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국문학의 오늘 ①] 국권상실과 전쟁, 소외, 현실에 대한 치열한 응전의 문학
글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2023.6.13
[편집자 주] 올해는 6.25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70년간 문인들은 전쟁이라는 역사적 체험을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 드러냈다. 한국문학 70년을 3회에 걸쳐 돌아본다.
《월간조선》이 1990년 6월호에 게재된 <소설가 107명이 뽑은 한국의 대표 소설가 10인> 기사. 동료 소설가들이 이문열을 '우수작가'로 첫 손에 꼽았다.
⊙구글 트랜드 시인 검색량에서 김소월, 한용운, 서정주, 김춘수, 정지용 順
⊙1990년 ‘소설가 107명이 뽑은 뛰어난 작가’는 이문열 황석영 이청준 박경리 조정래 順(《월간조선》 선정)
⊙건국 50년(1948~1998년) ‘가장 훌륭한 소설가’는 최인훈 황석영 이청준 順, ‘가장 훌륭한 시인’은 김수영 고은 김지하 順(《조선일보》 선정)
36년간 모국어를 잃어버렸다. 그 이전의 문학도 실은 한문문학이 지배하고 있었다. 타인의 손에 광복을 맞았다. 모국어가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느꼈다. 어지러운 이념의 충돌, 혼란 속에서 나라를 세웠지만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들었다.
그 비극을, 비극의 정화(淨化)를 문학이 도맡았다. 한 인간이 평생 겪어야 하는 온갖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압축적으로 경험한 운명을 시와 소설, 산문으로 만들었다. 20세기 한국문학은 그렇게 인간문학이자 자유의 함성이어야 했다. 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담은 민족문학이어야 했고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겪은 노동문학, 실천문학이어야 했다. 그리고 인류 보편성을 담은 세계문학이자 제3세계 문학의 한 줄기가 되었다.
김소월 한용운 서정주 김춘수 정지용 등이 자주 검색돼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시인(詩人)의 나라다.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한국인은 민요와 시조의 3·4조 전통 율격을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어서인지 시인의 수가 많다. 대표적인 서정시인 김용택 시인의 말이다.
“우리나라처럼 시인이 많은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등록된 시인만 몇 만 명이라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는 인문학과 시에 대한 전통적 외경심이 사라지지 않은 것 같아요.”
현재 ‘시인’이라 불리는 문인의 수가 얼마나 될까. 정답은 ‘알 수 없다’다. 아니, ‘셀 수 없이 많다’다. 정확한 통계자료가 없다. 그러나 전업 시인을 꼽으라면 정말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적다.
그렇다면 대중들에게 자주 회자되는 시인은 누굴까.
강원대 최도식 교수가 빅데이터를 통해 한국 현대시인 인지도 및 평판분석을 했다. 그 결과가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이 펴낸 《탈경계인문학》(2018년 11월, 통권 24호)에 실렸는데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 100인을 선정해 구글 트렌드와 썸트렌드, 소셜메트릭스를 이용해 ‘한국 시인들 중 누가 대중에게 자주 검색되는지’, ‘어떤 시가 대중에게 많이 검색되는지’를 따졌다.
그 결과, 작고 시인 검색량은 김소월, 한용운, 서정주, 김춘수, 정지용이 높았다. 김소월의 관련 검색어로는 ‘진달래꽃’ ‘초혼’ ‘먼 후일’ ‘산유화’, 한용운은 ‘님의 침묵’ ‘알 수 없어요’ ‘복종’, 서정주는 ‘국화 옆에서’ ‘자화상’, 김춘수는 ‘꽃’, 정지용은 ‘향수’ 등이 검색되었다.
그런데 김소월보다 높은 검색량에는 윤동주, 김수영이 탐색되었다. 윤동주 관련 검색어는 ‘서시’ ‘별헤는 밤’ㆍ ‘자화상’ 등이었다. 김수영은 개그맨 김수영, 시나리오 작가 김수영과 관련된 검색이 다수 포함된 점을 감안할 때 김춘수, 정지용과 비슷한 검색량으로 예측되었다.
기성 시인 검색량은 안도현, 도종환, 정호승, 김지하(작고), 김용택 순이었다.
안도현은 ‘너에게 묻는다’, 도종환은 ‘접시꽃 당신’, 정호승은 ‘봄길’ ‘수선화에게’, 김지하는 ‘타는 목마름’ ‘오적’, 김용택은 ‘섬진강’, ‘참 좋은 당신’ 등이 검색되었다. 그런데 고은의 검색량은 김소월보다 높게 나타났지만 걸그룹 레이샤의 리더 고은, 배우 김고은 등 교란요인이 있기에 이를 감안하면 김지하보다는 높은 도종환, 정호승 정도의 검색량으로 예측되었다. 고은은 지난 2018년 당시 상습적인 성추행 의혹이 불거졌다. 얼마 전 ‘미투’에 대한 명확한 언급 없이 문단 복귀를 하다 제동이 걸린 상태다.
대표적인 한국의 문인들.
이문열 황석영 이청준 박경리 조정래 등이 뛰어나
《월간조선》이 1990년 6월호를 통해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공개했다. 당시 문단에서 활동 중인 소설가 107명에게 “현역 소설가 중에서 뛰어난 작가 5명을 우수한 순서대로 적어달라”는 질문을 던졌다. 당시만 해도 김동리 황순원 이병주 박경리 최인훈 같은 쟁쟁한 원로 작가들이 모두 생존해 있던 시절이다.
