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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비한 황지훈
<두 도시 이야기>는 분명 내가 두 번이나 읽은 적이 있는 책이었다. <파우스트>와는 달리 어느 정도 줄거리도 기억이 났고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는 책이어서 쉽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지금 책을 다 읽고 나니 내가 전에 읽었던 책이 진짜 이 책이 맞았었는지 의문이 든다. <파우스트>를 다시 읽었을 때에는 분명 정독하였다는 기쁨은 있었지만 책을 바라보는 시선이 크게 변화했다고는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 책을 다 읽고 난 뒤 나는 이 책을 기억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책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게 된 것 같다.
책에서는 저번 주 도서인 <웃는 남자>의 시대와 비슷한 시기의 사건들이 펼쳐졌다. <웃는 남자>의 배경이 영국이었다면 이 책은 그 당시의 영국과 프랑스를 둘 다 다루고 있고 그 중 프랑스를 더욱 비중 있게 다룬다는 점뿐이었다. 이 책이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시기의 프랑스는 정말 대변혁의 시기였다. 교과서에서 이를 프랑스 혁명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혁명을 세계의 어떤 혁명 가운데서도 가장 진보적이고 과격했던 혁명으로 배운다. 나도 이 혁명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 속의 분위기처럼 피를 갈망하는 듯한 잔인한 분위기가 그 당시 사회에 존재했었다는 것을 정확히는 알지 못했다.
그들은 남녀노소할 것 없이 단두대에 많은 이들을 끌고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이들이 죽었다. 하루에만 수 십명 씩이 죽어나갔는데도 군중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우리가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며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던 프랑스 혁명의 진면목을 살짝은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말 피로 물든 혁명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듯한 소설 속의 묘사였다.
이러한 런던과 파리 두 도시를 오가는 이야기 속에서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고 작가가 부각하고 싶어 보이는 인물을 뽑으라면 역시 시드니 카턴이 아닐까 싶다. 시드니 카턴은 초반부의 등장에서부터 중반부 루시에게 고백하는 모습 그리고 마지막 다네이를 대신해서 본인이 사형수가 되는 모습까지 책 안에서 정말 많은 변화를 보이는 인물이다. 나는 카턴의 초반에 묘사된 방탕한 모습이 어떻게 소설 마지막에 헌신적인 모습으로 바뀔 수 있었는가를 계속해서 생각했다.
아마 평범한 사람들은 카턴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할 것이다. 한 여인을 향한 정말 애틋한 사랑, 순결한 사랑, 그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는 모습을 이야기하며 그를 진정한 사랑꾼으로 표현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카턴을 단순히 한 여인을 죽을 만큼 사랑한 인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작가는 소설 후반부에 계속해서 카턴이 성경 말씀을 되뇌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그리고 마지막 카턴과 함께 죽음을 맞으러 가는 한 여인의 입으로 이렇게 말한다. 카턴이 하늘이 자신에게 보내신 분일 거라고 고백하면서 “저희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도 하지 못하고 오늘 여기에서 희망도 위안도 얻지 못했을 거에요..”라고 말이다.
카턴은 루시를 만나기 이전 아주 방탕하며 목표의식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루시를 만난 후 사랑을 경험했다. 그리고 결국 그 사랑 때문에 다네이를 대신하여 희생할 수도 있었고 한 죄 없는 여인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과 희망, 위안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작가가 어떠한 의도에서 이런 구절을 썼는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카턴의 입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그 말씀들을 통해 카턴이 결국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의 정신을 깨달았기에 본인의 목숨을 그렇게 바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즉 그는 사랑의 참의미를 깨달았던 것이 아닐까?
소설 속 등장하는 드파르주 부인은 증오를 품었다. 그는 가득한 증오심으로 많은 이들을 기요틴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그 증오는 결국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그 후에 그녀는 잊혀졌을 것이다. 카턴은 드파르주 부인의 그 증오로 인해서 기요틴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작품 맨 마지막 구절이 암시하듯이 그는 영국에서 살아남은 다네이 가족에 의해서 계속해서 그들 속에서 기억되고 소중한 존재로서 추앙받을 것이다. 그가 그토록 원하던 누군가가 그를 위하여 울어주는 일은 그가 사랑을 깨우침으로 인하여 가능케 되었다.
