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 you hear the drums Fernando? 북소리를 들을 수 있나 페르난도? I remember long ago another starry night like this 오늘처럼 별이 총총하던 오래전 그 밤 In the firelight Fernando 자네는 난롯가에서 You were humming to yourself and softly strumming your guitar 기타를 튕기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곤 했지 I could hear the distant drums And sounds of bugle calls were coming from afar 난 멀리서 울리는 북소리와 집합을 알리는 나팔소리를 들었지
They were closer now Fernando 지금 그 소리들이 들리는가 페르난도? Every hour every minute seemed to last eternally 모든 순간은 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지 I was so afraid Fernando 난 무척 두려웠어 We were young and full of life and none of us prepared to die 우린 젊었고 아무도 죽음을 준비하지 못했었지 And I'm not ashamed to say 이젠 말할 수 있다네 The roar of guns and cannons almost made me cry 날 눈물짓게 했던 총소리와 대포 소리를
There was something in the air that night 그 별이 빛나던 밤하늘엔 무언가가 있었지 The stars were bright, Fernando 별은 밝았다네, 페르난도 They were shining there for you and me for liberty, Fernando 별은 자네와 나 그리고 자유를 위해 빛났다네
Though We never thought that we could lose 우리가 패할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었지만 There's no regret 난 후회하지 않네 If I had to do the same again 또 다시 같은 일을 해야한데도 I would, my friend, Fernando 난 했을걸세, 내 친구 페르난도
Now we're old and grey Fernando 이제 우리도 많이 늙었네 페르난도 And since many years I haven't seen a rifle in your hand 그리고 자네의 손에 총이 쥐어진 것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네 Can you hear the drums Fernando? 북소리가 들리는가 페르난도? Do you still recall the frightful night we crossed the Rio Grande? 우리가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던 무서웠던 밤이 기억나는가? I can see it in your eyes 나는 자네의 눈에서 그걸 볼 수 있네 How proud you were to fight for freedom in this land 이 땅의 자유를 위해 싸우던 자네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던지
Yes, if I had to do the same again 그래, 또 다시 같은 일을 해야한데도 I would, my friend, Fernando... 난 했을걸세, 나의 친구 페르난도...
아바(ABBA) 1972년부터 활동한 스웨덴의 전설적인 4인조 혼성 팝 그룹
멕시코-미국 전쟁
위키백과
Battle of Veracruz.jpg
베라크루즈 전투
날짜 : 1846년 4월 25일 ~ 1848년 2월 2일
장소 : 텍사스,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멕시코 시티
결과 : 국의 대승,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과 멕시코 할양의 체결
멕시코-미국 전쟁(Mexican-American War)은 1846년과 1848년 사이 멕시코와 미국 사이에 발생한 군사 분쟁이다. 맥락에 따라서 멕시코 전쟁, 그리고 당시 미국 대통령인 제임스 포크에서 따서 포크의 전쟁로 불리기도 한다.
이 전쟁은 1836년 텍사스 혁명으로 텍사스 공화국이 성립되었지만, 멕시코는 이 땅을 자국의 영토로 여겨 1845년 텍사스 합병으로 텍사스가 미국의 주가 되자 일어났다.
배경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멕시코는 내전으로 번질 수도 있는 수 많은 갈등을 겪고 있었다. 1836년 텍사스 혁명으로 발발된 텍사스 공화국의 독립 문제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으로 비교적 단합을 하였다. 멕시코는 미국이 텍사스를 병합하면 전쟁이 시작될 수도 있다고 위협을 했다.[1] 반면, 제임스 포크 대통령의 ‘명백한 운명’에 대한 정신은 서부 확장에 대한 미국의 이익에 집중되어 있었다.
