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정의(正義)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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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찬 목사
사람은 혼자선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면 여러 가지 문제들이 쉴 새 없이 발생됩니다. 이는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요즘처럼 사회가 빠르게 복잡해지고 문화적 다양성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시대에는 문제 역시 더 복잡하고 빠르게 일어나게 됩니다.
따라서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 할지라도 실수하지 않을 수 없고 오류에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날처럼 예측할 수 없는 시대에 어떻게 올바르게 살 수 있는가? 바르지 못한 삶에 대한 수치심(부끄러움)과 철저한 자기반성, 그리고 분명한 삶의 교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의에 대한 분명한 잣대가 있어야 합니다. 정의(justice)에 대한 해석은 학자들마다 다른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서양 철학자들은 정의를 “보편적으로 옳은 것”으로 보았는데, 플라톤은 “조화”(Harmony)로 파악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평등”(Equivalence)이라 했으며, 존 롤즈(John Rawls)는 “자유롭고 평등한 것”이라 했습니다. 롤즈는 정의의 원칙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첫째는 “평등한 자유의 원칙”으로 사회 구성원은 누구나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차등의 원칙”으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허용 조건인데, 이는 동시에 직위·직책에 대한 기회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기회균등의 원칙을 가리킵니다. 정의란 원래 개인에게 적용되던 덕목이었습니다. 그러다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심각해지면서 사회적 성격을 띠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정의라고 하면 대부분 사회 정의를 가리키며,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고 상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공자와 맹자는 “사람으로 마땅히 해야 할 올바른 도리”라 했습니다. 고대 그리스는 지혜・정의・용기・절제를, 유교는 인(仁)・의(義)・예(禮)・지(智)라는 4대 덕목을 내세워 정의의 가치를 실현하려 했습니다. 맹자는 사단(四端), 즉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이라 했는데, 그 중에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자기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으로써 정의를 실천하는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습니다. 그동안 서양에서는 죄책감, 동양에서는 수치심이 그 사회와 공동체를 지탱해주는 균형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죄책감은 익명적일지라도 여전히 자기 양심이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감시해 주지만, 수치심은 익명적이 되면 다른 사람들의 “눈과 얼굴”이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작금에 일어난 엄청난 국정농단 사건도 그 중에 하나로 자신의 비리에 양심의 가책이나 부끄러움을 전혀 느끼지 못함이 이를 증명합니다. 이처럼 사회가 기계적으로 조직되고 익명적 인간관계가 형성되면서 수치심을 잃어버리고 윤리적 기능 또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본능에 따른 행동과 이기적인 생각에는 그 누구에 대한 배려나 관용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통신이 발달하고 SNS가 저변확대 될수록 익명성의 부작용은 더욱 극성을 부리게 될 것입니다. 정의의 여신상을 보면, “같은 경우에는 같게, 다른 경우에는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 정의다”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양 눈을 가리고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는 정의를 신의 영역으로 귀속시킴으로써 인간은 그 어떠한 노력으로도 그것을 실현시킬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결코 정의를 실현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는 영원하고 진실 된 정의가 있을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정의는 사랑을 통해서만 증명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그분의 사랑이 인간 세상에 펼쳐질 때 드러납니다. 신구약 성경이 일관되게 보여주는 하나님의 행동은 약자에 대한 배려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사랑 행위로 실현되는 정의이며 은혜를 베푸심으로 이루시는 참된 정의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하나님의 공의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보살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복지라는 명목으로 유린될 수 없으며, 다수가 누릴 더 큰 이득이나 더 나은 선(善)을 위해 소수의 자유를 빼앗는 것도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 또한 정의롭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오직 그의 사랑의 행동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라고 힐문하고 계십니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꼭 지켜주세요)
창골산 원고보내주실곳   
cgsbong@hanmail.net 
글을 읽으신후 댓글은 사랑의 표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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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귀한 말씀의 글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주안에서 행복 누리소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