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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시 내항2길 32 (장미동 23번지)
063-454-7870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을 가려고 했지만 리모델링 중이라 가지 않았다.
그런데... 2022년 12월 28일부터 2023년 1월 31일까지 시범 운영기간이라는 홈페이지 공지를 나중에 봤다. 아~ 아쉽다.
진포해양테마공원 앞에있는 창고196을 먼저 만났다. 주소가 바로 해망로 196이다.
구) 제일사료공장 등록문화재 제719-4호로 지정되어 있어서
태풍으로 태극기 반이 사라졌는데도 함부로 복원도 하지 못하고 있다.
군산 스탬프 투어하는 분들은 "장미동 구) 일본인 창고" 명칭으로 찾아가면 된다. 다 똑같은 곳이다.
1930년대 지어진 일본인 창고였는데
1956년 이용구 호남제분 회장 소유로 밀가루를 생산하였다가 1972년 상호를 한국제분으로 변경하고 목포시로 이전하였다.
이후 한국제분, 제일산업, 제일사료, 동아제분, 동아에스에프, 동아원 등으로 상호가 바뀌면서 군산 산업발전에 이바지 하였다.
2015년 (유)은파기업 김성수 대표가 인수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군산에 유일하게 남은 일본식 창고 건물이자 우리나라에는 군산과 부산, 인천에만 남아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
태극기가 심상치 않더니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도 등장한다.
벽화의 내용이 이 창고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본식 사찰이나 일본식 가옥을 우리가 문화재로 지정하고 보호하는 것은 일본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들이 여기 있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조선을 수탈하기 위해서 어떠한 일을 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대건축물을 바라볼 때에는 소위 "국뽕"이 필요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벽화의 내용이 뒤죽박죽 섞여있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그래 대한민국 만세다!" 이건 권투선수 홍수환이고...
김득구는 챔피언인 맨시니에게 도전했다가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권투선수다.
김득구 선수의 죽음으로 이후 권투는 15회전에서 12회전으로 줄어들었다.
김득구 선수의 삶을 영화로 만든 유오성 주연의 "챔피언(2002)"은 이루지 못한 챔피언의 꿈을 이야기하는 거였다.
내 인생의 역작인 막내아들 민수도 세워놓고 사진을 찍어본다.
바로 앞이 진포해양테마공원이다.
진포는 군산의 옛 명칭으로 고려시대 금강하구에서 왜구를 대파한 진포대첩을 기념하여 해양테마공원을 조성하였다.
무료주차공간도 넓게 있고... 위봉함을 제외한 야외전시물은 모두 무료관람을 할 수 있다.
가운데 유엔깃발이 있고 좌우로 11개 국가의 국기가 걸려있다.
바로 22개국 한국전쟁 UN참전국의 깃발이다. 전투병을 파병한 국가가 16개국이고 의료지원국 6개국 그래서 22개 국가이다.
미국, 캐나다, 콜롬비아, 스리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영국, 터키, 프랑스, 남아프리카공화국, 에디오피아,
호주, 뉴질랜드, 태국, 필리핀 (전투) / (의료지원) 독일,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인도
왜구를 대파한 진포대첩에 왠 전투기와 탱크가 있는지 의아해 할 수 있다.
2006년경 국방부에서 매향리 사격장의 대체부지를 물색하다가 군산시 옥도면 직도가 새로운 사격장으로 선정되면서,
지역민 반대를 무마하고 보상하는 차원에서 국방부와 해경의 전투 장비 13종 16대를 무상대여 함으로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위봉함 관람시 제일 마지막에 이를 합리화해주는 애니메이션을 보여준다. 크게 공감되지는 않지만 국뽕으로 이해한다.
아쉬운 것은 원래 관람로가 있는 것으로 보아 내부 관람도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눈이 많이 와서 그런지 개방하고 있지 않았다.
군산 외항은 크게 따로 있고 이곳은 군산 내항으로
일제강점기에 간조와 만조의 수위 변화와 무관하게 대형선박을 접안시키기 위해 조성한 뜬다리부두(부잔교)가 있다.
군산항을 통한 대량의 쌀 수탈의 전형적인 증거인 셈이다. 국가등록문화제 제719-1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량으로 쌀을 옮기기 위해 머리를 쓴 것이다.
