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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封禪書 曰 其傳 在渤海中 盖嘗有至者 諸仙人及不死之藥 皆在焉 其物禽獸 盡白 而黃金 白銀 爲宮闕 사기봉선서 왈 기전 재발해중 개상유지자 제선인급불사지약 개재언 기물금수 진백 이황금 백은 위궁궐 云云 又仙家書 曰 三神山 有還魂不老等草 一名眞丹 今白頭山 自古 有白鹿 白雉 或白鷹之屬 括地志 所云운운 우선가서 왈 삼신산 유환혼불로등초 일명진단 금백두산 자고 유백록 백치 혹백응지속 괄지지 소운有鳥獸草木 皆白是也 又白頭山一帶 多産山蔘 世人 擬之不老草 山氓欲採取 則必先沐浴潔齊 而祭山 然後유조수초목 개백시야 우백두산일대 다산산삼 세인 의지불로초 산맹욕채취 즉필선목욕결제 이제산 연후敢發 其還魂不老之名 亦想源於此也 世紀 云 檀君烏斯丘元年 北巡 而得靈草云 則此 又驗也 十月祭天 遂 감발 기환혼불노지명 역상원어차야 세기 운 단군오사구원년 북순 이득영초운 즉차 우험야 십월제천 수 爲 天下萬世之遺俗 此乃神州 特有之盛典 而非外邦之可比也 太白山 獨壓崑崙之名 亦有餘矣 古之三神山 위 천하만세지유속 차내신주 특유지성전 이비외방지가비야 태백산 독압곤륜지명 역유여의 고지삼신산 者 卽太白山也 亦今白頭山也 盖上世神市之 人文敎化 至于近世 雖不得健行 而天經神誥 猶有傳於後世 擧 자 즉태백산야 역금백두산야 개상세신시지 인문교화 지우근세 수불득건행 이천경신고 유유전어후세 거 國男女 亦皆崇信 於潛?之中 卽人間生死必 曰 三神所主 小兒十歲以內 身命安危 智愚俊庸 悉托於三神 夫국남녀 역개숭신 어잠묵지중 즉인간생사필 왈 삼신소주 소아십세이내 신명안위 혜우준용 실탁어삼신 부三神者 卽 創宇宙 造萬物之 天一神也 昔 司馬相如 謂 漢主 劉徹 曰 陛下 謙讓而弗發也 ?(擊)三神之驩 韋삼신자 즉 창우주 조만물지 천일신야 석 사마상여 위 한주 유철 왈 폐하 겸양이불발야 격(격)삼신지환 위昭 注 三神 上帝 三神之說 早已傳播 於彼境也 明矣
소 주 삼신 상제 삼신지설 조기전파 어피경야 명의
<해석>
史記封禪書 曰 其傳 在渤海中 盖嘗有至者 諸仙人及不死之藥 皆在焉 其物禽獸 盡白 而黃金 白銀 爲宮闕 云云
<사기봉선서>에 의하면 "백두산은 발해에 있으며, 일찍이 그곳에 갔다 온 자에 의하면 모든 선인들과 죽지 않는 약이 그곳에 있고, 그곳의 모든 물건들과 짐승들은 다 흰색이며, 황금과 백은으로 궁궐을 짓는다."라고 전하고 있다.
又仙家書 曰 三神山 有還魂不老等草 一名眞丹 今白頭山 自古 有白鹿 白雉 或白鷹之屬
또 <선가서>에 의하면 "삼신산은 혼을 되살리고 늙지 않게 하는 등의 약초가 있는데, 그 이름이 '진단(眞丹)'이라고 한다. 백두산에는 옛부터 흰 사슴이 살고 있고, 흰 꿩이 살고 있는데, 혹자들은 이 흰 꿩을 흰매의 족속이라고 한다."라고 전하고 있다.
括地志 所云 有鳥獸草木 皆白是也 又白頭山一帶 多産山蔘 世人 擬之不老草 山氓欲採取 則必先沐浴潔齊 而祭山 然後敢發 其還魂不老之名 亦想源於此也
<괄지지> 역시 그곳에 대하여 전하고 있는 바 "그곳에 있는 새, 짐승, 풀, 나무 등은 모두가 흰색이다. 또 백두산 일대에는 산삼(山蔘)이 많이 나는데, 세인들은 그것을 불로초(不老草)라고 하며, 심마니(山氓)들이 그것을 채취하기 위하여 입산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목욕을 하고, 모든 것을 깨끗이 결제(潔齊)한 다음에 산에 제를 올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출발한다고 한다. 혼을 되살리고 늙지 않게 한다는 말도 역시 여기에 근원한 것이라 생각된다."라고 전하고 있다.
<참고>
결제(潔齊)란 "몸과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린다."라는 뜻으로 무상무념(無想無念)의 정신 세계를 말한다. 심마니들의 말에 의하면 무상무념(無想無念)의 정신 세계에 이르렀을 때, 삼신(三神 = 山神)을 접할 수 있고, 삼신(산신)의 안내로 영초(靈草)인 산삼(山蔘)을 접할 수 있다고 한다.
世紀 云 檀君烏斯丘元年 北巡 而得靈草云 則此 又驗也
<단군세기>에 이르기를 "단군오사구 원년에 북쪽을 순회하다가 영초(靈草)를 얻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며, 또 효험을 보았다."라고 전하고 있다.
十月祭天 遂爲天下萬世之遺俗 此乃神州 特有之盛典 而非外邦之可比也
10월 제천행사는 마침내 천하만세의 풍속이 되었다. 제천행사는 신주(神州) 특유의 성대한 행사로서 다른 나라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참고>
신주(神州)는 현 북한의 평양 지역을 말한다. 신주는 마한(마조선, 막조선, 말조선)의 행정 중심지였다.
太白山 獨壓崑崙之名 亦有餘矣 古之三神山者 卽太白山也 亦今白頭山也
태백산은 곤륜산을 압도하는 이름이며, 또 그러고도 남는다. 옛날의 삼신산이라는 것은 즉 태백산을 말하는데, 지금은 백두산이라 한다.
<참고>
백두거악, 삼신산, 태백산, 장백산, 백두산 이라는 명칭은 역사가 발전하면서 바뀐 이름이다.
백두거악은 불함산, 삼신산, 단단대령, 개마대산, 도태산, 종태산, 말갈백산, 대백, 태백 등으로 불리다가 지금은 중국에서는 장백산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백두산으로 불리고 있다.
단단대령은 만주의 소흥안령산맥에서 이어지는 장광재령(선춘령)을 말하고, 장백산은 길림의 남쪽 장백산맥을 말한다. 사실 산맥이라는 것은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 즉 장광재령과 장백산맥은 흐름의 방향만 다를 뿐 같은 줄기이며, 장백산맥과 백두산맥 역시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그 경계를 알 수 없다. 특히 지리라는 학문이 오늘날과 같이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그 지역을 차지했던 종족에 따라 또는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또는 듣는 사람의 귀(판단)에 따라 칭했던 이름이 달랐던 것이다. 그래서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명명되었던 것이다.
