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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산악회 백두대간 종주 계획에 따라 '구룡령 → 갈전곡봉 → 왕승골 갈림길 → 쇠나드리 → 조침령 -(접속)→ 진동리'의 21.16km, 10시간 구간을 달릴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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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령 옛길[九龍嶺]
『구룡령 옛길』은 양양과 홍천을 연결하는 옛길로 산세가 험한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보다 산세가 평탄하여 양양, 고성 지방 사람들이 한양에 갈 때 주로 이 길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강원도의 영동과 영서를 잇는 중요한 상품 교역로였고, 양양, 고성 지방 선비들이 과거를 치르러 한양으로 갈 때 명칭에서 유래하듯 용의 영험함을 빗대어 과거 급제를 기원하며 넘나들던 길이라 하며, 구룡령이라는 이름은 ‘아홉 마리 용이 고개를 넘어가다가 지쳐서 갈천리 마을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고갯길을 넘어갔다’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하고 있다.
옛길 입구에는 굽이져 흐르는 계곡이 있고, 길의 중간중간에 길의 위치를 표시하는 횟돌반쟁이, 묘반쟁이, 솔반쟁이 등이 자리하여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여 줄 뿐 아니라 옛길 걷기의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또한 구룡령 옛길에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개발되어 일대 주민들이 강제 징집되었던 애환의 역사가 서린 철광소와 케이블카가 남아 있고, 옛길 길가에는 1989년 경복궁 복원 당시 사용되어 밑동만 남아 있는 소나무 거목 흔적이 남아 있는 등 조선시대와 근현대사의 역사가 함께 남아 역사적 가치가 큰 소중한 명승지이다. - 국가문화유산포털
갈전곡봉[葛田谷峰]
높이: 1,204m
위치: 강원 인제군 기린면, 홍천 내면
구룡령과 조침령을 잇는 백두대간의 능선에 있는 갈전곡봉(1,204m)은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과 홍천군 내면에 걸쳐 있다.
서북 방향으로 뻗고 있는 능선은 가칠봉, 응복산, 구룡덕봉 등의 준봉들을 이루면서 방태산과 연결된다. 산자락에는 방동약수, 개인약수 등 유명 약수가 많고 왕승골, 아침가리골, 연가리골, 조경동계곡 등의 깊은 골짜기도 많이 형성되어 있다.
가칠봉(1,240m), 사삼봉(私參峰: 1,322m), 응봉산(鷹峰山: 1,016m) 등과 함께 태백산맥 일부를 이룬다. 또한 소양강의 지류인 방대천(芳帶川)을 비롯하여 계방천(桂芳川), 내린천(內麟川) 등의 발원지를 이루고 있다. - 북부지방산림청
이번 주 정기산행은 토요일 87과 연합으로 가평 칼봉산행 후 경반계곡에서 즐기는 계곡 산행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동안 해온 산행에 비하면 너무 가벼운 산행이라, 그 전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안내 산악회를 뒤적이다가 발견한 게 화요 무박으로 백두대간 구룡령에서 조침령까지 달리는 산행이다. 사실 이 구간은 7월 10일 토요 무박으로 같은 산악회, 같은 인솔 대장으로 신청했는데, 토요일인 7월 9일 갑작스럽게 대학 동기와 과천 청계산행 후 하산주에 취해 24시 양재 출발, 구룡령행 버스를 타지 못해 아까운 산행비만 날린 아픈 기억이 있다. 해서 오기로 잔뜩 벼르고 있기도 했다.
