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색이 있고 색이 없는 문을 밝힘
次第二 明有色無色門者
앞에서 말한 네 문 가운데서 앞의 1문은 자수용토(自受用土)를 나타내고 뒤의 3문은 타수용토(他受用土)를 말한 것이다.
3문에 색이 있는 것을 말한 것이 틀림 없지만 자수용토에 대해서는 해설한 이들의 말이 같지 않다.
如前所說四種門中 初一門顯 自受用土 後三門 說他受用土
三門有色 不待言論 自受用土 說者不同
어떤 이는 말하기를, “자수용신(自受用身)은 색형(色形)을 멀리 떠나 법성(法性)의 정토를 그 사는 곳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거기는 어떤 색상(色相)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하였다.
마치, 저 “본업경(本業經)”에서 “불자야, 과체(果體)는 원만하여 갖추지 않은 덕이 없고 두루하지 않은 이치가 없으며, 중도 제일의제(中道第一義諦)에 있다. 청정한 국토는 끝도 없고 이름도 모양도 없어서 어떤 법도 있을 수 없으며 몸이 있는 것도 아니요 몸이 없는 것도 아니다…(이하 생략)…”고 한 것과 같다.
或有說者 自受用身 遠離色形 法性淨土 爲所住處 是故都無色相可得
如本業經說 佛子果體圓滿 無德不備 理無不周 居中道第一義諦 淸淨國土 無極無名無相 非一切法可得 非有體 非無體 乃至廣說
“기신론”에는 “모든 부처님은 오직 법신과 지상(智相)의 몸이 있을 뿐이며, 제일의제에는 세제(世諦)의 경계가 없고 아무 작용도 없지만, 다만 중생들이 그것을 보고 들음을 따라 이익을 얻기 때문에 그것을 작용이라 한다.
이 작용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범부와 2승이 마음으로 보는 것으로 그것을 응신(應身)이라 하며, 둘째는 보살이 처음 발심한 때로부터 보살의 구경지(究竟地)에 이르기까지 마음으로 보는 것이니 그것을 보신(報身)이라 한다” 하였으니,
이런 글에 의하여 볼 수 있는 색상(色相) 따위는 다 타수용신으로서 자수용신에는 색상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 智相 - 부처의 광명(光明)을 말함. 부처님의 지혜가 밖으로 나타난 모양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함.
起信論云 諸佛如來 唯是法身智相之身 第一義諦 無有世諦境界 離於施作 但隨衆生見聞皆得益 故說爲用
此用有二種 一者凡夫二乘心所見者 名爲應身 二者諸菩薩從初發意 乃至菩薩究竟地 心所見者 名爲報身
依此等文 當知所見有色相等 皆得他受用身 說自受用中 無色無相也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자수용신에는 장애가 없는 미묘한 색이 있고 그것이 의지한 국토에는 육진(六塵)의 뛰어나고 훌륭한 경계가 갖추어 있다”하였으니, 이것은 마치 “살차니건자경(薩遮尼乾子經)”에,
구담(瞿曇)의 법성(法性)의 몸은 그 묘한 색이 항상 고요하나니
이와 같은 법성의 몸이 중생과 같아 그 끝이 없다.
라고 한 것과 같다.
或有說者 自受用身 有無障礙微妙之色 其所依土 具有六塵殊勝境界 如薩遮尼乾子經云
瞿曇法性身 妙色常湛然 如是法性身 衆生等無邊
또 “화엄경”에는 “여래 정각(正覺)께서 보리를 이루었을 때에는 일체 중생과 같은 몸을 얻었고, 일체의 법과 같은 몸을 얻었으며, 나아가 일체의 행계(行界)와 같은 몸을 얻었고, 고요한 열반계와 같은 몸을 얻었다. 불자여, 여래는 그 얻은 몸을 따라 그 음성과 걸림이 없는 마음도 그와 같은 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여래는 이런 무량한 세 가지 청정함을 두루 갖추었느니라”하였다.
華嚴經云 如來正覺成菩提時 得一切衆生等身 得一切法等身 乃至得一切行界等身 得寂靜涅槃界等身 佛子 隨如來所得身 當知音聲及無礙心 亦復如是 如來具足如是三種淸淨無量
“섭대승론”에는 “만일 정토에 아무 두려움이 없으면 육근(六根)이 수용하는 법을 다 두루 갖추어 있다” 하였고, 또 “오직 이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수용거리[受用具]가 가장 훌륭하여 동등할 리가 없나니, 이것은 여래의 복덕과 지혜로 인과 행[因行]이 원만하여 여래의 훌륭한 과보가 의지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장 훌륭하다고 하는 것이다” 하였으니, 이런 글에 의하여 원만한 인과 행으로 이루어진 자수용신은 육진을 의지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攝大乘云 若淨土中 無諸怖畏 六根所受用法悉具有 又非唯是有 一切所受用具 最勝無等 是如來福德智慧 行圓滿因 感如來勝報依止處 是故最勝 依此等文 當知圓滿因之所感 自受用身 依止六塵也
또 어떤 이는 말한다.
“그 두 스승의 말에는 다 일리가 있으니 그것이 다 경론에서 말한 것과 틀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래의 법문에는 장애가 없기 때문이니 왜냐하면 보불신(報沸身)의 국토에는 대략 두 가지 문이 있으니, 만일 정상귀원(正相歸源)의 문으로 말한다면 첫째 스승의 말과 같지만, 만일 종성성덕(從性成德)의 문에 의한다면 뒤의 스승의 말과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분들의 인용한 경론은 그 문을 따라 말하였기 때문에 서로 틀리는 것이 아니다.”
或有說者
二師所說 皆有道理 等有經論 不可違故 如來法門無障礙故 所以然者 報佛身土 略有二門 若就正相歸源之門 如初師說 若依從性成德之門 如後師說 所引經論 隨門而說 故不相違
이상 제2의 색이 있고 색이 없는 문이다.
此是第二色無色門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