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신의 군복
(김정기)
당신의 군복에서 새들이 우짖는다 빨강 노랑 장미가 피고 아늑한 저녁 종소리가 난다 산맥이 뻗어가고 바다가 넘친다 해가 뜨고 달이 진다
당신의 군복에 내가 던져져서 바람을 막고 비를 막고 총탄을 막으리라
유월 아침 아카시아 그늘에서 흙을 털고 시간을 털어내며 구겨진 군복을 다림질 한다
2) 따뜻한 책
(이기철)
행간을 지나온 말들이 밥처럼 따뜻하다 한 마디 말이 한 그릇 밥이 될 때 마음의 쌀 씻는 소리가 세상을 씻는다
글자들의 숨 쉬는 소리가 피 속에 지날 때 글자들은 제 뼈를 녹여 마음의 단백이 된다
서서 읽는 사람아 내가 의자가 되어줄게 내 위에 앉아라 우리 눈이 닿을 때까지 참고 기다린 글자들 말들이 마음의 건반 위를 뛰어다니는 것은 세계의 잠을 깨우는 언어의 발자국 소리다
엽록처럼 살아 있는 예지들이 책 밖으로 뛰어나와 불빛이 된다 글자들은 늘 신생을 꿈꾼다 마음의 쟁반에 담기는 한 알 비타민의 말들 책이라는 말이 세상을 가꾼다
3) 그리움은 게 한 마리의 걸음마처럼
(유 하)
끝간데 없는 갯벌 위를 걷습니다 모든 것이 고요하기만 합니다
문득 손톱만한 게 한 마리 획 내 앞을 지나갑니다
어쩐지 그 게 한 마리의 걸음마가 바닷물을 기다리는 갯벌의 마음처럼 느껴집니다
그 마음 그토록 허허롭고 고요하기에 푸른 물살, 온통 그 품에 억장 무너지듯 안기고 마는 걸까요
아아 바닷물처럼 출렁이는 당신이여
난 게 한마리 지날 수 없는 꽉찬 그리움으로 그대를 담으려 했습니다 그대 밀물로 밀려올 줄 알았습니다
텅텅 빈 갯벌 위, 난 지금 한 마리 작은 게처럼 고요히 걸어갑니다
이것이, 내 그리움의 첫 걸음마입니다
4) 나무 한 그루
(이정록)
내 관으로 쓰일 나무가 어딘가에서 크고 있다
한 그루 한 그루 뿌리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산을 이루는가
하늘의 품은 하도 넓어서 나뭇잎 간혹 새처럼 치솟는다
밑가지를 버리고 순을 틔우는 나무 껍질에 딱딱한 벌레를 감싸며 그늘을 내려놓는 나무는 내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경험한다
목숨을 걸어야 내 할 수 있는 일 나는 누구의 따뜻한 관이 될 수 있을까
나를 집으로 삼을 벌레들아 여기 나이테만 촘촘한 괴목이 있다
내 관으로 쓰일 나무 한 그루 어딘가에서 하늘을 보고 있다
5)나무학교
(문정희)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해마다 어김없이 늘어가는 나이 너무 쉬운 더하기는 그만 두고 나무처럼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늘 푸른 나무 사이를 걷다가 문득 가지 하나가 어깨를 건드릴 때 가을이 슬쩍 노란 손을 얹어 놓을 때 사랑한다!는 그의 목소리가 심장에 꽃힐 때 오래 된 사원 뜰에서 웃어요!하며 나무를 배경으로 순간을 새기고 있을 때
나무는 나이를 내색하지 않고도 어른이며 아직 어려도 그대로 푸르른 희망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그냥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년에 더욱 울창해 지기로 했다
6) 새 이야기
(1) 유리창 위의 새
(이해인)
어느날 아름다운 절에 놀러갔습니다
차 마시는 방 커다란 유리창에 앞산의 숲이 그대로 들어있었지요
진짜 숲인줄 알고 새들이 와서 머리를 부딪치고 간다는 스님의 말을 전해 들으면서 사람들은 하하 호호 웃었지만 나는 문득 슬프고 가슴이 찡했지요
위장된 진실과 거짓된 행복이 하도 그럴듯해 진짜인 줄 알고 신나게 달려갔다 머리를 박고 마음을 다치는 새가 바로 나인 것 같아서요
실체와 그림자를 자주 혼돈하는 새가 나인 것 같아 나는 계속 웃을 수가 없었답니다
(2) 새와의 이별
안동 도산서원에서 고요한 마음으로 고요한 강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한 마리의 흰 새가 조심 조심 그 가느다란 다리로 걸어오다 잠시 멈추어 생각에 잠겼습니다
