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14-19
믿음의 눈을 열어 주소서 / 김태복 목사
눈에는 세 가지 눈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 육신의 눈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눈으로 아름다운 풍요의 숲과 파란 바다를 보고 독서도 하고 귀한 미술작품도 감상할 수가 있습니다.
(2)지식의 눈이 있습니다.
우리는 과학의 시대에 살면서 많은 혜택을 받고 삽니다. 요즈음은 컴퓨터 시대로 사용해 보면 그 위력에 놀랍니다. 여러분 중에는 컴퓨터를 만지지 못하는 컴맹이 많을 줄 압니다. 그러한 분들도 항상 컴퓨터의 도움을 받고 삽니다. 전화기, 텔레비전, 세탁기, 냉장고, 자동차 등 대부분의 기계가 거의 컴퓨터화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과학의 발명품은 모두가 지식의 눈이 발견해낸 작품들인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과학자들의 눈에는 보이는 것입니다.
(3)영적인 눈이 있습니다.
10여 년 전인가, 텔레비전에서 이스라엘의 ‘리틀 오렌’이라는 청년의 투시안을 보여 주는 데 너무나 놀랍습니다. 청중의 핸드백 속에 있는 물건도 맞추고, 심지어는 만 원짜리 지폐의 번호까지 맞춥니다. 또한 회관밖에 있는 택시의 차종이나 번호판도 맞추고 시계를 염력(念力)을 통해서 마음대로 돌아가게 만듭니다. 이러한 투시안은 과연 육신의 눈에 속한 것인지, 지식의 눈에 속한 것인지, 아니면 영적인 눈에 속한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적인 세계는 보지 못하는 것을 볼 때 영적인 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영안은 영적인 세계, 신령한 세계인 하나님의 세계, 사탄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입니다. 이러한 영적 세계는 육신의 눈이나 이성적인 지식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영안이 열리어야 보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 데 사실 그대로 임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영안도 열릴 수가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배우고자 합니다. 엘리사 선지자 시대에 아람 나라라는 강대국이 자주 이스라엘 지경을 침범하고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아람의 침략은 패배로 돌아갔습니다. 그것은 사전에 정보가 누설되어 이스라엘 편에서 벌써 침략할 루트를 알고 사전에 차단하고 있거나 군사를 매복하고 있음으로 번번이 패전으로 끝났던 것입니다. 아람왕은 대단히 화가 나서 말하기를 ‘분명, 우리 편 중에 스파이가 있어서 적과 내통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당장에 그 스파이를 찾아내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러자 어느 신하가 말하기를 “왕이여.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어서 우리나라의 모든 것을 손바닥 보듯이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왕이 침실에서 한 이야기라도 다 알고 있습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엘리사의 영적 레이더에 다 걸리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예전에 이런 말씀을 들으면 반신반의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엘리사가 아무리 뛰어나도 왕이 침실에서 한 이야기까지 알고 있겠는가?’라고 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나, 좀 전에 소개한 이스라엘 청년의 놀라운 능력을 볼 때 결코 거짓말이 아님을 입증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청년은 타고난 능력이라고 하더라도 엘리사는 하나님의 능력을 입었기에 그 청년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상상을 초월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줄 압니다. 이러한 보고를 받은 왕은 기가 막힙니다.
아무리 국가의 1급 비밀이라도 환히 들여다보고 있는 한 결코 전쟁에 승리할 수 없는 줄 알고 왕은 우선 엘리사라는 선지자를 체포하리라고 결심을 하고 막강한 군사를 엘리사가 있는 도단이라는 작은 성으로 보내서 한 밤 중에 감쪽같이 몇 겹으로 포위를 했습니다. 마침내 아침이 훤히 밝았습니다. 선지자의 종이 아침 일찍이 일어나 하품을 하며 무심코 성 아래를 보다가 기절초풍을 했습니다.
아람의 군대가 성을 몇 겹으로 포위한 채, 무시무시한 창검을 번뜩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종은 허겁지겁 주인 엘리사에게 쫓아와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지금 아람 군대가 우리를 포위하고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화급하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조금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고 “두려워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희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지금 종의 눈에는 성을 지키는 자기 나라 군대는 몇 백 명의 중대 병력에 불과한 데 비해서 막강한 아람 군대는 수만에 이르니 이제 성이 점령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럼에도 엘리사가 저리도 태연하니, 이제는 엘리사가 노망이 든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듭니다. 그러한 종의 모습을 보고 엘리사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종의 눈에서 의심의 비늘이 벗기어지더니 영안이 열리었습니다. 열린 영안의 눈으로 성을 내려다보니 하나님의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성과 엘리사의 집을 옹위하고 하고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너무나 놀랍고 감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엘리사는 다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저 아람 군대들의 눈을 어둡게 하소서.” 그러자 아람 군대들의 눈들이 어두워졌습니다.
