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bert von Karajan conducts Beethoven's Symphony No.6 'Pastorale'
자연에 대한 감사의 헌정이자 찬미
베토벤은 대인관계가 그리 원활하지 못했다.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문제를 발견하고, 사람들과 대화하기보다 자연과 대화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사람보다 나무를 좋아한다.” 베토벤은 산과 들을 늘 혼자 다녔다. 자연은 저마다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지만 기분을 상하게 할 정도로 자기주장을 하거나 질시하지 않았고 어떠한 가식도 없이 늘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베토벤은 작품을 쓰기 위한 영감이 필요하면 늘 스케치북 하나를 들고 편안한 자연 속으로 들어갔다. ▶하일리겐슈타트는 루소 풍의 전원 마을로, 평온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베토벤은 평생 이곳을 마음에 두었다. 베토벤이 손에 바구니를 들고 계단에서 내려오는 장면이 묘사된 그림이다.
‘전원‘이란 부제가 붙은 베토벤의 여섯 번째 교향곡은 자연의 존재에 대한 감사의 헌정이며 찬미의 예술이다. 베토벤은 1802년에 스케치해 놓았던 이 작품을 1807년과 1808년에 걸쳐 빈 근교의 전원 마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완성했다. 훗날 베토벤이 유서를 쓴 곳으로 유명세를 타지만, 베토벤이 살던 시대의 하일리겐슈타트는 시골의 소박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조용한 마을이었다. 도시의 부산함과는 어울리지 못하는 고독한 성격의 베토벤에게 그곳은 안성맞춤이었는지 그는 그곳에서 창작열을 불태웠다.
‘전원’이란 부제는 베토벤 자신이 붙였다. 각 악장에는 빠르기 표시 외에 간략한 묘사가 일일이 붙어 있는데, 이 역시 그가 적어 넣은 것이다. 악장의 표제들은 베토벤이 하나하나의 악장을 쓰면서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악곡에 붙은 부제나 각 악장에 명기한 표제는 리스트 등 후대의 낭만주의 작곡가들이 사용하던 것과는 성격이 달랐다. 베토벤은 자신의 수첩에다 이 작품은 “회화적인 묘사가 아니라 전원에서의 즐거움이 사람들 마음속에서 환기시키는 여러 가지의 느낌을 그린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느낌을 그린 것’이란 구절에 눈이 가는데, 이 말은 음으로 자연의 여러 풍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자연을 보고 마음속에서 일어난 느낌을 표현한 것이라는 뜻이다. 그 점에서 교향곡 '전원'은 낭만주의 시대에 새소리나 자연의 풍물을 그대로 음으로 묘사한 표제음악과는 차이가 있다. 1악장에 그가 붙인 표제 ‘전원에 도착했을 때 유쾌한 기분이 일어남’은 베토벤이 쓴 것이 ‘소리그림’(音畵, sound painting)이 아니라 ‘정서의 표현’임을 암시하고 있다.
얼마 전 2월 22일 타계한 볼프강 자발리슈(독일, 1923-2013)는 정통 독일음악에 충실한 지휘자로 단정함과 음악적 논리를 중시하였다고 평가됩니다. 피아노에도 조예가 깊어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의 가곡 반주를 맡기도 하였지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슈만 교향곡 및 슈베르트 교향곡 전곡을 녹음하였습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윤이상이 작곡한 <심청전>을 지휘했습니다. 사라 장과의 협연으로 한국에도 많이 알려져 있죠. 군더더기 없고 은은한 음에는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동양미가 배어납니다. 타계하기까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활동했습니다.
‘운명 교향곡’과 같은 날 초연
베토벤의 이 걸작은 1808년 12월 22일에 안 데어 빈 극장에서 초연되었는데, 그날의 음악회는 저녁 6시30분에 시작해 밤 10시30분까지 장장 4시간에 걸쳐 이어졌다. 이 마라톤 음악회에서 베토벤은 작곡가 지휘자 독주자로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교향곡 5번과 6번뿐 아니라 피아노 협주곡과 독주곡, 몇 곡의 아리아, 그리고 환상곡(‘합창 환상곡’ Op.80)까지 연주하고 지휘했다. 이 역사적인 연주회를 지켜본 라인하르트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날 연주회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전원 교향곡’을 작곡할 당시의 베토벤은 4시간짜리 거대한 콘서트를 열 정도로 인기 있는 작곡가였다.
