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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물을 바침과 속죄, 화해, 그리고 추방이 가르치는 것들..
레위기 강해에서
지은이 : Henry Maclagan
옮긴이 : 배제형
레위기 16장 1-34
1. 아론의 두 아들이 주님 앞에 나갔다가 죽은 일이 있었는데
그들이 죽은 다음,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 그 때 주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은 이러하였다.
너는 너의 형 아론에게, 죽지 않으려거든 보통 때는 성소 휘장 안쪽
법궤 위에 있는 속죄소 앞으로 나가지 말라고 일러주어라.
속죄소는 내가 구름 속에서 나타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3. 아론은 성소에 들어가려면 소떼 가운데서 황소 한 마리를
속죄 제물로 바쳐야 하고, 숫양 한 마리를 번제물로 바쳐야 한다.
4. 그는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속바지를 몸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써야 한다.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입어야 한다.
5 그런 다음에야 이스라엘 백성의 회중이 속죄 제물로 바치는 숫염소
두 마리와 번제물로 바치는 숫양 한 마리를 받을 수 있다.
6. 아론은 자신을 위한 속죄 제물로 황소를 드려
자기의 죄와 자기 집안의 죄를 속죄하여야 한다.
7. 그리고 숫염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회막(만남의 장막) 문간, 주님 앞에 세워놓고
8. 숫염소 두 마리 가운데서 제비를 뽑되,
한 마리는 주님을 위해 다른 한 마리는 아사셀을 위해 해야 한다.
9. 아론은 주님을 위해 뽑힌 숫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리고
10. 아사셀을 위해 뽑힌 숫염소는 산채로 주님 앞에 세워두었다가
속죄 제물로 삼아 아사셀을 위해 그를 광야로 보내야 한다.
11. 아론은 자신을 위한 속죄 제물로 황소를 끌어다가
자기와 자기집안의 죄를 속죄하여야 한다.
그는 먼저 속죄제물이 될 황소를 죽인 다음
12. 주님 앞 제단에서 숯불을 향로에 담고 향기 좋은 향 가루를
두 손으로 가득 떠가지고 휘장 안으로 들어가서
13. 그 향을 주님 앞에서 숯불에 피우고 향기로 증거궤 위에 있는
속죄소를 덮어야 한다. 그래야 죽지 아니 할 것이다.
14. 그런 다음에 그는 황소의 피를 얼마쯤 가져다가
손가락에 찍어 동쪽 속죄소 위에 뿌리고,
또 그 피를 손가락에 찍어 일곱 번 속죄소 앞에 뿌려야 한다.
15. 이어서 속죄 제물로 바치는 백성의 숫염소를 죽여
그 피를 휘장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 황소 피를 뿌렸던 때와
같은 식으로,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려야 한다.
16.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의 범법,
심지어 그들의 모든 죄까지
이것들 때문에 성소를 위하여 속죄해야 하고
또 부정한 그들의 가운데 있는 회막을 위해서도 그같이 해야 한다.
17. 그가 성소에 속죄하러 들어가서
자기와 그의 집안과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고
나오기까지 누구든지 회막 안에 있어서는 안 된다.
18. 그리고 나서 주님 앞에 있는 제단으로 나와
그것을 위해 속죄해야 한다.
먼저 그는 황소 피와 숫염소 피를 가져다가
제단 뿔들 위에 두루 바르고
19. 그리고 그 피를 손가락에 찍어 일곱 번 제단에 뿌려야 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부정을 벗겨,
제단을 정하게 하고 거룩하게 해야 한다.
20. 그는 성소와 회막과 제단에 대한 속죄를 끝내고는
살려 둔 숫염소를 끌고 와야 한다.
21. 아론은 그의 두 손을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얹어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불의와 그들의 모든 범법들,
심지어 그들의 모든 죄까지 고백하고는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의 손에 의해 광야(wilderness)로 보내야 한다.
22. 그 염소는 그들의 모든 불의를 모두 지고
황무지(a solitary land)로 나가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로 보내야 한다.
23. 그 후 아론은 회막으로 들어오는데,
성소에 들어갈 때 입었던 세마포 옷을 벗어 거기 두고
24. 성소에서 자신을 물로 목욕한 다음,
그 옷을 다시 입고 나와 자기의 번제물과 백성의 번제물을 바쳐
자신과 백성의 죄를 벗겨야 한다.
25. 그는 그 속죄 제물의 기름기를 제단에서 살라야 한다.
26. 아사셀을 위해 염소를 보낸 사람도 옷을 빨아 입고 목욕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그는 진지로 들어올 수 있다.
27. 이렇게 속죄 제물로 드린 황소와 염소의 피를
성소에 가져다가 속죄하고 나서
그 가죽과 살코기와 똥은
모두 진지 밖으로 내어가서 함께 불로 태워야 한다.
28. 그것들을 태운 사람도 옷을 빨아 입고 목욕을 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진지로 들어 올 수 있다.
29. 이것은 너희가 지킬 영원한 규례다.
일곱째 달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너희 영혼을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렇게 해야 한다.
30. 그 날에 제사장이 너희를 속죄하여 깨끗케 할 것이므로
너희는 주님 앞에서 너희의 모든 죄로부터 깨끗해질 것이다.
31. 이것은 사람이 철저히 쉬어야 하는 안식일이고
그의 영혼을 괴롭게 하는 것이며 영원히 지킬 규례이다.
32. 기름 부음을 받고 아버지를 대신하여 제사장으로 성별된 제사장이
속죄를 행하고 세마포 옷, 곧 거룩한 옷을 입고
33.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속죄하고
또 제사장들과 온 백성의 회중을 위해 속죄해야 한다.
34.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 때문에
일 년에 한 번씩 속죄해야 한다.
이것이 너희가 지킬 영원한 규례이다.
모세는 주께서 명하신 대로 하였다.
전체적 설명
본 장은 ‘전형적인 속죄(Atonement)에 관한 장’이라 할 수 있고
따라서 실제적으로 적용할 가치가 충분히 있으며
그 시작부터 우리를 위한 교훈이 있다.
계시는 교회에 속한 사람에게 계속 되지만
그것은 인간의 상태에 상당히 좌우된다.
우리 가운데 항상 말씀이 있다는 것은 절대적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친숙한 진리들을
언제나 같은 관점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우리는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이
‘단순히 외적일 뿐인 예배’의 거부(rejection)를
표징 한다는 것을 보았다.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다면 언제든지
영적 대기는 더 맑아지고 천국의 태양이 우리 위를 비추이며
우리가 이전에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옛 진리조차
새로운 빛으로 보게 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우리는 아주 풍성한 진리들을 우리 마음에 저장하기 위해
지적 수단을 동원해 노력할 수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한 형식주의(externalism)에서 벗어날 때만이
비로소 그들의 영광을 깨닫게 된다.
아마 우리도 때로 그러하지만,
그때 잘못된 것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주님을 예배함에 옳은 것을 유지한다면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새 계시(밝히 알게 해주심)를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Do not let us be afraid then, as perhaps we sometimes are,
of rejecting what is wrong ;
while we retain what is right in our worship of the Lord,
for thereby we shall have a new revelation.)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자.
오늘 본문에서 아론은 선의 한 상태를 표징 하지만
그것은 그 자체보다 더 높은 신성한 진리에 의해 조명된,
상대적으로 외적인 선이다.
(Now Aaron here represents a state of good, but it is relatively
external good enlightened by Divine Truth higher than itself.)
