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찬송가에서
찬송가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내용의 찬양이 많이 실려있다. 찬송가 404장의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의 가사를 살펴 보라.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하셨네.
괴로운 시절 지나가고 땅위의 영화 쇠할 때
주 믿지 않던 영혼들은 큰 소리 외쳐 울어도
주 믿는 성도들에게 큰 사랑 베푸사
우리의 죄 사했으니 그 은혜 잊을까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프레드릭 레만] 목사가 1917년에 작시 작곡한 이 찬양은 작곡의 동기가 있다. 레만 목사는 목회 생활이 너무 어려워 또 다른 일을 하여 가족들을 부양하고 있었다. 그는 늘 도시락을 싸 가지고 출근했는데, 어느 날 그의 아내가 도시락 속에다 “바다가 먹물이요 하늘이 두루마리인들 어찌 하나님의 사랑을 다 적으리요”란 시(詩)를 넣어준 것에 큰 감동을 받아 이 찬송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세파에 시달린 사람들의 마음에 평안과 위로를 주신다는 교훈을 깨닫고 노래한 찬양이다.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 받고, 사랑 받기를 갈망하는 동조적 핵심신념을 가진 형제, 자매에게 이 찬양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한다. 특히 2절의 “주 믿지 않던 영혼들은 큰 소리 외쳐 울어도 주 믿는 성도들에게 큰 사랑 베푸사”란 가사는 주 믿는 영혼의 결론은 언제나 하나님의 큰 사랑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따라서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 사랑이며 이 사랑이 나를 오늘 세워주고 타인을 사랑하게 만든다.
동조적 핵심신념을 가진 사람은 이 곡의 가사를 먼저 암송할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한 소절씩 반복하여 불러보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지금 무엇을 말씀해주시는 지 말해보게 한다. 하나님의 어떤 깨달음을 주셨다면 그 깨달음을 붙잡고 기도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의 동조적 신념이 성령에 의해 산산이 부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찬송 405장은 너무도 유명한 곡이다. 영어로 “Amazing grace(놀라운 은혜)”란 이 곡은 첫 소절만 불러도 감동에 사로잡힌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 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아멘- ”
이 찬양은 한 때 부도덕한 삶에 매몰되었던 [존 뉴톤]이 자신의 회심과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삶에 대한 간증이다. [뉴톤]은 이 찬양을 영국 벅스의 올리라는 곳에서 부 목사로 있을 때 만들었다.
인간은 누구나 부도덕한 삶에 매몰될 때가 있다. 그러지 말아야겠지만 자신도 모르게, 때로는 알지만 연약해서 그런 삶에 넘어간다. 특히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깨끗하게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일수록 그런 죄책감은 더욱 많다. 그러기에 이 찬양은 죄인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 은혜를 농도 짓게 노래하고 있다. 이 찬양은 “아시지요?”, “감사해요” 등의 새로운 가사를 넣어 감동적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동조적 핵심신념은 언제나 자신이 타인에게 사랑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집어넣어 준다. 그래서 자신이 좀 더 잘한다면(행위, 말 등)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이미 그에게 임했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변함 없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강조하셨다.(롬5:8; 엡3:17) 그 사랑하심의 증거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동조적 핵심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도 죄 가운데서 구원하여 주셨고, 지금도 함께 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3절의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이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주시리‘라고 고백할 수 있다. 이제까지 내가 산 것이 내 힘으로 산 게 아니라 주님의 전적인 도움이라는 이 가사는 동조적 핵심신념을 가진 사람의 연약함을 강하게 만들어 준다.
동조적 핵심 신념을 가진 사람에게 이 찬양을 자주 부르게 하라. 특히 가사를 바꾸어 불러 보는 것도 매우 좋은 방법이다. “사랑 받고 싶어요”, “칭찬 받고 싶어요”, “인정받고 싶어요”를 가사화하여 함께 부르면서 동조적 핵심 신념을 직접 논박하는 것도 매우 좋다. 그는 그 노래를 부르면서 자신의 생각이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럴 때 “사랑하고 싶어요”, “칭찬 하고 싶어요”, “인정해주고 싶어요”라는 가사로 바꾸어 부르도록 해준다. 그럴 때 그는 매우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기도 사랑하고 타인도 사랑하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찬송가 411장은 교회에서 가장 많이 애창되는 찬양이 아닐까 한다. 필자 역시 가장 많이 애창한다. 그 이유는 역시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이 잘 표현된 곡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곡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실 생활 속에서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이 찬송은 원래 미국의 [안나 와너]의 소설(1859년)에서 발췌한 것이다. [브레드 버리]는 이 시를 위해 특별히 곡을 지었다. 이 찬송은 매우 쉽고 간결하면서도 확신을 준다.(“성경에 써 있네”란 가사는 그런 효과를 배가(倍加) 시킨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권세 많도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죄를 다씻어
하늘 문을 여시고 들어가게 하시네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
세상 사는 동안에 나와 함께 하시고
세상 떠나 가는 날 천국가게 하소서
(후렴)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이 찬송을 부를 때의 감정은 매우 기쁘다. 그리고 활기차고 밝다. 아무리 어둡고 절망적인 마음이라도 금방 기쁨으로 바꿔주는 찬송이다.
