이 성사될 것을 공사 보신 것이다.
道典 3:260) 너는 대인 공부를 하는 사람
어떤 사람이 경석에게 말하기를 “그대의 장인이 그대가 ‘요술쟁이에게 요술을 배우려 한다.’ 하며 ‘바람맞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노라.” 하니, 경석이 말하기를 “내가 어찌 바람맞았으리오. 그러는 장인 양반이 오히려 바람맞은 사람이로다.” 하거늘,
그 사람이 나간 뒤에 상제님께서 경석을 불러 꾸짖으시며 “너는 대인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제 노릇 하려고 하는 말을 네가 탄하여 똑같이 하면 너도 그와 같은 사람이 될지니 무엇으로 대인을 이루겠느냐.” 하시니라.
하루는 논가를 지나시는데 경석이 큰 소리로 새떼를 쫓거늘, 말씀하시기를 “경석아, 네가 한 떼 새의 배 채움을 용납지 못하니 어찌 천하의 백성들을 기르겠느냐. 장차 백성들을 크게 상하게 하겠구나.” 하시니라.
道典 3:290) 각기 천지기운을 받느니라
하루는 글을 써서 경석에게 주시며 “이 뒤에 음양에 제한이 없게 하여 달라고 심고하라.” 하시고 불사르신 뒤에 또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이러하니라.
人生世間何滋味오 曰衣曰食이요 衣食然後에 曰色也라
사람이 세상사는 재미는 무엇인가. 입고 먹는 것이요 의식 연후에는 음양의 낙이니라.
故로 至於衣食色之道하여는 各受天地之氣也니
그러므로 의식색의 도에 이르러서는 각기 천지기운을 받나니
惑世誣民者와 欺人取物者도 亦受天地之氣也니라
혹세무민하는 자와 남을 속여 재물을 갈취하는 자도 역시 천지기운을 받느니라
道典 5:180) 초패왕 도수를 붙이심
하루는 형렬과 경석을 데리고 순창 장군암(將軍岩)에 가시어 공사를 행하실 때, 경석을 장군바위에 앉히시고 상제님께서는 형렬과 함께 바위 아래에 서시어 말씀하시기를 “오늘 너에게 초패왕(楚覇王) 도수를 붙이노라. 모든 일에 선으로써 행사하라.” 하시고, 형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공사의 증인이니라.” 하시고 돌아오시니라.
이 공사로 차경석 성도는 상제님 도운(道運)의 이종 역을 맡아 교세를 크게 확장하였다. 차경석 성도는 1921년에 경남 함양군에 있는 황석산에서 대규모 천제를 지내고, 국호를 시국(時國)이라 정하였으며 교명을 보화교(普化敎)로 선포하고 차천자라 불리었다.
道典 5:204) 후천 음양 도수
25일 새벽이 되매 성도들을 정좌케 하시고 각기 종이 한 조각씩을 나누어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후천 음양 도수를 보려 하니 각자 마음에 있는 대로 점 하나에 아내 하나씩 표하여 점쳐 들이라.” 하시고, 점 찍은 표를 함에 넣게 하시어 상제님께서 손으로 휘저어 한 장씩 뽑으시니 경석은 열두 점이요, 응종은 두 점이요, 경수는 석 점이요, 내성은 여덟 점이요, 공신은 한 점이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홉 점은 없으니 일남구녀란 말을 알 수 없도다.” 하시고, 경석에게 물으시기를 “너는 웬 아내를 열둘이나 원하느냐?” 하시니 경석이 대답하기를 “십이제국에 한 명씩 두고 달마다 한 나라씩 순유하면 남아 행락(行樂)의 극치일까 하옵니다.” 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그럴 듯하도다.” 하시니라.
경수와 응종에게 물으시기를 “칠십 노옹이 한 사람도 어렵겠거늘 아내 둘, 셋을 어떻게 감당하려느냐?” 하시니, 응종이 대답하기를 “후천에는 노인이 다시 젊어진다 하오며 자고로 좌처우첩(左妻右妾)이란 말이 있사오니 둘을 원합니다.” 하고, 경수가 아뢰기를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로 셋을 원합니다.” 하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말도 그럴 듯하도다.” 하시고, 내성에게 말씀하시기를 “육관대사(六觀大師)의 제자 성진(性眞)이 팔선녀를 데리고 희롱한다 하였으니 네가 선관이 되려고 여덟 점을 쳤구나.” 하시니라.
