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산을 조아하는 사람
 
 
 
카페 게시글
일반 게시판 스크랩 늙은 군인의 노래 - (원곡) 양희은 / 홍경민
장수(jsa) 추천 0 조회 75 14.01.01 21:1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996년8월26일오늘역사] - 서울지방법원이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게 반란·내란수괴죄 등으로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하다.

  
5.18 민주화운동 전남도청 발포 당시 상황 (85초영상)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경 발포
(위키백과=13시 00분: 도청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서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가 시작됨)

5월21일 전남도청 앞 발포 후 공수부대원 중 일부는 주변 건물 옥상에서 저격병의 임무를 수행했다. 

당시 11공수여단 62대대 박모 소령은 "도청 앞 사격이 있은 뒤 주변 건물에 저격병을 배치했다"고 진술했다. 

같은 대대 소속 한모 일병은 "광주관광호텔 옥상에 4명이 1조로 편성돼 올라갔으며 사수의 지시에 따라 

조준경이 달린 총으로 주동자나 총기를 휴대한 시위대를 향해 조준사격했다"고 증언했다.

연합뉴스 2007년 7월 24일자 기사 (5.18 '충정명령'은 무차별진압 작전)

1. 21일 사망한 사람들은 대부분 총격에 의해서 사망했습니다. 13명이 총상에 의해 사망했다는 것은 틀렸습니다.

2. 신군부는 도청 앞, 전남대 앞 뿐만 아니라, 금남로 주변 빌딩에 4인 1조로 저격수를 배치해서 조준사격했습니다.

3. 발포하기 직전까지는 공수부대가 착검한 상태로 진압했습니다.


 
늙은 군인의 노래 - 홍경민
 
(원곡)늙은 군인의 노래 - 양희은 (1978년)



(원곡) 늙은 군인의 노래 (1976년)


작사/작곡 김민기

노래        양희은


1.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피고 눈내리기 어언 삼십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죽어 이 흙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2.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 마라

너희들은 자랑스런 군인의 아들이다

좋은 옷 입고프냐 맛난 것 먹고프냐

아서라 말아라 군인아들 너로다  

아 ~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3.

내 평생 소원이 무엇이더냐

우리 손주 손목잡고 금강산 구경일세

꽃피어 만발하고 활짝개인 그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 내 청춘 다갔네

아 ~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4.

푸른하늘 푸른산 푸른강물에 검은얼굴 

흰머리에 푸른모자 걸어가네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우리 손주 손목잡고 금강산 구경가세

아 ~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펌]http://blog.ohmynews.com/gompd/150108


퇴역 부사관의 회한 담긴 늙은 군인의 노래 


이 노래에 가사를 쓰고 곡을 붙인 김민기 씨는 70년대 저항가요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죠. 

1974년 10월, 잠시 노래를 접어 두고 군대에 간 그가 배치를 받은 것은 용산의 미군방송(AFKN)이었습니다. 미군에 배속된 한국군 (카투사, KATUSA) 신분으로서였죠. 하지만 그가 그곳에 있었던 시간은 채 두 달이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삼선개헌에 반대하던 가톨릭 단체들의 집회가 명동성당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곳에서는 그의 저항가요들이 불릴 예정이었죠. 하지만, 정보가 미리 새면서 행사는 무산 되었고, 김민기 씨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수사기관이 그의 입대 사실을 알고 군 당국에 통보하면서 그의 짧았던 카투사 생활은 끝이 났습니다. 


보안대로 끌려가 조사를 받고 그가 재배치되었던 곳이 강원도 최전방,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의 바로 그 원통이었습니다. 사단영창에서 보름을 지내고 12사단 51연대 1대대 중화기 중대에 배치된 그는 여느 소총수들과 같이 고달픈 군 생활을 해야 했죠. 그리고 그곳에서 삼십 여 년의 군 생활을 접고 전역을 하는 병기 선임하사의 부탁을 받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 대가는 막걸리 두 말이었죠. 1976년 겨울, 이렇게 탄생한 노래가 바로 ‘늙은 군인의 노래’였습니다. 


'늙은 군인의 노래'가 수록된 양희은의 앨범, 1978년.

젊은 청춘을 푸른 군복에 바친 한 부사관의 회한과 아쉬움, 소박한 나라사랑의 마음이 담긴 이 노래는 곧 병사들에게 구전되어 불려졌습니다. 

그가 제대한 후 ‘늙은 군인의 노래’는 1978년 양희은의 이름을 빌려 문공부 심의에는 통과하지만 곧 가사가 불건전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됩니다. 군부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이라 


“흙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 내 청춘” 


등의 약하고 패배주의적인 가사가 군인들의 사기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였습니다. 유신체제하에서 국방부 장관 지정 금지곡 1호가 된 이 노래가 그 생명을 이어간 것은 독재에 저항하던 대학가와 노동현장 이었습니다. 원래 가사속의 군인은 투사, 노동자, 농민, 교사 등으로 바뀌어 불리어지면서 대표적인 저항가요로 탈바꿈하며 오늘날까지도 애창되고 있습니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