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미션,저장성(절강성) 후쩌우(湖州市)
절강성은 우리에게 임진왜란 당시 절강병법으로 유명한 곳이다.
절강병법이란 삼국지의 오나라 손권으로 비롯된 강남지역의
특유의 병법으로 양자강을 끼고 이루어진 수상전투 및 다양한
병법을 이야기한다.
(비오날 호주시내 전경)
얼마전 장안을 뜨겁게 달군 TV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프로그램이 있었다. 독도문제와 더불어 일본과 조선군의
전쟁을 호쾌하게 그려낸 불후의 명작이었다.
이때 등장한 병법이 절강병법(浙江兵法)이다. 우리나라는 임진왜란이후 명나라 척계광이 지은 기효신서와 이를 바탕으로 편찬한 병학지남의 절강병법을 전술의 기본체계로 삼았다.
본인 역시 직지탐험대의 기본전략으로 “불멸의 이순신 장군”처럼 절강병법을 기본전술로 삼으려한다.
직지찾기운동은 1997년 청주시민단체에 의하여 직지찾기운동본부
가 설립되면서 본격화 되었다. 1972년 직지가 파리 도서전에 출품
이 되어 세상에 알려진지 36년, 본격적인 직지찾기가 진행된지
10년, 직지가 세계기록유산 등재(2001년)된지 6년차이다.
탐정 드라마를 보면 문제의 단서가 풀리지 않으면 수사관이나
범인이나 다시금 문제의 현장으로 간다고 한다. 직지심체요절을 수없이 되풀이 보면서 임서를 해보고 읽어보다가 어느 덧 절강성 후쩌우시 지역에 생각이 미쳤다.
(호주시 하막산 천호암 차밭,백운화상스승인 석옥청공 주석처)
절강성 호주지역을 이야기한 고려시대 3대 학자이자 직지서문의 필자인 목은 이색선생의 서문에 눈길이 갔다. 목은 선생의 행장을 간단히 살펴보자.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8~1396. 고려말의 문신·학자)본관 한산(韓山). 자 영숙(潁叔). 호 목은(牧隱). 시호 문정(文靖). 이제현(李齊賢)의 문하생.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1341년(충혜왕 복위 2) 진사(進士)가 되고, 1348년(충목왕 4) 원(元)나라에 가서 국자감(國子監)의 생원이 되어 성리학을 연구했다.
목은 선생은 고려의 시인이자 문인인 이곡선생의 아들이며 이제현선생의 문하생이다.특히 목은 선생은 이성계의 조선 개국에 소극적이어서 고려말 공양왕2년(1390년 5월)청주목(淸州牧) 옥에 갇히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에 관련된 고사가 청주 중앙공원의 명물 은행나무인 압각수에 관한 고사에 실려 있다. 그리고 청주 북쪽인 수름재쪽에 목은 선생의 영정을 모시는 목은영당의 유적이 있어 목은 선생과 청주지역과 직지와는관계가 대단히 깊은 것을 알 수 있고 직지심체요절의 존재가능성도 목은 이색선생이 그의 서문에 분명하게 중국 강남의 호주 하무산지역에서 석옥청공에게 불조직지심체요절을 받아 왔다고 적고 있다. 그 후 석옥청공이 입적 후 그의 제자를 보내 후계자의 징표를 삼는다는 사게송을 보내와 학자들 사이에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여기서 절강성 호주지역이 전면에 부각되어 절강성 호주지역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였다. 그러던 중 불교춘추의 최석환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그 분은 이미 2000년부터 고려말 3대 선사인
태고보우,나옹 화상,백운화상등 과 관련하여 절강성 호주시와
학술연토회를 진행하면서 600년만에 다시금 호주시와 많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호주시(湖州市)는 절강성 항주와 소주등과 더불어 절강성의 숨은 진주로 경제적인 성장과 문화적인 성장을 지속하고 있었다.