그리고 이상하게 들리겠으나
진리는 이러한 (외적인) 선을 우선적으로 가르친다는 것,
그리고 진리는 한 순간에 가장 내적인 것들에 들어가
그들 안에, 즉 그들의 모든 상태 안에 남아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참된 진리인 것은
우리의 영적인 집은
그 기초와 아래층들이 먼저 잘 쌓여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적인 삶을 선하게 살 수 있어야
영적인 삶도 선하게 살 수 있다.
또 구름과도 같은 자연적인 진리들을 먼저 배워야
그들의 영광 속에 있는 영적인 진리들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성소로(the holy place) 의미되는
이 더 고결한(higher) 삶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확실한 방법은
회개의 노력과, 모든 애정을 주님을 섬기는데 바치는 것,
그리고 말씀 속 모든 귀중한 진리들을,
조명된 지성과 결합한 사랑의 상호 유대에 의해 부여된
올바른 질서와 종속관계에 따라 합당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먼저 안쪽에서 선으로부터 이루어지고,
그 다음 바깥쪽에서 진리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Surely by the work of repentance, and by the devotion
of all the affections to the service of the Lord,
and by making a proper use of all the precious truths of the Word
in due order and subordination by means of the common bond
of love combined with an enlightened intelligence.
And this must be done first internally from good
and then externally from truth.)
이것이 우리가 소개하는 서론의 전반부로,
이로써 우리는 우리가 깨닫기 원하는 것을 지각하고
미리 약간 맛보는 입문의 상태로 안내된다.
그리고 후반부에서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는데
한편으로 우리의 시선은 ‘염소 두 마리’에 쏠리게 되고
왜 거기 둘이어야 하는지, 그럼에도 제사장의 경우는
왜 숫양 한 마리뿐인지 의아하다.
속죄 제물로,
백성을 위해서는 염소 두 마리가,
제사장을 위해서는 황소 한 마리가 요구되지만
번제물로는 각각 숫양 한 마리가 요구된다.
여기서 생각을 멈추고 과거 우리가 진지하게 배웠던
그때로 기억을 되돌려 보자.
“하늘의 어린양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든 죄를 지고 가셨다.”
(Christ the heavenly lamb bore all our sins away)
이 말이 뜻하는 것은
그분은 십자가에서 대속 제물이 되심으로
모든 인류를 위해 속죄를 이루셨고,
실제로 그들 대신 죽음을 당함으로써
사람들이 받아야할 징벌을 받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참으로 의아한 것은
그분이 어찌 세상 죄를 없애시는(take away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불리셨는가 하는 것과,
또 그럼에도 속죄에 관한 본문의 이 중요한 장을 보면
어찌 어린양이 아닌 염소 두 마리가 부각되어 그려지는가에 대해서다.
그리고 이것 외에 이 오래된 비유(old comparison)를 살펴볼 때
어찌 주님을 위해 제비 뽑힌 염소는 속죄 제물로 바쳐지고
아사셀을 위해 뽑힌 염소는 산채로 광야에 보내졌는지도 의아하다.
더 주목해 볼 것은
속죄가 죽임을 당한 황소와 염소의 피를 뿌림으로 이루어진 반면
아사셀을 위한 염소에 관하여는
속죄가 그 염소로 이루어졌다고만 언급되어 있다.
(while concerning the goat for Azazel it is only said atonement
was made for him, or over him (R.V.), or with him (A.V.))
이 사항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하자.
아주 흔한 견해로, 제물이 된 동물은
인류를 위해 징벌을 대신 짊어지심으로 십자가 위에서
제물이 되신 주님을 표징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 깊게 생각해 보면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는데
그 이유는 번제물들은 주님께 향기로운 냄새(a sweet savor),
또는 안식의 향기(an odour of rest)라고 불리고,
제물은 그분의 고기(His meat)라고 불리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속죄 제물은 더없이 거룩하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이런 생각들로부터 명백해지는 것은
그것들이 죄에 대한 징벌을 표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바울이 “우리의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 제물이 되셨으므로.. 유월절을 지킵시다.”(고린도전 5:7-8)
(Christ our passover is sacrificed for us; therefore let us
keep the feast) 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번제물이나 제물들은 오히려 인간이 지닌 최고의 애정들을
주님께 바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하고,
따라서 하느님의 어린양은 성별되어 주님 안의 신성과 하나가 되신
그분의 인성으로 간주되어야 하는 것이 얼마나 더 합리적인가?
사실 어린양은 그것의 순진 안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천적 선을,
그리고 주님 안에서 신성한 선 또는 신성한 인간을 나타내며,
이 신성한 인간은
악의 절대적인 힘으로부터 모든 인류를 구속하셨고,
그분을 향한 믿음과 사랑으로 거듭남을 통해 악을 제거하고자 하는
모든 개인에게서 악을 제거하신다.(remove)
그러므로 주 예수는 결코 다른 방법이 아닌 위와 같은 방법으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진정한 어린양이시다.
그런데 왜 오늘 본문에서는 주님이 어린양으로 표징 되지 않고
황소나 두 염소로 표징 되었을까?
그 이유는 어린 양만으로는 잘 표징 될 수 없는
신성한 진리의 특정 사항들이 여기 설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과 관련하여 황소와 염소 두 마리가 있었던 것은
그분의 내적, 외적인 것에 있어서,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받은, 전적으로 거부된 인성에 있어서
주님의 자연적인 것이 영광스럽게 되었다는 의미가
부여되도록 하기 위함인 반면
번제물인 숫양에 의해서는 영적인 것이 나타내졌다.
(There was a bullock and two goats in order that,
with regard to the Lord, the glorification of the Natural might be
signified, as to its Internal, as to its External, and as to the
Human derived from the mother which was entirely rejected;
while by the ram for a burnt offering was denoted the Spiritual.)
그리고 이 모든 것은 A.E 703-13 에 더 잘 나타나는데
이는 사람의 거듭남이 주님의 영광화의 형상
(an image of the Lord's glorification)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물로 바쳐진 어린양, 숫양, 황소, 염소의 경우에서
우리는 주님의 영화하신 인성이
가장 높은 등차(degree)에서 가장 낮은 등차에 이르기까지
말씀 안에서 어떻게 표징 되고 있는지를 보게 될 것이고
그리고 염소 두 마리의 의미에서는
주님과 같은 방법으로 완전히 거듭난 사람의 선한 애정이
어떻게 표징 되고 있는지를
가장 납득할만한 방식으로 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속죄 제물의 경우까지 포함해서 제물로 바쳐진 동물들이
형벌 받는 희생양(victim)을 표징하고 또 의미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지를 알게 해준다.
이제 이 사항은 모든 죄를 정결케 하는 주님의 피에 대해,
그리고 성막과 회막(만남의 장막)의 여러 부분에
연속적으로 뿌려지는 피에 대해 공부하도록 우리를 끌어간다.
우선 후자를 먼저 거론해 보자.
그러나 그 전에 먼저 한 예비 단계가 우리의 주목을 받는다.
그것은 제단에서 불을, 그리고 향기로운 향을 취한 뒤에
휘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다.
그것이 보여주는 것은
인간이 가장 깊은 선을 지각할 수 있기 전
그는 거듭나는 과정 중에 미리 선과 진리를 영접해서
준비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이러한 지각을 가질 때 이 지각 자체는
선과 진리에 대한 상대적으로 외적이고 모호한 결합을 구성하고
그 후에야 모든 면에서 완전한 결합이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준비시키기 위해 가끔 있는
이러한 경험에 대해 주님께 감사하자.
