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차 대전문화유산답사 <유적을 찾아서 1 -유성지역> 답사후기
일시 : 2021년 6월 5일 (토) 09:00~14:00
코스 : 구성동 유적-구성동산성-궁동유적-외삼동고인돌-외삼동 송규렴, 송상기 신도비-점심-대전선사박물관
참가자 : 11명
강사 : 김연실 - (사)대전문화유산울림 이사, 대전문화관광해설사
안녕하세요? 두달만에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확실히 더워진 초여름날씨였지만 시원한 바람과 참가자분들의 열정 덕에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답사는 김연실 이사님께서 강사로 참여해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대전의 유적들 중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유성지역의 유적들을 둘러보았는데요. 갑천과 그 주변의 나지막한 언덕들을 선사시대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시청역 1번출구에서 만나 오랜만에 대표님의 승합차를 만석으로 채워 출발하였습니다.
시청에서 유성쪽으로 이동하면서 대전의 가장 대표적인 선사시대 유적인 선사유적지도 지나면서 보았고, 갑천을 건너 구성동 유적에 도착했습니다. 구성동 유적은 기상청 앞마당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발굴 후 보존을 위해 덮고 지금은 기상관측을 위한 기구들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문화재 안내판이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 숲에 있어 정보가 없는 사람들은 찾기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기상청에서 구성동산성으로 연결되는 길로 걸어서 이동하려 했지만 직원분이 자물쇠 비밀번호를 잊으시는 바람에 다시 돌아 차로 이동하였습니다. 잠시 걸어본 기상청 뒷 숲도 초여름 기운에 참 아름다웠습니다.
1. 구성동 유적
대전광역시 유성구 대학로 383 (구성동), 시도기념물 제37호(1998.07.21.)
대전광역시 유성구 지방 기상청 부지에 있는 청동기시대∼조선시대에 이르는 집자리 유적이다.
이곳의 유적에 대해서는 1994년에 한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는데, 발굴조사 결과 집자리 유적 47기, 널무덤(토광묘) 7기, 독무덤(옹관묘) 2기, 저장구덩 2기가 확인되었다.
이들 유물·유적은 파괴가 심해서 원래의 모습을 유지한 것은 많지 않았다. 집자리 유적은 청동기시대 7기, 원삼국시대 34기, 조선시대 6기로 각 시대에 걸쳐 확인되고 있다. 청동기시대 집자리는 사각형과 원형으로 구분되는데, 원형 집자리는 부여 송국리 유적과 비슷한 형태이고 내부에서 출토되는 유물도 송국리형 민무늬 토기와 간석기이다. 원삼국시대 집자리는 파괴가 심하여 원형을 알 수 있는 것이 극히 적으나 타원형과 반원형의 2가지 유형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구성동 유적은 보호를 위해 1∼2m 높이로 흙으로 쌓은 후, 그 위에 야외관측 시설물을 설치하여 사용하고 있다.(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두번째로는 바로 옆의 구성동 산성을 가보았습니다. 수목제거도 하고 잔디도 잘 깎아놓아 시원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곳은 백제시대의 산성인데 노사지현의 치소로 비정되는 곳이라고 합니다. 갑천을 사이에 두고 월평동산성와 마주보고 있습니다. 갑천에는 상류부터 하류쪽으로 흑석동 산성, 월평동 산성, 구성동 산성, 우술성, 금고동 산성까지 5개의 산성들이 자리잡고 있어 이 일대의 중요성을 짐작하게 합니다. 구성동부터 궁동까지 이동네는 새우모양의 지세를 가지고 있고 구성동은 구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합니다.
2. 구성동 산성
대전광역시 유성구 구성동 20,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6호(1989.03.18.)
해발 86.7m의 성두산 정상에 있으며, 거북성·귀성(龜城)이라고도 한다. 현재는 거의 대부분이 붕괴되어 그 윤곽만 남아 있다. 유성은 신라 경덕왕 때부터 불려온 지명으로 백제시대에는 노사지현(奴斯只縣)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산성은 노사지현의 치소(治所)로 추정되기도 한다.