구룡령은 2021년 10월 22일 천고지 가칠봉에 오를 때 들머리로, 가칠봉을 오르는 다양한 코스가 있으나, 당시에는 구룡령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북진하다가 갈전곡봉에서 좌회전했다[산행기]. 그리고 조침령은 2021년 7월 10일 역시 천고지인 점봉산에 오르기 위해 흥수와 둘이 산악회를 따라 한계령에서 조침령까지 남진했다[산행기]. 그리고 보니 두 산행 다 날이 좋지 않은 우중 산행이나 다름없어, 구룡령에서 조침령까지 조망이 어떤지는 모른다. 구룡령에서 조침령까지 구간의 백두대간 까만 소, 인증 장소는 갈전곡봉과 조침령인데, 이미 다녀왔으니, 인증이 목적이라면 내세울 봉우리 하나 없는 무박 20여 킬로미터를 달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백두대간을 연결하기로 한 이상 반드시 달려야 할 구간이라, 그나마 조망이라도 좋기를 바랄 뿐이다.
최근 폭염속에서 산행하다가 더위 먹는 일이 많았고, 가깝게는 8월 20일 백두대간 사다리재에서 지름티재까지 달릴 때도 더위를 먹어 고생했다. 그나마 14km가 조금 넘는 구간이라 다행이었는데, 무박 20여 킬로미터를 10시간 동안 달리는 산행은 부담이다. 그나마 다행은 무박이라, 빠르게 달리면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낮은 피할 수도 있다는 것. 그런데 구룡령으로 출발하는 날 확인한 산행 일인 다음날은, 최고 기온 25도, 최고 습도 80%, 구름이 많이 낀 날씨라는 예보다. 다만, 날머리인 조침령쪽은 7시경부터 화창하나, 하산 시점에 가까운 12시경부터 다시 구름이 많이 끼는 걸로 나온다. 비는 내리지 않겠지? 어쨌든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오랜만에 백두대간 달리기 좋은 날씨다!
그래도 알 수 없는 게 해발 1,000m가 넘는 산이고, 달리는 능선 대부분이 해발 1,000m가 넘을 거로 예상돼, 2L에 가까운 얼음물을 가져갈 예정이다. 다만, 날이 흐려 조망이 좋지 않으면 그저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게 아쉽다. 그리고 조침령에는 지난 2021년 흥수와 같이 하산주를 마셨던 식당에서 하산주 겸 점심을 먹을 예정이라, 아침으로 걸으며 먹을 수 있는 김밥을 사 갈 예정인데, 심야 시간에 김밥을 파는 식당이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이 모든 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최소 마감 1시간 전에 날머리에 도착한다는 걸 전제로 한다. 그 외 준비는 평소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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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회 버스가 양재 국립외교원 앞 24시 출발이라, 집에서 10시 50분경 출발하면 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시간에 편의점이 아니면 김밥을 살 만한 곳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19시경 김밥을 사러 구산사거리로 향하다가, 갑자기 200여 미터 거리에 모교인 대조초등학교가 있다는 게 떠올랐다. 초등학교 주변에는 당연히 분식집이 있고, 해서 초등학교 앞으로 가보니, 역시 분식집이 영업 중이다. 기쁜 마음으로 김밥 한 줄을 사서 집으로 돌아와, 수면제인 빨갱이 반주로 늦은 저녁을 먹고, 김밥이 상하지 않도록 얼린 물과 함께 디팩에 넣었다. 물론 오이와 방울토마토도 같이. 최대한 가볍게 꾸린다고 꾸린 배낭에는 아침과 비상식 등이 든 디팩과 갈아입을 옷이 든 드라이 색, 버스에서 필요한 물건이 든 파우치 등이 들어 있어 생각보다 무거웠다. 당연히 산행에는 디팩만 들고 가고 나머지는 버스에 두니 문제될 건 없다. 다만, 장거리 산행 중 맞게 될 폭염에 대비해 얼음물만 2.5L를 준비해 뭔 짓을 해도 배낭을 가볍게 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마을버스 시간에 맞춰 10시 45분경 집을 나서, 마을버스로 불광역까지 간 다음 지하철로 양재역으로 향해, 11시 43분경 양재역 12번 출구로 나와, 주변에 등산객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야 오늘이 휴일이 아니라, 평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도 이 산악회에서는 무박으로 24시에 구룡령과 설악산으로 각각 한 대씩 총 두 대의 버스가 출발한다. 물론 둘 다 백두대간이다! 대단한 안내산악회와 백두대간이라고 감탄하며, 국립외교원 앞으로 가는데, 어느새 따라온 등산객이 어디로 가는지 묻는다. 해서 구룡령으로 간다고 하니, 자기는 설악산, 한계령에서 마등령까지 달린다는데, 공룡능선은 처음이라 걱정이라며, 이것저것 묻는데,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친절하게 주의할 구간과 코스에 대해 얘기해줬다. 그런데, 나라면 한계령에서 마등령까지 한 번에 가는 게 아니라, 둘로 나눠, 대피소에서 1박 하는 산행하지, 절대 이따위 산행은 안 한다. 설악산에서 보고 즐길 게 얼마나 많은데!
