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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시작
성경본문: 시편 100: 1-5
1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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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을 잘 보내셨는지요? 아마, 주방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여러 가지 준비에 시달린 분들에게는 많이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고, 직장 생활에 시달리는 분들에게는 소중한 휴식의 시간이기도 했겠지요.
아마 이런 긴 휴식은 좀처럼 오기 힘든 일이기도 하여서, 추석이 지나가자마자 다시 달력을 꺼내들고 긴 연휴가 오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소란스럽기도 하고 분주했던 시간이 다 지나가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추석에 즈음해서 최영미 시인이 한 신문에 기고 한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예전에는 좀처럼 추석의 분위기에 어울릴 수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특별히 아버지와의 불화가 한 몫을 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아버지는 쓰러지셔서 요양원에 계시고, 약해진 어머니를 도와서 추석을 준비하고 찾아올 가족들을 기다리는 일이 참으로 익숙해지고, 자기에게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글은 ‘우리의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끝을 맺고 있습니다.
여기엔 최영미 시인의 어떤 의도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를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그녀가 지난 1994년에 발표한 시입니다.
그녀가 펴낸 시집의 제목이기도 하였는데, 그 제목을 보면서 아니 서른 밖에 안 되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좀 더 인생을 살아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저도 30대의 중반을 넘기고 있었는데, 그것은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던 그녀가 시간이 한 20년 쯤 지나서... 이번에는 ‘우리의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그녀가 말할 때,“아... 이제는 삶과 세상에 대해서 좀 다른 시선을 가지게 되었구나... 이제는 정말 꽃다운 나이는 다 지나가고... 50대 접어든 나이인데... 지금이야말로 정말 즐겁고 풍성한 잔치가 시작되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마음이 필요한 시점이 바로 오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무미건조해지고 삶에 대한 기대감이나 호기심도 점점 더 사라져버리는 오늘... 그래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도 뭐 그렇게 좋은 것이 있겠나? 뭐 그렇게 새로운 것이 있겠나? 이렇게 단정해 버리고 말게 되는 오늘이라는 시간이 바로 ‘우리의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라고 말해야할 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우리들에게 그런 가능성을 열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아주 평범하기 그지없고, 새로운 일이라는 것, 감동이라는 것을 기대하기 힘든 인생을 살고 있지만... 감동을 말할 수 있고,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고, 새로움을 기대하며 살 수 있을까? 잔치가 다 끝나버리고 모든 뜨거웠던 것들이 차갑게 식어가는 오늘 속에서 다시 뜨거운 열정을 회복하게 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우리는 오늘의 말씀 가운데서 찾을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기쁨과 감사를 회복하는 삶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나이가 어떠하든지, 사는 형편이나 조건에 상관없이 세상을 살면서 기쁨과 감사를 잃지 않고 산다면... 잃어버렸던 기쁨과 감사를 다시 찾을 수 있다면, 그 때부터 우리의 축제는 다시 시작되는 것이라고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특별히 예배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성전으로 들어가는 사람들과 찬양대가 번갈아가며 부르도록 만든 노래가 오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성전을 향하여 들어가는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가 앞부분입니다.
‘온 땅아, 주님께 환호성을 올려라...’ 그들은 이렇게 노래하며 성전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성전에 미리 자리하고 있던 찬양대가 뒷부분을 부릅니다.
‘감사의 노래를 드리며, 그 성문으로 들어가거라...’ 이렇게 화답하며 함께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이지요.
말씀을 음미해보면 거기에는 엄청난 힘이 담겨져 있음을 느낍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러 나가는 이들을 위한 이 시에서 중요한 두 가지 감정은 다름 아닌 기쁨과 감사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엄청난 확신과 열정으로 이런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마음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1-3까지의 주제가 기쁨이고 4-5까지가 감사를 말하고 있는 것인데요, 그 출발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온 땅아, 주님께 환호성을 올려라...’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말씀을 한 번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게 고백하는 그의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정말 주체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내가 정말 기쁜가? 성경에도 항상 기뻐하라고 하였으니... 기쁜 척이라도 해야지.’ 하면서 억지로 웃거나 기쁜 척 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그는 자기에게서 솟아 나오는 기쁨을 억누를 수가 없습니다.