겸비한 황지훈 님. 이번 감상문에서는 시드니 카턴이라는 한 명의 캐릭터에 대해 집중적으로 사색하셨네요. 카턴이 초반의 무기력한 모습에서 루시에게 사랑을 느끼는 순간, 찰스를 대신해 희생하는 모습을 통해 예수님 제자로서의 삶을 끄집어내셨습니다. 한 인물의 변화를 감지하고 그것에서 예수님의 형상을 묵상해내는 방식이 좋습니다.
단, 여기서 왜 하필 프랑스인을 위해 희생을 하는 인물로 영국 인인 시드니를 선택했는지, 작가 개인의 생각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거대 담론을 얘기한다 해도 이는 화자(작가) 개인의 환경, 가치관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이 작자 개인의 경험과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은 작가에게는 본질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 한계일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지혜로운 님 코멘트에 적어 두었으니 참고하세요.
활기찬 이서정
이 번 창작과정 과제로 읽게 되었던 두 도시 이야기는 평소 읽어보았던 책과는 다르게 꽤 흥미가 있었고 읽는 중에도 이해가 잘 되어 읽기가 쉬웠던 책이었던 것 같다. 책 제목을 보고 예상했던 내용과는 책의 내용이 조금 달라서 많은 생각을 하면서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오랜만에 이해가 잘되어 재미도 있었던 책이라 한 번 손에 들게 되면 뒷내용이 궁금해 계속 읽게 되었던 책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에서 프랑스에서는 특권 계층이 많은 특권을 누리고 많은 토지를 소유하였으며 풍족하고 즐거운 생활을 누렸다. 하지만 인구의 반이 훨씬 넘는 일반 민중들은 매우 살기가 힘들었고 빈곤에 휩싸였으면 매일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는 이러한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쓴 책이며 이와 비슷한 내용을 소설 속에서 담아내고 있다. 민중들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고 호화롭게만 살던 귀족들과 왕에 의해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던 민중들은 피의 혁명을 일으키고 많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인다.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여 몇 되지 않는 죄수들을 풀어주었으며 왕과 왕비, 귀족들은 모두 단두대에 오르게 하였다. 책에 내용에서도 나왔듯 많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함성을 지르고 사람들을 끌고 가 다치게 하고 죽이는 장면들이 많이 나와 있다. 이러한 장면들을 읽으며 이 장면을 실제로 보지 않았어도 생생하게 머릿속으로 기억이 나는 장면이었다.
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찰스가 감옥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며 있는 중에 시드니 카턴이 찰스에게로 와서 찰스와 옷을 바꿔 입은 뒤에 찰스대신 자신이 직접 단두대에 서는 장면이 가장 인상이 깊었다. 시드니는 왜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무기력하고 방탕한 삶을 살며 자신의 삶의 의미도 사는 이유도 몰랐던 시드니는 루시를 사랑하게 되어 루시와 이야기를 나눈 뒤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하고 루시의 성실한 삶을 본 뒤 삶의 의미도 찾게 된다. 이 때 시드니는 큰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며 루시에게 매우 고마워한다. 이렇게 아무 의미 없던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바꾸어 준 루시에게 고마운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찰스에를 대신하여 단두대에 올라간 것 같다.
활기찬 이서정 님.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는 등의 프랑스 혁명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그려졌군요. 작가의 의도가 님에게 잘 전달 된 듯합니다. 시드니의 결정이 루시에 대한 사랑으로 보여졌네요.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랑의 힘만큼 강렬한 것 없는 듯합니다. 특히 시드니의 사랑에서 눈여겨 볼 점은, 루시를 향한 사랑은 자신의 인생이 뒤흔들릴만큼 강렬하지만, 루시를 가지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루시가 아직 미혼일 때도 그는 루시를 탐내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 책에서는 굉장힌 미덕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관점을 틀면 또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활기찬 님의 생각은 어떤가요?
감사하는 오민경
제목: <두 도시 이야기>를 읽고 나서
주제: <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던 시기의 사람들의 삶과 가치관 상황을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잘 나타낸 작품이다.
이번 주 책은 <두 도시 이야기>이다. 작년 창작과정에서 읽었던 기억이 있지만, 책이 별로 길지 않아서였는지 아니면 내가 책을 다 읽지 않아서였는지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났다. 그래서 거의 새로운 책을 읽는 것 같은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592쪽이라는 엄청난 양에 겁이 나기도 했다. 특히 책을 늦게 빌렸기에 책을 빌리자마자 읽기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재미가 없어서 당황했지만, 했다. 다행히 어느 부분 이상 책을 읽으니 작년에 읽었던 기억도 돌아오고 재미도 있었다.