설악산에 관한 얘기를 나누며 국립외교원 앞에 도착해보니, 그래도 두 대의 버스가 출발하는 만큼 이른 시간임에도 예닐곱의 대간꾼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서초구청 주차장 석축에 자리를 잡고 앉아,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며, 속속 도착하는 대간꾼을 구경했다. 그리고 11시 57분에 설악산행을 앞세우고 버스 두 대가 들어왔다. 옆자리가 비어 내려놓았던 배낭을 둘러메고, 버스 문 앞에서 안내하는 인솔 대장에게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 버스에 타, 내 자리로 가 앉았다. 앉기 전 배낭을 벗어 빈자리 앞 바닥에 내려놓고, 옷이 든 드라이 색과 버스 내에서 사용할 물건이 들어있는 파우치를 꺼내 빈자리에 두었다. 이후 슬리퍼로 갈아 신고 가장 편한 자세로 자리를 잡은 후 24시경 버스가 출발하자 잠이 들었다. 그리고 깨어보니, 내린천 휴게소다. 평소라면 무시하고 잤겠지만, 아무래도 볼일을 봐두는 게 신상에 좋을 거 같아 화장실에 갔으나,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지 볼일을 보지 못하고 그냥 돌아와야 했다.
버스로 돌아와 다시 잠을 청했는데, 20분 휴식이 끝나고 버스가 휴게소에서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이번 산행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코스는 갈전곡봉을 올라갈 때가 힘드나, 나머지 구간은 기복은 있으나, 지루한 산행이 될 거라고 했다. 그런데, 작년 가칠봉으로 가기 위해 구룡령에서 갈전곡봉까지 갔을 때 힘들다는 기억이 없는 게, 과거를 잘 잊거나, 실제 힘들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인데, 후자일 확률이 높다. 사실 이번 구간에도 미지의 갈전곡봉에서 조침령까지 구간에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저 지루하다는 얘기를 듣자, 안심됐다. 사실 다음 구간인 조침령~한계령 구간을 이미 2021년 흥수와 같이 달렸을 때[산행기] 단목령~조침령 구간에서 죽을 맛이었기에 이번 산행 미지 구간에 두려움이 있었다. 대장의 말이 끝나고 버스의 실내등이 꺼지자 다시 잠이 들어, 다시 대장이 마이크를 잡는 순간 잠에서 깨어 등산화로 갈아신고, 미니 스패츠를 착용하는 등 산행 준비를 했다.
