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 워크숍, 다른이름으로 저장하기-장애인운동 안에서 장애/여성의 위치와 역할'이 5일 늦은 1시 이룸센터에서 장애여성공감의 주최로 열렸다.
이날 워크숍에서는 남성 중심적인 장애인운동 가운데 장애여성 활동가로 살아가는 고충을 털어놓고 장애여성이 어떻게 운동을 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나누는 자리로 진행됐다.
첫 순서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사무국장이 ‘장애여성으로 활동하기, 위치와 역할을 고민하기’를 주제로 특강을 진행했다.
박김 사무국장은 20년 동안 장애여성으로서 장애인운동을 하면서, 장애여성이 장애인운동 지도자가 되기 힘든 현실을 지적했다.
▲특강 강연자로 나선 박김영희 사무국장. |
박김 사무국장은 “운동을 시작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 주요 장애인 단체들의 행사에 가보면 여성대표는 한두 분 정도고, 장애여성단체를 제외하고 장애여성이 대표로 있는 단체를 찾기가 힘들다”라면서 “아직도 장애여성 대표가 없는 것에 대해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장애인 단체가 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박김 사무국장은 장애인운동 내부에서 장애여성운동을 인정하지 않고 장애여성을 배려하지 않는 남성 중심적 분위기에 대해서 질타했다.
박김 사무국장은 “2000년 초반 장애여성공감을 통해 장애여성운동을 할 때 장애인운동과는 친하지 않았고 그들도 우리를 운동 취급해주지도 않았다”라면서 “장애여성운동이 장애인운동을 세분화하고 분열시킨다는 비난과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박김 사무국장은 2001년 장애인이동권연대 대표로서 활동할 때 장애남성이 장애여성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던 사례도 소개했다.
“2001년 장애인이동권연대가 만들어지고 나서 장애여성공감의 대표로서 이동권연대의 공동대표가 되고 장애남성들이 있던 운동판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전동휠체어를 타는 최중증 장애여성인 저는 회의가 끝나면 지하철 막차를 타고 가는데, 4호선 리프트가 자주 고장 나 빨리 집에 가야 했죠. 하지만 다른 대표님은 자가용 운전을 하거나 남성이거나 해서 대중교통 시간에 관심이 없었고, 회의 시작 시각에 맞춰 오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밤늦게까지 회의를 해야 했어요.”
이어 박김 사무국장은 이동권연대 활동 당시 장애남성끼리 담배를 피우거나 뒤풀이를 하면서 회의 내용을 결정해 장애여성이 회의에서 배제된 사례도 소개했다.
“회의 중에 쉬는 시간이 되면 장애남성들이 우르르 나가 담배 피우고 저는 혼자 탁자에 덩그러니 있는데 이 사람들이 담배 피우면서 회의 내용을 타협보고 정리하고 들어오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뒤풀이를 거의 못 하는데, 다음 회의에 가면 지난 회의에서 결정되지 않은 게 이미 결정되어 있었죠. 장애남성들은 뒤풀이 문화로 인간적으로 맺어진 관계가 되어 있고 모든 문제를 그러한 관계 속에서 푸는데, 그 관계에 끼지 못하는 제가 회의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면 ‘왜 맨날 까칠하게 문제를 제기하느냐’, ‘왜 그냥 넘어가지 못하느냐’라고 지적당해야 했죠.”
또한 박김 사무국장은 장애여성운동 활동가, 대표들이 활동하기 어려운 점에 대해 토로했다.
박김 사무국장은 “토론회, 세미나 회의록을 써야 할 때 장애여성이 자청해서 쓴다고 하기가 쉽지 않았다”라면서 “학교에서나 사회에서 그런 것들을 접하기 쉽지 않았던 장애여성이 회의록 하나 쓰기도 쉽지 않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김 사무국장은 “운동에서 리더가 되려면 정보력과 경험이 있어야 하는데 장애여성은 정보력을 갖기가 어렵다”라면서 “장애인운동 흐름을 단체와 사람들의 네트워크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접해야 단체 안에서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데, 경험과 네트워크가 부족한 여성 입장에서는 확신할 수 있는 말을 하기 어렵고,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이게 맞는지 확인받으려 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라고 밝혔다.
박김 사무국장은 “아직 장애여성운동에서 장애여성에 대한 멘토와 같이 신입 회원에게 힘을 주는 프로그램이 없다”라면서 “장애여성 사이의 네트워크를 구성해서 장애여성에게 힘을 주고 판단할 수 있게 정보와 지원을 해주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하며 특강을 마무리했다.
이어 장애여성공감 배복주 대표의 진행으로 박김 사무국장,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형숙 공동대표, 정은주 활동가가 이야기손님으로 나와 토크쇼를 진행했다.
