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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삼차원
성경본문:계시록 21: 9-16
○ 새 예루살렘
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계17:1, 계15:7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계17:3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계22:14
13.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14. 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15.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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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언 2: 1-12
○ 지혜의 초청
1. 지혜가 그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벧전2:5
2.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갖추고
3. 그 여종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불러 이르기를 시68:11
4. 무릇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5. 너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
6.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느니라
○ 거만에 대한 경계
7.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을 잡히느니라 잠23:9
8.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9.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와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11. 나 지혜로 말미암아 네 날이 많아질 것이요 네 생명의 해가 더하리라
12. 네가 만일 지혜로우면 그 지혜가 네게 유익할 것이나 네가 만일 거만하면 너 홀로 해를 당하리라
오늘 청년 주일을 맞이하면서 보다 완전한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의 삶은 태어나서 죽기까지 점점 더 성숙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점점 자라게 되고, 잘 가꾸고 배우기에 따라 보다 완전한 삶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중 청소년기는 성장기로서 가장 기억력이 왕성할 때이며, 가장 많은 삶의 변화를 이룩할 수 있는 때입니다. 이 때에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삶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유치원부터 대학을 졸업하는 이 시기에 모든 교육이 집중되어 있는 것도 그 시기가 대단히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에 무엇을 배웠느냐에 따라서 그의 앞날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기에 주로 지식 위주의 교육을 받습니다. 특히 우리 나라 교육 풍토가 대학 입시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주로 많은 지식을 주입하는 교육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반해서 잠언의 말씀을 통해서 보는 유대인들의 교육은 지혜와 명철 그리고 하나님을 알고 그를 섬기는 신앙 위주로 짜여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바로 지혜의 근본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면 "공의와 공평과 정직"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그 길을 추구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공경하는 신앙을 중심으로 그 삶을 완성시켜 갈 때 올바른 삶, 올바른 인격을 형성하게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유대인의 교육과 비교할 때 우리의 교육은 너무 지식 위주의 교육으로 편중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모두가 부조리하고 많은 문제를 안게 되는 까닭도 결국은 이런 불완전한 교육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혜의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를 경외(敬畏)하지 않으므로 해서 아무리 많은 지식을 주입시켜도 그 모든 지식이 우리의 삶을 올바르게 이끌어 주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어서 낡은 정치 제도와 그 비극적인 불완전성 그리고 무서운 불의에 대하여 생각하며 슬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고뇌에 찬 생각 가운데서 그는 한편 새롭고 위대한 영광스러운 환상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는 거룩한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완전하고
아름다운 도성(都城)이었습니다. 그것은 세 가지 차원에 있어 완전한 것이었습니다. "그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같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바라본 이 도성은 오늘의 불완전한 도성인 인간의 왕국과 비교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그린 것입니다. 인간의 왕국이 하나님을 잊어버린 불완전한 인간들이 이룩한 나라라면,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불완전함을 벗어버린 구원받은 사람들이 함께 모인 나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요한은 완전한 도성을 보았을 때 그는 실제로 이상적인 인간성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같은 도성으로 비유된 완전한 삼차원의 삶을 가진 성도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자녀가 되었는데, 그것은 곧 완전한 인간성을 갖추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즉 길이와 넓이와 높이의 삼차원을 함께 갖춘 새로운 삶을 우리가 그 이상으로 바라보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삶의 길이와 넓이와 높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삶의 길이란 자기 개인의 목적과 야망을 달성하려는 내적 충동으로 자아 실현을 뜻하고, 삶의 넓이는 자기만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할 줄 아는 사랑의 삶을 뜻하는 것이며, 삶의 높이란 위를 향한 관심 즉 하나님을 경외하고 공경하는 신앙의 차원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차원이 함께 갖추어질 때 우리의 삶은 완전해지고 입체적인 삶으로 사람들과 하나님께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삶의 길이