그 기억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자극이 되고
우리를 완전한 상태의 미래를 위한 즐거운 기대로
가득 채울 것이다.
또한 이와 관련된 가르침으로
우리는 천국적 삶을 ‘단계적으로’ 실현하도록 인도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영적인 상해나 죽음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왜 그런가 하면 물론 선이나 진리, 또는 주님이
우리를 파괴하거나 상함을 입히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악이나 오류에 대한
우리 자신의 상태가 그 해악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참조사항에 따르면
주님의 피는 그분으로부터 오는 신성한 진리를,
그분의 살은 신성한 선을 의미하고
따라서 이 둘은 주님의 생명을 나타낸다.
이러므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분명히 너희에게 말하지만 나의 살을 먹지 않고 나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이 없다.”(요한 6:53)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의 몸값(ransom)을 치르기 위해 내 생명마저 주려고 왔다.”
(마태 20:28)
이 두 절을 한데 묶어 보면,
인간은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받음으로
영적 자양분을 얻게 될 뿐 아니라 악에서 해방되고
같은 말로서 죄에서 깨끗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계시록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님의 실제적 죽음이나 육체적으로 당하신 고통,
심지어 지옥의 모든 권세와 치른 영적 싸움, 곧 그분의 시험들까지
이것들이 각 개인을 죄로부터 깨끗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크게 속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시험과 시험에서의 승리를 하나의 수단으로
인류 전체를 악의 절대적 권세로부터 영원히 해방시키셨고
이것이 구속의 과업(the work of Redemption)이다.
반면에 이 위대한 과업의 결과,
구체적인 용어로는 “사람의 아들”을 뜻하는 말씀의 진리를 수단으로
먼저 그의 삶을 바깥쪽으로 깨끗케 하는 모든 사람은
이로 인해 살과 피로, 또는 성만찬의 빵과 포도주로 의미되는
선함과 진리라는 주님의 생명을 받으며
이것으로부터 그의 삶의 모든 차원(degrees)에 주님과 결합을 가진다.
그 이유는 제물이 된 동물의 피를 뿌리는 것이 뜻하는
진리와 선의 결합이 그에게서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속죄(Atonement)라는 위대한 과업을 이루는데
이 속죄는 가장 높은 의미에서는 주님 안에서
신성이 인성과, 그리고 인성이 신성과 상호 결합하는 것이고,
낮은 의미에서는 주님이 인간과, 그리고 인간이 주님과
상호 결합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주님께서 당신의 영화에 의해
인성을 신성으로 만드셨던 것과 꼭 같이
거듭남으로 천사가 된 인간의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결합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제물로 바쳐진 동물의 피를
회막(the tent of meeting, 만남의 장막)의 모든 부분에 뿌림으로
속죄하는 이 의식의 온전한 의미를 본다.
그러나 아직 더 생각해 보아야 할 요점이 있다.
이 의식 후 아사셀을 위한 염소로 속죄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왜 의식 자체는 매년 특정 날짜에 한 번만 열렸을까?
우리는 참된 속죄 또는 화해가
(reconciliation, 고후 5:19) 무엇으로 구성되었는지,
즉 그것은 악으로부터의 구원과
주님으로부터 선을 받는 것에 있음을 보았다.
그렇다면 추방(dismissal) 의식은 어떤 것과 관련 있을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이 거듭난 후, 그리하여 천국 바로 그 안에서까지
여전히 그를 악으로부터 보호하고
선 안에 지켜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신성한 인간에게서 비롯된,
그 사람 안에 널리 퍼져 각인된(fixed) 선의 상태를 통한
가장 강력한 영향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and this by an all-powerful influence through the prevailing
and fixed state of good in which he is from the Divine Human;)
왜냐하면 이것은 악을 항상 제자리에 억제시키고
악이 조금이나마 우세해지는 것을 막아주어 각자 저 나름대로
선용의 삶을 누리도록 영원히 지켜주는 큰 힘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최상의 의미에서 항상 준비되어 있는 자,
곧 천국에서는 천사 그 자신이고
거듭나고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이것이 그가 지닌 선과 진리의
강하고 각인된 원리로서 나타난다.
이상에서 살핀 내용은
염소 추방에 뒤따르는 반복적 씻음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되어 지는데
천국에서 주님은 천사들을 계속적으로 더욱 더 깨끗해지게 하시고
지상의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자신의 영적 번제물을 바치는
신실한 예배자를 안팎으로 깨끗하게 해주신다.
마지막으로 속죄의 날이
매년 한번씩, 일곱째 달, 안식일인 그 달의 열 번째 날이어야
하는 이유는 참조사항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인간의 정화는 영원하다.
그것은 신앙과 이타애라는 거룩한 상태를 가져오고
쉼과 평화라는 영원한 안식을 이루게 한다.
그 이유는 천국에서는 모든 영적 전투가 그치고
각 천사들은 스스로 하듯 계속해서 자유롭게 행동한다는 사실로부터
필요한 어느 정도의 지속적인 정화만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지상의 저녁과 아침, 봄과 여름에 상응되는
다양한 상태들을 통과하고 이런 변화를 수단으로
그는 유한성의 상태에서 분리할 수 없는 약간의 불완전에서조차
영구적으로 더욱 더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because in heaven all spiritual conflicts have ceased,
and there is only that kind of continual purification
which is necessary from the facts that each angel continues to act
freely as from himself ;
that he passes through a variety of states corresponding to
evening and morning, and spring and summer on earth;
and that by these changes he becomes perpetually more and more
free from the slight imperfections inseparable from a state of finiteness.)
각 구절별 상세한 영적 의미와 참조사항
1-4절 요약
인간이 단지 외적일 뿐인 예배를 거부할 때
가장 깊은 선의 나타남에 관한 주님의 계시가 있다.
즉 그 계시는 인간이 외적, 내적으로 악을 제거하고
주님께 헌신하며 진리를 수단삼음으로써만
가장 깊은 선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1. 아론의 두 아들이 주님 앞에 나갔다가 죽은 일이 있었는데
그들이 죽은 다음,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은
신성한 진리에 의한 계시(밝히 알게 하심)를 뜻하고
아론의 두 아들의 죽음은 내적인 것이 없는,
자아 사랑과 세상 사랑에서 비롯된 외적 예배의
폐지(abolish)를 뜻한다.
그리고 이기적인 사랑만으로 주님 앞에 가까이 가는 것은
위선적이고 모독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이러한 이유로 이상한 불을 바치는 것으로 불린다.
1. 세상 사랑과 자아 사랑에서 비롯된, 내적인 것이 없는 외적 예배는
위선적이고 모독적이기 때문에 폐지되고
그때 신성한 진리에 의한 주님의 계시가 있다.
2. 그 때 주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은 이러하였다.
너는 너의 형 아론에게, 죽지 않으려거든 보통 때는 성소 휘장 안쪽
법궤 위에 있는 속죄소 앞으로 나가지 말라고 일러주어라.
속죄소는 내가 구름 속에서 나타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2. 주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심은
진리 가운데 있는 이들에 대한 계시를 뜻하고,
모세가 아론에게 말함은
선 안 있는 이들에 대한 계시를 뜻한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전자는 외적 계시를, 후자는 내적 계시를 뜻한다.
너의 형 아론은
진리에 대한 선의 관계를 뜻하고,
언제나 법궤 위에 있는 속죄소 앞 휘장 안의
성소에 들어가지 말라는 것은
교회의 어떤 상태에 있는 인간일지라도
그가 주님을 선으로부터 예배할 때 가장 내적인 천적 선에 대한
지각과 인식에 들어갈 수 없음을 뜻한다.
