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든 성배'다. 스스로의 뜻을 펼 수 있는 영광의 자리일 수 있지만 그 만큼의 반대급부도 크다.
'독이 든 성배'라는 표현이 맞는 자리가 바둑계에도 한군데 있다. 대한바둑협회의 전무이사 자리가 그렇다. '체육'으로서의 한국바둑을 대표해 공식적인 행정을 책임지는 자리다. 바둑에 뜻이 있고 인생을 건 '바둑인'이라면 한번쯤 이 자리에 올라 자기 뜻을 펴고자 의지를 불태우고자 할만하다. 그러나 여러 산하단체와 지역협회, 한국기원을 포함한 바둑계 내부의 다양한 소리를 어우르지 못한다면 욕만 실컷 먹고 표류하기 좋은 자리가 바로 '대바협 전무이사'이기도 하다.
지난 1월 22일 사단법인 대한바둑협회의 제3대 회장으로 선출된 허동수 회장(한국기원 이사장)은 2월 1일자로 프로기사 김원 7단을 전무이사로 선임했다. 김원 전무(67년생)는 이창호의 입단동기로 유명하다. 수도권에서 김원바둑도장을 운영했으며, 최근에는 대구바둑협회에서 지역연구생을 양성했었다.
2월 14일, 서울 홍익동 (재)한국기원 이사장실에서 김원 전무이사가 바둑담당 매체 기자들과 간단한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김원 전무는 요즘 대바협 행정 전반을 익히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 전무이사 자리를 처음에 제의 받았을 때 어땠나?
"일주일간 잠을 못 잤다. 전무이사로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그 자리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스로 결론내려야 했다."
-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의 수장이 같다. 양대 바둑기관의 교통정리가 있나?
"이전까지는 서로의 일이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같은 일을 해도 어느 편에 물어봐야 하나 눈치를 보는 일도 있었다. 한국기원은 프로업무에 집중하게 될 것이고 대바협은 기존의 선수육성업무를 기본으로 한국기원이 맡고 있던 아마추어 업무까지 이전받아 모든 아마추어 업무를 맡는다. 이를 위해 대학연맹, 여성연맹, 아마대회 등 다양한 아마추어 업무를 담당하던 한국기원 보급팀 실무진이 대한바둑협회에 합류했다"
- 한국기원과 대바협, 양대 기관으로 흘러가면면서 여성바둑과 바둑교실 부문도 양분됐다. 이쪽은 어떤가?
"지금 당장 합쳐지긴 힘들다. 그래도 이전보다야 같이 통합할 수 있는 방법 찾기가 쉽다. 통합은 충분히 해낼 것으로 본다."
- 신임 전무이사로서 끌고나가고자 하는 방향은?
" 전국 체전에 정식종목으로 들어가는 것이 첫 번째, 흩어진 아마추어 바둑인 그룹을 하나로 묶는 것이 두 번째, 세번째는 바둑교실을 비롯한 바둑교육지원이다. 특히 바둑교실은 지금 지원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심각한 상태다."
- 행정경험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아는데
"예전부터 아마추어 바둑인들과 많은 교류가 있었다. 지역협회 전무님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해놓은 상태다. 합리적 원칙을 가지고 투명하게 행정을 하려 한다. 주먹구구식을 탈피하려 한다. 가령 전국체전 정식종목가입의 경우 체전에 참가할 팀의 창설, 지도자 자격증, 심판 자격증 등 그 부문에서 세부적으로 준비할 것들이 많다. 솔직히 말하면 협회차원에서 이런 세부적 부분의 준비는 현재 10%정도다. 정식종목 채택도 중요하지만 채택 이후의 운영이 더욱 중요하다. 대바협 행정은 이런 부분을 커버할 것이다."
- 아마추어 바둑인들로선 대바협 전무이사 이전에 프로기사 김원 7단으로 인식할 것 같다. 그런 갭은 어떻게 극복할 건가?
"아마추어 바둑계는 바둑을 좋아하는 팬층과 직업적으로 바둑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아마강자들을 포함해 직업으로 바둑을 택한 분들이 약 1500여 명 가량 될 것으로 추산한다. 대바협은 이 분들의 상위단체가 아니라 이 분들을 써포트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그런 단체다. 다년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전국의 바둑교실, 아마강자들을 많이 만났고 잘 이해하고 있다. 으레 한국기원은 프로기사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프로의 의미도 조금씩은 변해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또 제가 프로생활을 해봤기에 한국기원과 소통을 하는 데에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전 전무이사가 된 순간 프로기사로서의 활동은 이미 접었다. 아마추어 바둑인 김원이라 해도 좋다."
- 대바협은 한국기원과는 조직구성이 다르다. 지역협회로 구성이 되어 있고 산하단체도 많다. 전무자리는 여러 목소리를 반영해야해서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기에 좋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
"욕을 먹을 부분은 욕을 먹어야 한다. 대바협은 정부 지원을 받는 단체다. 따라서 어느 부문에 지원을 했는지 잘 알 수 있도록 투명하게 갈 것이다. (서운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더라도)공개적으로 진행한다. 지역협회의 전무님들과도 친하고 신뢰가 있다고 생각한다. 보급에 중점을 둘 것이다. 대바협은 지시하고 명령하는 상위 조직이라기보단, 20여 개 산하단체를 써포트하는 조직이다. 이 점을 분명히 할 것이다"
- 전무이사 선임 후 별도로 허동수 이사장과 미팅을 가졌다고 들었다. 행정 방향에 관한 어떤 멘트가 있었나?
"프로와 아마가 서로 맞서고 알력이 심해지면 결국 남는 건 상처밖에 없다. 바둑계 내부가 이런 알력에 말려들지 않도록 소통의 명령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김원 전무는 기자들과 대화하는 내내 바둑교실에 대한 염려를 멈추지 않았다. 김원 전무는 현재 전국바둑교실이 400여 개인데 올해 50여 개 정도가 폐업할 것 같다고 예상했다. 이런 추세면 내년이나 내후년이면 지원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바둑교실이 축소될 것이라 예상했다. 바둑교실의 축소는 방과후 수업과 관련이 있어 풀기 쉬운 문제는 아니다.
- 지역협회이든, 혹은 한국기원이든 바둑계 내의 노련한 사람들에 의해 결국 김원 전무가 끌려다니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지도 않을 것이고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러지 않을 자신이 있다."
간담회 말미, '독이 든 성배'를 받아 든 자의 결기를 김원 전무가 보여준다. 프로기사, 바둑도장 사범, 바둑 지도자로서 후배를 양성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제2의 바둑인생이 김원 전무 앞에 펼쳐지고 있다. 바둑계 소통의 중심이 되기 위해선, 그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선 그만큼 독한 마음이 필요할지 모른다.
[취재 | 최병준,박주성]
▲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 3층 이사장실, 김원전무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한바둑협회는 3개월 뒤 이곳 한국기원으로 사무실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