산성은 4,760㎡ 넓이로, 크게 성두산 정상부에 축조한 북성(北城)과 남쪽으로 뻗은 산능선에 길쭉하게 축조한 남성(南城)으로 구분된다. 북성 서북쪽의 허물어진 모서리부분에서 성의 축조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성벽은 삭토(削土)하여 내부는 넓고 평평하게 하고 외부는 가파르게 하였으며, 그 위에 판축(版築)을 하였다. 성의 동북부에 문터가 있고, 성의 둘레는 330m이다.
남성은 둘레 250m이고 성 밑을 지나가는 도로와 갑천, 넓은 평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좋은 곳이며, 문터는 북성과의 접합부에 2개가 있다. 성 안에는 약 8∼10m 너비의 내호(內壕)로 보이는 통로가 둘러져 있고 중앙에는 동서로 길다란 모양의 고대(高臺)가 있다. 동서벽 내부의 넓은 평지에서는 연질의 백제토기 조각과 조선시대 자기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출처 : 두산백과)
그 다음은 갑천을 따라 유성천을 따라 궁동 유적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의 답사는 이 지역에 왜 사람들이 살았을까 선사시대 사람들이 거주지로 선택했을 이유를 자꾸 상상해보게 되었습니다. 반석천과 유성천이 만나는 작은 언덕, 남동향으로 해도 잘 드는 위치, 그래서 충남대학교 정문 왼쪽의 작은 언덕에는 많은 집자리와 무덤의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이곳도 발굴 후에 흙으로 덮어놓았기 때문에 그냥 봐서는 잡초밭이지만 안내판을 잘 설치하고 산책로도 정비되어 궁동 유적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3. 궁동유적
대전 유성구 궁동 242-15번지 외 1,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39호(2000.02.18.)
충남대학교 정문옆 야산에 있는 청동기시대부터 백제시대에 걸친 유적으로 '99년 충남대학교박물관의 발굴조사로 밝혀졌다. 이곳에서 확인된 유구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13기·초기철기시대 토광묘 1기, 원삼국시대 토광묘 16기, 백제시대 옹관묘 1기·횡혈식 석실묘 3기·석곽묘 28기 등이다.
유적의 성격을 살펴보면 청동기시대 취락지 조사에서는 이중구연(二重口緣), 단사선문(短斜線文)의 가락동식 토기 및 장방형의 주거지를 특징으로 하는 청동기시대 전기의 장방형 집자리와, 송국리형 토기 및 원형의 주거지를 특징으로 하는 청동기시대 중기의 집자리가 동시에 조사되어 청동기시대 문화상의 변천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토광묘에서 점토대토기와 흑도가 출토되었다. 궁동유적의 토광묘와 유사한 예로는 인접한 노은동 유적에서 점토대토기를 부장한 토광묘 2기가 최근 조사된 바 있어 시기와 분포에서 밀접한 문화적 관련성을 시사하고 있다.
원삼국시대 토광묘는 대부분 매장 주체부의 위쪽 경사면에 주구(周溝)를 설치한 형식이다. 이들 중 2기는 합장묘 형태를 하고 있으며, 주구에 옹관이 설치된 경우도 있다. 마한시대의 대표적인 묘제로 알려진 이러한 형식의 묘제는 대전지역에서는 최초로 확인된 것이다.
백제시대의 고분 조사를 통해서는 횡혈식 석실분, 횡구식·수혈식 석관묘, 옹관묘 등 다양한 묘제가 조사되어 이를 통해 당시 사회집단의 성격과 사회상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고고학 자료가 확보되었다. 특히, 백제 사비기의 횡혈식 석실분은 원삼국시대의 주구토광묘와 더불어 대전지역에서는 최초로 조사된 것으로 그 자료적 가치가 높다. (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이번에는 외삼동으로 향했습니다. 먼저 볼 곳은 고인돌입니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족장의 무덤으로 고대국가 발전의 바로 전단계에 나타난 유적이며 결집된 세력집단의 출현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고인돌이 만오천~이만기 정도 있어 세계적으로 가장 많으며 강화,화순,고창지역의 고인돌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기도 하였습니다.