먼저 우리는 삶의 길이, 즉 자기를 사랑하고 자신 속에 있는 능력을 개발하면서 자아를 실현시키는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기를 발전시킬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런 능력을 개발하여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명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그의 능력을 개발하도록 전능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고 있는 것처럼 노력하지 않으면 안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달란트 비유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교훈도 주어진 능력과 재능을 최대한도로 발휘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재능을 그대로 묵혀 두는 것은 죄악이며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청년의 때에 노력하기에 따라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금그릇이나 은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을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하였습니다만, 청년의 때야말로 인생을 준비하는 때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준비하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어느 자리에 갖다 놓아도 주어진 사명을 올바로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도로 개발한 사람일수록 보다 고도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자리에 부름 받게 될 것입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기름을 충분히 준비해 놓으면 언제 어느 때 신랑이 와도 불을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청년의 때는 역사의 밤을 밝힐 기름을 준비할 때입니다. 그 기름을 충분하게 준비한 사람들은 이 역사의 어둠을 몰아내고 이 땅에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실현시킬 수 있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기름 준비를 게을리 하였을 때는 그 역사의 어둠에 묻혀 길을 잃게 될 것이며 결국은 하나님 나라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헬라어와 신약신학을 교수하신 박창환 목사님은 우리에게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공부하다 죽는 것도 순교이다"라고. 이 말씀은 자기 능력을 개발하는 일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청년들은 일찍이 자기 목표를 발견하고 이를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므로 자기 분야에서 언제나 최고가 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이웃보다 더 좋은 책을 쓰고, 더 훌륭하게 설교를 하고, 더 좋은 쥐덫을 만들 수 있다면 설령 그의 집이 산 속에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의 집에 몰려 들 것이다."
청년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최선의 것을 이룩하도록 사방에서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이 다 위대한 과학자나 예술가가 되라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무엇이 되든 있는 그 자리에서 최상이 되며 그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떤 사람이 거리의 청소부로 부름을 받으면 그는 미켈란젤로가 그림을 그리고, 베토벤이 음악을 작곡하고, 셰익스피어가 시를 썼던 것과 똑같이 거리를 청소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만일 네가 산정의 소나무가 될 수 없다면
골짜기의 숲이 되어라
그러나 작아도 시냇가의 가장 멋진 숲이 되어라.
큰 나무가 될 수 없으면 작은 숲이 되어라.
만일 네가 대로(大路)가 될 수 없다면 오솔길이 되어라.
태양이 될 수 없으면 별이 되어라.
네 성공과 실패가 크기에 있지 아니하니
네가 무엇이 되든 최상의 것이 되어라." (다그라스 멜록크)
청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재능을 최대한으로 갈고 닦아 기름을 준비하십시오. 준비된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일군으로 부름을 받을 것입니다. 준비된 사람만이 이 어두운 역사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올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삶의 넓이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삶의 넓이의 차원 즉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삶의 차원에 대해서입니다. 자기를 발전시키고 자기 능력을 개발하는 삶의 길이의 차원이 중요하지만, 거기에만 머무른다면 그는 이기주의자가 될 뿐입니다. 자기 능력 개발이 바로 자신의 행복과 출세만을 위한 것이라면 그런 사람은 오히려 이 사회에 악독을 끼치는 사람이 될 뿐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어려움에 처한 까닭은 모두가 남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이 보다 완전해 지려면 삶의 길이에다 '넓이'를 더 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의 개인주의적인 관심의 좁은 테두리를 넘어서 모든 인류의 보다 넓은 관심으로 나아갈 때 우리의 삶은 보다 성숙하여 질 것입니다. 삶의 '길이'에만 집착하는 사람은 흐르지 않는 물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개울은 흘러서 강으로 들어가고, 강은 흘러 바다로 들어가야 되는데, 그 물이 자신만을 고집하면서 흐르기를 멈출 때 결국 냄새나는 썩은 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만을 위한 삶은 바로 고인 물과 같아서 냄새를 풍기고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칠 뿐입니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없습니다. 모두가 함께 사는 사회적인 존재입니다. 이렇게 함께 사는 사회에서 다른 사람의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고 자기만을 위하여 사는 것은 죄악입니다. 함께 사는 이웃이 굶주릴 때 돌아보지 않는 것은 죄악입니다. 예수님께서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비유에서 분명하게 이 점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웃이 목마를 때, 굶주릴 때, 헐벗었을 때, 병들었을 때, 옥에 갇혔을 때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하늘 나라를 상속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북한이 아무리 우리와 사상과 이념이 다르다 할지라도 저들이 일년에 100만 명씩 굶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저들을 돕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지금 실직자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도와야 할 문제입니다. 실직은 지금 남의 일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문제인 것입니다.