오죽 하면 아무런 말도 통하지 않고 아무런 감정도 표현할 수 없는 땅을 향하여... 세상을 향하여 ‘큰 소리를 지르면서 나와 함께 기뻐하자... 너희들도 한 번 환호성을 울리며 기쁨을 좀 표현해 보아라...’ 땅들이 그냥 아무런 표현도 없이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고 받아들일 수가 없는 일인 것이지요.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고, 환호성을 울리면서, 그 앞으로 나아가거라...’(v.2)
옆에 있는 사람이 보면 좀 정신이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경건하지 못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엄숙한 성전에 들어가면서 좀 조용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갖추어야 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소리를 지를 수가 있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만큼 기쁘고 좋은 것이지요.
도무지 마음속에 감추어 놓을 수가 없는... 그런 기쁨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요청되는 것은 바로 이런 기쁨이 아닐까요?
획연히 내게 다가오는 그런 기쁨 말이지요.
“나를 도저히 잠잠하게 할 수 없는... 너무나 기쁘고 좋은 나머지 그것을 자꾸만 표현하고 싶고... 사람들과 나누고 싶고...”
심지어는 말없이 있는 땅과 온 세상을 향하여서도 큰 소리를 지르며 나의 기쁨을 표현하고 나누고 싶어 하는 그런 기쁨 말이지요. 이러한 기쁨이 우리들 가운데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가 있을까요?
왜 그 사람은 기쁜 것이지요. 무엇 때문에 감당하기가 어려울 만큼 기쁠까요?
그는 3절에서 자기가 이렇게 기뻐할 수밖에는 없는 까닭을 설명합니다.
‘너희는 주님이 하나님이심을 알아라. 그가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의 것이요, 그의 백성이요, 그가 기르시는 양이다...’
결국은 이렇게 되는 것이지요.
그는 기쁨의 이유를 하나님께로부터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언제 기쁜가요?
물론 소소하게 기쁨을 느꼈던 순간들은 참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순간은 우리들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기대해야할 기쁨이 있다는 그것은 다름 아닌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기쁨입니다.
한 신앙인은 그 기쁨을 차분한 마음으로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내 마음에 안겨 주신 기쁨은 햇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에 누리는 기쁨보다 더 큽니다.’(시4:7) 세상의 어떤 기쁨도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에는 비교할 수가 없다는 고백이지요.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란 나의 삶이 하나님과 맞닿아 있다는 것... 나를 지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나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지금도 하나님은 나를 보화처럼 소중히 여기고 계시다는 것... 이러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될 때에 내 마음 속에 찾아오는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3절의 말씀 중에서 특별히 ‘그가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의 것이요...’ 그러한 고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것이니’ 이 말은 ‘내가 한 것은 아닙니다. 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이렇게도 읽을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우리 보다 훨씬 어려운 조건 가운데서 살았던 옛날 유대의 신앙인들이 우리에게 고백하는 것은 가장 커다란 기쁨의 이유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이렇게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하는 것... 지금도 나의 삶은 여호와이신 하나님과 끊을 수 없는 사랑의 줄로 이어져 있다는 것... 비록 내가 이 세상에서는 작고 평범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아주 보석처럼 소중히 여기고 계시다는 것... 오늘까지 내가 살아온 모든 것... 살면서 성취하고 누리는 모든 것...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이 해주셨다는 것... 이것을 생각할 때마다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 그것은 또한 감사입니다. 그것은 말씀의 후반부에 나오고 있습니다.
성전으로 들어가는 이들을 향하여 찬양대가 불러주는 축복의 노래 속에 담겨 있습니다.
‘감사의 노래를 드리며, 그 성문으로 들어가거라. 찬양의 노래를 부르며, 그 뜰 안으로 들어가거라. 감사의 노래를 드리며, 그 이름을 찬양하여라.’(v.4)
감사의 노래를 드리며.. 이런 표현이 거듭해서 나옵니다.
