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피정을 다녀와서
지난 토요일과 주일 이틀 동안 장충동에 위치한 성베네딕도회 서울수도원으로 남성피정을 다녀왔다. ‘예수회’에서 설립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일반인과 달리 ‘피정’이란 단어가 꽤 친근한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모태신앙이었고 영세 받은 지 꽤 오래되었는데도 피정은 난생처음이었다. 따라서 하느님께 미안하기도 하고 기대 반 설렘 반으로 피정의 집에 갔다.
성베네딕도회 수도원은 경북왜관에 본원이 있고 장충동은 여러 분원 중 하나인 서울분원으로
101년 된 성베네딕도회에서 1958년에 일본식 적산가옥을 구입해서 설립했다고 하니 서울분원의 역사도 50년이 넘는 셈이다. 따라서 건물은 조금 낡았지만 뒷마당 나지막한 언덕에는 그리스도
십자가와 성모상 등 여러 성상이 있는 아주 아담한 ‘도심 속의 수도원’이었다.
성베네딕도회는 왜관본원에 70여분의 수도자가 있고 서울 분원에는 12명의 수도자가 계시다고
한다. 2007년 왜관 본원이 화재로 성당 및 수도원 일부가 소실되었고 130억 원을 들여 다시
지었다 한다. (아직 채무가 13억 원 남았다고 함) 작년 100주년에는 새로 축성한 성당에서 성대히 기념미사를 올렸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고 또 성베네딕도회가 2001년에 미국 뉴저지에 있는
뉴튼수도원을 인수하였는데 그 연유는 한국전쟁 대규모 피난 작전인 흥남철수 때 작전에도 없는 민간인 1만 4천명을 구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장이었던 ‘레너드 라루’씨가 수사로 지냈던
뉴튼수도원이 재정난에 봉착하자 이를 인수하였다는 감동적인 다큐멘터리를 티브이에서 본 적이 있다.
성베네딕도회 모토는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이고 모든 전례기도를 그레고리오 성가로 하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모든 기도가 아주 엄숙하고 장엄했다. 특히 이번 기회에 그레고리오 성가를 직접 불러 보고 그레고리오 성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 것이 큰 보람이었다. 마테수난곡이나 수많은 아베마리아 등등 그래도 비교적 종교음악을 좋아하는 나에게도 그레고리오 성가는
너무 음이 단순하고 천편일률적인 것 같아 별로 즐겨 듣지 않았는데 이번에 완전 매료되었다.
성베네딕도회는 ’성무일도(Officium Divinum), 시간전례)’로 매일 시간에 맞춰 독서기도,
아침기도, 낮기도, 저녁기도, 끝기도 등 하루 5차례 전례기도를 드리는데 이번 피정에서도 수사님들과 똑같이 기도를 드렸다. 특히 끝기도 후에 ’대침묵‘이나 아침기도 후에 ’묵상시간‘은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다. 학교 다닐 때 ’그리스도교의 묵상과 불교의 선‘이란 과목을 이수했던 나로선 ’묵상‘과 ’참선‘에 막연하면서도 각별한 흥미가 있었는데 이번에 직접체험을 통해 아주 가볍게 맛을 봤으니 그 기쁨이야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번 피정의 지도수사신부님은 인영균클레멘스신부님으로 서울분원장을 맡고 계시고 작년까지 본원 원장도 맡으셨다고 한다. 큰 키에 이주 미남이셨는데 ‘기도하고 일하라.’란 모토를 실천하기 위해 매우 바쁘셔서 그런지 아마 독감에 걸리신 듯 말씀하시는데 매우 힘들어 보였지만 매우
어려운 강의 주제를 진지하게 설명하셨고 가끔씩 엄청난(?) 조크를 하셔서 우리 교우들을 놀라게 하셨다.
이번 피정의 주제는 'Quaerere Deum, seeking of God' 즉 ‘하느님을 찾는 사람’이었다.
약간 설렌 상태로 ‘피정의 집’에 도착하여 등록을 하고 방 배정을 받았는데 같은 방에 우리성당의 호프인 이某님이랑 같이 쓰게 되어 안심이 되었고 본당 몬시뇰님과 수녀님, 봉사자
분들이 돌아가신 후에 첫 강의가 시작되었다. 강의 시작 전에 이某님이 ‘나는 코를 많이
고는데’하시기에 잠자리가 예민한 나로선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그냥 넘어갔는데 그게 나중에
큰 화근이 된 것은 불과 몇 시간 후였다. 이토록 우리 인간은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존재인가 보다.
첫 강의를 들으러 강의실에 갔다. 강의실에는 그레고리오 성가집(Gregorian Chant)으로 ‘Antiphonale(성무일도 성가집)’과 ‘Graduale(미사를 위한 성가집)’이 놓여 있었다.