버스가 구룡령에 도착하기 직전 인솔 대장이 이번 산행 마감 시각을 공지했는데, 구룡령에 3시 도착이라는 전제하에, 산악회 게시판의 계획은 산행에 10시간을 잡았으나, 30분을 더해 10시간 30분으로 계산해 13시 30분에 마감한다고. 추가해 빠른 산꾼은 7시 30분 정도, 좀 한다는 산꾼은 8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구간이나, 가장 평범한 등산객이 씻고 점심 먹을 시간이 필요해 30분을 더한다고 했다. 그리고 등산객이 찾지 않는 평일이지만, 날머리의 유일한 식당 주인장과 점심을 먹을 수 있도록 통화했다고! 환영하는 바다. 해서 내가 이 대장을 좋아한다. 대장의 말이 끝났으나, 버스는 계속 달려, 생각보다 이른 2시 49분에 산행 들머리인 해발 1,013m의 구룡령에 도착했다. 그럼에도 대장이 마감 시각을 변경하지 않아, 산행에 주어진 시간은 10시간 41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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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 먼저, 구룡령 표지석으로 가 대간꾼들의 랜턴 빛에 의지해 사진을 찍었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고, 9월 중에 다시 올 예정이다. 그때는 들머리가 아니라 날머리가 될 예정! 표지석을 기록으로 남기고, 어둠 속 대장이 데크 계단 앞에서 랜턴으로 길을 안내해주고 있는 가운데 2021년과는 달리 본격적인 백두대간 연결 산행을 시작했다. 어차피 새벽 3시도 되기 전 시작한 산행이라, 주변에 보이는 거라곤 가끔 보이는 이정표 정도에, 볼 것도 없어, 그저 앞사람 뒤꿈치만 보며 가는 산행이라, 딱히 쓸 것도 없다. 앞 전우의 뒤꿈치만 보며 가던 신교대의 100km 야간 행군을 떠올리며 달려, 3시 16분에 명승 제29호인 구룡령 옛길에 도착했다.
구룡령에서 조침령까지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 제29호인 구룡령 옛길이 유일하게 이름을 가진 곳이라, 소개문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기고 싶었으나, 너무 어두워 포기하고 갈전곡봉으로 출발했다. 갈전곡봉도 이 구간 유일하게 이름을 가진 봉우리지만, 그만한 대접은 못 받아, 옛길이 유일하다. 무박 산행이 늘 그렇듯이 헤드 랜턴 불빛에 의지해 앞사람 뒤꿈치만 보며 전진하는 동안, 보이는 거라고는 이정표밖에 없어 그걸 기록으로 남기는데, 와중에 갈전(田)곡봉이 아니라, 갈천(川)곡봉이라고 표기된 이정표가 있다. 그리고 4시 6분에 도착한 갈전곡봉 정상에 있는 이정표에는 '갈천약수터 2.32km'라는 표기가 보인다. 그럼 갈천곡봉이 맞지 않을까? 갈전계곡은 없어도 갈천계곡은 있으니, 갈천곡봉이 더 합리적인 거 같은데! 뭐, 어쨌든 갈전곡봉이 까만 소 백두대간 인증처라, 많은 대간꾼이 정상석 또는 이정표에 있는 '갈전곡봉' 명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걸 구경하다가, 정상석과 이정표만 기록용으로 사진을 찍고 미련 없이 길을 재촉했다.
갈전곡봉을 떠나기 전 가야 할 길을 랜턴으로 비추며 사진으로 남겼다. 여기서부터 조침령까지는 초면인 미지의 세계다. 앞에 어떤 고비가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다만, 인솔 대장이 코스 설명 때 1km, 두 개의 기복이라는 말만 하고 자세한 얘기를 안 했는데, 1km마다 두 개의 기복이 있다는 건지, 갈전곡봉 하산 후만을 지칭하는지 알 수 없다. 그나마 대간꾼에게 좋은 건 후자지만, 가봐야 안다. 갈전곡봉에서 하산하기는 길이 쉽지 않다.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 데다, 간헐적으로 내리는 비에 젖은 암릉이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뒤에서 따라오던 등산객이 미끄러지는 사고도 있었고. 그 위험한 암릉을 내려가 다시 암릉으로 올라 도착한 봉우리 정상에 이정표가 있는데, 그 기둥에 누군가 봉우리 이름을 새겼는데, 국망봉? 비슷해 보이는데 정확한 건 알 수 없다. 4시 58분에 그 봉우리를 떠나 어둠을 뚫고 작은 기복 여러 곳을 넘은 후 오른 봉우리 쉼터에 도착한 게 5시 24분이다.