순례자들이 하나님의 전의 뜰을 밟으며 하나님의 전을 향하여 들어갈 때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할 것은 다름 아닌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순례자들이 이렇게 감사의 노래를 드려라 하는 찬양을 들을 때에 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정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나지 않았을까요?
처음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온갖 세상에 대한 염려들... 또한 살면서 마음 가운데 남아 있는 모든 좋지 않은 생각들... 이런 것들이 마음 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서, 하나님의 전을 향하여 올라오면서도 그다지 기쁘고 즐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찬양대가 부르는 찬양 속에서 잊고 있던 감사의 마음이 조금씩 마음 한구석에서 고개를 쳐들기 시작할 때... “그래 맞아... 내겐 감사할 이유가 더 많은 거야... 이렇게 다시 하나님의 전을 찾을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감사할일들이 서서히 빈 마음을 채워갈 때... 그들은 비로소 하나님을 예배하는 참된 예배자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시인은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감사할 이유가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영원히 기억해야할 신앙의 주제이기도 한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아주 익숙한 고백일 수도 있겠지요.
‘주님은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 영원하다. 그이 성실하심 대대에 미친다.’(v.5)
우리가 언제나 감사할 수 있는 이유! 영원한 감사의 주제! 그것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사랑으로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 그분은 참 좋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에게는 오로지 사랑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구약에서는 그 사랑을 <헷세드>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설혹 우리가 그런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을 때에라도 일관되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변함없는 사랑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아주 신실하십니다.
결코 우리의 믿음을 실망시키시는 법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께 대한 고백이 바로 5절에 담겨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게 되는 소중한 이유가 됩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는 항상 기뻐하고 감사할 영원한 까닭이 있습니다.
그것을 시인은 오늘 우리들에게 아주 확신에 차고 흥분된 어조로 선포합니다.
우리들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든... 하나님은 우리를 정말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 이런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에 존재하는 신비한 관계를 알게 될 때... 우리의 내면은 세상의 그 어느 것으로도 얻을 수 없는 기쁨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게다가 항상 선하시고, 영원하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다가오시며,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시는 법이 없이 나를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게 될 때에 우리의 내면은 항상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채워지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의 내면이 항상 하나님을 바라볼 때마다 느껴지는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을 때...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고 풍성하게 이 세상을 살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며 마음이 기쁘고 감사가 넘칠 때, 우리의 축제는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이곳을 찾을 때마다, 우리에게 기쁨이 생겨나고 감사가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예배가 이렇듯 하나님을 향한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축제가 될 때, 우리의 일상에서도 축제와 같은 삶은 시작될 것입니다.
시편 100편은 참 짧고 단순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그 내면에 있고,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그 마음에 있는 사람... 그는 누구보다도 힘차고 당당하게, 누구보다도 부요하게, 누구보다도 풍성하고 행복하게... 비록 힘들고 고달픈 현실을 살더라도, 마치 축제처럼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기쁨과 감사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만이 누릴 수 있는 생명의 신비이고 소중한 특권입니다.
언제나 기쁘고 감사가 넘치는 삶... 이것이 하나님을 믿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그에게 감사하며
성경본문 : 시편 100: 1-5
1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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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며 다른 주일과는 특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물론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지켜야할 세 큰 절기의 한 날로서 <추수감사절>을 말하고 있지만, 농사짓는 일과는 거리가 먼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고 부자연스런 느낌이 드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말씀처럼 감사하는 일이 우리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신앙의 덕목이라면... 우리는 오늘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일에 대하여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설가 양귀자씨는 그의 소설 모순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 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여러분은 오늘 감사절을 맞아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면서 교회에 오셨습니까?
가장 문제가 많은 분이 있다면 오늘이 <추수감사절>줄도 모르고 아무 생각도 없이 왔다가... '오늘이 <추수감사절>이로구나...' 뒤늦게 알고는 당황해하시는 분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더 문제가 있는 분들이 있다면 오늘이 <추수감사절>인줄 알면서도 이 시간에 다른 곳에 있는 분들이겠지요.