첫 강의에서 지도신부님께서 이번 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의 ‘現存’에 대해 한 번 찾아보자는
취지로 피정의 목적을 말씀하셨다. 즉, ‘참으로 있는 것’을 찾아보는 것으로 익숙한 것(습관)을
하느님 안에서 한 번 되짚어 생각해 보자는 말씀이셨다. 습관의 부정적인 면은 ‘의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사는 것, 즉, 아무 의식 없이 살아가는 것인데 이를 생각(반성)해 보고 진정으로 ‘깨어있음(자각)’을 찾는 것이다. 참으로 깨어있으면서 삶의 존재이유를 찾아가
보는 것이 이번 피정의 목적이란 요지의 말씀이셨다. 참 어려운 주제란 생각이 들면서도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이번 피정의 일정을 소개하시면서 그레고리오 성가에 대해 설명해 주시고 대림 제2주일
입당송을 연습했다. 여럿이 불러서 그렇지 혼자 부르라면 몹시 어렵겠단 생각도 들었다.
하루 5번의 전례기도를 아침만 빼곤 모두 그레고리오 성가로 부르려면 수도자 모두는 가수가
되겠단 생각과 함께 수도자의 자격 중 부친은 음대출신이어야 되고 모친은 치대 출신이어야
된다는 지도신부님의 진지한 조크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첫 강의가 끝나고 모두들 저녁기도를 하기위해 성체조배실로 갔다. 조그마한 조배실에 의자가
모자라 바닥에 앉은 교우 분들도 있어 조금 어수선하겠단 생각이었지만 무척이나 진지한 모습들이었고 60여명이 참석하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고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저녁기도는 시작기도, 찬미가, 시편후렴1, 시편, 후렴2, 시편, 후렴3, 시편, 성경소구, 응송,
성모의 노래, 청원기도, 주님의 기도, 마침기도 순으로 진행되었다.
저녁기도 후에 저녁을 먹었는데 이것도 객지생활(?)인지라 밥맛이 있어서인가 밥이 모자랄
정도였다. 지도신부님 왈 ‘방배4동 교우들은 불쌍하다.’하실 정도로.
저녁식사가 끝나고 끝기도가 있었는데 한층 익숙해진 모습들로 전례에 임했다. 역시 장엄하고
엄숙하게. 끝기도를 마치고 ‘대침묵’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뒷마당으로 나갔다. 모든 교우들이
성체조배실, 강의실, 방, 성당 어느 곳에 있어도 되는데 꼭 혼자 있어야 하고 침묵을 지켜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뒷마당을 거닐면서 십자가도 보고 밤하늘도 보고 바위에 앉아 있기도 했는데 도무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불교에서 얘기하는 그냥 ‘無心’이었다. 밤공기가 조금 쌀쌀했지만
그럭저럭 견딜 만 했고 지나가는 교우들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음을
아쉬워하면서 십자가상 앞에서 눈을 감고 아무 생각 없이 서있었다.
어둠속에서 종이에 메모를 했다.
‘하느님은 내 뒤에 있으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내 뒤에 있으시다.
밤공기 차갑지만 그 분의 따뜻한 온기 느낄 수 있다.
저를 용서하시고 아울러 모든 이들을 용서하소서.’
‘대침묵’이 끝나고 두 번째 강의가 시작되었다. ‘내가 누구인가?’로 시작되는 물음에서
성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론’에 나오는 ‘내 안의 하느님’을 말씀하시면서 ‘우리 아버지(아빠)는
나와 연결되어 있는 관계(父子之間)이고 내가 존재함으로써 하느님이 아버지(아빠)가 된다.
즉, 온전히 하나이다.’ 란 요지로 말씀하셨다. ’선택된 삶‘ ’참다운 감실은 내 몸 안에 있다.‘
등등을 말씀하시면서 김베다신부님의 사례와 요한복음 17장을 인용하셨다.
그렇다 하느님은 영적인 내 아빠였다.
두 번째 강의를 마치고 취침시간이 되었다. 이某님의 고백(?)대로 내가 먼저 잠을 자야 하는데 좀처럼 잠을 잘 수 없었다. 아무 생각도 안한다고 하면서 상념이 많아서일까? 이某님이
들어오셔서 드디어 코골이는 시작되고. 참다 참다 뒷마당으로 나갔다가 빈방에 들어가
자려했으나 냉방이었고 하여간 그럭저럭 방황하다가 밤을 꼴딱 새웠다. 사실 어색한 잠자리에는 잠을 못자는 내 습관 때문이었지만.
새벽에 일어나 아침기도 후 묵상시간에는 뒷마당 언덕에 올라가 산책을 하고 방에 들어와
요한복음을 읽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예수님의 마지막 이틀 장면을 떠올리면서.
