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차라리 나를 처형하라
[2008년 1학기 범죄사회학 리포트]// 사법정의국민연대
이 글은 경찰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이 '범죄사회학' 전공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사법 피해자들의 실태를 접하고 그 실상을 조사하면서 느낀 점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언론과 사법정의국민연대를 통해 접한 사법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 잘 정리해 놓았기에 소개합니다. |
들어가며 5·16 군사쿠데타 직후인 1961년 북한에 동조했다는 혐의를 쓰고 사형당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당시 31세)이 47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용석 부장판사)는 16일 북한에 동조하는 사설과 기사를 게재했다는 혐의(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로 사형을 선고받은 조사장에 대한 재심 공판에서 조씨와 이 사건에 연루돼 징역5년을 선고받은 양모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조씨에게 적용된 특별법은 정당이나 사회단체의 주요 간부라는 점이 전제가 돼야 적용이 가능하다”며 “민족일보는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영리법인이라는 점에서 사회단체라고 볼 수 없고, 조씨가 사회대중당의 주요 간부로 활동했다는 증거도 없기 때 문에 공소사실은 그 자체로 무죄가 된다”고 밝혔다.
61년 제정된 특수범죄처벌법은 정당·사회단체의 주요 간부인 자가 반국가 단체의 활동에 동조할 경우 처벌하도록 한 규정이다. 검찰은 이에 대해 “판결문을 확인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 조사장에 대한 무죄는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6년 11월 민족일보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면서 법원에 재심을 권고했다. 유족들은 지난해 4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같은해 8월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ㅇ수 사장 함주명씨 간첩사건, 인혁당 사건에 이어 재심을 통한 사법부의 과거사 반성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대법원은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 이후 시국사건 6000여건의 판결문 분석을 마쳤지만 직접적인 입장 표명보다는 재심 및 판례 변경 등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고 있다. 현재 진실화해위가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47건의 사건 중 11건이 재심을 청구한 상태여서 재심 결정이 잇따를 전망이다. (후략)
최근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등의 활동을 통하여 과거에 있었던 억울한 누명이나 사법부의 오판이 바로잡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우리사회의 치부를 들추어 갈등을 야기한다는 등의 부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국민의 생활과 기본권에 사법부의 판결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경찰과 검찰의 잘못에 의하여 얼마나 심각한 기본권의 침해가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지금이라도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 느끼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과거의 일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는 반면, 바로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사법부의 오판과 인권침해, ‘억울해서 죽지도 못 한다.’는 사법 피해자들의 눈물에 대하여는 무관심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2008년 1월 5일과 12일 두 차례에 걸쳐 MBC 방송국의 시사 프로그램 ‘뉴스후’ 에서는 사법 피해자들에 대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방송했다. 우연한 기회에 TV에서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피해자들의 다 갈라지고 매말라버린 목소리와 억울해서 죽지도 못하고 살고 있다는 하소연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언젠가 내가 어렸을 때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을 지나갈 때,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가 길에 자신의 사연을 적은 종이를 펼쳐놓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한 법관에게 고한다는 제목으로, 매직으로 사연을 적은 큰 종이를 펼쳐놓은 아저씨를 보면서, ‘단순히 판결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저런 식으로 항의를 해서야 되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이번에 사법 피해자들을 조사하면서 그들의 억울함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게 되었고 그것을 단순히 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범이 잡혔는데도 절도범으로 몰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된 피해자에서부터 검사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반말로 인권 모독까지 당하고 억울하게 감옥에 갔다 온 사법 피해자들의 실태, 지난 30년간 살인자로 몰려 그 누명을 벗기 위해 법적 투쟁을 벌이고 있는 70대 노인에서부터 아들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10년간 홀로 싸우고 있는 아버지의 사연까지 여러 사법 피해자들의 사연들은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에게 사법피해가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경각심을 갖게 해 주었다.
이에 좀더 폭넓고, 생생한 자료를 수집해야겠다는 생각에 인터넷뿐만 아니라 국회도서관과 학술지 등에 논문을 찾아보기도 하고, 사법개혁국민연대, 공권력피해구조연맹을 직접 찾아가서 ‘시기치는 법, 사기당하는 법’ , ‘짜고 치는 고스톱 청산을 위하여’라는 사례집을 구해오기도 하였다.
각각의 사례들을 분석하면서 확실한 증거가 있음에도 판사가 이를 인정하지 아니한 경우, 변호사의 부실변론으로 인한 오판, 검찰이나 경찰에서 허위진술을 받거나 제대로 신문하지 아니한 경우 등 사법제도의 여러 곳에서 문제점이 발생할 여지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본 리포트에서는 단순히 방송에 제시된 사례, 인터넷을 통해 널리 알려진 사례에 국한되지 않고, 오판의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사례를 다루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또한 형사정책적으로 이를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지 다양한 각도에서 모색하여 보았는데, 이를 통해 앞으로 사법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여 본다.
사례1) 김기웅 순경 사건
사건의 개요 및 사건자료의 출처
살인혐의로 구속 기소돼 1·2심에서 징역12년을 선고받은 전직 경찰관이 대법원의 최종판결을 앞두고 진범이 잡히는 바람에 1년여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한 한편의 드라마 같은 사건이 있었다. 본 사건은 인터넷상에서 오판사건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어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사건을 검색해볼 수 있었다.