이동네 이름인 장미동(臧米洞)이다. "쌀을 쌓아두는 동네"라는 의미다. 쌀을 배에 싣기전에 보관하는 창고가 많았다는 뜻이다.
군산내항 뜬다리부두 등록문화재 제719-1호
군산내항 호안시설 등록문화재 제719-2호
군산내항 철도 등록문화재 제719-3호
구) 제일사료공장 등록문화재 제719-4호
경기화학약품상사 저장탱크 제719-5호
우리나라 한화디펜스의 K9 자주포는 세계적인 수준의 전차가 되었다.
독일의 PzH2000 이 자주포 1위이긴 하지만 K9 자주표는 연사속도 등 여러 측면에서 성능이 아주 미세하게 뒤쳐지지만
가격은 Pzh2000 에 비해 1/4 수준으로 아주 저렴하다.
가격 뿐만 아니라 무게 또한 K9 자주포가 PzH2000 자주포 보다 가벼워서 기동성 및 운송 면에서 유리하다.
PzH2000 의 탄약 적재량, 연사 속도, 사거리 TOT 등 많은 부분에서 역세이나 가격대비 성능은 압도적이다.
노르웨이, 핀란드, 에스토니아, 폴란드, 이집트, 터키, 인도, 호주 등 수출 성과도 좋다. 조만간 세계1위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이런 미국장비들을 미국으로부터 인수받아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M110 8인치 자주포는 M4전차를 변형하여 8인치 곡사포를 탑재한 포병용 화포로 미국에서 1957년에 개발하여
월남전에서 최초 사용되었으며 우리군은 1966년 윤군에 자주포 대대를 창설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인수받아 운용하였다.
M110 8인치 자주포는 우리 군이 보유했던 가장 큰 구경의 화포로 1971년 한국군 장비현대화 계획에 따라 야전에 배치해
전방 군단을 지원하는 주요 화력으로 자리매김했었다.
패튼전차 M48A2C는 1955년 양산한 M48A2 개량전차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1958년에 생산되었으며 2007년말 퇴역하였다.
M548 탄약운반 장갑차는 1960년 미국 FMC사(社)에서 탄약을 포함한 다용도 물자 운반용으로 제작되었다.
1971년 한국군 장비현대화 계획에 따라 이후 8인치 자주포 1문당 탄약운반 장갑차 1대씩 배치하여 운용했다.
미국 FMC의 제품으로 Landing Vihicle Tracked의 약자이며 특수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병력수송을 위한 수륙양용 장갑차다.
대한민국 해병대는 1974년부터 이 장비를 미국으로부터 도입하여 상륙작저용으로 운용하였다.
신라 흥덕왕때 오늘날의 완도에 청해진(淸海鎭)을 건설하고 서남해안의 해상권을 장악한 장보고(785-846) 장군
그의 고향이 어디인지, 그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른다. 당나라에서 인정받은 장수가 되었으나
20대 후반 고국에 돌아와 흥덕왕에게 신라 사람을 노예로 팔지 못하게 하겠다며 적당한 직책을 달라고 건의했고
청해진의 총 책임자인 대사로 임명되었다. 청해진은 일본의 규슈와 당나라의 영파 등 장쑤성 일대를 잇는 해상의 요충지였다.
당나라와 일본을 잇는 중계무역을 벌였고 큰 무역활동을 벌인 탓에 당나라에는 신라방 외에 전용숙소인 신라관이 있었고
신라 사람들이 전용하는 사찰과 장원(莊園) 등이 있기도 했다.
최무선은 한국 역사상 최초로 화약 개발에 성공하였고 화약 무기를 만드는 관청인 화통도감에서 화약을 이용한 화포, 불화살 등
여러 종류의 화약 무기를 만들어 왜적이 침입했을 때 사용해 승리의 밑거름이 되었다.
다만, 태조실록에 의하면 화약의 제조법과 염초의 채취 방법 등을 기술한 저술을 공개하지 않고 아들 최해산에게 물려주어
최해산은 태조 때부터 군기시소감(軍器侍少監)으로 등용되어 조정의 직무에 활용하였다고 하나 이 책은 전하지 않는다.
