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www.bizhankook.com/bk/article/22638
대한민국이 ‘펜트하우스’ 같은 극한의 막장 드라마에 열광하던 게 바로 어제 일이건만 ‘갯마을 차차차’ 같은 따스한 힐링 드라마가 인기라니, 역시 안방극장의 변덕스러운 마음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서울 깍쟁이’라 불릴 법한 치과의사 윤혜진(신민아)이 시골 바닷가 마을 공진에 내려와 ‘만능 백수 홍반장’ 홍두식(김선호)을 만나며 벌어지는 로맨스물, ‘갯마을 차차차’. 한 줄 설명만 봐도 30대 이상 시청자들은 2004년 개봉했던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홍반장)’을 떠올릴 테다. ‘홍반장’은 개봉 성적은 그저 그랬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회자하는 잘 만든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故 김주혁의 필모그래피 중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작품. 이를 원작으로 했기에 ‘갯마을 차차차’는 원작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었다. 다행히 이 리메이크 도전은 원작과 17년이라는 시간 간격, 서사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영화와 그를 메울 수 있는 드라마라는 장르의 변화, 그리고 절묘한 캐스팅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엄혹한 비교의 눈초리를 피하고 호평을 얻었다.
영화 ‘홍반장’을 잊지 못하던 나는, 드라마 초반 김선호가 연기하는 홍반장을 보며 ‘아니야, 우리 홍반장은 저렇게 매끈하니 잘생긴 저런 느낌이 아니야’를 외치며 홀로 탄식했으나 다행히 그 탄식은 김선호의 홍반장을 보며 이내 잦아들었다. 고 김주혁의 홍반장은 당시 유례없는 독보적인 캐릭터였고 김선호의 홍반장 역시 그에게 빚지고 있는 부분은 있지만, 그럼에도 2021년의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홍반장은 2004년의 홍반장과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영화에서 깊이 다룰 수 없었던 홍반장의 서사와 감정을 드라마가 충분히 짚고 넘어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두에게 반말을 하며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하는 홍반장이지만 사랑하는 특별한 누군가를 만들지 않으려 하는 홍반장의 아픈 과거와 상처를, ‘갯마을 차차차’는 영화와 달리 찬찬히 보여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매력적인 캐릭터에 디테일한 서사가 붙으며 홍반장 캐릭터가 한층 매력적으로 비쳐지는 건 당연하다. 자격증만 수십 개에 지식과 지혜에다 마음씀씀이까지 갖춘 홍반장에게 굳이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수석 입학한 수재’라는 타이틀을 쥐어준 설정은 과하다고 생각되지만.
게다가 배우들은 어쩌면 이토록 사랑스러운지.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 극강의 사랑스러움을 보여준 바 있는 신민아는 사랑스러우면서도 자신을 단단하게 부여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혜진을 맞춤옷을 입은 듯 자연스럽게 표현해낸다. 그리고 김선호. 귀여운 보조개와 함께 산뜻한 미소를 짓는 김선호의 청량함을 거부할 재간이 없다. 아주 그냥 배우들의 매력 자체가 개연성일 정도인데, 심지어 ‘케미’도 잘 맞는다. 그러니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 배시시 웃음짓게 되는 거지.