서울 관악경찰서 관내 파출소에서 근무하던 김순경(당시 27세)은 92년11월 평소 가깝게 지내던 카페 여종업원 이모(18)양과 함께 여관에 투숙한 뒤 아침 7시께 여관을 나와 파출소에 출근했다. 그 후 약 10시경 여관방에 들렀는데 이양이 피살된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그는 이때부터 살인범으로 몰렸다.
당시 여관방에는 김순경의 것으로 볼 수 없는 희미한 신발자국이 남아있었으며, 관계를 갖고 버린 혈액형이 김순경과 다른 한명의 것으로 보이는 정액 묻은 휴지가 발견됐다. 그러나 수사기관과 1·2심 재판부는 이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수사기관과 법원은 이양이 새벽3시~5시30분 사이에 숨진 것 같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결과를 결정적인 증거로 인정, 김순경을 범인으로 단정했다. 동료경찰관들도 강압수사와 자백하면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다는 온갖 회유로 자백을 받아내면서 김씨를 범인으로 몰았다. 결국 김순경은 살인범이란 누명을 쓰고 검찰로 송치됐다.
김순경은 검찰로 송치된 이후에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였으나, 서울지검 강력부 에서는 김순경을 구속기소했다. 1심인 서울지법 곽모 부장판사는 징역12년을 선고했다. 김순경은 이 판결에 불북해 항소했으나 서울고법 박모 부장판사는 김씨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결국 김씨는 당시 1, 2심에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다행히 진범이 잡혀 13개월간의 옥살이에서 풀려났다.
사건 오판 원인 요소들에 대한 설명
본 사건에서 오판을 이끌어낸 요소들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결과, 경찰과 검찰의 무리한 심문과, 심증에 물증을 끼워 맞추기 위한 자의적 심문, 법정에서 살인혐의를 벗겨줄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 인정하지 않고 유죄를 선고한 점 등이 그것이다.
우선 국과수의 부검 결과에 대하여, 검찰은 당시 김순경이 오전 7시 경 여관방을 나갔으며 사망 추정시간이 05시 이전이므로 김순경을 유력한 용의자임을 확신하였다. 하지만 피해자는 사망 전 0시부터 02시30분경까지 음주를 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부검시의 혈액에서는 알코올이 모두 분해되어 있었는데 음주 후 알코올 분해 과정에서는 소화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고 한다. 당시 부검의는 이와 같은 소견을 기재한 보고서를 제출하였으나, 당시 경찰이 이를 수사기록에 넣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사체 직장온도를 쟀을 때에도 사체가 놓여있는 곳의 통풍상태, 온도, 습도, 영양상태, 착의상태, 성별 등 많은 인자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시체 발견장소가 여관으로 밀폐된 장소라는 점, 피해자의 착의상태 등을 고려하였다면 정확한 사망시간을 추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체의 경직정도와 시반에 대한 검사는 많은 경험이 요구되는 것인데, 실제 감식은 92년 11월 29일 19시 경 서울경찰청 감식반장 김모씨가 실시하였고, 국과수 의사 이모씨는 사체의 직장온도나 경직상태 등에 대한 감정을 하는 데 있어 실제 자신이 감식한 바 없이 김모씨의 수사보고만을 인용하였다.
사법부의 판단에도 문제가 있었다. 당시 김순경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는 정황증거가 존재하였다. 김순경의 것으로 볼 수 없는 신발자국과 타인의 체액이 묻어있는 휴지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김순경에 대한 정황증거만으로 유죄를 선고하였다. 법의학에 의해 드러난 증거가 인간의 의심이나 눈으로 확인 불가능한 정황증거보다는 합리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자에 의해 후자가 상쇄된다거나 후자를 무시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따라서 법관이 유죄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범인이라는 점에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아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소송의 대원칙에 따라 판결하여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당시 재판부가 사망 시간에 대한 법의학적 소견만을 신뢰하여 유죄 판결을 내린 것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할 수 있겠다.
사건에 나타난 가장 결정적인 오판의 원인에 대한 설명
본 사건에서 가장 결정적인 오판의 원인은, 검찰과 경찰의 부실하고, 정황과 심증에만 의존한 수사라고 할 것이다. 당시 검찰이 내세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그는 숨진 李양과 함께 투숙한 사람으로 밤새 같이 있었다. 오전 7시에 나간 것은 인정되지만, 직장에 나갔다가 여관방에 李양이 있는지 전화로 확인도 해보지 않고 구태여 李양을 깨우기 위해 10시에 돌아왔다는 게 어색하다. 또 李양이 결혼해달라고 졸라 갈등이 있었고, K씨가 李양이 밴 자신의 아이를 낙태하게 한 사실까지 있는 K씨가 여관을 나간 오전 7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여관에 들어온 사람은 없었다고 진술하고 있으며 여관 문이 아닌 창문 등으로 누군가가 침입한 흔적은 없다. K씨는 투숙 당시 여관 주인에게 아침 8시에 인터폰을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주인이 실수로 7시에 인터폰을 했지만 K씨는 즉시 응답했다. 그가 이미 깨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검찰이 그를 공소제기한 것이 정당화된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사건을 반성하는 의미로 1994년 대검찰청 강력부는 ‘K씨 사건을 계기로 본 강력 사건의 수사상 문제점과 대책’이라는 소책자를 제작하였다. 거기서 검찰은 김순경이 검찰 수사단계에서부터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사는 부검의사의 사망시간 추정에 관한 감정결과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제3자의 침입가능성을 배제하고 공소제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김순경을 범인으로 오판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인정하고 있다. 발자국의 경우 다른 범인의 것이라면 어떻게 단 2개만이 생겼겠냐고 의심하였고, 휴지 뭉치에 묻어 있는 체액의 경우에는 그 여관 방안에 다른 새 휴지가 많았는데, 왜 하필이면 범인이 김순경과 이모양이 사용한 휴지 뭉치를 사용했느냐, 오히려 김순경이 다른 사람의 범행으로 조작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가해졌다. 사실 범인은 물건을 훔치기 위하여 방에 들어갔다가 이모양을 발견하고는 엉겁결에 침대로 바로 뛰어올라 이모양을 목졸라 살해했기 때문에 침대이불에 발자국이 2개밖에 남지 않은 것이며, 범행과정에서 공교롭게도 김순경과 이모양이 사용하고 떨어뜨려 놓은 휴지 뭉치에 범인의 체액이 묻게 된 것이었다.
