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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데려가주지 않을래?"
그건 내가 고양이한테서 처음 들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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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록."
그날따라 유난히 아파오는 목을 움켜쥐며 재빨리 하교했다.
아아, 빨리 안 가면 학원에 늦는단 말이지. 어쨌든 다행이야, 어제
숙제를 다 해놔서. 만약 오늘로 미뤘다면... 끔찍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건 보통 3시 반 정도이지만 오늘은 오다가 선
생님께 붙들려 버려서 한시간동안 무료봉사를 하고 와버렸다.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이 바보같은 성격 고쳤다고 생각
했는데 여전-했다. 하아.
어쨌든.. 빨리 걷지 않으면... 우왁! 15분밖에 안 남았어! 빨리 뛰
지 않으면 집에 들러 가방을 갖고 올 수 없게 된다. 현재 시각 4시
45분. 5시에 집 앞으로 학원버스가 오거늘, 집까지의 거리는 아직
도 20분 정도 남아 있었다. 이걸 어쩐대? 잘 뛰지도 못하는데 뛰어
야 하나.
으윽, 우리 학원은 늦어도 안 기다려 준단 말이다. 매정한 학원 정
책 같으니.
난 어쩔 수 없이 다리에 힘을 주며 땅을 박찼다. 단거리는 꽤 괜
찮은 편인데 장거리는 영 아니니...
제때 도착할 수나 있을까 의심스럽다.
툭.
"...."
신은 참 야박하시다. 안 그래도 충분히 곤란한 이 상황에, 비까지
내려주시다니!!
아아 참 황송합니다, 신이시여! 이를 빠득 갈며 허리에 맨 마이를
풀어 머리 위에 뒤집어썼다.
몇 분 달렸다고 벌써 숨이 차냐. 5분도 달리지 않은 것 같은데 벌
써 배 한쪽이 시큰거리며 아파온다.
병약체질이란 건 가질 게 못 된다. 아, 힘들어. 그렇다고 멈출 수
도 없잖아.
마구 퍼붓는 비 속에서 나는 뛰고 또 뛰었다.
***
드르륵.
“수고하셨습니다."
학원 수업이 드디어 끝났다. 아이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고운 흑갈색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기른 선생님께 인사했다. 조금
통통한 편이시지만 덕망이 높으신 분이시지, 저 선생님은.
내 기억력은 그리 좋은 편이 못 되는 관계로 이름까진 못 외운다.
정말, 아슬아슬하게도 나는 4시 58분에 집에 도착, 열쇠를 쑤셔넣
는다는 표현이 약하게 느껴질 정도로 급하게 밀어넣고 부술 듯 거
세게 돌렸었다.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날아가다시피 하여 우산과 가
방을 챙긴 후 무슨 로켓이 발사되듯이 집을 뛰쳐나왔다. 내가 사력
을 다하여 학원버스가 오는 곳으로 갔을 땐 이미 버스가 출발했었
으나 출발한 지 몇 초도 되지 않았는지 나와 버스의 거리는 꽤
가까웠었지. 이미 사력을 다했음에도 그나마 남은 힘을 쥐어 짜
뛰어간 결과, 버스에 탈 수 있었다.
집에서 너무 급하게 나온 덕분에 나는 지금 학교의 책가방과
학원의 책가방, 이 둘을 동시에 매고 있다.
학원의 책가방이 옆으로 매는 가방이어서 다행이었지, 등에 매는
가방이었으면 난 정말 곤란했을 거다.
그래, 뭐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어깨에 이미 감각이 없지만 말이다.
학교 가방엔 숙제가 많아 책이 한아름 담겨있고, 학원 가방에는
4과목을 이수하는 까닭에 두꺼운 참고서며 공책이며 가득, 정말
가득 들어있다. 우산도 들고가야 하니 팔까지 아프다. 오른 손으로
들었던 우산을 왼손으로 바꿔 들며, 천천히 집으로 걸어갔다.
오후 9시 20분. 혼자 걷기에는 조금 꺼림칙한 시간대이지만 나야
별로 신경쓰지도 않는다. 주머니에 있는 맥가이버 칼이 너무나도
듬직하거든.
몇 분 더 걷자 나의 집이 보였다.
"...왔다, 왔어. 아 피곤해라."
넓지는 않지만 좁지도 않은 정원을 지나 계단을 올라간다. 흰
대리석으로 만든 계단과 테라스.
붉은 벽돌과 갈색 벽돌로 틈새 없이 만들어진 이 웅장한 3층집은
나의 집이다. '우리'집도 아닌, '나의' 집. 그 이유를 굳이
말하자면 '우리'라고 말할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나 혼자
를 '우리'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 1년 전까지는 '우리'집이었지만.
현관 문 앞에서 우산을 접었다가 다시 폈다. 물방울들이 촤악,
하고 앞으로 뿌려진다.
난 이 우산 하나밖에 없다고. 이 기세를 보니 내일도 비가 올
모양인데, 마르지 않으면 찝찝해서 말야.