그 천적 선은 중간 매개의 선에 의해 영적 선과 구별되는 선이다.
(;not coming at all times into the holy place within the veil
before the mercy-seat which is upon the ark,
denotes that in the worship of the Lord from good, man cannot,
in every state of the church, enter into the perception and
realization of inmost good which is celestial,
and is distinguished from spiritual good by intermediate good,)
속죄소 앞이란 주님께서 현존하시는 곳을 뜻하는데
거기서 주님은 모든 예배를 듣고 받으시며 인간의 악을 제거하신다.
(속죄소가) 법궤 위에 있다는 것은
신성한 법을 그의 심정에 받아들이는 것을 뜻하고
그들이 죽지 않도록 이란
다가오는 경우 그가 멸해지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속죄소 위에서 구름 가운데 나타나실 것이란
주님께서는 여전히 그분 자신을 인간의 모호한 상태에서도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신성한 자비로부터 일어난다.
2. 그리고 이 계시는 외적이기도 하고 내적이기도 하다.
또 이 계시는 인간이 주님을 신성한 선으로부터 예배할 때
교회의 어떤 상태에 있는 인간일지라도 천적인 선, 즉 가장 내적인
선에 대한 지각과 인식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천적 선은 중간 매개의 선에 의해 영적 선과 구별되는데
주님은 이 중간 매개의 선 안에 계셔서 모든 예배를 듣고 받으시며
각 심정이 신성한 율법을 받아들임에 의해
인간에게서 악을 제거하신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위와 같이 하시지 않으면 인간이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님은 여전히 인간의 모호한(obscurity) 상태에서도
자신을 계시하시는데 이는 신성한 자비 덕분이다.
3. 아론은 성소에 들어가려면 소떼 가운데서 황소 한 마리를
속죄 제물로 바쳐야 하고, 숫양 한 마리를 번제물로 바쳐야 한다.
3. 이로써 아론이 성소에 들어간다는 것은
선 안에 있는 인간과 영화하심 중에 계신 주님 자신이
아래 방법들에 의해 그의 가장 내적인 생명으로
인도되는 것을 뜻한다.
즉, 속죄 제물로 젊은 황소 한 마리를 바치는 것은
겉 사람, 또는 자연적 등차 안에 있는 악을 깨끗케 하는 것을 뜻하고
또 번제물로 숫양 한 마리를 바치는 것은
속사람, 또는 영적 등차 안에 있는 악을 순진의 선에 의해
깨끗케 하는 것을 뜻하며
또 사랑의 선에서 비롯된 완전한 헌신을 뜻하기도 한다.
3. 선 안에 있는 인간과 영화하심 중에 계신 주님 자신은
아래 방법들에 의해 그의 가장 내적인 생명으로 인도된다.
즉, 그는 겉 사람, 또는 자연적 등차 안에 있는
악으로부터 깨끗해져야 하고
또 순진의 선에 의해 속사람, 또는 영적 등차 안에 있는
악으로부터 깨끗해져야 하며
그리고 영적 등차에서 그는 사랑의 선에서 비롯된
완전한 헌신에 의해 주님을 예배해야 한다.
4. 그는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속바지를 몸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써야 한다.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입어야 한다.
4. 지명된 옷들은 이러한 깨끗해짐이
선으로부터 온 진리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하는데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는 것은
외부의 자연적인 것에 속한 진리에 의해를 뜻하고,
세마포 속바지를 몸에 입는 것은
외부적으로 선과 진리의 결합에 대한 교리에 의해를 뜻하며,
세마포 띠를 띠는 것은
내부적으로 선과 진리가 결합하는 상호유대에 의해를 뜻하고,
세마포 관은 가장 깊은 진리의 총명에 의해를 뜻한다.
옷이 거룩하다는 것은
선과 결합된 진리들 또는 선을 지향하는 진리들을 뜻하고,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옷을 입으라는 것은
외적인 진리들을 삶에 적용함으로 회개의 일을 하는 것을 뜻한다.
4. 또한 그러한 깨끗해짐은 선으로부터 온 진리에 의해 이루어진다.
즉, 외부의 자연적인 것에 속한 진리에 의해,
외부적으로 선과 진리의 결합에 대한 교리에 의해,
내부적으로 선과 진리가 결합하는 상호유대에 의해,
그리고 가장 깊게는 진리의 총명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 이유는 이것들은
인간이 외적인 진리들을 삶에 적용함으로 회개의 일을 할 때
그를 순수하고 거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5-10절 요약
또 거기에는 주님을 인정함과 선택의 자유, 그리고 예배에 의해
외적으로 뿐 아니라 내적으로도 악의 제거가 있게 될 것이다.
5 그런 다음에야 이스라엘 백성의 회중이 속죄 제물로 바치는 숫염소
두 마리와 번제물로 바치는 숫양 한 마리를 받을 수 있다.
5. 이스라엘백성에게 속죄 제물로 숫염소 두 마리와
번제물로 숫양 한 마리를 받는 것은
신앙의 진리를 적용하여 악을 제거하고
이타애로부터 주님께 헌신함으로
겉 사람은 거짓에서 깨끗해져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5. ..
6. 아론은 자신을 위한 속죄 제물로 황소를 드려
자기의 죄와 자기 집안의 죄를 속죄하여야 한다.
6. 회중과 관련하여 아론은
외면에 있는 것과 관련하여 내면에 있는 것을 뜻한다.
그 이유는 아론은 선을, 회중은 진리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황소란 자연적인 것 안에 있는 순진의 선을 뜻하고,
속죄 제물이란 그 순진의 선을 통해 악의 제거를 위한 예배를 뜻한다.
아론이 자신과 자기 집안을 위해 속죄하는 것은
선과 진리 모두에서 자연적 인간이 영적 인간과
화해(reconciliation)하는 것을 뜻하는데
그 이유는 아론 자신은 선을,
그의 아들들은 가문을 구성하는 진리를 뜻하기 때문이다.
6. 그리고 내면의 자연적인 것은
선에서 오는 주님에 대한 인정을 통해 악을 제거함으로
깨끗해져야 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자연적 인간과 영적 인간의 화해가
선과 진리 양면에서 이루어진다.
7. 그리고 숫염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회막(만남의 장막) 문간, 주님 앞에 세워놓고
7. 아론이 염소 두 마리를 가져다가
회막 문간 주님 앞에 세워놓는다는 것은
그것에 의해 신앙의 진리들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천국을 통한 그분의 역사로 인정될 것을 뜻한다.
7. ..
8. 숫염소 두 마리 가운데서 제비를 뽑되,
한 마리는 주님을 위해 다른 한 마리는 아사셀을 위해 해야 한다.
8. 아론이 말한 제비를 뽑음은 신성한 섭리에 대한 의존을 뜻한다.
주님을 위한 제비 하나는
‘선에 대한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을,
아사셀에 대한 제비 하나는 아사셀이 “추방,dismissal"이란 뜻인바,
이는 ‘악에 대한 인간의 자유로운 거부’를 뜻한다.
인간이 선과 악, 따라서 참과 거짓 사이에서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즉 자유로운 선택을 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모세의 지시에 대한 아론의 복종과 관련이 있으면서 동시에
제비를 뽑는 것과 관련된 신성한 섭리에 대한 의존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because this is involved in the obedience of Aaron
to the instruction of Moses, dependence upon the Divine Providence
at the same time being involved in the casting of lots.)