먼저 자신이 어떻게 장애인운동에 참가하게 되었는지를 묻자 박김 사무국장은 “가족 안에서 차별받고 하소연할 데도 없고 자기 권리도 찾지 못하고, 일도 못 하고 시설에 갈 수밖에 없어 폭력의 대상이 되는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속상했다”라면서 “장애여성운동을 하고 장애여성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장애여성의 삶이 밝혀지게 되었다. 장애여성의 이야기를 뒷방에 감추는 게 아니라 장애여성운동을 통해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장애여성 활동가로서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서는 이형숙 공동대표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경기도에서 도보 순회투쟁을 하면서 무리를 지어 10~15명 숙박을 하는데 여성동지가 많아야 2명에서 3명이고 거의 남성이었죠. 그 당시 남성동지들은 우리를 동성처럼 여겼어요. 당시 잠자리를 마련할 때 여성과 남성이 같은 잠자리를 사용했는데, 여성으로서 매달 하는 생리 등 여러 민감한 부분이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배려가 없었죠. 당시 여성이 소수였기 때문에 말은 잘 못했지만, 앞으로 그런 부분은 개선할 필요가 있어요.”
▲이야기손님으로 나선 정은주 활동가 |
정 활동가는 “제가 활동하던 곳에 남성분들이 많았는데 여성의 입장에서 말할 기회가 주어지긴 해도 그렇게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고, 성격이 소극적이라 활발하게 지적하지 못했다”라면서 “농성 중에는 현장에서 잠을 자야 했는데 개인적으로 장애 정도나 성격 때문에 어려웠지만, 그런 이유로 잘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라고 설명했다.
박김 사무국장은 “회의 때 무언가 이야기하면 남성들은 그래서 핵심이 무엇이냐라고 하는데, 여성이 그 과정에서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면, 왜 자꾸 문제 제기를 하느냐는 말을 듣는다”라면서 “그럼 상대가 날 이해하지 못하는 거 같아서 화가 나고 눈물이 나는데, 그러면 남성들이 ‘여성이라 찔찔댄다’, ‘여성들은 항상 그렇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부분들이 답답했다”라고 토로했다.
또한 이야기손님들은 일상적으로 장애인운동 안에서 성폭력 사건을 제외하고 장애여성 문제를 투쟁 과제로 상정하는 경우가 적은 이유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했다.
이 공동대표는 “장애여성 문제를 다수가 공감하지 않고 여성만 공감하는데, 여성 안에서조차도 남성적인 부분이 많다”라면서 “지역에서는 주로 결혼 여성 중심으로 구성된 모임 활동을 하면서 서로 공감하고 신이 나고 했지만, 정작 가정, 남편이란 테두리에서 벗어나질 못한다”라고 밝혔다.
정 활동가는 “장애여성운동 또한 모두의 운동이라기보다는 소수의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라며 “육아나 가사를 이야기할 때 여성의 일이라는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야기손님들은 장애여성운동 초기보다 현재 나아진 점과 더 나아갈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참가자들은 진보 장애인운동계에 여성활동가와 대표들이 많아지고 반성폭력에 대해 고민하게 된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장애여성의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가 많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정 활동가는 “제가 일한 공간에서 경험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여성 활동가가 적다 보니. 말을 점점 아끼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야기손님으로 나선 이형숙 대표. |
이 공동대표는 “장애인운동에서 서로의 문제를 공유하는 모임이 없다 보니 장애여성끼리 서로 친해지기 어렵다”라면서 “개인적으로는 오래 활동하신 분하고도 친해지기 쉽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라고 밝혔다.
배 대표는 “오늘 토크쇼를 계기로 장애인운동 안에 장애여성 커뮤니티와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라면서 “여성활동가를 위한 시간 마련을 장애인운동 단체에 제안해보겠다”라며 토크쇼를 마무리했다.
토크쇼를 마친 뒤 참가자들은 장애여성운동에서 반성폭력운동의 성과에 대해 질문했다.
배 대표는 “다양한 장애여성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전달체계와 정책이 많이 생겼고 국민을 상대로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문제를 알려냈다”라면서 “또한 장애인은 비가시화된 몸이라는 의견이 많음에도 성폭력 문제가 어느 정도 사회적 쟁점이 된 게 의의”라고 설명했다.
배 대표는 “하지만 성폭력 문제가 가해자 처벌을 가혹하게 하는 것에만 중점을 두는 분노 여론을 형성하고, 언론도 이를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쪽으로 치우치고 있다”라면서 “이는 장애인의 자기 결정 능력을 무능화하는 부작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라고 지적했다.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김영희 이사는 “여성의 언어와 남성의 언어가 다르기에 그런 것에 대해 더 공감해줄 수 있는 네트워크, 조직, 선배활동가가 필요하겠다는 고민이 있다”라면서 “장애여성공감이 성폭력 문제 이외의 부분에 대해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배 대표는 “장애여성공감이 그동안 성폭력, 몸 등 젠더 문제에 관해 관심을 뒀다면 이제는 장애여성 전 생애적 문제를 의제로 만들고자 한다”라면서 “앞으로 장애여성 건강권, 역량 강화, 탈시설, 노동권, 재생산권, 발달장애 부분에 대해서 추가로 활동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약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3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워크숍은 장애여성공감이 창립 15주년을 맞아 지난달 26일부터 열린 기념식, 쟁점포럼, 전시회 등의 마지막 행사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