청년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의 삶에만 집착하다 보면, 보다 넓게 사회를 보고 역사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사실상 사회를 알고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나'는 '너' 없이 완성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모든 생명은 서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서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웃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여러분은 보다 적극적으로 이웃과 만나며, 그 이웃과 더불어 사는 길을 찾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 정의가 실현되며, 거기에 공평이 깃들게 되는 것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 속에서 우리는 이웃이 남이 아닌 바로 내 몸의 일부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깨달음을 통해 내 삶이 발전할 때 여러분의 삶의 차원은 길이를 넘어 넓이의 세계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삶의 높이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삶의 차원인 "높이"의 차원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을 만나고 그를 두려움으로 섬기며, 그의 계명과 말씀을 따라 나가는 삶을 뜻합니다. 사실상 삶의 높이의 차원인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서는 다른 차원은 별로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의 뜻을 제대로 깨달을 때 비로소 나 자신을 바르게 알게 되며, 이웃을 알게 되며, 사회와 역사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장 중요한 삶의 차원이지만 사람들은 이 '높이'의 삶을 무시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특히 과학의 합리적 사고에 젖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볍게 여기거나 그들의 삶과는 상관이 없는 영역으로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인간의 이성의 무한한 발전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없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더욱 큰 도전이 그 앞에 있음을 발견하게 되며, 동시에 과학이 오히려 이 창조의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지성이라 할지라도 결국 지극히 유한하고 보잘 것 없는 것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없이도 인간은 도덕적이며 선한 삶을 이룩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비도덕적인 세계로 점점 더 타락해 가고 있음을 봅니다. 결국 우리는 이 세계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이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파멸을 향해 내리 달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청년 여러분,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를 두려움으로 섬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깊숙이 들어와 거하시도록 여러분의 마음문을 열어 놓으십시오. 여러분은 인생의 난관과 도전을 극복하기 위하여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만일 하나님께 대한 깊은 신뢰를 갖지 못한다면, 여러분 앞에 닥칠 위기와 좌절과 실패 앞에서 절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 속에 살면서 하나님을 떠나서 사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아서 시련의 폭풍이 올 때는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과 같이 동행하게 되면 어두운 사망의 골짜기를 벗어나 밝은 희망의 빛이 쏟아지는 산정(山頂)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역사의 어둠이 짙을 때에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별을 바라보며 새벽을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읽어 드린 잠언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알고 그를 경외하는 자를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정직한 사람에게는 분별하는 지혜를 마련하여 주시고, 흠 없이 사는 사람에게는 방패가 되어 주신다. 공평하게 사는 사람의 길을 보살펴 주시고, 주께 충성하는 사람의 길을 지켜 주신다. 그 때에야 너는 정의와 공평과 정직, 이 모든 복된 길을 깨달을 것이다. 지혜가 네 마음속에 들어가고, 지식이 네 영혼을 즐겁게 할 것이다." 잠 2:7-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젊음의 때는 하나님이 주신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기입니다. 이 때를 놓치지 마십시오. 이 때를 낭비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먼저 알고 그의 말씀과 계명을 바르게 받아 드려 따를 때 여러분은 그가 주시는 지혜를 통하여 자신과 이웃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올바로 통찰할 수 있을 것이며, 부지런히 자기를 개발하고 준비를 갖추게 되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실 것이며 그때에 사회와 민족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뛰어난 일군으로 봉사하게 될 것입니다.
청년 여러분, 신앙을 바탕으로 자기 능력을 개발하는 일에 게으르지 마십시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러나 자신의 좁은 테두리에만 머물지 말고 이웃을 돌아보며,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십시오. 거기에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통해 삶의 길이와 넓이와 높이의 차원을 보다 완전하게 가꿀 수 있는 자리에 있음을 기억하시면서 부지런히 세 차원의 세계를 가꾸어 가시기 바랍니다. 요한이 밧모섬에서 바라보았던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의 모습을 여러분도 함께 바라보면서 그 비전을 향해 노력하며 달려가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