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문덕은 고구려 石多山(석다산)사람이다. 일찌기 입산하여 수도하고 꿈에 천신을 보고 크게 깨닫다. 3월 16일이면 마리산으로 달려가 공물하며 경배하고 돌아오고, 10월 3일이면 백두산에 올라가 祭天(제천)했다. 祭天(제천)은 곧 神市(신시)의 옛 풍속이다. 弘武(홍무) 23년 수군 130여 만이 바다와 산으로 나란히 공격해왔다. 을지문덕은 능히 기이한 계책으로 군대를 이끌고 나아가서 이를 鈔擊(초격)하고 추격하여 살수에 이르러 마침내 이를 대파하였다. 수나라 군사는 수륙 양군이 무너져 살아서 요동성(오늘의 창려성)까지 돌아간 자가 겨우 2,700인이었다. 양광은 사신을 보내 화해를 구걸했으나 문덕은 듣지 않고 嬰陽帝(영양제)도 또한 엄명하여 이를 추격케하였다. 문덕은 제장과 더불어 승승장구하여 똑바로 몰아부쳐 한쪽은 玄菟道(현도도)로 부터 太原(태원)까지 추격하고 한쪽은 樂浪道(낙랑도)로 부터 幽州(유주)에 이르렀다. 그 州郡(주군)에 쳐들어가 이를 다스리고 그 백성들을 불러다가 이를 안무하였다. 여기에서 建安(건안), 建昌(건창), 白岩(백암), 昌黎(창려)의 諸鎭(제진)은 安市(안시)에 속하고, 昌平(창평), 涿城(탁성), 新昌(신창), 桶道(용도)의 제진은 如祈(여기)에 속하고, 孤奴(고노), 平谷(평곡), 造陽(조양), 樓城(누성), 沙構乙(사구을)은 上谷(상곡)에 속하고, 和龍(화룡), 汾州(분주), 桓州(환주), 豊城(풍성), 압록은 臨黃(임황)에 속했다. 모두 옛처럼 관리를 두고 다스렸다. 이에 이르러 강병 백만으로 강토는 더욱 더 커졌다. 양광은 壬申(임신, AD. 612)의 오랑캐라고 한다. 出師(출사)가 성대하기로는 예전에는 그 예가 없었다. 그런데 皂衣(조의) 20만인을 가지고 모조리 그 군을 멸망시켰는데 이는 을지문덕 장군 한 사람의 힘이 아니겠는가? 을지공과 같은 분은 곧 만고에 세상의 흐름을 만드는 한 聖傑(성걸)이다. 文忠公(문충공) 趙浚(조준, ?~ 1405. 고려)이 명나라 사신과 더불어 축배하고 함께 백상루에 올라 이렇게 시를 읊었다.
살수는 탕탕하게 흘러 푸르고 허하고나, 수나라 병사 백만은 물고기 밥이 되었지. 이제 가던 길 멈춰 어부에게 그때 얘기 듣나니 征夫(정부)의 한마디 웃음 남기기엔 오히려 모자라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