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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5장 천지불인 (天地不仁),
다언삭궁(多言數窮)
와우! 드디어 노자가 던진 화두를 풀다.
천지불인 (天地不仁),
다언삭궁(多言數窮)에 대하여
1. 천지불인(天地不仁)
어려서부터 가슴이 답답한 병을 앓아왔다.
특별한 병은 없다고 했다.
신경증 또는 마음의 병이라고 했다.
어려서 우리집은 다툼이 참 많았다.
특히 부모님이 많이도 다투셨다.
어느 날 문득 숨쉬기가 어렵고
가슴이 답답한 증세가 나타낸 이후로
경중은 있었지만
평생을 그러한 증세에 시달려왔다.
그러다보니 남들은 알지못하지만
사는 게 참으로 힘들었다.
혹시나 노자가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해줄까 하여
대학생활 내내 거의 도덕경을 끼고다녔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어서
책을 책꽂이에 꽂아두고
버려둔지가 수십년이다.
그 사이 방송에서
도올선생의 도덕경 강의도 들어봤지만
와닿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오늘 홀로
뒷동산을 산책하던 중에
문득 천지불인이라는 네글자가
불현듯 뇌리에 스치며
"아! 이거다!"하는 생각에 이 글을 적는다.
천지불인은 노자 도덕경 5장의 앞 구절이다.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천지불인, 이만물 위추구)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성인불인, 이백성 위추구)
'천지가 어질지 않아서
만물을 추구(芻狗, 풀강아지)로 여긴다.
성인도 어질지 않아서
백성들을 짚으로 만든 강아지와 같이 여긴다.'
이는 통상적인 해석인데
뭔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아둔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왔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이것은 이런 뜻이 전혀 아니었다.
이러한 잘못된 주석은
한자 不과 仁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不(아니 불)은 보통 非(아닐 비)와 같은 뜻으로 새기지만 두 글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不은 그 자형에서 보여지듯이 위를 향해 가고있지만 끝에 도달하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즉 불완전하다는 뜻이다.
不이 어떤 수준에 도달하면 丕(클 비)가 되는데, 丕는 '크다, 받다, 처음, 으뜸 등'의 뜻이 있는 글자이다.
仁은 보통 어질다는 뜻으로 새기고있지만, 그 자형에서 보듯 그 본 뜻은 둘(二)이 이어나간다(亻)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말 '어질다'는 뜻도 '이어질만 하다'는 뜻으로 관계를 맺어도 좋을 정도로 착하다는 뜻으로 생각해볼 수있다.
그래서 도올도 지적했듯이 한자 仁은 '씨'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참고로 한방에서 杏仁(행인)은 살구씨이다.)
부족한 둘이 관계를 맺어 부모보다 나은 제삼자인 2세를 통해 진화해나가고자 하는 뜻을 응축한 것이 '仁(씨)'이다.
人도 그러한 뜻을 담은 것으로 본다면 人과 仁은 같은 뜻의 글자이다.
천지(天地) 즉 하늘과 땅이 만나서 만물을 낳았는데,
그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완전한 존재는 못되는데 만물이 어찌 완전하다고 하겠는가?
그러므로 불완전한 만물을 낳은 천지(天地)도 완전한 존재는 아니라는 뜻이다.
천지가 완전한 존재라면 자신을 닮은 완전한 만물을 낳았거나 만물을 낳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천지불인(天地不仁)은 그러한 뜻을 말하는 것이다.
불완전한 '天과 地'가 만나서 씨를 만들고 거기서 만물이 태어났다는 뜻이다.
이런 면에서 하늘과 성인의 완전성을 전제하는 공자와
천지, 성인조차 불완전하다고하는 노자는 다르다.
성인(聖人)도 마찬가지이다.
백성도 결국 하나의 조상(聖人)으로 부터 불어난 것일텐데,
그 조상이 아담과 이브이던, 복희씨와 여와씨이던간에 그들도 완전한 존재가 아니므로 둘이 씨를 만들고 거기서부터 만백성이 퍼져나왔다는 뜻이다.