가벼운 날개짓을 하다가 다시 내려앉아 어딘가를 바라보며 한참 머물렀습니다
마침내 커다란 몸짓으로 날개를 펴고 멀리 높이 날아간 새
내가 바라보지 않았으면 만난 일도 없었을 강변의 흰 새와 잠시 동안 고운 정이 들어 헤어짐이 서운했습니다
새와의 이별이 가져온 슬픈 평화로 나는 한 동안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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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뜰에는 장미 작약 접시꽃 태산목 석류꽃들이 곱게 피었습니다. 지난 5월에 이어 6월에도 우리가 시인의 마음으로 함께 읽고 싶은 시들을 6편 두고 가니 살펴보세요. 많이 알려진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적은 것도 살짝 보태었답니다.
5월엔 이런 저런 행사와 강의들이 많았습니다. 5.19-22일에 있었던 제 8파 동아시아 오세아니아 베네딕도회 모임에는 처음 참석하였는데 그동안 하지 않았던 영어를 조금 할만하니 그만 회의가 끝나더라고요. 특히 언어는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지요. 5월 26일 <수도공동체 탐방 영성세미나>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대전 신학대학교 목사님들과 대학원생들과의 만남도 새로운 경험이었고요. 5월27일 유니베라(남양알로에) 새일즈 아줌마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도 아주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때로는 시골에서의 본당 강의 덕분에 뜻밖의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하지요. 예비수녀 시절 우리 수녀원에 아주 오래 전에 함께 살던 벗님들을 만나서 아주 잠시지만 큰 기쁨과 감동을 느낄 적이 있습니다.
어찌하다 보니 6월에도 제가 움직일 일이 제법 있네요. 6월13일은 오전에 한강 성당에서 여성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피정이 있고 6.15일에는 의정부 진건 성당 교중미사 중에 강의가 있답니다. 특히 6/16일 명동 성당 꼬스트 홀에서 있을 사형폐지 컨서트엔 20분 정도 저와 로제 형제가 출연하는데 시간 되는 분들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셔도 좋겠네요. 저는 사형수의 편지와 시 두 편을 낭송하려고 합니다.
지난 3월에 펴낸 <작은 기쁨>이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고있으며 동화<우리 가족 최고의 식사>도 꾸준히 읽히고 있어 기쁩니다.
여러분이 궁금해 하시는.... 제 어머니에 대한 사모곡을 적은 소품집은 올 8월 중순 경 샘터에서 내기로 하였음을 알려드려요. 준비는 다 되었지만 <작은 기쁨>과는 조금 거리를 두고 내는게 좋을 것 같아서요.
주변에서 일어나는 아프고 슬프고 무겁고 힘든 일 가운데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기가 쉽지 않지요? 갈수록 기도하기도 참 어렵구나...하는 생각도 많이 합니다 그래도 우리 같이 마음 모아 힘을 내기로 해요.
맑게 더 맑게 마음을 닦자. 밝게 더 밝게 웃음을 찾자. 넓게 더 넓게 사랑하자. 깊게 더 깊게 생각 하자. 곱게 더 곱게 주인이 되자!
스스로에게 다짐하면서
오늘도 새롭게 오늘도 고맙게 그리고 겸손하게 나아가는 우리가 되자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예수성심 성월에 한송잉 기도처럼 피어나는 장미의 마음으로 저의 사랑을 드립니다.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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