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제39회 화이정 ＜육체가 보내는 신호들, 또는 오고 있는 소년들＞

[노진숙]

제39회 화이정 2015/01/23 카페 헤세이티

육체가 보내는 신호들, 또는 오고 있는 소년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20150123 노진숙

1.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 - 번복의 불가능성

   지나간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끝없이 반복해온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번복’이다, 그 일이 일어나기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그 말을 뱉어내기 이전으로 내 주변을 복원하는 것. 하지만 조금만 따져보면 ‘번복’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금방 깨닫는다. 이미 나에게 그 일이 일어났다면, 나를 둘러싼 세계는 미처 눈치채지 못할만큼일지라도 조금 움직였고 그 움직임으로 파생되는 엄청난 변화는 신도 멈추게 할 수 없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의 상태, 마지막 원본은 사라지고 없다. 따라서 원본은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의 귀향을 꿈꾸는 자들에게 고향 같은 곳이다. 돌아갈 수 없기에 그리워할 수 밖에 없고 그립기에 애달프다. 소설속 등장인물들은 돌이킬 수 없는 사건들, 복원 불가능한 사람들 앞에서 사라져간다. 동호는 쓰러진 정대를 보고도 도망갔던 시간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어하고, 진수는 그 말1)을 하기 이전으로 시간을 돌이키고 싶어한다. 은숙도 선주도, 동호의 엄마도 형도, 동호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시간 이전으로 돌아갈수 없어 죄책감에 시달린다. 돌이킬 수 없는 사건들이 지시하고 있는 것은 두 가지다. 두 가지중 하나를 취해야 한다. 죽거나 살아남거나. 죽지 못하면 영재나 동호의 엄마처럼 미쳐간다. 미치지도 못하면 은숙이나 선주처럼 무기력하게 목숨을 부지한다. 그나마 살고자하는 의지가 있는 자들은 동호의 형처럼 딱딱해져버린다. 그렇다면 이런 부등호가 성립한다. 죽다>미쳐버리다>무기력해지다>딱딱해져가다. 소설은 부등호순으로 죽은 자(동호, 정대)에게서 미쳐버린 자(영재)로, 살아남은 자들(은숙, 선주, 동호의 엄마, 동호의 형)로 이동한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로부터 증언을 듣는 자로서 소설가 자신을 마지막에 등장시킨다. 소설속에서 선주가 증언의 불가능성을 처절하게 암시하지만, 에필로그에서의 “나”는 다시 증언자를 찾아 나선다. 이것은 영원히 불화하는 두 세대, 몸으로 시간을 겪어낸 사람들과 정신으로 그것에 도달하고자 하는 자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거리를 보여준다. 그 거리는 심연의 먼 곳에서 시작되어 점점 더 깊은 심연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소설가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자신의 소설이 상처를 헤아리거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로, 왜곡된 사실은 왜곡된 채 흘러가고 있는 현실세계에 기여하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소설가 자신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를 듣고자 하며, 훼손되었을지라도 사라져가는 원본의 이미지 한귀퉁이라도 복원해내고 싶어한다. 마치 그것이 소설가의 임무인양. 같은 마루에 배를 깔고 있었던 동호에 대한 의리인양. 그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남은 이 희미한 인간적인 그림자들이 사라지기라도 한 양. 도청을 허물고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그 자리에 문화센터가 건립된 것처럼 예기치 못한 무엇인가가 휩쓸려 내려갈까봐. 나는 소설을 읽는 동안 소설가와 불화가 깊어갔지만2), 끝까지 따라가 본다. 전혀 예기치 못한 일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2. 육체가 보내는 신호들 - 거부의 불가능성

   운동화가 벗겨진 정대의 맨발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달아난 동호는 그 일이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찰나적인 사건일수록 번복하는 것이 더욱 불가능하다는 것을 동호는 알고 있다. 정대의 손을 놓친 것도 찰나였고, 총성이 들린 것도, 정대가 쓰러진 것도 찰나며, 달아난 것도 찰나였다. 너무도 짧아 잡을 수도 없고 너무도 가늘어서 놓칠 수 밖에 없었던 시간의 줄을 덧대거나 칭칭 감고 이어보려해도 소용없다. 동호가 도청에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던 이유는 사후적 해석으로 이념화된, 화석화된 거대한 가치는 없다. 동호를 떠나지 못하게 했던 것은 정대가 마지막으로 보냈던 신호, 맨발의 꿈틀거림이었다. 정대의 손을 놓치기 전으로, 정대가 넘어지기 전으로, 자신이 달아나기 전으로, 정대의 맨발을 보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동호는 정대가 마지막으로 보냈던 육체적 신호에 반응한다. 그 육체적 신호를 거부할 수가 없다. 그 마지막 신호에 대한 응답으로 동호는 도청에 남는다. 그리고 죽은 정대는 군부가 도청을 진압하던 날, 먼 곳에서 동호의 기척을 느낀다. 그렇게 둘은 서로에게 응답하지만 만나지 못한다. 어떤 낌새만으로 서로를 알아차릴 뿐이다.