동조적 핵심 신념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삶을 타인에게 매어두려 한다. 즉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생활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다. 그러나 이 찬양을 통해서 자신이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특히 후렴부분인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란 반복된 “사랑”의 고백을 주님으로부터 들으면서 자신의 자존감이 강하게 회복된다.
동조적 핵심 신념을 가진 형제, 자매에게 이 찬송은 자주 부르게 해야 한다. 이 찬양을 부를 때는 후렴 부분을 아주 느리게 천천히 두 세 번을 부르게 한 다음, 1절부터 부르게 하되 점점 빠르게 부르게 한다. 특히 3절에서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란 가사에서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질문해 보라. 동조적 핵심신념을 가진 사람은 많은 부분에 좌절감을 맛보면서도 사랑 받기 위해 자신의 좌절감을 표현하지 못한다. 즉 자기 주장성 훈련이 안 되어 있다. 이 찬송은 자신의 자존감을 높여줌으로 인하여 자기 주장성을 키워줄 수 있는 찬양이다. 자주 부르게 하고 하나님께서 형제, 자매를 매우 귀하게 여기심을 반복하여 강조해줄 필요가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찬송이 있다. 418장의 “하나님의 사랑은”(오스카 쿨루트 작시, 로버트 잭슨 작곡)이란 찬송은 “어두운 밤을 밝히고 자유를 얻게 하는 참사랑은 천지만물을 소생케 하고 자라게 하는 태양과 같이 힘있는 것”임을 기억하게 하는 찬송이다.(성서교재간행사 발행 찬송가 주석에서) 414장의 “주의 사랑 비췰 때에”(캐리 브렉 작시, 윌리엄 커크패트릭 작곡)란 찬송은 “주의 사랑이 비췰 때에” 첫째, 일반적인 기쁨이 오고, 둘째, 세상과 나 자신이 변화하고, 셋째, 천국 생활 속에서 그 사랑을 누린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412장의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클로우프 작시, 생키 작곡)란 찬송은 우리의 어떤 행동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찬송하고 있다. 이런 내용의 찬양은 4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휘틀 작시, 맥그라나한 작곡)도 마찬가지다.
동조적 핵심 신념을 본질적으로 깨뜨릴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께 있다. 예수께서 성령을 통해 강권적으로 역사 하실 때만이 우리의 왜곡된 신념들이 깨질 수 있다. 성령의 강한 임재를 경험하려면 먼저 우리의 자아 속에 들어 있는 자동적 사고를 확인하고 논박하는 것은 물론 자동적 사고를 만들어낸 핵심 신념군을 찾아내어 논박하는 것이 중요하다. 찬양은 이 일을 가장 훌륭하게 수행한다. 찬양은 자동적 사고를 논박하는 것은 물론 자동적 사고의 원흉인 핵심 신념을 통찰하여 논박하게 만든다.
