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경묘와 황장목
원 성 호
오전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시각 춘천을 출발한 차는 홍천 원주 강릉을 거치며 지역 회원들을 태우고 11시가 가까워서야 삼척땅에 들어섰다. 안개를 살짝 뿌린 듯한 우유 빛 하늘에 바람 한 점 없는 조용하고 아늑함을 느끼게 하는 날이다.
삼척 땅에 들어서면서부터 차 안에서는 문화재 해설사의 낭랑한 음성이 선율을 탄 음악처럼 울려 퍼진다. 차는 2차선 도로를 굽이굽이 돌아 영경묘라는 현판을 지나쳐 준경묘 입구에 닿았다.
주차장으로부터 준경묘로 향하는 길은 깊은 산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준경묘 까지 1.8Km 라니 결코 만만찮은 거리다. 콘크리트 포장이 되어 있는 넓은 길은 산속으로 들어서자 바로 가파른 비탈길이다. 전날의 농경일로 과로가 풀리지 않은 탓인지 일행과 보조를 맞추기 조차 벅차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넓은 길이지만 탱크가 아니고서는 엄두도 못 낼 급경사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상쯤으로 보이는 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주위 경관에 관심을 가지는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길은 울창한 송림속으로 길게 이어졌다. 아랫도리는 검으나 위로 올라가면서 붉은색이 완연한 황장목이다. 황장목은 금강송이라 불리는 소나무로서 금강산에서부터 울진 봉화까지 분포한다고 한다. 끝을 알 수 없는 빽빽한 송림, 하늘을 찌르듯 높이 솟은 소나무들은 수령이 백년도 넘는 듯 하나같이 우람하다.
솔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나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아온 소나무들은 거개가 볼품없이 휘어지고 틀어져 이것이 과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인가 싶기도 했다.
나는 오늘에서야 참 소나무를 만난 기분이다.
아 푸르구나/ 초목중에 군자로다/ 눈서리에 상하지 않고/ 비오고 이슬 내려도/ 웃음을 보이지 않네/ 좋을 때나 슬플 때나/ 변함이 없어라/ 겨울이나 여름이나 / 푸르고 푸르도다/ 달 돋아 오르면/ 잎 사이로/ 달빛을 금모래처럼 체질하고/ 바람 불면 맑은 노래 부르네
-사명대사의 청송사-
황장목이 삼척지방에서 반출된 것은 순조 4년(1804) 인정전을 중건할 때와 고종 2년(1865) 경복궁 중건 때라고 한다. 근덕면 양리에 사는 박양헌, 가평의 윤선도 씨는 경복궁을 중건할 때 도끼 대목으로 참봉노직(參奉老職)의 벼슬을 받았다고 전한다.
삼척 사금산 불경곡에서 베어 낸 황장목은 각 면에서 선발된 300여명의 장정이 70리 길을 보름 이상 걸려 덕산 앞바다까지 운반하였다고 한다. 이때 운반한 황장목은 직경이 6자, 길이가 60여자나 되었다고 하며 이때 도끼질을 하고 나무를 운반하면서 목도꾼들이 부르던 소리가 전해지고 있다. 소리는 선소리의 선창에 따라 나머지 사람들이 후창을 하면서 나무를 굴리고 굵은 새끼줄로 매어서 당겼다고 한다.
<도끼질 소리>
땡땡 소리가 왠소리/ 경복궁 짓느라고 땡땡 소리가 나온다/ 아 흥흥 어기야/ 척 늘어졌다 떡갈잎 척 늘어졌다 떡갈잎/ 제가 뭘 멋이 든 것처럼 우들우들 춤을 춰/ 아 흥흥 어기요 아 흥흥 어기야/ 외호리적 떡장사 외호리적 떡장사/ 경복궁 새대궐안에 인절미장사 왜왔소/ 아 흥흥 어기요 아 흥흥 어기야/ 개구리 청개구리 두 눈이 붉어지고/ 네발가진 개구리 수통처자를 보아도/ 개구리만 보인다 청개구리만 보인다.
<목도꾼소리>
여러분네 일심 동력(후렴:웃야호호)/ 앉았다가 일어서며/ 고부랑 곱신 당겨 주오/ 낭그는 크고 사람은 적다/ 엿차소리 낭기간다/ 마읍골에 낭기간다/ 한치두치 지나가도/ 태산 준령 넘어간다/ 앞줄에는 김장군이/ 뒷줄에는 이장군이/ 여기 모인 두메 장사/ 심을네어 당겨 주오/ 왈칵 덜컥 돌고개냐/ 타박타박 재고개냐/ 굼실굼실 잘도 간다/ 마읍골의 사금산에/ 불갱골에 오백여년/ 한해두해 자란 솔이/ 황장목이 되었구나/ 아방궁의 상량목이/ 이낭기가 될라는가/ 백양대의 도리 기둥이/ 이낭기가 될랴는가/ 이낭기가 경복궁의/ 상량목이 되었구나/ 한양 천리 먼 먼길에/ 태산 준령 고개마다/ 녹수청강 구비마다/ 덩실덩실 잘도 간다/ 태고적 시절인가/ 청탁을 가리던가/ 요순적 시절인가/ 인심도 인후하고/ 초한적 시절인가/ 인심도 야박하고/ 전국적 시절인가/ 살기도 등등하네/ 만고영웅 진시황이/ 천하장사 힘을 빌어/ 돌도 지고 흙도 져서/ 만리장성 쌓았구나/ 황화수는 메웠어도/ 봉래바다 못 메웠네/ 동남 동녀 싣고간배/ 하루 이틀 아니오네/ 삼각산에 내린 용설/ 한양 도읍 학의 형국 /무학이 잡은 터에 정도전이 재혈하야/ 오백년 도읍할제 금수강산 삼천리에/ 방방곡곡 백성들아/ 임임 총총 효자 충신/ 집집마다 효부 열녀/ 국태민안 시회연풍/ 국가부영 금자탑을/ 어서어서 쌓아 보세/ 만고 불멸 은자성을/ 이낭그로 쌓아 주세.