엘리사는 아람 군대들 앞에 나아가 말하기를 “여러분, 이곳은 길도 아니요. 성도 아니니 내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 오라.”고 하자, 군대가 저를 따라 이스라엘의 당시 수도인 사마리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람 군대는 꼼짝없이 독 안에 든 쥐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큰 근심에 빠졌던 이스라엘 왕은 신이 나서 당장에 그 모든 군대를 몰살을 시키려고 했지만 엘리사가 만류하고 오히려 떡과 물을 주어서 먹게 하고 돌려보냈습니다.
원수를 먹이고 마시우게 한 것입니다. 그러자, 혼쭐이 난 아람 군대는 엘리사가 생존해 있는 동안에는 감히 침범하지 않았다고 23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스라엘 나라가 아람 군대를 몰살시키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분명, 하나님도 기뻐하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아람 나라에서는 복수심에 불타 올라 사력을 다해 쳐들어 왔을 것이 분명합니다. 선으로 악을 갚으니 그 사랑 앞에 녹아진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 너무나 멋지고 놀라워 감동이 큽니다. 이처럼 영안이 열리는 것은 신앙생활의 큰 힘이요, 승리의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 중에 영안이 닫히어서 하나님이 아무리 은혜를 주시려 하시거나 경고를 하시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매를 들고 때리셔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더 큰 매를 자초합니다. 아닙니다. 영안이 열리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영안이 열린 자와 닫힌 자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로 멸망할 때 아브라함은 영안이 열리어 그 사실을 알았으나 롯은 세상의 욕심에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만났습니다. 모세는 기도하는 중에 영안이 열리어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심으로 구원의 통로를 열어 주실 것을 보았으나 백성들은 영안이 닫혀 있어 보지 못함으로 불평, 원망, 반항의 고함을 지르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영안이 열리어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 복지를 기쁨으로 보았으나 다른 정탐꾼들은 영안이 닫혀 있음으로 장대한 거인들의 그 무시무시한 강함만 보고 얼마나 마음이 약해졌는지 자기들을 메뚜기 같은 존재로 비하(卑下)시킬 정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영안이 열리며 예수님을 보고 고꾸라지며 변화되었으나 행 9:7절에 보면 같이 동행하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죽음의 유형지 밧모섬에서 사도 요한은 영안이 열리면서 신령한 하늘의 세계와 미래 세계에 대한 환상을 볼 수 있었으나 많은 죄수들은 자기들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만 보다가 죽어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하시고 계시는 데 세상의 욕심에 영안이 닫히어 보지 못한다면 얼마나 답답한 노릇입니까? 여러분은 영안이 열린 자와 닫힌 자 중에 어디에 속한 자입니까?
여러분은 모두 영안이 열린 자가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믿음의 눈, 영안이 열릴 수가 있을까?
1. 하나님의 약속인 말씀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행과 거래할 때 신기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거래하는 은행은 제일은행인데 마장동에서 돈을 예금했는데 제일은행 어디 지점에서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제는 은행에 가지 않고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서 세계 어느 곳에도 돈을 보내고 받을 수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컴퓨터에 의해서 전산처리를 하는 것은 알지만 자세히 모릅니다.
한 가지 분명히 아는 것은 우리가 약속의 증서인 통장만 가지고 가면 반드시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통장을 통해서 은행과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외국에 나가면 신기한 것 중에 하나가 ‘신용카드’ 사용입니다. 외국에 나가서 돈이 떨어져도 은행이 만들어 준 ‘신용카드’만 있으면 든든합니다. 어디를 가나 ‘신용카드’만 있으면 음식도, 물건도, 심지어는 장거리 전화까지 걸 수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은행이 다 보장해 준다는 약속이 있기 때문에 모든 나라가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성경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세계,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히 아는 것은 하나님은 성경의 약속대로 반드시 시행하시는 분이시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눈을 통해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세계와 하나님의 뜻을 봅니다. 우리는 영안이 확 열리어서 천사의 모습이나 마귀의 모습은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직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반드시 성경의 약속대로 시행한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 때, 그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여. 말씀의 약속인 성경을 믿음으로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이여. 주의 종의 설교를 들을 때 믿음으로 들으십시오. 그 때, 하나님의 세계와 뜻과 약속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분은 성경을 읽을 때도 형식적으로 읽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 하나님이 주의 종을 통해서 들려주시는 말씀으로 듣지 않습니다.
