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두진 시인의 유택과 시비

영상자료를 본 뒤에 3층에 있는 전시실로 갔습니다.

해설사 김건희 선생의 설명을 듣고 있는 원석회원들

자연을 사랑하던 시인, 박두진 시인의 시작품이 자연스럽게 전시실 바닥에서 펼쳐집니다.




박두진 시인이 추천을 받았던 <<문장지>>와 그 무렵의 시인의 사진






박두진 시인이 사랑하시던 퉁소와 합죽선

박두진 시인이 애용하시던 연적

박시인에게 보내온 후배시인들의 편지, 출판서에서 온 출판계약서




강버들이 박두진 시인의 강의를 들었던 것은 1979년 후학기였습니다. 이대 연대 서강대 교환학점제에 따라서 박시인의 현대시문학사를 수강했습니다. 석박사 통합반으로 좋아하는 한 명씩의 시인을 선정, 시인과 시작품에 관련된 내용을 발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강버들은 이상을 선택했습니다. 발표가 끝나고 나자 '자네 그런 식으로 하면 몸이 견뎌내지 못하네' 하셨습니다. 열심히 잘 해왔다는 표현이셨습니다. 그런데 한 학기 강의를 마치면서 내가 느낀 것은 박두진 시인은 시인 이상을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철저한 기독교 신자로서의 삶을 살아오신 분이 이상과 같은 분방한 시인의 삶을 수용하시기에는 거부반응이 심하셨던 것이 아니었을지요.

박두진 시인의 서재를 재현해 놓은 곳, 책꽂이의 책, 안경, 차주전자와 찻잔, 원고지 모두 시인의 손때 묻은 것들입니다.

박두진 선생은 서예에도 능하셨습니다. 특히 초서를 잘 쓰셨고 많은 도자기에도 글씨를 남기셨습니다.









자화상이라는 제목의 수석, 이 시꺼면 수석을 보는 순간 박두진 시인을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이 그대로 떠올랐습니다. 이대에서 길 하나를 건너면 연대의 숲이었습니다. 숲이 무성해서 혼자 다니기 무서울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그곳에 치과병동이 들어서 있습니다.
초가을 오후, 숲을 지나고 문과대학 이층이었던가, 박두진 교수 연구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선 순간, 얼굴이 검고 검은 양복을 입으신, 아주 깡마른 모습의 그분을 뵈었습니다. 꼭 거미와 같은 인상이었습니다. 큰 키에 팔이 길고 여윈 모습, 나중에 알고보니 그분의 시집 가운데 <<거미와 성좌>>라는 시집이 있었습니다. 말씀이 별로 없으셨습니다. 점심 시간 이후의 강의라, 어쩌다 조금 일찍 가서 연구실로 들어서면 시인은 점심 도시락을 들고 계시었습니다.

안성공립보통학교 시절의 학적부

연세대학교 앨범.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