노자는 천지던 성인이던 간에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완전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로 인식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천지도 성인도 불완전한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도덕경2장에서 '아름다움(美)이라는 것도 기존의 추한 것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위하여 나가는 것(斯)이므로 지금은 추한 것(惡)이라고 말할 수있고, 선함(善)이라는 것도 기존의 불선함(不善)으로부터 선함을 위하여 나가는 것(斯)이니 지금은 불선(不善)하다 말할 수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왜 천하나 성인은 그로부터 나온 만물과 백성을 추구(芻狗, 풀강아지)로 여긴다는 것인가?
도덕경 주석에 있어서 하상공과 함께 동서고금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받고있는 중국 위나라 때의 사람으로 스물세살에 요절한 천재소년 왕필과 그의 주석에 기초하고있는 도올은 '천하나 성인이 스스로 낳은 만물과 백성을 풀과 강아지처럼 하찮고 모질게 여기므로 어질지 못한 존재'라고 해석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이는 추구(芻狗)를 '풀과 강아지' 또는 '풀로 만든 강아지'라고 잘못 해석한데 따른 것이다.
한편으로는, 옛날에 추구(芻狗)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는 제사때 바치는 풀로 만든 강아지인데, 제사때까지는 소중하게 다루지만 제사가 끝나면 이를 저잣거리에 갖다버려서 사람들이 밟고 다니곤했었는데 여기서의 추구가 그것 이라는 설명도 있다.
옛날에 그러한 풍습이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거니와
제사에 바친 신성한 물건을 사람들이 밟고다니게 갖다 버린다는 것이 상식에 잘 맞지 않기때문에 이러한 설명은 도덕경의 이 구절을 해석하기위해 사람들이 지어낸 얘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면 추구는 무슨 뜻인가?
芻(꼴 추), 狗(개 구)이니, 풀 강아지라는 뜻인데
이는 강아지풀을 한자로 옮긴 것이라고 본다.
중국어로도 강아지풀(가라지)은 狗尾草(강아지 꼬리와 같이 생긴 풀)라고 하니 노자가 말한 추구는 강아지풀이 분명하다.
그러면 천하나 성인은 왜 스스로 낳은 만물과 백성을 강아지풀로 여긴다는 말인가?
강아지풀 즉 가라지는 볏과의 식물로 조상들이 이를 개량하여 곡식인 벼라는 품종을 얻었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그래서 예수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추수 때에 알곡은 거두고 가라지는 불태워 없앤다고 말했을 것이다.
추수때까지는 알곡과 가라지를 들판에서 함께 자라게 두지만 추수때에 그 결실을 보고 판별하여 알곡은 그 씨를 이어나가지만 가라지는 태워버리겠다는 말씀이다.
추구를 제사때 쓰던 물건이라고한 위의 설명이 이러한 가라지의 비유와 딱 들어맞기는 한다.
선별하여 알곡, 즉 정수(core)는 하늘에 바치고, 나머지는 불태우거나 저잣거리에 내다버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산스크리트어로도 gaaritra(가리뜨라)는 '쌀, 곡식, 알곡'의 뜻이고 gaargii(가르기이)는 contemptuous metronymic(업신여기는 모계이름을 딴, 옥스포드사전 354p)이니 놀랍다.
산스크리트어 단어에 상상력을 좀 더해보면 조상들이 가라지를 벼로 품종 개량하는 과정에서 마음에 안드는 씨앗은 '니미랄 가라지!' 하면서 버렸다는 것을 사전은 그렇게 적은 것이 아닐까?
한자 芻狗를 곰곰히 잘 살펴보면 이러한 뜻이 더 명확해진다.
★芻(꼴 추)
芻는 勹(쌀 포)속에 左의 옛 글자를 넣고 이를 두개 포개 놓았다.
左는 자전에 '왼쪽, 돕다, 아랫쪽 방향, 옳지 않음, 멀리함 등'의 뜻으로 나온다.
