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지네와 닭
농장할 때의 이야기다.
하루는 부산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중학교 동기 녀석이 우리 농장에 놀러왔다.
몇 십 년 만에 만나는 상봉이니 어찌 아니 반가울 수 있겠는가.
농장을 한 바퀴 돌면서 구경시켰는데 그는 여기저기 밤나무가 많은 것을 보고 관심을 가졌다.
밤나무가 몇 그루나 되는지, 밤이 많이 열리는지, 돈은 좀 되는지,
밤에 대해서 이런 저런 것을 물어왔다.
특히 오래 된 토종밤나무가 집단으로 서식하는 곳을 보고는 대단히 좋아했다.
그러더니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올 가을에 밤이 익으면 올해 밤 서리 좀 할까?
우리 아이들 데리고 와서 밤 줍기 놀이도 하고 한번 야외 소풍 겸 단합대회 한번 했으면 좋겠다.
그래도 괜찮겠나? 밤 값은 충분히 줄 테니깐 농장 하루만 이용하자.>
그러라고 했더니,
그 해 가을에 학원의 직원 및 학생들이 가을 야유회 겸 소풍놀이를 우리 농장에서 하게 되었다.
마이클 버스가 2대 와서 하루를 잘 보내고 간적이 있다.
그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상품을 걸어놓고 <밤 줍기 대회>를 했는데,
모두들 밤나무 밑으로 가서 서로가 밤을 많이 주우려고 경쟁들이 심했다.
밤나무에 올라가서 밤을 틀기도 하고, 땅에 떨어진 알밤을 줍기도 하고,
서로 등수에 들어가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정해진 시간이 다 되어갈 무릎에 한 사람이 비명을 질렀다. 덥석 주저앉아서 다리를 쥐고 아파했다.
밤나무 밑에 가량 잎을 헤치는데 손가락보다 긴 지네 1마리가 갑자기 나타나서 왔다 갔다 하다
가 잽싸게 바지가랭이 속으로 들어가 스멀거려서 기겁을 했는데
그만 장단지를 꽉 물어버렸던 것이다.
바늘로 쑤시는 것 같은 통증과 아픔을 순간적으로 느끼면서 비명을 질러 됐다.
장정 몇 사람이 혼비백산 지네에 물린 사람을 업고 내려 와서 농장 마당의 평상에 눕혔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통증을 호소하며 아픔을 참느라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지네에 물린 아픈 부위를 보니 벌겋게 부어올랐으며 물린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 때 어떤 학생이 나에게 와서 이런 이야기 했다.
<농장 아저씨, 시골에 사는 우리 할머니는 닭 벼슬 때문에 죽을 뻔하다 살았어요.>
그렇다 닭과 지네는 상극이라 했지. 지네는 닭의 뼈를 좋아하고, 닭은 지네를 좋아하며,
서로가 밥이 되고 먹이가 되는 상극(相剋)이 아닌가.
그 때서야 생각이 났다. 민간요법에 지네에는 닭 벼슬의 피가 해독한다는 것을 들었던 것이다.
어릴 때 할아버지께서 지네에 물리면 닭 피(鷄血)를 바르면 낫는다고 한 말씀이 생각났다.
나는 즉시 닭장에 가서 벼슬이 큼직한 장 닭 한 마리를 잡아와서 지네 물린 사람이 누워있는
평상으로 가서 예리한 칼로 닭 벼슬에 칼질을 했다.
금방 닭 벼슬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환자의 바지를 걷어 올리고 지네에 물린 벌겋게 부어오른 자리에 피를 떨어뜨리면서 손으로
문질러 닭 피를 발라주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환자는 통증이 가라앉는 다는 것이다.
과연 지네의 독은 닭의 피가 특효임을 증명해 주었다.
신기한 눈으로 사람들은 쭉 둘러서서 구경을 했다. 그 때 어떤 사람이 아저씨 <이 지네가 사람을 물은 지네>라고 하면서 지푸라기로
손가락만한 지네 한 마리를 묶어서 내놓았다. 이미 죽어있었다.
갑자기 수난을 당한 장 닭은 아직도 놀란 가슴으로 멍하니 주저앉아 있었다.
그 장 닭을 향해 지네를 던져주자 금방 달려들며 한 입에 삼켜 버리는 것이었다.
참으로 자연은 독이 있으면 해독하는 것도 자연 속에 같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과 함께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극심한 고통을 준 지네의 독을 닭의 피 한 방울이 해독(解毒)
한다는 것이 참 신기하기도 한 일이었다.
나는 지네를 금방 먹어치우는 닭을 바라보면서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이 세상에는 지독한 독(毒)을 품고 사는 두 다리로 걸어 다니는 지네들이 있다는 것이다. 많은 다리가 달린 징그러운 지네는 밤나무 밑에 살고 있지만,
두 다리로 걸어 다니는 지네는 주로 돈나무 밑이나, 권력나무 부근이나,
명예나무 근처에 살고 있다.
징그러운 지네에게 물리면 그 독은 한 사람에게만 피해를 준다. 그러나 두 다리로 걸어 다니는 지네에게 물리면 그 독이 강열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제일 무서운 지네는 두 다리 지네이다. 우리가 진작 조심하고 경계할 지네는 두 다리 지네이다.
두 다리 지네의 무서운 독(毒)을 무엇으로 해독(解毒)할 것인가? 어떤 닭 벼슬이 두 다리 지네의 독(毒)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킬 것인지.
그런 해독제를(?) 미리 미리 준비해 보자.
인간지네의 해독제는 어떤 닭 벼슬이 유효 할 것인가?
울산에서 신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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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동 글 감사합니다.
감동과 교훈 글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교훈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