신시본기(神市本紀)에서는 이 지역을 백두거악(白頭巨岳)이라 칭하였고, 이 지역은 우리나라의 북쪽지방과 만주 일대의 고산지역을 총칭하는 말이다.
고대 삼한(삼조선) 중 진한(진조선, 신조선)의 위치를 만주 일대로 상정한다면 백두거악을 상징하는 산맥은 장백산맥이다. 진한(진조선, 신조선)은 하얼빈과 길림, 장춘 일대를 중심으로 발전하여 그 강역을 서쪽 난하 유역까지 차지하고 있었다.
진한(진조선, 신조선)은 대단군(大檀君)이 직접 다스리는 직할지였다. 따라서 고대사에 등장하는 삼신산, 불함산, 태백산은 백두거악 중 진한(진조선, 신조선)과 가장 근접했던 장백산맥을 지칭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후 장백산맥은 장백산이라고도 불렸다.
장백산(長白山)이라는 이름은 발해시대와 거란시대에 불리던 이름이다. 발해국지도에 장백산이 보이며, 거란국지에 장백산이라는 지명과 흑수(혼동강)라는 강 이름이 등장한다.
<아래 발해국지도(渤海國地圖) 참조 : 중앙 우측에 장백산이 보인다.>

<거란국지>에 의하면 "장백산(長白山) 에서 흑수(黑水)가 발원한다고 하였고, 예전에는 흑수를 속말하(粟末河)라고 하였는데, 거란의 태종이 진(震)을 쳐부수고 혼동강(混同江)으로 그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흑수(黑水)는 송화강(松花江)을 말하며, 진(震)이란 대진국(大震國/大振國) 발해(渤海)를 말한다.
또 <신당서>에 의하면 "말갈은 숙신(쥬션, 쥬신, 쥬센, 조선) 땅에 있는데 속말부(粟末部)가 가장 남쪽으로 태백산(太白山)에 닿아 있다. 또 태백산을 도태산(徒太山)이라고도 하며, 고구려에 접해있다 하였고, 속말말갈(粟末靺鞨)은 속말하(粟末河, 粟末水)에 의지해서 사는데, 이 강은 태백산(太白山)에서 흘러나온다."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태백산, 도태산은 장백산을 말하며, 속말하(속말수) 역시 흑수(송화강)를 말하는 것이다.
백두산(白頭山)이라는 이름은 고려시대에 등장하는 지명이다. 고려사 서문 <고려세계(高麗世系)>에 백두산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다.
『金寬毅 編年通錄云 有名虎景者 自號聖骨將軍 自白頭山遊歷 至扶蘇山左谷 娶妻家焉』
『김관의 편년통록운 유명호경자 자호성골장군 자백두산유역 지부소산좌곡 취처가언』
<해석>
『김관의의 <편년통록(編年通錄)>에 전하기를 호경(虎景)이라는 사람이 스스로를 성골장군(聖骨將軍)이라 칭하면서 백두산(白頭山)으로부터 산천을 두루 다니다가 부소산(扶蘇山, 부여에 있던 산) 왼쪽 기슭에 이르러 아내를 얻어 집안을 이루었다.』
<참고로> 호경(虎景)이라는 사람은 이후 강충(康忠), 보육(寶育), 진의(辰義), 작제건(作帝建, 진의와 당나라 숙종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왕용건(王龍建, 뒷날 왕융(王隆)으로 개명), 왕건(王建, 고려태조)으로 이어지는 고려왕실 세계(世系)를 이룬 왕건가(王建家)의 시조이다.
고려의 건국과정과 관련을 맺고 있는 북한의 백두산은 이때부터 우리 민족의 영산(靈山)으로 칭하여졌으며, 고대 환단시대(桓檀時代, 환웅, 단군시대)의 이야기들은 이후 백두산으로 옮겨져 전해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고찰하지 못한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一然)은 백두산(白頭山)을 삼신산(三神山)으로, 묘향산(妙香山)을 태백산(太白山)으로 설명함으로써 이를 더욱 고착화 시켰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의하면 북한의 백두산(白頭山)은 지금으로 부터 약 1000년 전 발해가 멸망하던 시기(AD 926)를 전후로 하여 소규모의 화산과 지진이 발생하였으며, AD 946년에 대규모의 화산이 폭발하였고, AD 1668년과 AD 1702년, AD 1903년에도 화산이 폭발하였다고 한다.
AD 946년에 폭발한 백두산 화산은 그 규모가 엄청났다고 한다. 일부 학자들에 의하면 2011년 발생한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의 약 1000배 규모였으며, 당시 분출된 용암은 약 100km 이상 흘렀다고 한다.
당시 백두산 화산 폭발의 규모를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당시 백두산 화산이 폭발하면서 날아간 화산재가 편서풍을 타고 일본 동북부 지방으로 날아가 화산재 토층을 만들었는데, 그 두께가 무려 약 10 - 5cm 정도라고 한다.
다음 지도를 참고하기 바란다.
위 지도의 내용은 일본지질연구소에 의해서 밝혀진 사실이다. 915년 일본 도와다 화산 폭발로 쌓인 지층 위에 호수 퇴적물이 쌓였고, 그 위에 백두산 화산재층이 약 5cm 정도 쌓여 있다. - 오른쪽 하단 사진
출처 :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이데일리 우원애 리포터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의 백두산은 환단시대(桓檀時代)의 삼신산(불함산, 태백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천지 역시 환단시대와는 관련이 없는 호수임도 알 수 있다. 천지는 AD 1903년 이후에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신시본기(神市本紀)에서는 삼신산(태백산)을 백두거악(白頭巨岳)이라는 말로 표현함으로써 우리나라 북쪽지방과 만주 일대의 고산지대를 일컬었던 말임을 앞에서 지적하였다. 이 백두거악 중에서 굳이 삼신산(태백산)을 꼽으라면 길림의 남쪽 장백산맥이 가장 유력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신시본기에서 말하는 백두거악은 횡(橫)으로 1000리요, 높이(오름길)가 200리 라는 설에 가장 부합되기 때문이며, 그곳에는 환웅천제가 제를 올렸던 호수(길림호)가 있기 때문이다.
이 장백산맥을 중국은 장백산(長白山)이라 표현하고 있고, 현(現) 길림 지방에서는 용강산(龍崗山)이라 하고 있다.
이 글에서 말하는 백두산(白頭山)이란 장백산(용강산)을 말하며, 이 장백산이 고대 우리 민족의 영산이었으며, 환웅천제가 내려와 신시를 연 곳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통선생은 어디에선가 삼신산과 백두산은 별개의 산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즉 삼신산은 대흥안령산맥의 남단 현(現) 요녕성과 내몽골 자치구 내의 홍산문화권에 있는 산일 것으로 보아 삼신산은 대흥안령산맥이라고 주장한 바 있고, 백두산은 현 길림성의 장백산맥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좀 더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다.