그러므로 左는 '그렇지않은 것들을 그렇게 되도록 돕는다'는 뜻을 내포하고있는 글자이다.
이러한 글자를 위 아래로 거듭 적은 것은 그렇게 추려서 옳게 되간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면 우리말 '옳다, 바르다, 올바르다'는 뜻은 '그렇게 좋은 것을 발라서 하늘로 올린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芻의 反切(반절: 줄이기 전의 음)은 '모퉁이를 처낸다'는 의미에서 測隅(측우)절이고, 옛음은 'tshrjug(츠류그)'이다.
추려간다는 뜻이리라.
비슷한 모습의 글자들을 살펴본다.
글자중에 勻(고를 균, 두루퍼질 윤)은 둘을 감싸서 함께 키우는 모습인데, 알곡과 가라지가 들판에서 함께 자라고있는 모습이다.
匈(흉할 흉), 勿(말 물), 匃(빌 개) 등은 추려져서 떨어지는 흉한것, 되지 못한 것, 거지꼴 등으로 우리말 별꼴, 꼴찌, 꼴값 등과 통하는 가라지들이다.
가을이 절정에 달하면 어느날 문득(聞得), 홀연(䓤然)히, 황홀(慌惚)하게 하나가 추려 올려지게되고, 나머지는 떨어져 가라지가 될 터인데, 이렇게 추출(抽出)되어 추려올려진 것을 酋(으뜸 추)라하고 이것이 알곡이다.
이렇게 생명의 씨 이어가는 이치를 易(쉬울 이, 바꿀 역)이라하고 뭇생명들의 추려지기위한 약동과 몸부림을 然(그럴 연)이라한다.
그러므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은 그러하지 못한, 즉 무위(無爲)의 생명들이 그러하기위하여 씨이어가면서 스스로를 불태워가는 것이지 자연속에 숨어서 유유자적하자는 것은 아니다.
★狗(개 구)
犬과 句를 합친 글자이다.
犬(개 견)은 사람을 뜻하는 大의 오른쪽 위에 • 을 찍었고,
개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saarameya(사라메야)'에도 '측정하다'는 뜻의 'meya(메야)'가 들어있는 것으로 봐서, 개는 예로부터 사람을 판별하는 존재라고 여긴듯하다.
句(글귀, 갈고리, 갈퀴 구)는 '감싼다'는 의미의 勹와 '입, 구멍, 땅 등'을 뜻하는 口를 합친 글자이다.
감싸여진 것 속의 구멍이나, 감싸여진 것에서 뭔가를 찍어내는 것을 묘사한 글자이다.
그러므로 句는 탈출구이거나 갈고리이다.
한 구절의 좋은 글귀는 우리를 때때로 어둠속에서 건져주기도하니 글귀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개와 갈고리를 합친 狗는 무슨 뜻을 나타내기위한 글자일까?
手(손 수)와 句를 합치면 拘(잡을 구)가 된다.
땅에서 붙잡는 것은 구속이 되지만,
위에서 갈고리로 찍어 올리는 것은 탈출이나 해방이 된다.
그러면 狗는 '神이 개(dog of god)나 갈고리로 사람을 잡는다'라는 뜻은 아닐까?
그렇다면 '神의 개, 神의 갈고리'는 과연 무엇일까?
우주를 메타버스로 본다면, 이 세상을 창조한 상위 메타버스의 존재, 즉 神은 명령어인 '말씀(word)'으로 하위 메타버스인 이 세상을 만들었으니,
이 세상에서 탈출하는 암호(pass word)도 분명 말씀으로 적어놓았을 것이다.
"神의 갈고리는 글귀이고, 글 속에 그리 가는 길(path)이 있다.
하늘 그리로 닿은 길(road), 그(其)리 이어주는 열쇠(key)가 글 속에 있다는 말씀이니, 열심히 글을 읽고(read) 그 길이 인도(lead)하는 곳에서 숨겨진 암호(password)를 찾으면 어두운 길(path)에서 나가게(pass)될 터인데 그것을 일컬어 도(道)라한다."