결론, 형사정책적 함의
단도직입적으로 본 사건은 수사기관이 범인이 아닌 선량한 동료경찰관을 범인으로 만든 대표적인 강압수사로 꼽히고 1·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시했는데도 이를 외면했다. 검사와 경찰이 자신의 직감과 정황증거에 의지한 나머지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 외면하고, 검시결과 나온 사망시간에만 집착한 나머지 제 3자에 의한 침입가능성을 배제한 것이다. 게다가 92년 11월 30일 김순경의 자백, 즉 죽은 이양이 앙탈을 부려서 주먹으로 때리고, 목을 누르자 질식하여 인공호흡을 시도하였으나 사망했다는 내용을 얻기 위하여 인권을 침해한 수사를 하였을 가능성도 다분하다.
따라서 이러한 사례가 다시는 없도록 하기 위하여 피의자진술녹화제도를 활용하고, 법정에서 피고인의 무죄추정의 원칙이 더욱 엄격히 적용되도록 법원이나 검찰 내부에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도 있어보인다.
끝으로 부검의 한 명이 한 해에 수백 구의 사체를 부검해야 할 정도로 업무가 과중하고 검시결과 내린 판정에 대한 책임범위가 명확히 정립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의 검시제도에 대한 개선도 필요하다고 하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학적인 증거와 치밀한 수사로 범인을 바로 검거함은 물론 공소제기를 신중히 결정함으로써 무고한 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수사기관이 공유하는 일이라 할 것이다.
사례2) 전 옥천경찰서장 박용운 씨 사건
사건의 개요 및 사건자료의 출처
“저는 충북 옥천 지방에 경찰서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2001년 4월 7일 갑자기 집무실로 들이닥친 대전 검찰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끌려가서 ‘오락실 관련 뇌물수수 범죄자’로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하며 진실확인과 증거조사를 줄기차게 호소하였으나, 결정적 대질조사마저 거부당한 채 구속 기소되어 8개월 동안 참혹한 감옥생활을 하였습니다. 저는 형사소송법 상 긴급체포 요건에도 해당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영장도 없는 상태에서 강제연행 당하고 검찰에 감금당했습니다. 검찰은 구속되기 전 3일 동안 변호사의 접근을 철저히 막았습니다. 이는 엄연한 헌법위반이고 형사소송법 등 실정법을 위반한 불법 수사였습니다. 피의자 신문조서도 검찰의 입맛에 맞게 허위로 작성되었습니다.”
2003년 6월 13일 대전고등법원 형사 1부에서 2년여 만에 무죄확정 판결을 받은 전 옥천경찰서장 박용운 씨가 법정에서 최후로 진술한 말이다. 사법피해자들의 모임을 찾아서 사례집을 받아 이를 보던 중, 경찰서장이 하루아침에 사법피해자로 전락하게 된 사건을 접하여 여기에 싣는다. 이 사건을 통해 사법부의 잘못이 힘없는 서민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미칠 수 있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박용운 전 옥천 경찰서장은 위에 진술한 대로 뇌물수수 혐의를 받았다. 구체적으로 충남지방경찰청 방범과장 재직시 전 부하직원이었던 구모씨, 이모씨로부터 ‘오락실을 잘 봐달라’는 청탁을 받고 3500여만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1심과 2심에서는 검찰이 제기한 박씨의 모든 혐의가 그대로 인정되어 박 전 서장은 1심에서 징역 5년과 추징금 3450만원, 2심에서 징역 2년 6월(집행유예 4년)과 추징금 3450만원을 각각 선고받았다.
하지만 박 전 서장은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고의적으로 범죄행위를 조작했다’고 주장하며 즉시 상고해 2002년 5월 10일 대법원으로부터 원심파기환송을 얻어내었다. 대법원은 검찰이 제시한 부하직원 구씨의 신문내용의 진실성이 의심스럽고, 법정에서 제시된 녹취록이 검찰이 구씨에게 회유와 협박을 하였다는 주장을 진실하게 하는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사건 오판 원인 요소들에 대한 설명 본 오판사건에 원인을 미친 요인들은 박용운 전 경찰서장의 부하였던 구씨의 거짓증언과 주임검사의 피의자 신문조서 작성이 잘못된 것이다. 이 중 우선 구씨의 거짓증언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구씨와 사건담당 검사인 한 검사는 2000년 11월 처음 만나게 된다. 당시 대전 3청사 청사경비대에 근무 중이던 구씨는 대전점찰청 한 검사에 의해 오락실 관련 뇌물수수혐의로 강제 연행된다. 구씨의 법정 진술에 따르면 한 검사는 구씨가 평소 말하고 다니던 오락실 관련 검찰 유착설에 대해 검찰관 비리자 명단을 추궁, 불러주자 “경찰간부도 대라.” 며 집중 추궁했다. 구씨는 협박에 못 이겨 아는 경찰 간부 이름 10~15명을 허위로 적어 주었다고 한다. 한 검사는 구씨를 이틀만에 무혐의로 풀어주면서 일체의 조사사실을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4개월 뒤인 2001년 3월, 한 검사는 구씨를 오락실 관련 뇌물수수혐의로 연행하여 3일간의 밤샘 조사 끝에 구속시켰다.