대전에도 많은 수의 고인돌이 존재하는데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비래동, 내동리, 칠성당 고인돌 등 몇 개 되지 않습니다. 오늘 답사한 외삼동 고인돌은 처음 보았는데 문화재로 지정된 다른 고인돌에 못지 않은 규모였습니다. 동네 뒷산에 방치된 느낌인데 솔잎에 뒤덮여 걷어내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습니다. 성혈이 가득한 고인돌 하나, 굄돌까지 보이는 고인돌 또 하나, 길죽해 보이는 고인돌 또 하나 덮개석이 세개나 바로 옆에 함께 있는데 이곳이 문화재로 지정된다면 사람들도 더 관심을 갖고 찾게 되고 주변도 정비되어 보호받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다음은 송규렴, 송상기 신도비입니다. 주로 선사시대와 관련된 곳을 둘러본 오늘 답사에서 조금 결이 다른 유적이었는데 조선시대 대전의 대표 유학자인 송규렴과 송상기 부자의 신도비입니다. 송씨 가문의 신도비 중에 가장 규모가 크고 멋지다고 합니다. 은진송씨라 하면 송촌동을 떠올리고 이사동의 집장촌과 판암동의 쌍청당 쪽만 생각했는데 유성 외삼동에도 송씨 문중의 무덤이 있다는 것이 낯설고 신기했습니다.
제월당 송규렴은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과 함께 삼송이라 불렸던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입니다. 송규렴과 관련된 문화재로는 읍내동에 제월당이라는 별당과 미호동에 취백정이라는 강학하던 건물이 남아있습니다.
신도비란 종2품 이상 관직을 가졌던 사람 무덤 앞에 세워 그 사람의 일대기를 적어두는 비석인데 신도란 신의 길, 죽은 자의 묘로를 뜻한다고 합니다. 송규렴 신도비는 박필주가 짓고, 김진상이 썼으며(김진상은 김장생의 고손자이면서 김반의 증손자라고 합니다.), 민진원이 전서하였다고 적혀있습니다. 여러 가문에서 이 신도비 세우는 일에 함께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도비 옆의 언덕에 묘소가 있는데 어디에도 이름이 없어 정확히 어떤 것이 송규렴의 묘소인지 알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점심식사 후 마지막으로 간곳은 선사박물관입니다. 선사박물관에서 8년간이나 해설봉사를 하셨다는 김긍원 선생님께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셔서 꼼꼼하게 유물을 둘러보았습니다. 입구의 대전시 큰 지도에서 오늘 답사했던 곳들을 되짚어 확인해보고 선사시대의 발전내용과 대전의 대표적인 유적지, 유물들을 살펴보니 오늘 답사의 마무리 장소로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답사를 이끌어주신 김연실 이사님께서 답사를 시작하면서 서두를 열어주신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영국 신사 젠틀맨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걸까? 멋진 사람, 훌륭한 사람, 바바리코트에 우산든 멋쟁이? 그런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사는 곳의 역사와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이 젠틀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오늘 젠틀맨이 되기 위한 답사를 하자고 하셨는데 완전한 젠틀맨은 아니더라도 우리 대전의 역사와 지리에 대해 조금은 더 다가간 하루였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유산울림의 6월답사 유적을 찾아서 유성편을 함께 해주신 참가자분들께 감사드리고 김연실 이사님, 김긍원 선생님 많이 배웠습니다. 다음 답사 때 다시 뵙겠습니다.^^
첫댓글 함께 하지 못해 아쉽지만 만차로 답사를 하셨다니 좋습니다. 깔끔한 후기, 수고하셨어요~
임국장의 답사후기로 복습 열공했슈~~
깔끔하게 정리해준 덕분에 복습한 내용 상당히 오래 지속될듯...♡♡♡
참말로 고맙고 수고했어라~~
김연실 이사님도, 안여종대표님도 수고많았지라~ 감사해유~~♡♡♡
• 함께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 霽月堂송규렴선생님과 玉吾斎송상기선생님
신도비 보고, 묘를 보면서 묘비가 없어서 어찌된일인가 궁금했잖아요?
알아봤더니, 산의 형태가 새의형국이거나
금계포란형 일때는 돌덩이를 올려놓으면 알이 깨진다해서 묘비를 생략한다고 합니다..
제월당과 옥오재 신도비는 은송 신도비중
그 글씨와 규모가 제일 크다고 합니다..
신도비는 묘의 안내도와 같은거지요??
• 우리가 답사한 유성지역의 구성동유적, 구성동산성, 궁동유적, 외삼동고인돌, 송규렴,송상기신도비, 노은동유적..등은 대전의 정체성을 밝혀주는 귀한 유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 우리 모두가 溫柔敦厚하는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