★芻狗(추구)
천지가 만물을 낳고, 성인이 백성을 낳은 이유는 이러한 도(道)를 추구하기위함이라는 뜻이 된다.
芻狗(추구)를 追究(추구)로 바꾸면 위 문장의 뜻이 명확해진다.
영어로 추구하다는 pursue, seek인데 우리말 "풀씨, 씨이어키워!"와 음이 비슷하다.
가라지의 씨를 전대(purse)와 같은 이 땅, 지구에서 이어서 키워 '좋은 니의 씨(nice)' 볍씨를 얻고, 이를 심어서 사람을 살리는 쌀(rice)을 얻겠다.
이것이 芻狗(추구:강아지풀)의 본 뜻이라면 억지일까?
이를 종합해서 도덕경의 위의 구절을 다음과 같이 새겨볼 수있겠다.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천지불인, 이만물 위추구)
아닌 즉, 불완전한 존재 천과 지가 관계하여 씨를 만들고 여기서 만물이 나왔는데 이는 가라지를 개량하여 벼를 만들듯이 천지가 스스로를 개량해 완전을 추구해나가는 과정이며,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성인불인, 이백성 위추구)
불완전한 존재 성인이 관계하여 씨를 만들고 여기서 만백성이 나왔는데 이는 성인이 스스로를 개량해 완전을 추구해나가는 과정이다.
노자의 사상에 완전히 부합하는 멋진 해석이다.(자화자찬)
다시 나의 문제로 돌아온다.
어려서 내게 답답한 증세가 시작된 것은 다투는 부모에 대한 실망과 원망이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있겠다.
부모의 잦은 다툼은 부모님을 하늘과 땅으로 여기던 어린 나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이었었다.
부모가 자식 앞에서 어떻게 저리 다툴수 있다는 말인가?
당시의 솔직한 나의 심정이었다.
이러한 실망과 원망은 부모님을 대할 때마다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마음 속에 항상 자리하고있는 극복하지못한 상처였다.
또 이런 답답한 증상은 고3때나 재수생 시절 더 심해졌는데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고 재수까지해서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자신에 대한 실망이 신체증상을 가중시켰던 것같다.
이러한 증상은 경중을 달리하면서 나이 60이 다되가는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히고있다.
그런데 天地不仁(천지도 불완전하다)에 대한 오늘의 영감으로부터 내 문제의 해결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으니 어찌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 더우기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겹고 어려운 일인가?
나의 부모님은 그 어려운 시대를 살아내기위해 얼마나 힘드셨을까?
나는 또 답답한 가슴으로 세상을 살아내기가 얼마나 힘들었던가?
그런데 나는 완전한 부모의 상(相)을 내 머릿속에 정해놓고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얼마나 부모님을 재단하고 모멸하여왔던가?
또 완전한 자신의 모습을 머릿속에 정해놓고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얼마나 또 스스로를 재단하고 모멸하여왔던가?
천지만물, 천하만인이 모두 不仁인 존재이지만 주어진 인연속에서 저마다 한걸음씩 분투하며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장하다할 지언정 어찌 모멸할 일이란 말인가?
사사건건 판단쟁이로 살아온 나!
판단과 심판은 나의 몫이 아닌 것을!
"지식의 나무 열매 선악과를 따먹고 선악을 분별하게 된 것이 왜 에덴동산에서 쫒겨날 일인가?"의아했는데
지금와 보니 판단과 심판은 불완전한 존재인 우리의 몫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늘부터는 不仁인 존재, 천지만물, 천하백성, 그리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껴안고 더불어 한걸음씩만 앞으로 나아가자!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2) 다언삭궁(多言數窮)
드디어 도덕경 5장의 뒷구절을 풀 수있게 되었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없는 수수께끼같은 구절이어서 지금까지 그 누구도 제대로된 해석을 내놓지못한 문장이다.
아! 이게 이런 뜻이었다니 놀랍고도 놀라운 일이다.