이 과정에서 구씨가 박용운 전 경찰서장의 부인에게 빌린 후 갚았다고 진술했던 2000만원이 박 전 서장에게 전달된 ‘뇌물’로 둔갑한 것이다. 구씨는 후일 공판과정(1심 2회 법정)에서 검찰 진술을 전면 부인하며 “박용운 씨에게 뇌물을 준 적이 없고 이는 빌린 돈을 갚은 것이 전부이며, 모든 조서는 검찰이 회유와 협박에 의해 임의로 꾸며 만든 것.”이라고 부인했다. 대법원 또한 파기환송한 판결문을 통해 ‘검찰은 처음으로 구씨로 하여금 2000만원을 빌린 후 갚은 것이라고 진술하게 하였다가 갚은 것에 대한 뚜렷한 증거가 없어 설득력이 없다는 생각에 다시 차용금이 아닌 뇌물로 주었던 것을 반환 받은 것이라고 진술하게 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고 판시했다.
박 전 경찰서장에 대한 피의자 신문조서도 문제가 있었다. 박씨는 최후진술문을 통해 '한 검사 등 세 검사가 번갈아 드나들려 "죽고 싶으냐? 여기가 어딘 줄 아느냐" 등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갖은 협박과 모욕적 언행을 한시간 이상 계속했고, 특히 한 검사는 박씨가 "억울하다"고 항변하자 "조금이라도 인정하면 기관통보하겠다. 다른 직원들을 위해 혼자 덮어써라"는 등 회유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검찰은 집행유예중이던 박씨의 부하직원 이모씨를 끌여들여 박씨가 "오락실을 봐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씨로부터 16회에 걸쳐 1150만원을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한다.
박씨는 이와 관련 최후진술문을 통해 “한 검사에게 이씨와 대질신문을 요구하자 검사실로 이씨를 불러 ‘모두 사실이지요’ 하고 묻고 ‘예’ 하고 대답하자 불과 몇 초 만에 내보냈다.” 며 이는 재판부를 속이기 위한 형식적, 허구적 대질조사라고 주장했다. 대법원 또한 판결문을 통해 “적어도 이 부분 대질 조사한 피의자 신문조서는 검사 작성의 허위문서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이 외에도 한 검사가 1심 2차 공판 하루 전인 2001년 5월, 구씨와 구씨의 동생을 검사실로 불러 합석시킨 후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지 못하도록 협박, 회유한다. 이 당시 상황을 녹음한 녹취록이 증거로 제출되었는데,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녹취록은 수사검사가 구씨로 하여금 법정에서 자백을 번복하지 못하도록 회유 내지 협박하는 내용으로 되어있고 이는 수사검사가 수사과정에서 공소사실을 자백하도록 회유와 협박을 하였다는 구씨의 주장이 진실한 것임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사건에 나타난 가장 결정적인 오판의 원인에 대한 설명 결국 이 사건은 검찰이 박 전 서장과 부하직원 구씨와의 채무관계를 뇌물을 주고받은 것으로 바꾸고, 집행유예 중이던 부하직원 이씨를 회유하여 사실을 조작해 무고한 현직 경찰서장을 형사 처벌한 사건이 된 셈이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오판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검찰은 이토록 무리한 수사를 강행하였을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하여 박 전 서장은 “당시 지역 언론들에는 검찰과 경찰 간부들의 오락실과의 비리 유착설이 보도되고 있었고, 2001년 3월 27일에는 일선 검사들의 비리 내용이 담긴 인터넷 투고문이 뿌려졌다.” 면서 검찰이 여론의 관심을 돌리고자 경찰 고위직의 비리를 캐내기 위해 무차별 수사에 들어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박 전 서장은 이 사건 수사과정에서 검찰이 강제연행 및 불법체포와 감금, 수사과정에서의 강압수사와 허위문서 작성, 피의자 신문조서 위조 등의 불법행위가 있었으며, 특히 변호인 접견 교통권마저 차단당했다고 최후진술 등을 통해 주장해 왔다.
현직 경찰서장에 대한 수사가 이 정도인데 법에 대해 무지한 일반 서민들은, 과연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자신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들기만 한다. 이러한 부실하고 위법적인 수사가 자행된다면, 피고인이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할 기회는 사실상 박탈되며, 사실상 오판을 유도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결론, 형사정책적 함의 위와 같은 검찰에 의한 강압수사가 2000년대에까지 일어난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선 검찰에서의 피의자신문조서에 대한 증거능력을 축소시켜야 한다고 생각된다. 경찰에서의 그것과 같이, 피고인이 법정에서 피의자신문조서의 내용을 부인하는 경우 증거로 채택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현실적인 수사권 약화의 가능성 때문에 어렵다면, 적어도 진술녹화제도를 좀 더 폭넓게 사용하여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는 한편 검사 스스로도 좀더 객관적인 증거를 갖고 소송에 임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제대로 실시되기 위해서는 녹화 시설을 늘리고 수사관에 대한 전문 교육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진술녹화를 다시 피의자신문조서처럼 서류로 작성할 필요 없이 간단한 요지만 기재하여 증거로 제출하게 하는 방법으로 진술녹화를 유도해야 할 것이다.