인간의 소리로만 들으므로 공연히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성경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한이 없습니다. 성경을 말씀대로 믿어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이런 재미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몇 년 전 한 젊은이가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는 기사를 읽다가 감동이 되어 갑자기 “주님을 찬양하세. 큰 기적을 베푸셨다. 할렐루야.”라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마침 그때 어느 유명한 신학자가 그곳을 지나가다가 이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왜 그렇게 즐거워하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젊은이는 대답하기를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마른땅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구원하신 기사를 읽고서 감동이 되어 ‘할렐루야.’라고 외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신학자는 “하지만 젊은이, 홍해는 진짜 바다가 아니라, 깊이가 불과 몇 인치밖에 안 되는 늪이었다네.”라고 했습니다.
그런 말을 하고 신학자는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뒤에서 “할렐루야”를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의아해진 이 신학자는 되돌아와서 “이번에는 또 왜 그러는 건가?”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젊은이는 “선생님. 방금 읽은 기사에는 하나님께서 몇 인치밖에 안 되는 얕은 그 물 속에 엄청난 수의 애굽 군대를 수장시킨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기적입니까.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합시다.”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신학자는 무안했을까요? 그렇습니다. 믿음의 눈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보고 있지만, 이성적인 눈만 가진 신학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지 못하는 영적 맹인에 불과합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이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듣는 자에게 하나님은 약속대로 강하게 역사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 「빛과 소금」지에서 아주 충경적인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한국 지성(知性)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이어령 교수가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소식입니다. 그 분의 시집간 딸 민아 씨가 1992년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수술을 했지만 1996년과 1999년에 두 차례나 암이 재발했습니다. 마침내 망막이 손상돼 거의 앞을 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너무나 안타까워서 딸이 살고 있던 하와이 작은 교회에 들어가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의 사랑하는 딸 민아에게서 빛을 거두시지 않는다면, 남은 삶을 주님의 종으로 살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는 중 주님의 능력을 통해서 기적 가운데 시력이 정상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이어령 씨 부부는 딸 때문에 너무나 타는 마음으로 살다가 이런 기적을 체험하고는 딸의 인도로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이어령 교수는 고백하기를 “나의 지식과 돈이 너를 구하지 못했다. 정말 네가 주 안에서 편안함을 얻었다면,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면, 나의 무력이 증명된 것이 아니냐?”
“내가 이 무력함에 매달려 지금까지 살았구나. 동행하자. 지금 자신은 없지만 네가 시력을 잃어가면서 본 빛을 나에게도 보이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결국 최근 딸을 통해 그리스도를 영접하게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성경의 눈으로 하나님의 세계와 하나님의 뜻과 인도를 바라볼 수 있는, 영안이 열린 자가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기도의 눈을 통해서 하나님의 세계를 보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인 반면, 기도는 그 약속을 붙잡고 드리는 청구요, 요청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만 연구하거나 설교만 열심히 듣고 기도하지 않으면 그 주신 약속이 우리의 것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즉, 성경은 약속의 보물창고라면 그 창고를 여는 열쇠는 기도인 것입니다. 우리가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으면서 믿음으로 쓰지 못하고 굶거나 물건을 못 산다면 얼마나 어리석겠습니까?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하나님의 경고와 인도하심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늘 기도생활을 했기에 하나님의 인도와 경고를 볼 수 있었고, 엘리야는 깊은 기도생활 중에 하나님의 거룩한 손길을 볼 수 있었고, 가뭄 속에서도 미래의 큰 비를 보는 믿음의 눈을 가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사는 기도하는 자였기에 하나님의 천군천사가 보호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있었던 것입니다.
언제나 기도하는 자에게 믿음의 눈이 열립니다. 그러나 기도에 게을리 하면 이상하지요, 그나마 있던 믿음까지 약해지고 하나님의 세계와 그 뜻에 대해서 보지 못하는 지경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꾸준히 기도할 때에 영적 세계를 보는 믿음의 눈이 밝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응답으로 바꾸는 기도는 적어도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1)기도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을 찾아야 하고 그것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분들을 보면 모두 먼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2)기도의 저해요소인 죄를 다 회개하고 근심이나 두려움을 하나님께 맡기어야 합니다.
(3)기도의 응답을 받으려면 내가 구하고 있는 제목이 응답되어진 사실을 상상하며 그대로 될 줄로 믿으면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기도하면서 자꾸 의심하거나 낙심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시간이 믿음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아니라 근심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간이기 일수입니다. 기껏 기도하고 나서 돌아가면서 어느 집사님에게 “집사님, 이 노릇을 어쩌지요. 아이가 점점 비뚤어지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라고 하소연합니다. 그런 식으로 아무리 40일 동안 기도해 보세요.