앉아서 쉬라고 만들어 둔 통나무 의자는 비에 젖어 사용할 수 없어, 서서 물병을 꺼내 시원한 얼음물을 마음껏 마시는 동안, 두 명의 대간꾼이 추월해 갔는데, 그중 한 명이 우의처럼 비닐 치마를 입고 있었다. 똑같은 걸 비가 올 때나, 이른 아침 이슬에 젖은 관목지대 통과 때 입으려고 몇 주 전에 사서 배낭에 넣고 다니는 중이다. 내리는 비와 젖은 풀숲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상·하의가 다 젖었으나, 상의야 상관없지만, 하의가 더 젖으면 등산화에 물이 들어갈 상황이라 고민 중이었는데, 그 모습을 보자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한탄하며 배낭에서 하의용 우의를 꺼내 치마처럼 두르고 풀숲을 통과하자, 이건 신세계다! 신세계를 발견한 기쁨을 만끽하며 거림낌 없이 조릿대와 풀숲 구간을 통과하며 몇 개의 이정표를 지나고, 두 번째 쉼터도 지나 5시 48분에 왕승골 갈림길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우는 왕승골, 좌는 조경동으로 내려가는 사거리다!
6시가 가까워지자, 랜턴에 의지하지 않아도 길을 찾을 수 있을 정도라, 랜턴을 배낭 허리띠 주머니에 넣고 가벼운 기분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조침령으로 향했으나, 딱히 조망이 좋은 것도, 전망대도 없어 볼 것 없었다. 볼 게 없어 앞만 보고 길을 가다 보면, 길목에 벌목한 공터가 나타났는데, 그 공터에는 데크 자재가 쌓여 있었다. 그런데 위치상 전망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데크 계단이 필요한 것도 아닌 지역인데, 뭘 만들려고 재료를 쌓아뒀는지 나름 추측하며 길을 갔는데, 조침령까지 거의 3~4km 단위로 있는 걸 보고, 뭘 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거의 산행 막바지에 안 사실이지만, 벌목한 이유는 거기에 뭘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백두대간 등산로 정비에 필요한 재료나, 도구를 헬기로 내려놓기 위함이다.
동쪽 울창한 숲 사이로 빛나는 햇살을 감상하기도 하며 달리는 중 배가 고파 시계를 보니, 7시가 멀지 않아, 배낭에서 김밥을 꺼내 먹으며 북진해 7시 14분에 구룡령과 조침령의 중간 정도 되는 3둔4가리 중 하나인 연가리골 갈림길에 도착했다. 그런데 연가리골 소개문 앞에 '연가리샘터'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고, 등산로에서 서쪽으로 100여 미터 지점에 있다고 소개문에 적혀 있었다. 1km도 아니고, 100m 거리에 있는데, 산꾼이라면 당연히 물맛을 봐야 하는거라, 바로 배낭을 벗어 쉼터의 통나무의자에 올려놓고, 카메라와 핸드폰만 들고 샘터를 찾아 내려갔다. 물론 시간이 많이 남아 가능하기도 했다.
샘터로 가는 길 상태는 의외로 좋았고, 50여 미터를 내려가자 샘이 아니라, 계곡 물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는 작은 계곡이 있고, 그 주변에는 집터의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그런데 계곡은 있는데, 샘은 보이지 않는다. 계곡을 일러 샘이라 하지는 않았을 테고, 연가리골의 최상류니, 계곡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분명 발원 샘이 있는 건 알겠는데, 얼마나 올라가야 할지 몰라, 발원지, 샘을 찾는 건 포기하고, 계곡 물맛을 본 다음, 동영상으로 찍고 다시 대간으로 올라갔다. 올라가서 보니, 거의 모든 대간꾼이 도착해 연가리골 소개문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긴 후 다시 길을 재촉하고 있다. 그들은 모르겠고 나야 남아도는 게 시간이라 급하게 서두를 이유도 없고, 기상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과를 아직 끝내지 않아, 다시 계곡 쪽으로 내려가 볼일 보고 왔다. 물론 그동안 모든 등산객이 떠난 다음이라 제일 끝이 됐다.