“우리는 지독한 추위 속에서 6시30분부터 10시30분까지 그곳에 앉아, 한 사람이 너무나 많은 장점과 강력함을 가질 수 있다는 격언을 확인했습니다. 여러 가지 작은 실수들이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긴 했지만, 음악회가 끝나기 전에 일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또 다른 환상곡이 연주되었는데, 이번에는 관현악단이 연주에 동참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합창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이한 편성의 연주는 크게 실패하고 말았지요. 관현악단의 연주는 완전히 엉망이 되었고 베토벤은 예술가로서의 열정으로 인해 청중과 주위 사람들은 전혀 생각지 못한 채 연주를 멈추고 다시 시작하라고 소리쳤습니다. 나를 비롯한 베토벤의 친구들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때 나는 빨리 그곳을 떠날 수 있는 마차가 있었으면 하고 얼마나 바랐는지 모릅니다.”
음악회가 워낙 길고 힘들다 보니 공연 후반부에 사고도 일어났다. 이 야심만만한 연주회는 결국 엉망이 되긴 했지만, 장장 4시간 동안 진행되는 베토벤의 심포니 연주가 가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 베토벤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그날 연주된 베토벤의 교향곡 5번과 6번은 같은 날 초연되었으니 쌍둥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닮지 않았다. 교향곡 5번이 운명과 싸워야 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면, 교향곡 6번 ‘전원'에는 인간의 괴로움과 투쟁이 아닌 자연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 5번이 인간을 표현한 것이라면 6번은 자연을 다루었으며, 전자가 응집력과 추진력을 갖춘 역동적인 음악이라면, 후자는 관조와 명상이 흐르는 이완된 음악이다. 당시 6번 ‘전원’이 먼저 연주된 후 5번이 연주됐는데, 그날의 청중들은 두 곡의 교향곡 중에서 ‘전원’을 더 마음에 들어 했다고 전해진다.
Philippe Herreweghe conducts Beethoven's Symphony No.6 'Pastorale'
Philippe Herreweghe, conductor
Radio Kamer Filharmonie
Grote Zaal Concertgebouw Amsterdam
2011.09.18
전원에서의 즐거움, 마음속에 떠오르는 기분을 표현
이 교향곡에 베토벤이 ‘전원’이라는 부제를 붙였고, 각 악장마다 표제를 붙였으나 표제음악을 썼던 것은 아니다. 베토벤 자신이 말한 바대로 “묘사라기보다는 차라리 감정의 표현”이라는 입장에서 자연에 대한 찬미를 표출한 것이다. 그렇다고 자연에 대한 묘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4악장은 전형적인 묘사적 수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 밖에 다른 악장에서도 시냇물 소리나 새의 울음소리들이 들어가 있다. 물론 이들은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에 불과하며 목적이 되고 있지는 않다.▶숲에서 ‘전원 교향곡’을 작곡하는 베토벤(1808). “잡목림, 숲, 나무, 바위들 사이를 이리저리 거닐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그 누구도 나만큼 전원을 좋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곡은 보통 교향곡이 3, 4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지는 것과는 달리 5개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더구나 3, 4, 5악장은 휴지 없이 계속 연주하도록 되어 있다. 베토벤은 후반 세 악장을 연결시켜 마치 전원을 산책하며 보고 듣는 여러 가지 체험을 하나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엮어놓은 것이다.
