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헐적(間歇的) 시(詩) ★ 서정시(瑞正詩) 25
이제 그대가
이제 그대가
한눈에 딱 봐도
누리장나무
불가사리 흰 꽃이 지고
복주머니 분홍 꽃받침만 남아 있어도
아니
타조 알 같기도 하고 닭 알 같기도 하고
누른 내 풍기는 잎만 달고 있어도
이제 그대가
누리장나무
이제 그대가
박주가리
나팔꽃 미국담쟁이 환삼덩굴 무리지어 있어도
심장에 하얗게 골이 진 잎맥만 봐도
솜털 덮은 별 중앙에 솟은 암술 한 개
이제 그대가
박주가리
이제 그대가
새팥
돌돌 말린 노란 꽃이 신기하기만 해
네이버렌즈도 대보고 다음 꽃검색도 대보고
여우팥이라고 하기에
모르면서도 의심을 던지며 좀 훑어보니
새팥
용골판이 나오고 비대칭 미학이 등장하고
이제 그대가
새밭
이제 그대가
그대처럼 보인다는 것은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그대가 그대처럼 보여진다는 것
수많은 그대들이
그대로 보여질 수 있도록
내 눈에 낀 서리를 부지런히 거두리
이제 그대가
바로 그대가 될 수 있도록
나를 잊으리
(김서정, 金瑞正)
---------------------------
34
구어(口語)에는 언제나 리얼리티가 있고 리듬이 살아 있어요. 또한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쌀알에 쌀눈이 붙어 있는 것과 같아요. 가령 사람들이 쌍욕 하는 소리를 들으면, 리듬과 이미지가 얼마나 생생하게 살아 있는지 알 수 있어요.
35
말은 작고 가볍게 해야 해요. ‘… 임에 틀림없다must'보다는 ‘…일지 모른다may'가 힘이 있어요. 판단 유보의 어조사 ‘의 矣’를 즐겨 쓰는 공자에 비해, 단정적 어조사 ‘야也’를 자주 쓰는 맹자를 ‘아성亞聖’이라 한대요. ‘성인’에는 좀 못 미친다는 것이지요. ‘삼천 년 뒤 성인이 다시 와도 내 말은 못 바꾼다 百世聖人復起 不易吾言’는 그의 말은 너무 도도해서 힘이 떨어져요.
36
시는 빗나가고 거스르는 데 있어요. 이를테면 ‘서재’와 ‘책’ 대신 ‘서재’와 ‘팬티’를 연결하는 식이지요.
- <무한화서>(이성복)에서
(오늘 <무한화서> 글에서 “말은 작고 가볍게 해야 해요.”를 보자.
세상을 등불처럼 밝힐 만한 사상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서도 말을 크고 무겁게 하려고 한다. 시를 쓴다면 이것부터 버려야겠다.
오늘 시는 나무 공부하는 것을 기록하기 위한 시다. 언어로 연결을 시켜놓아야만 해설을 할 수 있다. 특히 그 사물을 안 보고도 설명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어떤 분이 무슨 나무를 찾는데 찾으니 리포터가 이렇게 물었다.
“우리는 방금 봤는데도 모르겠는데 어떻게 아세요?”
“그냥 보여져요.”
이후 이 말을 나는 모토로 삼기로 했다. 열심히 보다 보면 보여지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외우지 못하니 열심히 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나도 자연인이 되어야 하나? 아직 그럴 생각은 없다. 흐르는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