조선 선조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해전에서 왜군을 격파하여 승리로 이끈 조선의 명장 충무공 이순신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충무공(忠武公)이라는 시호를 받은 무장은 이순신을 비롯하여 조영무, 남이, 구인후, 정충신, 이준, 김시민,
이수일, 김응하 등 아홉 명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충무공 하면 오직 이순신 장군만을 떠올린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에게 참담한 패배를 당했던 왜군 장수 와키사카 야스하루가 후손에게 남긴 말이있다.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 사람도 이순신이고,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모하고
숭상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다.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도 이순신이고, 가장 차를 함께 마시고 싶은 사람도 이순신이다.”
F-4D는 대한민국 공군이 1969년 미 공군으로부터 인도받은 다목적 전투 폭격기로써 3시간 이상의 장기간 체공 능력과
4개의 무장장착대, 동체 양 옆에 터보제트 엔진으로 우수한 기동력을 갖춘 장비다.
1973년 우리 공군에 도입되어 주로 대간첩작전, 병력 및 보급품 수송, 수재민 및 조난어선구조, 탐색구조 활동 등
많은 활동을 한 수송기이다.
무안에 있는 밀리터리테마파크에 있는 기종들이 여기 다 있다. 게다가 여기는 무료관람이다. 군산여행의 메리트는 여기에 있다.
군산내항 일제에 의한 조선의 쌀 수탈의 현장에 시대를 막론한 다양한 국뽕으로 가득차 있다.
이제 진포해양테마공원의 하이라이트인 위봉함 관람을 시작한다.
위봉함은 1945년 1월 16일 미국에서 LST849함으로 건조되어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상륙작전 등에 참전한 군함이다.
1959년 1월 13일 미국으로부터 인수되어 LST676위봉함으로 명명된 후
대한민국의 주력상륙함으로써 상륙작전과 수송작전을 수행하였다.
1965년부터는 월남전의 백구부대 일원으로 전투에 참전하였고,
지난 48년간 전투 활동과 해군 사관생도와 해군 장병들의 훈련 및 실습활동 지원을 통하여
국토방위 등 대한민국 해군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2006년 12월 31일 명예롭게 퇴역한 함정이다.
성인 1,000원 / 청소년 군인 700원 / 어린인 200원의 관람료가 있으나
통합권으로 이용가능하며 우리처럼 전북투어패스를 사용해도 된다.
아쉬운 것은 위봉함을 개조해서 박물관으로 바꿔 놓아서 해군상륙함으로서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진짜 실물하고 비슷해서 깜짝 놀란 해군복장의 선원이 제일 먼저 반겨준다.
요런 포토존도 있고...
진포대첩 무료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 체험도 할 수 있다.
막내 민수에게 한번 해보자고 했더니... "아빠 이젠 난 이런 나이가 아니야!"
이런 나이가 어딨어? 아빠 여행다니면서 VR체험 많이 하는데...
막내 민수는 이미 저만치 달아나 있다.
중국에서 수입할 수 밖에 없었던 화약을 개발에 성공하여 고려말 화통도감을 설치하여 화약무기의 대량 생산 및 화포를 싣고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전함을 건조하였다. 그리고 진포대첩과 관음포해전에서 왜구를 상대로 크게 승리했다.
진포대첩에서는 정박해 있던 함선들을 화포로 격침시킨 것이라면
관음포해전에서는 이동중인 함선들과 붙어 화포로 격침시켰다는 차이가 있다.
승자총통은 1579년(선조 12)에 김지(金墀)가 발명한 지화식화기로 보물 제648호로 지정되어있다.
이렇게 복잡한 순서를 지켜야 하니... 일본 조총에 밀릴 수 밖에...
총통도 크기별로 다양하게 존재하였다.
무게가 많이 나가는 총통은 이렇게 거치식으로 활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세종때 만들어진 로켓 추진 화살인 신기전에 대한 설명도 되어 있다.
고려 말 최무선이 제조한 로켓형 무기인 주화를 개량하여 신기전을 만들었다.
화통도감 : 1377년(우왕 3) 화약제조에 성공한 최무선의 건의에 따라 설치된 화약과 화통을 만드는 일을 맡았던 임시관청이다.
군기감 : 고려와 조선시대 병기 만드는 일을 맡아보는 관청으로 세조가 1466년 군기감을 군기시로 이름을 고쳤다.
신기전 발사 포토존이 있다.