아침식사(밥이 남았다.) 후에 성당에서 주일미사를 올렸다. 아담한 성당에는 우리 교우들하고 근처 교우 몇 분이 계셨다. 특이했던 점은 양형성체를 했던 점이다. 미국 갔을 때 미국성당에서 한 적을 제외하곤 처음이었다. 그런데 성체를 모시고난 다음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남 볼까봐 눈을 꼭
감았는데 줄줄 흘러 손수건으로 가렸다. 유독 눈물이 많은 사람이지만 성당에서의 경험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 그날은 유독 그랬다. ‘나에게 큰 어려움이 있나?’ ‘큰 은혜를 주신건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마지막 세 번째 강의가 시작되었다. 지도신부님이 어제보다는 활기찬 목소리로 강의를
시작하셨다. 그런데 처음 시작에 ‘베드로의 기도(Oratio Petri)' 말씀을 하셨는데 무척 진지하게
이 기도를 많이 하면 ’깨어서 존재‘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처음에는 교만에서
겸손해지고 다음으로는 이상한 언어(방언, 심령기도) 상태가 되고 마지막으로는 영적으로 탈혼이 된다고 설명하셨다. 그러면서 모든 교우들이 다 알고 있는 것이고 실제로 알고 있나
몇몇 교우들에게 질문까지 하셨다. 심지어 수녀님에게까지도 말이다. 물론 바로 그것이 졸음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정말 진지한 조크였다. 베드로도 예수님 마지막 날에 자고 있었다는 성서적 사실까지 언급하시면서. 사실 나도 미사시간에 ’베드로의 기도‘를 많이 하는 편이었고 전날 꼬박 새운 터라 ’베드로 기도‘를 하고 싶었지만 강의실 맨 앞자리라 참고 있었는데
정말 ’깨어서 존재‘하는 사람이 되었다. 신심이 깊지 않은 내가 깨어있는 사람이 잠시 되었다.
마지막 강의라 무언가 작은 결론이라도 내야 하는데 사실 이 어려운 주제(질문)에 쉽게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존재(있음)’은 결국 행동으로 나타나는데 그 행동은 아는 만큼 하게 되는 것이고
따라서 ‘앎’이 중요하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00답게’ 행동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극단적으로 행동하면 안 된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무신론자라도 양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그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 자신의 체험을 통해 창조해 나가야 한다. 영적인 기쁨을 얻는 각자의 선택인 것이다. 나와 하느님이 온전히 하나다는 깨달음은 끝이 없는 것으로
완성해 나가야 한다. 설령 완성하지 못하고 죽을지언정. 생각이 말을 낳고 말이 행동으로 현실화가 되는데 따라서 긍정적인 말과 긍정적인 행동이 중요하다. 나를 창조해 나가야 하고 내 존재를
체험해 나가야 한다. 그것은 내 선택이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면 기도가 필요하다.
기도는 생각의 조절이다. 삶은 창조의 과정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 온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창조해 나가야 한다. 끝으로 37세 나이에 암으로 선종하신 바오로수녀님의 예를 들으시며 그 수녀님의 ‘사명’을 말씀하시면서 강의를 끝내셨다.
‘사명’은 내가 아침마다 출근하면 듣는 가스펠이다. ‘브람스’ 다음으로 내가 자주 듣는 노래다.
지금도 ‘사명’을 들으면서 이 글을 쓴다. 마지막 강의가 끝나고 점심 먹고 참석한 교우들과
단체사진 찍는 것으로 첫 피정을 마쳤다. 피정을 마치면서 많은 상념들이 떠올랐다가
이네 사라졌다.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피정의 집’을 떠나 ‘엄마 집’으로 간 나는
남은 주일 내내 꿀꿀 잤다. 베드로기도 마지막 단계를 하면서 말이다.
ps 내 친구 하나가 내가 피정을 간다고 하니까 ‘Pace, Pace, mio Dio'라고 문자를 보내주었다. 이것은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에 나오는 레오노라의 유명한 아리아로 수도원에 피신한 레오노라가 부르는 곡으로 ’신이여 평화를 주소서‘란 뜻이다. 그래 피정가기 직전에 집에서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로 이 곡을 듣고 갔다. 그 친구에게 피정을 마치고 나오면서 문자를 보냈다.
’Dona Nobis Pacem.'
![](https://t1.daumcdn.net/cfile/cafe/153011164CFBBE2E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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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 뉴튼 수도원을 처음 인수하던 때 나와 다른 한 친구가 한국에서 도착하신 수사님들을 공항에 마중나가서 수도원에 모셔다 드렸었다. 그 수도원이 있어 뉴욕 뉴저지 한인성당들이 가끔씩 피정도 하는 등 수도원 운영을 돕기위해 여러가지 행사를 하는데 워낙 형편이 어렵다네.
어제 하노이에서 4시간쯤 걸리는 베트남 조선소에 출장을 갔다가 점심먹으러 하롱베이 근처 식당엘 갔었는데, 거기서 하노이 한인성당 신부님을 만났다. 어찌나 깜짝 놀랐던지....그래서 함께 갔던 우리 통역 여직원한테 그랬지. 네가 안이쁘기 천만 다행이지, 이뻤더라면 나 신부님한테 오해받을 뻔 했다....
하하, 피정이 이렇게 재미있다니...... 특히 베드로의 기도 ㅋㅋ
좋은 시간 가졌구나.
영혼을 모처럼 맑게 닦았으니, 그 덕택에 만사형통하길 바란다^^
Pace, Pace, mio 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