(2) 복음송가
복음성가는 성도들의 신앙이 고백되거나 간증한 내용이 주류다. 그러나 최근에는 말씀을 가사화하여 불려지는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말씀이 가사화될 때 그 찬양은 더욱 능력 있게 불려질 수 있다. 그런 찬양 중에 동조적 핵심신념을 논박할 수 있는 곡은 너무 많다. 그러나 모두 제시할 수는 없다. 본보기로 몇 곡만 추려 제시한다 해도 응용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는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을 정두영 교수가 곡을 붙인 것인데, 가장 대중적으로 애창되는 찬송이다. 가장 대중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사랑에 관한 문제를 꾸밈없이 성경에 있는 그대로를 표현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불신자들도 애창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나 예수님이란 종교적 명칭이 붙지 않은 데서도 기인하나 본질적으로는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깊이 다룬 말씀으로 된 가사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도 교만도 아니하며
사랑은 무례히 행치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않고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 -께 기뻐하네
사랑은 모든 것 감싸주고 바라고 믿고 참아내며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없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이 세상 끝까지 영원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이 찬양은 부부끼리 손을 마주 잡고 부르게 함으로써 부부의 사랑을 돈독히 할 수 있다. 특히 동조적 핵심 신념을 가진 사람에겐 가사를 숙지시킬 필요가 있다. 가사를 읽고 숙지하는 동안 진정한 사랑은 자기만 인정받고, 칭찬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예수님의 사랑을 먼저 받아서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주만 바라볼지라”는 찬양은 하나님의 사랑을 매우 아름답게 표현한 것은 물론 동조적 핵심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바꾸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곡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하는 자
하나님의 선하심을 닮아 가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자녀 삼으셨네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
이 찬양을 부르는 동안 어떤 느낌이 드는 지 꼭 질문해 보자. 어느 가사에서 마음이 감동이 왔고 왜 그 가사에서 감동이 왔는지 질문해보자. 혹시 이 찬양을 드리는 동안 과거의 어떤 장면은 기억나지 않았는지, 현재의 어려움이 떠오르지 않았는지 질문해보자. 많은 경우 동조적 핵심 신념을 가진 사람은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란 가사가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그만큼 자신에게 신음해야 할 상처가 많다는 것이다.
“사랑하며 섬기겠어요”란 찬양은 좀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생활로 다가오는 곡이다. 이 찬양은 1절에서는 생명주신 예수님, 사랑주신 예수님을 섬기겠다는 내용으로, 2절에서는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으로 이웃과 형제, 자매를 섬기겠다는 내용이다.
“사랑하며 섬기겠어요 생명 주신 예수님
버려진 날 찾아오셔서 내게 생명 주셨죠
찢긴 맘과 내 삶에 갈보리 언덕에 흘린 피로
생명 주신 예수님 영원히 섬기겠어요
사랑하며 섬기겠어요 나의 형제 자매를
사랑하며 섬기겠어요 우리들의 이웃을
주께서 우릴 먼저 사랑으로 섬겨 주셨으니
우리도 주님처럼 영원히 섬기겠어요”
이 찬양은 어떤 결단이 필요한 찬양이다. 함께 부르면서 어떤 결심이 들지 않았는지 질문해보자. 특히 이제까지 자신은 사랑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면서 더 사랑 받기 위해 몸부림치던 자신을 이미 사랑 받고 있음을 깨닫고 사랑을 나누려는 적극적인 결단이 요구되는 곡이다.
“오늘 나는”이란 찬양은 최용덕 형제가 작시한 곡이다. 사실 이 곡은 모든 문제는 내게 있다고 직면하는 곡이다. 그러나 동조적 핵심 신념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아도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찬양을 부르면 더 좌절하고 힘들어할게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곡은 설명이 필요하고 내용 이해가 필요하다.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내가 먼저 용서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웃음주지 못하고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네
그가 먼저 손 내밀기 원했고
그가 먼저 용서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웃음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된 사람인가
오- 간교한 나의 입술이여
오- 옹졸한 나의 마음이여
내가 먼저 섬겨주지 못하고
내가 먼저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높여주지 못하고
이렇게 고집부리고 있네
그가 먼저 섬겨주길 원했고
그가 먼저 이해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높여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된 사람인가
오- 추악한 나의 욕심이여
오- 서글픈 나의 자존심이여
(후렴)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 맘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줄 수 없는가
왜 내가 먼저 손해볼 수 없는가
오-늘 나는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몸둘 바 모르고
이렇게 흐느끼며 서있네
어찌할 수 없는 이 맘을 주님께 맡긴 채로
대화는 직면하면 분노와 좌절을 느끼지만 직면하는 찬양은 의외로 우리의 감정을 빨리 터치해줄 수 있다. 그것은 음악만이 갖는 장점이다. 거기다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자기 내면의 깊숙한 상처를 건드려주기 때문에 실제적인 치유가 일어난다.
“오늘 나는”이란 찬양은 더욱 그렇다. 그런 가사의 찬양을 거부하면서도 자신이 그런 인생을 살고 있거나 타인으로부터 거부당하는 느낌을 가지고 있기에 자신의 상처에 대한 카타르시스 현상이 빨리 일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찬양은 실제 삶에서 일어났던 아픈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부르도록 유도하자. 또 자신이 타인에게 상처를 받은 부분만 생각지 말고,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 것들을 생각해보게 하자.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지를 서로 나누며 찬양하자.