이어 공신에게 물으시기를 “칠십 노옹도 둘, 셋을 원하거늘 너는 청년으로서 어찌 한 사람에 만족하느냐? 근력이 부족해서 하나밖에 못 하냐?” 하시거늘, 공신이 대답하기를 “하늘도 하나고 땅도 하나입니다.” 하매, 상제님께서 무릎을 치며 말씀하시기를 “그려, 그렇지! 네 말이 옳도다. 오직 건곤뿐이니 이로써 공사를 마치노라.” 하시고,
무를 잘라 무엇을 새기신 뒤에 먹물을 묻혀 모든 종이 조각에 도장찍듯이 찍으시니라. 이어 말씀하시기를 “오늘 공사를 잘 보았으니 점심과 술안주를 특별히 성대하게 준비하여 손님 대접을 잘하여 돌려보내라.” 하시니라. 이 때 광찬과 공우는 정읍 차경석의 집으로 보내시고 원일은 태인 신경원의 집으로 보내시니 이는 공우가 여러 번 관재로 곤욕을 당했음을 아시고 곧 닥칠 화액을 면케 하려 하심이요, 광찬과 원일은 그 성품이 너무 과격하여 불참케 하심이더라.
道典 5:205) 동학 역신 해원 공사
공신이 여러 성도들을 돌려보낸 뒤에 상제님께서 공신, 경수, 응종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경석이 성경신(誠敬信)이 지극하므로 달리 써 볼까 하였으나 제가 스스로 청하니 어찌할 수 없는 일이로다. 지난 갑오년에 동학 신도들이 여러 만 명 학살되어 모두 지극히 원통한 원귀(寃鬼)가 되어 우주간에 나붓거리는지라
원래 동학은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주창하였으나 때가 때인 만큼 안으로는 불량하고 겉으로만 꾸며대는 일이 되고 말았나니 다만 후천 일을 부르짖었음에 지나지 못함이라. 마음으로 각기 왕후장상(王侯將相)을 바라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릇 죽은 자가 수만 명이니, 그 신명들을 해원시켜 주지 않으면 후천에 역도(逆度)에 걸려 반역과 화란이 자주 일어나 정사(政事)를 못 하게 되리라.
그러므로 이제 그 신명들을 해원시키려고 원혼을 통솔할 자를 정하려는 중인데 경석이 십이제국을 말하니 이는 스스로 청함이라. 이제 경석에게 동학 역신 해원의 삼태육경(三台六卿) 도수를 붙이리라.” 하시고, “그 부친이 동학 접주로 그릇 죽었고 경석도 또한 동학 총대(總代)였으니 오늘부터는 동학 때 한 맺힌 신명들을 전부 경석에게 붙여 보내어 이 자리에서 왕후장상의 해원이 되게 하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춘치자명(春雉自鳴)의 설화(說話)를 들어 보라. 배짱이 그만하면 능히 그 책임을 감당하리니 뒷날 두고 보라. 경석이 금전도 무수히 소비할 것이요, 사람을 모으는 것도 갑오년보다 훨씬 많게 될 것이니라. 경석에게 밥주걱을 맡겼나니 경석은 제왕(帝王)만큼 먹고 지내리라. 이렇게 풀어놓아야 후천에 아무 일도 없으리라.” 하시고, 두루마리에 글을 써서 대공사를 처결하시며 외인의 출입을 금하시니라.
삼태육경(三台六卿): 삼정승과 육조판서.
왜 상제님께서는 동학 신명을 차경석 성도에게 붙여 해원케 하셨는가?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을 노래하며 후천개벽을 학수고대한 동학혁명의 종군자들이 바로 상제님의 무극대운을 부르짖은 일꾼들이기 때문이다. 이에 상제님께서 몸소 그들의 원한을 초기 증산도 도운 개척의 운로에 붙여 해소시키셨다.
춘치자명(春雉自鳴): 봄꿩이 제 스스로 운다는 뜻으로, 시키거나 요구하지도 않는데 제가 스스로 나서서 손해를 보거나 죽음을 당한다는 말이다.
道典 5:215) 너희가 혈심을 갖지 못해 장상신이 응하지 않노라
일전에 상제님께서 이번 화액에 쓰기 위하여 약간의 돈을 준비하신 뒤에 갑칠에게 명하시어 ‘경석에게 전하라.’ 하시더니 갑칠의 심부름 맡은 사람이 화란을 틈타 그 돈을 훔쳐 도망하는 것을 갑칠이 쫓아가서 되찾아 경석에게 전하매
경석이 그 돈으로 옷과 침구와 음식 등을 준비하여 옥중으로 들여보내니라.