호주시는 총면적이 5818평방km이며 인구는 257만명에 달하여
청주시의 4배, 인천직할시와 규모가 맞먹는 신흥 경제 문화도시
이다.
이곳 호주시가 바로 직지심체요절과 관계가 깊은 석옥청공 선사의 수행도량인 하무산 천호암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인연에 따라 호주시에 많은 발길이 닿았지만 금속활자 직지와 관련된 접근이 없었던 것을 항상 아쉬워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길은 직지로 통할 것이다. 많은 분들이 호시 에 대한 관심은 석옥청공과 태보보우와 더불어 백운화상의 직지 심체요절이 제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석옥청공이 머물렀던 천호암의 유적지가 있던 공간은 운림선사로 복원되었다. 그리고 천호암에는 석옥청공과 백운화상 다담을 나누었던 차밭이 조성되어 새로운 관광자원이자 수입원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신(茶神)으로 추앙받는 육우(陸羽)선생은 당나라 안록산의 난을 피해 절강성후주지역에 정착하여 차에 관한 위대한 책을 저술한다. 그것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1200년 이상 전해 내려온 다경(茶經)이다.
(천호암 ,운림선사로 복원)
이 곳에서육우선생의 정신을 이은 것이 석옥청공이고 바로 백운화상인 것이다. 좋은 인문 환경 속에서 위대한 창작이 나오는 것이다. 그 당시 육우선생은 그의 학문적인 실력을 인정받아 당대의 최고의 서예가인 안진경 선생의 후원으로 중국 최고의 서예가로 평가받는 왕희지등과 교류를 하게 된다. 그러한 문화적 역사적 전통은 남송과 원나라 시대의 최고의 서예가로 평가 받는 조맹부에게 이어져 금속활자본인 직지의 서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마도 석옥청공이 전해준 불조직지심체 요절이 조맹부체의
영향을 받은 필사본이거나 목판본으로 추측이 된다. 실제로
서예학자나 서지학자들은 금속활자본 직지의 서체가 조맹부
서체의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 당시 고려
말의 서예풍이 송설체라고 불리는 조맹부체의 영향권에 있었고
조맹부는 서예의 근본정신을 살리는 복고정신을 부르짖으며
왕희지체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고려시대 충선왕은 조맹부와 매우 친해 고려에 조맹부 서체를 널리 전파했으며 이러한
영향은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3째 아들인 안평대군에게 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렇게 직지는 한글에게 까지도 그 맥이
닿아있다.
절강성 호주지역은 풍부한 인문적 자산으로 직지와 연결되어
있다.그 다음에는 석옥청공의 왕의 명령에 의하여10년정도 주지직을 수행한 항주 지역과 중국의 10대 선종사찰로 꼽히는 영은사(링인쓰)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항주지역은 상해와 소주와 더불어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원나라
당시 세계3대 여행기로 일컬어지는 마로코 폴로와 이븐바투타
등이 이곳 항주를 방문하면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항주의 인구는 620만 명 정도로 알려져 있으며 시내지역은 180만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항주지역은 7세기에 건설한 운하에 의하여 번창하였으며 중국의 운명을 비극적으로 진행시킨 영국의 아편전쟁(1840년)의결과 난징조약(1842년)으로 상해가 개방되자 번영을 빼앗기게 되었으나 오늘날 절강성의 성도이며 중국7대 고도 중의 하나이며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용정차와 비단 장수 왕서방의 발상지 이기도하다.
특히 중국 정권 수립 후 황폐해진 절강성의 명소인 서호(西湖)를 5년동안 대대적인 정비를 하여 오늘날의 대공원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서호는 중국의 4대 미인인 양귀비와 더불어 오월동주의 주인공인 월나라 미인인 서시(西施)를 소동파가 비유하면서 불려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직지와 관계가 있는 석옥청공의 주석처 가 서호의 서북족의 비래봉 근처에 위치를 하고 있다.항주 영은사는 동진 시대(서기326년)부터 1천6백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직지심체요절과도 600년 정도 인연이 있다고 생각한다.