우산을 접었다 피는 동작을 몇 번 반복하고 뒤 돌았다. 주머니를
뒤져, 은색 열쇠를 꺼내 열쇠구멍 안으로 집어넣어 왼쪽으로 두 번
돌리니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한번 돌려서는 열리지 않는 신기한 자물쇠다. 문을 열고,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나는 문을 당겼는데-
"끼야앙!"
.....응?
뭔가 '문을 당기는 행동'이 당연하지 않다고 호소하듯, 생소한
울음소리는 공기의 울림을 타고 나의 귀에 전달됐다. 소리는 분명
밑에서부터 들렸으니, 소리의 원천 역시 밑에 있겠지.
집 밖에 있는 불빛은 아예 없었기에 난 무릎을 굽혔다. 등에 매고
있던 가방의 무게 덕에 뒤로 쏠려 넘어질 뻔 했지만 간신히
중심을 잡고, 핸드폰을 꺼내 액정의 빛을 내 발 앞에 비추었다.
상자의 귀퉁이가 보이는 것을 보니, 소리는 상자 안에서 난
듯했다. 핸드폰 액정의 방향을 조금 옆으로 돌려보니, 뭔가
보인다.
...근데 이건 뭐라니.
액정에 비춰진 것은 상자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쉴새 없이
파닥거리고 있는 은빛의 작은 날개였다.
"어... 그러니까.... 음...?"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전-혀.
상자 속에 갇혀있는 새인가? 근데 새라면 '끼야앙'이라는 소리를
지를리가 없잖아. 게다가 은색 날개라니. 회색도 흰색도 아닌 은색
이다. 그런 색의 깃털을 가진 새가 과연 얼마나 될까?
그것도 애 혼자 사는 집 앞에, 상자 안에 갇힌 채로.
신기한 마음에 핸드폰 액정을 좀 더 가까이 들이대봤다. 예상 외
로 뚜껑은 없었다. 30cm정도의 네 모서리를 가진 정육..아니
정오면체라고 해야 할까. 여하튼 그런 모양의 상자였다.
상자의 색깔도 오묘했는데, 마치 비추는 빛의 각도에 따라 색이
바뀌는 듯 오색 빛깔이 섞여있었다.
비싸보이는데? 일단 상자에 대한 관찰은 제쳐두고,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가 더 중요했다.
한 쌍의 은색 날개는 여전히 파닥거리고 있었다. 날개는 무언가
털 달린 것에 달려 있었는데 두 날개 사이에 긴 뼈가 보였다. 척추
뼈? 일단 새는 아니다. 척추뼈를 주욱 따라 내려가며 빛을 쬐 보니,
...저건, 저건.
아무리 봐도,
꼬리다.
길다랗게 쭉 뻗은, 역시 은색의 그 꼬리는 꼿꼿이 서 있었는데
작은 경련마저 일으키고 었다. 음.
털 달린 짐승(추정)에, 긴 꼬리와, 두 쌍의 날개.
...
대체 어느 동물인지 짐작도 안 간다. 보도못한 새로운 종의 동물(추정)!
이런거 아냐?
아니 그것보다. 왜 이런 해괴망측한 동물(추정)이 내 집 앞에
있는거지...?
“...음."
위험할지도 모르지만, 역시 정체를 알아보기에 가장 빠른 방법은...
"에잇."
일단 찔러보는 거다.
그래도 작은 동물이라고 내 친히 손톱을 세우지는 않았건만, 그
정체불명의 동물은 나의 검지가 자신의 날개 밑을 찌르자 고개를
들며 날카롭게 외쳤다.
...'냐옹!' 이라고.
액정에 비춰진 그것은 분명한 고양이의 얼굴이었으며, 이마에
작은 상처가 나 털이 피에 젖어 있었다.
그 '날개 달린 고양이'는 뭔가 불만스런 얼굴로 나를 노려보더니,
곧 미소 비스무리한 것을 지어보였다.
난 고양이가 아니니 고양이의 표정을 정확히 알아낼 수는 없다. 아니, 저거 고양이 맞긴 한거야?
내가 의심스런 눈초리로 자신을 보던 말던 고양이는 야옹거렸다.
"나를 데려가 주지 않을래?"
아니, 말했다. ....에? 고양이가... 말을 해?
이 날, 나의 비싸고도 비싼 핸드폰은 흰 대리석 바닥과 첫키스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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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수라쨩입니다- 에, 첫 연재네요(긁적)
주제는 판타지입니다. 전 역시 연애보단 판타지가 맞는가봐요..
으흑. 어찌되었던, 프롤로그입니다. 1편은 언제 올라올지 몰라요.
첫댓글 글씨가 너무 작아서 깨지는데 수정해주셨으면...
헉;ㅁ; 제 컴퓨터로는 잘만 보이는데;;; 폰트 10으로 수정했습니다.. 이제 보이려나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