진포대첩(鎭浦大捷)은 지금으로부터 626년 전 금강 하구의 진포(鎭浦)에 침입해 온 왜구(倭寇)들을
고려의 수군(水軍)이 격퇴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이곳 군산(群山)의 현장에서 있었던 해전(海戰)에서의 빛나는 승리로
그토록 오랫동안 고려를 괴롭혀 왔던 해적집단 왜구의 기세는 마침내 꺾이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그 뒤의 이성계(李成桂)의 황산대첩(荒山大捷)과 정지(鄭地)의 남해대첩(南海大捷)도 이 진포대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진포의 전투는 1380년(우왕 6년) 8월 왜구들이 5백척의 대선단(大船團)을 이끌고 진포에 침입하면서 시작되었다.
1만명 이상의 정예 병력으로 추정되는 그들은 큰 밧줄로 배들을 서로 연결하여 묶어 놓고 군사를 나누어 이를 지키게 한 다음,
대부대를 거느리고 연안에 상륙하여 주변의 고을들을 무자비하게 약탈했다.
이들 왜구의 야만적인 약탈로 인하여 우리 백성들의 시체가 산과 들을 덮었으며,
약탈한곡식을 배로 실어 나르면서 흘린 쌀이 한 자 두께가 넘게 땅에 수북이 흘렸을 만큼 그 피해가 매우 컸다.
<고려사(高麗史) 기록>
이들 왜구를 진압하기 위하여 나선 고려의 지휘사령부는 해도원수(海道元帥) 나세(羅世)와 심덕부(沈德符),
그리고 최무선(崔茂宣) 이었다.
이들은 전함 1백척을 거느리고 진포로 달려와 왜구를 공략하였다.
이 때 최무선은 자신이 만든 화포(火砲)를 사용하여 함포사격을 통해 왜구의 배들을 불태워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진포해전은 세계 해전사에 처음으로 화포를 사용한 전투였으며,
화력 기동 전술과 해상 포격전의 시초를 열어놓은 역사적인 해전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보다 42년 앞선 백년전쟁 당시 1338년 Arnemuiden 전투에서 영국함대가 대포와 핸드캐논을 쓴 것이 최초다.
진포대첩 고려의 주력 배였던 누전선(樓戰船)은 이후 판옥선의 전신이 되었다. 원정을 떠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고 견고했다.
세계 해전의 역사 "바다를 제패하는 자가 세계를 제패한다(Who Rules the Sea, Rules the World)"
1. 살라미스 해전(BC480) 그리스, 바다를 지배하다!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해전으로 3차 페르시아 전쟁중 아테네 함대를 주력으로 한 그리스 연합 해군이 살라미스 해협에서 우세한 페르시아 해군을 괴멸시켰다. 이후 그리스는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지중해의 강자로 군림하게 된다.
2. 레판토 해전(1571년) 16C 신성연합, 세계의 주도권을 가져오다!
함포를 장착한 유럽 최초의 해전으로 역사의 주도권이 동양에서 서양으로 옮겨지게 된 해전이다.
아우스트리아가 지휘하는 베네치아, 에스파냐와 교황청의 연합함대는 함포를 사용하여 코린트만(灣) 레판토 앞바다에서
알리 파차가 지휘하는 오스만 투르크 함대를 공격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오스만제목의 유럽 진출이 실패하면서 유럽은 기독교 문명을 지킬 수 있었다.
3. 칼레 해전(1588년) 스페인 무적 함대의 몰락, 패권을 잃다!
유럽 최고의 강호로 군림하던 스페인을 몰락시키고 승리한 영국을 강대국이 되게 한 해전이다.
영국의 드레이크 제독은 대규모 스페인 함대와 영국해협 주변인 칼레지방 그라블린 앞바다에서 해전을 치러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스페인은 점점 해양력을 잃게 되었고, 영국은 새로운 해양 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4. 트라팔가르 해전(1805) 넬슨 제독, 나폴레옹의 야심을 꺽다!
영국의 전형적인 해상 접근전술로 나폴레옹의 영국 침공을 좌절시킨 해전이다.
영국의 넬슨 제독은 뛰어난 지략으로 나폴레옹의 영국 침공계획을 좌절시켰는데,
이 해전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는 많은 해군을 잃었다.
이후 19세기 내내 영국은 제해권을 장악했고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했다.
