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암종택 [開巖宗宅](경북기념물 제138호)
가옥 이름은 파조(派祖)인 개암(開巖) 김우굉(金宇宏)의 호에서 따온 것.
김우굉(金宇宏)의 자는 경부(敬夫), 호는 개암(開巖).
동강 김우옹의 중형으로 명종 21년(1566)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간, 대사성, 병조참의, 충청도관찰사, 부제학 등을 역임.
상주의 동수서원(凍水書院)에 배향(配享).
일제강점기 때 김창우(金昌禹:1854~1937)가 국권이 피탈된 후
이 집에서 구국 운동을 논의하는 거점으로 삼은 집이기도 하다.
▶개암 김우굉(開巖 金宇宏) : 碧波 김철진, 김혁진의 15대조
바 래 미
ㅡ마흔 한 번째 생일에
碧波 김철진 碧波
돌아가리라 내
바래미로 돌아가리라
의성김씨 한 삼백 년
조선 청댓잎 기침 소리로 살아온 마을
충의 효친 선조 유풍 수묵으로 번져 피고
대쪽 같은 선비 정신 명월루에 달로 뜨는
바래미
바래미로 내 돌아가리라
학록서당 맑은 묵향 학정봉 청솔 바람
빛 바랜 추녀 끝에 아스라이 고운 마을
할배 희긴 수염 추상으로 눈부시고
할매 곧은 정절 은장도로 날빛 푸른
바래미
바래미로 내 돌아가리라
단사정 두리기둥 감아돌던 연꽃 내음
세월에 곱게 삭아 완자창에 서린 마을
아배 긴 도포 술띠 갓 탕건도 옛빛이고
어메 지은 규방가사 솔꽃으로 향그러운
바래미 바래미로 돌아가리라
죽어라도 내 바래미로 돌아가리라
*바래미:경북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 의성김씨 세거 집성촌.
1986.9.1(월)
시집 <아랑아 옷 벗어라>에서
<사랑채 불타 버리기 전의 촌장 생가>
내 마음의 바래미
碧波 김철진 碧波
바래미 가는 길은 늘
풋감 떫은 그리움이다
차창에는 철도 없이
모과꽃이 피고 오얏이 익고
망막에는 할매된 남이도
눈매 곱게 웃는 복사꽃이다
영주역에 내려서 신작로를 달려
내 고향 봉화 바래미로 가면
아배 심은 노간주나무는
세월을 삭히며 용틀임을 하고
길옆 토담 아래 앵두나무는
잊혀진 나달처럼 사라지고 없다
사랑채 불타 버린 옛 집터
내 마음의 바래미만 늘 풋살구다
월간 '문학세계'(2001.12)
<바래미 입향 시조 팔오헌(八吾軒) 김성구(金聲久) 종택>
<바래미 입향 시조 팔오헌(八吾軒) 김성구(金聲久) 종택>
<팔오헌(八吾軒) 종택 팔오헌(八吾軒) 현판>
<바래미 입향 시조 팔오헌(八吾軒) 김성구(金聲久) 종택>
☞팔오헌(八吾軒) 김성구(金聲久)[1641(인조19)~1707(숙종33)]:조선의 문신.
자는 德休(덕휴), 호는 八五軒(팔오헌), 본관은 의성.
副提學(부제학) 宇宏(우굉)의 현손(玄孫). 生員(생원) 秋吉(추길)의 아들.
1662년(현종 3) 司馬試(사마시)를 거쳐
1669년 式年文科(식년문과)에 甲科(갑과)로 급제,
持平(지평)·正言(정언)·大司成(대사성) 등을 거쳐
1693년(숙종19) 강원도 관찰사에 이르렀다.
安東(안동)의 栢麓祠(백록사)에 祭享(제향).
◆팔오헌명(八吾軒銘)
경오전(耕吾田:내 밭을 갈고)
음오천(飮吾泉:내 샘물을 마시고)
채오전(採吾山+顚:내 산에서 나물 캐고)
조오천(釣吾川:내 내에서 고기를 낚고)
피오편(披吾編:내 책을 펴내고)
무오현(撫吾絃:내 거문고를 뜯고)
수오현(守吾玄:내 현묘함을 지키고)
종오년(終吾年:내 생애를 마치겠노라)
<바래미 입향 시조 팔오헌(八吾軒) 김성구(金聲久) 신도비>
遣興(견흥) / 흥에 겨워
八吾軒 金聲久(팔오헌 김성구)
香霧비微擁橘林(향무비미옹귤림) 향기로운 안개비 감귤 숲을 적시고
西山蒼翠送輕陰(서산창취송경음) 서산의 푸른 빛 엷은 그늘 드리웠네
陶然醉後油然臥(도연취후유연와) 거나하게 취하여 세사 잊고 누웠으니
一榻淸風抵萬金(일탑청풍저만금) 침상의 맑은 바람 만금에다 비길까
☞ 한시의 '비'자는 비 우(雨) 아래 아닐 비(非) 한 '눈 펄펄 내릴 비'자로
微자와 합쳐져 '비미'가 되면 '가랑비나 가랑눈이 내리는 모양'을 뜻함.
▶八吾軒 金聲久(팔오헌 김성구) : 碧波 김철진,김혁진의 11대조
<단사정(丹砂亭)>
<단사정(丹砂亭) 현판>
<단사정기(丹砂亭記)>
☞단사정(丹砂亭)
봉화읍 해저1리(바래미)에 소재하며
단사(丹砂) 김경온(1692 - 1734)이 정자를 창건한 것을
후손들이 바래미 가지밭골로 옮겨 세웠다 한다.