내 뒤에 아무도 없다는 걸 감으로 확인하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카메라를 바닥에 두고, 타이머를 이용해 연가리골 소개문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겼다. 이번 산행 유일의 인증을 남긴 후 다시 조침령을 향해 출발했다. 가끔 숲 사이로 보이는 경치를 사진으로 남기며 전진해 9시 10분에 자재뿐만 아니라 인부도 있는 벌목지를 통과해, 9시 17분에 이정표가 없어 어디로 가는지 모를 갈림길에 도착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길이 확 변했다. 어딘지 모를 곳으로 향하는 길과 앞으로 펼쳐진 조침령으로 향하는 길 모두 고속도로다!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에는 더운 기운이 아닌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가을바람이다!
조침령 방향으로 갈수록 길의 상태가 갓 정비한 모습이다. 그리고 기시감이 느껴져 곰곰이 생각해보니, 2021년 한계령에서 조침령으로 향했을 때 단목령을 지나, 조침령에서 멀지 않은 지점에서 똑같은 경험을 했던 게 떠올랐다[산행기]. 단목령에서부터 구룡령까지 백두대간 정비 사업인가? 뭐든 계속 가자, 등산로 정비 도구와 인적이 보이기 시작하고, 사람 목소리도 들린다. 그리고 거의 10여 명에 가까운 인부가 등산로를 정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휴일인데 일을? 했다가, 곧 평일임을 깨달았다. 등산로를 정비하느라 바쁜 인부 사이를 통과하며 사람마다 ‘수고한다.’,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지나,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자 배가 슬슬 고파온다. 해서 시계를 보니, 10시다. 7시에 아침으로 김밥 한 줄을 먹었으니, 배가 고플 시간이다. 해서 배낭에서 두 쪽의 오이 중 후식으로 먹고 남은 한쪽과 방울토마토를 꺼내 먹으며 조침령 방향으로 갔다.
유유자적 전진해 10시 8분에 조침령에서 2.37km 거리에 있는 '쇠나드리 갈림길'에 도착했다. 2시 49분에 산행을 시작했으니, 여기까지 7시간 19분이 걸렸다. 고로 날머리인 진동리 식당에 8시 30분까지는 도착할 수 있어, 최소 마감까지 2시간 이상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작년에 갔던 조침령까지 갈 이유가 없고, 인증도 관심 사항이 아니라, 작년에 실수로 들어갔던 멧돼지 방비용 철책을 통과하면 바로 식당으로 향할 생각이다. 쇠나드리 갈림길을 떠나, 간혹 숲 사이로 보이는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북진해 조침령 직전 마지막 벌목한 곳에 도착해 뒤로 돌아, 지나온 능선을 감상하고 다시 길을 재촉해 10시 15분에 '바람불이 갈림길'을 통과했다.
'바람불이 갈림길'을 지나, 마지막 깔딱으로 보이는 봉우리를 넘어, 길을 재촉하는데, 쭉 뻗은 등산로 오른쪽으로 작은 대리석 비 같은 게 보였다. 추모비일 확률이 높아 가까이 접근했을 때 어떤 사연의 산꾼인지 궁금해 글을 읽어봤다. 호가 운봉(雲峰?)으로 나와 같은 이복록이라는 산꾼을 추모하는 비다. 백두대간 종주가 꿈이라, 3년간 구간을 나눠 종주 중 3구간을 남겨두고 유명을 달리했다는 내용이다. 사망의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산에서 사고로 사망한 건 아니라는 건 내용을 보면 유추할 수 있는데, 산에 다니다 많은 추모비와 추모동판을 봤지만, 산에서 사고로 사망한 경우가 아님에도 산에 추모비를 세운 건 처음이다. 여기다 세운 이유는 가지 못한 3구간 중 하나가 이 구간이기 때문이겠지?