天地之間 其猶橐籥乎
(천지지간 기유탁약호)
虛而不屈 動而愈出
(허이불굴 동이유출)
多言數窮 不如守中.
(다언삭궁 불여수중)
지금까지의 통상적인 해석은 이렇다.
"하늘과 땅 사이는 그 커다란 풀무와 같도다.
텅 비어서 끝남이 없고, 움직이면 만물이 쏟아져 나온다.
말이 많으면 자주 막히는 법이니, 풀무처럼 속을 비워 지킴만 같지 못하다."
현재의 한자의 뜻에 충실한 해석이지만, 말의 맥락도 맞지않고 무슨 뜻인지 알아듣기도 어렵다.
천지가 만물을 만들어내는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말을 많이 하지마라'는 '처세의 술'이 튀어나오는 것은 어딘가 엉뚱하다.
한자는 그림과 같은 글자라서 그 글자가 담고있는 뜻이 너무 다의적이고, 또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 음도 변화가 많아서 그 본 뜻을 새기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한자 그 글자가 나태내고자하는 본 뜻을 제대로 새긴다는 것은 그 변화된 자형, 변화된 음, 다양한 훈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후에나 가능한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한 연유가 위와 같이 어처구니없는 설명이 그토록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된 이유가 아닌가한다.
이 구절은 이런 뜻이 전혀 아니다.
그러면 도덕경 5장에서 노자가 낸 수수께끼를 풀어보자.
※天地之間 其猶橐籥乎
(천지지간 기유탁약호)
其(기)는 원래 알곡과 쭉정이를 까불르는 도구인 키를 형상화한 글자이다.
猶(유)는 여기서 원숭이라는 뜻이다.
橐(탁)은 전대, 풀무, 절구질 등의 뜻이다.
籥(약)은 피리, 열쇠 등의 뜻이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천지의 사이는 원숭이를 까불르고 절구질하고 풀무질해서 진화시키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아니면 이 세계를 창조한 상위 메타버스의 존재가 보기에는 우리도 넓은 범주의 유인원(類人猿)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을 유태인(猶太人)이라고 하는 것인가?)
그러면 천지가 만물을 만든 이유는 궁극적으로 자신을 닮은 존재를 지어내기위함이니, 그 수단은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절구질)과 코로 들어가는 숨(풀무질)이고,
그 목적은 피리로 연주하는 멋진 음악과 같은 조화(hamony)가 아닐까?
자연(自然)이란 그렇게 불씨같은 생명의 씨 잘 이어서 서로 태워가는 것이다.
그러한 길, 양생의 열쇠가 섭생과 호흡이다.
※虛而不屈 動而愈出
(허이불굴 동이유출)
虛(허)는 비운다는 뜻이다.
而(이)는 말을 잇다, ~뿐, 만약 등의 뜻이다.
不(불)은 아닌 것, 즉 불완전한 존재라는 뜻이다.
屈(굴)은 尸(주검 시)아래에 出(날 출)이 있는 글자로서
'꺽다, 쇠하다'는 뜻으로, 본의는 죽어서 몸둥아리에서 나온다는 뜻이니 세상으로 보내 다시 굴르게 한다는 뜻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 승이 낫다?
動(동)은 움직이다, 옮기다, 변화시키다 등의 뜻이다.
愈(유)는 고치다, 낫다, 나은 것 등의 뜻이다.
出(출)은 내놓는다, 내보낸다 등의 뜻이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비우고, 즉, 덜 된 것은 꺽어서 아래로 내려보내고, 치유된 좋은 것은 내보낸다 즉, 위로 옮긴다'는 뜻이다.
즉, 순환을 통해서 선별하고 정화한다는 뜻의 문장이다.
※多言數窮
(다언삭궁)
多(다)는 夕(저녁 석) 두개를 쌓았으므로, 하루 하루 즉 어떤 과정이 많이 여러번 실행된다는 뜻이다.