설문에 응한 소설가 107명 중 70명은 서신으로 답변을 보내왔고 나머지 37명은 전화로 응답해 주었다고 한다. 접수집계는 ‘우수한 순서대로 적어달라’고 한 만큼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을 택했다. 즉, 1위로 거론된 사람은 5점, 2위는 4점 등등으로 점수를 차등 부여했다.
그 결과, 소설가들이 생각하는 ‘우수작가 베스트 10’은 이문열 황석영 이청준 박경리 조정래 김원일 황순원 김동리 유재용 최인훈 등이었다.
그리고 오정희 이병주 윤흥길 김주영 박완서 서정인 이호철 김문수 임철우 김성동이 11~20위를, 김영현 윤후명 이문구 양귀자 조세희 김채원 박범신 천승세 최인호 전상국 등이 21~30위를 기록했다.
1위를 차지한 이문열은 당시 42세였다. 그는 미학성, 창조성, 역사의식, 대중성, 사상성 등의 항목에서 고른 점수를 받았다. 이문열은 당시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내 작품의 지향은 자유”라며 이렇게 말했다.
“자유가 중요하다는 선전을 대중에게 주입시키는 것은 정치가의 몫이고 작가는 자유의 중요성을 대중이 느끼게 하는 것이 그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일보》 1998년 7월 31일 자 4면에 실린 <대한민국 50년, 문학 50년> 기사
《조선일보》가 선정한 건국 50년 최고의 작가와 작품은
《조선일보》가 대한민국 건국(建國) 50년간의 뛰어난 문학 작품과 작가를 뽑은 적이 있다. 건국 50주년 기획기사인데 1998년 7월 31일 자 4면에 실렸다.
당시 신문은 문학평론가들에게 1948년부터 지금까지 발표된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가장 훌륭한 소설 20편 ▶가장 훌륭한 소설가 20인 ▶가장 훌륭한 시인 20인을 무순(無順)으로 선정해 달라고 의뢰했다. 선정에 참여한 문학평론가는 모두 31명인데, 김윤식(작고) 이어령(작고) 김병익 백낙청 김주연 김치수 권영민 조남현 최원식 오생근 방민호 등 당대를 대표하던 문학평론가들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건국 이후 가장 뛰어난 소설가로 《광장》의 작가 최인훈이, 가장 뛰어난 시인으로는 ‘풀’의 작가 김수영이 각각 선정됐다.
또 소설가들이 얻은 추천 횟수의 순위는 최인훈에 이어 황석영(2위),이청준(3위),박경리 황순원(이상 공동 4위),오정희(6위),김동리(7위),김승옥 김원일 박완서(이상 공동 8위) 등의 순서였다. 시인의 경우 김수영에 이어 고은 김지하 서정주 신경림(이상 공동 2위),김춘수(6위),정현종 황동규(이상 공동7위),신동엽(9위),박재삼(10위) 등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가장 훌륭한 소설 작품으로 박경리의 《토지》,최인훈의 《광장》,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 세 작품이 모두 28표 동수(同數)의 최다 추천을 얻었다. 이 결과는 ‘현대 한국문학의 괄목할 성과들이 국권상실과 이념투쟁, 전쟁과 분단, 빈부갈등이라는 이 땅의 고통스런 현실에 대한 치열한 응전(應戰) 속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문학사상》이 선정한 ‘문인이 뽑은 명작 100선’은
이외에도 많은 소설이 ‘뛰어난’ 작품으로 호명됐는데 황석영의 《장길산》, 김주영의 《객주》,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 대하소설을 비롯해 이청준의 대표작 《당신들의 천국》, 이문구의 《관촌수필》, 윤흥길의 《장마》,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 등이 평론가들의 지지를 받았다.
대표적 시 작품을 추천해달라는 물음에 24인의 평론가만 응답했는데 신경림의 ‘농무(農舞)’가 21표를 얻어 첫손 꼽혔다. 김수영의 ‘풀’(13표),김지하의 ‘황토’와 김춘수의 ‘꽃’(각각 11표), 박재삼의 ‘울음이 타는 가을 강’(10표), 황동규의 ‘풍장’ 연작과 신동엽의 ‘금강’(각각 9표), 고은의 ‘문의(文義)마을에 가서’(8표),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와 김지하의 ‘오적(五賊)’,‘타는 목마름으로’(각각 7표),서정주의 ‘국화 옆에서’(6표) 등의 순이었다.
월간지 《문학사상》이 2004년 4월호에서 저명한 시인과 소설가, 평론가, 대학교수 등 145명에게 물어 ‘한국 문인이 뽑은 한국명작소설 100선’을 발표한 적이 있다.
한국소설 100선에 오른 작품은 중·단편이 68편, 장편소설이 32편이며, 전체적으로는 광복 후 작품(74편)이 광복 전 작품(26)에 비해 2.84배 많았다고 한다.
《문학사상》 측은 “선정 작품을 보면 인간적인 보편성에 터 잡은 작품보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광복 후의 민족분열·이념대립·빈곤 등으로 인한 사회적 암흑상과 가족사적 비극이 대부분 작품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명작 100선 중 20선을 소개한다.
최인훈의 《광장》, 이상의 《날개》, 염상섭의 《삼대》, 박경리의 《토지》, 김유정의 《동백꽃》, 채만식의 《탁류》, 김동리의 《을화》, 이광수의 《무정》, 조정래의 《태백산맥》, 황석영의 《장길산》,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최명희의 《혼불》,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홍성원의 《남과 북》, 김주영의 《객주》, 김동인의 《감자》, 김유정의 《봄봄》,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공》, 이태준의 《복덕방》,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 등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