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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광주 엠마우스복지관 천노엘 신부
“이 사회를 용서해 주겠습니까”
1978년 광주 ‘무등갱생원’에서 살던 19살 발달장애인이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본당 신자들과 갱생원으로 봉사활동을 다녔던 천노엘 신부는 그 어리고 안타까운 죽음 앞에 묘비를 세우고 무심하고 잔인한 세상을 용서해 달라 빌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천노엘 신부와 발달장애인들의 40여 년 여정이 시작됐다.
천노엘 신부(90, 본명 오네일 패트릭 노엘)는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에서 1956년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 한국땅을 밟았다. 어느 날 알게 된 무등갱생원에는 400-500여 명의 수용자들이 있었는데, 알콜중독자, 고아, 발달장애인, 독거노인, 결핵환자 등이 구분 없이 살고 있었다. 본당 신자들과 일주일에 한 번 봉사활동을 하던 어느 날, 갱생원 봉사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곳에 살던 19살 지적장애인 김 마리아가 급성폐렴으로 위독하다는 연락이었다. 급히 찾아간 병원에서 김 마리아는 천 신부의 손을 잡고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는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서 그러더군요. 장례비를 부담할 테니 사망한 김 마리아의 시신을 해부용으로 기증해 달라고요. 나는 거절했습니다. 이 사회에서 19년을 사는 동안 제대로 존중받지 못했는데, 죽음마저 그럴 수 없었어요. 천주교 묘지에 고인을 묻어 주고 그 앞에 비석을 세우면서 용서해 달라고 썼습니다.”
천 신부는 장애 여부나 상황이 모두 다른데도 갱생원에서 구별 없이 한데 묶여 생활하는 사람들, 특히 발달장애인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조차 어려운 현실을 목도했다. 그리고 그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무심했던 사회와 자신을 생각하며, 그는 그들의 소리 없는 외침에 응답하기로 결심했다.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 그룹홈을 처음 시도했고, 40년을 이어 온 천노엘 신부. ⓒ정현진 기자
발달장애인을 위한 특수사목을 결심했지만 정작 아는 것이 없음을 깨달은 천 신부는 24년 본당사목을 마친 뒤 얻은 안식년 동안 배움의 기회를 찾아 돌아다녔다. 뉴질랜드, 독일, 미국, 아일랜드, 영국, 호주 등 각국의 시설을 경험하고, 관련 세미나를 들으며 공부했다. 마침 1980년은 유엔이 정한 ‘장애인의 해’였다.
장 바니에가 설립한 장애인 자립공동체 ‘라르쉬 공동체’를 찾아 한 달간 함께 생활했고, 약 1500명이 살고 있는 뉴질랜드의 한 대형 장애인 시설을 찾았을 때, 직원들에게 “우리처럼 (대형시설은) 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덴마크나 독일의 복지 이념인 ‘정상화의 원리’(장애인들에게 비장애인과 같은 성장과 발달과정의 경험이나 인생 주기에 맞는 선택의 자유가 똑같이 필요하다는 이념으로 생활시설 집중화를 반대한다) 영향을 깊게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장애인 홀로코스트 이후 서구 사회는 죄책감을 갖던 시기이기도 했다.
천 신부는 “장애인 복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심지어 17세기적 사고를 가졌던 내가 돌아올 때는 21세기 개념을 배워 온 셈”이라고 말했다.
배움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뒤, 천 신부는 당장 갱생원에서 나온 한 친구와 봉사자를 데리고 2층 집을 얻어 살기 시작했다. 갱생원을 나온 이에게 그것은 첫 ‘탈시설’이었고, 천 신부에게는 발달장애인 사목의 처음이었다. 천 신부는 “그때 사람들이 모두 나에게 미쳤다고 말했다”고 했다.
“탈시설, 장애인 자립은 한국 문화에 맞지도 않고 지역 사회에서 비장애인과 함께 살 수 없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어요. 하지만 나는 탈시설, 자립은 나 혼자가 아니라 광주 지역민들이 함께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낮에는 나의 선택을 비난하는 이들 가운데 밤이면 나를 찾아와 물어봤어요. 사실은 우리 가족 중에 발달장애인이 있는데, 여기서 함께 살아도 되느냐고요. 마치 밤중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간 티모테오처럼요.”
그 자신도 그룹홈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살면서 그룹홈, 복지관 등 장애인들의 삶과 직업훈련, 배움을 위한 공간을 하나둘씩 만들어 가면서 천 신부는 20여 년간 교회가 대형 시설을 앞세우지 않기 바라며, 각 교구 주교들에게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다.
“사회에서 존경받는 주교들이 꽃동네와 같은 대형 복지시설을 바람직하게 여기고 지지한다면, 일반 사회에서도 이런 형태가 옳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인터뷰를 마친 뒤, 그룹홈을 함께 찾았다. 엠마우스에서 함께하는 그룹홈은 현재 14곳이다. ⓒ정현진 기자
천 신부는 “김수환 추기경은 교회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보다 사회가 교회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바로 그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리고 현재 교회의 장애인 사목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천노엘 신부는 지난해 10월 정부가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을 발표한 뒤, 교회가 이를 현실적이지 않다며 반대한 일을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그는 이에 대해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가 열었던 세미나 자료도 꼼꼼하게 읽어 봤다면서, “나는 지금도 발달장애인 사목을 위해 전 세계 전문가들과 교류하고 엠마우스 공동체의 사례를 발표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추세는 모두 탈시설, 지역사회 자립”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대 이유를 보니, 다양한 입장의 당사자들과 논의가 덜 됐고, 비용의 문제도 있다는 것 같다”며, “지금 한국의 의료보험이 최고로 평가받고 국민 모두가 혜택을 보고 있다. 그런데 이 의료보험제도를 만들 때 모든 국민에게 물어보고 한 건가”라고 되물었다. 해야 할 당위성, 가치가 분명하면 당장 어렵더라도 그쪽을 향해 가야 한다는 의미다.
천 신부는 탈시설에 대해 걱정하는 발달장애인 부모, 가족들의 입장 역시 이해한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이 먼저 탈시설을 추진할 때도 처음에는 찬성률이 17퍼센트 정도였지만 10년 뒤에는 76퍼센트가 찬성했다고 설명하면서, “부모들을 안심시키려면 국가의 지원이 약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들은 교회, 종교의 역할에 대해서 무관심하다고 평가한다.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무관심이다. 교회 자체도 쇄신되려면 반드시 소외된 이들의 편에 서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들의 신앙 활동과 관련해서도 “각 성당에 다양한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 장치를 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그게 어렵다면 지역별로 그들이 모여 편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거점 본당이라도 만들어야 한다”면서, “인구의 10퍼센트가 장애인인데, 성당 안에, 성당 지역에서 장애인을 볼 수 없다면, 그래서 장애인이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탈시설의 대안은 자립만이 아닙니다. 그룹홈, 원가정으로 돌아가기, 대리가정, 입양 등 다양한 형태와 상황이 있을 수 있고, 또 그것들은 모두 어떤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죠. 자립을 했다가도 다시 시설로 돌아올 수도 있어요. 그러니 무엇이 최선이고 완벽한 방법이라고 할 수 없고, 한 가지만 강조하면 안 됩니다.”
천노엘 신부는 마지막으로 시설 중심에서는 충분히 혼자서 또는 공동체에서 살아갈 힘이 있는 이들이 시설로 보내지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장애인을 격리시키는 교회는 그 자신이 장애를 가진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관을 둘러보며 가족들과 인사를 나눈다. 누가 무엇을 하러 복지관에 왔는지, 요즘 무엇을 주로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집안 할아버지 같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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