‘공진’이라는 장소가 주는 매력, 그곳의 사람들이 선사하는 따스함도 충만하다. 영화에서도 혜진이 정착한 시골 바닷가 마을은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했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혜진과 홍반장의 ‘들러리’를 서는 수준이었다. 2시간이 채 안 되는 영화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갯마을 차차차’에서 시골 바닷가 마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공진에 자부심이 있고, 그들 자신이 그 아름다운 공진의 한 축으로 존재한다. 공진의 터줏대감들인 김감리(김영옥), 이맏이(이용이), 박숙자(신신애) 할머니 삼인방부터, 대체 왜 이혼했을까 이유를 알 수 없는 공진동 통장 여화정(이봉련)과 공진동 동장 장영국(인교진), 90년대에 히트곡 하나 남기고 사라져 공진에 살게 된 라이브 카페 주인 오춘재(조한철), 중국집 사장이자 상가번영회 회장인 동네 입소문의 주축 조남숙(차청화), 청호철물 사장 최금철(윤석현)과 보라슈퍼 사장 함윤경(김주연) 부부 등 공진동 5통 1반 사람들 모두가 저마다의 개성을 자랑한다. 남일 참견하기 좋아하고 소문내기 좋아하는 중국집 사장 남숙에게 절절한 속내가 있다는 것, 화정과 영국에게 유초희(홍지희)라는 아픈 손가락 같은 삼각관계가 있다는 것, 왕년에 가수였다는 것 외에 별볼일 없어 보이는 춘재가 얼마나 따스한 부정을 지닌 아버지인지 등등 우리 곁의 이웃에게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갯마을 차차차’는 소리 높이지 않고 자연스레 들려준다. 그들의 이야기 사이로 펼쳐지는 드넓은 바다와 평화로운 어촌의 풍광은 덤.
영화에서는 감정의 벽을 치던 홍반장에게 실망한 혜진이 다시 서울로 떠났었는데, 이미 홍반장과 마음이 통한 드라마의 혜진은 공진에서 계속 터를 잡고 살게 될지 어떨지도 궁금하다.
인심 좋은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삭막한 각자도생의 삶을 사는 현대인의 마음을 달래주는 ‘갯마을 차차차’. 혼자 살다 집에서 사고가 일어나도 옆집에서 까마득히 모를 도시의 삶과 달리 남의 일에 시시콜콜 관심을 보이는 시골의 오지랖이 부담스러우면서도 따스하게 다가오는 공진의 사람들이 사랑스럽고, 도시 깍쟁이인 듯 하지만 확실한 주관으로 성실하게 인생을 살며 반성할 땐 반성할 줄 아는 혜진이 멋지고, 돈과 성공 말고도 가치 있는 것들을 알아볼 줄 아는 홍반장이 부럽다.
물론 이런 마음은 화면을 통해 관망하는 입장이기에 드는 마음일 수도 있다. 멀쩡하게 대학 나와 홍반장처럼 사회에 내놓을 만한 아웃풋없이 살아갈 자신이 없는 초라한 현대인이라서, ‘행복, 자기 만족, 세계 평화, 사랑’ 같은 것들이 가치 있다고 머리로만 알고 가슴으로는 살짝 오글거린다고 생각하는 중년이라서, ‘갯마을 차차차’는 대리만족 힐링물 같다. 그럼 또 어떤가. 각박한 세상에서 일주일에 2시간 남짓이라도 대리만족으로 힐링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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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ㅠ 그때 위안 얻었어ㅠ
ost도 너무좋아
진짜 힐링물ㅠㅠ 요즘 갯차때문에 행복해 고구마 없고 따뜻한 드라마 최고야
이번에 나온 ost 진짜 눈물 줄줄임ㅜ 대힐링여...
고백하고 차이는거/거절하는거 /싸우고 화해할때 하는 말들 어쩜그리 말을잘하나싶음 ㅠ 그래서 내가 번번이 연애실패햇엇나싶고 (지금은 비연애비혼이지만ㅋㄱㅋ)
재밋어ㅠㅠ
나는 혜진이가 지금 20-30대의 표상같아서 공감도 많이되고 이입하게 되는거같아ㅋㅋ 속은 다정하고 정 많지만 개인주의적인 성향도 강하고, 또 나에게 급다가오는 사람에게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다정함을 베풀줄 아는게 지금 우리 세대들의 모습같아서 혜진이가 시골에서 느끼는 감정들에 더 공감하게 되고 힐링돼ㅋㅋ
나머지 회차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지면 휴머니즘까지 잡는 드라마가 될듯해 둘의 로맨스도 좋지만 이웃들 이야기가 좋아서 보는 시청자도 꽤 많을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