<참고로> 곤륜산(昆崙山)은 고대 중국 전설상의 선산(仙山)으로 정도원(鄭道元)의 <수경주(水經注)>에 의하면 중국 서북방에 있는 산으로 황화의 발원지로 되어 있다. 또 <산해경(山海經)>에서는 천제(天帝)의 하도(下都)라 하였고, <회남자(淮南子)>에서는 불사의 영계(靈界, 천국과 지옥)가 있다 하였으며, 선인의 서왕모(西王母)가 산다고 하였다. 하지만 어느 산을 칭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해석 이어집니다.>
盖上世神市之 人文敎化 至于近世 雖不得健行 而天經神誥 猶有傳於後世 擧國男女 亦皆崇信 於潛?之中 卽人間生死必 曰 三神所主 小兒十歲以內 身命安危 智愚俊庸 悉托於三神
상고시대 때 신시는 백성을 교화하여 문명시대를 열었으나, 근세에 이르러 건제하게 실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하늘의 도리와 신의 가르침(天經神誥)은 오히려 후세에 널리 전파되어 모든 나라의 백성(擧國男女)들은 말없이 그 믿음을 따르고 있다. 즉 인간의 삶과 죽음은 삼신께서 주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10살 이내의 어린이들의 삶과 죽음, 안전과 위기, 슬기로움과 우둔함, 생김새 등은 모두 삼신께 의탁한다는 것이다.
夫三神者 卽 創宇宙 造萬物之 天一神也 昔 司馬相如 謂 漢主 劉徹 曰 陛下 謙讓而弗發也 ?(擊)三神之驩 韋昭 注 三神 上帝 三神之說 早已傳播 於彼境也 明矣
?무릇 삼신이란 우주를 창조하고, 만물을 만든 조물주로서 천일신(하나님, 한님)을 말한다.
지난날 <사마상여>가 한나라 왕 유철에게 아뢰었다.
"폐하! 겸손하고 사양하는 마음이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지 않으면, 삼신의 보살핌이 끊기나이다."
또 <위소>는 그의 저서에 주(注)를 달아 "삼신은 상제이며, 삼신설은 이미 모든 나라(彼境)에 전파된 것이 분명하다."라고 하였다. 끝.
<중요 한자 풀이 및 해석>
단(丹) :붉을 단, 우물 속에서 밝게 빛나는 광석을 의미, 따라서 '붉다'라는 뜻도 있으나 중요한 핵심, 요체(要體)라는 뜻이다. 도교에서는 영원불멸의 영약(靈藥)을 뜻하기도 한다
진단(眞丹) : 핵심 중의 핵심, 영약 중의 영약
응(鷹) : 매 응, 매
산맹(山氓) : 산에 사는 백성, 산 사나이, 심마니
결제(潔齊) : 모든 것을 정리하여 깨끗이 한다
감발(敢發) : 조심스럽게 시작한다. 즉 경건한 마음으로 출발한다
독압(獨壓) : 짓누르다, 압도하다
격(?=擊) : 부딪칠 격, 부딪치다, 차나 수레가 질서 있게 나아가다, 거리끼다, 방해가 되다
환(驩) : 기뻐할 환, 환영할 환, 기뻐하다, 기쁨, 환영하다, 보살피다
사마상여(司馬相如) : 중국 전한시대의 문인, 저서에는《자허부》등이 있다.
위소(韋昭) :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의 정치가, 유학자, 역사가, 자는 홍사(弘嗣)이다. 오나라의 역사서 오서<吳書>를 저술하였으나 손호와의 대립으로 AD 273년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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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震域留記>曰 齊俗有八神之祭 八神者 天主 地主 兵主 陽主 陰主 月主 日主 四時主也 天好陰 故祭之必於
<진역유기>왈 제속유팔신지제 팔신자 천주 지주 병부 양주 음주 월주 일주 사시주야 천호음 고제지필어
高山之下小山之上 乃祭天 太白山之麓之遺法也 地貴陽 故祭之必於澤中方丘 亦卽祭天 塹城之壇之餘俗也
고산지하소산지상 내천제 태백산지록지유법야 지귀양 고제지필어택중방구 역즉제천 단성지단지여속야
天主祠三神 兵主祠蚩尤 三神爲天地萬物之祖也 蚩尤(治尤)爲萬古武神勇强之祖 作大霧 驅水火 又 爲萬世
천주사삼신 병주사치우 삼신위천지만물지조야 치우(치우)위만고무신용강지조 작대무 구수화 우 위만세
道術之宗 喚風雨 招萬神 是以 大始之世 恒爲天下戒事之主 海垈之地 旣爲 奄藍陽介?萊徐淮 八族之所宅
도술지종 환풍우 초만신 시이 대시지세 항위천하계사지주 해대지지 기위 엄람양개우래서회 팔족지소택
卽 八神之說 萌於八族 而盛行於當時也 劉邦雖非夷族 而起兵於?沛 卽 ?沛之俗祠蚩尤也 故 邦亦因俗以
즉 팔신지설 맹어팔족 이성행어당시야 유방수비이족 이기병어풍패 즉 풍패지속사치우야 고 방역인속이
祠蚩尤 而?鼓旗 遂以十月 至?上 與諸侯平咸陽 而立爲漢王 則因以十月爲歲首 此雖襲秦正朔 而亦因崇
사치우 이흔고기 수이십월 지파상 여제후평함양 이립위한왕 즉인이십월위세수 차수습진정삭 이역인숭
敬東皇太一 敬祠蚩尤也 後四歲 秦域已定 則令祝官 立蚩尤之祠 於長安 其敬蚩尤之篤 如此
경동황태일 경사치우야 후사세 진역이정 즉령축관 입치우지사 어장안 기경치우지독 여차
<晉 天文志> 蚩尤旗 類慧(彗) 而後曲 象旗 所見之方 下有兵云 則乃蚩尤天王 上爲列宿也
<진 천문지> 치우기 류혜(혜) 이후곡 상기 소견지방 하유병운 즉내치우천왕 상위열숙야
<通志 氏族?>蚩氏 蚩尤之後 或曰 蒼?與高辛亦皆蚩尤氏之苗芮 生大棘城而轉徙於山東淮北者也 皆蚩
<통지 씨족략>치씨 치우지후 혹왈 창힐여고신역개치우씨지묘예 생대극성이전사어산동회북자야 개치
尤天王之英風雄烈 播傳遠域之深 推此可知也 燕齊之士 況惑於神異誣?之說 亦尙矣 自齊威 燕昭之時遣
우천왕지영풍웅열 파전원역지심 추차가지야 연제지사 황혹어신이무만지설 역상의 자제위 연소지시견
使求三神山 秦漢之際 宋無忌 正伯僑 克尙?門子高 最後之徒 則燕人也 文成伍利公 孫卿 申公之屬 皆齊
사구삼신산 진한지제 송무기 정백교 극상이문자고 최후지도 즉연인야 문성오리공 손경 신공지속 개제
人也 昔呂尙 亦蚩尤之後 故 亦姓姜 盖蚩尤居姜水 而有子者 皆爲姜氏也 姜太公治齊先修道術 祭天 於天
인야 석여상 역치우지후 고 역성강 개치우거강수 이유자자 개위강씨야 강태공치제선수도술 제천 어천
齊池 而亦受封於齊 八神之俗 尤盛於此地 後世其地多好道術者出 與神仙黃老 混會敷演 尤爲之潤飾則此
제지 이역수봉어제 팔신지속 우성어차지 후세기지다호도술자출 여신선황로 혼회부연 우위지윤식즉차
又姜太公 爲之助俗也 嘗作<陰符經> <注> 祖述紫府三皇之義 則燕齊之士 安得以不好怪異 浮誕之說裁
우강태공 위지조속야 상작<음부경> <주> 조술자부삼황지의 즉연제지사 안득이불호괴이 부탄지설재
且其 五行治水之法 皇帝中經之書 又出於 太子扶婁 而又傳之於 虞司空 後復 爲箕子之陳洪範 於紂王者
차기 오행치수지법 황제중경지서 우출어 태자부루 이우전지어 우사공 후복 위기자지진홍범 어주왕자
亦則 皇帝中經 五行治水之說 則蓋其學 本神市邱井均田之遺法也
역즉 황제중경 오행치수지설 즉개기학 본신시구정균전지유법야
<해석>
<震域留記>曰 齊俗有八神之祭 八神者 天主 地主 兵主 陽主 陰主 月主 日主 四時主也
<진역유기>에 이르기를 제(齊)나라 풍속 중에는 팔신제(八神之祭)라는 것이 있는데, 팔신이란 천주, 지주, 병주, 양주, 음주, 월주, 일주, 사시주를 말한다.
