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리왈시(曰梨曰柿)
배 놔라 감 놔라 한다는 뜻으로, 사돈집 제사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한다는 속담의 한역으로 쓸데없이 간섭한다는 말이다.
曰 : 가로 왈(曰/0)
梨 : 배 리(木/7)
曰 : 가로 왈(曰/0)
柿 : 감 시(木/5)
사람마다 저 잘난 맛에 산다는 속담이 있다. 남이 보기에 보잘 것 없는 처지라도 제각기 다 자기가 잘났다는 긍지와 자존심이 있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엇나가는 행동을 바로잡아 주려 해도 상관하지 말라며 ‘남이야 전봇대로 이를 쑤시건 말건’ 두라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옳게 충고하는 말은 귀에 거슬린다는 양약고구 충언역이(良藥苦口 忠言逆耳)란 명구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남의 말 듣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의 말 하기는 어지간히 좋아한다. 남의 흉이 한 가지면 제 흉은 열 가지라고 쓸데없이 남의 흉을 봤다가 몇 곱으로 돌아오는 낭패를 당한다.
배 놓아라 말하고(曰梨) 감 놓아라 말한다(曰柿)는 것은 ‘사돈집 잔치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한다’라는 속담을 한역한 데서 나왔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이 엮은 이담속찬(耳談續纂)에는 남의 잔치에 이러쿵 저러쿵 하지 말라는 타인지연 왈리왈시(他人之宴 曰梨曰柿)로 표현했다.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서 쓸데없이 간섭한다(不在其位, 枉有干涉)는 뜻이라고 풀이를 보탠다.
나서지 않아야 할 남의 일에 공연히 간섭하고 끼어 들어서는 특히 예를 차려야 하는 사돈 간의 의를 상할 일이다.
사돈의 잔치라 했지만 실제 이 말은 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이란 홍동백서(紅東白西)와 같이 제사 음식을 진설(陳設)하는 순서에서 비롯됐다.
제일 앞줄에 대추, 밤, 배, 감을 차례대로 차리는 조율이시(棗栗梨柿)의 원칙을 조율시이(棗栗柿梨)로 하는 것이 옳다고 서로 싸운다는 뜻이다.
배를 먼저 놓는 집안도 있고, 감을 먼저 차리는 곳도 있어 가가례(家家禮)라 하는데 자기 것이 옳다고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조그마한 원칙을 놓고 서로 양보를 않고 다투기만 한다면 항상 분란만 생긴다. 남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나의 원칙을 지킨다면 더 좋은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조선 중기 대비와 왕비의 상례문제를 둘러싸고 예송(禮訟)논쟁으로 치달은 것은 자기들 방식만 고집했기 때문이다.
지난날 영원한 2인자 JP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타계했을 때 현직 대통령의 조문을 가야 하느니, 필요 없다느니 한 것도 괜히 감 놔라 배 놔라 한 결과였다.
왈리왈시(曰梨曰柿)
설날이나 추석에 지내는 제사를 차례(茶禮)라고 한다. 아이들은 설날에 세뱃돈 받아 신 나고 어른들은 세뱃돈 나눠 주며 흥겹다.
동국세시기에는 떡국이 정조(正朝) 차례와 세찬(歲饌)에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라고 기록돼 있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설날은 천지만물이 새로 시작되는 날로 엄숙하고 청결해야 한다는 원시 종교적 사상에서 깨끗한 흰 떡으로 끓인 떡국을 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차례를 지낼 때 제상(祭床)에 진설하는 음식은 집안마다 지방마다 다르지만 몇 가지 원칙은 있다.
생선으로 된 어찬(魚饌)은 동쪽에, 육고기로 된 육찬(肉饌)은 서쪽에 놓는다. 어동육서(魚東肉西)다. 함께 지켜야 할 것은 동두서미(東頭西尾), 머리를 동쪽을, 꼬리는 서쪽을 향하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밖에 홍동백서(紅東白西; 붉은색 과실은 동쪽, 흰색 과실은 서쪽), 숙서생동(熟西生東; 익힌 나물은 서쪽, 생김치는 동쪽), 동조서율(東棗西栗; 대추는 동쪽 밤은 서쪽)도 중요한 진설방법이다.
그런데 격식과 전통을 따지는 집안일수록 제사 방식으로 말이 많다. 뭐 좀 안다는 친척 어른이 제일 문제다. 그래서 ‘남의 잔치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한다’는 말이 생겼다. 타인지연 왈리왈시(他人之宴 曰梨曰柿)다.
다산 정약용이 우리 속담을 모아 엮은 이담속찬(耳談續纂)에도 나온다. 다산은 이 속담에 대해 부재기위 왕유간섭(不在其位 枉有干涉),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서 쓸데없이 간섭한다는 뜻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박물군자 무불간섭(博物君子 無不干涉)이라는 말도 있다. 아는 게 많은 사람은 간섭하지 않는 게 없다는 뜻인데, 무슨 일이나 아는 체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다.