일반 시민들은 검찰조사를 생각하면서 흔히 ‘밀실수사’를 떠올리게 된다. 검찰청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미 조사를 받는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국민의 심리적 압박을 최소화하고, 억울한 사법피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변호인의 참여권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피의자나 피고인이 자유롭게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인 뒷받침도 강구해 보아야 하며 무엇보다 피고인, 피의자의 자백을 위주로 하는 수사관행을 바꾸어야할 것이다.
사례3) 교통사고 증거조작에 따른 아들의 누명을 9년만에 밝힌 경우 사건의 개요 및 사건자료의 출처 검찰뿐만 아니라 경찰의 잘못으로 인하여 잘못된 사람이 교통사고차량의 운전자로 몰린 경우가 사법피해자들의 모임 '사법정의국민연대'에서 발간한 사례집에 실려있었다. 이는 명백한 경찰의 과오로 판명된 사건이며, 경찰 또한 스스로의 치부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길이,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올바른 법치를 확립하고 경찰 스스로의 신뢰도를 높이는 첩경이라고 생각되기에 여기에 소개한다.
경찰 교통사고 증거조작…숨진 아들에 덤터기 “당시 잘못했던 경찰은 지금도 진급해서 잘 살고 있는데, ‘미안하다’는 말한마디 듣지 못했다.”
9년 동안 법정투쟁을 벌인 부모가 누명을 쓴 채 죽은 아들의 결백을 증명하고경찰의 잘못된 수사를 밝혀내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아냈다. 그러나 경찰·검찰 및법원을 상대로 벌인 9년 동안의 진실찾기 투쟁은 ‘고난투성이’ 그 자체였다.
전북 남원에 사는 손아무개(54)씨 부부가 힘겨운 투쟁을 시작한 것은 1996년 5월. 손씨는 군 입대를 사흘 앞둔 아들이 친구 2명과 함께 술을 마시고 차를 몰고가다 화물차와 충돌해 숨졌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친구 2명은 목숨을 건졌으나 아들만 숨졌다. 더구나 사고 직후 아들 친구 양씨를 운전자로 지목했던 경찰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아들을 운전자로 처리한 뒤 사건을 종결했다.
손씨는 양씨의 아버지가 당시 해당 경찰서 교통계장과 절친한 사이라는 점을 의심했다. 손씨는 ‘운전자가 차 밖으로 튕겨나갈 리 없다’는 상식적인 의심을 갖고 법적으로 다투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찰이 작성해 놓은 서류들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사고 차량 운전석 밑에서 아들의 신발이 발견됐다고 수사보고서를 내놨고, 함께 탔던 또다른 친구 김씨도 무슨 일인지 “아들 손씨가 운전했다”고 진술했다.
손씨는 수사한 경찰들을 증거조작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혐의없음’처분했다. 항고, 재항고를 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친구 양씨를 상대로 낸 고소도 무혐의 처리됐고, 헌법소원까지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대통령 비서실에 탄원서도 내봤고, 상급 경찰청에 재조사 요청도 해보고, 답답한 마음에 방송사도 찾아다녔다. 그사이 손씨는 직업인 인테리어업 일을 제대로 못했고, 살던 집마저 내놔야 했다. 중간에 병을 얻어 5년 동안 병원 치료도 받았다.
사건 오판 원인 요소들에 대한 설명 본 사건에서 손씨 부부가 9년 동안이나 싸움을 계속 한 이유는 바로 사고 차량을 아들이 운전하지 않았음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손씨의 아들이 가해자로 몰리게 된 데는 크게 두 가지 근거가 있었다. 사고 차량 운전석 밑에서 아들의 신발이 발견되었다는 수사보고서와, ‘아들 손 씨가 운전했다’는 친구 김씨의 증언이다. 하지만 이는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다행히 당시 트럭 운전자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 재판부가 운전자를 아들이 아닌 양씨로 지목해주었다. 이를 근거로 손씨는 다시 친구 김씨를 설득했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 김씨는 5년의 공소시효 만료를 며칠 앞두고 검찰에서 또 다른 동승자였던 김씨가 “뇌수술을 한 뒤 기억이 돌아왔다.”면서 “진짜 운전자는 양씨다.”라고 증언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검찰의 재조사 때 경찰이 증거를 조작한 사실도 밝혀졌다. 당시 사건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이 차 바깥에 떨어진 아들 손씨의 신발을 운전석에 갖다 놓고, 손씨의 신발이 운전석 아래에서 발견됐다고 검찰에 보고한 것이다.
사건에 나타난 가장 결정적인 오판의 원인에 대한 설명 본 사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오판의 원인은 경찰의 고의적인 증거조작이다. 증거수집, 분석과정에서 오류가 생긴 것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사실을 왜곡시키고 은폐시킴으로써 무고한 사람을 가해자로 내몬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명백한 범죄행위로서, 한 사람의 일생을 송두리째 망쳐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상기 예에서는 검찰의 무혐의 처분에 대한 항고와 재항고, 진짜 운전을 했던 양씨에 대한 고소를 무혐의 처분한 데에도 경찰의 거짓증거가 결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에 대하여는 철저한 수사와 증거를 조작, 은폐하게 된 경위를 철저히 조사하여 혹시 있었을지 모를 청탁이나 외압의 존재여부를 가려야 할 것이다.