言(말씀 언)은 口와 辛이 합쳐진 글자로서,
'말씀, 허물, 기호로 명령하는 것 등'의 뜻이다.
개똥밭에 굴르라는 명령, 말씀?
'전장에서 명령을 전달할 때 깃발을 흔든다'는 뜻의 㫃(나부낄 언)과 통하는 글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多言은 말이 많다는 뜻이 아니라 말씀, 즉 명령을 여러번 실행한다는 뜻이다.
數(수, 삭)은 여러번, 자주 라는 뜻이다.
窮(궁)은 穴(구멍 혈)과 躬(몸 궁)을 합쳐서 '다하다, 가난하고 어렵다 등'는 뜻이다. (목숨)이 다하여 몸이 어떤 구멍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니,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죽어서 먹힌다는 뜻이고, 자궁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새로 태어난다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허물있는 것들은 먹혀서 누군가를 옮기는 힘이 되고 죽은 후 다시 태어나게되는 것을 여러번 반복한다는 뜻이다.
즉, 불가에서 말하는 윤회를 설명하는 문장이다.
※不如守中.
(불여수중)
不(불, 부)는 아닌 것, 불완전한 것의 뜻이다.
如(여)는 같게 되다, 닿다(어떤 수준에 도달하다) 등의 뜻이다.
'크다, 받다, 처음, 으뜸 등'의 뜻이 있는 丕(비)와 통하는 글자이다.
守(수)는 '거두다'라는 뜻이다.
中(중)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天圓地方, 천원지방)'할 때의 땅을 나타내는 口를 丨(뚫을 곤)이 뚫고 올라가는 모양으로 '가운데, 안, 진행 등'의 뜻이 있는 글자이다.
즉, 화살이 과녁에 적중하듯 어떤 수준에 도달하고, 시험에 합격하여 다음 단계로 진행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아닌 것들이 어떤 수준에 도달하여 위에 있는 것들과 같아지면 위에서 거두겠다'는 뜻이다.
졸업시험을 통과하고 상급학교 학생들과 같은 수준이 되어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모습을 연상하면 좋겠다.
(3)결론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노자가 도덕경 5장에서 하고자하는 말은 이런 것이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가라지를 개량하여 벼를 만들듯, 천지지간에서 원숭이 즉, 유인원이 온갖 환난신고, 우여곡절을 통해 인간으로 진화했듯, 인간도 피나는 노력과 수행을 통해서 다음 단계의 존재, 즉 신선(神仙)이 될 수 있다"
仙(신선 선)은 㒨의 약자이니 神이 그 영혼을 한 단계 높은 세상으로 거두어간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그러면 㒨(신선 선)은 도덕경 5장과 노자의 사상을 압축하여 함축하고 있는 글자가 된다.
또 仙(신선 선)은 鮮(신선할 선)과 성조, 반절까지 같은 완전히 똑같은 음의 글자이다.
朝鮮이라는 나라이름도 하루 하루 신선해져서 궁극적으로 신선이 되자는 뜻을 담아 지은 이름으로 볼 수있겠다.
그러면 '신선의 도'를 설파하고있는 노자는 도올선생의 주장처럼 고조선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하겠다.
또 <설문>은 眞(참 진)을 '신선처럼 변하여 하늘에 오르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니 仙은 眞과도 통하는 글자이다.
㒨을 나누어 보면, 囟(정수리 신)을 위에서 두 손으로 거두어 가는 그림아래에 사람을 뜻하는 大의 사타구니로 태아를 뜻하는 巳가 들어가는 모습을 그렸고, 두세계가 이어져있다는 뜻으로 왼 쪽에 亻을 그려넣었으니 그렇다.
그렇게 보면, 노자의 사상은 석가의 사상과 크게 다르지않게 된다.
이렇게 새겨야만 문장의 맥락도 일관되고 노자의 사상에도 딱 들어맞는 멋진 해석이 되지않겠는가?(또 자화자찬)
우리 모두 바늘구멍같은 하늘 구멍(穹, 하늘 궁)을 통과하여 신선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