멕시코의 군사력과 외교 역량은 독립 이후 쇠퇴되어 있었고, 국가의 북부 절반을 코만치 족, 아파치 족, 나바호 족 등의 인디언 부족에게 취약점을 노출했다. 이들 인디언들 중 특히 코만치족은 멕시코의 이러한 취약점을 공략하여 수 백마일에 이르는 대규모의 습격을 단행하여 가축을 약탈하였고, 이것들을 텍사스와 미국에 공급하였다.[2]
인디언의 습격은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낳았고, 북부 멕시코를 황폐화시켰다. 1846년 미합중국 군대가 멕시코 북부에 진입했을 때 그들은 실의에 빠진 사람들만 볼 수 있었다. 그리하여 미국인들에게 저항하는 민병대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3]
이들 인디언들의 적대적인 활동으로 인해 멕시코 내부와 알타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 사이의 교역과 소통은 어렵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멕시코 미국 전쟁이 발발할 시기에 뉴멕시코는 산타페 가도를 통한 미국과의 무역에 의존적일 수 밖에 없었다.[4]
텍사스 공화국이 1845년 텍사스 합병을 통해 미국의 28번째 주인 텍사스 주가 되자 종주국이라고 생각한 멕시코는 이 합병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이듬해 1846년 발발한 전쟁이 멕시코-미국 전쟁이다.
멕시코와 미국은 각각 텍사스에 대한 종주권을 주장하였다. 텍사스는 멕시코와 싸워 독립을 쟁취한 지 오래지 않았으며 멕시코는 텍사스를 반란 지방으로 인식해 독립을 인정치 않고 있었다. 전쟁의 근본 이유는 미국의 서진 확장 경향과 최근 멕시코 독립 전쟁을 통해 독립한 멕시코의 정치적 불안정이었다. 미국은 멕시코와 협상을 하는 것이 어려운 시점이었으며 멕시코는 북부 지방을 관리하는 것이 어려운 시기였다. 텍사스는 전쟁을 지지했다. 미국 내부에서 휘그당이 거세게 전쟁에 반대했다. 멕시코에서 전쟁은 방어 전략상 필요 수준으로 여겨졌다.
전쟁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멕시코가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를 미국에 팔아넘기게 된 것이었다. 미국 정계는 새로 획득한 주에서 노예 제도와 관련하여 격렬한 논쟁을 벌여 ‘1850년의 타협’을 보았다. 멕시코에서는 정치적 혼란기가 계속되어 전쟁은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또한 이 전쟁은 유럽의 1848년의 혁명과 거의 때를 같이하고 있어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다.
역사적 맥락
멕시코 제1공화국과 제2공화국의 행정구역. 붉은 구역은 텍사스 공화국이 영유권을 주장한 지역이다.
멕시코 제1공화국과 제2공화국의 행정구역. 붉은 구역은 텍사스 공화국이 영유권을 주장한 지역이다.
멕시코-미국 전쟁 이전 이미 미국의 산악인들과 무역상들은 ‘산타페 가도’와 ‘캘리포니아 가도’(California Trail)를 통해 이 땅에 자주 접촉하고 있었다. 미국 상선들은 활발하게 무역을 하고 있었다. 이 지역은 30년간 멕시코 공화국의 영토였으며 그 이전에는 에스파냐 제국의 영역이었다.
미국이 루이지애나 매입 이후 스페인 제국의 토지 제공에 힘입어 미국의 백인 정착자들이 서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멕시코 독립 전쟁 이후 이 영토가 멕시코 공화국의 땅이 된 이후에도 서부로 향하는 이민은 계속되었다. 멕시코 정부는 자국의 국교인 로마 가톨릭이 아니라 개신교를 믿는 정착자들과 불편한 관계를 지속했다. 멕시코가 전국적으로 노예 제도를 폐지했을 때에도 일부 백인 이민자들은 법의 이행을 거부했다. 멕시코 중앙 정부의 간섭에 대한 반발로 텍사스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멕시코 독립 전쟁으로 인하여 약화되고, 재정 능력을 상실한 멕시코 정부는 수도에서 몇천 킬로미터씩이나 떨어진 북방 지방을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텍사스는 산타 안나가 지도하는 멕시코 군대를 물리치고 1836년 독립을 달성하였다.
전쟁 과정
리오 그란데 강
텍사스 공화국은 연방에 가입해 미국의 한 주가 되고 미국과 멕시코의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 등지의 문제로 인해 갈등이 생겼다. 텍사스를 합병한 미국은 리오그란데 강을 멕시코와의 국경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멕시코는 마찬가지로 리오그란데 강 북쪽을 흐르는 누에시스 강(Nueses River)을 국경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여 양국의 주장을 좁히지 못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 제임스 포크는 미국이 주장하는 텍사스 땅을 확보하도록 군에 지시했다. 이 지시를 받은 재커리 테일러 장군이 이끄는 군대는 누에세스 강을 남하하여 멕시코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브라운 요새(Fort Brown)를 세웠다.