天好陰 故 祭之必於高山之下小山之上 乃祭天 太白山之麓之遺法也
하늘은 음(陰)을 좋아한다. 고로 하늘에 제를 올릴 때에는 반드시 높은 산 아래 작은 산 위에서 올려야 한다. 하늘에 제를 올리는 것은 태백산의 기슭에서 그 법이 유래되었다.
地貴陽 故 祭之必於澤中方丘 亦卽祭天 塹城之壇之餘俗也
땅은 햇볕을 귀하게 여긴다. 고로 하늘에 제를 올릴 때에는 반드시 습지(澤 : 연못) 중앙에 사각형 모양의 제단(方丘(방구))을 쌓고, 제를 올려야 한다. 이 또한 하늘에 제를 올리는 참성단(塹城之壇)의 또 다른풍속이다.
天主祠三神 兵主祠蚩尤 三神爲天地萬物之祖也 蚩尤(治尤)爲萬古武神 勇强之祖 作大霧 驅水火 又 爲萬世
道術之宗 喚風雨 招萬神 是以 大始之世恒爲天下戒事之主
천주는 삼신에게 제를 올리고, 병주는 치우에게 제를 올렸다. 삼신은 천지만물의 조상이다.
치우는 만고에 전하는 무신(武神)으로 용강(勇强)의 지존이다. 그는 안개를 일으키고, 물과 불을 몰고 다녔다. 또 만세에 전하는 도술의 우두머리(宗)로 비바람을 부르고, 모든 신을 부른다.
이로써(是以) 치우천왕은 오랜 옛날부터 항상 전쟁(天下戒事)의 신(主)으로 일컬어졌다.
<참고>
치우천왕은 과연 비바람을 부르고, 신(神)을 부르는 도사(道士)였을까?
당시 천문기상학을 몰랐던 화하족(華夏族, 지나족)은 천문기상학을 적절히 이용하는 치우천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를 도술(道術)을 잘 부리는 도사(道士)라고 표현하였다.
당시 동이족(東夷族, 원래는 대궁족(大弓族), 신시 환웅국, 배달국)의 천문기상학은 매우 발달되어 있었다. 동이족은 원래 유목민이며, 기마민족이었다. 동이족은 만주와 중국의 서북부와 중앙아시아를 휩쓸던 우리의 조상이다. 동이족은 원거리를 이동하였고, 이동할 때에는 별자리를 보고 이동하였으며, 별자리의 관찰은 자연스럽게 천문기상학을 발전시켰다.
별자리의 변화는 계절의 변화와 일치하는 것이고, 계절의 변화는 책력(冊曆)으로 발전하였다. 그래서 일찍이 동이족에게는 7회력(七回曆)과 60계해(六十癸亥)라는 환력(桓曆)이 있었고, 1년은 365일이라는 계산도 가능하였다. - 참고로 60갑자(六十甲子)는 중국에서 만들어져 우리나라로 역수입된 것이다.
이처럼 발달된 천문기상학은 치우천왕이 화하족(유망과 헌원)과의 전쟁에서 이용될 수 밖에 없었다. 치우천왕은 화하족과 약 73차례의 전쟁을 치렀는데 모두 승리하였다.
승리의 요인은 바로 기상의 이용이었다. 치우천왕은 북반구에 부는 계절풍을 알고 있었고, 밤낮으로 바뀌는 해풍과 육풍을 알고 있었다. 치우천왕은 화하족과의 전쟁에서 늘 바람을 등지고 진(鎭)을 쳤고, 또 바람을 이용하여 화공(火攻)을 펼쳤으며, 일교차가 커 안개가 낄 것으로 예상되는 날이나 비바람이 칠 것으로 예상되는 날을 골라 기습하였다.
그러니 화하족들은 치우천왕과 전쟁을 할 때는 늘 불(火)과 연기(燃)와 안개(霧)와 비(雨)와 바람(風)과도 함께 싸워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화하족들은 치우천왕을 물과 불을 부르고, 비바람을 몰고 다니는 도술사(道術士)인 도사(道士)라고 평했던 것이다.
하지만 치우천왕은 천문기상학자였으며, 군사전략가였다.
海垈之地 旣爲 奄 藍 陽 介 ? 萊 徐 淮 八族之所宅 卽 八神之說 萌於八族 而盛行於當時也
해대(海垈)의 땅은 일찍이 엄, 람, 양, 개, 우, 래, 서, 회 등의 8족이 자리잡고 살던 곳이다. 즉 8신설은 이 8족에서 싹텄고, 당시에 매우 성행하였다.
<참고> 해대(海垈)지역과 8족(八族)
해대(海垈) 지역이란 회하(淮河)와 대산(垈山)지역을 말한다. 일명 회대(淮垈) 지역이라고도 한다. 즉 산동반도와 그 인근 지역이다. 회하는 황하와 양자강 사이를 흐르던 강줄기였으나 지금은 황하와 양자강을 잇는 운하가 뚫리는 바람에 그 자취를 알 수 없게 되었다. 현재의 안휘성과 강소성을 흐르던 물줄기였다.
대산(垈山)은 산동반도에 있는 산이다. 일명 태산(太山, 泰山)이라고도 한다.
이 지역은 BC 2707년 경에 제 14 대 환웅이었던 자오지(치우) 환웅이 다스리던 지역이다. 치우환웅은 일찍이 서토(西土)를 공략하기 위하여 창힐(하북성의 북쪽과 요동 지방)을 거쳐 청구(산동반도)로 이동하였었다. 이곳으로 이동한 치우천왕은 화산족(華山族)과 하족(河族, 夏族)의 연합체인 화하족(華夏族)을 상대로 치열한 전쟁을 치루었다. 이 전쟁을 만고전쟁(萬古戰爭)이라 한다. 이 전쟁에서 치우는 화하족의 우두머리였던 유망과 헌원을 축출하고, 구이국(九夷國, 9개의 大弓國)을 건설하였다. 구이국은 모두 치우천왕의 친족들이 다스렸는데, 그들이 8족(八族)이다. 치우천왕까지 포함하면 9족이다. 8족은 치우천왕이 그 친족들에게 내려준 성(姓)씨이며, 주(州) 또는 국명(國名)이기도 하였다.