인간이 삶의 모든 행동에서 선을 원리로 해서 행동할 경우
그는 신성한 섭리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시편 37:3참조)
8. 이는 신성한 섭리에 의해 인간은 선과 악 사이,
따라서 진리와 거짓 사이에서 스스로 선택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9. 아론은 주님을 위해 뽑힌 숫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리고
9. 아론이 주님을 위해 뽑힌 숫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리는 것은
인간이 선을 원리로 해서 주님을 예배함으로
악이 제거되고 거부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을 뜻한다.
9. ..
10. 아사셀을 위해 뽑힌 숫염소는 산채로 주님 앞에 세워두었다가
속죄 제물로 삼아 아사셀을 위해 그를 광야로 보내야 한다.
10. 아사셀을 위해 뽑힌 숫염소는 산채로 주님 앞에 세워둔다는 것은
인간은 그 자신이 참으로 악에서 온 거짓 안에 있음을
주님 앞에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고
속죄 제물로 삼아 아사셀을 위해 그를 광야로 보내는 것은
그래서 이러한 거짓이 완전히 거부됨에 의해
겉 사람이 속사람과 화해될 수 있다는 뜻이다.
10. ..
11-22절 요약
이 깨끗해짐의 전 과정이 더 세밀하게 기술되고 있다.
11. 아론은 자신을 위한 속죄 제물로 황소를 끌어다가
자기와 자기집안의 죄를 속죄하여야 한다.
그는 먼저 속죄제물이 될 황소를 죽인 다음
11. 아론이 자신을 위한 속죄 제물로 황소를 끌어온다는 것은
선 안에 있는 자는 무엇보다 먼저
그가 그 선을 주님으로부터 받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황소는 자연적인 것 안에 있는 순진의 선을 뜻하고,
속죄 제물은 이 순진의 선을 통해 악을 제거하기 위한 예배를 뜻하며,
아론이 자신과 자기 집안을 위해 속죄하는 것은
선과 진리 모든 측면에서, 또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자연적 인간과 영적 인간이 화해하는 것을 뜻한다.
그 이유는 아론 자신은 선을,
그의 집을 구성하는 그의 아들들이나 회중은
진리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속죄 제물로 황소를 죽이는 것은
주님을 예배하기 위한 준비를 뜻한다.
세심한 독자의 경우 이 11절이 6절의 반복이라는 것과
더불어 본 장의 10절까지는 전체에 대한 일반적인 서론이자
요약이라는 것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전체의 주제가
악과 거짓의 항구적 제거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적 의미에서의 요약이 보여주는 것은
이것이 주님에 의해 예견되고 준비된다는 것,
그리고 속사람, 더 엄밀히 말해 자연적 인간의 속사람은
거듭남이 시작될 때 잠재적으로 악에서 해방되고
그렇게 해서 끝까지 버틴다면
그는 악으로부터 어떤 시험이 수반된다고 해도
그 정도만큼 충분히 구원될 것이며,
이때 그 자신은 선이 우세해지는 상태로 진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and the summary, in the internal sense, shows that this is foreseen
and provided for by the Lord, and that the internal man,
or more strictly, the internal of the natural man,
is potentially delivered from evil when regeneration has commenced,
so that, if man perseveres to the end, he will be fully delivered
so far as any temptation from evil is implied,
when he is initiated or inaugurated into his own prevailing state of good.)
그러나 깨끗해짐(정화)은 천국 자체에서도 영원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거기서 계속되는 천국의 삶의 영원한 진보에도
관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11. 그러나 선 안에 있는 자는 무엇보다 먼저
그가 그 선을 주님으로부터 받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그것으로 인해 악이 제거되고
자연적 사람의 화해가
선에 관하여,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이루어지며
그리하여 그가 주님을 예배할 준비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12. 주님 앞 제단에서 숯불을 향로에 담고 향기 좋은 향 가루를
두 손으로 가득 떠가지고 휘장 안으로 들어가서
12. 주님 앞 제단에서 숯불로 가득 찬 향로를 취하는 것은
순수한 예배에서 주님으로부터 선을 받는 것을 뜻하는데,
이 선은 진리의 형태로 나타나며 그 그릇에 담겨있다.
(this good being embodied in truth and contained in its receptacle;)
향은 선에서 비롯된 예배에서
감사하며 수용할 수 있는 말씀으로부터 온 진리를 뜻하고,
향기 좋은 향 가루는
선 아래 신중하게 정렬된 차별화된 진리를 뜻하며,
휘장 안으로 향 가루를 가져가는 것은
그곳에서의 가장 내적인 선에 대한 지각을 뜻한다.
12. 주님으로부터 선을 받고
말씀으로부터 진리를 받음에 의해
그는 가장 내적인 선에 대한 지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진리는 예배에서 감사하며 수용할 수 있는 진리이며
선 아래 신중하게 정렬된 차별화된 진리이다.
(And then by the reception of good from the Lord,
and truth from the Word which is grateful and acceptable
In worship, and which is carefully arranged and distinguished
under good, he shall have a perception of inmost good.)
참고>
천비 5530 “(그들은 곡식자루를 비우다가) 각 사람의 자루에
각자가 치른 그 은 묶음이 그대로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창 42:35
.. 묶음이 질서 있는 배치(setting in order)를 뜻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는 진리들은 시리즈로 배열되고 정해지기
(disposed and ordered) 때문이다.
그의 사랑들과 일치하는 것들은 중앙에 존재하고
덜 일치하는 것들은 약간 양쪽 언저리에 존재하며
마지막으로 전혀 일치하지 않는 것들은 가장 바깥주변에 존재한다.
이 시리즈의 바깥쪽에는 그 사랑에 반대되는 것들이 있다.
따라서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것들은 혈연관계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사랑이 혈연관계를 낳기 때문이고
그 관계에서 더 멀리 떨어진 것들은 인척관계며
가장 궁극의 변방에 있는 것들은 그 관계가 사라진다.
사람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이런 시리즈로 배열되며 묶음은 이것을 가리킨다.
2) .. 자아애나 세간애에 빠져 있는 자들에게서는
이런 부류의 사랑을 강하게 선호하며 그것에 끌리는 것들은
중앙에 자리 잡고
보다 약하게 선호하며 끌리는 것들은 주변이나 언저리에 있고
그런 사랑들에 반대되는 것들, 예컨대 하나님 사랑이나 이웃사랑에
관계되는 것들은 변방으로 쫓겨나 있다.
이러한 상태에 있는 것들이 바로 지옥적인 것이다. ..
5531 “(은 묶음이) 그의 자루에 있었다.”
이 말씀은 (은 묶음이) 각각의 수용그릇 안에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수용그릇을 가리키는 자루의 뜻에서 잘 알 수 있다.
여기서 수용그릇이 가리키는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
사람의 자연적인 것은 여러 그릇들로 나뉜다.
그리고 그 각각의 그릇에는 일반적인 것들이 들어있는데
그 일반적인 것 안에는
덜 일반적인 것들이, 또는 상대적으로 특정한 것들이,
그리고 이것들 안에 상세한 것들이 질서 있게 배치되어 있다.
(Man’s natural is divided into receptacles; and in each receptacle
is some general thing, in which things less general
or relatively particular are set in order, and in these single things.)
그러한 각각의 일반적인 것들은
그것의 특정한 것들, 그리고 상세한 것들과 함께
그 자신의 그릇을 가지고 있으며
그 그릇 안에서 그것은
작용하거나 형태를 바꾸고 또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다.
