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즐기고 나누며 꿈 너머 꿈을 키웁니다”
방 성 원 고양 백양초등학교 교장
금요일 오전 10시 10분. 보통의 학교라면 운동장이 조용해야 할 시간, 백양초등학교 운동장은 아이들의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아이들은 교실을 나와 각자 공이나 악기를 들고 운동장으로, 동아리방으로, 또는 독서실로 삼삼오오 무리지어 흩어졌고 뛰어가는 와중에도 교사와 마주치면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10분이 지나도 종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아이들은 오랫동안 각자 하고 싶은 활동을 즐겼다.
학생도 교사도 자유로운 ‘큰 쉼표시간’
백양초등학교 방성원 교장은 운동장의 학생들을 가리키며 “큰 쉼표시간을 즐기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매주 화요일, 금요일 10시 10분부터 50분까지 큰 쉼표 활동을 합니다. 학생들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선생님들은 그 시간 동안 쉬거나 자기 공부를 하죠.”
큰 쉼표시간은 블록타임과 작은 쉼표시간을 활용하여 40분이란 시간을 주 2회 확보, 학생과 교사에게 자유를 주는 시간이다. 운동장과 공원에는 공놀이, 민속놀이, 가벼운 산책을 하는 아이들이 있었고 도서실에는 도서 어머니 회원들이 들려주는 구연동화에 집중한 아이들이 있었다.
백양초의 자랑거리인 학생 자율동아리 활동도 대부분 큰 쉼표시간을 활용하여 이루어지고 있었다. 핑퐁사랑, 캐치볼, 음악줄넘기, 런&킥, 백양어린이신문, 백양영자신문, 핸드메이드, 방송 동아리 등 다양한 부서에서 학생들이 머리를 맞대거나 각자의 장기를 살리고 있었다.
남이 시켜서 하는 것보다 스스로 즐기는 것이 중요하고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백양초 큰 쉼표시간은 행복한 미래를 추구하고 있었다. 협력적으로 놀이규칙을 만들어내고 대인관계 능력도 좋아지는 등, 사회성이 길러지는 살아있는 인성교육의 현장인 것이다.
서술형 평가로 학력은 UP, 사교육비는 DOWN
이런 백양초등학교의 변화가 시작된 건 2011년 방성원 교장이 공모교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이전에 백양초등학교는 주변 학교들에 비해 규모가 작고 지리적 접근성이 낮은데다가 수업 혁신의 의지도 약한 학교였다.
처음에 교사들의 혁신 의지를 이끌어내는 데 애를 먹었다는 방성원 교장은 “하지만 지금은 선생님들에게 고마울 뿐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많이 애써주고 있습니다”라며 자신이 한 것은 그저 “기다리고 격려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방성원 교장이 끈기 있게 교사들의 혁신 의지를 이끌어낸 결과, 백양초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시험이다.
학교에서 시험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학부모들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것이 바로 시험성적인 만큼 평가 혁신은 쉽지 않은 부분이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중학교 자유학기제 등 객관식 시험을 축소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지만 학교현장에서는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백양초등학교는 작년부터 과감하게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같은 객관식 시험을 없앴다. 평가는 오로지 서술·논술형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물론 교육과정 혁신이 전제되어 가능한 것이었다.
국어, 과학, 사회를 따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해 주제별 프로젝트 학습을 운영하고 있는 백양초는 한 프로젝트 학습이 끝나면 활동결과에 대한 평가를 실시한다. 서술하거나 논술하는 형식으로 시험을 보기 때문에 수업에 충실히 참가해야 시험지를 작성할 수 있고 따로 시험공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방성원 교장의 설명이다.
이런 서술형 평가를 실시한 이유는 경쟁학습이 아닌 협력학습을 이뤄내기 위해서였다. 물론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학부모 반대가 심했어요. 객관적인 성적이 나오지 않으니 불안했던 거죠.” 하지만 방성원 교장은 학부모들의 불안도 이해해 주었고, 학부모 연수를 통해 학부모들을 설득시켰다.
프로젝트 학습과 객관식 시험 없는 학교로 국·영·수 등 주요과목 사교육비를 줄였다면, 예체능 교육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는 전문교사 활용을 통한 팀티칭 수업으로 충족해주고 있다.