   진수의 자살은 돌아가지 못할 시간 앞에서의 절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자신의 걱정어린 충고가 아니었다면 5명의 어린 학생들이 그처럼 무의미하게 죽지는 않았을 거란 자책은 삶을 견디지 못하게 한다. 무기를 버리고 손을 들고 나오라는 자신의 당부가 아니었다면, 어린 생명들이 죽지는 않았을 거라는 가정법은 소용없다. 그는 “말했”고, 아이들은 “행동했”다. 진수는 용서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형벌로 아이들의 죽음/사진을 끌어안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여기서도 확인된다. 진수를 이끌고 가는 것은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는 것을. 어린 생명들의 육체였다는 것을. 육체에 대한 반응은 은숙도, 선주도 마찬가지다. 자살하기 위해 그 도시를 찾았다가 벽보사진속 처참한 어린 소녀의 시신이 노동현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라는 것을 알고, 근무하는 의상실 주인이 대학생 아들을 데리고 도시를 빠져나갔기에 일거리가 없어 나왔다가 “어린 짐승들이 한꺼번에 내는 것 같은 목소리”(159쪽) 때문에 사건에 깊이 연루된다. 그들은 의사도 아니고 투사도 아니고, 영웅도 아니다. 육체의 울림이 그들을 움직인다.

모든 사람이 껍데기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걸 느꼈습니다....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116)

3. 봉인된 현실들 - 증언의 불가능성

   그들에게 닥친 일들을 아무도 설명해낼 수 없다. 그 일들을 설명하자면 복잡한 세계는 더욱 헝클어지고, 그들의 상처는 더 들쑤져질뿐이다. 그래서 그녀들은 침묵한다. 아무리 설명해도 전달될 수 없는 것들은 침묵으로서만 지켜진다. 죽은 자는 죽었기에 증언하지 못하고 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가 겪은 일들을 온전히 알지 못하기에 증언하지 못한다.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은 봉인된 채 상상적인 것으로 남겨진다. 또는 증언한다 한들 상상을 초과하는 현실에 대하여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상상을 초과하는 현실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은 자들은 무엇으로 명명될 수 있는가. 오히려 증언은 살아남은 자들의 삶을 치욕스럽게 하는 매개가 될 가능성이 더 많다.

선생이 쓰려고 하는 논문은 선생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닙니까..김진수가 죽어간 과정을 복원할 수 있습니까? 그와 나의 경험이 비슷했을지 모르지만 결코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그가 혼자서 겪은 일들을 그 자신에게서 듣지 않는 한, 어떻게 그의 죽음이 부검될 수 있습니까(108)

선주는 증언의 불가능성을 이렇게 대신한다.

침묵과 헛기침과 망설임, 헐겁거나 뻑뻑한 단어들을 덧붙이고 꿰매 어떤 내용을 완성할 수 있었을까.(152)

그 여름으로부터 이십여년이 흘렀다. 씨를 말려야 할 빨갱이연놈들. 그들이 욕설을 뱉으며 당신의 몸에 물을 끼얹던 순간을 등지고 여기까지 왔다. 그 여름 이전으로 돌아갈 길은 끊어졌다. 학살이전, 고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174)

   번복의 불가능성은 소설의 말미에 재차 확인된다. 선주는 증언하지 못한다. 견디지도 못한다. 잊지도 못한다. 용서하지도 못한다. 자신의 죄를 사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십년동안 소년은 선주에게 온다. 왜 아직 살아있느냐는 소년의 물음은 멈추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가 견디지 못해 죽었다고, 견디지 못해 미쳐버렸다고 말한다면, 아직도 살아있는 자들에게는 견딜만 한 시간이었을까. 아니면 죽거나 미쳐버린 자들보다 비겁하다고 해야 할까. 살아남을 만큼 독하지만,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해야 하나. 죽어간 이들과 살아남은 이들 사이는 아득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이 글 서두의 그 부등호는 광주학살과 무관한 자들이 사건에 연루된 자들에게 보내는 치욕스런 부등호가 아닌가. 당신은 이렇게라도 살아남았군요...그래요,,,당신을 충분히 이해해요...“그렇지만” 당신은 이렇게라도 살아남았군요....남은 자들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또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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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기를 버리고 손을 들고 나오면 최소한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소년들에게 자신이 했던 말

2) 특히 소설의 후반부에 소극적 군인(212쪽)에 대한 언급이라던가, 동호어머니의 넋두리 “그저 겨울이 지나간께 봄이 오드만”(190쪽)이라는 식의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을 앞세워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잊혀지거나 묽어진다는 뉘앙스의 문장들은 나를 무척 불편하게 했다.

[노진숙]

아직 여물지 않은 글이라 논지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덧붙일 것들이 있으나 서둘러 마무리 하느라 구멍이 숭숭 뚫린 둣합니다. 조금 더 다듬어볼 생각입니다.

두서너달 격주로 만났던 탓에 화이정 40회가 다음달이네요...^^

[아마님(김금옥)]

회차가..제가 보강은 빼고 기록한게..35회로 끝났어요..진숙 샘...전에 우리가 가이님과 한 보강은 횟수로 안 잡고..회비를 낸 달 기준으로 하면 아직 35회입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