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 근처 신천변에 자주 나간다.
며칠 전,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수성교 부근을 지나는데
아주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폈다.
가까이에서 남녀 네 분이 펜풀루트를 연주하고 있었다.
어떤 모임의 식전 행사에서 연주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하였다.
연주가 끝나기를 기다려
나는 '좋은 연주,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더 듣고 싶다고 청했다.
그들은 몇 곡을 더 들려주었다. 주로 포크송들이었다.
야외임에도 불구하고 네 개의 악기 소리가 합쳐지니
음량도 제법 풍부했고 공명도 어느 정도 이루어져 듣기가 좋았다.
연주 모습을 폰으로 찍고 싶다며 양해를 구했다.
'뒷모습이라면 괜찮다'는 여자분들의 뜻을 존중해 한 컷 찍었다.
색소폰을 연주하는 장면은 심심찮게 볼 수 있고
드물게는 하모니카나 트럼펫을 연주하는 것도 구경한 적이 있다.
펜플루트를, 그것도 이처럼 여러 사람이 연주하는 것을 보다니
정말 뜻밖이었다. 우연이었다.
내친 김에 팬풀루트(Pan Flute)에 얽힌 이야기 몇 줄 적는다.
Pan Flute / Pan Flute / Pan Flute / Pan Flute / Pan Flute / Pan Flute / Pan Flute
판(Pan)은 그리스 신화의 목신(牧神, 목동과 가축의 신)이다.
반인반수(半人半獸, 사람과 짐승의 모습을 한몸에 가짐)의 모습으로
산과 들판에서 미소년이나 님프(Nymph, 요정 또는 정령이라고 함)를
쫓아다니는 호색한이다. 변덕스럽고 화를 잘 낸다.
수염이 난 얼굴, 이마에 난 뿔, 털이 북슬북슬한 굽은 다리, 두 발굽
등은 염소나 양을 연상시킨다.
판을 낳은 ‘나무의 님프’ 드리옵스(Dryops)는
아기의 기괴한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 내다 버렸다.
그러나 아버지 헤르메스(Hermes)는 아이를
올림포스(Olympos, 그리스 신화에서의 궁전)로
데려가 다른 신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 주었고,
신들은 모두 아이를 보며 즐거워하였다.
신들은 ‘우리 모두를 즐겁게 만들었다’고 하여
아이에게 ‘판’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시링크스(Syrinx)는 ‘라돈 강의 신’ 라돈(Radon)의 딸로
‘나무와 숲의 님프’이다.
아름다운 용모 때문에 많은 신들의 구애를 받았다.
그러나 시링크스는 순결과 정절을 상징하는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의 숭배자였기 때문에
몸과 마음가짐에 늘 그리고 각별히 조심하였다.
시링크스가 어느 날 숲속에 사냥을 나갔다가 판과 마주쳤다.
호색한으로 유명한 판은 시링크스를 보자
첫눈에 반해 추근거리며 유혹하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서둘러 그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판은 포기하지 않고 시링크스를 뒤쫓았고,
그녀는 판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쳤다.
발이 빠른 판은 곧 그녀를 따라잡았다.
강가에 이르러 거의 붙잡힐 지경이 되자 다급해진 시링크스는
님프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물의 님페들'이그녀의 청을 들어주었다.
판이 시링크스의 목을 휘감으려는 순간에
그녀를 갈대로 변신시켜 버린 것이다.
판은 절망에 빠져 한숨을 쉬었다.
바람이 갈대를 스치면서 탄식하는 듯한 가느다란 소리를 냈다.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이 감미로운 소리에 매혹되어
판은 갈대 줄기 몇 개를 잘라 밀랍으로 붙어 피리를 만들었다.
판은 이 피리에 ‘시링크스’라는 이름을 붙이고
늘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음악을 연주하였다.
이것이 ‘판의 피리’ 곧 팬파이프(Panpipes)의 유래가 되었다.
팬파이프는 세월을 거치면서 변형, 개량되어
지금의 팬플루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