잠깐의 묵념으로 나와 같은 호를 가진 산꾼을 추모한 후 길을 가, 10시 36분에 조침령에서 1.3km 거리에 있는 이정표를 지나, 16분가량 가지 왼쪽 아래로 철망이 보인다. 멧돼지에 의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 방지용 철책이다. 다 왔다. 저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진동리다. 100여 미터를 더 가자, 굳게 잠긴 철망 문이 보인다. 인솔 대장이 마지막 나오는 사람이 꼭 잠그라고 신신당부한 문이다. 당연히 문은 굳게 잠겨 있다. 그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후 손을 철망 사이로 집어넣어 다시 문을 잠갔다. 내가 알기로 내 뒤에는 이번에 같이한 일행은 아무도 없어서다. 조침령 표지석은 여기서 단목령 방향으로 400여 미터를 더 가야 있다. 그리고 그 표지석은 까만 소 백두대간 인증처다.
이미 작년에 한계령에서 조침령까지 달릴 때 조침령 표지석에서 진동리로 하산하다가 실수로 이 철망 문을 열고 들어갔던 일이 있어 대간 연결이 목적인 나는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따라서 바로 진동리로 하산하며, 이 순간부터 내 뒤에는 인증을 위해 표지석으로 간 대간꾼이 최소한 한 명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내려갔다. 그런데 지난 산행 때도 그랬지만, 이 임도 하산길이 생각보다 경사가 심해 고역이다. 다시는 이 길을 걷지 않아도 된다는 걸로 자위하며 그 고역의 임도를 따라가는데, 뒤에서 등산지팡이 소리가 들린다. 예상대로 내 뒤에 대간꾼이 있었다. 그런데, 대단히 빠르다. 해서 힐끗 뒤를 돌아봤는데, 여성 대간꾼이다. 나도 평지에서는 5km/h 이상으로 걸어 빠르기로 유명한데, 나보다 빠르다. 하긴 지금까지 대간꾼과 함께한 산행에서 나보다 느린 사람은 못 봤다.
11시 11분에 임도 끝인 진동리에 도착해, 포장도로를 따라, 식당으로 향해 저 멀리 빨간 버스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이번으로 두 번째 방문인 '나무꾼과 선녀'라는 식당의 주차장이다. 지난번 흥수와 같이 왔을 때도 같은 인솔 대장이었다. 약간의 오해가 있어, 한바탕할 뻔한. 그 후로 친해져 같이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가 됐지만. 버스에 도착해 두 개의 등산 앱을 종료한 후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신은 후 갈아입을 옷을 들고 식당 길 건너에 있는 방태천으로 가는 걸로 이번 백두대간 구룡령에서 조침령까지의 산행을 마감했다. 그 시각이 11시 22분으로 산행 시작 후 8시간 33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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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태천으로 내려가 보니, 거의 모든 남성 대간꾼이 물에 들어가 있었다. 방태천이 도로가에 있고, 건너에는 펜션이 있어 알탕할 상황은 아니라, 다들 입은 그대로거나, 속옷 차림이다. 여성 대간꾼은 식당 화장실에서 씻는 거 같고. 해서 나도 속옷 차림으로 물에 들어갔는데, 물살이 강할 뿐 아니라, 차가워서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물에 푹 잠겨 깨끗이 씻은 후 속옷을 갈아입고 젖은 옷과 수건은 깨끗이 빨아 비닐봉지에 넣은 후, 방태산에서 시작된 개천을 나와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는 많은 대간꾼이 삼삼오오 모여 하산주 겸 점심을 먹고 있었다. 애초 등산객이 찾지 않는 휴일이라, 문을 닫을 예정이었으나, 인솔 대장의 간청으로 문을 연 상태라, 주문되는 메뉴가 몇 개 없었다. 해서 나도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주인장 혼자, 15~16명의 술꾼을 상대하느라 바쁜 와중에 산채비빔밥을 주문하고,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나를 발견한 대장이 자기 테이블에 합류하라고 해 그 테이블로 옮겼다. 그 테이블에는 기사와 인솔 대장, 그리고 백두대간 62기 총무가 같이 있었다. 당연히 기사는 술은 안 마시고, 대장, 총무, 나 이렇게 셋이 주문한 안주와 밥이 나올 때까지 총무가 들고 온 밑반찬을 안주로 이슬이를 마셔, 안주가 나오기 전에 4병을 마시고 안주로, 산채비빔밥과 황태국, 손두부가 나온 후 부어라 마셔라 해 총 9병을 비웠다. 점심을 먹고 기사가 떠난 후에는 이번 산행에 참여한 다른 대장이 합류하기도.