이렇게 포구까지 운반된 황장목은 뱃길을 따라 한양까지 보냈다 하니 옛 사람들의 노고가 참으로 가상하다.
어디 부터인지 모르게 포장된길은 끝나고 우리는 흙길을 걷고 있었다. 산에 오면 말끔하게 포장된 길 보다는 흙을 밟는 것이 자연스럽다.
작은 언덕을 넘자 저만치 준경묘가 보인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 장군의 묘역이다. 해 없는 흐린 날이라 방위를 가늠키 어려우나 대충 동남향이 아닐까.
풍수학적으로 명당이라는 이 묘도 한때는 아들인 목조가 함경도로 이주하는 바람에 실묘 되었다가 후손인 역대 왕들의 노력으로 찾아냈다고 한다.
묘소 앞에는 재각 재실 비각 등이 있고 훤한 벌판 주위로 병풍처럼 둘러친 산들이 이채롭다. 어디를 보아도 곧게 자란 우람한 소나무들, 이 소나무들 때문에 이 자리가 더욱 돋보이는지도 모를 일이다.
“소나무의 진면목을 보고 싶거든 이곳에 와 보라.”
나는 많은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잘 가꾸어진 송림은 이곳 말고도 많지만 수많은 나무가 하나같이 올곧고 우람하게 자란 곳은 아직 보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도 나는 소나무 하나하나를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정이품송과 혼례소나무”라는 목판은 돌아오는 길에야 발견하고 가까이 가 보았다.
“산림청 임업 연구원은 한국을 대표하는 소나무의 혈통 보존을 위해 10여년의 연구와 엄격한 심사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형질이 우수하고 아름다운 소나무를 찾았는데 이소나무가 선발되었다. 나이 95살 키 32M 가슴 높이 둘레 2.1M인 이 소나무는 충북 보은군 내속리산 상판리에 있는 천연 기념물 103호 정이품송을 신랑으로 맞아 2001년 5월 8일 신순우 산림청장이 주례를 맡고 김종철 보은군수가 신랑혼주(신랑역 삼산초등학교 6학년 이상훈) 김일동 삼척시장이 신부혼주(신부역: 삼척초등학교 6학년 노신영)로 참석하여 이곳 준경묘역에서 많은 하객들을 모시고 세계최초의 소나무 전통 혼례식을 가짐으로서 한국 기네스북에 올랐으며 이 행사를 계기로 삼척시와 보은군은 사돈 관계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
2001년에 95살이라면 지금은 104살이다. 사람 나이가 104살이라면 늙다 못해 귀신같을 나이련만 이 소나무는 이팔청춘처럼 싱싱하다.
나무의 혼례식을 성대하게 치렀다니 이런 일이 또 있을까 싶다. 하긴 보은군 장안면 서원리에 정부인 송이 있다하니 여기 있는 혼례소나무는 제2부인격일 터이다. 누가 지어낸 이야기인지 모르나 정부인송은 이 나무를 투기하다가 가지가 뒤틀어졌다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어쨌거나 혈통 좋은 소나무끼리 혼례를 치러 2세를 창출함은 기뻐해야 할 일 아니던가.
내 집 앞에는 봉의산이 우뚝 서있다. 이 산에도 소나무는 많으나 곧게 자란 소나무는 찾아보기 어렵다.
약초연구가 최진규의 저서에 보면 소나무가 곧게 자라지 못하는 이유는 소나무 좀벌레가 줄기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잎에서 만든 양양분을 먹어 버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곳에는 소나무 좀 벌레가 없다는 말인가. 추운 지방에는 좀벌레가 없어 소나무가 곧게 자란다고 하지만 동해안 지방은 백두대간이 한랭한 서북풍을 막아 영서 지방에 비하여 추위가 덜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이곳 소나무는 하나같이 곧게 자라 하늘을 찌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곧게 자라는 것은 금강송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금강송은 목질이 단단하고 갈라지지 않으며 잘 썩지 않는다고 한다.
흥선군이 경복궁을 재건할 때 팔도 일꾼들이 부르던 노동요가 있다.
“남문을 열고 파루를 치니 계명산천이 밝아 온다. 에헤 에헤야 얼러러 거리고 방아로다 을축 사월 갑자일레 경복궁을 이룩일세-”
을축사월 갑자일은 1865년 4월에 경복궁 역사를 시작 한 날이다. 경복궁은 3년 2개월에 거쳐 중건했는데 대들보로 쓸 만한 나무가 없어 8도를 뒤져 재목을 구하다가 삼척 사금산(四金山)과 삼방산(三方山)에서 겨우 찾아냈다 한다. (2010년 4월)
첫댓글 글을 통해 목도꾼의 소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 합니다. 원고지에 대입해 보면 몇 매인지 확인을 할 수 있습니다.
삼척도 못가고 오늘 글을 읽었습니다. 이렇게 귀한 나무가 삼척에 있었다니 놀납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작품, 탄생시켰군요 합니다. ^*^
장희자 선생님, 주헤선생님, 한우리 선생님 졸작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