결론, 형사정책적 함의 상기 예는 공권력의 잘못된 행사가 한 사람과 가정을 어떻게 파괴시킬 수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경찰에서는 이와 같은 사건이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교통사고의 초동수사 단계에서 현장보존의 법칙을 철저히 적용하여야 할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진술, 경찰관의 기억에만 의하여 수사를 하기 보다는 현장사진과 영상자료를 폭넓게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아울러 경찰관의 수사가 충분치 않을 경우, 당사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널리 홍보하여 적어도 억울함을 갖지는 않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지난 1997년 동두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에서 아들이 범인으로 몰리자, 7년간의 사투 끝에 실형까지 산 아들의 재심청구를 받아낸 남선우씨의 경우를 참고해 볼 만 하다.
9) 남선우씨는 교통사고시 초기 대처가 얼마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교통사고 발생시 피해자나 피해자가족이 당황하여 사고처리를 소홀히 하거나 상대방 보험사만을 믿고 그대로 처리를 맡겨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뀔 수 있고, 특히, 피해자가 사망하거나 의식불명인 경우, 피해자측의 보험사가 없는 경우, 피해자측이 목격자가 없거나 경찰의 판단착오인 경우, 가해자측이 권력이나 금권으로 조작하는 경우,동일보험사로 피해자측 보험금액이 적은 경우등의 유형에도 쉽게 뒤바뀔 수 있음을 경고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경찰의 수사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만, 현실적으로 일선 경찰서에서는 정보공개를 쉽게 해주지 않도록 하고 있다. 모든 정보를 공개하기가 힘들다면 적어도 교통사고에 대한 초동조치보고서 등 일부 항목이라도 공개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이 있을 것이다. 또한 보험소비자연맹 교통사고피해자구호센터
10)는 교통사고피해자가 지식, 정보 그리고 자본력으로 무장한 거대 보험사 또는 운수회사의 보상담당자를 상대하기에는 모든 면에서 턱없이 부족하므로, 어려움에 빠진 교통사고피해자에게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도움을 주고자, 전국에서 자원봉사자를 하고자 하는 교통사고 처리전문가인 독립손해사정인과 변호사의 지원을 받아 자발적인 피해자구호 봉사활동을 실시하는 교통사고피해자 구호센터를 2004.9월부터 운영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일선 경찰서에 이러한 안내문을 배포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면 실체적 진실 발견과 정의구현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사례4) 검사에게 재떨이 던졌다는 누명으로 옥살이한 김형국씨 사건
사건의 개요 및 사건자료의 출처 시민단체 사법정의국민연대가 발간한 사례집 ‘사기치는 법, 사기당하는 법’ 에는 검사의 증거조작과 무고로 인하여 누명을 쓰고 5년 8개월의 형을 받았다는 김형국 씨의 사건이 실려 있다.
김씨는 우르과이 협상이 한창 진행중이었던 96년 경, 당시 각광받던 사업인 멧돼지 사육 농장을 경영하는 농민이었다. 하지만 당시 유통업자들이 멧돼지와 일반돼지를 섞어 소비자를 기만하고 사육농가에 값비싼 사육비와 사료비 등으로 어려움을 주자, 멧돼지사육과 판매유통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와 범죄행위 등을 작성하여 다른 사육농장들과 연대하여 검찰에 그들을 진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같은 범죄정보, 즉 진정서가 유출되어 피해를 입히고 있던 유통업자들에게 이러한 진정서 사본이 건네지게 되었고 김형국씨는 이들로부터 정신적, 물질적으로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 하였다. 이에 김씨는 대검찰청에 검찰과 유통업자들이 결탁하였다는 의심을 품고 진정을 하게 된다. 하지만 대검찰청은 이 진정서를 관련지검이나 지청으로 다시 내려 보냈고, 진정서에 거명됐던 검사 및 계장들의 보복에 김씨는 결국 억울하게 5년 8개월이나 옥살이하고 최근 만기 출소했다.
사건 오판 원인 요소들에 대한 설명 김형국씨의 경우 죄명은 특수공무집행 방해치상죄와 무고죄이므로 오판의 원인요소들도 여기에 맞추어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무고죄에 대한 경우를 살펴보기로 한다.
1996년 11월 8일 김형국씨는 유통업자인 안국현을 사기횡령 및 사문서위조 동 행사 등으로 성남지방검찰청에 고소하였다. 경기도 광주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게 되었으나,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하였고, 이에 김씨는 항고하였다. 고등검찰청에서는 사문서위조동행사죄에 대하여 취하를 강요하였고, 사기 횡령부분에 관하여만 피고소인과 대질신문을 실시하였다. 피고소인은 범죄구성요건에 맞추어 진술한 후 날인까지 한 바 있으나 당시 담당이었던 심동섭 검사는 고의적으로 피고소인의 진술을 넣지 않으며 날인도 하지 않은 채 다음에 다시 조사를 하자고 한 사실이 있다.