오늘이 <추수감사절>인 것을 알면서 예배를 드리는 분들은 '지난 1년 동안에 내게 무슨 일이 있었나? 지난 1년을 살아오는 동안에 내게 감사할 일은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을 맞이하기도 하고, 교회에 오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감사할 일이 쉽게 떠오르고... 셀 수 없을 만큼 많다면... 우리들의 가슴을 참으로 뿌듯할 텐데... 우리에게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참 많다는 것에 우리의 고민이 있습니다.
양귀자씨가 말한 것처럼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 버리는...' 우리의 잘못된 계산 습관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요?
다시 한 번 저마다의 1년의 삶을 돌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국에서 소아과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는 시인 마종기의 시 한편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과수원에서' 라는 시입니다.
'시끄럽고 뜨거운 한 철을 보내고
뒤돌아본 결실의 과수원에서
사과나무 한 그루가 내게 말했다
오랜 세월 지나가도 그 목소리는
내 귀에 깊이 남아 자주 생각난다
-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그냥 받았다
땅은 내게 많은 것을 그냥 주었다
봄에는 젊고 싱싱하게 힘을 주었고
여름에는 엄청난 꽃과 향기의 춤,
밤낮없는 환상의 축제를 즐겼다
이제 가지에 달린 열매를 너에게 준다
남에게 줄 수 있는 이 기쁨도 그냥 받은 것,
땅에서, 하늘에서, 주위의 모두에게서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그냥 받았다
- 내 몸의 열매를 다 너에게 주어
내가 다시 가난하고 가벼워지면
미미하고 귀한 사연도 밝게 보이겠지
그 감격이 내 몸을 맑게 씻어주겠지
열매는 음식이 되고, 남은 씨 땅에 지면
수많은 내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구나
주는 것이 바로 사는 길이 되는 구나
오랜 세월 지나가도 그 목소리는
내 귀에 깊이 남아 자주 생각나기를'
우리가 과수원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사과나무를 통해서 그는 이야기를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그냥 받았다..'고 자신의 인생을 고백합니다.
생각해보면 과수원에 있는 다른 모든 나무들도 누리는 것인데... 대지가 주는 기름지고 풍성한 양분을 혼자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봄에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도 그만 혼자 받은 것은 아닙니다.
땅과 하늘과 주변의 모든 좋은 것들이 주는 것들도 자기만 혼자 받은 것은 아닙니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쪼이고, 비바람이 무섭게 몰아치던 그 여름이 그에게는 반드시 축제처럼 좋은 시간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말합니다.
마치 모든 것들을 혼자만 받은 것인 양... 그리고 지난 모든 시간이 축제처럼 한없이 즐겁고 좋았다는 듯이... 그는 자신이 보낸 지난 일 년간의 시간을 이렇게 되돌아봅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이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그냥 받았다...'라는 말속에 담겨 있는 것이지요.
생각해보면 자신의 지나 온 삶을 이렇게 돌아 볼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고 풍성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그냥 받았다...' 이것이 오늘 다시금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는 우리들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 100편의 말씀은 대표적인 감사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각지에서 흩어져서 분주하게 저마다의 삶을 살던 이들이 성전에 들어가며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소리 높여 외치며 찬양하는... 깊은 감동이 살아 숨쉬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말씀을 읽으며 우리가 언제 어떤 삶의 정황 속에서도 감사할 수밖에 없는 영원한 감사의 주제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주제는 다름 아닌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며 감사해야할 가장 분명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보살피시고 인도하신다는 그 이유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기쁘고 즐겁고 흥분되는 일인 것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찌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찌어다...' ‘
온 땅이여 여호와께 부를찌어다...'
땅이 어떻게 노래를 부를 수 있겠습니까?