거듭난 사람에게는 이러한 수용그릇이
그 안에 있는 일반적인 진리의 수만큼 존재하고
각각의 수용그릇은 천계에 있는 어떤 사회와 상응한다.
사랑의 선 안에 있고 이로부터 신앙의 진리 안에 있는 사람은
이와 같은 질서 있는 배치를 가진다. ..
13. (아론은) 그 향을 주님 앞에서 숯불에 피우고
향기로 증거궤 위에 있는 속죄소를 덮어야 한다.
그래야 죽지 아니 할 것이다.
13. 아론은 신성한 선을 뜻하고,
불 위에 향을 피우는 것은 진리가 선과 결합하는 것을 뜻하며,
향의 연기(cloud)로 속죄소를 덮는 것은
신성한 사랑과 자비가 예배자의 상태에 따라
외관에 희미하게 나타나는 것을 뜻한다.
또 증거궤 위에 있는 속죄소는
신성한 사랑이 말씀의 진리로 유입하는 것을 뜻하고,
죽지 않는다는 것은 신성한 사랑이 너무 충만하게 나타난 후에
영적 죽음이 뒤따르지 않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13. 그리고 또한 신성한 선으로부터
진리와 선의 결합이 일어날 것이며
따라서 신성한 사랑과 자비가 예배자의 상태에 따라
외관에 희미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신성한 사랑이 너무 충만하게 나타난 후에
영적 죽음이 뒤따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14. 그런 다음에 그는 황소의 피를 얼마쯤 가져다가
손가락에 찍어 동쪽 속죄소 위에 뿌리고,
또 그 피를 손가락에 찍어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려야 한다.
14. 황소의 피는 깨끗해진 자연적 선으로부터의 온 진리를 뜻하고,
그 피를 뿌리는 것은 결합을 뜻하며,
동쪽에 있는 속죄소 위에는
신성한 선으로부터 나오는 신성한 진리에를 뜻하고
(자연적 선으로부터의 온 진리가 신성한 진리에
결합하는 것을 뜻하고)
손가락은 능력을 뜻한다.
그것이 자연적 인간 안에서 행해지는 것으로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황소의 피였기 때문이다.
속죄소 앞에 일곱 번은
주님으로부터 거듭남에 의해 얻은 거룩한 상태로부터를 뜻한다.
14. 그리고 또한 깨끗해진 자연적 선으로부터 온 진리는
신성한 선으로부터 나오는 신성한 진리와 결합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주님으로부터 거듭남에 의해 얻은 거룩한 상태로부터,
자연적 인간 안에 능력으로 행해질 것이다.
15. 이어서 속죄 제물로 바치는 백성의 숫염소를 죽여
그 피를 휘장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 황소 피를 뿌렸던 때와
같은 식으로,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려야 한다.
15. 그가 백성을 위한 속죄물로 숫염소를 죽이는 것은
자연적 인간의 겉 사람이나, 신앙의 선 안에 있는 자는
똑같은 방식으로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고,
그 피를 휘장 안으로 가져가는 것은
이 선에 속한 진리도 마찬가지로 천적인 선에 의해
주님으로부터 있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상태에 적응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피를 뿌림은
그것이 내적, 외적으로 결합되어야 하는 것을 뜻한다.
15. 또한 자연적 인간의 겉 사람이나, 신앙의 선 안에 있는 자도
똑같은 방식으로 준비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이 선에 속한 진리도
마찬가지로 천적인 선에 의해 주님으로부터 있기 때문에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그것에 결합되어야 한다.
16.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의 범법,
심지어 그들의 모든 죄까지
이것들 때문에 성소를 위하여 속죄해야 하고
또 부정한 그들의 가운데 있는 회막을 위해서도 그같이 해야 한다.
16. 성소를 위하여 속죄한다는 것은
참으로 천적인 선과 그 선 안에 있는 이들조차
신성한 선과 화해해야(reconcile)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의 범법 때문에,
심지어 그들의 모든 죄까지 라는 것은
인간 그 자신은 겉과 속 모두에서 불순하고
악 밖에 없다는 것을 뜻하고,
부정의 한 가운데 있는 회막을 위해서도 이를 행해야 한다는 것은
인간은 자신에게 악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함으로
인간의 가장 깊은 것에서부터 가장 낮은 것에 이르기까지
주님이 인간과 함께 하시도록 하기 위해
영적 선 안에 있는 이들, 또는 자연적 선 안에 있는 이들에게도
화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16. 참으로, 천적 선이라 해도, 또는 이 선 안에 있는 이들이라 해도
반드시 신성한 선과 화해되어야 하는 이유는
인간 그 자신은 겉과 속 모두에서 불순하고 악 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영적 선, 또는 그 선 안에 있는 이들이나
자연적 선 또는 그 선 안에 있는 이들도 화해되어야 하는데
이는 인간은 자신에게 악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함으로
인간의 가장 깊은 것에서부터 가장 낮은 것에 이르기까지
주님이 인간과 함께 하시도록 하기 위해서다.
17. 그가 지성소에 속죄하러 들어가서
자기와 그의 집안과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고
나오기까지 누구든지 회막 안에 있어서는 안 된다.
17. 아론이 지성소에 들어갔을 때
아무도 회막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인간이 가장 내적인 선으로부터 주님께 드리는 예배는
악과 거짓의 섞임이 조금도 없이
오직 자기 스스로 하듯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자신과 자기 집안과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해 속죄하는 것은
가장 내적인 선, 내면의 선, 가장 외적인 선에 관해
인간의 생명이 주님의 생명과 화해하는 것을 뜻한다.
17. 그럼에도 진실로 그의 생명이 주님의 생명과 화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내적인 선으로부터 주님께 드리는 인간의 예배는
악과 거짓의 섞임이 조금도 없이 오직 자기 스스로 하듯
가장 내적인 선, 내면의 선, 가장 외적인 선으로 드려져야 한다.
18. 그리고 나서 주님 앞에 있는 제단으로 나와
그것을 위해 속죄해야 한다.
먼저 그는 황소 피와 숫염소 피를 가져다가
제단 뿔들 위에 두루 바르고
18. 아론이 주님 앞에 있는 제단으로 나아가는 것은
신성한 선으로부터 천적 선이
인간의 최말단에까지 내려와 유입될 것을 뜻하고,
(제단을 위해) 속죄하는 것은
겉 사람과 속사람의 화해를 뜻한다.
그리고 황소 피와 숫염소 피를 가져다가
제단 뿔들 위에 두루 바르는 것은
거룩한 예배 안에서 진리와 선의 결합이
말씀의 글자적 의미 안에 있는 신성한 진리에 의해
충만함과 능력을 가지고 상호 호혜적으로 이루어질 것을 뜻한다.
여기서 “말씀의 글자적 의미 안에 있는 신성한 진리에 의해
충만함과 능력을 가지고” 라고 말한 이유는
네 모퉁이에 있는 제단에는
완전함을 뜻하는 네 개의 뿔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성한 진리는 말씀의 글자적 의미 안에서 완전하고 충만하다.
18. 위 결과로 해서 신성한 선으로부터 천적 선이
인간의 최말단에까지 내려와 유입될 것이고,
거룩한 예배 안에서 진리와 선의 결합이
말씀의 글자적 의미 속의 신성한 진리에 의해
충만함과 능력을 가지고 상호 호혜적으로 거기서 이루어질 것이다.
