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무렵 무심천에서
이배근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어느 늦은 가을...
제법 싸늘한 바람을 맞으며 배추 한 접을 뽑고 다듬어 손수레에 실었다.
새까만 고무밧줄을 서너번 당겨 단단히 묶은 후 어머니의 손수레를 뒤에서 밀며 10리
길을 걸어간다.
손수레 겨우 한 대 지날만한 둑방길.
경운기며 구루마가 어지간히 지나다녀 길 가운데가 부어오른 그길을 나는 또 걸어간
다.
아버지가 사주신 삼천리호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중학교를 다니던 길.
나는 이렇게 학창시절을 어머니가 끄시는 손수레를 밀려 원마루 앞을 지나 다녔다.
봄이 오고 꽃이 피고 지고 또 햇살 따가운 여름이 온다.
등짝이 새까맣토록 햇살을 쬐이며 놀다가 용개보에 들어가 멱을 감는다.
머리통을 푹 집어넣고 한참동안이나 잠수를 해서 작살로 찍어올린 손바닥만한 붕어
한 마리.
고주박을 모아 피워놓은 모닥불 가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토인처럼 흰니를 드러내
고 웃던 시절.
해가 진지 한참이 지나서야 어머니의 목메임에 못이긴 채 뉘엿뉘엿할 때 집으로 들어온다.
외양간에 단단히 소 고삐를 매어 놓고서야 후들겨 몸을 씻고 밥 한술 뜨기가 무섭게 동
네 큰 마당으로 나간다.
저 멀리 보이는 우암산 꼭대기의 송신안테나 경보등...
돌아가신 할머니는 "얘. 웬 별이 저렇게 큰게 떳냐"시면 우리들은 깔깔 거리며 한참을
웃어댔다.
무심천 건너 효촌을 바라보다 다시 대머리 쪽을 바라보고 또 불빛 찬란한 시내 한복판
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중학교에 다니던 형은 시골에 산다는 것이 창피하다며 학교 근처에 자췻방을 구해달
라고 며칠간을 조르더니 급기야는 등록금을 가지고 도망을 쳤다가 일주일이나 되어
서 돌아왔었다.
이따금 어머니를 따라 육거리 시장에 다녀오는 날에는 나의 볼은 새색시처럼 불거진
다.
미용실 아줌마며 옷가게 누나들이 모두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아 배추실린 손수레 뒤에
숨어 파마 하러가신 어머니가 빨리 오기만을 손가락으로 헤아리곤 했었다.
이맘때쯤이면 논두렁에 펼쳐놓고 먹던 샛밥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장단지까지 기어오른 거머리를 손가락으로 잡아당기며 피를 빨아 뱉어내던 그 능청
스러움이 사뭇 그립다.
어느덧 개발의 붐을 타고 마을 어귀까지 아파트 그늘이 드리워지더니 쭉뻗은 아스팔
트위를 최고급 승용차가 미끄러져 나간다.
학교대항 축구시합을 하러 용개보 건너 운동초등학교에 갈라치면 촌놈대접을 톡톡히
받고 돌아온다.
일삼아 걸어오다 시합에진 분풀이라고 하듯 윗통을 벗어던지며 훌쩍 뛰어들던 용개
보..
나의 살던 고향은 그 이름 순수한 무심천 상류 용개보입니다.
2006/24집
첫댓글 미용실 아줌마며 옷가게 누나들이 모두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아 배추실린 손수레 뒤에
숨어 파마 하러가신 어머니가 빨리 오기만을 손가락으로 헤아리곤 했었다.
이맘때쯤이면 논두렁에 펼쳐놓고 먹던 샛밥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장단지까지 기어오른 거머리를 손가락으로 잡아당기며 피를 빨아 뱉어내던 그 능청
스러움이 사뭇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