그믐날 저녁에 우레와 번개가 크게 일어나거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서양에서 천자신(天子神)이 넘어옴이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자신은 넘어왔으나 너희들이 혈심을 가지지 못하였으므로 장상신(將相神)이 응하지 아니하노라.” 하시니라.
道典 5:223) 고부에서 사흘을 머무르신 뒤에 와룡리 황응종의 집으로 가시니 차경석이 따르거늘, 이 때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자를 도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 하시고, “꿈만 꾸는 자도 죽으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곳에서 죽으면 땅에서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이후 경석을 데리고 손바래기 본댁으로 가셨다가 김성연의 주막에서 술을 잡수시고 대흥리로 가시니라.
道典 5:343) 십일전 상량 공사
하루는 성도들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있는 기운 그대로 풀어 버릴 수밖에 없다.” 하시고, 경석에게 백목(白木)을 가져오라 하시어 상량 공사(上樑公事)를 행하시다가 “백목이 부족하다.” 하시며 경석으로 하여금 더 가져오게 하시어 공사를 마저 마치시니라. 이어 경석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천자 소리를 듣기는 듣는다만 집을 지으면 죽으리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는 이따금 경석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주인’이라 부르시니라.
道典 6:31) 경석아, 너의 운수가 부족하니
하루는 대흥리에 계실 때에 경석에게 물으시기를 “경석아, 너의 평생 소망이 무엇이냐?” 하시니, 경석이 아뢰기를 “저의 평생 소원은 돈을 물 쓰듯이 써 보는 것입니다.” 하니라. 잠시 후 상제님께서 대들보에 긴 베를 걸게 하신 뒤에 공우로 하여금 북을 치게 하시고 경석에게 춤을 추게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너는 성(姓) 중에서 가장 좋은 성을 가지고 있구나.” 하시고
“경석아, 너의 운수가 부족하니 이제 네 선조의 묘가 있는 구월산(九月山) 금반사치혈(金盤死雉穴)의 기운을 옮겨 와야 하리라.” 하시니라. 잠시 후 다시 말씀하시기를 “이 혈음은 반드시 장풍(長風)을 받아야 발(發)하리라.” 하시니, 이 때 마침 이도삼(李道三)의 아우 장풍(長豊)이 들어오거늘 공우가 북채를 잠깐 멈추고 “장풍이 오느냐.” 하고 인사하매, 상제님께서 그만 그치게 하시고 경석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의 소원을 허락하여 장차 돈을 물 쓰듯 하게 해 주리니 덕(德)이 근본이요 재물은 말단(末端)이니라.” 하시니라.
구월산: 황해도 은율군(殷栗郡)과 안악군(安岳郡)의 경계에 있는 산(954m). 북한의 5대 명산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며, ‘궁휼산’ 또는 ‘증산’이라고도 한다. 이곳에 금반사치혈(金盤死雉穴: 금으로 만든 소반에 놓인 죽은 꿩의 형상)이 있다.
이장풍(李長豊, 1885~?): 본관 전주(全州). 본명 기조(基朝), 장풍은 다른 이름. 이 때 나이 23세로 태인 하증산리(下甑山里)에서 종형(4촌)인 이도삼과 함께 살았다.
첫댓글 道典 7:22) 앞으로 더 썩을 것이다
하루는 상제님께서 거적에다 썩은 개머리를 둘둘 말아 걸머지고 어느 군청에 가시어 큰 소리로 “군수를 찾아왔노라!” 하고 외치시니, 안에서 사람이 나와 “무슨 일로 그러시오?” 하고 묻거늘 “내가 볼일이 있어서 왔노라.” 하시니라. 이 때 문득 썩는 냄새가 진동하니 그 사람이 코를 싸쥐고 “이게 뭐요?” 하고 묻거늘, 상제님께서 “군수에게 줄 것이니라.” 하시니 그 사람이 더 이상 묻지 아니하고 군수를 만나게 해 드리니라.
상제님께서 군수 앞에 거적을 탁 놓으시며 큰 소리로 “내가 이걸 가지고 왔으니 펴 보라.” 하시므로 군수가 자신에게 주는 봉물로 알고 거적을 들추니 그 속에 구더기가 꾸물꾸물 기어다니고 악취가 코를 찌르는 썩은 개머리가 하나 들어 있거늘, 상제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시기를 “너희 놈들이 이 지경으로 썩어서 그 냄새가 천지에 진동하고 있구나.” 하시고, “앞으로 더 썩을 것이다!” 하시며 호통을 치시니라.