응답이 되는가? 하나님이 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기(氣)로서 하셨습니다. 하나님 인간을 흙으로 빚으신 다음에 그의 생기를 인간의 코에 불어 넣으셔서 생명이 되게 하셨습니다. 기는 기끼리 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꾸 근심하고 염려, 낙심하면 그러한 어두운 기들이 몰려듭니다. 그러나 희망과 용기, 삶에 대한 의지가 불타면 그러한 밝은 기운들이 몰려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밝은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떤 문제로 기도할 때도 믿음으로 밝고 소망적으로 바라보면서 기도해 보세요. 믿음은 하나님의 기인 능력을 끌어오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치유의 빛」이라는 책의 저자 아그네스 센포드 여사에게 어느 부인이 상담하기를 “내 아이는 아주 삐뚤어 가고 있습니다. 남들이 자기를 싫어한다고 오해하여 점점 우울해지고 반항적으로 되어 감으로 점점 짜증이 나게 만들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대답해 주기를 “이제부터 기도해 보세요. 기도를 하되 이렇게 해보세요. 밤에 그 아이가 잠들었을 때에 그 아이 위에 두 손을 얹고 그 아이가 앞으로 명랑하고 사랑스러워며 너그러운 아이가 되어 있
는 모습을 눈앞에 그리면서 믿고 기도해 보세요.”라고 했습니다. 그 부인은 이 방법대로 한 달 동안 기도했습니다. 한 달 후에 연락이 오기를 “그런 기도가 효과가 있었어요.”
“나는 한평생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어요. 그 아이는 명랑해졌고 자신감이 생기었고 내게도 대단히 다정하게 대합니다.’라고 기뻐했습니다. 2년 후에는 다시 연락이 오기를 그 아이는 행복감에 젖어 있고 훌륭한 신자가 되었다고 고백하더랍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어떠한 상황, 어떠한 위기 중에도 근심이나 두려움, 의심이나 죄를 다 하나님께 맡기고, 응답되어진 사실을 바라보면서 기도하심으로 응답의 기쁨을 맛보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영적인 눈이 열리려면 말씀대로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이 있다는 증거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며 동시에 말씀대로 행할 때에 온전한 믿음으로 인정하시고 그 믿음 위에 친히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세 친구에게 큰 위기가 왔습니다. 간악한 왕 느브갓네살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화형을 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왕은 그들을 유혹하기를 “너희들이 이제라도 내가 만든 신상에게 절하면 살려주겠다.”고 합니다.
세 친구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다가 죽느냐? 아니면 우상에게 절하고 목숨을 부지하느냐?’는 심한 갈등으로 고민하다가 마침내 결단하여 외치기를 “왕이 우리를 불 속에 던진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구해 주지 않으실 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상숭배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보호해 주셔서 전혀 불에 타지 않는 기적을 나타내셨습니다.
당대의 강대국의 최고의 장군인 아람 나라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에 걸렸을 때에 엘리사의 초라한 초막으로 찾아왔습니다. 그것도 대단한 믿음입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특별안수는 커녕, 전혀 내다보지도 않은 채 하인을 시켜서 명령하기를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담그라.”고 했습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명령을 받고 나아만 장군은 처음에는 화를 몹시 냈으나 나중에는 모든 자존심을 벗어 던졌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물속에 일곱 번 들어갈 때에 문둥병이 깨끗이 고침 받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여. 내 생각에는 불합리하게 보여도 말씀대로 무조건 순종해 보세요. 너무나 시간이 없어도 주일을 지키고 살림이 어려워도 무조건 십일조도 하고 너무나 피곤하지만 맡겨 주시는 대로 충성을 다해 보십시오. 나를 향해 악하게 대하는 사람이라도 무조건 선으로 대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도 약속대로 그대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신애성구공예사 대표 이희재 장로님의 간증에 의하면 4;19 혁명 이후에 사업이 크게 망해서 빚더미 위에 앉게 됨으로 6남매가 굶기를 떡 먹듯이 하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어머니인 이초운 권사님이 병들어 돌아가시는 큰 비극을 만났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삼각산에 올라가서 죽든 살든 간절히 기도하기를 며칠 동안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홀연히 “일어나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었습니다.
그런 음성을 세 번 듣고 힘을 얻은 다음에 다시 집에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충성을 다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일성수, 십일조, 맡은 일에 충성 등, 몇 년 동안 여전히 빚더미 위에서 아무 증거, 아무 환상, 아무 음성이 없을지라도 무조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계속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어느 날부터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시기 시작하는 데 놀라울 정도였고, 나중에는 70평의 공장이 240평이 되고, 다시 700평이 되는 축복의 역사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여러분은 말씀의 눈, 기도의 눈, 행함의 눈에 의해 영안이 열리어서 하나님의 세계와 그 뜻, 그 인도하심을 볼 수 있는 자들이 되심으로 늘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