땅이 어떻게 여호와를 알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이렇게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자기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할 때 가지는 기쁨과 즐거움... 감동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 그들은 그것을 조용히 자기들의 내면 속에만 감출 수는 없었습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심지어는 묵묵히 자기를 받치고 있는 대지까지도... 이 땅을 딛고 서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기쁨과 감격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음을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지요.
정말 이 사람들은 여호와라는 이름만 들어도 자다가 벌떡 일어날 정도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생생한 감동과 기쁨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호와가 우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찌어다...' 이렇게 말합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이 복잡한 우주와 세상의 모든 것을 섭리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나에게 친히 손을 내미셨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의 가슴을 짜릿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로마 바티칸>의 부속 예배당인 <시스틴 채플>의 천장에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지창조?>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넓은 천장 전체를 “천지창조”를 상징하는 그림이 덮고 있는데,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창조주 하나님의 손가락이 아담의 손가락과 맞닿아 있는 장면입니다.
가만히 지켜보노라면 참 충격적입니다.
어떻게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그 자신의 피조물인 사람과 손을 맞대고 있다는 말인가... 하나님과 우리들 인간 사이에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인데...
하지만, 이렇게 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에 그 사람의 격을 많이 따집니다.
가만히 계산해봐서 그 사람과 사귀는 것이 나의 체면이나 품격을 손상시키는 일이라면 그런 관계는 맺지 않으려 하는 것이 우리의 생각입니다.
이렇게 따진다면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에는 아무 것도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손을 내미셨습니다.
'내가 하나님 여호와다... 나를 통해서 세상의 모든 것이 지어졌고... 지금도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고 있단다... 그런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되어주련다... 너를 지켜 주고 너의 운명을 책임지겠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세상을 살면서 이렇게 기쁘고 감동할 일이 또 어디 있을까요?
그는 또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여호와가 우리를 지으셨다는 것!
이 사실이 우리들 자신을 새롭게 보는 길을 열어줍니다.
“우리는 어떤 제품을 대할 때 누가 만든 것인가?
상표가 어떤 것이 붙어 있는가?“
따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번에 친교실과 식당, 성가대실의 냉난방 공사를 새롭게 했습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냄새도 없이 냉난방이 해결되니까 참으로 편하게 지낼 수 있게되었습니다.
많은 돈이 들었지만, 제품을 선정하면서 별 망설임이 없었던 까닭은 게 된 까닭은 그 제품이 믿을 만한 유명한 회사에서 만든 제품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름도 없는 회사에서 만든 물건이었다면, 더 많이 재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묻기도 하고...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품을 만든 회사가 신뢰가 가니까 그것을 선택하는 데 망설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어떤 제품이 좋고 나쁜 것을 우리는 분별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를 못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기준이 되는 것은 누가 만들었는가?
그 제품에 어떤 상표가 붙어 있는가를 따지게 됩니다.
익숙하고 신뢰가 가는 상표가 붙어 있다면 별 망설임 없이 그것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요....' 이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를 만드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
우리들에게 'made by God'라는 상표가 붙어 있다는 것!
여기에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라고 하는 존재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괜찮은 존재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침마다 거울 볼 때에 이 말씀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래도 하나님의 작품인데... 그러면 자신을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왜 이렇게 못 생겼나...'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괜찮은데...' 이렇게 자신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다음 아닌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너는 내 것이라...' 이렇게 말씀하실 때에 여기에 담겨진 뜻은 무엇일까요?
우리들 중의 누구도 자기의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어떤 물건이 자기의 것이라면 우리들은 그것을 아주 소중히 여깁니다.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이 자기의 것이라면 우리는 그 공간을 아주 깨끗하게 다듬고 아름답게 꾸미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들은 내 것을 굉장히 아끼고 소중히 여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향하여 '너는 내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실 때 여기에는 바로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마치 보석처럼 그렇게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시인은 하나님과 우리들의 관계를 더욱 분명하게 표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
여기에는 하나님의 관심사가 오직 우리에게만 있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기르시는 양이라고 말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책임지시는 분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양이라는 동물이 가진 독특함은 바로 이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양들이 모여 있어도 그들은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목자가 나타나서 자기들을 인도하여 주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이제껏 살아왔던 모든 것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것임을 말하는 대목이기도 하지요.