(3) 찬양 감상
위에 제시한 곡을 모두 한 군데 녹음하여 감상하도록 해보자. 눈을 가볍게 감고, 온 몸에 힘을 빼고, 아주 편안한 자세로 찬양을 듣게 하자. 되도록 과거나 현재의 상처받은 기억들을 떠올리며 찬양을 감상하게 하자. 그 기억이 날 때 하나님께 모두 맡기는 기도를 하게 하자.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모든 상처를 지고 십자가에 달리셨음을 기억나게 하자. 그리하여 모든 상한 기억의 치유가 일어나도록 돕자.(데이빗 씨멘즈 “상한 기억의 치유 참조)
(4) 찬양 연주
내담자가 직접 위의 찬양을 연주하게 해보자. 피아노를 칠 수 있다면 더 좋다. 그러나 악기를 연주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떤 물체를 두드리는 것으로서 이 찬양의 리듬감을 느껴보게 하자. 자신이 직접 연주에 참가하는 동안 더 놀라운 치유가 일어난다.
2) 강박적 핵심신념
강박적 핵심신념을 가진 사람은 일 중독과 완벽주의에 내 몰린다. 이들에게 있어서 찬양은 진정한 일의 개념이 무엇인지와 인간의 부족감을 깨우쳐주어야 한다. 이들은 신앙에 대해 약자의 의존감정 정도로 치부하기 쉽다. 따라서 강박적 핵심 신념을 가진 사람에게 들려줄 찬양은 매우 신중하게 선택되어야 함은 물론 많은 기도와 준비가 따라야 한다.
(1) 찬송가에서
330장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는 [윌리엄 슬리퍼]가 작시하고 [조지 스테빈스]가 작곡하였다.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께로 나옵니다.
자유와 기쁨 베푸시는 주께로 옵니다.
병든 내 몸이 튼튼하고 빈궁한 삶이 부해지며
죄악을 벗어버리려고 주께로 옵니다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예수께로 옵니다
십자가 은혜 받으려고 주께로 옵니다.
슬프던 마음 위로받고 이생의 풍파 잔잔하며
영광의 찬송 부르려고 주께로 옵니다.
교만한 맘을 내버리고 예수께로 나옵니다.
복되신 말씀 따르려고 주께로 옵니다
실망한 이몸 힘을 얻고 예수의 크신 사랑받아
하늘의 기쁨 맛보려고 주께로 옵니다.
죽음의 길을 벗어나서 예수께로 나옵니다.
영원한 집을 바라보고 주께로 옵니다.
멸망의 포고 헤어나와 평화의 나라 다다라서
영광의 주를 뵈오려고 주께로 옵니다.
이 찬송시는 “고통의 멍에, 낭패와 실망, 교만한 마음, 죽음의 길, 병든 내 몸, 슬프던 마음, 실망한 이 몸, 멸망의 포구, 빈궁한 삶, 이생의 풍파”를 들어 인생이라면 누구에게나 찾아드는 문제 거리들을 직면하게 해준다.
매우 중요한 것은 대조되는 문구들이 매우 인상 깊게 배열된 찬송시라는 점이다. 고통의 멍에와 자유와 기쁨, 낭패와 실망과 십자가 은혜, 교만한 맘과 복되신 말씀, 죽음의 길과 영원한 집이 대조적이다. 병든 내 몸과 튼튼함, 빈궁한 삶과 부, 슬프던 마음과 위로, 이생의 풍파와 잔잔함, 실망한 이 몸과 힘, 멸망의 포구와 평화이다.
완벽주의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면 “고통의 멍에, 낭패와 실망, 교만한 마음, 죽음의 길”을 늘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는 길은 “주께로 가는 것”이라고 찬송시는 제시하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이 찬송을 반복적으로 부르면서 자신의 심령을 통찰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곡도 통찰에 도움을 주었지만 가사가 그런 도움을 주었다.
가사의 내용이 완벽주의를 철저하게 논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찬송시를 자주 읽고 곡으로 부른다면 완벽주의 논박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2) 복음송가에서
“나의 모든 행실을”이란 곡은 완벽주의에 빠진 내담자들에게 매우 유용하다. 이 곡은 자신의 모든 행실을 기억하지 마시고, 용서해주시고 받아달라는 간곡한 기도문을 작곡한 찬양이다. 이 찬양을 반복하여 불러주면서 자신이 겪은 상처와 아픔들을 떠올리게 하면 좋을 것이다.