19. 그리고 그 피를 손가락에 찍어 일곱 번 제단에 뿌려야 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부정을 벗겨,
제단을 정하게 하고 거룩하게 해야 한다.
19. 손가락으로 제단에 피를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백성의 부정에서 그 제단을 정결하고 거룩하게 하는 것은
거듭남의 거룩한 상태에 있는 인간이
그의 상태에 따라 능력을 행사하고 깨끗케 하며 예배함으로써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 있는 교인이
이끌리기 쉬운 모든 불순함으로부터의 구원이
실제로 성취된다는 것을 뜻한다.
19. ..
20. 그는 성소와 회막과 제단에 대한 속죄를 끝내고는
살려 둔 숫염소를 끌고 와야 한다.
20. 성소와 회막과 제단에 대한 속죄를 끝내고
살려 둔 숫염소를 끌고 와야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속사람, 내면의 사람, 그리고 겉 사람이
주님과의 화해로 거듭나는 상태가 충분히 완성되어질 때,
자연적 사람에게는 지옥에서 온 악으로부터 거짓이 유입되어
그 자신이 얼마나 악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그는 주님 앞에 인정하게 된다는 뜻이다.
20. ..
21. 아론은 그의 두 손을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얹어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불의와 그들의 모든 범법들,
심지어 그들의 모든 죄까지 고백하고는
그 죄들을 염소의 머리 위에 두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의 손에 의해 광야(wilderness)로 보내야 한다.
21. 아론이 살아있는 염소의 머리 위에 두 손을 얹은 것은
인간이 그의 가장 내적인 선의 상태로부터
의지와 이해의 모든 힘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을 뜻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불의와 그들의 모든 범법들,
심지어 그들의 모든 죄까지 그에게 고백하는 것은
신앙의 선과 진리, 그리고 거룩한 이타애 자체에 반하는
범죄에 관해 전체 또는 각 부분에 있어서
자신이 죄가 있다는 것을 지각하고 고백하는 것을 뜻하며,
그 죄들을 염소의 머리 위에 두는 것은
고백된 그 악들을 거부하고 그것들을 자신에게서 분리할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뜻한다.
염소를 광야로 보내는 것은
지옥에 대한 거부를 뜻하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의 손에 의해서는
신성한 인간의 능력에 의한 것을 뜻하는데
이는 손이 능력을 뜻하고,
또 인간을 구원하여 그가 악과 오류들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며,
그리고 주님은 언제나 인간을 구원하실 준비가
되어 계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1. 그리고 그는 가장 내적인 선의 상태로부터
의지와 이해의 모든 힘을 가지고
신앙의 선과 진리, 그리고 거룩한 이타애 자체에 반하는
범죄에 관해 전체 또는 각 부분에 있어서
자신이 죄가 있다는 것을 지각하고 고백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주님에 의해 악을 거부할 수 있으며
‘신성한 인간’의 능력을 통해 악을 자신에게서 분리하여
그 악의 근원인 지옥에로 던질 수 있다.
22.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모두 지고 황무지(a solitary land)로
나가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로 보내야 한다.
22.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짊어지고 황무지로 나가는 것은
이것이 주님에 의한 구속의 과업을 통해 이루어질 것을 뜻하고
염소를 광야(wilderness)로 보내는 것은
악과 함께 거짓을 제거하는 것을 뜻한다.
이 경우 고독한 땅은 악을, 광야는 거짓을 뜻한다.
반면 땅이나 광야가 고독하다고 불릴 경우
이는 악과 거짓이 선과 진리로부터 분리된 채
그대로 있는 것을 뜻한다.
22. 이것은 주님에 의해 구속의 과업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고
거짓 또한 악과 함께 그들에게서 분리되어
선과 진리가 없는 이들에게만 남아있게 된다.
23-28절 요약
그런 다음 뒤따르는 것은
모든 진리가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진실한 인정,
순수한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예배의 상태,
인간의 가장 높은 선은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고백,
그리고 천국의 상태를 실현하기 위해
지속적인 깨끗해짐이 필요하다는 것 등이다.
23. 그 후 아론은 회막으로 들어오는데,
성소에 들어갈 때 입었던 세마포 옷을 벗어 거기 두고
23. 아론이 회막으로 들어오는 것은
선 안에 있는 사람은 천국적 삶의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을 뜻하고
그리고 그가 세마포 옷을 벗어 거기 두는 것은
거듭남이 이루어지게 하는 모든 거룩한 진리들은
비록 인간이 그들을 사용하는데 자기 스스로 하듯 요구될지라도
그것은 자신이 아닌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인정할 것을 뜻한다.
23. ..
24. 성소에서 자신을 물로 목욕한 다음,
그 옷을 다시 입고 나와 자기의 번제물과 백성의 번제물을 바쳐
자신과 백성의 죄를 벗겨야 한다.
24. 성소에서 자신을 물로 목욕하는 것은
위의 거룩한 상태에서도 깨끗함은 계속 있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고,
그의 옷을 입는 것은 진리를 운용하는(invest) 것을,
나오는 것은(coming forth) 이 구절의 경우 새 삶의 활동을 뜻하며,
자기 번제물과 백성의 번제물을 바치는 것은
속사람과 겉 사람 모두에서 나오는
순수한 사랑으로 예배하는 것을 뜻하고,
자신과 백성을 위해 속죄하는 것은
주님과의 화해, 그리고 겉 사람이 속사람과 화해하는 것을 뜻한다.
24. 이런 거룩한 상태에서 그는
주님과 화해되고 또 서로 화해된 속사람과 겉 사람 모두가
순수한 사랑으로부터 드리는 예배를 통해
자신을 계속해서 깨끗케 할 것이다.
25. 그는 그 속죄 제물의 기름기를 제단에서 살라야 한다.
25. 제단에서 속죄 제물의 기름기를 사른다는 것은
진심을 다해 모든 천적 선을 주님께 돌리는 것을 뜻한다.
25. 그러나 그는 심정으로부터 모든 천적 선을 주님께 돌릴 것이다.
26. 아사셀을 위해 염소를 보낸 사람도
옷을 빨아 입고 목욕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그는 진지로 들어올 수 있다.
26. 아사셀을 위해 염소를 보낸 사람이
최고의 의미에서는 주님을 뜻하지만
낮은 의미에서는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온 유입을 통해
자신 스스로 하듯 거짓과 악을 거부한 모든 사람을 뜻하고
그의 옷을 빨고 물로 자신을 목욕하는 것은
내적, 외적으로 깨끗해지는 것을 뜻하며,
진지로 들어오는 것은
그가 천국적 상태로 들어와 머물 수 있는 것을 뜻한다.
26. 그리고 신성한 인간으로부터 온 유입을 통해
자신 스스로 하듯 악으로부터 온 거짓을 거부한 모든 사람은
자기가 천국적 상태에 들어와 머무르기 위해서는
외적, 내적으로 계속 깨끗해져야 한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27. 이렇게 속죄 제물로 드린 황소와 염소의 피를
성소에 가져다가 속죄하고 나서
그 가죽과 살코기와 똥은
모두 진지 밖으로 내어가서 함께 불로 태워야 한다.
27. 속죄 제물인 황소와 염소는
복종이라는 자연적 인간의 선과
거듭나는 동안 영적인 사람이 실현한
신앙의 진리라는 그러한 진리를 뜻한다.
