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8-11
주의 백성된 사람들 / 박종순 목사
주전 586년 당시 최대 강국이었던 바벨론의 침략으로 유대나라가 망하고 수많은 포로들과 성전 기명들과 보물들을 빼앗겼습니다. 유대나라를 침공한 느브갓네살 왕은 주전 606년, 587년, 586년 세 차례나 예루살렘을 공격한 전투에 능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도 영원한 왕국은 아니었습니다. 신흥국가인 메데바사에 의해 바벨론이 멸망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자 유대 민족은 자연히 바벨론의 통치에서 바사왕의 통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서는 그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유대 민족을 대표하는 두 사람의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에스라와 느헤미야였습니다. 에스라는 주로 종교적인 문제를 책임진 지도자였고, 느헤미야는 정치적인 문제를 책임진 지도자였습니다.
두 사람이 각각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뒤 에스라는 성전을 다시 짓고 백성들의 신앙회복을 위해 힘썼고, 느헤미야는 성을 다시 쌓고 성문을 닫고 정치, 행정, 치안을 견고히 하는 일을 책임졌습니다.
본문의 이야기는 느헤미야가 바사 왕국의 수도인 수산궁에서 왕의 포도주를 책임진 관료로 중용되어 있던 어느날 일어난 일입니다.
1. 그가 듣게 된 예루살렘 소식
어느날 느헤미야가 유대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고국 소식을 물었습니다. 그가 듣게된 고국 소식이 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살아 남은 자들은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은 불타버렸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비참한 보고였습니다. 성은 불타고 성문은 부서지고 죽지 못해 살아남은 백성이 겪는 고통은 말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겪을 수 있었던 몇 가지 가능성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1945년에 해방되지 못하고 계속 일본의 속국으로 남아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1950년 6.25전쟁 때 우리가 두손들고 이 땅이 공산화되었더라면 우리네 사는 꼴이 뭐가 되었을까? IMF 환난 때 그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이 나라 경제가 파탄이 났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일본의 속국이 됐다면 이 나라 천지는 귀신 섬기는 일로 가득 찼을 것이며 동방요배, 신사참배를 강요당했을 것이며 교회는 다 문을 닫고 말았을 것입니다.
공산화 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교회는 다 불타버렸을 것이고 명을 내세워 기독교 지도자들과 기독교인은 모조리 죽고 숙청 당했을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무신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대신 저들의 주체사상이 절대 신입니다. 종교는 아편이고 자본주의는 민중의 적입니다. 저들의 방법은 숙청 혁명, 때려부수고 분열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산주의 국가 치고 잘사는 나라가 없습니다.
해방은 전쟁에 이긴 것도, IMF 환란을 벗어난 것도 아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느헤미야는 애국자입니다.
그의 성실성과 정직이 인정되어 포로였던 사람이 고위관리가 됐습니다만 그의 마음은 늘 잃어버린 조국 고통 당하는 동족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2.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4절을 보면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 당시 바사왕국의 관리가 되면 최고의 예우를 누리고 편안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시쳇말로 권력층이면서 온갖 것을 다 누리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소식을 들었더라도 그런가보다라고 치부하고 넘겨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그는 울고 금식하고 슬퍼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는 민족을 알고 조국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네 문제는 무엇입니까?
극단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정치인은 권력에 눈이 어두워있고, 경제인은 돈이 되는 일이면 안하는 일이 없고, 백성은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그리운 시점입니다.
느헤미야는 뭐라고 기도했습니까?
5절을 보면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서울 근교의 스키장은 전기로 눈을 만들어 스키를 탈 수 있게 합니다. 엄청난 시설비와 전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루 동안 50센티 넘는 눈으로 산야를 덮어 버렸습니다. 그 눈을 전기시설을 갖춰 녹이려고 한다면 얼마의 전기료가 들어갈까요? 한전의 대답은 얼마가 들 수 있을까가 아니라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크신 하나님! 천지를 지으시고 섭리하시고,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시고, 흥하게도 하시고 망하게도 하시고, 되게도 하시고 안되게도 하시고... 느헤미야는 그 크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뭐라고 기도했습니까?
6절을 보면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기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자신을 종으로 낮추고 밤낮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백성이 지은 죄를 자복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교만하고 자신을 높이고 자존심을 꺽지 않으면 기도가 안됩니다.
어떤 장로님이 기도할 때마다 "예수여"라고 기도했습니다.
목사님이 왜 예수님이라고 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예수나 나나 다를 바 없는 같은 사람인데 왜 '님'자를 부칩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나를 종으로 낮추고 힘써 밤낮으로 회개하고 자복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기도 안해도 되는 사람입니다.