출전은 사마천의 사기 중 오세가(吳世家)에 보인다. 나이든 사람은 한 살 더 먹었으니 박물군자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曰(가로 왈)은 ❶추상적인 뜻을 점이나 선으로 표시하는 지사문자이나 상형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口(구; 입)와 입에서 나오는 말을 나타내는 기호(記號) 一로 이루어졌다. 입을 벌리고 말함을 나타낸다. 상형문자로 보면 입과 날숨을 본떠 목소리를 내어 말하다를 뜻한다. ❷지사문자로 曰자는 ‘가로되’나 ‘말하기를’, ‘일컫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曰자는 口(입 구)자 위에 획을 하나 그은 것으로 ‘말하다’라는 뜻을 위해 만든 지사문자(指事文字)이다. 曰자는 ‘말하다’와 관련된 다른 어떤 글자들보다도 가장 먼저 등장한 글자로 단독으로 쓰일 때는 ‘말하다’나 ‘말씀하시다’와 같은 뜻을 전달하고 있다. 曰자는 ‘~曰(~께서 말씀하시다)’와 같이 고전이나 고문서에서의 한문투로 사용되는 편이다. 그러니 曰자는 비교적 고어(古語)의 어감을 가진 글자라 할 수 있다. 曰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단순히 ‘말’과 관련되거나 아무 의미 없이 모양자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曰(왈)은 한문투의 말에서 말하기를(가로되 또는 가라사대)의 뜻으로 ①가로되, 말하기를 ②이에 ③일컫다, 부르다 ④이르다, 말하다 ⑤~라 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화류계 가운데에서 말과 행동이 좀 거친 창기를 이르는 말을 왈자(曰者), 말과 행동이 단정하지 못하고 수선스러운 사람의 별명을 왈패(曰牌), 어떤 이가 말하는 바 또는 혹은 이르기를의 말을 혹왈(或曰), 내게 말하기를의 말을 여왈(予曰), 또 말하기를 또는 다시 이르되의 말을 우왈(又曰), 모든 사람이 말하되의 말을 개왈(皆曰), 소위 또는 이른바의 말을 소왈(所曰), 한 편으로 일러 말하기를의 말을 일왈(一曰), 좋으니 나쁘니 하고 떠들어 댄다는 말을 왈가왈부(曰可曰否), 어떠한 일에 대하여 옳으니 그르니 하고 말함을 또는 시비를 가리는 말을 왈시왈비(曰是曰非), 서로 형이니 아우니 하며 친하게 지낸다는 말을 왈형왈제(曰兄曰弟), 임금을 대하는 데는 엄숙함과 공경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왈엄여경(曰嚴與敬), 말로는 백만을 일컬으나 실상은 얼마 안 된다는 말을 호왈백만(號曰百萬), 어찌 꼭 이익만을 말하는가는 뜻으로 오직 인의에 입각해서 일을 하면 이익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이익이 돌아온다는 말을 하필왈이(何必曰利), 주견이 없이 남의 말을 좇아 이리저리 함을 이르는 말을 녹비왈자(鹿皮曰字), 누구도 불가하다고 말할 사람이 없다는 말을 수왈불가(誰曰不可) 등에 쓰인다.
▶️ 梨(배 리/이)는 ❶형성문자로 梸(리), 棃(리), 樆(리)는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나무 목(木; 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利(리)로 이루어졌다. ❷형성문자로 梨자는 ‘배나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梨자는 木(나무 목)자와 利(이로울 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利자는 곡식을 수확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수확’이나 ‘이롭다’라는 뜻이 있다. 그러니 梨자는 ‘이로운 나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다만 梨자는 쓰임이 매우 적어 주로 지명이나 상호, 배의 종류를 표기할 때만 쓰이고 있다. 그래서 梨(리/이)는 ①배, 배나무 ②늙은이 ③뭇, 모든, 많은 ④나누다, 분할하다 ⑤찢다, 쪼개다, 가르다 ⑥따르다, 쫓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배나무를 이목(梨木), 배나무 꽃을 이화(梨花), 화폐 이용의 대상으로서 지불되는 금액을 이자(梨子), 껍질을 벗긴 배에 후추를 드문드문 밖아 꿀물이나 설탕물에 삶은 음료를 이숙(梨熟), 배나무 동산을 이원(梨園), 산돌배를 산리(山梨), 배나무의 열매를 생리(生梨), 서리를 맞아 얼어서 시든 배 또는 그 배처럼 쇠하고 시들어 검버섯이 난 노인의 피부를 비유하여 이름을 동리(凍梨), 배의 한 가지로 빛깔이 누르고 크며 맛이 좋은 배를 황리(黃梨), 잿불에 배를 구움 또는 그 배를 소리(燒梨), 제사의 제물을 진설할 때 동편에서부터 대추 밤 배 감 순으로 놓으며 그 외의 과일은 순서가 없음을 조율이시(棗栗梨枾),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속담의 한역으로 오비이락(烏飛梨落) 등에 쓰인다.
▶️ 柿(감나무 시, 대팻밥 폐)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나무 목(木; 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市(시)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柿(시, 폐)는 ①감나무 ②감(감나무의 열매) 그리고 ⓐ대팻밥(대패질할 때 깎여 나오는 얇은 나무오리)(폐)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감의 꼭지를 약재로 이르는 말을 시체(柿蒂), 감을 술에 담가 만든 식초를 시초(柿醋), 곶감을 달리 이르는 말을 건시(乾柿), 흠씬 익어 불고 말랑말랑한 감을 홍시(紅柿), 모양이 둥글납작하게 생긴 감으로 납작감을 반시(盤柿), 나무에 달린 채 무르녹게 잘 익은 감을 숙시(熟柿), 덜 익거나 침을 담그지 않았거나 또는 단감이 아니어서 맛이 떫은 날감을 삽시(澁柿), 껍질을 깎아서 꼬챙이에 꿰지 않고 납작하게 말린 감을 준시(蹲柿), 토마토를 달리 이르는 말을 초시(草柿), 잘 익은 감이 저절로 떨어질 것을 기다림과 같이 노력은 하지 않고 이익이 자기에게 돌아올 때를 한가히 기다리고 있는 주의를 이르는 말을 숙시주의(熟柿主義), 배 놔라 감 놔라 한다는 뜻으로 사돈집 제사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한다는 속담의 한역으로 쓸데없이 간섭한다는 말을 왈리왈시(曰梨曰柿)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