(The bullock of the sin offering, and the goat of the sin offering,
denote the good of the natural man which is obedience,
and the truth thereof which is the truth of faith
as realized during regeneration;)
속죄하기 위해 제물의 피를 성소에 가져오는 것은
진리가 선과 결합하고 그로 인해 깨끗해지는 것을 뜻하고,
진지 밖으로 내어가는 것은
천국적 상태에서 분리되는 것을 뜻한다.
불로 태우는 것은
순수한 천국적 사랑의 힘에 의해 거부되는 것을 뜻하거나,
또는 이기적 사랑으로 오염되어 정죄되는 것을 뜻한다.
제물의 가죽, 살코기, 똥이란
선과 진리처럼 보이는 불결한 모든 것들을 뜻한다.
27. 그러나 복종이라는 자연적 인간의 선과
거듭나는 동안 영적인 사람이 실현한 신앙의 진리라는 그러한 진리,
그리고 그에 따른 깨끗해짐은
천국적 상태와도 분리되어야 하고
겉보기에 선과 진리처럼 보이는 모든 것과 함께,
그리고 거듭나는 과정에 관계하던 모든 악과 거짓들과 함께
순수한 천국적 사랑의 힘에 의해 완전히 거부되어야 한다.
(But the good of the natural man which is obedience,
and the truth thereof which is the truth of faith as realized
by the spiritual man during regeneration, and consequent purification,
are to be separated from the heavenly state also,
and are to be entirely rejected by the power of pure heavenly love,
with every seeming truth or good, and all evil and falsity
there-with connected in the process of regeneration.)
28. 그것들을 태운 사람도 옷을 빨아 입고 목욕을 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진지로 들어 올 수 있다.
28. 위 제물을 태운 사람도 옷을 빨아 입고
자신을 물로 목욕한 후에야 진지로 들어 올 수 있다는 것은
이러한 거부의 과정이 끝난 후에도
갖가지 종류의 악과 거짓들로 나타나는 것들을
자기 스스로 하듯 거부하는 사람은
외적으로 더욱 깨끗해져야 비로소 천국적 상태를
충분히 실현하게 된다는 뜻이다.
28. ..
29-34절 요약
마지막으로 거듭남과 깨끗해짐의 이 거룩한 과정의 결과로
천국의 평화와 안식의 충만한 즐거움이 영원까지 있게 된다.
29. 이것은 너희가 지킬 영원한 규례(statute)다.
일곱째 달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너희 영혼을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렇게 해야 한다.
29 영원한 규례는
신성한 질서의 영원한 법칙을 뜻하고,
일곱째 달의 십 일에
너희는 너희 영혼을 괴롭게 한다는 것은
거듭나는 과정에서 (시험에서의 승리로 인해)
선과 진리의 남은 것들이 거기 충분히 심어질 때,
신앙과 이타애의 거룩한 상태에 있는
겉 사람의 깨끗해짐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또는 안식일은
시험에서 승리한 상태와 그로부터 천국적 평화와 쉼의 실현을 뜻하고,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는
이 규례가 내적 교회에 속한 사람이든 외적교회에 속한 사람이든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29. 그리고 이것은 거듭나는 과정에서
시험에서의 승리와 그것으로 인한 천국적 평화와 쉼의 실현을 통해
선과 진리의 남은 것들이 거기 충분히 심어질 때,
신앙과 이타애의 거룩한 상태에 있는 겉 사람의 깨끗해짐에 관한
신성한 질서의 영원한 법칙이다.
그리고 이 법칙은 내적 교회에 속한 사람이든
외적교회에 속한 사람이든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30. 그 날에 제사장이 너희를 속죄하여 깨끗케 할 것이므로
너희는 주님 앞에서 너희의 모든 죄로부터 깨끗해질 것이다.
30. 그 날에 제사장이 너희를 속죄하여 깨끗케 한다는 것은
주님의 영화하심에서는 인성이 신성과 화해하고
인간의 거듭남에서는 인간이 주님과,
그리고 겉 사람이 속사람과 화해하는 것이
오직 이런 방식으로만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너희는 주님 앞에서 너희의 모든 죄로부터 깨끗해진다는 것은
사람이 천국적 상태에 있도록
모든 실제적인 악과 거짓 그리고 불순함으로부터
그를 완전히 구원하는 것이
거듭남의 모든 과정의 결과라는 것을 뜻한다.
30. 주님의 영화하심에서는 인성이 신성과 화해하고
인간의 거듭남에서는 인간이 주님과,
그리고 겉 사람이 속사람과 화해하는 것이
오직 이런 방식으로만 성취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과정의 결과는 사람이 천국적 상태에 있도록
모든 실제적인 악과 거짓 그리고 불순함으로부터
그를 완전히 구원하는 것이다.
31. 이것은 사람이 철저히 쉬어야 하는 안식일이고
그의 영혼을 괴롭게 하는 것이며 영원히 지킬 규례이다.
31. 이것은 사람이 철저히 쉬어야 하는 안식일이고
그의 영혼을 괴롭게 하는 것이며 영원히 지킬 규례라는 것은
이러한 천국적 상태는 시험의 승리에서 오는 평화와 쉼의 상태이며
영원한 상태인 것이 확실하다는 뜻이다.
31. 그리고 이러한 천국적 상태는 시험의 승리에서 오는
평화와 쉼의 상태이며 나아가 영원한 상태인 것이 확실하다.
32. 기름 부음을 받고 아버지를 대신하여 제사장으로 성별된
제사장이 속죄를 행하고 세마포 옷, 곧 거룩한 옷을 입고
32. 기름 부음을 받고 아버지를 대신하여 제사장으로 성별된
제사장이 속죄를 행하고 세마포 옷, 곧 거룩한 옷을 입는 것은
이것이 교회를 승계하는 상태에서
진리와 결합한 천적인 선으로부터 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뜻하고,
그리고 주님과의 화해는
자연적 사람에 속한 ‘외면적 진리와 거룩한 상태’를 수단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그러한 진리는 선으로부터 거룩하기 때문이다.
(The priest who shall be anointed, and who shall be consecrated
to be priest in his father's stead making the atonement
and putting on the linen garments, even the holy garments,
denotes that this is to be effected entirely from celestial good
by conjunction with truth in successive states of the church,
and that reconciliation with the Lord will be effected,
by the instrumentality of the exterior truths of the natural man
and a state of holiness because those truths are holy from good)
32. ..
33.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속죄하고
또 제사장들과 온 백성의 회중을 위해 속죄해야 한다.
33.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
또 제사장들과 온 백성의 회중을 위해 속죄하는 것은
참으로 이러한 방법으로 인간은
모든 천적, 영적, 자연적 천국과 조화를 이루며
선과 진리 모두에 있어서도 그러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33. ..
34.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 때문에
일 년에 한 번씩 속죄해야 한다.
이것이 너희가 지킬 영원한 규례이다.
모세는 주께서 명하신 대로 하였다.
34. 이것이 너희가 지킬 영원한 규례라는 것은
그것은 신성한 질서의 영원한 법칙이라는 것을 뜻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 때문에 일 년에 한 번씩 속죄하는 것은
악에 대한 인간의 상태 때문에 주님과 화해하는 것을 뜻하고,
또 이것은 영원하다는 것을 뜻하며,
주님이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는 것은
이러한 일에서 선은 항상 주님으로부터 온 진리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을 뜻한다.
34. 이것은 악에 대한 인간의 상태 때문에
주님과 화해하는 영원한 법칙이다.
이것은 교회의 모든 사람에게 영원해야 한다.
그리고 이 일에서 선은 항상
주님으로부터 온 진리에 따라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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