<두 도시 이야기>는 작년에 수업에서 들었던 내용과 저번 주에 선생님께서 ‘프랑스 혁명’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일부로러 읽을 때 왠지 프랑스 혁명 과정과 연관이 있는 부분을 집중해서 읽었다. 사실 평민들의 투쟁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나올 것을 예상하였는데 대부분의 지배층에 대항하는 혁명이 그렇듯 민중들이 초반에는 생각보다 소극적이고 자잘한 투쟁을 하고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집중해서 읽으니 중간 중간에 나온 사람들이 간첩을 혐오하고 장례식도 못 하게 하는 장면과 특히, 초반에 찰스 다네이가 누명을 쓰고 재판하는 과정이 자세히 설명하면서 그로 인해 그가 간첩 활동을 했다고 능지처참에 당할 위기였다는 것과 같이 주제를 잘 나타낸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책의 시작 부분과 중간 중간에 그 시대의 배경, 예를 들면, 사람들의 굶주림을 자세히 설명해서 상황의 처참함을 보여주고 또, 후작 나리를 등장시켜 지배층의 그 당시 행동과 지배층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순을 혐오하는 사람을 등장시켰던 것 등등이다. 나는 후작 나리를 등장시키므로 인해 진짜 그 시대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책을 반으로 나누었을 때 앞부분은 내 생각에 직접적으로 묘사가 되어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지만, 중후반부터는 생각보다 인물들의 생각을 알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같은 주제를 가지고 읽다 보니 내용이 이어짐과 함께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두 도시 이야기>를 읽을 때, 특히 앞부분을 읽을 때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주제도 담지 않은 소설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전체적인 내용이 흥미진진하고 감옥에서 풀려났는데 예전에 썼던 편지 때문에 다시 갇히고 또 구하고 등등 이렇다 보니 등장인물 한명 한명의 생각, 가치관과 주제를 이해하지 않고도 소설로만 읽어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찰스 디킨스가 보여주고자 했던 시대 상황과 그 당시 영국과 프랑스의 관계 등과 살펴보면 그 시대를 심오하게 잘 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정말 읽으면서 그 시대의 배경과 중심 배경이 너무 잘 와닿고 잘 서술된 것 같아 읽기도 편했고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작년에 읽을 때는 단순히 책의 줄거리만을 이해하며 읽었던 것 같은데, 창작과정을 한 번 더 하면서 다시 읽어보니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고 이해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책을 두 번 읽은 적이 별로 없어서 내용이 생각날 때쯤에 지루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반복이 지루하다는 내 생각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또한, <두 도시 이야기>로 인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게 된 것 같아 다음 주 책도 열심히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감사하는 오민경님. 책을 두 번 읽음으로써 이전에 보지 못한 것을 보게 되었군요.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즐거움일 것입니다. 훗날 나이가 더 들어서 읽는다면 두 도시 이야기가 또 다른 감상으로 다가올 거예요. 이는 고전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한 번 만에 모든 것이 명백히 이해되고,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단편적이라면 두 번 세 번 곱씹어 읽을 이유가 없겠지요. 책에 대해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흥미를 가지는 자세가 좋습니다.
할 수 있는 김성령
두 도시 이야기 이 책을 몇 번이고 읽었던 것 같지만 이상하게 요번에 읽을 때는 초면인 듯 낯설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시기쯤엔 세계적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난 세계적인 혁명들이 대부분 폭력적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듯이 변화한 줄 알았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의 배경인 프랑스 혁명은 더욱 더 폭력적이고 잔인했던 혁명이라곤 상상하지도 못했다.
이 책에서 중요 인물인 찰스는 귀족 출신이라는 것만으로 또 아버지의 악행으로 인해 두 번의 재판을 받게 된다. 첫 번째는 장인어른으로 인해 풀려나지만 곧 바로 다시 잡혀 감옥에 들어간다. 찰스를 고발한 혁명군의 주요인물인 드파르주 부부는 당연히 찰스가 죽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명의 변호사 한 때 루시를 사랑했었던 시드니가 대신 희생을 한다.
혁명군들의 무자비함과 잔인함을 보며 사람은 매우 쉽게 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그런 사람을 바꾸는 것은 경험이라고 확신했다. 물론 사람을 바꾸는 요인은 매우 많다. 습관, 행동 등 하지만 이런 요인의 원인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학교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흡연하는 학생들 같은 경우에도 경험에서 시작된다. 호기심으로 인한 한 번의 경험이 습관으로 발전된다.