* 지금 정치판이나 일부 공무원들이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세상이 썩을 대로 썩어가는 중이다. 신신애씨 노래 가사처럼 짜가가 판치는 세상이 되었다.
道典 4:32) 원래 인간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서 큰 병을 이루나니, 그러므로 이제 모든 일을 풀어놓아 각기 자유 행동에 맡기어 먼저 난법을 지은 뒤에 진법을 내리니, 오직 모든 일에 마음을 바르게 하라. 거짓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니라.
*지금 세상은 남자든, 여자든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도록 풀어놓은 세상이다. 그래서 세상이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개판 오분전이 돼가고 있다. 지금은 어지럽게 원한을 푸는 난법해원(亂法解寃) 시간대다.
充者는 慾也라. 以惡充者도 成功하고 以善充者도 成功하니라
채운다는 것은 욕심이라. 악으로 채우는 자도 성공(자기 충족)하고, 선으로 채우는 자도 성공(자기 충족)하느니라.
道典 4:32) 이제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임감(臨監)하여 마음에 먹줄을 잡아 사정(邪正)을 감정케 하여 번갯불에 달리리니, 마음을 바르게 못 하고 거짓을 행하는 자는 기운이 돌 때에 심장과 쓸개가 터지고 뼈마디가 튀어나리라. 운수는 좋건마는 목 넘기기가 어려우리라.
@풀베개 니라.
道典 7:17) 운수는 가까워 오고 도(道)는 멀리 가리니 마음을 굳게 가져 목 넘기기를 잘 하라. 부하고 귀하고 강권을 가진 자는 모든 척(隻)에 걸려 콩나물 뽑히듯 하리라. 지금은 원시반본(原始返本)하는 시대니 혈통줄을 바르게 하라. 환부역조(換父易祖)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
가마(釜)가 끓고 인후(咽喉)가 타고 창자(魚腹)가 썩으면 세상일을 가히 알리라. 고기는 꼬리(魚尾)가 병들면 힘을 못 써 죽느니라. 천하에 지진이 자주 일어나면 일이 다 된 줄 알아라.
* 운수는 가까워 오고, 도道는 멀리 가리니: 매일같이 끔찍한 뉴스다. 지금은 위아래도 없고, 도덕이 무너진 세상이다.
환부역조(換父易祖)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 환부역조: 자신의 조상과 국조(國祖)를 바꾸고 부인하는 모든 행위. 조상 제사를 거부하며 타민족의 민족신 여호와를 하느님으로 믿는 행위. 이는 제 뿌리인 조상을 부정하는 큰 죄악이라 말씀하셨다.
가마(釜)가 끓고: 6.25때 부산(釜山) 상황을 말함.
인후(咽喉)가 타고 인후: 길의 중요한 통로가 되는 곳을 인체의 목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6.25때 인천의 상황을 말함.
@풀베개 창자(魚腹)가 썩으면: 한반도는 바다에 둘러싸인 물고기의 형상으로 창자는 한국의 4대 강이 오염되는 지경에 이르면, 지구촌의 환경 파괴와 오염을 비롯한 인류 문제의 총체적 상황으로 인해 ‘대세를 깨치게 된다는 말씀이다.
조선(朝鮮): 아침 조(朝), 고을 선(鮮)으로 조선의 선(鮮)자에도 물고기 어(魚)자가 들어가 있다.
道典 6:126) “이제 천하의 마(魔)를 해원시켜 난신(亂神)들로 하여금 각기 그 소원을 이루게 하여 앞으로 오는 후천 오만년에는 다시 망령된 짓을 못 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나의 일이 장차 초장봉기지세(楚將蜂起之勢)로 각색이 혼란스럽게 일어나 잡화전 본을 이루리라. 그러나 그 후에 다시 진법(眞法)이 나오게 되리라.”
