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수의 의식 세계를 보여주는 수필을 읽어보기로 하자.
먼저 ’입맛대로 사는 하루‘를 보자.
“사십여 년 전 장인어른의 회갑연이 떠오른다. 요사이야 칠순도 조용하게 지나치는 세월이다. 하지만 반백 년 전만 해도 회갑연은 자식들이 형편껏 지갑을 열어 부모님을 위한 잔칫상을 마련했다. 효도의 기회라도 잡은 듯이 동기간에 경쟁적이었다. 친인척과 지인을 불러 넉넉한 인심으로 하루를 보냈다.
여섯 살이던 큰 놈이 어른들 앞에서 한 곡을 뽑았다.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하객과 나도 웃어가며 박수를 쳤다. 신명이 났던지 두어 곡 더 불렀다.
옆에서 무거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처족 가운데 고등학교 선생님 한 분이 발끈하며 고성을 내질렀다.
”애면 애답게 놀아야지. 그 무슨 짓이냐. 한 곡 하려면 동요나 부르던가. 자, 예 있다.“
선생님은 짜증스런 표정으로 천원권 지폐 한 장을 내던졌다.
작가는 처족 선생님의 꾸중을 좋지 않게 표현하였다. 작가의 의식세계는 전통 사회의 가치관에서 변해가는 사회를 인정하려는 변화가 온 것이다.
(앞에 송해 선생이 진행하는 가요무대에서 어린 아이가 나와서 100세 인생을 노래하는 것을 두고 작가는 송해 선생의 멘트를 통해서 어린 아이가 부르는 어른의 노래를 긍정적으로 보았다.)
이러한 변화는 ‘묘제 참례기’에서도 나타난다. 경주에 있는 최씨 문중의 묘제에 참여하였던 기록이다. 묘제의 분위기가 너무 엄숙하여 작은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진행하였다. 작가는 묘제 참여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룻밤 묵고 왔지만 이유 없이 긴장감이 느껴졌다. 경직된 분위기 때문이다. 담소나 흥은 찾아 볼 수 없다. 어른들의 근엄한 언행에 눌려 함께한 시간은 바늘 방석이다. 이런 묘제에 쉽게 적응할 젊은이가 얼마나 될까.“
양반 골 안동에서 태어난 그는 매장 문화에 대해서도 말을 한다. 안동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매장 문화를 선호한다. 형님도, 동생도 그렇게 유택을 마련했다. 작가가 자기의 생각을 펼친다.
”이젠 장묘 문화에 대한 가치관도 바뀔 때가 되었다. 매장을 해서 산림을 훼손하고 벌초
까지는 할 필요가 없다는 게 대세다. 조상 숭배도 시대의 흐름에 따르는 것이 대세이다.“
전통적인 가치관에 젖어서 자란 그가, 전통 가치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하여 여기에 인용하였다.
그의 노년을 대변해주는 수필 한 편 읽기로 하자. 이 수필이 말하는 여러 가지들이 최중수의 오늘의 의식세계를, 수필세계를 보여주는 전형(典型)이라 생각되어서 소개한다.
극과 극
최중수
아내는 시답잖은 살림이지만 일구고 지키기 위해 젊음을 소진했다. 나중에 손주까지 떠맡아 앞가림 할 정도로 키워 홀로 서라며 내세웠다. 이후 큰방에서 여가선용으로 연속극이나 오락물에 빠져 지내왔다. 작은방에서 선비처럼 읽고 쓰는데만 전력을 다하는 나와는 극과 극의 길이다. 한 지붕 밑에 살면서도 작은방과 큰방의 분위기는 이렇게 상반된다.
언제부터인가 큰방에선 대중가요가 심심찮게 들려왔다 스마트폰을 켜놓고 흥에 겨워 불러대는 신명풀이 같았다. 노년으로 접어들면 권태라는 불청객도 불만없이 동행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해서 기분전환이라도 해볼 출구쯤은 누구에게나 팔요하다.
아내는 인근에 있는 **종합복지회관에 들락거리더니 가요교실에서 한 곡씩 배워오는 모양이다. 고단한 삶에 흥이란 식탁 위의 양념처럼 입맛을 돋궈준다. 이쯤 생각하니 아내가 택한 길이 부럽기만 하다.
그에 비하여 내가 하는 일은 흥은커녕 시원스런 폭소 한 번 터트려 보기도 쉽지 않다. 문예 창작이란 게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일이니 쉬울 수야 있겠는가. 문예 창작이란 어설픈 숲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바늘찾기 이다. 소재 선택이나 초고를 위해 끝없이 이어지는 사념은 늘 대뇌를 긴장시킨다. 뇌리는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복잡하지만 내심을 휘젖는 상(想)의 일부는 글쓰기의 밑천이 될 때도 있어 다행이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잉태되기엔 첩첩산중이다. ‘왜 이렇게 힘겨운 길을 자청했을까.’ 회의에 젖기도 한다. 그래도 자의에 의한 선택이니 더 이상 군소리 없이 순응해 간다.