향후 영은사(靈隱寺)의 탐험을 위하여 간단히 소개를 하겠다.
직지탐험은 작은 흔적과 작은 글귀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기본적인 지식에 충실해야 하며 그것을 통하여 유추를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은사(링인쓰)에 관한 다음의 내용을 살펴보자
항주(杭州)는 절강성(浙江省)의 성도로 옛날에는 전당(錢塘), 임안(臨安)으로 불렀으며 중국 6대 문화의 고도(古都)로 칭한다. 영은사(靈隱寺)는 중국의 선종(禪宗) 10대 사찰중의 하나다. 아름다운 서호에서 북쪽으로 3km 떨어져 있는 북고봉(北高峰)의 남쪽 기슭에 있다. 동진시대 인도의 승려 혜리(慧理)가 창시했으며, 오나라 때는 9루, 18각, 72전에 3천여명의 승려가 있는 커다란 절이었다. 입구에 '지척서천(咫尺西天)'이란 글씨가 크게 써있는데 극락이 지척에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이 문자를 보고 지척 직지(咫尺 直指)를 생각했다. 여기에는 백운화상의 스승인 석옥청공 스님이 10년 정도 주지직을 수행한 곳이며 멀리는 신라왕자의 신분으로 구화산의 살아있는 전설인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추앙받는 김지장스님이 오백나한전에 가장 중요한 인물로 모셔져있는 아주 귀한 사찰이다. 그리고 항주 서호 근처에 고려시대 고승인 대각국사의 의천스님과 인연이 깊은 고려사가 복원되고 있는 공간이 기도 하다.
이곳 영은사는 사천지방 안악(安岳)의 와불(臥佛)이라던가, 용문석굴(龍門石窟), 운강석굴(雲岡石窟) 등이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다. 조금 더 둘어가면 비래봉(飛來峰)이란 동굴이 나오는데 동굴속에 338개의 부처들이 조각 되어 있다. 모든 것이 신비에 가까울 정도로 잘 조각되어 있었으나, 문화대혁명 시기에 많이 파손되었다고 한다.
영은사에는 영은사(靈隱寺)라는 글자가 없고, 운림선사(雲林禪寺)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그것은 청나라 강희(康熙) 황제가 친히 영은사를 쓰려다가 비 우(雨)자를 너무 크게 써 령(靈)자를 못 쓰고 운(雲)자로 쓰면서 운림선사로 했다는 일설이 있다. 바로 들어가면 천왕전이 있다. 그 안에 송나라시대 만들어진 위태천보살상(韋 天菩薩像)이 있고, 대웅전내에 황금색으로 만들어진 석가모니좌상이 자그마치 19.6m나 되며, 대웅전의 높이는 33.6m에 이르는 웅장한 건물이다.
(항주 영은사,백운화상,석옥청공,김지장,무상선사,직지장등 유적이있다.)
석가모니상 뒤편으로 많은 불상들이 모셔져 있는데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끈 불상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신라시대 김교각스님인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다. 원래 김교각스님은 신라의 성덕왕의 장남으로 태어나 왕위를 버리고 중국 안휘성(安徽省) 구화산(九華山)으로 들어와 수도를 했다. 서기 719년 그의 나이 24세였다.
김교각 스님은 99세까지 살아 그가 죽은 후 3년 동안 시신이 썩지 않아 등신불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아직도 구화산에서는 김교각스님의 등신불이 지장보살로 모셔져 있으며, 매년 음력 7월 30일을 김교각스님 탄생일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와같이 직지탐험에 영은사를 대단히 중요한 공간이다.
그 외에 절강대학교 도서관과 지역 대학 도서관, 지역사찰과
고서점등도 연구 대상이다. 일단은 절강성 호주지역과 항주
지역의 탐험을 통하여 직지탐험의 단서를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