피해자 김씨는 당시의 녹취록을 근거로 피해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수사를 유도한다며 고등검찰청에 출석하지 않았고 고검은 제기수사명령을 내린다. 재수사지휘를 받은 성남지청은 1997. 5. 9. 피해자에 대하여 제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김씨와 피고소인, 그리고 피고소인 측의 참고인 2명과 함께 대질신문을 벌인다. 이후 피해자 김씨에게 서명을 요구하면서, 김씨가 자신의 진술에 반하는 조서를 작성하였다며 날인을 거부하자 도리어 김씨를 무고죄로 긴급체포한 것이다. 하지만 김모 검사가 공소제기 한 무고죄는 김씨가 사무실 경리장부일체와, 사법경찰관 입회하에 안국현씨가 작성한 확인서 등을 증거로 하였기 때문에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두 번째, 특수공무집행 방해치상죄의 경우는 상기 긴급체포과정에서 일어난 몸싸움을 근거로 한 것이다. 김씨의 주장에 따르면 긴급체포과정에서 김모 검사 외 3명이 집단으로 폭행을 가하였고 피해자는 방어 차원에서 서로 밀치는 과정에서 책상에 있던 재떨이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재떨이가 깨진 사실이 있었는데, 이 검사나 피고소인들은 고소인이 재떨이를 들어 검사에게 폭행을 했다고 누명을 씌운 뒤 특수 공무집행방해죄로 구속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김씨는 사기 재떨이를 이용하여 폭행한 사실이 없고 오히려 검사 외 3인으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하여 10여분 이상 정신을 잃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건에 나타난 가장 결정적인 오판의 원인에 대한 설명 상기 사건에서 김씨가 높은 형량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재떨이를 이용하여 검사를 폭행하였다’ 는 특수공무집행 방해에 힘입은 바 크다 할 것이다. 당시 검찰에서 유죄의 증거로 제출한 것은 사무실사진, 검사의 손바닥 사진, 입회계장 최씨, 피고소인 안씨, 참고인 김씨 등의 진술조서 등 정황증거뿐이었다. 김씨의 유죄를 확정 짓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증거가 필요하다 할 것인데, 이 사건에서는 재떨이가 결정적인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하면서도, 검찰 측에서는 김씨가 재판부에 직접증거물로 제출 요청한 지문이 묻어있을 깨진 재떨이 조각을 결국 제출하지 못했다. 또한 당시 주위에 관계자들이 과연 검사가 맞고 있는 것을 보고만 있었겠는가 하는 의구심마저 드는 상황이다.
김씨는 영치된 피 묻은 옷의 검증 및 오른손 검증신청 등을 재판부에 요청하였음에도 이에 대하여 석명하지 못한 것도 김씨의 억울함을 증폭시키고 있다. 또한 김씨의 강력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검찰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배제한 것은 명백한 위법수사라 할 것이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검찰의 보복수사로 인해 불법체포, 감금, 구속, 기소되어 5년 8개월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며 제출한 김씨의 진정을 검토한 결과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 전격 조사를 하기로 하였다.
결론, 형사정책적 함의 본 사건 또한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통해 한 개인의 인권이 짓밟힌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검찰이 행한 위법, 보복수사가 가장 큰 문제였겠지만, 재판시 법관이 증거에 대하여 조금만 더 면밀한 검토를 하였다면 적어도 억울하게 5년 8개월의 옥살이를 하는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법원이 김씨의 주장에 처음부터 귀를 기울이지 않고, 검찰의 공소사실을 과신하여 김씨의 주장을 무조건 배척한 심리미진의 위법이 결국 한 사람을 무려 5년 8개월동안 감옥에서 살게 한 것이다. 김씨의 가정 또한 이번 사건으로 인하여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올해부터 도입될 국민참여재판제도와 더불어서 공판중심주의, 증거재판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을지 모를 검찰의 강압수사에도 피해자의 인권을 마지막으로 지킬 수 있는 보루가 될 것이다. 물론 검찰 내에서도 자정 노력과 강압수사와 관련된 검사와 수사관을 엄중히 문책함으로써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사례5) 일명 ‘불어녀’ 사건 사건의 개요 및 사건자료의 출처 평범한 직장인 김아무개(42)씨는 자신의 아들과 딸을 성추행한 혐의를 뒤집어쓰고 구속됐다. 1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그는 355일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결국 항소심에서 무죄임이 밝혀지고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지만, 그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은 뒤였다.
최근 인터넷 누리꾼들 사이에서 일명 ‘불어녀’ 신드롬을 일으킨 김모 씨의 사건이다. 김씨는 2003년 9월 23일 오후 한양대병원에서 진료 예약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그는 모 경찰서로부터 미아신고한 아이들 문제로 와줄 것을 연락받았다. 그러나 그는 경찰서에 들어서자마자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긴급체포당했다. 2001년부터 자신의 친아이들을 추행했다는 험의를 받은 김씨는 혐의를 계속 부인했고 당시 간부로 보이는 여성 경찰관은 “이런 변태, 빨리 불어!” 라며 김씨에게 압박을 가했다고 한다.
조사를 받던 중 김씨의 아이에게 전화가 와서, 1년 반 전 이혼을 요구하며 집을 나간 부인과 부인의 누이가 아이들에게 ‘고추장난을 했다’고 거짓말했다는 말을 듣는다. 이에 김씨는 자신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1심 재판부는 2004년 7월 김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결국 항소심에서 무죄가 확정되었지만 검찰의 항소 때문에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기까지는 꼭 2년이 더 필요했다.
사건 오판 원인 요소들에 대한 설명 본 사건의 오판요소에는 우선 거짓말탐지기의 오판이 있다. 김씨는 스스로 경기경찰청을 찾아가서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성추행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거짓’ 반응이 나왔고 김씨는 결국 구속되기에 이른다.