체육전공자 인턴교사와 담임교사가 함께하는 충실한 체육시간 운영으로 신체능력의 향상을 가져오는 등, 각 과목마다 전공 인턴교사가 참여해 아이들의 예체능적 감성을 길러주고 있는 것. 그 결과 백양초 학생들의 사교육비는 눈에 띄게 절감할 수 있었고, 창의력과 학력 향상도 이룰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매일 아침 이루어지는 사제동행 아침독서 시간도 백양초의 자랑거리다. 8시 30분부터 20분간 매일 아침 교사와 학생이 모두 같이 책을 읽는 것. 특히 출근하면 컴퓨터를 켜는 것이 그동안 관행이었다면 백양초에서는 9시까지 아무도 컴퓨터를 켜지 않고 모두가 책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학부모와 학생이 함께하는 꿈꾸는 교실
아이들을 위한 학부모의 참여도 눈에 띄는 부분. 앞서 말한 큰 쉼표시간에는 학부모들이 초록색 조끼를 입고 운동장 외곽과 학교 옆 공원을 돌며 아이들 안전을 지키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나눔드림’이라는 학습준비물실에 학부모가 대기, 아이들이 공부할 때 필요한 재료들을 챙겨주고 있었다. 나눔드림은 학부모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학습도우미 봉사활동이다.
나눔드림에서 만난 4학년 학부모는 “옛날에는 아침마다 준비물 챙겨주는 게 전쟁이었는데, 이렇게 학부모들이 참여해 직접 학교에서 챙겨주니 훨씬 수월하고 좋다”고 말했다. 5학년 학부모는 “우리 아이는 학교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며 학교활동에 대한 만족감을 보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부모 연수를 개최해 자녀와의 대화법을 가르치는 등 학교에서의 활동이 가정과도 연계되는 데 앞장서고 있는 중이다. 학부모 연수를 할 때 옆 교실에서는 학습부진아 학생들의 학습코칭을 실시해 학부모와 학생이 함께 성장하는 교실을 만들고 있었다.
교실로 찾아가는 상담활동
어느 학교나 학습부적응자는 있기 마련. 이 학교 유연이 상담교사는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습부적응자를 위해 직접 수업시간에 참여, 아이를 봐주는 등 남다른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유연이 상담교사가 근무하는 Wee 상담방은 백양초에서도 당연 인기 있는 장소다. 학생들이 쉬는 시간마다 놀러 오기도 하고,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있으면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장소인 것.
1학년 때부터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던 아이를 끈기 있게 보살핀 결과, 4학년이 된 지금은 먼저 수업시간에 질문도 할 줄 아는 아이로 만든 유연이 상담 교사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지만, 열심히 보살펴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고 보람을 밝혔다.
한편, 취재가 이루어진 4월 19일 백양초등학교에는 또래상담자 임명식이 있었다. 또래상담자는 동급생들이 학생들 사이의 문제를 들어주고 중재해주는 제도. 또래상담자로 임명된 5학년 전교부회장 정태호 군은 “친구들이 아픈 거 있으면 들어주고 마음을 치료해 주고 싶다”며 또래상담자로서의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또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에 대해 “친구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어 즐겁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방성원 교장은 “의사가 되고 과학자가 되는 직업의 꿈을 넘어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려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꿈 너머 꿈을 꾸는 학생이 되길 바랍니다”라며 학생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학교장 철학 대신 ‘행복한 이야기꽃’이라는 학교공동체 철학이 존재하는 백양초등학교. 이 철학은 학교 구성원의 협의와 토론을 통하여 정립한 철학으로 ‘상호존중의 마음결을 따라 만들어가는 전 인격적인 만남’, ‘저마다의 빛깔이 제 색을 발하고 더불어 어우러지는 공감’, ‘자유로운 상상으로 나래를 펼쳐가는 꿈’,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함께하는 성장’ 네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백양초는 이 철학을 바탕으로 위와 같은‘배우자, 즐기자, 나누자’ 교육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구성원들이 머리를 맞대 만든 교육활동인 만큼, 백양초에는 정말 행복한 이야기꽃이 가득했다. 앞으로 백양초등학교가 또 어떤 활동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임혜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