그 8족이 바로 엄(奄), 람(藍), 양(陽), 개(介), 우(?), 래(萊), 서(徐), 회(淮)이다.
각 지역을 맡은 치우천왕의 친족들은 발달된 문명으로 백성들을 다스림으로써 백성들은 그들을 신(神)으로 모셨고, 그로 인해 생겨난 것이 8신설(八神說)이다.
이들은 이후 화하족과 끝없는 전쟁을 벌이면서 중국 건설의 중추적 역할을 하였고, 일부는 흡수 동화되기도 하였으며, 일부는 한반도나 일본으로 건너가 동북아를 형성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劉邦雖非夷族 而起兵於?沛 卽 ?沛之俗祠蚩尤也 故 邦亦因俗以祠蚩尤 而?鼓旗 遂以十月 至?上 與諸侯平咸陽 而立爲漢王
유방(劉邦)은 비록 동이족 계통의 사람이 아니지만 풍패(?沛, 강소성)에서 군대를 일으켰다. 즉 풍패에는 치우에게 제를 올리는 풍속이 있었으므로 유방 역시 풍속에 따라 치우에게 제를 올리고 천하통일의 꿈을 품고 군사를 일으킨(?鼓旗) 것이다. 마침내 10월에 패상(?上, 현(現) 섬서성)에 이르러 제후들과 더불어 함양(咸陽)을 평정하고 한왕(漢王)에 즉위하였다.
則因 以十月 爲歲首 此雖襲秦正朔 而亦因崇敬 東皇太一 敬祠蚩尤也
이로 인해 10월을 한 해의 시작으로 삼았다. 이는 비록 진(秦)나라의 정월 초하루(正朔)를 빼앗은 격이나 이 또한 동황태일(東皇太一, 동쪽 황제의 태일(60계해))을 따르고 공경하였기 때문이며, 치우에게 제사 지내는 풍속을 따랐기 때문이다.
<참고>
환력(桓曆)인 60계해(六十癸亥)는 10월을 상달이라 하여 한 해의 시작을 10월로 하였다.
後四歲 秦域已定 則令祝官 立蚩尤之祠 於長安 其敬蚩尤之篤 如此
4년 후 진나라 땅(秦域)을 모두 평정하였다. 곧 축관(祝官)에게 명하여 치우 사당을 장안(長安)에 짓도록 하였다. 그(其, 유방)의 치우에 대한 공경심이 각별(篤)하였음은 이와 같았다.?
<晉 天文志> 蚩尤旗 類慧(彗) 而後曲象旗 所見之方 下有兵云 則乃 蚩尤天王 上爲列宿也
진(晉)나라 <천문지>에 의하면 치우별(蚩尤旗)은 꼬리별(헬리혜성)이다. 그러나 후에 치우별의 위상이 왜곡되어 꼬리별이 보이는 지방에는 병란이 있다는 말이 있다. 이는 곧 치우천왕이 상계에서 별이 되었다는 것이다.
<참고>
류혜(類慧)의 혜(慧)는 혜(彗)의 오기(誤記)이다. 류혜(類彗)가 맞는 표기이다. 류혜(類彗)는 '별무리'라는 뜻이다. 혜(彗)는 "빗자루로 쓰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로 '비로 쓴 흔적'을 의미하여 '별무리의 흐름' 즉 혜성(彗星)을 말한다. 혜성(彗星)은 "꼬리별"로 그 주기가 75 - 76년인 헬리혜성을 말한다. 혜성(彗星)을 유성(流星)으로 해석하여 '별똥별'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으나 유성(流星)은 밤하늘에 흔히 볼 수 있는 운석이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곳에 병란이 있다면 병란은 하룻밤에도 여러 곳에서 일어나야 한다. 따라서 치우별(蚩尤旗)을 '별똥별'이 아니라 '헬리혜성'으로 봄이 타당하다.
<通志 氏族?>蚩氏 蚩尤之後 或曰 蒼?與高辛 亦皆蚩尤氏之苗芮 生大棘城 而轉 徙於山東淮北者也 皆蚩
尤天王之英風雄烈 播傳遠域之深 推此可知也
<통지씨족략>에 의하면 치씨들은 치우의 후예들이다. 혹은 창힐과 고신 역시 모두 치우씨의 후예(苗芮)라 한다. 치우는 대극성(大棘城)에서 태어나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가 산동의 화하(淮河) 북쪽에 옮겨온 자라고 한다. 이 모두는 치우천왕의 영웅스러움과 남자다운 기질이 먼 나라 깊숙이 전파되었음을 가히 짐작하게 해주는 것이다.
燕齊之士 況惑於神異 誣?之說 亦尙矣 自齊威 燕昭之時 遣使求三神山 秦漢之際 宋無忌 正伯僑 克尙 ?門 子高 最後之徒 則燕人也 文成伍利公 孫卿 申公之屬 皆齊人也
연나라와 제나라의 선비들이 신비하고 괴이한 무만지설(誣?之說, 허황된 이론)에 빠져든 것 또한 오래 전부터이다.
제나라의 위왕(齊威)과 연나라의 소왕(燕昭) 때에는 사신을 파견하여 삼신산을 찾았고, 진한(秦漢) 시대에는 송무기, 정백교, 극상, 이문, 자고 등이 (무만지설을 펼친) 마지막 무리들인데, 이들은 연나라 사람들이며, 문성오리공과 손경, 신공의 족속들은 제나라 사람들이다.
昔呂尙 亦蚩尤之後 故 亦姓姜 盖蚩尤居姜水 而有子者 皆爲姜氏也
옛날 여상(呂尙, 태공망(太公望), 강태공) 역시 치우의 후손이다. 그래서 성이 강씨이다. 치우가 강수(姜水, 황하의 별칭, 황하 중류를 지칭)에 살았으므로 그의 후손들은 모두 강씨이다.
姜太公 治齊先修道術 祭天 於天齊池 而亦受封於齊 八神之俗 尤盛於此地
강태공이 제나라를 다스림에 먼저 도술(道術)치)을 익히고, 천제지(天齊池, 제나라 연못)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제(齊)의 책봉을 받았으니, 팔신(八神)에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이 땅에서 더욱 번성하였다.
後世其地 多好道術者出 與神仙黃老 混會敷演 尤爲之潤飾 則此 又姜太公 爲之助俗也
후세에 그 땅에서는 도술자(道術者)가 많이 배출되었다. 황로라는 신선 등이 혼회부연(混會敷演 : 새로운 이론을 첨가하여 더욱 발전시킴)함으로써 널리 퍼뜨리고 다듬(潤飾)었다는 것은 곧 이것을 말하는 것이며, 강태공 또한 이런 풍속(도술)을 장려하였다.