어사 박문수가 영조 원년에 진사를 한 단사(丹砂) 김경온을 만나고
'은거단사협(隱居丹砂峽) 하야 독파만권서(讀破萬券書)라'
[단사협에 숨어 살며 일만 권 책을 읽어 파했더라]
라고 상소를 올려 건원릉 참봉을 제수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사림에서 회동하여 공사를 논의하고 시영(詩詠)을 즐기던 곳이다.
丹砂十三絶(단사십삼절) / 첫수
丹砂 金景溫(단사 김경온)
丹砂洞裏芳草凄(단사동리방초처) 단사동 안 향기로운 풀잎이 시린데
丹砂峽口淸江碧(서산창취송경음) 단사협 어구 맑은 강물이 푸르구나
江流湛湛似春료(강류잠잠사춘료) 강물 맑고 깨끗하기 봄 막걸리 같은데
草色천천如綺席(초색천천여기석) 풀빛은 무성하여 비단 방석 같구나
☞ '료'자는 '닭 유(酉)' 변에 '높이 날 료'를 한 '막걸리 료' 자이고,
'천'의 '천' 자는 풀 초(艸) 밑에 일천 천(千)을 한 '풀 무성할 천' 자로서
'천천'은 '풀이 무성한 모양'을 뜻함.
▶丹砂 金景溫(단사 김경온) : 碧波 김철진,김혁진의 9대조
☞남호구택(南湖舊宅)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奉化邑) 해저리(海底里)에 있는 조선시대의 고가
▶지정번호 : 경북문화재자료 제385호
▶지정연도 : 2000년 4월 10일
▶소장 : 김호철
▶소재지 : 경북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 723
▶시대 : 조선시대
▶분류 : 고가
<본문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2000년 4월 10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385호로 지정되었다.
김호철이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모두 2동이다. 1876년(고종 13)에 농산(聾山) 김난영(金蘭永)이 건립하고,
그의 아들 남호(南湖) 김뢰식(金賚植:1877~1935)이 살던 곳이다.
건물은 응방산(鷹坊山) 줄기의 낮은 야산을 배경으로 앉아 있다.
솟을대문으로 된 대문간채를 들어서면 안채와 사랑채가 이어져
'口'자 형 구조를 이루고 있다.
보통 이 지방의 '口'자 형 집은
사랑채가 있는 정면에 중문간(中門間)이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가옥은 측면(側面)에 중문간이 있고
정면 가운데에는 돌출된 도장방을 둔 독특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 지방의 명망 높은 부호였던 김뢰식은
자신의 전재산을 저당(抵當)하고 대부(貸付)받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자금으로 내놓은 공(功)으로
1977년 건국훈장(建國勳章)을 받은 인물이다.
<바래미 문화재 독립운동가 김건영 가옥>
▶김건영가옥 [海底金建永家屋](경북기념물 제117호)
독립운동가인 해관 김건영이 세운 집으로,
소장 전적은 김규영(金圭永)의 《문과홍패(文科紅牌)》(1885),
김건영의《소수의망첩(疏首擬望帖)》 등이 있다.
1919년 파리장서사건을 전개할 때
사랑채가 지역유림들의 연명 장소로 이용되었다.
<해와고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38호)>
<해와고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38호)>
▶해와고택 [海窩古宅](경북 문화재자료 제338호)
이 건물은 조선 영조(1724~1776) 때 이조참의를 역임한
해와 김희택(海窩 金熙澤)의 후손들이 1837년에 세운 가옥이다.
이의 형태는 영남 지방 양반들의 주택 배치 방법인
ㅁ자 형으로 지어져 있다.
<만회고택 청풍헌과 명월루>
<만회고택>
<보수 전의 만회고택 명월루(明月樓)>
<보수 후의 만회고택 명월루(明月樓)>
☞만회고택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奉化邑) 해저리(海底里)에 있는
만회 김건수(金建銖:1790~1854)의 고택.
▶지정번호 : 중요민속자료 제169호
▶지정연도 : 1984년 1월 10일
▶소 재 지 : 경북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 485
▶시 대 : 조선시대
▶분 류 : 가옥
▶만회고택 [海底晩悔古宅](중요민속자료 제169호)
조선 후기의 문신인 만회 김건수가 살던 집으로
독립운동가 김정진이 소유·관리하고 있다.
안채는 김건수 6대조가
이곳에 먼저 정착한 서씨로부터 매입하였다고 하며,
사랑채인 명월루는 1849년(철종 1)에 고쳐 세웠는데
여기가 파리장서사건[제1차유림단사건]의 발상지이다.
<바래미 참판댁>
<바래미 참봉댁>
<바래미 참봉댁 용호정(龍湖亭)>
바래미 내 고향에
碧波 김철진 碧波
바래미 내 고향에
여남은 평 땅을 사서
일여덟 평 텃밭 일궈
물외 고추 부루 심고
두세 평엔 草幕을 지어
술 익히며 살고 싶다.
水石松竹만 내 벗이랴
동산에 달만 내 벗이랴
해 별 눈 비 구름 바람
이 모두도 내 벗이라
詩心도 내 無心으로
그리 살다 가고 싶다.
시집 <어 메>에서
▶촌장 지기인 손진담 박사(대덕연구단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의 말
바래미는 2억년전(중생대 쥬라기)이 아니고
6억년전(원생대)에 생겨난 깊은 바다였단다. 바래미의 돌들이 그것을 말해주지.
청량산은 그래도 봉화 일대에서 제일 젊은 지층(약 1억년전- 중생대 백악기)인데,
화산과 충적층이 복합적으로 나오는 육성층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