마감 시각인 1시 30분에 출발하기 위해 1시 15분에 식당을 나와 1시 20분경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사실 내가 제일 꼴찌였고, 다 씻고 난 시각이 11시 40분경이라 간단히 점심을 먹고, 예정보다 1시간 이른 12시 30분에는 서울로 출발할 수 있었으나, 대장이 술을 좋아해 마감 시각보다 10분 정도 일찍 떠났으나, 산행 시작 시각을 고려하면, 정확히 10시간 30분을 지켰다. 어쨌듯 최소 셋이서 각 2병 반을 마셨는데, 화장실 갈 생각을 못하고 버스를 타는 바람에 가평 휴게소까지 참느라 식은땀이 나왔을 지경이다. 다행히 터지기 전에 가평 휴게소에서 볼일을 보고 나와, 여기저기 구경하고 다니고 있는데, 한 빵집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이 눈에 띄어 가까이 다가가 봤다. '가평맛남샌드'라는데 그것도 1인당 2상자 한정이다. 도대체 어떤 맛이기에 이렇게 긴 줄이 서 있나 궁금했지만, 안주가 아닌 먹거리에 별 관심이 없어, 그냥 버스로 돌아갔다.
휴식이 끝나고 출발한 버스는 1차로 복정역에서 승객을 내려주고 3시 30분경 양재역에 도착해 대장, 총무, 나 이렇게 셋이 양재역 주변 뒷골목으로 들어가, 쭈꾸미삼겹으로 빨갱이를 마셨다. 대략 7병 이상 마신 거 같다. 그리고 5시 52분에 식당을 나와 정신을 차려보니, 7시 30분이고 구파발역이다. 보나 마나 3호선 열차를 타고 잠이 들었다가 깬 거다. 그나마 내가 탄 열차가 구파발행이라 다행이었지, 대화행이었으면, 큰 낭패를 볼 뻔했다. 아닌가, 아직 이른 시간이라. 어쨌든 아주 화려한 백두대간 구룡령에서 조침령 산행은 구파발역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거로 최종 끝냈다.
백두대간 종주 팀 계획대로 간혹 비까지 내리는 '구룡령 → 갈전곡봉 → 왕승골 갈림길 → 연가리골 갈림길 → 쇠나드리 → 바람불이 → 조침령 -(접속)→ 진동리'의 22.99km(트랭글), 8시간 25분 동안 달렸다. 이동 8시간 24분, 휴식 1분!
비록 기복이 심하기는 하나, 표고차가 200여 미터에 불과해 인솔 대장 말대로 지루하기 그지없는 구간이다.
가칠봉에 오르기 위해 갈전곡봉을 거치지 않았다면, 이 구간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가진 봉우리의 참모습을 보지 못할 뻔했다.
해발 1,000m가 넘는 봉우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20여 킬로미터의 구간에 ‘갈전곡봉’ 외에 이름을 가진 봉우리가 없다는 게 미스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