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은 탐욕을 의미하는 ‘greed’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미국의 물가가 40여 년 만에 최악 수준으로 치솟자 미국 민주당 일각에서 대기업의 탐욕이 인플레이션을 조장한다는 비난이 나오며 등장한 용어다. 이들은 대기업들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등을 핑계 삼아 상품과 서비스 가격을 과도하게 올려 물가상승을 초래하고 있다고 본다.
코로나19 장기화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식량, 에너지 가격 상승 등이 인플레이션을 촉발한 가운데 대기업들이 시장지배력을 악용해 상품 가격을 무분별하게 올렸다는 것이다. 워낙 물가가 오르니 기업이 가격을 필요 이상으로 올려도 소비자들은 이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미국 상무부 경제분석국에 따르면 제품 가격 중 기업 이익의 비중은 1970년대 10.9%에서 2020~2022년에 34%로 3배로 올랐다. 반면 같은 기간에 제품 가격 중 인건비 비중은 64.9%에서 50.8%로, 노동 외 비용은 23.7%에서 14.7%로 줄었다. 기업이 특히 최근 들어 이윤을 늘렸다는 의미다.
유럽에서도 그리드플레이션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영국 자유민주당 의원들은 경쟁시장청(CMA)에 폭리를 취하고 있는 유통기업을 조사할 것을 촉구했다. 독일의 대형 유통업체 에데카는 가격을 과도하게 올린 일부 공급업체의 상품 판매를 중단하기도 했다. 이탈리아에선 국민 요리 재료인 파스타면 가격이 급등하면서 불매 운동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라면 업계 빅 3인 농심, 오뚝이, 삼양식품은 지난 해 라면 제품 출고가를 올렸고, 올 1분기 실적이 뛰었다. 최근 원자잿값 하락을 가격에 반영하지 않은 채 매출을 늘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다만 제품 가격에는 인건비, 포장 등이 반영되는 데다 수출 호조에 따른 호(好) 실적이라는 반론이 함께 제기됐다.
반면, 그리드플레이션에 대해서는 과장된 주장이라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기업의 탐욕은 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요인이 아니며, 기업의 가격 부풀리기가 없어도 인플레이션 현상을 경제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학자 제이슨 퍼먼은 탐욕은 물가 상승에 중요한 요인이 아니라면서 "여기에 초점을 맞추다간 오히려 물가난의 실제 원인과 해법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