<참고> 도술(道術)
여기서 말하는 도술(道術)이라는 말은 친자연주의(親自然主義)를 지향하는 도교사상(道敎思想)을 말한다. 중국의 도교(道敎)는 강태공(姜太公)을 시발(始拔)로 하여 노자(老子), 장자(長子)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후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이라는 도교 이론서를 세상에 내어놓게 된다.
위에서 말하는 황로신선 등(與神仙黃老)이라는 말은 도교사상가들을 칭하는 것으로 노자(老子)와 노자학파들을 일컫는 말이다.
도술(道術)의 의미는 하늘과 땅의 이치를 탐구하는 기술로 천문지리도술(天文地理道術)을 의미한다.
嘗作<陰符經> <注> 祖述紫府 三皇之義 則燕齊之士 安得以 不好怪異浮誕之說裁
옛날의 <음부경> <주>에 (음부경은) 자부(紫府) 선생이 삼황(三皇)의 길(義, 뜻)을 조술(최초로 기술)한 것이라고 되어있다. 그러니 연나라, 제나라 선비들이 선뜻 얻어(安得) 괴이부탄지설(怪異浮誕之說, 경이롭고 신비스러움 말씀)을 어찌 즐기지 않았겠는가?
<참고> 자부선생(紫府先生)과 삼황(三皇)
자부(紫府), 일명 자부선생(紫府先生)이다. 자부선생은 발귀리(發貴理) 선인(仙人)의 후손이다. 발귀리는 BC 3512년 경 제5대 환웅으로 등극한 태우의(太虞儀) 환웅(桓雄)의 막내아들인 태호(太?) 복희(伏羲)와 동문수학한 사람으로 천문을 밝혀 책력(冊曆)을 만드는데 공헌한 사람이다.
자부선생(紫府先生)의 집안은 발귀리(發貴理) 이후 대대로 천문과 역학(曆學)을 세습해 왔으며, 자부선생은 이후 칠정운천도(七政運天圖)를 작성하여 7회력(七回曆)을 완성하였고, 삼황내문경(三皇內文經)이라는 신교교훈서(神敎敎訓書)도 작성하였다.
삼황내문경(三皇內文經)에서 말하는 삼황(三皇)이란 천(天), 지(地), 인(人)을 말하는 것으로, 즉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을 일컫는다. 그래서 삼황(三皇)인 것이다. 천황(天皇)이란 하늘의 도(道)로 천문(天文)을 말하는 것이고, 지황(地皇)이란 땅의 도(道)로 치산치수(治山治水)를 말하는 것이며, 인황(人皇)이란 사람의 도(道)로 인륜(人倫)과 교화(敎化)를 말하는 것이다.
삼황내문경(三皇內文經)은 신시환국(神市桓國)의 신교사상(神敎思想)을 집대성한 것이다. 신시환국(神市桓國)의 신교사상(神敎思想)은 후에 도교사상(道敎思想, 道家思想)의 모태가 되었다.
삼황(三皇)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說)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설(說)이 중국인들이 그들의 조상이라는 수인씨(燧人氏, 불의 발견)?복희씨(伏犧氏, 사냥기술 전수)?신농씨(神農氏, 농사법 전수)라는 설(說)이다. 하지만 이 설(說)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수인씨는 서토인(西土人, 화하족)이라지만 복희와 신농은 동이족(東夷族, 大弓族)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중국은 하북성 탁록에 귀근원(歸根苑)을 지어놓고,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에 그들의 조상이라는 헌원황제, 신농염제, 치우제를 모셔놓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삼황(三皇)이라고 한다. 치우제는 우리나라 제14대 환웅이었던 치우천왕(蚩尤天王)을 말한다. 우리의 조상이 중국의 조상으로 둔갑한 것이다. 과연 중국의 뿌리는 무엇일까? 정말로 이해하기 힘든 중국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며, 그 자충수는 결국 중국을 분열케 할 것이다.
차치하고 삼황(三皇)에 대한 중국의 주장과 우리의 주장은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且其 五行治水之法 皇帝中經之書 又 出於 太子扶婁 而又傳之於 虞司空 後復 爲箕子之陳 洪範 紂王者 於紂王者 亦則 皇帝中經 五行治水之說
후(且)에 그것(其, 음부경)은 오행치수(五行治水)의 법(法)으로, 황제중경(皇帝中經)의 서(書)로 발전하였는데, 그것 또한 태자 부루(고조선 제 2 대 단군)에게서 나왔다. 그리고 우사공(虞司空)에게 전하여 졌으며, 후에 기자(箕子)가 주왕(紂王, 은(殷)나라 마지막 왕, 폭군)이라는 자(者)에게 베풀었다는 홍범(洪範)이 되었다. 그것 역시 황제중경이며, 오행치수설이다.
則 蓋其學本 神市邱井均田之遺法也
즉 그 모든 학문의 근본은 신시의 구정(邱井), 균전(均田)에서 나온 법이다. 끝.
<중요 한자 풀이>
록(麓) : 산기슭 록, 산기슭, 계곡
택(澤) : 못 택, 풀 석, 술 역, 별이름 탁, 연 못, 진펄(늪), 우로(雨路), 풀다, 풀리다, 술, 별 이름
참(塹) : 구덩이 참, 구덩이, 움푹 파인 곳, 참호, 성 둘레에 파 놓은 못
사(祠) : 제사 사, 제사, 신이나 조상에게 보답하기 위해 지내는 제사????????
구(驅) : 몰 구, 몰다, 몰고 다니다, 핍박하다, 마음대로 구사하다
환(喚) : 부를 환, 부르다, 일컫다
초(招) : 부를 초, 부르다, 초대하다
맹(萌) : 싹 맹, 싹, 새싹
풍(?) : 풍년 풍, 풍년, 풍성하다, 제기(祭器) 이름, 제사지낼 때 잔을 받치는 그릇
패(沛) : 늪 패, 늪, 습지, 못, 저수지, 풀이나 나무가 무성한 곳
풍패(?沛) : 제나라 시대 치우에게 제를 올리던 지역, 풀과 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황하강 하류 늪 지대
흔(?) : 피바를 흔, 피를 바르다, 피를 그릇에 발라 신에게 제사 지내다, 제사 지내는 의식 중 하나
흔고기(?鼓旗) : 희생물을 잡아 그 피를 뿌리고 북을 치며 깃발을 높이 든다는 뜻으로 천하통일의 꿈을 품고 거병을 하였다는 말이다.
파(?) : 강이름 파, 섬서성(陝西省) 남전현(藍田縣)에서 발원하여 위수(渭水:황하의 지류)로 흐르는 강????????
독(篤) : 울타리 독, 울타리, 울, 돈독하다, 각별하다.
