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등과 같이 증거되어 있는 아래 본문의 말씀에서..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은 산 제사와 같은 신앙, 삶의 예배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만인 제사장과도 관련이 없을 수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상 오늘날의 많은 이들이 그러한 삶의 예배나 만인 제사장이 될 수 있음에 있어 불명확하다든지 또는 적지 아니 혼동되곤 하고, 실제로 그런 성도들이 많아 보이는 현실인 것이며, 아니면 안다고는 하더라도 많은 경우 추상적이거나 막연해 보이는 실정인 것인데..
사실상 그에 있어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에 있어 어느 정도라도 통찰하지 못한다면 이해나 납득이 힘들게 되거나 따지고 보면 아예 불가능일 수밖에 없는 이치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백성들이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과 인류 역사의 상황들 속에서 마치 예배와 같은 삶이 되어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이 생생히 나타나고 하나님의 큰 기쁨과 영광이 되는 것일 뿐 아니라 그로 인해 마치 교회 예배의 자리에서와 같이 하나님으로 인한 은혜와 역사들이 순간순간 풍성하게 되고, 만나는 사람들과 행하는 일들, 온 지경에 있어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며, 복음의 능력이 되고 전도의 역사가 되며, 축복의 통로가 되고 부흥의 도화선이 될 수 있음에 있어서..
우선은 교회에서의 예배에 대해, 곧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대로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에 대해서 명료하게 분별하고 이해하며, 확실하게 통찰하고 납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그와 같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영이시자 본질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배인 것으로 원론적으로는 그 예배 순서 순서에 있어서의 설교와 교독, 기도, 찬송, 헌신, 봉헌, 교제 등과 그 예배를 인도하고 섬기는 모든 순서자들, 또한 그들의 순간순간에 있어서의 심령 및 믿음의 결단들, 게다가 예배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 있어서의 심령과 믿음의 결단들, 여건과 상황과 환경들 하나하나에 있어서까지 모든 것들이 합해져서 어떻게든 온전하고 순전한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이 될 때 최고로 가능할 수 있는 것인데..
특히 예배의 있어서의 가능한 모든 순서들은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아니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설교와 교독도 말씀인 것이고, 기도도 말씀이신 하나님을 말씀대로 믿고 의지하며 말씀에 약속된 것을 구하면서, 또는 말씀대로의 믿음이 될 수 있도록 구하면서 말씀 그대로 응답받고 누리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찬송도 그 가사 하나에서부터 직접적 구절이든 경험적 고백이든 믿음의 선포든 간에 반드시 말씀과 어떤 식으로든 직결되지 않으면 찬송이라 할 수 없는 것이고, 헌신도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주신 재능과 은사와 물질과 시간 등을 말씀 그대로 마땅히 기쁨으로, 전심으로 드리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교제도 말씀의 핵심이자 근본이며 어떤 면에서는 전부인 사랑의 현실적인 실천과 나눔과 누림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온전한 예배는 결코 아무나 드릴 수 없는 것으로 반드시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가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며, 직접적, 실질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인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뀐 자들만이 가능한 것이고..
더 나아가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이 예배의 모든 순서 순서들, 심령 심령들, 순간순간들에 있어서 더 이상 옛 사람과 같이 인간적인 힘과 의, 세상적인 능력과 방법들 등이 아닌, 또한 온갖 죄악과 세속과 정욕과 염려와 두려움과 우상과 잡생각과 불신앙들 등이 아닌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그와 같은 예배의 모든 순서들, 심령들, 순간들에 있어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며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 악한 세력들, 유혹들, 시험들 등과 싸우고 혹 범한 죄악들에서는 즉시로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오직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으로 나아감과 함께 직접적, 실질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더욱 충만하게 역사하시게 되는 것이며, 근원적, 본질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기뻐 역사하시게 되면서 영과 진리의 예배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이고, 좀 더 세부적으로는 그 속에서의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온전히 영광 받으시고 제대로 열납하시면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힘과 은혜들, 능력과 복들, 응답과 예비들 등으로 강렬하게 역사하시는 예배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삶의 예배도, 또한 만인이 구주 예수님 안에서 삶의 자리와 인류 역사의 현장들 속에서 제사장이 될 수 있음도 근본적으로는 똑같은 이치와 원리인 것이자 실제와 누림인 것으로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뀐 자들만이 그 어디서든, 누구 앞에서든, 무슨 일에 종사하든지 간에 날마다 순간마다 더 이상 옛 사람과 같이 자신의 힘이나 세상적 방법들이 아닌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동일하게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서 죄악들, 악한 세력들, 유혹들, 시험들, 근심들, 두려움들, 문제들, 시련들, 위기들 등과 싸우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제대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갈 때..
이 악한 세대를 본 받지도, 따르지도 않는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이 될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실제로 산 제물, 산 제사와 같은 삶의 예배도 될 수 있는 것이고, 그 누구라도, 그 어디서라도 그렇듯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고 간구하며 경배할 수 있는 제사장이 될 수 있는 것이며, 게다가 그와 함께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더욱 충만하게 역사하시게 되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더더욱 기뻐 역사하시게 되는 것이며, 더군다나 바로 그 가운데에서야 말로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임재하시고 동행하시며 영광 거두시는 것일 뿐 아니라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 상 바로 그 하나님 아버지께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온갖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은혜와 은사와 응답들, 승리와 역전과 이적들, 복과 열매와 부흥들 등으로 차고 넘치도록 맛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12:1~2)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12월 26일(목)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