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월성지(明月城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터. 1976년 9월 9일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관리단체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소재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
크기 : 둘레 1.3㎞, 높이 3m
1976년 9월 9일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510년(중종 5) 제주목사 장림(張琳)이 명월포(明月浦)에 쌓았던 성터이다. 선조 때 제주목사 이경록(李慶錄)이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다시 쌓았다. 성의 총길이는 1,300m, 높이는 3m이다.
성에는 동문·서문·남문이 있으며 성에는 샘이 있었다. 객사·군기고 등이 있었으며, 해안에는 수전소(水戰所)도 있어서 판옥선(板屋船)과 노 젓는 군사 103명이 배속되어 있었다. 당시 책임자(종4품의 만호) 112명의 명단비 및 개인 공덕비가 있는 소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이경록은 1592년 나주목사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김천일(金千鎰)을 도와 전공을 세우고, 1593년 제주목사가 되어 많은 치적을 세웠다.]
[명월진성은 둘레가 3천 20척, 높이가 8척이었으며, 동쪽과 남쪽 및 서쪽에 각각 성문이 있었다. 성안에는 수량이 풍부한 샘이 있었고, 건물로는 객사·별창·군기고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명월포는 1270(고려 원종 11)에 삼별초의 별장 이문경이 고려에서 파견된 관군을 진압하고 탐라를 점령할 때 상륙한 곳이며, 김방경이 삼별초를 정벌할 때에도 그 일진이 이곳으로 상륙하였다. 더욱이 1374년(공민왕 23) 목장을 관리하기 위해 몽고에서 파견된 몽고인 목자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이를 진압하기 위하여 최영 장군이 상륙한 곳도 명월포였다.
명월진성
제주도 동쪽 한림읍 동명리에 있는 명월진성은 바닷가에 접해 있지 않고 약간 내륙 쪽에 쌓은 석성이다. 타원형인 성의 규모는 둘레 1,360m, 높이가 4.2m며 동·서·남쪽에 성문이 있었는데 현재는 남문과 문 위의 누각, 일부 성벽이 복원된 상태다. 남문 앞쪽으로 옹성이 둘러져 있는 등 전형적인 조선 시대 성문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명월진성은 처음 1510년(중종 5) 제주 목사 장림이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명월포에 나무로 쌓은 목성(木城)이었다. 이후 1592년(선조 25) 제주 목사 이경록이 석성으로 개축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성내에 역대 만호(萬戶)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있다.
성안에는 객사와 사령방·무기고·창고 등 각종 건물이 있었지만, 지금은 지역민들의 밭으로 대부분 사용되고 있어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길이 없다.
정조 때 제주를 다녀간 어사 박천형은 서계(書啓)에서 “제주와 대정(大靜) 사이에 위치하여 토지가 비옥하고 해산물이 풍부하여 9진 중 으뜸이다. 성지가 광활하고 백성들이 부유하여 샘물과 창고도 있어서 충분히 자급할 수 있으므로 서남쪽 거진(巨鎭) 중의 하나이다”라고 하여 제주의 9진 중 명월진만이 구색을 갖춘 것으로 평가하였다.
명월진성(明月鎭城)
분야 역사/전통 시대, 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 2235·2256
시대 조선/조선
출처 디지털제주문화대전-명월진성
목차
1. 정의
2. 개설
3. 건립경위
4. 위치
5. 형태
6. 현황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성곽.
개설
명월진성은 왜구의 침공에 대비하여 목성(木城)으로 만들었다가 훗날 석성(石城)으로 쌓은 조선 시대 성곽이다. 명월진성이 있는 명월포는 고려 후기인 1374년(공민왕 23) 제주에 살던 목호(牧胡: 원나라가 운영하던 국영 목장 관리자)가 반란을 일으키자 최영 장군이 상륙하여 난을 진압하고 돌아간 곳이다.
조선 시대 명월진에는 만호 1명, 치총 4명, 수솔군 82명, 성정군 330명, 유직군 99명, 진리 22명, 서기 30명 등 총 568명이 있었으며, 2봉수(도내봉수, 만조봉수)와 7연대(귀덕연대, 우지연대, 죽도연대, 마두연대, 배령연대, 대포연대, 두모연대를 관할하였다.
건립경위
명월진성은 조선 중기인 1510년(중종 5) 제주목사 장림이 비양도 인근에 출몰하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목성(木城)으로 축조하였다. 그 후 1592년(선조 25) 제주목사 이경록(李慶祿)이 돌로 바꿔 쌓았는데, 제주목의 서북쪽을 방어하는 진지였기 때문에 1764년(영조 40)에 조방장을 승격하여 만호를 두고, 제주 출신을 임명토록 하였다.
위치
명월진성은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에 있는데, 남쪽으로는 월림리가 있고, 서쪽은 금릉리, 북쪽은 한림리가 있다.
형태
명월진성의 원래 둘레는 3,020척이고 높이가 8척으로 성 안에는 풍부한 양의 감천(甘泉)이 있었다. 동문과 서문·남문 위에는 1칸씩의 초루를 두었다. 성벽은 북서와 남동 방향으로 장축인 타원형으로, 성벽의 요소에 치성을 두어 접근하는 적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성 안에는 진사(鎭舍: 3칸), 객사(客舍: 3칸), 사령방(使令房: 2칸), 공소(供所: 2칸), 공수(公需: 2칸), 무기고(武器庫: 4칸), 도청(都廳: 4칸), 진고(賑庫: 4칸), 창대청(倉大廳: 3칸), 중화청(仲和廳: 2칸), 진졸청(鎭卒廳: 3칸)과 창고 4동(각각 2칸)이 있었다고 전한다.
현황
현재는 남문과 문 위의 누각, 일부 성벽이 복원된 상태다. 남문 앞쪽으로 옹성이 둘러져 있는 등 전형적인 조선 시대 성문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명월성지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