기(旗) : 기 기, 별 기, 기(깃발), 별, 별이름 - 치우기(蚩尤旗, 치우별)
혜(慧) :지혜 혜, 慧(혜)는 彗(혜)의 오기(誤記)
혜(彗) : 별 혜, 꼬리 별, 살 별(살아 움직이는 별), 헬리혜성, 빗자루, 쓸다, 쓸고 가다
략(?=略) : 대략 략, 대략, 개괄
힐(?) : 곧은 목 힐, 곧게 오르다, 날아오르다, 크다
황(況) : 하물며 황, 하물며, 이에, 비유하여 설명하다
만(?) : 속일 만, 속이다, 기만하다
부(敷) : 펼 부, 펼치다
혼회부연(混會敷演) : 새로운 이론을 첨가하여 더욱 발전시킴
식(飾) : 꾸밀 식, 꾸미다
주(紂) : 끈 주, 끈, 실)
주왕(紂王) 은(상) 시대의 마지막 왕
제위연소(齊威燕昭) : 제나라의 위왕과 연나라의 소왕을 말한다.
문성오리공(文成伍利公) : 구체적인 이름은 알 수 없으나 5명의 학자를 말한다
도술(道術) : 하늘과 땅의 이치를 탐구하는 기술, 천문지리도술(天文地理道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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密記 云 古者 徙死無出鄕 合葬一處 表爲支石 後變爲壇 稱支石壇 亦祭夕壇 在山頂而塹山爲城壇者 曰 天 밀기 운 고자 사사무출향 합장일처 표위지석 후변위단 칭지석단 역제석단 재산정이참산위성단자 왈 천 壇 在山谷而植木爲土壇者 曰 神壇 今僧徒混以 帝釋稱壇 則非古也 護守三神以 理人命者 爲三侍郞 本三神
단 재산곡이식목위토단자 왈 신단 금승도혼이 제석칭단 즉비고야 수호삼신이 리인명자 위삼시랑 본삼신
侍從之郞 三郞 本倍達臣 亦世襲三神護守之官也 高麗八觀雜記 亦曰 三郞 倍達臣也 主稼種財利者 爲業 主
시종지랑 삼랑 본배달신 역세습삼신수호지관야 고려팔관잡기 역왈 삼랑 배달신야 주가종재리자 위업 주
敎化威福者 爲郞 主取衆願功者 爲伯 卽古發神道也 皆能降靈豫言 多神理屢中也 今 穴口 有三郞城 城者卽
교화위복자 위랑 주취중원공자 위백 즉고발신도야 개능강령예언 다신리루중야 금 혈구 유삼랑성 성자즉
三郞宿衛之所也 郞者 卽 三神護守之官也 佛像 始入也 建寺稱大雄 此僧徒之襲古仍稱 而本非僧家言也 又
삼랑숙위지소야 랑자 즉 삼신수호지관야 불상 시입야 건사칭대웅 차승도지습고잉칭 이본비승가언야 우
云 僧徒 儒生 皆隸於郞家 以此 可知也 或云 古者 人民散處溪谷 葬無定地 上自國王 皆遷置於隧穴 竝配天
운 승도 유생 개예어랑가 이차 가지야 혹운 고자 인민산처계곡 장무정지 상자국왕 개천치어수혈 병배천
神以祭 後或 有平地而葬之 環植檀柳松栢以識之 是以 神市之世 無陵墓之制 後至中古 國富族强 養生得贍
신이제 후혹 유평지이장지 환식단류송백이식지 시이 신시지세 무능묘지제 후지중고 국부족강 양생득섬
送死亦侈 祭之有禮 治墓頗隆 或圓 或方 克厥侈飾 高大廣狹 方正有規 內壁外墳 均整兼巧 至于 高句麗 陵
송사역치 제지유예 치묘파융 혹원 혹방 극궐치식 고대광협 방정유격 내벽외분 균정겸공 지우 고구려 능
墓規制 冠於天下
묘규제 관어천하
<해석>
密記 云 古者 徙死無出鄕 合葬一處 表爲支石 後變爲壇 稱支石壇 亦祭夕壇 在山頂而塹山爲城壇者 曰 天壇 在山谷而植木爲土壇者 曰 神壇 今僧徒混以 帝釋稱壇 則非古也
<밀기>에 전하기를 "옛날에는 죽음에 이르면 고향을 떠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한 곳에 합장하고, 지석(支石, 고인돌, 괴임돌, 굄돌)을 세워 표시를 하였다. 후에 그 풍속이 변하여 단(壇)이 되었고, (그 단(壇)을) 지석단(支石壇) 또는 제석단(祭夕壇)이라 칭하였다.
산 정상에 땅을 파고 성처럼 단을 쌓은 성단(城壇)을 천단(天壇)이라 하고, 산 계곡에 나무를 심고, 그 옆에 흙으로 단을 쌓은 토단(土壇)을 신단(神壇)이라 하였다.
지금 승도들이 혼동하여 제석(帝釋, 불상을 모시는 자리)을 단(壇)이라 칭하는데, 이것은 옛날에 일컫던 단(壇)이 아니다.
護守三神以 理人命者 爲三侍郞 本三神侍從之郞 三郞 本倍達臣 亦世襲 三神護守之官也
삼신을 모시고 지킴으로써 사람의 생명을 다스리는 자를 삼시랑(三侍郞)이라 하는데, 본래는 삼신을 모시고, 따르는 사내라는 뜻으로 삼신시종랑(三神侍從郞)이며, 이를 삼랑(三郞)이라 한다.
삼랑(三郞)은 본래 배달국(倍達國, 신시, 환국)의 신하로 역시 그 직을 세습하였으며, 삼신(三神)을 모시고 지키는 관리를 말한다.
高麗八觀雜記 亦曰 三郞 倍達臣也 主稼種 財利者 爲業 主敎化 威福者 爲郞 主取衆 願功者 爲伯 卽 古發神道也 皆能降靈豫言 多神理屢中也
<고려팔관잡기>에도 역시 이르기를 삼랑(三郞)은 배달국의 신하라 하여 (그 중) 농사 짓는 일을 주관(主稼種)하여 부(富)를 창출하는 자(財利者)를 업(業)이라 하고, 교화를 주관(主敎化)하여 복을 이루는 자(威福者)를 랑(郞)이라 하며, 무리를 통솔(主取衆)하여 공을 세우는 자(願功者)를 백(伯)이라 하였다고 한다. 즉 (삼랑은) 옛날 신교(神敎)의 도(道)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들은 모두 영(靈)을 얻어 예언하는 능력(能降靈豫言)이 있었으며, 간혹(多) 신의 다스림을 여러 번 적중(神理屢中)하기도 하였다.
<참고> 삼신(三神)과 신교(神敎)의 도(道)
삼신(三神)은 천신(天神), 지신(地神), 인신(人神)을 말한다. 또는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이라 하여 삼황(三皇)이라고도 한다.
천신(천황)은 하늘의 도(道)를 실천한 자(者)이고, 지신(지황)은 땅의 도(道)를 실천한 자(者)이며, 인신(인황)은 사람의 도(道)를 실천한 자(者)이다.
하늘의 도(道)를 개천(開天)이라 하여 천지창조를 말하고, 땅의 도(道)를 개지(開地)라 하여 땅을 일구어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을 말하며, 사람의 도(道)를 개인(開人)이라 하여 사람을 일깨워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통합하여 신교(神敎)의 도(道)라 한다. 즉 신교사상(神敎思想)이다.