포로로 끌려간 사람으로 출세해 고위 관리가 된 사람입니다. 먹고 사는 것 걱정 없습니다. 왕의 총애를 받고 문화주택이 있고 온갖 특혜를 누리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뭐가 모자라 울며 금식하며 자복하며 기도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는 전례 없는 국가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쟁국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를 것입니다.
북한은 더 시끄러워지고 더 혼란해지고 더 복잡해져서 진흙탕이 되기를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겐 느헤미야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병을 치료하는 두 가지 접근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외과적 접근법입니다.
부위를 가르고 자르고 장기를 대체하는 등 메스를 대어 치료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는 아프고 고통스럽습니다. 흉터가 남습니다.
다른 하나는 내과적 접근법입니다.
병 원인을 규명하고 메스를 대지 않고 치료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제일 좋은 방법은 예방하는 것입니다.
사건이 터지기 전에,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예방하는 방법이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기도의 능력은 문제를 해결하고 문제를 예방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3.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0절은 기도의 근거입니다. "이들은 주께서 일직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구속하신 주의 종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일찍이 애굽에서 큰 권능으로 구원하셨고, 큰 손을 펴 광야를 건너게 하셨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주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주의 백성이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주의 백성은 주님을 섬길 의무가 있고, 주님은 자기 백성을 지키고 인도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정치의 원리가 있습니다.
백성이 지도자를 뽑고 그 지도자는 백성을 바르게 인도할 의무를 지는 것입니다.
다수에 의해 대통령이 뽑히면 내가 지지했던 안했던 그는 그 나라를 다스릴 최고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부시와 고어의 경우 재검표라는 긴박한 상황까지 벌리면서 선거를 치뤘습니다. 2000년 11월 26일 해리스 장관이 최종 발표한 부시와 고어의 표 차는 537표였습니다. 그러나 부시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미국 사람 그 누구도 부시가 대통령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부시는 지금 자기 지지자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미국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지지한 사람들만을 위해 자리를 만들고, 그들 편만 들어주고, 그들 표만 모으려 한다면 당 대표나 지역구 대표일 수는 있어도 대통령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백성입니다.
고로 주님을 섬기고 그 명령을 따르고 주님을 높여야 합니다.
지키고 보호하고 인도하는 책임은 주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11절은 기도 내용입니다.
1) 귀를 기울이사 주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했습니다.
찬송과 기도는 주님을 기뻐하는 사람들의 언어입니다. 주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야 기도할 수 있고 찬송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화를 예로 들겠습니다. 단답형 대화가 있고 깊은 대화가 있습니다. 묻는 말에 대답하는 대화가 단답형입니다. 그러나 깊은 대화는 상대방을 믿고 신뢰할 때 그리고 가깝고 친한 관계일 때 이뤄집니다. 비밀 없는 대화가 깊은 대화입니다.
내가 주님과 기도의 깊은 대화를 나누려면 주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2) "형통하여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형통은 은혜의 결과입니다. 은혜를 구경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옆에 있는 사람이 은혜 받고 기뻐하고 형통하는 것을 구경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은혜를 받았다면서 감사할 줄도 모르고 그 은혜를 활용하지도 않습니다.
은혜를 입은 사람이 있습니다. 옷을 선물 받았다면 입어야 하는 것처럼 은혜를 받았다면 그 은혜를 입고 그 은혜로 살고 일하고 활동해야 합니다.
창세기 6:8을 보면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했고, 느헤미야도 "은혜를 입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형통이라는 말의 뜻은 막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형통케 됩니다. 이것이 형통의 원리인 것입니다. 느헤미야 자신은 포로로 끌려간 힘없고 불쌍한 존재였는데 은혜를 입고 형통의 길이 열려 큰 나라 바사 왕국의 술 관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은혜를 입어 아닥사스다왕 20년 되던 해 왕의 윤허를 받아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을 재건하고 유대민족의 민심을 추스르는 민족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느헤미야 2:18을 보면 "하나님의 선하신 손이 나를 도우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을 선하신 손으로 도와주십니다. 깎고 부어 만든 우상은 기도해도 대답이 없습니다. 옷을 찢고 몸에 상처를 내고 소리를 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기도에 선하신 손을 펴서 응답하시고 도와 주십니다.
때리고 할퀴는 손은 악한 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은 선하신 손입니다.
그 손으로 도와 주십니다.
2:20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서의 마무리인 13:31을 보면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로 끝을 맺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주의 백성 주의 종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저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라는 기도로 끝을 맺은 것입니다.
주님이 기억하시는 사람이 됩시다.
주님을 기뻐하는 주의 백성이 됩시다.
주님께 은혜와 형통과 복을 주시라고 기도합시다.
주님은 결단코 주의 백성, 은혜 입은 사람들, 기도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지키십니다. 인도하십니다. 형통케 하십니다. 복을 주십니다. 아멘.
이 사실을 믿고 더 기도합시다.
더 힘써 기도합시다.
믿고 기도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