공판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김씨의 아이들을 진료했던 정신과 의사가 법정에서, 아이들이 ‘아빠와 고추놀이를 했다는 말을 하도록 엄마가 시켰다’ 고 말했다고 하여 김씨 부인 쪽이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강요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그때 갑자기 방청석에서 손을 든 아이들의 이모에게 재판장은 느닷없이 발언권을 주었고, 거짓진술로 오판을 유도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재판장은 아이들의 성기에 난 상처가 포경수술 과정에서 생긴 것인지에 대해 병원에 사실조회를 신청한 것도 배척했다. 2차 공판에서 이미 증인으로 채택한 경찰병원 의사들에 대한 증인신문도 취소했다.
김씨의 변호사는 법관 기피를 신청하였으나 이마저 거절당하고 결국 1심에서 김씨의 유죄가 최종 확정되었다. 항소심에서는 추가증거 없이도 무죄판결이 나온 점을 감안해볼 때 1심판결이 얼마나 부당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사건에 나타난 가장 결정적인 오판의 원인에 대한 설명 본 사건에서 1심 재판부의 부실한 공판이었다. 게다가 기피신청이 취소된 것은 김씨의 유죄를 확정하는 데 간접적으로나마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형사소송법 제18조는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 검사 또는 피고인이 법관의 기피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하기 힘들다. 신청과 동시에 재판이 중단돼 구속기간이 늘어날 뿐 아니라, 신청이 기각되면 훨씬 불리한 상황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배금자 변호사는 “법관기피 신청의 기각률이 100%에 가깝다는 것은 우리나라 법원이 무오류의 오만과 독선에 빠져 있음을 보여준다”며 “판사들이 기피 신청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매우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찍힐까봐’ 아예 기피 신청을 내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또한 증인도 아닌 아이들의 이모에게 발언권을 주고 마치 김씨가 유죄라는 심증을 굳힌 것처럼 재판을 진행한 재판장의 행태는 우리나라 사법부에 대한 믿음을 부정하는 중대한 잘못이었다.
결론, 형사정책적 함의 본 사건 역시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일부의 증거를 갖고 김씨의 유죄를 심증으로 굳힌 상태에서 수사와 공판을 진행함으로서 생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거짓말탐지기의 잘못된 결과로 인하여 김씨가 고통을 겪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이해도 필요할 것이다. 수사기관 종사자들은 거짓말탐지기 조사로 진술의 참·거짓 여부를 97%는 판별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거짓말탐지기가 정확성을 발휘하자면 충족돼야 할 조건이 있다.
이웅혁 경찰대 교수는 “거짓말탐지 조사는 1시간30분 정도의 사전면담 과정이 중요하다”며 “이때 조사 대상자의 흥분상태를 안정시켜야 하고, ‘당신이 거짓말하는 것을 밝혀내 벌하겠다’는 식이 아니라 ‘당신의 억울함을 이 조사를 통해 풀어주겠다’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심장·정신질환을 앓는 사람 등은 거짓말탐지 조사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감안도 필요하다. 또한 김씨의 처가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시켰을 경우 등에 대비하여 아이들을 부모로부터 떼어놓아 보호기관에서 일시적으로 아이들을 보호함으로써 아동의 안전과 법정에서의 실체적 진실 발견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맺으며 경찰대학에서 법을 공부하면서, 나는 우리나라의 사법제도가 피의자와 피고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있다고 굳게 믿어 왔다. 물론 헌법상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형사소송법 관련 조항이 들어가 있고 최근의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그러한 믿음은 일면 진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사법 피해를 조사하면서, 억울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이 어떻게 죽지못해 살아가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알고 느낄 수 있게 되었고, 국가기관의 무리한 수사나 ,법관에 의한 불실한 공판, 변호사의 농간에 한 사람의 인권과 인생이 얼마나 큰 상처를 주게 되는지 깨달았다. 또한 사법정의국민연대에 찾아가서 집행위원장 조관순 씨를 만나 많은 이들의 사연을 들으면서 앞으로 경찰간부로서 어떠한 마음을 갖고 사건을 접해야 할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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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례들을 조사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수사상, 공판상에서 ‘무죄 추정의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법무법인 '새벽' 조영상 대표 변호사는 "무죄추정 원칙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무죄판결이 많지 않은 편으로 대부분 기소가 유죄로 인정된다"며 "증거재판주의에 입각해서 증거가 없으면 무죄가 당연한데 실무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김일두 변호사는 "판사는 무죄를 낼 때 그 이유를 구구절절하게 써야 하기 때문에 무죄라는 확신이 들면서도 판결문에는 그렇게 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는다.
또한 무고 사건으로 인해 억울함을 겪은 많은 사람들은 수사과정에서 조그만 증거를 확보하고 이를 유지하는 데 급급하기 보다는 피의자에게 변명의 기회를 주고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예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으로 자백과 진술 중심의 수사나 선입견에 사로잡힌 수사를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사법부가 검찰에 대한 견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을 것이며, 검찰과 경찰과의 관계도 수평적으로 바꿈으로써 수사기관 사이의 견제를 통하여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소에는 인권보호를 위해 피의자 구속을 억제하고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 재판을 받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피해를 입었을 땐 상대방을 꼭 구속시켜야만 피해보상을 받았다고 여기는 국민들의 이중적 법감정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심지어 상대를 처벌받게 하려고 애꿎게 수사기관에 고소, 고발(무고)을 하거나 법정에서 거짓증언(위증)을 일삼는 이들도 있는 현실을 감안하여, 수사기관과 사법부는 실체적 진실을 명확히 발견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과 목 범죄사회학 담당교수 이웅혁 교수님 학 번 20061028 이 름 서정원 제 출 일 2008. 5.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