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다르다 / 신현식
신문을 보다 깜짝 놀랐다. 아는 분의 기사가 크게 실려 있어서였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사진 속에 보였지만 다부진 모습은 그분이 틀림없었다.
신문의 기사는 그분이 이 지방의 경제 단체 수장이 되셨다는 보도였다. 나는 기사를 보고서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굴지의 주택회사 회장님이 그분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그분을 처음 만난 것은 도심의 남쪽, 큰 로터리 부근의 어느 한의원이었다. 그분은 그 한의원을 열고 계셨고, 건강이 좋지 않던 내가 찾게 된 것이다.
증상을 말해보라는 원장님의 말에 나는 일사천리로 읊조렸다. 병원이나 한의원을 문턱이 닳도록 다녔음으로 내 병력을 늘어놓은 것은 마치 구구단을 외는 듯했다.
원장님은 증상을 다 듣고 약을 지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대신 술을 마실 줄 아느냐고 물었다. 너무나 엉뚱한 질문에 주춤거리며 병이 오기 전에는 마셨다고 했더니 잘 되었다고 했다. 오늘부터 식사 전에 따뜻한 술을 한잔씩 마시라고 하는 것이다. 처방은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어리둥절하여 원장님의 얼굴만 쳐다봤다.
어릴 적부터 위장이 좋지 않아 툭하면 체하기 일쑤였다. 통금이 있던 시절이어서 끙끙거리고 있노라면 어머니가 아랫방으로 건너와 바늘로 손을 따주곤 했다.
그렇게 지내다가 결국 장가를 든 그해 설날이었다. 세배를 다니다가 어느 집에서 먹은 떡국에 그만 체하고 말았다. 소화제를 먹었지만 잘 내려가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항상 그득한 기분이었다. 그 후로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소화제를 달고 다녔다. 몸은 점점 야위어 갔다. 병원에 가서 사진도 찍고 호스를 뱃속에다 집어넣고 휘휘 젓는 검사도 해봤다. 결과는 그저 약간의 위염 증세가 있다는 것뿐이었다.
한의원에 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느 곳에 가더라도 마친가지였다. 위가 약하니 보하는 약을 먹어야 한다며 약봉지를 한 아름씩 안겨주곤 했다. 그러나 나을 기미는 조금도 없었다. 병원 순례가 한창이던 그 즈음에서야 어느 병원에서는 신경성위염이라고 했다. 처방대로 약을 먹었지만 약효는 며칠뿐이었다. 이 정도가 되니 이름난 병원은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지경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멀건 죽으로 삼시 세끼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고, 뼈만 앙상하게 남는 몰골이 되었다. 기운이 없으니 비실비실, 생활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병명도 알 수 없는 불치의 병으로 이제 곧 죽겠구나 싶었다. 차라리 위암이라는 선고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 되자 처갓집에서 나섰다. 큰 동서가 잘 아는 한의원이 있으니 한번 가 보자고 했다. 속은 것이 한 두 번이라야지 나느 소용없다며 가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한사코 잡아끄는 바람에 따라나섰던 것이다.
그런데 원장이라는 사람이 다 죽어가는 환자에게 술을 마시라 하니 기가 막혔다. ‘장난 합니까?’ 내가 꾀병을 부리는 것 같으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원장은 태연하게 말했다. 위염은 고치기 쉬우나 신경성위염은 고치기 어려우니 우선 신경성을 떼어낸 후 위염을 고치자고 했다.
위염이야 더 악화된들 잘라내고 꿰매면 되니 아무 걱정 말라고 했다. 신경성을 떼어내기 위해서는 약을 먹어도 되지만 그 또한 내성이 생길 수 있으니 술을 한잔씩 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신경성위염이란 위의 신경이 굳어가는 병인데 술이 들어가면 활성화될 게 아니냐는 것이다. 원장님의 설명이 가슴에 와 닿았다. 이치적으로도 맞는 말이었다. 병원과 한의원을 그렇게 많이 다녔어도 그런 말을 한 곳은 없었다. 한의원을 나서는데 서광이 비치는 듯했다. 힘이 불끈 솟았다.
돌아오는 길에 한 되들이 청주를 사서 집으로 왔다. 바로 그날부터 술 치료에 들어갔다. 우습게도 술이 약이었다. 근 삼 년을 입에 대지 않던 술이 들어가자 뱃속은 찌릿찌릿했고 얼글은 완숙 토마토가 된 듯했다.
원장님이 시키는 대로 죽도 먹지 않고 밥을 먹었다. 이게 웬일인가 걱정한 것과 달리 소화는 잘 되었다. 불편한 것은 하나 없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술을 약처럼 먹었다. 며칠이 지나자 오히려 전보다 소화가 더 잘 되었다. 나는 그렇게 하여 위장병에서 탈출하게 되었다.
강과 산이 몇 번 변하는 동안 그분은 큰 기업의 회장님이 되셨고, 오늘에 이르러 경제 단체장이 되신 것이다. 발상이 남다른 분이셨으니 그 분의 성공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역시 크게 되는 사람은 무엇이 달라도 다른 것 같다.
첫댓글 술도 약이 된다는 이야기가 재미있네요.
꿩 잡는 게 매라고 했던가요.
어쨓든 건강이 회복되었으니 얼머나 다행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