5. 유틀란트 해전(1916) 제1차 세계대전, 대규모 전함 전면전
유트란트 해전은 최대의 세력이 최강의 화력과 최고의 전술로 맞붙은 해전이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일어난 최대의 해전으로 영국은 전함24척, 순양함16척, 독일 함대는 전함22척, 순양함 16척 등을 동원하여
전면전을 치렀다.
영국은 수적으로 더 많은 손실을 입었으나 이후에도 대서양의 지배권을 유지했고 독일은 잠수함전에 의존하게 되었다.
6. 한산도 해전(1592년 선조25) 한산도대첩
7. 미드웨이 해전(1942) 일본의 대패, 미국 태평양을 장악하다!
1942년 6월 벌어진 미드웨이 해전은 규모와 희생의 크기로 볼 때 제2차 세계 대전 중 최고를 기록한 해전이다.
태평양의 전략적 요충지인 미드웨이 섬을 공격하려던 일본의 항모전단이 미국 항공모함 함재기의 공격으로 궤멸되어
태평양전쟁의 판도를 바꾼 해전이다.
우리나라 해전의 역사
1. 국제 해상 무역왕 세계인 장보고
신라 무장으로 828년 해적들의 인신매매를 근절시키려고 해로의 요충지 청해(완도)에 진을 설치하고
청해진 대사로 해적을 완전 소탕했다. 840년 일본에 무역사절을, 당나라에 견당 매물사를 보내어 국제무역을 주도했다.
해상왕의 활발한 해양활동은 신라의 조선, 항해 기술을 발전시켰다.
나아가 해상 국제무역을 주도하여 동아시아 최초로 해상질서를 확립했다.
2. 조선의 바다를 수호한 충무공 이순신
이순신(1545-1598) 조선시대 장수로 임진왜란 때 옥포대접, 사천포해전, 당포해전, 당황포해전, 한산도대첩, 명량해전 등
수많은 해전에서 왜적을 물리치고 승리하여 전란을 극복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한산도 해전
1592년 7월 임진왜란시 이순신은 견내량에 정박중인 일본의 대선단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한다.
학익진(학이 날개를 펼친 듯이 전선으로 적을 포위하는 전술) 함포공격으로 일본 전함 59척을 격파하는 대승리를 거두었다.
세계 4대해전의 하나로 군사전략가 이순신의 전술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전투이다.
참고로 세계4대 해전은 살라미스 해전, 칼레 해전, 트라팔가 해전, 그리고 한산도 해전이다.
3. 연평 해전
제1연평해전
1999년 6월 서해 NLL 근처 해상에서 북한의 선제 기습공격에 우리 해군은 침착한 반격으로 14분만에 승리한다.
제1연평해전을 통해 우리 해군이 북한보다 월등한 전력과 전술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제2연평해전
2002년 6월 서해 NLL 근처 해상에서 북한은 의도적인 침범 이후 기습공격으로 우리 해군에게 인명 피해를 주었다.
하지만 우리 해군은 투지와 정신력으로 대응해 NLL를 사수하고 끝내 승리한다.
여러개의 포토존을 지나 홍보 영상관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진포대첩을 기념하는 공원에 퇴역 군장비들이 있는 이유를 합리화하는 홍보영상 관람을 마치고... 위봉함 밖으로 나왔다.
갑판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길이 막혀 있어서 관람은 불가능했다. 다만 예전에는 관람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위봉함에 오를 수 없으니...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다.
그 앞에 강렬한 색상의 커다란 닻이 전시되어 있다. 압도적인 비쥬얼로 시선을 끈다.
군산내항을 방문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명칭이야 진포해양테마공원이지만 일제 쌀 수탈의 역사적인 현장이라는 사실이다.
함께 묶어있는 국가등록문화재 4개도 찾아보고 우리민족의 아픈 역사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각종 국뽕을 장착하는 경험은 덤으로...
1950년대 생산되어 1977년 우리공군에 도입된 헬리콥터로서 1992년 3월 퇴역하기까지 공수작전, 인명구조 등에 활용되었다.
눈오고 미끄러워서 그런지 다른 관람객들은 많지 않았다.
다만, 진포해양테마공원을 찾아왔다가 퇴역 군장비들과 위봉함만 둘러보고 떠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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