“깊은 밤 홀로 우-는 그대여”란 곡도 완벽주의 신념을 가진 자들에게 매우 좋다. “아침 안개 눈 앞 가리듯”이란 곡도 매우 좋다.
완벽주의자는 자신의 심각한 상태를 자꾸 일깨워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회개에 관련된 곡도 자주 불러야 한다. 동시에 완벽주의자들이 겪는 좌절감과 분노와 불안감등을 위해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에 관한 곡도 자주 불러야 한다. “할 수 있다 하신 이는 나의 능력 주 하나님”이란 곡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살아보려고 몸부림쳤던 완벽주의자들에게 직면하는 곡이다. “나의 등뒤에서”란 곡도 완벽주의자들의 문제를 직면한 후 불러줄 좋은 곡이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곡은 완벽주의자들의 상담 끝에 불러볼 찬양이다. 완벽주의자들은 사랑 받기 위한 몸부림 속에 빠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강박적 사고 방식으로 늘 피곤에 젖은 사람들을 위해 “좋으신 하나님”이란 곡도 참 좋다. 이 외에도 모든 곡이 나름대로 찬양치유에 응용할 수 있는 좋은 곡이다.
3) 통제적 핵심신념
(1) 찬송가에서
찬송가 453장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최봉준 작사, 장수철 작곡)란 찬양은 통제적 핵심신념을 가진 내담자에게 유용하다.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 양
푸른 풀밭 맑은 시냇물가로
나를 늘 인도하여 주신다
예쁜 새들 노래하는 아침과
노을 비끼는 고운 황혼에
사랑하는 나의 목자 음성이
228․영성치유
나를 언제나 불러 주신다
못된 짐승 나를 해치 못하고
거친 비바람 상치 못하리
나의 주님 강한 손을 펼치사
나를 주야로 지켜 주신다
(후렴)
주는 나의 좋은 목자
나는 그의 어린양
철을 따라 꼴을 먹여주시니
내게 부족함 전혀 없어라 -아멘-
“시편 23편을 바탕으로 지은 이 찬양은 목가적인 운치와 시적 아름다움이 두드러지는 찬송이다. 1절에서 시인은 자신과 주님과의 관계를 어린양과 목자와의 관계에 비유한다. 2절에서는 아침, 저녁으로 양떼를 인도해 가는 목자의 이미지를 통해, 세심하신 배려와 사랑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3절은 야수(마귀들)의 공격이나 거친 비바람(환난이나 핍박)으로부터 보호하는 목자(주님)의 믿음직스러운 손길을 노래하는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후렴에서는, 목자 되신 주님께 온전히 내어 맡기는 삶이야말로 가장 만족스럽고도 복되다는 것을 고백한다.(해설찬송가에서, 생명의 말씀사 발행, 1996)”
한국인 작사자와 한국인 작곡가의 조화가 두드러진 이 찬양은 한국인의 정서에 잘 맞는 곡이다. 특히 통제적 핵심신념을 가진 내담자들은 자기 자신도 통제하고, 타인도 통제하고, 심지어는 하나님까지 통제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찬송을 부름으로서 먼저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가 통찰된다.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가 통찰되면 자신과 자신의 관계가 통찰되고, 나아가 자신과 타인의 관계가 통찰된다. 따라서 자연스런 통찰이 일어나도록 이 찬송의 가사를 설명해줄 필요가 있으며, 아주 경쾌하고 빠른 템포로 부르기도 하고, 조용하고 느린 템포로 부르면서 내담자 자신에게 통찰이 일어나도록 도와주면 된다. 때로는 박수도 치고, 악기를 두드리게 하고, 내담자 자신이 직접 이 곡을 연주하거나 부르게 하여 통찰 유발을 돕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필자는 심야기도회에 찬양의 가사를 함께 읽고, 적용하는 일을 하는데, 놀라울 정도로 숙연해지며 경건해지는 것을 목격한다. 그러다 찬양을 부르는 동안에 필자 자신도 감동이 되어 더 이상 계속 부를 수 없어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하는 경우도 자주 일어난다. 찬양을 통해 임재하신 하나님의 성령이 성도들을 만져주시는 것을 목격하면서 찬양의 능력을 새삼 확인하기도 한다.