천하의 마(魔)를 해원시켜 난신(亂神)들로 하여금 각기 그 소원을 이루게 하여: 아래 신교총화에서도 "지금 인간들이 귀신과 마귀에 홀려서 미친 것 같으리라.는 말씀이 나온다. 인간의 마음은 귀신과 마魔가 드나드는 자리다. 탐음진치 4종마가 내 마음 상태에 따라서 응기하는 것이다. 마치 무당에게 귀신이 접신 되듯이
@풀베개 <신교총화神敎叢話>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람마다 하루에 천리를 갈 것이며[日行千里] 집 위에 집이 올라서고[屋上加屋], 집집마다 약국이로다[家家藥局]. 곳곳마다 종소리가 울리고[處處鐘鳴] 사는 모습이 새가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사는 모습과 같으리라. (신교총화, 29쪽)
세로世路가 험난하여 천사만마千邪萬魔가 천리를 어지럽히리라. 사람이 모두 도도滔滔해지고 스스로 속이고 남을 속이며 하늘과 땅이 광명을 상실하리라. 사람들이 자기 선조의 도道를 알지 못한 채 다만 다른 것에 매달려 있으리라. 사람의 마음이 삿된 것에 구부러져서 사도邪道에 잘 빠져들고 진실과 허위를 구분하지 못하리니 어찌하리오! 또 귀신과 마귀에 홀려서 미친 것 같으리라.
세상에 어찌 하늘은 있는데, 땅은 없고, 아버지만 있고 어머니는 없는 이치가 있겠는가? 서양 사람들은 천부天父는 높이면서 땅 어머니는 몰라보니 장래 인류가 모두 금수로 돌아갈 징조라. 조상에게 제사도 지내지 않고 마귀라고 칭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이들을 어찌 인간이라 할 수 있으리오.
남북극 빙하가 녹으면 녹을수록 기후변화는 더 심해지고, 천하에 지진이 자주 일어나면 일이 다 된 줄 알라"는 말씀대로 지진은 더 잦아지고 강해진다. 올해보다는 내년이 내년보다는 내후년이, 점점 더 조여오는 상황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道典 7:3) 앞으로 오는 세월이 연(年)으로 다투다가, 달(月)로 다투다가, 날(日)로 다투다가, 시간(時)으로 다투다가, 분(分)으로 다투게 되리니 대세를 잘 살피라.”
앞으로 지구촌 인류에게 닦 칠 일들의 순서가 1) 천연두(시두,엠폭스)와 2) 남북 3일 전쟁과 3) 남북전쟁을 발판으로 미국과 중국의 3차 대전이다. 남북 3일 전쟁으로 끝나는 이유는 전북 군산에서 발생하는 괴질병으로 인해 종결된다. 괴질병은 전세계를 3년동안 강타하게 된다. 중세 때 흑사병으로 유럽인구 3분의 1이 줄었는데, 이번 지구촌 3년 괴질병으로 인구가 약 90% 이상이 줄어들게 된다. 옛사람들은 백조일손(百祖一孫)으로 말하였다.
道典 2:44) 이 때는 생사판단의 가을개벽기
상제님께서 하루는 세간에 전해 오는 ‘백조일손(百祖一孫)’이라는 말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가을바람이 불면 낙엽이 지면서 열매를 맺는 법이니라. 그러므로 이 때는 생사판단(生死判斷)을 하는 때니라.” 하시니라. 한 성도가 여쭈기를 “‘다가오는 세상 난리는 신명의 조화임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 있사온데 과연 그러합니까?” 하니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지개벽을 해도 신명 없이는 안 되나니, 신명이 들어야 무슨 일이든지 되느니라. 내 세상은 조화의 세계요, 신명과 인간이 하나 되는 세계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내 일은 인신합덕(人神合德)으로 되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7:38) 한 성도가 “세상에 백조일손(百祖一孫)이라는 말이 있고, 또 병란(兵亂)도 아니고 기근(饑饉)도 아닌데 시체가 길에 쌓인다는 말이 있사오니 이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선천의 모든 악업(惡業)과 신명들의 원한과 보복이 천하의 병을 빚어내어 괴질이 되느니라.
@풀베개 봄과 여름에는 큰 병이 없다가 가을에 접어드는 환절기(換節期)가 되면 봄여름의 죄업에 대한 인과응보가 큰 병세(病勢)를 불러일으키느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천지대운이 이제서야 큰 가을의 때를 맞이하였느니라. 천지의 만물 농사가 가을 운수를 맞이하여, 선천의 모든 악업이 추운(秋運) 아래에서 큰 병을 일으키고 천하의 큰 난리를 빚어내는 것이니
큰 난리가 있은 뒤에 큰 병이 일어나서 전 세계를 휩쓸게 되면 피할 방도가 없고 어떤 약으로도 고칠 수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병겁이 휩쓸면 자리를 말아 치우는 줄초상을 치른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병겁으로 사람을 솎아야 사(私)가 없다.” 하시니라.