1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Allegro ma non troppo
‘전원에 도착했을 때 유쾌한 기분이 일어남’. 부제 그대로 전원에 왔을 때 느끼는 평화롭고 상쾌한 기분이 현악기의 제1주제로 그려지고 곳곳에 지저귀는 새의 소리 같은 음형이 전원의 느낌을 배가시킨다.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경쾌한 도약 리듬은 이 악장 전체를 수놓고 있는데, 시골의 어린아이들이 뛰놀고 있는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1악장 전체의 평온한 전원의 느낌을 해치지 않도록 별다른 클라이맥스 없이 간결한 기법으로 일관하고 상큼한 리듬과 잔잔하고 유려한 선율만을 풀어놓고 있다.
2악장 :안단테 몰토 모소Andante molto mosso
‘시냇가의 정경’. 현악기의 유려한 선율로 끝임 없이 흘러가는 시냇물을 그리는 듯한 인상을 주는 2악장은 그 푸근한 정서 때문에 이 작품 가운데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악장이다. 싱그러운 색채감으로 가슴을 푸근하게 하는 유려한 선율과 화성은 자연의 품에 안긴 듯한 편안함을 준다. 물의 흐름과 전원의 고즈넉한 풍경을 그리기 위해 베토벤은 이 악장에서 특별히 8분의 12박자를 채택하고 있다. 코다 부분에서는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등 관악기들이 각각 나이팅게일, 메추라기, 뻐꾸기의 소리를 모방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명백한 새소리의 묘사마저도 표제적인 느낌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3악장: 알레그로Allegro
‘시골사람들의 즐거운 모임’. 전원에 도착해서 자연에 흠뻑 취했던 작곡가는 이제 시선을 시골사람들의 삶의 터전으로 옮겨간다. 3악장은 시골풍의 스케르초와 트리오이다. 파곳의 반주를 타고 오보에가 흥겨운 3박자의 독일 춤곡을 연주하고 2박자로 변하면서 보다 격한 춤곡이 나온다. 재현부로 돌아오면 축제일의 시골 풍경이 흥겹게 그려지지만 곧 폭풍우를 예고하는 천둥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3악장부터 마지막 5악장까지는 휴지 없이 연속적으로 연주된다.
4악장: 알레그로Allegro
‘천둥, 폭풍우’. 트릴로 연주되는 현악기의 저음이 쌩쌩 바람을 일으키고 팀파니는 쿵쾅거리며 천둥소리를 낸다. 또 관악기가 하늘을 가르듯 울부짖고 피콜로는 번뜩이는 번개의 빛이 된다.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 모두 합세하여 격렬한 폭풍우가 몰아치는 풍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무시무시한 공포의 장면도 얼마 후에는 다시 평정을 찾는다. 목가적인 5악장을 노래하기 위해서다.
5악장: 알레그레토Allegretto
‘목가, 폭풍우가 물러간 뒤에 오는 행복과 감사의 느낌’. 목가풍의 도입부를 지닌 론도 형식의 악장이다. 어두운 하늘과 뇌성으로 공포에 떨게 하던 폭풍우가 물러가고 평온한 풍경으로 돌아온다. 다시 되찾은 하늘의 평화를 노래하는 현악기는 기막히게 아름답다.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현악기의 노래와 함께 안도감과 기쁨을 느끼면서 평온을 되찾아준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종결 부분 현악기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표현은 벅찬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위대한 자연 예찬이다!
추천음반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에서 전원의 평화로움과 아늑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신녹음(DG)을 추천하고 싶다. 아바도는 베토벤의 짝수 교향곡에 담긴 온화함과 유머를 잘 표현해낸 연주로 음악애호가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전원’ 4악장 폭풍 장면에서 팀파니의 자극적인 천둥소리를 듣고 싶다면 존 엘리엇 가디너가 지휘하는 혁명과 낭만의 오케스트라(Archiv)의 생기 있는 연주를 추천하고 싶다. 그 밖에 클라우스 텐슈테트가 지휘하는 런던 필하모닉(EMI)의 세심한 연주나,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DG)의 윤기 흐르는 연주도 추천할 만하다. 이외에도 베토벤 교향곡의 명성만큼 뛰어난 음반들이 많이 존재하며 다 언급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