물론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일일이 '내가 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것을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해 놓고서도... 그것이 자신의 힘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목자이신 하나님의 은혜 덕택인 것을 알게 될 때에 그 사람은 누구보다도 행복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분이시라는 것!
하나님은 좋으실 뿐 아니라 성실하기까지 하다는 것!
이렇듯 좋고 성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다는 것!
생각해보면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람의 수명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우리는 점점 더 길어질 노후의 삶에 대하여 많은 걱정을 해야만 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보험도 들어 놓고... 미리 미리 건강관리도 하고... 여러 가지 대비를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어떤 내일 맞게 될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말씀은 우리가 노후를 담보할 수 있는 근거도 여호와 하나님께 있음을 말합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성실하시기까지 한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당신의 노후를... 노후뿐 아니라 죽음 이후의 세상까지도... 사랑이 많으시고 성실하기까지 한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대대로 책임져 주시고 맡아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생각해보면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지 감사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름 아닌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기에...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출발하였고...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살고 있고,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살게 될 삶의 여정이기에... 내가 하나님께 해드린 것에 비할 수 없는 '너무 많은 것을 받았기 때문에...' 항상 기뻐하며 항상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듯 우리가 너무 많이 받은 사람이라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더불어 사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깨닫고 그들에게 먼저 베푸는 것에 있음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종기 시인은 시의 후반부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제 가지에 달린 열매를 너에게 준다
남에게 줄 수 있는 이 기쁨도 그냥 받은 것,
땅에서, 하늘에서, 주위의 모두에게서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그냥 받았다
- 내 몸의 열매를 다 너에게 주어
내가 다시 가난하고 가벼워지면
미미하고 귀한 사연도 밝게 보이겠지
그 감격이 내 몸을 맑게 씻어주겠지
열매는 음식이 되고, 남은 씨 땅에 지면
수많은 내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구나
주는 것이 바로 사는 길이 되는 구나“
그는 남에게 줄 수 있는 기쁨조차도 그냥 받은 것이라며 남에게 감사할 수 있고 베풀 수 있는 것조차도 은총임을 고백합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추수감사절>의 풍습은 이렇듯 그들이 거둔 곡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감사 드린 후에는 그것을 사람들과 더불어 나누었습니다.
감사절의 축제는 한 주간 동안 진행이 되는데, 먼저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이 있었지만, 거두어들인 것을 서로 나누면서 지난 시간동안 함께 땀흘리며 일한 것들에 대하여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추수할 때에 곡식을 다 거두어들이지 않고 일부러 흘리기도 하였습니다.
가난해서 양식이 없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생각해보면 <추수감사절>이란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이기도 하지만, 묵묵히 지난 시간을 함께 했던 가족들이나 이웃의 고마움도 알고 그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절기인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 다시금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며 여러분들에게 이런 마음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마 그리스도인들만큼 감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감사라는 말들 속에 특히 하나님을 향하여 드리는 감사 속에 담긴 진정한 마음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간직해야 할 또 하나의 감사는 간과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만나게 하시고 많은 시간을 어깨를 맞대고 함께 고민하면서 지내게 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제 <추수감사절>을 보내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으니 세상에 나가서 만나는 분들에게도 감사의 뜻을 드러내시기를 바랍니다.
맨 입으로 하는 것도 좋겠지만... 작은 선물을 곁드린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좀 어색하고 서먹할지는 몰라도 한 번 그렇게 해보십시오.
이제껏 오랜 시간을 더불어 살아 온 가족들을 향하여 '나와 함께 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동고동락해온 직장의 동료들을 대하면서 '당신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옆에 앉아있는 교우들을 향하여서 '당신이 있어서 저는 참 좋습니다..'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해 보십시오.
그만큼 우리들의 삶은 풍성해지고 행복해 질 것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으며 우리의 삶을 다시금 되돌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주신 큰 축복이고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