<참고로> 우리민족의 대표적인 삼신(三神)으로는 하늘을 열어 환국을 건설한 환인(桓仁, 안파견, 나반)과 땅을 일구어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한 환웅(桓雄, 거발환)과 백성을 교화하여 인륜의 도(道)를 세운 단군(檀君, 단군왕검)을 들 수 있다.
그래서 특정 종파에서는 사당을 지어 이들을 모시기도 한다.
하지만 삼신(三神)은 작용(作用)하여 삼신(三神), 즉 일상제(一上帝)라 하였으므로 삼신(三神)은 궁극적으로 사람이며, 개인이다. 즉 개인이 '하늘의 도(道)'와 '땅의 도(道)'와 '사람의 도(道)'를 모두 갖추어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和世界)를 건설하고 실천한다면 그가 바로 삼신(三神)인 것이다.
그래서 인내천(人乃天) 사상이 나왔고, 인즉불(人卽佛) 사상이 나온 것이다.
삼신(三神)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아버지를 보라!
어머니를 만나 세상을 열었고, 죽을 힘을 다해 윤택한 삶과 자녀 교육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들의 아버지가 바로 삼신(三神)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들을 조상신(祖上神)으로 모시고 있는 것이다.
그분들이 우리의 진정한 삼신(三神)이시기 때문이다.
今穴口 有三郞城 城者 卽 三郞宿衛之所也 郞者 卽 三神護守之官也
지금 혈구(강화도, 강도)에는 삼랑성이 있는데, 성(城)이라는 것은 곧 삼랑(三郞)이 머물며 삼신을 지키던 곳이다. 랑(郞)이라는 것은 즉 삼신(三神)을 수호하는 관리이다.
佛像 始入也 建寺稱大雄 此僧徒之襲古仍稱 而本非僧家言也 又云 僧徒 儒生 皆隸於郞家 以此 可知也
불상(佛像)이 처음 들어오면서 절(寺)을 세우고, (불상을) 대웅(大雄)이라 칭하였는데, 이것은 승도들이 옛 것을 세습하여 칭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웅이라는 말은) 본래 승가(僧家)의 말이 아니며, 또 전하기를 승도(僧徒)와 유생(儒生)은 모두가 랑가(郞家)에 예속되어 있었다는 것을 이를 통하여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참고>
사찰에서 불상(佛像)을 모셔 놓은 곳을 '대웅전(大雄殿)'이라고 한다. 즉 '위대한(큰) 환웅(雄)을 모신 곳'이라는 뜻이다.
순수하게 불상(佛像)을 모셔 놓은 곳이라면 응당 '대불전(大佛殿)'이라고 해야 맞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불교(佛敎)가 민속신앙이었던 신교(神敎)를 바탕으로 하여 발전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불교(佛敎)는 한국적 불교(佛敎)로 호국불교(護國佛敎)라고 칭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실 유교(儒敎), 불교(佛敎), 선교(仙敎)는 신교(神敎)가 분화 발전한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或云 古者 人民散處溪谷 葬無定地 上自國王 皆遷置於隧穴 竝配天神以祭 後或 有平地而葬之 環植檀柳松栢以識之 是以 神市之世 無陵墓之制
혹자들이 전하기를 옛날에는 백성들이 계곡에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매장(葬)을 위한 일정한 장소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위로는 국왕으로부터 (일반 백성까지 죽음에 이르면) 모두가 큰 동굴(隧穴)로 옮겨져 천신(天神)과 나란히 배치(竝配)하여 제(祭)를 올렸다고 한다.
후에 혹자들 중에는 평지에 매장하기도 하였는데, (매장한 후에는) 그 둘레에 박달나무, 버드나무, 소나무, 잣나무 등을 심어 표시를 하였다고 한다. 이로써(是以) 신시 시대(神市之世)에는 능묘제도(無陵墓之制)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後至中古 國富族强 養生得贍 送死亦侈 祭之有禮 治墓頗隆 或圓 或方 克厥侈飾 高大廣狹 方正有規 內壁外墳 均整兼巧 至于高句麗 陵墓規制 冠於天下
후에 중고(中古)시대에 이르러 나라가 부강해지고 민족이 강성해지면서 먹고 사는 것이 넉넉(養生得贍)해지자 죽은 자를 보내는 것 역시 사치스러워지고, 제(祭)를 올리는 것에도 예(禮)가 생기게 되었다.
치묘(治墓, 묘를 쓰는 것) 역시 파행적으로 이루어져 융성하여졌는데, 혹은 원으로, 혹은 사각형으로 하는 등 그 사치와 꾸밈이 극치를 이루었다.
그래서 높이, 크기, 넓이, 폭 등에 대한 방정규정(方正有規)이 마련되어 내벽과 외분(분봉)이 균등하고, 고르고, 정교하게 정리되었다.
(이렇게 하여) 고구려시대에 이르러서는 능묘제도(陵墓規制)가 천하의 모범(冠, 최고)이 되었다. 끝.
<중요 한자 풀이 및 설명>
사(徙) : 옮길 사, 옮기다, 돌아가다. 주의! 무리라는 뜻의 무리 도(徒) 자와 혼동하기 쉽다.
사사(徙死) : 죽음에 이르다, 죽다
사사무출향(徙死無出鄕) : 죽음에 이르면 고향을 떠나지 않는다.
참(塹) : 구덩이 참, 구덩이, 구덩이를 파다, 땅을 파다.
천단(天檀) : 산 위에 성(城) 처럼 쌓은 제단, 일명 성단(城檀), 하늘에 제(祭)를 올리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천문을 관측 장소로도 활용하였음
신단(神檀) : 산의 계곡에 나무를 심고, 그 옆에 흙으로 쌓은 제단, 일명 토단(土壇), 토신(土神)이나 조상신(祖上神)에게 제(祭)를 올리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후에 그곳에 소도(蘇塗, 수두)와 경당(?堂)을 짓고 심신수련(心身修練)의 장소로도 활용하였음, 후에 불교(佛敎)가 들어오면서 소도(蘇塗)와 경당(?堂)은 사찰(寺)로 바뀌었고, 천주교(天主敎)가 들어 오면선 경당(?堂)은 경당(經堂)으로 바뀌어 '예배당(禮拜堂)'이 되었음. 경당(經堂)은 염경당(念經堂)의 준말임.
습(襲) : 염습할 습, 세습할 습, 대(代)를 이어 전해지다(世襲)
가(稼) : 심을 가, 심다, 씨뿌리다, 파종하다.
강(降) : 내릴 강, 내려오다, 내려받다. 주의! 항복하다는 뜻도 있음.
강령(降靈) - 영감(靈感)을 받다, 신(神)내림
루(屢) : 여러 루, 두루
수(隧) : 길 수, 길다
수혈(隧穴) : 큰 동굴
섬(贍) : 넉넉할 섬
양생득섬(養生得贍) : 먹고 살기가 넉넉해지다, 풍요로워지다, 삶이 풍요로워지다
치(侈) : 사치할 치, 사치하다, 사치스럽다.
송사역치(送死亦侈) : 죽은 자에 대한 사치, 사치스러운 분묘제(墳墓制), 매장제(埋藏制)
파(頗) : 비뚤어질 파, 파행(頗行), 비뚤어지다, 잘못 행하다
신시본기(神市本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