열심히 노력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 수준급으로 만들어 보려한다. 한 편의 수필 창작을 위해 머리를 쥐어짜는 순간 후회의 그늘이 덮치기도 한다.
하지만 주물럭거리던 작품이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낼 때까지는 희열, 이런 맛에 끌려 때로는 싫증이 나도 절필을 선언하지 못한다.
좋은 글 한 편 써보기 위해 부여받은 시간을 아껴 쓴다 해서 만사를 접었다. 흥에 겨운 시간을 보내는 아내를 말없이 바라보며 유혹에 빠진 적도 있었다.
아내는 끼의 정도가 높아져 가는가. 대중가요에서 민요로 열정의 불길이 옮겨 붙었다. 최근에는 아리랑으로 목소리가 높아진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섯달 꽃본 듯이 날 좀 보소 ㅡ 동지섯달 꽃본 듯이 날 좀 보소 ㅡ. 초고를 퇴고하다 말고 귀를 쫑긋거리며 눈을 지그시 감는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여 진다. 흥과 신명은 고단한 삶을 여유로 바꿔져 싫어하지 않는다.
현직에 있을 때 동료들이 노래방에 가자면 앞장 서 본적이 있다. 가창력이랄 건 없고 취흥에 겨워 돼지 목따는 소리로 객기를 부렸다. 잠재된 흥이었고 다음 날 고단한 업무에 에너지 역할도 해주었다. 주량은 적었지만 술판을 좋아했고, 사람 만나는 것도 싫어하지 않았다. 이런 생활에서 살아있다는 존재의 의미를 터득했다. 때문에 지금 아내가 흥얼거린른 창에 나도 모르게 끌려드나 보다.
드디어 아내는 동네의 중노인과 함께 민요 모이을 결성해 본격적으로 연습에 돌입했다. 불붙은 노래 가라게 나날 가는 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도와 줄 건 없고 시간 나면 들어주는 게 고작이다.
옆에 앉아 반주에 맞춰 한 고개 넘을 때마다 온몸을 일렁거린다. 공연 날이 가까워질수록 동내 노인들을 한 자리에 모여, 입시를 앞 둔 수험생처럼 창에 취한다. 주방으로 오가면서도 밥주걱을 부채 삼아 온몸을 흔들어 댄다.
”거참, 할 만하겠네. 세상살이 별거냐, 흥이 사라지면 인생은 밤톨 빠진 쭉정이처럼 허망할거야.“
아내에게 한 마디 던져본다.
”당신도 글만 쓰지 말고 재미있게 살아, 얼마나 남았다고 그처럼 고단하게 지내. 내 노는 것 좀 봐라. 흥겨워 보이지 멋진 인생살이, 바로 이거야.“
좀 논다 했더니 넘치는 것 같다.
하지만 맞는 말처럼 들린다.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기왕이면 웃고 즐기며 살지. 여생의 하루살이는 아내가 나보다 한 수 위다. 하지만 문예창작에 깊숙이 삐져 굳어버린 발을 뻬기도 쉽지 않으니 문제다. 아내와 나는 서로 위무하면서도 극과 극의 길을 가고 있으니 그저 운명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어떤 단체이든 극과 극의 사이는 존재하기 마련이다.무주공산 같은 골방에서 독서와 수필 창작으로 재미없는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취향과는 다른 가요에도 고개를 돌려 흥얼거리게 되었다. 그랬더니 아내도 가요에 빠져 혼을 뻬앗기면서도 졸저만은 읽어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이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의 여유는 상대편의 의견이나 가치관을 존중해 줄 때 어렵잖게 이루어진다.
이처럼 극과 극의 위치에서 한 발치만 나서 반대편을 껴안아도 조직이나 사회는 어렵잖게 구러갈 수 있다. 내외는 이제야 철이 드는가. 시나브로 극과 극의 입장에서 욕심을 줄여 서로가 하는 일에 이해하려 든다.
(우리의 현대 정치 상활을 조금 언급하였으나 내 임의로 생략했습니다.)
”자기야, 내일 동네 **종합복지회관에서 연습해온 민요 경연대회가 있다. 올 수 있겠지.“
아내가 묻는다.
”응, 가 봐야지. 내가 빠지면 되겠나.“
가겠노라면 아내와 약속을 했다.
대여해온 치마저고리를 쳐다보다 미장원에 다녀온 머리를 쓰다듬는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ㅡ 동지섯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여섯 번 째 수필집 ‘숫자 4’와 오간 이야기‘에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