찬송가는 주제별로 분류되어 있다. 예배, 성부, 성자, 성령, 구원, 천국, 성경, 교히, 성례와 예식, 절기와 행사, 성도의 생애, 송영과 영창 순으로 실려 있다. 주제별로 분류된 찬송은 다시 소주제로 나뉜다. 예배는 송영, 찬양과 경배, 주일, 폐회, 아침과 저녁, 헌금으로 나뉜다. 성부는 창조와 섭리로, 성자는 예수 그리스도, 강림, 탄생, 생애, 고난, 부활, 재림으로 나뉜다. 구원은 다시 속죄, 거듭남, 성결로 나뉜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 전도와 선교 그리고 친교와 봉사로 나뉜다. 성례와 예식은 성찬, 혼례, 장례로 나뉜다. 절기와 행사는 신년, 어린이, 청년, 어버이, 가정, 감사절로 나뉜다. 성도의 생애가 가장 많은 소주제로 나뉘어지는데, 부르심과 영접, 회개와 사죄, 신뢰와 확신, 소명과 헌신, 시련과 극복, 봉사와 충성, 분투와 승리, 은혜와 사랑, 인도와 보호, 평안과 위로, 기도와 간구, 축복과 감사, 주와 동행, 주를 본받음, 제자의 길, 성도의 교제, 신유, 소망으로 나누었다.
찬송가의 분류 내용을 안다는 것은 내담자의 상황에 맞게 찬양치유를 행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상담자는 찬송가의 주제별 분류를 숙지하고 찬양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다. 내담자의 환경에 가장 적절한 찬양을 부를 때 깊은 통찰이 일어나며 치유가 발생하게 된다.
(2) 복음송가에서
“회상”이란 곡은 주숙일씨가 작사, 작곡한 짧은 곡이다.
어둠을 한 순간에
물리친 아침해처럼
내 영혼을 밝힌
주님의 영광
어린애 손을 잡고
다정히 길을 걷듯이
내 인생의 여정
인도한 주님
(후렴)
그 은혜 아니라면
그 사랑 아니라면
내 어이 오늘이 있으리요
내일인들
통제적 핵심 신념을 가진 내담자는 자기 자신을 자기가 인도해보려 몸부림친다. 그러나 이 찬양을 부르다보면 오직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어야만 나의 길을 바로 갈 수 있음을 고백하게 된다.
이 찬양의 가사는 매우 쉽게 되어 있다. 어렵지 않은 만큼 숙지하도록 이끌어 줄 것이며, 악보를 보지 않고도 찬양할 수 있을 정도로 반복해서 불러 보게 함이 좋다.
이 외에도 모든 복음송이 찬양 치유에 탁월한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경배와 찬양이란 프로그램을 갖춘 교회들은 복음송을 통해서도 치유의 복을 경험하고 있다. 찬양치유는 함께 부르기, 혼자 부르기, 가사 암송하기, 연주해보기 등의 방법을 골고루 사용한다. 그러나 더 아름답게 사용되는 방법은 몸찬양이다. 요즘 워십 댄스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찬양 중 율동하는 것을 매우 중히 여긴다.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율동을 만들어보게도 하고, 자신이 만들어서 함께 해보면서 신체의 리듬감을 찾는 것은 물로 마음의 위로와 격려, 그리고 기쁨을 얻게 해줄 수 있다.
복음송을 “찬미예수” 시리즈로 발행하는 [Sing코이노니아]출판사는 복음송을 주제별로 잘 분류하여 실었다. 특히 “찬미 1500”이란 책에서는 “예배에로의 나아감, 찬미와 감사, 영적 전쟁과 승리, 복음, 그리스도의 고난, 구원으로의 초청, 회개와 영접, 결단과 헌신, 인도와 동행, 위로와 보호, 권면과 격려, 영적 성장과 회개, 화해와 일치, 사랑, 만남과 축복, 기도, 성장을 위한 간구, 선교와 소명, 성탄, 천국과 소망”으로 분류하였다
첫댓글 개인적으로는 보혈찬양을 많이 부르는 교회일수록 더티한 분쟁이 (그렇지 않은 교회에 비해)대체로 적은 것으로 보는 관점이지요.. 영적 분위기도 다르다고 봅니다..
펌해요.
기도와 찬양과 말씀가운데
함께 하시고 은혜 주시는
주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언어속에
무엇을 담고 살아가야 할까요?
성령충만을 사모하며
주님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기쁨과 감사가 가득하고
치유의 역사가 임함을 믿습니다.
자료 감사히 읽었습니다.
제가 요즘 열심히 찬양곡 펌해오는것이 바로 이런 마음에서에요~~기도하며 찬양올려요 ~찬양으로 ~~영성회복이 영혼이 바로 주님에게 올바르게 치유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