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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신문]9월특집-천주교 순교자성월 <절두산 순교성지 탐방> | ||||||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절두산(切頭山). 한자 뜻 그대로 무시무시한 산이다. 원래 절두산은 누에 머리와 닮았다고 해서 잠두봉(蠶頭峰)으로 불렸다. 잠두봉이 절두산이라는 끔찍한 이름을 갖게 된 것은 한국 천주교회 사상 가장 많은 순교자를 낳은 병인박해(1866) 때부터다. 병인양요 사건으로 인한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 때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목이 잘려 죽자 절두산이라 불리게 된 것. 대원군은 프랑스함대가 들어왔던 양화진 근처를 살육의 형장으로 삼았고, 이곳에서 베어진 머리는 강물에 떨어져 그 수가 1만을 넘었다고 한다. 현재 절두산에는 사적과 유물등을 전시한 순교기념박물관과 성인 28위의 유해가 안치된 성해실이 있는 성당이 있고, 그 앞에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명실공히 한국교회의 대표적 순교성지다. 절두산 순교성지 본관 2∼3층에 있는 박물관. 이곳은 천주교 교회사의 생생한 현장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서적류 1250여점, 교회사적지 유물 750점, 민속품 150여점, 사진류 290여점 등 천주교 교회사와 관련된 3000여점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주요 전시물로는 김대건 성인 친필 서한, 노기남 주교 선임 교황 교서, 정약용이 그린 산수화, 안중근 의사 유품 등이 있다. 박물관 관람 때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은 2층에 있는 ‘전통 인형으로 꾸며논 한국천주교회사’ 전시실이다. 이벽세례, 명례방 신앙집회, 김대건 사제 서품, 최양업 신부 선교활동 등 교회사 주요 12장면을 인형으로 재현해 순교자들의 신앙과 삶을 엿볼 수 있도록 했다. 순교자들의 숨결이 밴 절두산에 지금의 순교 박물관이 들어선 것은 지금부터 38년전인 1967년. 현재 이곳은 순례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가 된지 오래다. 순교성지에서 만난 이막달래나(53)씨는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끝낸 후 “거룩하신 순교자들에 대한 감사와 가족의 안위를 위해 기도했다. 죽음으로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진리를 증거한 순교자들이 있었기에 이 땅에 종교의 자유가 있을 수 있는 것”이라며 “순교자들처럼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하지는 못하겠지만 모든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씨는 천주교인으로서 절두산 순교 성지는 꼭 한번 와봐야 할 곳이라고 덧붙였다.
■천주교 4대 박해
▲신유박해(辛酉迫害)
1801년(순조 1년), 대왕대비 정순왕후 김씨가 섭정을 하면서 금교령을 내리고 전국의 천주교 신자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를 시작했다. 정조의 국상이 끝나자 주문모 신부를 비롯해 이승훈, 정약종, 홍낙민, 홍교만, 최필공, 최창현, 강경복, 김현우, 최인철 등이 서울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참수됐다. 전주에서는 이우집, 윤지헌, 김유산 등이 잡혀 순교당했으며 이존창은 공주 황새바위에서 순교했다. 신유박해는 황사영이 체포되면서 ‘백서’사건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이 때 황사영과 함께 옥천희, 현계흠 등이 참수됐다. 신유박해로 희생자 수가 100여명, 유배된 자가 400여명에 이르렀다.
▲기해박해(己亥迫害)
1839년(헌종 5년), 기해년 대박해로 앵베르 주교와 모방, 샤스탕 신부 등 세 선교사가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조선의 아녜스’라 불리는 12살의 이봉금(아나스타시아)과 그의 모친 김 아가다도 이 때 옥중 순교했다. 이밖에 오종례, 홍재영, 이광헌, 남명혁, 권득인, 김아기, 박아기, 이소사, 김업이, 한아기, 박희순, 이광렬, 김로사, 김성임, 이매임 등이 전주와 서울 서소문 밖 네거리 성지에서 순교했다. 당시 기록인 ‘기해일기’에 의하면 순교자가 54명, 옥사나 곤장에 맞아 죽은 신자가 60여명에 이른다.
▲병오박해(丙午迫害)
1846년(헌종 12년)에 김대건 신부가 경기도 은이 공소에서 최초로 미사를 봉헌했다. 그러나 김 신부는 중국으로부터 선교사를 모셔오려고 시도하던 중 연평도 근해에서 발각돼 그 해 9월 16일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했고 현석문, 임치백, 우술임, 김임이, 이간난, 정철염, 남경문, 한이형 등도 이때 순교했다.
▲병인박해(丙寅迫害)
1866년(고종 3년)에 시작되어 대원군이 실각했던 1873년까지 계속됐다. 한국천주교회사에 있어 그 규모와 희생자 수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큰 박해였다. 베르뇌 주교를 비롯해 브레트니에르, 도리, 볼레, 푸르티네, 프티니콜라 신부 등 6명 의 프랑스외방전교회 선교사가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또 정의배, 우세영, 유정률, 남종삼, 홍봉주, 전장운, 최형, 다블뤼 주교, 위앵 신부, 오매트르 신부, 손자선, 정문호, 조화서, 손선지 등이 순교했다. 이 시기에 순교한 신자는 약 8천여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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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출처: http://www.jksm.com/Service4/ShellView.asp?TreeID=502&PCode=0006&DataID=20050909171700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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