선천의 모든 악업이 추운(秋運) 아래에서 큰 병을 일으키고 천하의 큰 난리를 빚어내는 것이니: 큰 병. 추수운 아래 터지는 병겁은 세계 인류의 모든 의식의 벽, 문화의 장벽, 기존 관념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대사건이다. 지금까지 우주의 봄여름 5만 년, 상극의 선천문명이 상생의 후천문명으로 전환하는데 필요한 창조적 진통이며, 새 생명으로 재탄생하는 필수불가결한 통과의례로서 선천 5만년 동안 찌들었던 묵은기운을 씻어내는 과정이
道典 6:16)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도둑놈이 따로 없나니 글 배운 사람이 도둑놈이니라. 붓대 가진 놈이 앉아서 이리저리 다 만드니, 그들이 제일 큰 도둑놈이니라.” 하시니라.
道典 10:57) 상제님께서 문득 밖에 모인 여러 성도들에게 꾸짖듯이 말씀하시기를 “글 배우는 사람이 도둑놈이지 도둑놈이 따로 없나니 붓대 가진 놈이 제일 큰 도둑놈이니라. 잡부자작(雜敷自作)하지 말라. 나의 도가 씨가 되어 싹이 나고, 또 싹이 나서 연(連)하게 될 때 그놈들이 앉아서 요리조리 다 만드니, 앞으로는 해를 돌아가면서 속고 사는 세상이니라.” 하시니라.
이에 형렬이 ‘나가자.’고 눈짓을 하니 호연이 밖으로 나가려고 막 일어서는데, 갑자기 앞뒷문이 벌컥 열리면서 바람이 휘몰아 들어오고 장대비가 마구 쏟아지며 시퍼런 번갯불이 천둥소리와 함께 방안으로 들어오거늘, 상제님께서 오른손으로 번갯불을 탁 잡으시며 크게 호령하시기를 “어떤 놈이냐? 내가 시간을 저울질하고 있는데 네가 잘난 체하여 마음대로 불칼을 내두르느냐! 나 금방 올라간다.” 하시니라.
붓대 가진 놈이 제일 큰 도둑놈. 상제님의 도법과 행적이 왜곡되어 난법 시대가 열릴 것을 경계하신 말씀이다.
상제님의 진실한 정체를 왜곡하고, 인류의 어머니 태모(太母) 고수부(首婦, 주부(主婦)란 말의 어원)님을 비롯한 종통전수 도수를 부정, 말살하는 패역자들이 속출하고, 선천 학문의 틀에 갇힌 학자들이 전공바보가 되어 문자놀음으로 상제님의 무극대도의 무궁한 조화세계를 왜곡시킬 것을 크게 경계하신 것이다.
道典 6:21) 난법자 멸망 공사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나의 도(道)를 열어 갈 때에 난도자(亂道者)들이 나타나리니 많이도 죽을 것이니라.” 하시고 가르침을 내리시니 이러하니라. 不知赤子入暴井하니 九十家眷總沒死라
알지 못하는 갓난아이가 깊은 우물에 빠지니, 구십 가솔들이 모두 떼죽음을 당하는구나.
또 말씀하시기를 “난법난도하는 사람 날 볼 낯이 무엇이며, 남을 속인 그 죄악 자손까지 멸망이라.” 하시니라.
@풀베개
춘산채지가) 天上功德천상공덕 先靈神선영신들 子孫자손찾아 내려올 제, 춤추고 노래하며 나를 보고 반가와서
積善적선일네 積善적선일네 萬代榮華만대영화 積善적선일네, 百祖一孫백조일손 그 가운데 자손줄을 찾아가니
어떤 사람 이러하고 어떤 사람 저러한고, 자손줄이 떨어지면 先靈神선영신도 멸망이라, 희희낙락 기뻐할 제 한모퉁이 통곡이라 뼈도 없고 살도 없다 靈魂영혼인들 있을쏘냐
자손을 잘못 두면 辱及先祖욕급선조 된다 하고, 자손을 잘만 두면 祖上餘陰조상여음 頌德송덕이라
* 우주의 여름에서 가을우주로 넘어갈때 자손이 살아남지 못하면, 열매맺지 못하면, 자신의 조상 뿌리까지도 다 쭉정이가 되는 것이다. 묵은 하늘이 사람 죽이는 공사만 보고 있도다"라는 말씀에서 기존 종교를 아무리 잘 맹신해 봐야 영원히 죽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 가을에 열매맺지 못하면 이우주에서 나와 내뿌리 조상까지 영원히 이우주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가을우주가 5만년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