혁명군 일원들 또한 똑같다. 처음엔 막상 귀족을 처형하는 상황에 놓이니 잠깐 머뭇거린다. 하지만 분위기에 이끌려 살인이라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살인의 대한 거부감이 거의 사라진다. 그렇게 잔인한 사람으로 발전된다.
나는 이 혁명이 무조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귀족들의 행실이 악하고 이기적이었던 것은 사실이고 그로 인해 하층민들의 삶이 매우 힘들었다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혁명은 주님께서 하층민들에게 준 기회일 수도 있다는 작은 생각이 들었다. 주님께선 폭력과 지배를 절대적으로 좋아하시지 않는다. 사람은 모두 평등하게 만드셨는데 자꾸 불평등한 모습이 반복되니 주님께서 바로 잡아 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력은 어느 순간에도 정당화 되지 않음으로 혁명의 방법은 잘 못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주님의 뜻이었다면 그것은 맞는 것이다.
책을 끝까지 다 읽긴 했지만 오히려 더 복잡했다. 여전히 책을 읽고 깊은 깨달음이 딱히 없는 것 같다. 고전을 읽어도 깊은 깨달음을 얻는 통찰력을 갖춘 사람이 되고 싶다.
할 수 있는 김성령님. <두 도시 이야기>를 읽고 사람을 바꾸는 것은 경험이라고 생각하셨네요. 흥미롭습니다. 님 감상문의 독자로서 관심이 가는 부분인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서술되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님의 말처럼 ‘경험’은 사람을 바꾸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의 어떤 부분을 보고 이것을 확신하게 됐는지 더욱 궁금합니다.
제가 화두를 조금 던진다면, 같은 경험을 한다고 해서 꼭 결론적으로 같은 행동을 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귀족들이 주변 귀족들이 살아가는 방식대로 똑같이 살지만, 찰스는 후작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귀족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백성을 짓밟는 것에 대해 매우 부끄러움을 느끼고 가족의 잘못을 대신 갚아가려고 노력하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프랑스 귀족이라는 자신의 신분도 숨기죠. 이에 대해 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집니다.
닮아가는 윤하진
나는 지난주에 다짐한 대로 이번 주 책은 제대로 읽었다. 이번 주의 <두 도시 이야기>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설명들과 같이 지루해서 읽기 힘든 부분들이 있었지만 저번 주와는 달리 시간과 인내심을 가지고 꼼꼼히 읽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책을 이해하는데 조금 더 보탬이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꼼꼼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여러 번 읽어가며 책을 읽어서 다 읽지는 못했지만 대충 넘어간 부분은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등장인물이 많이 나온다. 지난 책인 <파우스트>나 <웃는 남자>와 비교해보면 등장인물이 무척 많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등장인물이 많이 나오는 만큼 책에 나오는 이야기의 배경도 여러 다른 장소가 나온다. 이 때문에 장이 바뀌면 기존의 등장인물이 아닌 등장인물이, 전혀 다른 배경에 있는 이야기가 나와 초반에 책을 읽을 때는 무척 힘들었다. 나중에는 그 이야기들이 개연성 있게 점차 연결되어 쉽게 이해할 수 있었지만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특별했던 점은 같은 서술 방식으로 비슷한 문장을 여러 개 나열하거나 매우 긴 문장이 쓰여 있는 부분이 책의 곳곳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어떻다는 듯이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읽어본 책에서는 보통 그런 방식으로 책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좀 색달랐다. 다만 긴 문장 같은 경우에는 긴 경우 책의 한 페이지의 절반까지 차지하고 있기도 했는데 이것을 읽기에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
닮아가는 윤하진 님. 이번에는 책의 서술 방식에 대해서 고민해 보셨군요. 좋습니다. 2학기부터는 창작 소설을 준비하게 될 텐데, 작가들마다 구성과 서술방식에 개성이 있으므로 잘 파악해 두는 것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은 많은 등장인물과 다양한 배경이 나온다고 했는데 님의 독서 경험을 비추어 내가 소설을 쓸 때는 인물의 수를 몇 명으로 결정할지, 배경이 되는 장소를 어디까지로 한정지을지에 대해 더 효과적인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댓글 같은 책을 읽고서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창작과정 꿈쟁이들의 사고가 다른 친구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선생님도 <두 도시 이야기>를 꼭 읽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