1846년 4월 24일 멕시코의 기병 부대가 리오그란데에서 미국의 분견대를 사로잡으며 교전을 벌였다. 〈팔로 알토〉(Palo Alto)와 〈레사카 드 라 팔마〉(Resaca De La Palma)에서 국경 충돌과 교전 이후 미합중국군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자, 의회는 5월 13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남부 출신과 민주당이 이 조치를 지지했다. 한편 북부 출신과 휘그당은 일방적인 전쟁 선포를 반대했다. 멕시코는 5월 23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부에나비스타 전투를 그린 그림
미합중국의 선전포고 후 미합중군은 로스앤젤레스를 포함한 캘리포니아의 여러 도시를 점령했다. 〈몬테레이 전투〉는 1846년 9월에 일어났다. 1847년 2월 22일, 〈부에나 비스타 전투〉에서 테일러 장군이 안토니오 로페스 데 산타 안나 장군 휘하의 멕시코 군을 물리치고 알타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의 점령을 확고히 했다. 미합중국군은 멕시코군의 4배나 되는 대군으로 멕시코군을 격파하여 뉴멕시코의 수도 샌타페이를 점령했다. 1847년 3월에는 윈필드 스콧 장군이 이끄는 미합중군이 역사상 최초의 수륙양용 군사작전을 수행해 멕시코 베라크루스에 상륙했다. 멕시코 사령관은 항복하고 1847년 9월 14일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는 미군에게 함락되었다.
결국 1848년 1월 멕시코는 평화 협정을 요청해 1848년 2월 2일 멕시코 과달루페 이달고에서 《과달루페-이달고 조약》을 맺어 전쟁은 종결되었다.
멕시코 전쟁 중 몰리노델레이 전투 -1847년 10월 8일의 전투. '월스 장군의 지휘 아래 공장을 공격하고 있는 미군'이라는 설명을 달고 있는 1848년에 제작된 석판화
결과 및 영향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으로 미국은 겨우 1,825만 달러를 지급하고 멕시코로부터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애리조나, 네바다, 유타 주 등을 할양 받아 한반도 넓이의 15배에 달하는 300만 평방킬로미터의 영토를 넓혔다. 미국은 겨우 멕시코인들에게 진 빚 325만 달러를 떠맡도록 하였고 군사비 지출도 9,800만 달러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 직전 일부 미국 여론들은 전쟁을 반대했는데 지식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전쟁세를 내는 대신 감옥에 가는 것으로 항의했고 랄프 왈도 에머슨은 미국의 폭력을 부끄러워하며 멕시코가 미국에게 독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남북전쟁의 전쟁 영웅 율리시스 그랜트 역시 이를 두고두고 한탄했다고 전해진다.
[이하 다른 기사 추가]
전쟁이 끝난 뒤, 미국 영토로 새로 편입된 캘리포니아나 네바다 주에 대해서, 휘그당원들은 '새로 편입된 영토에서는 노예제를 금지한다'라는 법안을 만들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훗날 남북 전쟁에서 북군 사령관을 지냈고 훗날 미국 대통령까지 된 율리시즈 그랜트 (Ulysses S. Grant) 장군도 젊은 시절 이 전쟁에 참전했었는데, 그는 회고록에서 '이 전쟁이야 말로 부당함의 극치로서,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탈하는, 전형적인 유럽 군주국들의 전쟁과 같은 것이었다'며, '남북 전쟁은 사실 이 전쟁의 결과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미국의 전횡에 대한 일종의 천벌'이라고 썼다.
그러나 당시 신문들에 따르면 멕시코 전쟁은 거룩한 ‘성전(聖戰)’이었다. 예컨대, <뉴욕 선> 1847년 10월 22일자 사설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멕시코인들은 정복당하는 데 철저히 익숙해져 있다. 우리가 가르쳐 줄 유일한 새로운 교훈은—만약 그들이 우리의 출현으로 이익을 얻게 된다는 것을 제대로 안다면—우리의 승리가 피정복자에게 자유와 안녕과 번영을 안겨 줄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사명은 그들을 노예화시키고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해방시키고 그들을 더욱 고귀하게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