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산 꼭뒤로
소한 이후 엄습한 강추위가 다소 누그러진 일월 둘째 화요일이다. 그래도 아침 기온은 영하 5도 전후였다. 방학에 들어 창원으로 복귀 연일 산과 들을 누비는 중이다. 코로나 감염이 우려되어 시내버스는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이용하고 대부분 여정은 두 발로 뚜벅뚜벅 걷는다. 날씨가 추운지라 목도리와 장갑은 기본이다. 마스크야 코로나 때문 길을 나서려면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며칠에 걸쳐 도심 거님 길을 걸었다. 시내 산등선을 살려둔 녹지 공간 공원이었다. 생활권에서 다소 떨어진 곳이라 처음 가 본 곳도 있었다. 거길 다 들리고 나니 행선지의 신선감이 떨어져 그제는 의림사를 찾아 서북동으로 갔더랬다. 산중에는 눈이 희끗희끗했는데 서북동을 내려서다가 볕바른 자리에서 광대나물이 피운 자주색 꽃을 만났다. 겨울이 깊으면 봄이 멀지 않아 보였다.
집에서부터 걷기에 가장 만만한 곳이 두 군데다. 하나는 용추계곡으로 들어가 여러 갈래 등산로를 타는 길이다. 또 다른 코스는 사격장 뒤 소목고개로 올라 몇 갈래 길을 택해도 된다. 이번에는 소목고개를 넘어 동읍 자여마을을 둘러 우곡사에서 용추고개를 넘어볼 생각으로 길을 나섰다. 창원대학 뒤를 에워싼 정병산을 빙글 두르는 셈이다. 걸어야 할 동선이 만만하지 않을 듯했다.
아침 일곱 시 배낭과 스틱이 없이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퇴촌삼거리로 갔다. 사림동에서 사격장을 우회하는 등산로로 올라 소목고개에 이르니 십자형 갈림길이 나왔다. 오른편은 정병산 정상으로 가는 가파른 비탈이고, 왼편은 야트막한 봉림산과 골프장 능선으로 가는 길이었다. 소목고개를 곧장 바로 넘으면 소목마을이었다. 덕산마을로도 불리는 소목마을로 향했다.
마을로 내려서는 산기슭 단감과수원을 지나 소목마을이 나왔다. 창원대학 뒤에서 빠져나온 25호 국도와 남해고속도로가 걸쳐 지나는 길목이라 섬처럼 고립된 마을로 보였다. 건너편 구룡산에는 터널을 뚫어 북면 감계로 통하는 민자 도로가 개설되고 있었다. 마을 앞을 거쳐 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 국도 갓길을 걸어 용잠삼거리로 갔다. 동읍사무소와 주남저수지 가는 갈림길이었다.
동읍에는 용(龍)자 돌림 지명이 많았다. 용강, 용암, 용전, 용잠, 용정, 용산, 마룡 등이다. 동읍은 구룡산과 팔룡산이 가깝기도 하고 주남저수지가 멀지 않다. 설화상이지만 용은 물에 살다 나중 하늘로 날아오른다는 동물이다. 바다 속을 용궁이라 하고 그곳 제왕을 용왕이라 하지 않은가. 요즈음이야 배수시설이 좋아졌지만 옛날엔 그곳 일대는 낙동강 배후로 물이 넘친 곳인 듯하다.
14호와 25호 국도가 일부 구간 겹친 동읍 소재지 거리를 지났다. 진영과 동창원 인터체인지로 가는 길목에서 오른편으로 드니 동읍 자여마을이었다. 좀 이른 시간이긴 했지만 반점으로 들었다. 난 늘 아침을 일찍 먹어 시장기가 왔고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이 많이 남았더랬다. 난롯가에서 우동을 한 그릇 시켜 먹으면서 온기를 느꼈다.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석유난로가 운치 있었다.
반점을 나와 아파트 사이로 빠져 벼를 거둔 텅 빈 들녘으로 나갔다. 곁은 남해고속도로가 부산 외곽 기장으로 분기하는 지점이었다. 행정구역이 창원과 김해의 경계가 되는 들녘을 걸어 내단계로 갔다. 저수지 물이 넘쳐 흘러오는 개울을 기준으로 안은 내단계마을로 진영이고 바깥은 외단계마을로 창원이었다. 단계저수지는 이번 추위에 얼음이 얼어 오리들은 어디론가 떠나 없었다.
국방과학연구소 창원시험장 울타리를 따라 우곡사로 올랐다. 고목 은행나무는 의연하게 그 자리를 버텨 지켰다. 법당 아래 약수를 받아 마시고 북사면 비탈을 올랐다. 낙엽이 진 소사나무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냈다. 응달엔 며칠 전 내린 눈이 녹지 않았다. 고개를 넘어 용추계곡으로 내려서니 산행객이 간간이 보였다. 계곡을 빠져나가니 창원중앙역이었고 내가 사는 동네가 가까웠다. 21.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